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은 작가가 그 모든 것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목에 이미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된 다중 의미와 관점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지훈의 시 <승무속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을 맺는 구절을 제목으로 빌려온 웹툰 <나빌레라>가 그렇습니다승무를 추는 승려의 모습을 묘사한 나비로다라는 뜻의 우리말이 우아하게 담긴 이 시구 나빌레라에는그것이 나비일까?’ 의심하는 조심스러운 추측과 나비로구나!’ 깨닫는 확신이 공존합니다동시에 익숙지 않은 이 표현 속 정적인 명사 ‘나비’가 마치 형용사와 동사처럼 이어지면서 나비가 춤을 추는 모습을 생생하게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주인공 ‘삼덕출’이 현실의 제약과 사람들의 의심을 뿌리치고 꿈을 실현하는 작품 속 비상의 과정은 제목이 함의한 위 세 가지 관점을 순차적으로 거치며 그려집니다.

 

어른의 의심하는 눈, 그건 나비일까?

 

△ 이미지 출처 : <나빌레라> ⓒ다음웹툰

 

<나빌레라>의 줄거리는 70세 노인 심덕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그동안 하고 싶었던 발레에의 도전을 별안간 선언하며 시작됩니다사람들은 덕출의 흔치 않은 결정의 진정성을그것의 성공적인 실현 가능성을 의심합니다. ‘노인의 몸으로 왜 하필 발레일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심지어 본작 관련하여 독자가 처음 갖는 관심도 ‘노인의 발레 이야기’라는 핵심 설정에 관한 호기심에 가깝습니다. 덕출의 장남 ‘심성산’은 그러한 작품 안팎의 극대화된 의심을 대표해 아버지의 결정에 대한 반대 의사를 구체적 행동으로까지 표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덕출이 당장 원하지 않는 합가까지 속히 실행하려고 합니다. 성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소위 말하는 효자의 조건을 갖추었습니다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으며일찌감치 가정을 이뤘습니다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두 분이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하지만 그는 결정적으로 아버지를 자기 삶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채 제 생각 안에 가두고 있으며,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발레에 관한 이해마저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의견만이 정답인 양 정해진 선택을 강요하는 어른처럼 말입니다.



덕출의 결정을 의심하고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산의 생각은 ‘남성 노인은 발레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실 성산만의 것이 아닙니다. 작품 밖에도 분명 존재하는 ‘무용은 여성적’이라는 편견은 지난 전통에 근거합니다. 오랜 역사 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무용은 19세기 근대에 들어선 후 반대로 남성적인 신체 활동이 체육으로 한정됨으로써 오롯이 여성의 것으로 배분되었습니다여성 혹은 여성성을 타자화객체화된 존재로 구별하는 구시대의 폭력은 자연스럽게 여성적 활동으로 간주된 발레마저 구별했습니다성산은 스스로 고백했듯이 발레에 관해 잘 모릅니다. 자식 세대인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만 어릴 뿐 주체가 보고, 객체가 보이는 식의 종속 관계로 굳어진 지난 세기의 편견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구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는 성산이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현 아버지 세대가 발레를 실제 공연보다는 미디어 보도를 통한 이미지로만 수용한 까닭도 큽니다이로 인해 예술이 현대사에 들어선 지 100년이 지나 동시대 예술로 소비되고 있는 오늘날에도무용이 여전히 철저히 보이는’ 객체에 머물러 있는 작품 내 편견은 그럴듯한 안티 테제가 됩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발레 행위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발레를 객체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사고로는 발레를 하는 이의 신체 역시 객체입니다객체는 절대 스스로 기능하거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합니다반드시 다른 무언가로 교환된 후에야 비로소 의미를 지닙니다. 다른 자녀들과 함께 발레 단장 ‘문경군’마저 최초에 심덕출에게 대신 권했던 등산과 에어로빅 등은 ‘건강’으로의 교환 가능성이 큰 건전한 취미생활이지만, 발레는 그마저 결과를 확신할 수 없기에 그저 다른 이에게 부끄럽게 보이는 ‘짓’이나 ‘꼴’(3화)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산과 비슷한 수준은 아니지만 덕출을 걱정하는 여타 인물들의 소극적 의심은 발레나 성 역할에 대한 차별보다 노인 신체에 대한 구별 및 억압과 관련 있습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덕출의 신체는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대개 노인의 몸이 젊은 사람보다 훨씬 연약하고 쉽게 망가진다는 통계적 의심은 반드시 그러하다는 기정사실이 되어 사람들의 의심을 더욱더 자라게 합니다. 이는 비단 실질적인 신체 능력이나 그것과의 관련성과 무관하게 노약자의 생산성을 무조건 무시하는 가속화된 현대 산업화 세계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합니다신체의 물리적 능력이 생존에 직결되었던 고대와 다를 바 없이현대에서도 활력과 변화를 구현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추앙받는 이높은 가능성과 성장 동력을 가진 이는 주로 젊은 사람들로 평가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N포세대’, ‘소확행’와 같은 용어의 무게를 젊은 세대에게만 한정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오히려 앞선 생애를 통해 이미 많은 것을 누렸고 지니고 있다는 인식으로 인해노인 세대는 자기 지향성에 대해 더욱 가혹한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실제로 덕출은 비단 자연적인 노쇠만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이하 치매)까지 안고 있었고이는 사람들의 눈에서 점차 가셨던 의심을 더욱 증폭하는 결정적인 장치가 되었습니다그의 바른 생활 습관이나 운동으로도 늦출 수 없는 불가항적 질병으로서의 치매는 단지 성산만이 아니라, 작중 모든 인물과 독자의 눈에마저 의심을 드리우게 했습니다. 어쩌면 덕출은 ‘무대에 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라고. ‘날아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늙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 같다”(1)는 작품 속 덕출의 첫 내레이션은 도전을 앞둔 그가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다지는 말이었지만거꾸로 반복되는 좌절에 익숙해져 발레에 대한 단념을 재촉하는 말로도 언제든 뒤바뀔 수 있습니다실제로 덕출은 무대를 코앞에 두고 공연을 포기하게 됩니다(55). 여러 차례 부침을 거쳐 쌓아올려진 의심이 최고조에 달해 덕출의 도전이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아이의 확신하는 마음,
‘그건 나비로구나!’

 

덕출의 도전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으로부터 제반 의심을 거두고 성공을 확신하는 일은 개별 인물 간 상호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자식들의 반대에 부딪힌 덕출과 가장 가깝게 지내며 그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는 인물은, 현실에서는 뜻밖이라 할 수 있는 손자뻘의 ‘이채록’ 입니다. 경국의 지시로 파트너를 이루게 된 덕출과 채록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위기 상황에서 연대하며 서사를 이끌어갑니다생판 남이었던 청년과 노인 두 사람이 점차 마음을 열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긴밀한 관계 설정은 작위적이지만 설득력이 높기도 한데이는 두 캐릭터가 여러모로 상호 거울상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일흔을 며칠 앞둔 덕출은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느라 막상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했던 인물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온라인서점 예스24 홈페이지

 

반대로 스물셋의 채록은 비록 가난하지만 하고 싶은 축구와 발레에 도전할 수 있는 재능과 기회가 일찌감치 주어졌던 인물입니다. 덕출에게는 가족이 있었지만 발레가 부재했고, 의지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의 관계마저 멀어진 채록에게는 발레가 있었지만, 가족이 부재했습니다. 한편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시점에 덕출은 막상 하고 싶었던 발레에 도전하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가족이 없었고, 채록은 하고 있던 발레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조금씩 희미해지던 터였습니다. 그런 덕출이 채록의 매니저이자 제자가 됨으로써 발레를 할 수 있게 되고, 채록은 할아버지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그를 보살피는 살뜰히 보살핌으로써 다시금 가족애를 느끼고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두 사람은 서로의 빈자리를 꼭 들어맞는 천생연분인 셈입니다.

 

덕출의 가족 및 그와 채록이 함께 하는 대안 가족 이야기가 사건과 관계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나빌레라>의 장르는 분명 휴먼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서로 대칭의 속성을 지닌 두 인물이 반강제로 관계를 맺고 비슷한 꿈과 열정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한다는 스토리 구조나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공유하며 서로 다른 인물들이 절대적인 믿음을 나눈다는 비현실적 설정은 소년만화나 성장물에서 자주 반복된 요소이기도 합니다. 덕출이 성인이지만 그의 일상이 직장이나 생산 활동에서 벗어난 노인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가 미성년처럼 어른들의 편견이나 신체의 불가항력에 대항해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소년만화 속 주인공과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초반에 덕출을 반신반의하다가도누구보다 그를 신뢰하고 절대적인 지지와 도움을 주게 되는 채록의 존재 역시 소년만화 속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과 판박입니다이들은 절대 논리적 판단이나 현실적인 가능성을 잣대로 꿈과 우정 같은 순수한 가치를 재단하지도그것의 배신을 의심하지도 않습니다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듯 절대적인 믿음을 보입니다. 작품 말미, 덕출이 목표로 삼았던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이 확실시되어가는 위기의 순간에 서로를 향한 믿음은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급격히 악화한 치매 증상으로 인해 스스로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르길 단념한 덕출을 채록은 재차 설득합니다. 덕출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해낼 수 있으리라는 강한 믿음으로. 이 같은 신뢰는 연쇄적으로 작용해 다른 캐릭터에게도 전염됩니다. 경국에게 소리치는 채록의 모습, ‘하고 싶다잖아! 할 수 있어요! 허락해 주세요!(55화)’은 어린아이가 쓰는 생떼에 가깝지만, ‘우리만 하는 소극장 공연 아니(55화)’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던 경국도 결국 채록을 해낼 것을, 채록과 함께 덕출이 해낼 것을 믿어 보입니다. “사람이 언제 초라해지는 걸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고 믿는 순간(13화)’이라고 자답했던 덕출이, 스스로 포기했고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 무대를 채록의 반복된 설득에 다시 용기를 얻고 도전하는 순간 ‘나는... 정말... 발레가... 발레가 하고 싶어(55화)’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소년만화에서 익히 보아온 수미상관적 연출입니다.


<나빌레라>는 종종 대사 하나 없이 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공들인 연출로 작품 밖 독자들의 신뢰를 얻어내기도 합니다발레단을 방문해 무용수의 연습을 구경하며 발을 꼼지락거리는 덕출의 뒷모습(5화)을 통해 발레에 대한 진지한 그의 열정과 의지를 독자에게 재차 확인하게 하고, 하고 싶었던 말을 아버지에게 전하려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머뭇거리는 채록의 모습(16화)을 통해서는 할아버지와의 관계 이외의 면에서도 조금씩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다리를 다친 이후 잠시 좌절했지만 경국의 배려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덕출이 지금까지보다 더 잘 해내고 ’(30)다는 말에 가만히 그의 어깨에 손부터 올리는 채록의 행동에서는 이제 덕출을 보듬고 북돋는 보호자 같은 관계로 역전된 그의 믿음직한 면모를 읽을 수 있고길을 잃었던 덕출을 데리러 간 채록이 그에게 다짜고짜 발레 동작을 시키는 장면(33)은 막판 치매 증상에도 덕출이 발레 동작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복선이 됩니다. 결국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어 가족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덕출이 차가운 바벨 봉을 잡고 몸이 기억하는 발레 동작을 해 보이는 장면(에필로그, 후기)은 어떤 대사 없이도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이처럼 여러 차례 반복되는 섬세한 장면 연출을 통해 독자는 의심을 버리고 작품과 작가를 순진하게 믿게 됩니다. 그리고 <나빌레라>의 끝에 비참하고 현실적인 비극이 아닌, 아름다운 결말이 있음을 기대하게 됩니다.

 

춤추는 낭만,

나빌레라

 

 

작중에도 언급되듯이 ‘발레는 스포츠가 아닌 예술’(5화)입니다. 예술의 세계는 현실로 쉬이 실현될 수 없는 낭만을 품고 있습니다. 발레는 발끝을 세운 채 수도 없이 튀어 오르고 점프를 하는 등 물 흐르듯 중력에 저항함으로써 비정상적인 동작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일깨웁니다. <나빌레라>가 의심으로부터 확신으로 착실하게 나아가는 서사는 궁극적으로극 중 인물과 독자들에게 마치 발레 동작처럼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다운 춤을 선사합니다. 현실의 드라마, 드라마적 현실에는 별수 없이 ‘악당’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악인’은 아닐지언정 어느 누군가에게만큼은 분명한 ‘악역’이 되어 주인공 혹은 자신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깁니다.


하지만 <나빌레라>는 그 어떤 인물도 그저 악역에 머무르게 하지 않습니다. 채록을 괴롭히는 동창 ‘성철’에게는 길 잃은 덕출을 챙겨줄 기회를 주고(33화), 덕출의 도전을 촬영하고 이를 자극적으로 편집해 그의 꿈을 웃음거리로 만든 PD 박정서(22화)는 바로 다음 화에 성관에게 사과를 건네게 합니다. 덕출의 도전을 의심하고, 사사건건 심한 말을 쏟아내는 성산마저 그의 뒷모습과 눈물을 조명함으로써 독자에게 그를 이해하게 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나빌레라> ⓒ다음웹툰

 

이들의 반대편에서는 작품 곳곳에 있는 조력자들과 선한 역할을 대변하는 캐릭터들이 작가의 교훈을 대신 전하기도 합니다. ‘자식 번듯하게 잘 사는 거로 부모가 자식 앞에 약자가 돼야(15화)’ 할 이유는 없다고 일갈하는 엄마,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이 원하고 계신 걸지도 모르잖아? 그런 거면 우리가 도움은 못 되더라도 방해는 하지 말자(31화)’고 형제들을 설득하는 막내 ‘성관’. 심지어 가족도 아닌 성산의 친구 민구는 친구 아버지인 덕출에게 ‘부족한 저희 식구들을 대신해서 아버지 친구로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19화)’하다 하고, 스승인 경국은 제자 채록에 ‘난 한 번도 널 의심한 적 없어. (중략) 네가 해내 줄 거라고 늘 믿고 있었다(55화)’라며 군말 없이 그의 무모함을 덮어줍니다. 독자의 마음을 대변하고나아가 덕출과 채록 등 주요 인물을 향한 애틋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인물들에게 깊은 갈등이나 감정의 골은 절대 생길 수 없습니다이 덕분에 할아버지 덕출과 손자뻘 채록은 자연스레 친구처럼 지내게 되고스승 경국과 제자 채록 사이 불편한 권위주의는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나빌레라>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 흐름은 신선하고 창의적인 예술보다는 멋지고 아름다운 이상(理想)’에 가깝습니다그것은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소통의 부재나 오해를 쉽게 발생시키지도 않고설사 그것이 생겨나더라도 오래 끌고 가지 않습니다. 실제 가족이든 덕출과 채록 사이 형성된 대안 가족이든 세대 간 갈등이 먼 나라 얘기가 된 작품 속 세계는 인물들의 휴머니즘적 면모가 그 어디에서보다도 두드러집니다. 이는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 덕출이 물리적으로 칠순 노인의 몸으로 유연한 몸과 체력을 자랑하고, 스스로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걸 찾아보고(3화)’ 발레단에 들어가며, 스마트폰으로 쉽게 셀카를 찍을 정도로 젊게 사는 인물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칠십 평생을 허물없이 건실하고 세심하며, 심지어 크게 몸 불편한 곳 없이 시대에 뒤처짐도 없이 영민하게 살아온 노인에게 자식과 주변 인물들은 저마다 그 표현 방식이 다를지언정 같은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웹툰으로서의 장르성은 훈훈한 서사와 설정 위에 미려한 심상을 덧댈 수 있게 합니다. 시종일관 균질한 색온도로 섬세하게 조율한 화풍 위에 세월의 흔적이 드리운 노인의 깊은 주름은 얇고 짧은 선 몇 개로, 생의 최종 장을 보내고 있는 어두운 낯빛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밝고 화사한 톤으로 표현됩니다. 젊은 사람들과 비교해 어딘지 다르고 느릴 수밖에 없는 노인의 동작과 행동은 컷을 읽는 독자 저마다의 상상에 따라 남들과 엇비슷한 양태와 템포에 수렴합니다게다가 이 모든 것은 절대 어색하지 않습니다현실과 다른 작품 속 아이와 같은 낭만은 팍팍한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사고를 나풀대는 춤으로 뒤바꿉니다.

 

나비의 꿈:
‘그건 꿈이었을까?’


작품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주인공의 주체성과 도전 의식이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성장 및 관계성 회복 등의 주제 의식을 발레라는 예술 형식에 투영함으로써 무척 온건하게 담아냈습니다. 만약 여기서 발레가 없었다면 이는 현실에서 생존권을 포함한 사람답게 사는 삶’에 관한 담론 자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여러 사회문제나 이를 위시한 각종 변혁의 의지를 외면하고 그에 볼멘소리를 내는 보수적 논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의 삶이면 충분하지 않으냐는 것이는 아버지 덕출에게 지금까지 점잖게 잘 살아(2)’왔는데 이제 와서 왜 그렇냐는 듯 반대하는 성산의 의심과 닮았습니다

 

한 개인이든 개인을 아우르는 세대든 사람됨을 지향하는 주체의 치열한 투쟁은 시대와 집단을 아울러 함께 응원하고 힘을 보태야 할 공공의 혁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나빌레라>는 예술을 빌려 투쟁의 가장 우아한 면만을 남깁니다. 덕출의 꿈을 채록보다 먼저 돕고 응원한 경국의 말마따나 비상의 꿈은 ‘추하지 않습니다(30화)’. 안타깝게도 마지막 순간에 덕출은 모든 것을 망각합니다. 발레에 매진했던 마지막 생애는 물론, 지난 70년 세월이 마치 스쳐 지나간 백일몽이 된 마냥 그의 기억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장자의 ‘나비의 꿈(胡蝶之夢)’ 설화가 주는 교훈처럼 작품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현실이든 꿈이든 상관없다는 사실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온라인서점 예스24 홈페이지

 

덕출의 도전이 헛되지 않은 것은 그의 꿈과 도전에 함께 했던 채록과 주변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 이야기가 추하지 않은 것은 그 의지가 주변 인물에게 남아 이어졌기 때문입니다시 <승무>에는 춤을 추는 승려에 관한 사연이 일절 생략돼 있습니다오히려 그의 춤사위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만이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의 시절은 너를 만나 다행이고 우리를 만나 꿈만 같구나(56)’ 덕출 한 사람의 소망에서 출발한 <나빌레라>의 이야기는 우리의 것으로 남았습니다

 

누군가는 B급 발레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각자의 실패와 상처를 안은 아이들을 ‘아직 목표를 가진’ ‘엘리트’로 믿고 그 꿈을 돕는 경국, 채록에 평생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형으로 남겠다(35화)’고 고백하는 성관, ‘해보고 싶은 거 해보고, 가보고 싶은 곳’에 가보며 ‘행복하게 살(7화)’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어받을 혜진, 게다가 가벼운 농담조나 작품에 대한 불만 하나 없이 댓글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독자들까지. 덕출의 춤을 지켜본 이들에 의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저마다의 날갯짓이 이어집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기성 부문 가작 지정 평론  장병욱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여러분은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요? 디즈니 <겨울 왕국>이나 <토이스토리> 혹은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애니메이션 개봉 소식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인기 있는 콘텐츠 장르인데요. 상상을 뛰어넘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우리 정서에 맞는 '국산 애니메이션'도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산 애니메이션 <언더독>이 프랑스에서 개봉을 앞두며 그 인기를 세계로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국산 애니메이션의 매력 그리고 어른들의 마음에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이미지 출처 : <신비아파트> ⓒCJENM

 

[레드슈즈 | RedShoes]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모티프로 한 시나리오 <레드슈즈>.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뒤바뀐 설정에서 시작된 주인공들의 유쾌한 소동과 성장으로 이 시대의 외모 지상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작품입니다. <레드슈즈>는 제작진의 99%가 한국 아티스트가 참여하였고 국내 기술로 세계 메이저 스튜디오 수준의 완성도 높은 영상미를 연출했는데요. 수려한 외모를 가진 일곱 난쟁이와 입장이 바뀐 백설 공주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신비 아파트 : 고스트볼 X의 탄생 두 번째 이야기]

 

 

 

2018년 11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신비 아파트>는 TV 애니메이션으로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도깨비 '금비'가 살던 동굴에서 봉인된 귀신들이 현실 세계로 빠져나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금비는 이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잃게 됩니다. 하리와 친구들은 현실 세계로 풀려난 500여 년 전 원혼들과 맞서 싸우며, 금비의 기억을 찾아주기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로 인해 밝혀지는 도깨비들의 슬픈 사연. 우리가 몰랐던 도깨비들의 진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브레드 이발소]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진열된 서울의 한 고급 베이커리. 빵들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각종 토핑들로 한껏 치장을 하고 진열대에 오릅니다. 한편에는 오븐에 시커멓게 타거나 바닥에 떨어져 머리가 찌그러진 불쌍한 빵도 있습니다. 못난이 빵들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질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못난이 빵들의 운명은 '브레드 이발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180도 바뀝니다. 천재 이발사 브레드가 기상천외한 헤어스타일로 맛있게 꾸며 주기 때문인데요. 과연 어떤 사연의 못난이 빵들이 이 이발소를 찾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브레드 이발소>에서 이들의 페이스오프(?) 결과를 확인하세요!

 

[미니 특공대 X]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 군단에 맞선 히어로의 활약! 놀라운 스피드의 소유자 볼트부터 맥스, 새미, 루시까지. 최강의 전사 미니 특공대는 맹수의 힘 X 파워로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불행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 제노스를 축으로 에피소드별로 다양한 콘셉트의 외계인이 등장하는 작품 <미니 특공대>. 강력해진 악에 맞서기 위해선 더욱 강력해져야 하는데요. 과연 미니 특공대는 외계 군단에 맞서 위기에 처한 지구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언더독]

 

 

어느 날 산속에 버려진 개 '뭉치'가 폐가 마을의 유기견들과 산속의 들개들을 만나며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폐가 마을과 산에서 쫓겨나게 된 유기견 무리들은 셰퍼드 견종인 '개코'의 안내로 사람이 없는 동물들의 낙원을 찾아 험난한 길을 떠나는데요. 이들을 추적하는 사냥꾼의 위협을 따돌리고 물리치며 도착한 곳은 개코가 지뢰 탐지견으로 근무하던 DMZ이었습니다. 마지막 관문인 DMZ 철망을 넘어 그들은 무사히 사람이 없는 땅 비무장지대에 안착할 수 있을까요? 이들의 여정이 궁금하다면 <언더독>에서 확인해 주세요!

 

지금까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애니메이션 다섯 작품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잘 보셨나요? 본 작품들은 재미와 감동은 물론, 2019년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대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까지 갖추고 있는데요.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슴속에 잊고 있었던 어른들의 동심과 따뜻한 마음까지 불러일으키는 애니메이션. 집콕하며 재미있게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시간을 20년으로 늘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이 지나가고, 웰빙이 지난 자리에 가성비와 소확행이 찾아왔습니다. ‘좋은 삶, 건강한 삶’을 지향하던 사람들은 이제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것, 그리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소비의 방향을 옮기고 있습니다.

 

"고도성장기, 잔치는 끝났습니다."


한국은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무서운 줄 모르고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주 어렸거나 태어나지 않았던 시기인 당시는 현재 세대에겐 말하자면 전설과 같은 시기입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역사 속 시대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고도성장기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때문에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있던 마지막 시기였습니다이제 인류는 그런 시기를 지나 저성장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저축으로 내 집 마련’ 이 가능했던 마지막 시기에는 저축과 투자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다가올 찬란한 순간이 오늘이 아닌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청년에게 ‘세계’란, IMF로 기억되는 어린시절과 2008년 금융위기로 기록된 경제 침체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새롭게 경제활동인구로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중반~1996년 태생)는 저성장을 피부로 느끼며 성장했고, 양극화를 눈으로 보고 자라났습니다. 모험하지 않는다고 꾸짖는 어른들에게, 모험했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세대로 자라났습니다. 다가올 내일은 불안하고, 가장 빛나는 건 나의 오늘인 세대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지금의 안정을, 미래의 행복 대신 현재의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입니다. 고도성장이라는 잔치가 끝난 곳에서, 당연히 사람들은 현재의 행복을 찾습니다. 미래에는 행복이 없거나, 너무나 불확실하거나, 있더라도 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인 가구의 증가저출산고용불안 등의 여러 사회적 맥락이 작용하면서 고도성장이라는 잔치가 끝난 후에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가치보다 불확실해지면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자리 잡은 셈입니다인터넷 문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웹툰 역시 이런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발 빠르게 반영했습니다. 2014년부터 연재중인 yami 작가의 <일단 질러질렐루야>는 잔치가 끝난 시대현재의 즐거움과 생활의 편리함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 이미지출처 : 일단질러! 질렐루야Ⓒyami 다음

 

고도성장기에 성공했거나적어도 그들을 보고 함께 성장해온 세대에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야심도 없고도전과 노력을 하지 않는 세대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고스펙 경쟁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지독한 무기력에 시달리는 세대이기도 합니다독립을 위한 보증금을 마련하려면 안정적인 가정과 저축할 수 있는 수입이 필요합니다하지만 10년 넘게 지속된 취업난줄어든 안정적인 일자리는 이마저도 녹록지 않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일단 질러! 질렐루야>의 등장인물들은 결코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직접 사용해본 물건을 ‘나리’와 ‘닭둘’이라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무기력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작품인 만큼, 낙천적인 성격의 나리와 현실적인 성격의 닭둘은 현대 청년을 의미하는 메타포입니다. 엘리트로 성장해 대형 로펌에서 일했지만 좋은 직장을 뛰쳐나와 웹툰 작가로 일하는 닭둘은 경쟁과 착취에 지친 청년을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나리는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린 청년을 대변합니다작품은 청년세대의 삶을 종합해서 보여주기보다소비라는 측면에서 행복을 논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키워드 중 하나는 덕질입니다작품 속 캐릭터들에게 덕질은 일상의 일부로 등장합니다그리고 작품의 주제가 되는 아이템은 이런 덕질을 윤택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일상에서 쉽게 소비하는 물건을 소개하기보다,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아이디어 제품’을 소개하는 질렐루야는 소비 키워드를 모두 잡았습니다. 현대 소비의 키워드 중 하나인 ‘가성비’는 곧 ‘똑똑한 소비’로 치환됩니다. 똑똑한 소비는 다시 ‘남들은 모르는 나의 즐거움’으로 자리잡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적은 재화를 들여 최대의 만족을 얻는 방법 자체가 게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유튜브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는 가성비’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이나 글입니다가격 대비 성능이 얼마나 좋은가또 이런 제품은 어떻게 구매할 수 있는가를 가이드해주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단순히 언박싱’ 혹은 리뷰가 아닌 생활 밀착형 소비를 키워드로 잡습니다이를 통해 작품을 보는 독자들은 작가의 소비를 작품을 통해 관전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하진 않지만있으면 삶의 질이 올라가는’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닭둘과 나리가 ‘질렐루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당연히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쾌감을 주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나리와 닭둘의 연애담과 작가 특유의 유머가 더해져 독자는 작품을 단순히 제품 소개가 아닌 ‘만화’로 읽게 됩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등장시키기보다 아예 배제하는 과감한 선택은 ‘저성장 시대의 청년’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겐 공감과 정보, 그리고 재미를 주기 위한 판타지로 바뀌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행복한 삶을 지속하려는 방법으로 소비를 선택한 만큼소비로 인한 죄책감은 최대한 덜어냈습니다.

 

"소비로 확실해지는 행복"

 

어떤 관점에서 <일단 질러! 질렐루야>는 실재하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IMF와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개인이 피할 수 없는 재난에 가까운 상황은 상수로 존재하고, 이런 상황에서 회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청년세대는 이런 상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세대입니다.



‘플라네타리움’ 에피소드(12화)에서 나리는 닭둘과 가만히 누워 플라네타리움이 만들어내는 우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평생 집을 못 살지도 몰라철이 덜 들었단 소리를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가고기타도 사서 쳐 보고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도 보고그런 세계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부동산이라는지금까지 나리를 둘러싼 세계가 공고하게 지켜오던 세계는 이미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너무 먼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지금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면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나리의 이 말은 현재 많은 청년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일단 질러질렐루야>는 에피큐리언적인 낙관에서 오는 찰나의 쾌락을 즐기는 자세도데카당스적인 현실 부정과 전위적인 쾌락도 추구하지 않습니다오로지 현실과 그 현실에서 벌어지는 소비그것으로 개선되는 삶의 질에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바꿀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을 인정하되, 그 현실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현실의 무거움이 만들어 놓은 무기력의 자리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내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능동적인 사고를 채우는, 말하자면 확실한 행복을 위한 소비, 그리고 소비로 확실해지는 행복을 찾습니다.



‘88만 원 세대’, ‘N포세대’ 같은 이름이 붙여져 낙인찍힌 세대는 사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구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무기력하고 포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청년세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잔치가 끝난 곳에서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일단 질러질렐루야>는 나리와 닭둘의 삶을 통해 잔치가 끝난 시점에 노동자로 현실에 뛰어든 현재의 청년세대를 그리고 있는 만화입니다생활툰의 진화를 바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기성부문 우수상 자유 평론  이재민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 이미지 출처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네이버 영화

 

좀비 콘텐츠로 최초의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9) 이후 반세기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 사이 좀비물은 좀비를 단순히 ‘산 자’와 ‘죽은 자’로 구분하는 공포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관과 장르로 진화해왔습니다. 범람하는 좀비물 홍수 속에서 또 하나의 물방울이 된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이 앞 무서 나온 수많은 좀비물과 다른 차별점이 있을지 의심부터 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좀비딸>은 우리가 좀비물에 대해 ‘이미 너무 잘 안다’는 익숙함 이면의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그것을 즐기는 새로운 관점을 낳습니다.

 

위선의 틈을 침투하다

 

△ 이미지 출처 : <진격의 거인>, 애니플러스 공식 페이지 ⓒHajime Isayama

 

<좀비딸>은 주인공 ‘이정환’이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 사태로부터 멀쩡히 살아남은 인류 사회 속에서 좀비가 된 딸 ‘이수아’를 몰래 키운다는 내용입니다. 과거 가장 흔한 좀비 영화 포맷은 좀비들이 창궐한 바깥 세상의 공격을 스스로 차단하고 고립된 주요 인물들이 하나둘 죽게 되는 형태였습니다안전한 ‘안’과 위험한 ‘밖’으로 구분한 이 같은 공간적 이분법은 위협의 존재가 좀비가 아닌 경우(대표작으로 소설 <안개>(1980), 만화 <진격의 거인>(2009))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졌습니다. 반대로 <좀비딸>의 공간적 특성은 좀비라는 위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세상으로부터 좀비를 보호하는 장소로 재정립됩니다. 정환이 좀비를 보호하려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가 바로 자신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좀비 바이러스의 위험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겠다는 대의가 아닌거꾸로 좀비를 박멸하려는 세상으로부터 좀비가 된 딸 수아를 죽이지 않고 지키겠다는 이기적인 선택이 주인공의 명분이 된다는 점부터 <좀비딸>은 다소 이상합니다그리고 솔직합니다.



많은 좀비물이 알면서도 핵심 서사에서 배제하는 중요한 사실은좀비가 변화 직전까지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자애인이고친구였다는 과거’입니좀비물에 등장하는 대다수 인물은 좀비로 변해버린 이의 죽음을 일찍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생존 가능성이 커집니다. 좀비의 생사나 과거에 얽매인 캐릭터는 주변 인물로서 줄거리에서 조기 퇴장하게 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이와 같은 설정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자연히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켜낸 주인공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이들은 좀비로 상징화된 타자에 대한 위험 요소를 적극적으로 제거합니다나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전 인류를 지킨다는 명분입니다.



하지만 <좀비딸>에서 독자의 관점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과 그의 가족이 좀비 바이러스의 희생자로서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위협 대상이자 제거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와 주변의 위험을 무릅써서라도자기 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환의 굳은 의지는 마치 세상의 안전을 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만이 정답인 양 묘사하는 클리셰의 위선을 비판합니다.

 

윤리의 틈을 침투하다


<좀비딸>의 전개가 크게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앞서 강풀의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2010)은 그동안 다른 작품들이 대놓고 다루지 않았던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과 변하지 않은 사람 간의 관계에 주목했습니다. 동시에 생산성이 거세된 좀비 사태 이후의 일상을 다룸으로써 좀비로부터의 생존 밖의 생존 문제도 함께 건드렸습니다모래 인간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2012)는 고민의 여지를 좀 더 확장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의 개발 이후에도 치료대상자와 치료받지 못할 대상자로 좀비들을 구분했고좀비로 변했지만 치료대상이 되지 못한 주변인을 사람으로서 죽게 할 것인지좀비로서 몰래 살아남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좀비딸>의 고민 역시 존재에 대한 것에서 출발해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로 나아갑니다.

 

△ 이미지 출처 : <웜 바디스 Warm Bodies>(2013), 네이버 영화

 

좀비의 개념과 형태는 그것의 탄생 이래 다양하게 변화됐습니다. 초기에는 영화 장르에서 다양한 분화를 보였습니다. 오래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영화 속 좀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물리적으로 신선한 좀비 형태와 움직임은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나 <월드워 Z>(World War Z)와 같은 작품에서, 주제 측면에서는 <웜 바디스>(Warm Bodies) 등의 작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과거 영화의 전통 좀비는 지능이 낮고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근대적인 좀비이고요즘 작품의 좀비는 더 나은 지능을 갖추고인간과 공존할 수도 있는 21세기형 좀비입니다후자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유동적으로 존재합니다일종의 유체로서의 좀비는 바우만(Zygmunt Bauman)의 말마 따다 액체화된 후기 근대 사회나 사람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위선의 틈을 파고들어 살아남은 <좀비딸속 수아의 모습은 근대 좀비와 분명히 다릅니다오히려 먹고자 하는 욕구에 충실한 전통 좀비에 가깝습니다다른 점이 있다면, 무조건 ‘식육’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살고자 하는 ‘본능’을 갖춘 야생 짐승과 비슷하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내 선택으로 누군가를 죽고 살리는 차원을 넘어서, 해당 존재를 다시금 규정하고 그에 대한 마땅한 행동 양식을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본작의 긴 여정은 좀비물 세계관의 윤리관 자체를 다시금 고민하게 합니다. ‘그들은 더는 사람이 아니(7화)’라는 대통령의 선언과 실제로 가족이 아니라는 확증은 이 작품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수아를 살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게 키우려는 정환의 선택을 무조건 무모하고 잘못된 것으로 여겼던 독자들은 도리어 그와 같은 노력에 따라 점차 변화하는 수아의 모습을 보며 혼란을 느낍니다.

 

진지함의 틈을 침투하다

 

작품 설정을 현실로 고스란히 옮긴다면 정환이 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좀비딸>은 개그와 일상이라는 장르 및 소재 비틀기를 통해 무거운 세계관과 철학적인 주제를 우회하고 시종일관 희극의 색채를 유지합니다24시간 지속하는 생존 위협으로 인해 일상이 제거된 다른 좀비물과 달리 본작은 오로지 평범한 하루를 영위하려는 노력과 현실 밀착형 소재가 스토리의 핵심을 이룹니다. 굵직한 위기의 순간들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는 도리어 매번 싱거운 결말을 맞이하고, 절대 심각한 수준까지 치닫지 않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좀비딸Ⓒ이윤창, 네이버웹툰

 

국가 재앙 수준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아는 성인 남성인 아버지나 다른 인물들에게 손쉽게 제압되거나, 작은 체구의 할머니 ‘김밤순’, 고양이 ‘애용이’도 힘으로 이기지 못합니다. 드물게 결정적인 위기가 발생해도 우연한 행운이 뒤따르거나 수아가 의외성을 보임으로써 사건이 해결됩니다도입부 이후 좀비의 피 튀기는 인간 살육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합니다좀비 장르에는 이미 많은 개그물이 존재합니다이들은 대체로 좀비화된 세계를 희화함으로써 좀비에 의한 희생과 거꾸로 좀비를 사냥하는 행위를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이는 좀비 개그물 특유의 문학적 허용이지만, 일부 비 장르 팬에게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잔인한 유머이기도 할 터. <좀비딸>은 다행히 설정상 수아가 작품 내 유일한 좀비로서 더는 유혈 낭자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내 딸이 세상에 하나 남은 마지막 좀비라면?’이라는 작품을 대표하는 대외적 슬로건은 비극성을 강화하는 극적 도구가 아닌 도리어 세계관의 위험성을 완화하는 안전장치입니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다른 작품의 노골적인 패러디 장면도 작품의 무게감을 낮추는 데 한몫합니다. 정환의 친구 ‘동배’에게 공격을 가하는 13화 속 좀비 감염자와 그의 강아지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지우’와 ‘피카츄’를 패러디한 것이며, 16화의 동배 회상 속 수의사는 MCU 영화에 종종 카메오로 등장했던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전 명예회장 스탠 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이장이 무기로 쓰는 골프채 ‘3번 아이언’은 영화 <빈집>(2004)에서 사용된 폭력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작품 밖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변용을 가하는 서사극 기법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해 이 작품이 외적으로 약점이 될 수 있는 윤리 차원의 고민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고 있습니다.

 

일상의 틈을 침투하다

 

장르물은 장르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기에 용이하고 그 문법과 미학이 뚜렷해 설정이나 내러티브 구성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명확한 장르성 탓에 누구나 가볍게 소비하기는 힘들다는 단점도 있습니다이는 인터넷만 된다면 스마트폰 및 각종 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웹툰 자체의 속성과 대치됩니다. <좀비딸>은 좀비물의 익숙하고도 특수한 속성을 비틀어 장르 팬의 관심을 사로잡는 초 장르성을 띠고 있습니다동시에 그 이야기를 집학교농촌 등 평범한 배경 속 무겁지 않은 일상에 녹여내는 장르적 일탈을 선보이기도 합니다이를 통해 작품의 독자층은 비 장르 팬의 범주까지 확장되며, 좀비 이야기의 범주는 일상의 틈까지 침투하게 됩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신기성 부문 가작 자유 평론  정병욱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손해로서의 임신과 출산

작은 서비스 하나를 이용하려 해도 이용약관에 동의를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제공하는 개인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그리고 더 여러 곳에 정보를 제공할수록 클릭해야 하는 동의 버튼도 늘어납니다. 죽 늘어선 동의 버튼을 습관적으로 클릭하다 보니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이용약관을 읽어 본 적이 있었던가?한 번도 없습니다. 온갖 종류의 개인 정보를, 그것도 휴대폰 번호 같은 고유 식별번호까지 제공하면서 그 정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쓰는지 한 번도 자세히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손해를 위해서 긴 약관을 읽는 것은 경제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의 버튼을 클릭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크지만, 그에 비하여 감내해야 하는 손해는 작다고 생각합니다. 즉, 동의 버튼을 클릭함으로써 방대한 서비스를 이용(이익) 할 수 있는 반면에,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기껏해야 스팸 전화 빈도가 늘어날(손해) 뿐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문제는 무심코 클릭한 동의 버튼이 예상보다 큰 손해로 돌아왔을 때 생깁니다. 뒤늦게 이용약관을 읽어보지만 있을법한 손해를 사전에 경고하는 문구는 여지없이 기재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사전에 이용약관을 숙지한다고 해서 모든 손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충분히 숙고한 후 내리는 판단이 후회가 덜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껏 우리는 이렇게  ‘동의 버튼을 누르듯이’ 아기를 낳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아기가 주는 기쁨(이익)은 크지만 임신 기간 동안 감내해야 하는 것(손해)은 막연히 감수할만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손해의 기간이 10개월로 유한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쇼쇼 작가의 <아기 낳는 만화>는 이렇듯 평가절하 되었던 임신 및 출산 기간, 즉 ‘손해’ 부분에 집중합니다. 작품 초입에 나왔듯이, 임신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대박적으로 대단’하다는 것 밖에 모르는 독자들에게, 이용약관을 적나라하게 풀이해 주며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어떠한 손해까지 감당해야 비로소 이익을 누릴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몰입감 있는 약관의 해석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웹툰 <아기낳는 만화>

 

특히 그 풀이가 철저하게 쇼쇼 작가의 경험에 의존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작가가 직접 겪었던 경험담을 풀어내는 방식은낯선 이의 경험을 나의 지인이 겪었던 경험으로 변모시킵니다. 나와는 상관이 없었던 타인의 사건을, 내 인생의 경계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셈입니다. 물론 작가의 경험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정보의 완결성이나 보편성은 다소 감소합니다. 임신 중 겪을 수 있는 질환들이 각양각색이지만 쇼쇼 작가가 겪어보지 않은 질환은 아무리 있을 법한 것이라도 작품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지인이 겪은 일이므로 사건의 농도는 더 짙습니다. 다시 말해, 쇼쇼 작가처럼 가진통으로 입원하는 것이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내 지인이 겪은 일이므로 나도 임신 중 입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게 되는 셈입니다.작품이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몰입감을 높입니다. 이 작품은 정보를 병렬식으로 나열하여 제공하기보다는 임신 전 경험에서 출발하여 임신 초기-중기-말기-출산 그리고 출산 후 산후조리원 경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는 구성 방식을 취합니다결과적으로 독자는 마치 임신한 지인의 소식을 듣는 것과 같은 몰입을 하게 됩니다. 작품 초입에 이미 무사히 아기를 출산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말미로 갈수록 쇼쇼 작가의 무탈한 출산을 기원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순차적 구성에 기인합니다. 이렇듯 <아기 낳는 만화>는 작가의 경험에만 집중하여 이용 약관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합니다잠재적 위험성을 빠짐없이 설명하기보다는독자가 이용약관에 몰입하도록 함으로써 임신과 출산이 가진 손해의 측면을 확실히 인지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산모

 

다시 동의 버튼의 경우로 돌아가볼까요. 이제 이용약관에 나와 있는 위험성은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서비스의 이용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 어떠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여기서 더욱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애당초 왜 나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려 하는걸까요?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개인’ 정보임에 주목해 본다면, 나라는 개인의 정보에 경제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이 결정하는 소비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며마케팅에 개인의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비라는 행위가 행복 추구를 위함이라고 가정한다면, 소비’ 의 단위가 개인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은 행복의 단위가 개인으로 바뀌고 있다고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즉 국가나 가족 같은 ‘우리’의 행복보다는,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쪽으로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어느 쪽의 행복 총량이 큰지에 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행복 추구의 단위가 개인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추세가 되었습니다근로자는 이제 회사의 행복을 위하여 노동하지 않으며, 며느리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더는 인내하지 않습니다다. 공동체의 행복보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하는 쪽으로의 전환은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아기 낳는 만화>에는 이러한 트렌드가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행복이 우선시되었던 때에는 덮어놓고 감수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산모라는 개인은 적잖이 손해를 본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줍니다개인의 행복을 위해 이익과 손해를 정확하게 저울질을 할 수 있도록 산모가 감내해야 하는 손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손해를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아기 낳는 만화>는 산모라는 개인이 받는 크고 작은 부당한 대우에 대한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합니다일례로 산모의 배를 함부로 만지는 행위에 관한 부분을 들 수 있습니다다른 이의 배를 함부로 만지는 무례한 행위가, 유독 산모에게는 참작된다는 점을 들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산모의 개인적 측면을 무시해 왔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불쾌하지 않도록

 

△ 영상 출처 : EBS '아기낳는만화' 작가 쇼쇼의 진짜 임신 이야기

 

이러한 측면은 공동체의 행복을 우선하는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공동체의 행복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저출산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기 낳는 만화>가 연재될 당시에는 비출산을 장려하는 만화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곤 했습니다 . 이러한 독자들에게는 산모라는 개인 측면의 손해를 어필하는 것이 이기적으로 비칠 뿐입니다. 이러한 불편을 그나마 경감시키는 것은 이 만화의 작화입니다.

 

<아기 낳는 만화>에서는 작가를 포함한 모든 인물이 동물로 표현됩니다산모에게 무례를 범하는 사람들도그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산모도 전부 동물 캐릭터로 표현함으로써 특정 연령대나 성별로 비난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더불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면 다소 불쾌했을 수도 있는 여러 질환도 단순화하여 표현되었습니다. 작화로 모든 비판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작화로 인하여 또 다른 갈등이 생기는 점은 미연에 방지한 셈입니다.

 

진(gene)과 밈(meme)의 대결

사실, <아기 낳는 만화>는 유전자와 ’(문화 유전자: meme)의 충돌에 의한 산물이라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리처드 도킨슨은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와 밈의 개념을 대비한 바 있는데, 생식의 과정을 통하여 유전자가 전파되듯이, 사회적 모방의 과정을 거쳐 ‘밈’이라는 일종의 문화 유전자가 전파된다는 개념입니다. 출산은 가장 익숙한 유전자 전파의 과정이며개인의 행복을 우선하는 트렌드는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밈입니다특히 수억 년간 이어온 유전자 전파의 욕구를 고작 몇십 년 된 밈에 의지한 이용 약관으로 딴지를 걸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이제 이용약관은 다 읽었습니다.약관에 명시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동의 버튼을 클릭할 것인지는 독자의 몫입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신인부문 우수상 지정 평론  조아라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남자에게 결혼은 여자 친구가 밤이 늦었는데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고, 여자에게 결혼은 부모님이 남동생을 맡기고 나가셨는데 다시는 안 돌아오시는 것이라 합니다. 나와 같았던 상대가 결국 타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지점. 그곳을 결혼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인간(人間)이라는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인데, 사랑하는 사이마저 서로를 지옥이라고 부르니 지옥이 아닌 곳이 어디 있을까요? 샤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서 가르셍은 말합니다.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 속에 살고 있는 걸까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에 우리는 각자의 타인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자존재로서, 곧 나 역시 누군가의 타인임을 인지하는 순간, 그 총구가 나의 관자놀이를 향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는 이 명제를 증명하는 직유법입니다. 2013년 ‘주택법 시행령’에 의하면 1인당 최소 주거조건은 14㎡입니다. 그러나 고시원은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되어 이를 지킬 의무가 없습니다. 그 결과 현재 고시원의 실면적은 4∼9㎡ 정도가 됩니다. 작품은 갓 상경한 스물다섯 종우가 바로 이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웃 간 갈등을 묘사합니다허락된 두 평을 넘어 복도와 부엌샤워장을 나설 때마다 다른 투숙객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고 종우는 그들을 불쾌해합니다. 7화에서 205호 투숙객 안희중의 라면을 대신 끓여줄 때, 종우와 독자는 그 지점을 제목이 의미하는 지옥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9화에서 203호실 투숙객인 ‘왕눈이’의 등장으로 작품은 도시괴담으로 흘러갑니다.


 
‘묻지 마 살인’과 ‘인육’이라는 소재는 은유의 ‘지옥’을 재현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연재 초기 작품은 <고시원>과 표절 시비가 붙은 적이 있습니다고시원이라는 배경, 살인, 인육이라는 소재, 미쳐가는 주인공, 똑같은 등장인물 구조 등등으로 표절시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출에서 두 작품은 차이를 보이는데요. <고시원>의 연출은 거대한 사건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건을 모호하게 만드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쇼트부터 살펴보면 <고시원>은 롱 숏과 풀 쇼트를 주로 사용해 장소와 인물의 행위를 보여줍니다클로즈업은 대화 장면에서 강조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편입니다. 반면 <타인은 지옥이다>는 칸 크기를 고정하고 미디엄 쇼트와 클로즈업 쇼트를 주로 사용해서 행위보다 심리에 집중합니다롱 쇼트와 풀 쇼트는 장소를 설명하는 기능적인 역할만 수행합니다. 대신 지루할 수 있는 연출반복을 피하기 위해 그로테스크한 왜곡을 사용하고카메라의 위치를 규칙성 없이 배치하는 경향을 보입니다웹툰은 일반적으로 대화 장면에서 속칭 ‘대갈치기’라는 연출법을 사용합니다. 이는 A와 B의 대화 장면을 A미디엄 쇼트, B미디엄 쇼트를 교차 반복하는 방법입니다.


이때 중요한 지점에서 칸 크기를 조절하거나 클로즈업을 사용해 강조합니다. 그런데 <타인은 지옥이다>는 대화 장면에서 앵글카메라 위치가 바뀝니다즉 카메라 동선이 불규칙적입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독자들에게 혼선을 빚기 때문에 지양하는 연출입니다그런데 이 작품에선 그 연출이 맞는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그 연출이 종우가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고 이는 작품이 사건의 얼개보단 인물의 정서변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정보 제공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고시원>은 주인공 외 타인의 생각과 시점을 초반부터 보여주면서 주인공보다 정보량에서 앞서게 만들어 추리하도록 합니다. 때문에 주인공 현준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능동적인 캐릭터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경우, 중반까지 이야기의 시점을 주인공 종우에게 고정하고, 그의 속마음만 계속 보여줍니다. 종우 외의 시선은 매 화 마지막 히끼(引き)컷을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주변인의 사정에는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고시원>은 주인공과 주변인이란 시점을 변화를 주면서 인물 간 행위의 맞물림을 보여준다면 <타인은 지옥이다>는 오직 주인공의 상황을 체험하게 만드는정서를 중점으로 두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고시원>은 추리물, 스릴러의 장르에 가깝고 <타인은 지옥이다>는 지옥을 재현하기 위한 공포 장르에 가까운 성격입니다. 만화는 독자들에게 놀람과 충격을 주는 일이 정말 어렵습니다맥루한의 말처럼 만화라는 매체는 정보량이 적어서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수동적인 영화와 달리 만화는 독자의 확실한 이해와 적극적 참여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독자의 상상력을 보충해줄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들어야합니다.

 

△ 이미지 출처 : (좌) 네이버 웹툰 고시원, (우) 네이버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

 

따라서 만화는 필연적으로 독자가 주인공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도록 설정해야합니다. 정보 제공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고시원>처럼 전체를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과 <타인은 지옥이다>처럼 등장인물과 독자의 동일화공감을 노리는 방법입니다. <고시원>은 행위의 정보량을 더 많이 제공하여 서스펜스를 제공한다면 <타인은 지옥이다>는 행위의 정보량은 줄여 서프라이즈를 제공합니다. 히치콕의 말을 빌려 둘을 설명해보겠습니다. 네 명이 포커를 치다가 갑자기 폭탄이 터진다면 서프라이즈가 되지만, 포커를 치는 장면 사이에 시한폭탄의 초침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면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몰라 긴장하는’ 서스펜스가 됩니다. 한 예로 비밀 공간에 진입하는 장면에서 <고시원>은 인물이 계단을 오르고문 앞에도착하고문을 열고비밀이드러나는 4컷에 구성해 독자들에게 앞으로 벌어진 사건에대해 대비하도록 합니다반면 <타인은 지옥이다>는 인물이 계단을 내려가고 끼이익-’이라는 효과음(사운드 브릿지다음에 비밀이 순간적으로 드러납니다이는 후자가주인공의 숙적을 더욱 미스터리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묘사시키기 위함입니다.


아쉬운 점은 <타인은 지옥이다>의 이런 연출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약해집니다. 3막 구조상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행위가 드러나야겠지만짙은 안개가 사라지고 노골적으로 사건 묘사에 힘을 씁니다. 사건은 우연성에 기대기 시작하고 약점이 노출됩니다. 고시원 안에서만 살해를 저지르던 203호(왕눈이)가 종우의 고향 선배이자 회사 대표인 재호의 집을 찾아가 재호를 죽입니다. 68화에서는 갑자기 노숙자가 여자 친구인 지은을 해코지하고 이를 본 종우가 노숙자를 폭행합니다. 지은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며 종우와 다투게 됩니다. 또한 본 사건의 구세주 같았던 군대 후임 창현은 종우를 돕는다고 같이 종우의 고시원에 갔다가 갑자기 잠이 들고 죽습니다.



종우를 다시 고시원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숙적과의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외적 결말을 위해 작품은 우연성으로 풀어가는 약점을 드러냅니다. 중반까지 작품은 제한된 정보량과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심리로 프레임 밖을 궁금하게 만드는 모호와 기대감이라는 장점이 있었지만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넓어진 무대를 수습하지 못하고 장점은 단점이 되는 한계를 보입니다결과적으로 ‘타인은 지옥입니다.’라는 선언으로 끝내버렸습니다. 종우는 피시방에서 시비 붙은 고등학생과 자기를 날카롭게 대하는 회사 선임을 폭행하고 웃음 짓습니다. 그리고 “장소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있는 모든 곳이 지옥이 되고 있었다”라고 자각합니다. 203호(왕눈이)가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 분해, 해체, 재조립이라고 말했을 때그 대상은 시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우의 정신이었습니다.

 

 

203(왕눈이)가 미소 지으며 죽은 것은 종우가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한 것입니다하지만 종우가 203(왕눈이)와 똑같이 되었다는 결과에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요모호한 열린 결말이 여운이 되지 못하는 것은 후반부 극단적 행위들로 작품이 원래 가진 장점과 주제의식이 소거되었기 때문인데요. 과연 작품은 피해자 윤종우 이외 모습을 제시했을까요? 즉 나 역시 누군가의 타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걸까요?



사랑해서 함께하는 사람도 서로를 지옥이라고 부릅니다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을 통해 욕구를 충족시키려 합니다. “사람은 왜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인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타인은 지옥이라고” 타인은 나에게 지옥이 되고 나 역시 타인에게 지옥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선택합니다.


본 작품의 연출은 경계의 모호성고립과 소외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은유를 던졌습니다후반부를 거둬 생각해보면 우연성의 많은 부분도 고립을 드러내는 은유이며, ‘타인의 지옥이다’의 답은 스스로가 타인의 지옥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조심하고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이 형사와 정형사의 두 가지 시선(종우의 살인은 자구책인가 혹은 살인마로 변한 것인가)과 병원에 입원한 종우를 찾아온 미지의 누군가를 묘사하면서 열린 결말로 끝냅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지옥묘사는 생각하는 여지를 사라지게 했고 열린 결말은 무용한 연출로 보입니다모호한 직유법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습니다오직 피해자 윤종우만 남은 결말열린 질문에 열린 답변은 존재할까요?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신인 부문 우수상 지정평론,  김건우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고백하건대 2015년 XTM에서 방송한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이하 <수방사>)를 즐겨봤습니다고백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부도덕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남자가 꿈꾸던 공간이 아내 몰래 현실이 된다! 집에 들어가도 할 것이 없는 남자, 화장실만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남자,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남자들이 ‘집’을 통째로 점령한 아내를 향한 대공습을 시작한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슈가 부상한 2019년에는 만들어질 수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이전에도 시청할 때 상당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제작진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당구낚시 등 취미 생활을 접고 집에는 들어와 있는데 답답함을 호소하는 남자들의 의뢰를 받아 아내가 장시간 외출한 사이에 남자들이 원하는 취미 공간을 만들어줍니다프로그램은 거실을 헐어내어 당구장을 만드는 과정과 아내가 언제쯤 돌아올지를 살피는 장면을 교차하며 긴장감을 만듭니다남자가 당구장으로 완벽하게 빙의한 거실에서 큐에 초크 질을 합니다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그때 MC들이 이제 아내가 곧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얼굴이 순식간에 굳습니다이 표정을 많이 봐왔습니다어릴 적 화장실에서 공예로 만든 성냥 덩어리에 불을 붙이고 망을 보며 불타는 모습을 쳐다볼 때 그 표정입니다

 

▲ 이미지 출처 : xtm 수방사2 공식 페이지

 

당시 결혼생활 4년 경력의 저는 이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집에 들어와 대충 옷을 던져놓고 침대에 한참 누워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쉴 시간이 주어졌습니다밥을 먹고 나면 TV를 보고 싶었지만, 접시가 쌓여 있는 싱크대로 가 고무장갑을 껴야 했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집안일을 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항상 ‘지금’ 하라고 했습니다. 집이 내 집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수방사>가 일종의 일탈 대리만족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리는 저를 보며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그건 그렇게 불장난을 해도 언젠가는 그런 것들을 멈추고 성장할 것이라는 어른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시간이 흐르며 차츰 사춘기는 지나가고 그런 일탈의 감정이 얼마나 유치한지 깨닫게 됩니다. <수방사>는 집이 아내의 공간이라 규정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집은 파트너가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홀로 일상을 지켜야 하는 전투의 공간입니다책임이 있는 곳에 권리가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아내는 삶을 지탱하며 낯선 공간을 자신의 집으로 만듭니다정작 무책임한 남자는 그 공간에서 결국 게스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손님은 결코 주인처럼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내가 ‘지금’ 일을 하라고 주문한 것은 그 일을 미루게 되면 결국 그 일을 할 사람이 아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집안일은 반반씩 하는 것이라 굳게 믿은 만큼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논리적으로 동의하지만, 육체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세상 무서운 게 습관이란 것 입니다. 집안일에 무지하고 무능한 자가 개조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매일 집안일을 그래도 꾸준히 해 나갔고 차츰 낯선 공간을 내 집으로 만들어 갔습니다그리고 그런 책임감 아래 신뢰가 생기니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자유를 느꼈습니다.

육아의 영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자연 출산을 하며 아내 옆에서 바싹 붙어 앉아 육아를 감당하다 보니 엄마가 육아 능력자가 되는 건 호르몬의 도움을 받은 모성애가 아니라 나 아니면 저 아이 큰일 난다 싶은절박감에서 오는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옆에서 낑낑거리며 육아도 해 나가면 아빠도 엄마 못지않은 달인이 될 수 있습니다. 육아의 과정에서 제가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 혹독한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모두가 당연한 일이라 했고 부족하다 싶으면 나무랐습니다아내로선 억울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수방사>는 남자가 답답함을 느낀다고 징징거리는 마음은 위로하면서도 정작 집안과 밖 어디에도 내 공간을 허락받지 못한 아내의 삶을 위로하려 들지 않습니다. 남자의 공간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작진은 아내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아이의 방을 더 예쁘게 꾸며주겠다는 되먹지도 않은 솔루션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자의 고통에 예민하며 여자의 고통에 둔감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나아가 상의하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리는 방식은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재연한다는 점에서 불쾌함을 낳았습니다그런데도 조금의 변명거리는 남아있습니다.

<수방사>에서 남자들은 왜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취미 생활을 위해 산과 들, 동네를 나도는 대신 집으로 들어와 무모한 작전을 시도했을까요? 이 프로그램은 당위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에 부적응 하는 남자들의 과도기적 모습을 전제로 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유아기를 넘어 사춘기로 접어든 남자들에 대한 연민을 자극합니다나의 아내는 집안일과 육아에 무능하면서도 뭐든 해보겠다고 끙끙거리는 남편을 동정했습니다. 답답함과 기특함이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의 양면적인 감정 아니었을까요?

 

 

남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집안일에 헌신하고 육아에 책임감을 느끼고 달려드는 일은 나름 전대미문의 길이자 모험의 길입니다선의가 충만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7년에 저는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당시 막내를 낳아야 하는 아내 옆에서 5살, 3살 두 아이를 전담 마크해야 하는 육체적으로 혹독한 시간이었지만 정신적으로 혼란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주는 낯섦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을 넘어 본격적으로 세상과 격리되어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을 서늘하게 느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응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계속 자문자답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가 독박육아의 고통을 글로 쓰면서 치유했고 영화 속 주인공 역시 같은 방식으로 치유의 길에 들어섭니다.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시간이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나다운 것인지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해 어떤 것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저 역시 육아휴직 때 낯설고 답답하고 벅찬 감정들을 소화하고 싶어 몸부림쳤습니다. 브런치가 때마침 제안을 해줘서 매주 한 편의 육아 에세이를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바쁜 가운데 아내가 한 시간을 허락하면 도서관에 가서 마음을 정신없이 쏟아내곤 했습니다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말이 줄줄 흘러나왔고 쓰고 나면 그렇게 홀가분해질 수 없었습니다그런 시간을 보낸 후 육아 에세이를 낼 기회도 얻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yes24 인터넷 서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페미니즘 탐구 모임 부너미에서 낸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를 읽으며 남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지며 돌봄 노동을 하는 기혼 여성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갔습니다. 제 고민이 기존의 답을 버리고 새 답을 찾는 과정이라면 엄마들의 고민은 답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아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무게가 어떠하든 남자든 여자든 결국 마음속을 드러내고 써 내려가야 살 것 같고 살 방법도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와중에 새로운 모습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닥터베르의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는 남자의 시선으로 낯선 육아 현실을 이해하려는 몸부림남성 육아가 말로만 장려되는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에 뛰어들며 느끼는 부담감페미니즘이 시대정신이 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서 부부 관계를 새롭게 만들며 느끼는 심정 등이 잘 담겨있습니다공학박사로 현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재치 있는 장면이 우선 관심을 끕니다. 어떻게든 주어진 자극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할수록 그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더 확인하게 되는 초반 이야기가 흡인력을 줍니다. 이 이야기가 진정성을 지니는 건 어느 아빠의 육아 구경기임시 체험기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육아에 깊이 들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경험들이 공감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며 고통의 등가성을 외치기보다는 ‘제대로 사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라는 담담한 고백을 품고 있어 웹툰 한구석에 슬쩍 앉아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육아 환경에 놓일 때 끼적인 것들은 처음에는 남자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시작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 육아에 푹 빠져 살면 사람으로 느끼는 일반 감정으로 수렴하게 됩니다이런 이야기가 등장했다는 것은 아직 육아가 젠더 관점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이제 그 간격이 좁혀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가운 건 대중적으로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웹툰이라는 형식으로 아빠 육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불모지인 남성 육아의 길이 더 빨리 더 번듯하게 닦일 것 같습니다.

 


 

글 김신완 | 육아 에세이 <아빠가 되는 시간>의 저자. MBC PD.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여러분은 종이만화와 디지털만화 중 어떤 것을 선호하시나요? 또 장르에 따라 선호하는 만화의 형태가 있으신가요? 과거, 한 손에 들어오는 네모 반듯한 종이만화책은 어느 덧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와 컷툰, VR툰 등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 되고 있는데요.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만화만큼 종이 만화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고 합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디지털만화와 종이 만화의 이용자별 이용 행태애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지털만화, 일주일에 1~2회 감상

 

 

최근 1년 디지털만화 이용 빈도는 ‘일주일에 1~2번’이 24.1%로 가장 높았습니다. 최근 1년 디지털만화 이용 빈도가 주 1회 이상인 경우는 58.0%로 전년과 비슷하게 나타났는데요.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연령별로 `20-24세(28.2%)'에서 `거의 매일'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성과 연령을 교차하여 살펴보면, `20-29세 남성(26.5%)', `20-29세 여성(26.6%)'에서 `거의 매일'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디지털만화 이용자의 디지털만화 주중 감상 시간대는 `오후 8시~자정 이전'이 46.0%로 가장 높고, 주말 감상 시간대 역시 `오후 8시~자정 이전'이 43.6%로 가장 높았습니다. 주중/주말 디지털만화 감상 시간대는 전반적으로 `오후 8시~자정 이전'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여성'은 '남성'보다 '오후 1시~오후6시 이전'과 `자정~오전 6시 이전'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만화 이용 형태별로는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 모두 이용' 응답자들이 `오후 8시~자정 이전'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만화 콘텐츠 이용 빈도별로는 `거의 매일' 이용자에게서 `오후 8시~자정 이전'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디지털만화, 주로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감상

 

 

디지털만화 이용자의 주 이용 장소는 `집'이 79.1%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서 `교통수단(지하철/버스 등)(9.6%)', `사무실(9.4%)'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여성(83.9%)'은 `남성(74.4%)'보다 `집'에서 이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고, 연령별로 `10-14세(93.1%)'에서 '집'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또한, 디지털만화 이용자의 디지털만화 감상 시 주 이용 기기는 `스마트폰'이 70.6%로 가장 높으며, 그 다음으로는 `PC(데스크탑/노트북)'이 18.6%로 나타났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감상하는 비율은 매년 감소, `PC(데스크탑/노트북)'을 통해 감상하는 비율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즐겨보는 웹툰은? <유미의 세포들>

여러분은 어떤 만화를 즐겨 보시나요? 답자들을 대상으로 즐겨보는 디지털만화 작품 유무를 조사해 본 결과 디지털만화 이용자 중 즐겨보는 만화가 `있다'고 응답한 비중은 63.5%로 나타났으며, 전년 대비 3.1%p 상승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이들이 즐겨보는 디지털만화 작품으로는 ‘유미의 세포들’이 8.6%로 가장 높았는데요. 2019년의 경우 `유미의 세포들'이 8.6%로 가장 높으며, 그 다음으로 `복학왕(8.3%)', `신의 탑(8.1%)'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에게 디지털만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인기'였습니다. 디지털만화 이용자의 디지털만화 선택 시 고려 기준(1+2+3순위)은 `인기순'이 57.3%로 가장 높으며, 그 다음으로 `가격(유/무료)(43.9%)', `소재/줄거리(33.4%)' 등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더불어, 평소 즐겨보는 디지털만화 장르(1+2+3순위)는 `코믹/개그/일상'이 68.3%로 가장 높으며, 이어서 `순정/로맨스(44.6%)', `드라마(38.0%)'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1순위 기준으로는 `코믹/개그/일상(37.6%)', `순정/로맨스/감성(16.8%)', `액션/무협(13.7%)'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웹툰 보다 종이 만화를 선호하는 사람들? 그 이유는?

 

종이만화 이용자들의 종이만화 이용 빈도는 `1개월에 2~3번'이 24.2%로 가장 높으며, 그 다음으로 `일주일에 1~2번'이 18.1%, `4~6개월에 한 번'이 17.3%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2018년과 비교하여 주 1회 이상 종이만화를 이용하는 비율은 25.5%로, 전년 대비 4.4%p 증가했습니다.

디지털만화와 마찬가지로 종이만화 이용자들의 주 감상 장소는 '집'이 52.9%로 가장 높으며, 이어서 `만화카페'가 29.2%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집'에서 감상하는 비율은 남녀 모두 가장 높으며, 이외에 `만화카페'는 `여성(33.3%)'에서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즐겨보는 종이 만화는 무엇일까요? 즐겨보는 종이만화 작품(1+2+3순위 기준)은 `원피스'가 19.5%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명탐정 코난' 10.2%, `열혈강호' 7.1%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1순위 기준 역시 `원피스(14.8%)', `명탐정코난(5.9%)', `열혈강호(5.0%)'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웹툰과 마찬가지로 종이만화 이용자의 종이만화 선택 시 고려 기준(1+2+3순위 기준)은  `인기순'이
47.0%로 가장 높으며, 이어서 `소재/줄거리' 43.8%, `장르' 32.5%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1순위 기준으로는 `인기순(30.5%)', `소재/줄거리(17.2%)', `최신작(9.6%)'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종이만화, 왜 구매하는 걸까요?

 

종이만화 이용자 중, 종이만화 구매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8.6%로 나타났으며, 전년 대비 6.7%p 상승했습니다. 종이만화 구매 경험을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남성(40.0%)'은 `여성(36.9%)'보다 `구매 경험 있음'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종이만화 구매 경험자들의 종이만화 구매 주기는 `2~3개월에 한 번'이 30.4%로 가장 높으며, 그 다음으로 `4개월~12개월에 한 번'이 27.8%, `1개월에 2~3번'이 24.6%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전년년 대비 `1개월에 한번 이상' 구매 비율은 3.0%p 감소했습니다.

 

 

종이만화 구매 경험자들의 종이만화 월 평균 지출 비용을 살펴보니 `1만원 초과~3만원 이하'가 47.4%로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요. 2017년 이후 `3만원 초과~5만원 이하' 응답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종이만화 구매 이유로는 `종이책으로 소장, 보관하고 싶어서'가 51.3%로 가장 높으며, 이어서 `종이책을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보는 느낌이 좋아서'가 37.3%로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2019 만화 이용 실태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았는데요. 여러분은 디지털만화와 종이 만화 중 어떤 만화를 선호하시나요? 또, 웹툰 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이만화만의 장점이 있을까요? 빠르게 발전하는 만화 산업 속 종이만화와 디지털만화는 각자의 차별점을 가지고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하는 2020년, 한국의 만화산업 기대해주세요!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더 비싼 고가의 상품으로 팔리기 위해서는 우선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야만 합니다.

 

즉, 상품으로서의 가치부여는 더욱 참신하고 아름다운 외양과 매력적인 겉모습에 우선적으로 주어집니다(중략). 옷차림이 제2의 인격으로 인식되고, 화장품과 미용 산업의 급속한 발전 등은 모두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위 인용문은 웹툰 <여신강림>(야옹이, 네이버)이 창작된 사회적 배경이자, 작품 내에 그려지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에 맞춤입니다. 시각문화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외모지상주의 담론이 그 어느 때보다 팽창된 사회에선 만화 역시 이 현실과 밀접히 유관한 소재를 취합니다. 교우관계와 연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메이크업을 시작한 여고생 주인공이 그 증거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주인공 주경은 매회 화장과 착용을 수행하며  만화 밖 외모지상주의 현실을 만화 안에서도 착실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여신강림>이 외모지상주의를 제동 없이 답습하고 나아가 조장한다는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꾸준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신강림>과 외모지상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메이크업 방법(<겟 레디 위드 미> 등)이나 핍진한 10대 문화(<연애혁명> 등)를 무기로 인기를 끌어낸 다른 만화들과 비교해 <여신강림>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충분히 익숙한 흐름의 순정만화가 어째서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나요? <여신강림>의 또 다른 문제에 관한 논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출발했습니다. 바로 <여신강림>의 셀링 포인트가 이야기 내부가 아닌 그것을 담아내는 ‘그림’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각문화의 발전과 외모지상주의 심화의 정점에 ‘쓸모없어도 예쁘면 산다’라는 소비 방식이 놓여 있는 것처럼, 독자(소비자)들은 이제 만화 역시 ‘재미없어도 예쁘면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선 인용문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만화가 지금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담론 재생산에 대한 비판을 잠시 접어두더라도 <여신강림>을 두고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시장에선 만화가 예쁘고 재미없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뻐서’ 재미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만화 밖 현실이 아니라 만화라는 양식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만화에서 그림은 텍스트의 부차적 보완물이 아니라 텍스트와 상호 결합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핵심적인 표현 요소입니다. 간혹 ‘만화’라는 양식이 아니었다면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만화들이 있습니다. 양식의 필연성을 인지하고 핵심 표현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균일하게 활용해낸 결과일 것입니다. 그저 예쁘게만 그려질 것 같은 순정만화 그림체에도 작화로서의 기능이 존재합니다. 미형으로 발달된 순정만화의 그림체는 자주 서사와 무관하게 그저 예쁜 그림을 제시하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섬세한 표정과 예민한 감정 표현 기술을 발달시킨 것도 사실입니다. 순정만화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작가의 감성 표현이자 독자와 감성을 공유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이를테면 순정만화를 감상할 때 두 눈의 반짝임을 잃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독자는 인물의 어두워진 내면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여신강림>에서도 이러한 감성 표현과 공유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고 그 대답은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여신강림>의 그림들은 대체로 정적인 구도를 취합니다. 대부분의 컷이 정면을 응시하며 간혹 측면 구도로 그려지는데, 흡사 카메라를 의식하며 찍힌 인물사진과 유사합니다. 표정도 마찬가지로 정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무표정, 혹은 미소 짓는 표정에 고정됨으로써 자연히 얼굴에 담긴 감정보단 얼굴의 ‘예쁜’ 생김새에 집중하게 합니다. 극이 전개되면서 더욱 다양한 표정이 필요해질 때에도 무표정과 미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단지 짜증이 날 땐 미간의 주름이, 당황하면 땀방울이, 슬플 땐 눈물 레이어가 추가된다는 느낌입니다. 그마저도 예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땐 동공과 명암이 생략된 단순한 형태로 제시되며, 특별히 얼굴 근육 전체를 사용해야 하는 역동적인 표정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짤’을 패러디해 웃어넘기게 합니다.



이런 작화를 기반으로 섬세히 감성을 전달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여 연애가 핵심 서사인 순정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짝사랑을 앓는 주인공 주경의 감정은 섬세하기 이전에, 진지하게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전개상 꽤 중요한 국면일, 남자주인공 수호에게 고백할지 고민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고백 후 차여서 친구로도 남지 못하는 것과 가만히 있다 수호에게 다른 애인이 생겨버리는 두 가지 부정적 미래를 상상하며 불안에 싸인 주경의 모습은 또 한 번 패러디 짤로 귀결되며 가볍게 그려집니다. 짝사랑으로 인한 불안과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로 인한 자신감 결여가 뒤엉킨 장면이 ‘순정’ 만화라 하기엔 너무 가벼워 보입니다. 관계의 미래를 두려워하며 내뱉는 대사가 겨우 “뜨흑! 상처다.. 마상…!”인 것과 애초 고민의 과정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형태로 그려진 것이 정말 우연일까요?


이 같은 전달 방식은 이후 진지한 대목에서 도감상을 방해합니다. 어렵사리 서로의 마음을 알았지만, 일본에 있는 수호의 아버지가 사고로 중태에 빠지면서 둘은 고백과 동시에 이별하게 됩니다. 행복이 정점일 때 갑자기 들이닥친 불운한 사건에는 비극성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함에도, 그간 고수해왔던 작품 내 작화 관습이 걸림돌이 됩니다. 수호의 고백을 받은 주경은 깜짝 놀라다 이내 울컥 얼굴을 구기는데, ‘예쁘지 않은’ 표정이 모처럼 진지하게 그려 있습니다. ‘예쁘지 않은’ 표정이 모처럼 진지하게 그려 있지만(오른쪽), 작품 내에서 그런 표정이 패러디 장면에만 그려진 탓인지 즉각 진지하고 슬픈 표정임을 이해하는 데 제동이 걸립니다. 한편 비행기에 서 우는 수호의 모습은 측면에서 찍힌 예쁜 얼굴에 눈물만 덧붙여진 형태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우는 것이고, 울고 있으니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으나 여기에 독자가 충분히 이입하고 공감할, 인물의 감정과 극의 분위기를 공유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이입을 막는 그림에 장면 장면은 조각나 이어지지 않고, 자연히 서사 역시 제 굴곡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여신강림>의 연재 초반에는 주인공의 콤플렉스는 물론, 화상 입은 미지의 인물이나 알코올 중독 부모를 둔 수진의 가정사 등 꽤 심각한 설정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처음 설정이 제시된 이후 거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떡밥’들을 뒤로 하고 지금 <여신강림>이 수개월째 몰입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들의 연애 장면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림이 사실상 작화(animation darwing)라기보단 일러스트에 가깝게 기능한 결과, 서사를 추동할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서사도 되지 못하는 행위만 남고, 남은 공간을 다시 화려한 그림이 채우는 과정의 반복입니다. 그림이 전면에 내세워져 있으나 그림으론 무엇을 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렇게 발생합니다. 그림체가 유독 ‘예쁜’ 만화마다 따라붙는 ‘작가님 못생긴 거 못 그리시죠’라는 유행어가 더는 칭찬이나 농담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못생긴’ 것도 그릴 줄 알아야 합니다. 혹 예쁜 것만 그리기로 작정한 것이라면, 적어도 그 ‘예쁨’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여신강림>의 작화에는 이러한 기능적 측면이 거의 거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순정’도, ‘만화’도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차라리 서사가 최소한으로 축소된 비주얼 중심의 뮤직비디오에 가깝지 않을까요? 마치 마음에 드는 뮤직비디오 장면을 캡처하기 위해 흐름을 끊고 계속 정지 버튼을 누르듯, <여신강림>의 페이지는 가장 예쁘고, 예쁘고, 예쁜 장면에 멈춰져 있습니다.

 



‘스낵컬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바쁘고 힘든 와중에 가벼운 즐거움을 찾기 위해 만화를 찾는 대중의 수요를 전적으로 비판하거나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만화들은 가벼움 그 자체가 목적이자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작품군에 대한 소비의 쏠림 현상이 생산의 쏠림으로 이어지고 그 영향이 결국 시장 전반은 물론 개별 작품 내부에까지 침투되는 상황은 아무래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비주얼 중심의 웹툰을 주력 삼는 카카오페이지는 최근 ‘AI 키 토크’ 기능을 도입했는데, 그림체 카테고리를 스토리와 분위기보다 상위에 위치시켰습니다. 

 

작은 눈과 두꺼운 다리, 3등신 정도 되는 독특한 그림체로 시작한 <유미의 세포들>이 독자들의 요청을 거듭 거쳐 마침내 큰 눈에가는 다리, 8등신의 그림체로 자리 잡게 된 사례 역시, 이쯤에서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작가와 독자가 당면한 가장 큰두려움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만화가 재미와 감동을 잃고 말지도 모를 것 입니다. 기능 없이 예쁘기만한 소비재들의 결말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라도제 자리를 찾을지 모르나 재미도 감동도 없는 만화의 결말은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요? 서사를 텅비운 채 오로지 ‘예쁜’ 만화만이 범람하는 풍경,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디스토피아나 다름없을 그 풍경이, 어떤 구도로 그려지든 그리 아름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대상  글 최윤주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네모칸 속 만화에 울고 웃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신문 속 연재 만화에서 이제는 VR 실감콘텐츠로 거듭난 웹툰까지. 우리 만화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의 궤를 함께하고 있는데요. 최근 국내 웹툰 시장의 규모는 1조원을 돌파하며(2019년 기준 업계 추정치) 대한민국의 콘텐츠 산업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디지털만화(웹툰, 스캔만화 등) 및 종이(출판) 만화에 대한 이용 행태는 어떨까요? 각 매체벌 만화 이용 여부와 만화 이용 빈도 및 방법을 알아봄으로써 이용 수준을 측정해보았습니다. 

 


일주일에 1~2회 가량 만화를 보는 사람들

 

 

최근 1년 만화 이용 빈도는 ‘일주일에 1~2번’이 19.6%로 가장 높았는데요. 만화 이용 빈도는 `일주일에 1~2번'이 19.6%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는 `거의 매일(18.7%)', `1개월에 2~3번(18.25%)'등의 순으로 높았습니다. 만화를 주 1회 이상 이용하는 비율은 52.9%이며, 전년 대비 감소했습니다.

만화 이용 빈도를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성별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았으며, 연령별로 `20-24세(26.0%)'에서`거의 매일'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성과 연령을 교차하여 살펴보면, `20-29세 남성(25.0%)', `20-29세여성(23.6%)'에서 `거의 매일'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지역별로는 `인천/경기(22.6%)' 지역 거주자에서`거의 매일'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특히, 만화 이용 형태별로는 `종이만화만(3.3%)' 주로 보는 이용자에게서`거의 매일'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 모두 이용(20.4%)'하는 경우는 `거의 매일'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포털과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만화 이용, 무려 66.9%

 


포털 사이트/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만화 이용이 66.9%로 가장 높았는데요. 만화 세부 유형별 이용 경험은 디지털만화의 `포털 사이트/어플리케이션'이 66.9%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디지털만화의 `만화전문사이트/어플리케이션'이 32.8%, `웹하드,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가 25.1%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종이만화의 경우는`단행본(시리즈물 포함)'이 25.2%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볼까요? `여성(68.3%)'은 `남성(65.6%)'보다 `포털 사이트/어플리케이션'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령별로는 `20-24세(76.9%)'에서 `포털 사이트/어플리케이션'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성과 연령을 교차하여 살펴보면, `50-59세 남녀(남 : 54.7%, 여 : 55.9%)'는 `포털 사이트/어플리케이션'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신문사 사이트'와 `신문 연재물'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지역별로는 `서울(70.6%)' 지역 거주자에서 `포털 사이트/어플리케이션'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만화 콘텐츠 이용 빈도별로는 `거의 매일(78.0%)' 이용자가 `포털 사이트/어플리케이션'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디지털 만화 VS 종이만화 당신의 선택은?

 


만화 형태별 이용 경험을 살펴볼까요? ‘디지털만화만 이용’이 67.4%로 가장 높았습니다. 만화 형태별 이용 경험은 `디지털만화만 이용'의 비율이 67.4%로 가장 높으며, 그 다음으로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 모두 이용'이 28.6%, `종이만화만 이용'이 4.0%로 나타났습니다. 2018년과 비교하여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 모두 이용' 비율이 1.8%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여성(70.0%)'은 `남성(64.8%)'보다 `디지털만화만' 이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령별로 `25-29세(70.9%)'와 `30-39세(70.9%)'에서 `디지털만화만' 이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40-49세(6.2%)'에서 `종이만화만' 이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 지역별로는 `부산/울산/경남(64.8%)' 지역 거주자에서 `디지털만화만' 이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만화 콘텐츠 이용 빈도별로는 `거의 매일(31.3%)'과 `일주일에 3~4번(32.4%)' 이용자에게서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 모두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에 대한 이용 비율은 어떨까요? 디지털만화는 69.6%, 종이만화 30.4%의 이용 비율을 보였는데요.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 동시 이용자들은 평균적으로 디지털만화를 69.6%, 종이만화를 30.4%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여성(71.6%)'은 `남성(68.0%)'보다 `디지털만화'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연령별로는 `15-19세(79.0%)'에서 `디지털만화'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성과 연령을 교차하여 살펴보면, `50-59세
남성(72.6%)', `20-29세 여성(76.3%)'에서 `디지털만화'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지역별로는 `강원/제주(73.2%)' 지역 거주자에서 `디지털만화'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만화 콘텐츠 이용 빈도별로는 `거의 매일(76.2%)' 이용자에게서 `디지털만화'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만화가 궁금할 땐, 어떻게 정보를 얻나요?

 

 

만화 관련 정보취득 경로는 ‘포털사이트’가 49.1%로 가장 높았습니다. 만화 관련 정보취득 경로는 `포털사이트'가 49.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친구나 주변인(40.3%)', `SNS(26.3%)'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포털사이트'를 통한 만화 관련 정보 취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남성(51.5%)'은 `여성(46.6%)'보다 `포털사이트'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령별로는 `40-49세(55.4%)'에서 `포털사이트'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지역별로는 `강원/제주(43.8%)' 지역 거주자에서 `포털사이트'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만화 이용 형태별로는 `디지털만화와 종이만화 모두 이용(57.0%)' 응답자에서 `포털사이트'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만화 콘텐츠 이용 빈도별로는 `거의 매일(55.0%)' 이용자에게서 `포털사이트'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만화의 주요 형태별 이용 행태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코너에서는 디지털/종이만화의 이용 행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