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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도 '여성파워' 콘텐츠 계속될까?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20. 2. 5. 16: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한민국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과 2019년 전망 세미나에서 주요 결산 키워드로 여성시대를 꼽았습니다.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전원 여성 멤버로 구성된 예능 밥블레스유’, 여성향 게임 월간아이돌’ 등 대중문화 전반에 여성 중심 콘텐츠의 약진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이 같은 현상은 올해도 지속됐습니다. 벌새와 신입사관 구해령’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두 여성 서사가 강세였습니다예능에서도 셀럽파이브를 필두로 여성파워가 주목받았는데요. 오랫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이던 대중문화계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아빠 어디가 시즌2’. ⓒMBC

 

대중문화계의 성불평등 문제는 이미 유구한 이슈이나 2010년대 들어 문제가 더 심화됐습니다한 예로 2015년 8월 21일 자 중앙일보에는 남초예능 시대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글은 “TV 예능에서 여자들이 사라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무한도전을 비롯한 남성 중심 버라이어티의 인기가 굳건한 상황에서육아와 요리 같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라 여겨졌던 영역마저 남성 예능의 소재가 되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일밤-아빠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아빠 예능, ‘집밥 백선생’, ‘냉장고를 부탁해’ 등 남성 쿡방이 유행하는 동안 여성 예능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 남초 시대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영화는 더 심각했습니다. 2016년 9월 웹진 아이즈에 실린 한국영화 남초 시대’ 칼럼은 2010년대 들어 영화에서 성비 불균형이 심화된 현상을 지적합니다제작비가 상승하면서 유명 남자배우들을 집단 캐스팅한 대작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는 전략이 쏠림 현상을 부채질했다는 분석인데요. 이 시기 극장가를 휩쓴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베테랑’, ‘내부자들’ 같은 작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이 영화들이 투톱 주연을 기본으로 조연들까지 남성 배우로 채우는 동안여성 배우들은 주인공의 아내나 조력자조직의 홍일점 역할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여성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슬램덩크’. ⓒKBS

 

드라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꽃보다 남자가 성공을 거둔 다음해인 2010년부터 성균관 스캔들’,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등 꽃미남 캐릭터가 집단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유행하면서 여성 배우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습니다이 시기에 급부상한 장르물에도 유사한 인물 구도가 적용됐습니다. ‘브레인’, ‘골든타임’, ‘굿닥터’ 등 메디컬 드라마는 젊은 남주인공과 중년 남성 캐릭터의 사제관계와 남성간 권력 다툼에 큰 비중을 할애합니다. ‘추적자’, ‘유령’, ‘나쁜 녀석들’ 등 범죄 스릴러도 남주인공과 남성 악역의 대결 구도로 흘러갔습니다여성 캐릭터는 이러한 주요 갈등 구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이미 페미니즘이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2014년 9월 20일 배우 엠마 왓슨의 연설로 그 시작을 알린 UN 성평등 캠페인 히포시(HeForShe)와 세계적 명사들의 페미니스트 선언할리우드의 젠더 스와프’ 유행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국내에서도 2015년 상반기 SNS를 뜨겁게 달군 페미니스트 해시태그 운동을 비롯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이와 함께 대중문화계의 성불평등을 비판하고여성 서사를 열망하는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습니다특히 2015년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가부장제 전복 메시지와 강인한 여성 캐릭터 퓨리오사를 통해 열광을 이끌어냈습니다남초 예능에서 가부장제를 패러디한 가모장 캐릭터로 고군분투하는 김숙에게 퓨리오숙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KBS에서는 김숙을 주축으로 한 여성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방영하며여성들의 목소리를 일부 수용합니다. KBS ‘하이파이브’ 이후 지상파에서 무려 8년 만에 등장한 정규 여성 버라이어티였습니다.

 

 

 

■ 아가씨와 굿와이프의 뜨거운 사이다

 

여성 서사를 향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폭발한 시기는 2016년부터입니다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있는데요. 2019년 10월, 여성신문이 창간 31주년을 맞아 2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 1위로 꼽힌 강남역 살인사건입니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중심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여성들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자발적인 추모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페미니즘과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여성의 마음을 대변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콘텐츠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공감대도 확산됩니다.

 

▲ 이미지 출처 : 영화 ‘아가씨’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이 가운데 6월에 잇달아 개봉한 영화 아가씨’, ‘비밀은 없다’, ‘우리들은 신선한 여성 재현으로 지지를 받았습니다. 남성성의 허위를 조롱하고 폭력적 세계의 탈주에 성공한 아가씨의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 정치인의 순종하는 아내에서 복수의 주체로 변신한 비밀은 없다의 연홍(손예진), 소녀들의 복잡하고 섬세한 관계를 보여준 우리들의 선(최수인), 지아(설혜인), 보라(이서연)는 한국영화 속 여성의 역할을 다양화했습니다이 흐름은 2017년 아이 캔 스피크와 땐뽀걸즈에서도 이어집니다위안부의 고통을 증언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성폭력을 고발한 옥분(나문희), 춤과 우정을 통해 성장하는 땐뽀반’ 소녀들은 기존의 한국영화가 크게 주목하지 않은 여성 노년청소년들의 힘과 활기를 보여줍니다. 예능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제일 눈길을 끈 것은 2017년 나란히 등장한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와 까칠남녀’입니정치와 사회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젠더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이며 화제를 모았습니다두 프로그램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으나 새로운 여성 콘텐츠에 대한 갈망을 재확인시켜줬습니다여성 건강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며 여성의 몸을 둘러싼 터부에 의문을 제기한 바디액츄얼리’ 역시 많은 의미를 남긴 프로그램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가 활기를 띠었습니다미국의 여성주의적 원작을 리메이크한 굿와이프’, 청년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청춘시대’, 개성적인 노년 여성들의 삶과 우정을 그린 디어 마이 프렌즈’, 여성 슈퍼히어로물 힘쎈여자 도봉순’ 등 다양한 여성 서사가, 2016년과 2017년 두 해 동안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시기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마녀의 법정입니다여성 아동범죄 전담부 검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성폭력 문제를 정면에서 다룹니다그간 남성 배우가 도맡았던 출세 지향적 검사 마이듬(정려원)의 묘사는 단연 돋보이는 성과였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의 허스토리

 

2018년과 올해는 여성 서사가 더욱 확대된 시기입니다. 2018년 1월 29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할리우드 여성 스타들에 의해 대중화된 이 반성폭력 운동은 서 검사의 증언 이후 국내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미투 운동이 여성들에게 가져온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여성 서사를 향한 열망을 넘어 남성 중심 문화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여성들에게 폭넓은 연대의 응원을 보내게 됐다는 점입니다. 여성주의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뿐 아니라주제를 떠나 여성들이 주도하고 만드는 다양한 콘텐츠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영화 ‘걸캅스’ 등장인물 라미란과 이성경

 

이런 배경 속에서 영화에서도 여성 서사가 점점 확대됐습니다대표 사례가 여성들의 진입이 가장 어려웠던 중간 규모 이상 상업 영화의 변화입니다남성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대작 시대극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리더를 앞에 세운 국가부도의 날’, 역시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버디 수사물 장르에 여성 형사 투톱 주연작 걸캅스가 흔치 않은 성공 사례를 남겼습니다. ‘82년생 김지영도 본격적인 페미니즘 메시지를 내세우는 동시에 가족영화로서 폭넓은 관객층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저예산 영화에서는 여성 서사의 다양화가 더 두드러집니다. 여성의 자립과 노동을 다룬 리틀 포레스트’, 학대당하는 소녀와 구원자 여성의 연대를 그린 미쓰백’, 도시 빈민 청년 여성의 삶을 그린 소공녀’, 위안부 할머니들의 뜨거운 투쟁의 기록 허스토리’, 유관순 열사와 여성 항일 운동가들의 숨은 역사를 기록한 항거’, 1990년대 회고 열풍을 여성의 경험으로 다시 읽게 한 벌새’ 등 주목할만한 작품이 잇달아 개봉했습니다. ‘허스토리’, ‘항거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도 귀중한 성과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드라마 ‘마녀의 법정’. ⓒKBS

 

드라마에서도 남성들이 주도해왔던 장르물에 변화가 일어나며 여성 서사의 지평이 확대됐습니다. 먼저 남성 역사 위주였던 사극 장르에 새 경향이 생겼는데요. 미스터 션샤인’ 과 이몽은 항일운동사에서 지워져 있던 여성 독립투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신입사관 구해령은 여성 사관들이 존재했다는 대체 역사를 통해 전복적인 조선 사대부 여성 캐릭터를 그려냈습다.

사극과 함께 대표적인 남성 중심 장르인 스릴러 변화도 눈에 띕니다.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룬 범죄 스릴러 마더와 붉은 달 푸른 해는 여성의 눈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응시했습니다. 입시 문제와 가부장제의 모순을 연결시킨 스릴러 시크릿 마더와 ‘SKY 캐슬은 중년 기혼 여성 서사의 진화를 보여준 작품입니다느와르의 문법을 여성들의 이야기에 도입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도 화제였습니다이 작품은 애초에 유리천장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성공을 향해 질주하고 경쟁하는 여성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예능에서도 여성파워가 더 성장하고 있습니다여성들과의 공감대를 내세운 예능 밥블레스유’, ‘비밀언니’, ‘센마이웨이’ 등이 차례로 등장하는가 하면제작자로 변신한 송은이의 도전도 주목받았습니다. 그가 선보인 웹예능 판벌려의 셀럽파이브 프로젝트는 남성 중심 예능판을 뒤흔드는 대성공을 거뒀는데요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도 여성의 성적 욕망과 경험을 거리낌 없이 고백하며 여성 예능의 장르와 소재를 넓혔습니다15년 만에 완전체로 모인 핑클의 캠핑클럽과 염정아윤세아박소담의 삼시세끼 산촌편은 남성들이 독점한 야외 예능에서 여성들만의 조화롭고 성실한 이야기의 매력을 보여준 사례입니다오디션 예능 퀸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섹시나 청순의 아이콘으로만 소비되던 걸그룹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무대를 기획하면서전형적인 이미지를 전복하는 모습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진정한 다양성의 시대를 향해

 

▲ 이미지 출처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MBC

 

여성 서사를 비롯한 콘텐츠의 다양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디즈니와 넷플릭스 같이 글로벌 콘텐츠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이미 젠더와 인종을 아우르는 다양성의 전략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이 강했던 디즈니의 진화가 이목을 끕니다. 2010년대 이후 ‘메리다와 마법의 숲’, ‘겨울왕국’, ‘모아나’ 등 기존의 공주 이야기를 전복시킨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데요.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 실사 영화화 프로젝트에서도 진보한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습니다최근 인어공주’ 실사화 과정에서 흑인 여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은 이 같은 전략의 정점입니다.

디즈니는 마블을 인수하면서 남성 영웅 대서사시인 슈퍼히어로 장르에서도 여성 서사 강화와 다양성 전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올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여성 단독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을 공개했고내년에도 여성 히어로 솔로 영화 블랙 위도우를 통해 여성 서사의 지평을 넓힐 전망입니다. K드라마, K팝에 이어 글로벌 시장에서 점점 주목받고 있는 K콘텐츠가 어떤 방향성을 띠어야 하는지는 명백합니다. 진정한 다양성의 시대를 향해 가야 합니다.

 

 

 김선영 대중문화 평론가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N콘텐츠 14호"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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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영화를 살리는 또 다른 힘, 단관 문화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8. 10. 10.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이미지 출처 : 영화 <허스토리> 스틸컷



‘8월 11일 대한극장 3시, 허스토리&바캉스’


이 짧은 문구와 함께 올라온 낯익은 영화 제목의 트위터 계정은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지난 6월 27일 개봉해 사실상 극장 상영이 끝난 영화 <허스토리>의 단체관람(아래 단관)을 추진하는 행사를 한창 홍보하고 있었다.


뜻과 마음이 맞는 일반 관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극장을 빌려 특정 작품을 보는 이른바 단관 행사는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여러 상영관을 한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전국 극장의 약 97%를 차지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관객들의 영화 선택권은 축소되는 상황이었다.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빌리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다만 최근 들어 이 단관 행사가 팬덤 문화와 결합해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관 문화를 통해 팬덤을 공고히 형성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9월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등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와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총출동했지만, 상영 종료 시점까지 <아수라>는 약 259만 관객을 모았다. 손익분기점인 360만 관객에 100만 정도 부족한 결과였다.


‘사건’은 그 직후 일어났다. 상영 종료 무렵에 <아수라>의 작품성에 매료된 관객들이 SNS 등을 통해 단관을 홍보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영화상 가상 도시인 ‘안남시’의 이름을 따 자신들을 ‘안남시민’이라 지칭했다. 영화 <아수라>에 열광한 사람들을 일컬어 ‘아수리언’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이 아수리언들의 단관 행사는 10월을 지나 11월까지 이어졌고, 심지어는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던 지난 촛불집회에 ‘안남시민연대’라는 깃발이 등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7월 방영된 한 지상파 시사교양프로에서도 <아수라>가 언급되며 재관람이 이어졌고,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게 됐다.




2016년에 ‘아수리언’이 있었다면, 2017년에는 ‘불한당원’이 있었다. 재기발랄한 코미디 영화로 알려진 변성현 감독이 누와르에 도전장을 낸 영화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 열광한 관객들을 불한당원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5월 개봉한 이 작품 역시 상영 종료 시점까지 관객 수가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며 흥행에 실패하는 듯했다. 배우 설경구와 아이돌 가수 출신의 임시완이 주연으로 나서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개봉 당시 흐름은 좋지 않았고, 230만이라는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부족한 약 89만 명으로 상영이 마감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 참패의 흐름으로 가자 관객들은 단관 행사를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영화를 봤음에도 한 번 더, 혹은 몇 번 더 보는 ‘N차 관람’ 형태가 이어졌다. 많게는 30번, 40번을 본 관객들도 있었다. 이런 단관 릴레이는 6월을 넘겨 7월까지 거의 매일 열렸다. 출연 배우들 역시 이런 흐름에 감동했다. 설경구는 7월에 열린 한단관 행사에 참석해 “20년 넘게 영화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겪는다”며 감개무량한 심정을 밝힌 바 있다.


2018년 2월경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확인하면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불한당>이 2월 19일 하루 동안 1865명의 관객을 모아 박스오피스 10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것. 이 역시 단관 행사의 결과물이었다. 이렇게 열정적인 불한당원들의 활약으로 약 9개월간 <불한당>은 89만에 5만여 명을 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상영관 확보도 쉽지 않았던 <당갈> 역시 단관문화의 혜택을 받은 영화이다.


그리고 올 여름은 영화 〈허스토리〉가 그 맥을 잇고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등으로 섬세한 연출력을 자랑하는 민규동 감독의 신작 〈허스토리〉는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및 성노예 피해자들의 현재를 극화한 작품이다.


<허스토리> 역시 지난 6월 27일 개봉 이후 상영 종료 시점까지 약 32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제작비 기준 이 작품의 손익분기점은 약 100만 명 수준. 이를 안타까워한 관객들이 곧바로 단관 행사를 시작했다. 특히 지난 7월 28일 3차 대관 현장에서는 출연 배우인 김희애가 관객들을 향해 돈뭉치가 든 미니건을 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극 중 김희애는 피해자들의 일본에서의 재판을 지원하는 경영인 문정숙 사장 역을 맡았다.


자신들을 ‘허스토리언’이라 명명한 관객들의 환호 이유는 분명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허스토리>의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여성, 그것도 평균 연령 60대 이상의 배우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김희애를 제외하고 각각 피해자 할머니로 분한 김해숙, 예수정, 문숙,이용녀 등이 환갑을 넘긴 관록을 지닌 배우들이다.


<불한당>이나 <아수라>가 중년 남성 배우의 매력을 재발견한 경우라면 <허스토리>는 중년 여성을 비롯한 여성 관객들이 환호할 요소가 가득하다. 실제로 단관 스태프로 참여한 한 여성 관객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평평하지 않은 서사를 가진 여성 캐릭터에 목이 마르던 차에 <허스토리>를 만났다”며 열광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서사의 보조 기능을 주로 하던 이들이 대상화되지 않고 서사의 중심에 섰기에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셈이다.


단관문화는 관객들의 독창적인 문화로 볼 수도 있고, 동시에 극장에서

충분한 기간 내에 보지 못한 분들의 자구책의 성격도 있는 것 같다. 



CGV 리서치센터가 발표한 N차 관람 순위(CGV 회원 기준)를 살펴보면 동일 영화를 3회 이상 관람한 관객수는 약 6만 명으로 영화 <아가씨>(4.8회), <곡성>(4.15회), <럭키>(4.1회), <덕혜옹주>(3.8회) 순이었다.


<아가씨>와 <덕혜옹주>가 여성 투톱 혹은 여성 서사가 중심이라는 점, <곡성>과 <럭키>가 각각 한국 토속신앙을 장르적으로 풀었고, 유해진이라는 중년 배우를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모두 그 개성과 의미가 분명하다. 지난 6월 27일 개봉 후 318만 관객을 동원, 장기흥행한 <마녀> 역시 여성 중심 서사로 20대 관객 비중(40.2%)과 N차 관람 비중(2.0%)이 동기간 전체 영화(20대 관객 비중 37.5%, N차 관람 비중 1.7%)에 비해 높았다.


CGV의 한 관계자는 “N차 관람과 대관이 예전에 비해 얼마나 증가했는지 수치로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영화의 소재나 형식에 따라 극장을 빌리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관은 극장 입장에서도 수익이 보전되는 제안이기에 긍정적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수치와 답변은 곧 객들의 대관 및 반복 관람 패턴이 영화의 개성에 따라 분명히 갈린다는 걸 방증한다. 다만 이런 현상이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멀티플렉스 극장 중심의 시간표 배정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는 시각 또한 있다. 일례로 <허스토리>의 단관 행사를 주최한 한 관객의 SNS 계정엔 ‘상영관이 없어서 만들어버린 단관 계정’이라 적혀 있었다.



<허스토리> 제작사 수필름에 따르면 이런 단관 행사는 8월 29일까지 예정돼 있다. 수필름 민진수 대표는 “우리도 모르게 하는 단관도 많이 있다”며 “관객들의 독창적인 문화로 볼 수도 있고, 동시에 극장에서 충분한 기간 내에 보지 못한 분들의 자구책의 성격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영화를 보신 어떤 관객은 힘들게 이 영화를 봤는데 인생의 진로를 바꿀 정도의 감흥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장이 너무 없으니 직접 단관을 진행해도 되겠냐 묻기도 했다”는 사연을 전했다.


이런 이유로 단관 문화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개봉 첫 주에 반드시 승부를 봐야하고 이에 따라 흥행 여부가 결정되는 한국영화 산업의 단면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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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