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은 작가가 그 모든 것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목에 이미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된 다중 의미와 관점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지훈의 시 <승무속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을 맺는 구절을 제목으로 빌려온 웹툰 <나빌레라>가 그렇습니다승무를 추는 승려의 모습을 묘사한 나비로다라는 뜻의 우리말이 우아하게 담긴 이 시구 나빌레라에는그것이 나비일까?’ 의심하는 조심스러운 추측과 나비로구나!’ 깨닫는 확신이 공존합니다동시에 익숙지 않은 이 표현 속 정적인 명사 ‘나비’가 마치 형용사와 동사처럼 이어지면서 나비가 춤을 추는 모습을 생생하게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주인공 ‘삼덕출’이 현실의 제약과 사람들의 의심을 뿌리치고 꿈을 실현하는 작품 속 비상의 과정은 제목이 함의한 위 세 가지 관점을 순차적으로 거치며 그려집니다.

 

어른의 의심하는 눈, 그건 나비일까?

 

△ 이미지 출처 : <나빌레라> ⓒ다음웹툰

 

<나빌레라>의 줄거리는 70세 노인 심덕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그동안 하고 싶었던 발레에의 도전을 별안간 선언하며 시작됩니다사람들은 덕출의 흔치 않은 결정의 진정성을그것의 성공적인 실현 가능성을 의심합니다. ‘노인의 몸으로 왜 하필 발레일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심지어 본작 관련하여 독자가 처음 갖는 관심도 ‘노인의 발레 이야기’라는 핵심 설정에 관한 호기심에 가깝습니다. 덕출의 장남 ‘심성산’은 그러한 작품 안팎의 극대화된 의심을 대표해 아버지의 결정에 대한 반대 의사를 구체적 행동으로까지 표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덕출이 당장 원하지 않는 합가까지 속히 실행하려고 합니다. 성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소위 말하는 효자의 조건을 갖추었습니다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으며일찌감치 가정을 이뤘습니다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두 분이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하지만 그는 결정적으로 아버지를 자기 삶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채 제 생각 안에 가두고 있으며,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발레에 관한 이해마저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의견만이 정답인 양 정해진 선택을 강요하는 어른처럼 말입니다.



덕출의 결정을 의심하고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산의 생각은 ‘남성 노인은 발레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실 성산만의 것이 아닙니다. 작품 밖에도 분명 존재하는 ‘무용은 여성적’이라는 편견은 지난 전통에 근거합니다. 오랜 역사 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무용은 19세기 근대에 들어선 후 반대로 남성적인 신체 활동이 체육으로 한정됨으로써 오롯이 여성의 것으로 배분되었습니다여성 혹은 여성성을 타자화객체화된 존재로 구별하는 구시대의 폭력은 자연스럽게 여성적 활동으로 간주된 발레마저 구별했습니다성산은 스스로 고백했듯이 발레에 관해 잘 모릅니다. 자식 세대인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만 어릴 뿐 주체가 보고, 객체가 보이는 식의 종속 관계로 굳어진 지난 세기의 편견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구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는 성산이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현 아버지 세대가 발레를 실제 공연보다는 미디어 보도를 통한 이미지로만 수용한 까닭도 큽니다이로 인해 예술이 현대사에 들어선 지 100년이 지나 동시대 예술로 소비되고 있는 오늘날에도무용이 여전히 철저히 보이는’ 객체에 머물러 있는 작품 내 편견은 그럴듯한 안티 테제가 됩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발레 행위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발레를 객체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사고로는 발레를 하는 이의 신체 역시 객체입니다객체는 절대 스스로 기능하거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합니다반드시 다른 무언가로 교환된 후에야 비로소 의미를 지닙니다. 다른 자녀들과 함께 발레 단장 ‘문경군’마저 최초에 심덕출에게 대신 권했던 등산과 에어로빅 등은 ‘건강’으로의 교환 가능성이 큰 건전한 취미생활이지만, 발레는 그마저 결과를 확신할 수 없기에 그저 다른 이에게 부끄럽게 보이는 ‘짓’이나 ‘꼴’(3화)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산과 비슷한 수준은 아니지만 덕출을 걱정하는 여타 인물들의 소극적 의심은 발레나 성 역할에 대한 차별보다 노인 신체에 대한 구별 및 억압과 관련 있습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덕출의 신체는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대개 노인의 몸이 젊은 사람보다 훨씬 연약하고 쉽게 망가진다는 통계적 의심은 반드시 그러하다는 기정사실이 되어 사람들의 의심을 더욱더 자라게 합니다. 이는 비단 실질적인 신체 능력이나 그것과의 관련성과 무관하게 노약자의 생산성을 무조건 무시하는 가속화된 현대 산업화 세계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합니다신체의 물리적 능력이 생존에 직결되었던 고대와 다를 바 없이현대에서도 활력과 변화를 구현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추앙받는 이높은 가능성과 성장 동력을 가진 이는 주로 젊은 사람들로 평가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N포세대’, ‘소확행’와 같은 용어의 무게를 젊은 세대에게만 한정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오히려 앞선 생애를 통해 이미 많은 것을 누렸고 지니고 있다는 인식으로 인해노인 세대는 자기 지향성에 대해 더욱 가혹한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실제로 덕출은 비단 자연적인 노쇠만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이하 치매)까지 안고 있었고이는 사람들의 눈에서 점차 가셨던 의심을 더욱 증폭하는 결정적인 장치가 되었습니다그의 바른 생활 습관이나 운동으로도 늦출 수 없는 불가항적 질병으로서의 치매는 단지 성산만이 아니라, 작중 모든 인물과 독자의 눈에마저 의심을 드리우게 했습니다. 어쩌면 덕출은 ‘무대에 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라고. ‘날아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늙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 같다”(1)는 작품 속 덕출의 첫 내레이션은 도전을 앞둔 그가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다지는 말이었지만거꾸로 반복되는 좌절에 익숙해져 발레에 대한 단념을 재촉하는 말로도 언제든 뒤바뀔 수 있습니다실제로 덕출은 무대를 코앞에 두고 공연을 포기하게 됩니다(55). 여러 차례 부침을 거쳐 쌓아올려진 의심이 최고조에 달해 덕출의 도전이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아이의 확신하는 마음,
‘그건 나비로구나!’

 

덕출의 도전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으로부터 제반 의심을 거두고 성공을 확신하는 일은 개별 인물 간 상호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자식들의 반대에 부딪힌 덕출과 가장 가깝게 지내며 그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는 인물은, 현실에서는 뜻밖이라 할 수 있는 손자뻘의 ‘이채록’ 입니다. 경국의 지시로 파트너를 이루게 된 덕출과 채록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위기 상황에서 연대하며 서사를 이끌어갑니다생판 남이었던 청년과 노인 두 사람이 점차 마음을 열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긴밀한 관계 설정은 작위적이지만 설득력이 높기도 한데이는 두 캐릭터가 여러모로 상호 거울상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일흔을 며칠 앞둔 덕출은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느라 막상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했던 인물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온라인서점 예스24 홈페이지

 

반대로 스물셋의 채록은 비록 가난하지만 하고 싶은 축구와 발레에 도전할 수 있는 재능과 기회가 일찌감치 주어졌던 인물입니다. 덕출에게는 가족이 있었지만 발레가 부재했고, 의지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의 관계마저 멀어진 채록에게는 발레가 있었지만, 가족이 부재했습니다. 한편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시점에 덕출은 막상 하고 싶었던 발레에 도전하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가족이 없었고, 채록은 하고 있던 발레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조금씩 희미해지던 터였습니다. 그런 덕출이 채록의 매니저이자 제자가 됨으로써 발레를 할 수 있게 되고, 채록은 할아버지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그를 보살피는 살뜰히 보살핌으로써 다시금 가족애를 느끼고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두 사람은 서로의 빈자리를 꼭 들어맞는 천생연분인 셈입니다.

 

덕출의 가족 및 그와 채록이 함께 하는 대안 가족 이야기가 사건과 관계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나빌레라>의 장르는 분명 휴먼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서로 대칭의 속성을 지닌 두 인물이 반강제로 관계를 맺고 비슷한 꿈과 열정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한다는 스토리 구조나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공유하며 서로 다른 인물들이 절대적인 믿음을 나눈다는 비현실적 설정은 소년만화나 성장물에서 자주 반복된 요소이기도 합니다. 덕출이 성인이지만 그의 일상이 직장이나 생산 활동에서 벗어난 노인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가 미성년처럼 어른들의 편견이나 신체의 불가항력에 대항해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소년만화 속 주인공과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초반에 덕출을 반신반의하다가도누구보다 그를 신뢰하고 절대적인 지지와 도움을 주게 되는 채록의 존재 역시 소년만화 속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과 판박입니다이들은 절대 논리적 판단이나 현실적인 가능성을 잣대로 꿈과 우정 같은 순수한 가치를 재단하지도그것의 배신을 의심하지도 않습니다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듯 절대적인 믿음을 보입니다. 작품 말미, 덕출이 목표로 삼았던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이 확실시되어가는 위기의 순간에 서로를 향한 믿음은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급격히 악화한 치매 증상으로 인해 스스로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르길 단념한 덕출을 채록은 재차 설득합니다. 덕출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해낼 수 있으리라는 강한 믿음으로. 이 같은 신뢰는 연쇄적으로 작용해 다른 캐릭터에게도 전염됩니다. 경국에게 소리치는 채록의 모습, ‘하고 싶다잖아! 할 수 있어요! 허락해 주세요!(55화)’은 어린아이가 쓰는 생떼에 가깝지만, ‘우리만 하는 소극장 공연 아니(55화)’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던 경국도 결국 채록을 해낼 것을, 채록과 함께 덕출이 해낼 것을 믿어 보입니다. “사람이 언제 초라해지는 걸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고 믿는 순간(13화)’이라고 자답했던 덕출이, 스스로 포기했고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 무대를 채록의 반복된 설득에 다시 용기를 얻고 도전하는 순간 ‘나는... 정말... 발레가... 발레가 하고 싶어(55화)’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소년만화에서 익히 보아온 수미상관적 연출입니다.


<나빌레라>는 종종 대사 하나 없이 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공들인 연출로 작품 밖 독자들의 신뢰를 얻어내기도 합니다발레단을 방문해 무용수의 연습을 구경하며 발을 꼼지락거리는 덕출의 뒷모습(5화)을 통해 발레에 대한 진지한 그의 열정과 의지를 독자에게 재차 확인하게 하고, 하고 싶었던 말을 아버지에게 전하려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머뭇거리는 채록의 모습(16화)을 통해서는 할아버지와의 관계 이외의 면에서도 조금씩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다리를 다친 이후 잠시 좌절했지만 경국의 배려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덕출이 지금까지보다 더 잘 해내고 ’(30)다는 말에 가만히 그의 어깨에 손부터 올리는 채록의 행동에서는 이제 덕출을 보듬고 북돋는 보호자 같은 관계로 역전된 그의 믿음직한 면모를 읽을 수 있고길을 잃었던 덕출을 데리러 간 채록이 그에게 다짜고짜 발레 동작을 시키는 장면(33)은 막판 치매 증상에도 덕출이 발레 동작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복선이 됩니다. 결국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어 가족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덕출이 차가운 바벨 봉을 잡고 몸이 기억하는 발레 동작을 해 보이는 장면(에필로그, 후기)은 어떤 대사 없이도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이처럼 여러 차례 반복되는 섬세한 장면 연출을 통해 독자는 의심을 버리고 작품과 작가를 순진하게 믿게 됩니다. 그리고 <나빌레라>의 끝에 비참하고 현실적인 비극이 아닌, 아름다운 결말이 있음을 기대하게 됩니다.

 

춤추는 낭만,

나빌레라

 

 

작중에도 언급되듯이 ‘발레는 스포츠가 아닌 예술’(5화)입니다. 예술의 세계는 현실로 쉬이 실현될 수 없는 낭만을 품고 있습니다. 발레는 발끝을 세운 채 수도 없이 튀어 오르고 점프를 하는 등 물 흐르듯 중력에 저항함으로써 비정상적인 동작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일깨웁니다. <나빌레라>가 의심으로부터 확신으로 착실하게 나아가는 서사는 궁극적으로극 중 인물과 독자들에게 마치 발레 동작처럼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다운 춤을 선사합니다. 현실의 드라마, 드라마적 현실에는 별수 없이 ‘악당’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악인’은 아닐지언정 어느 누군가에게만큼은 분명한 ‘악역’이 되어 주인공 혹은 자신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깁니다.


하지만 <나빌레라>는 그 어떤 인물도 그저 악역에 머무르게 하지 않습니다. 채록을 괴롭히는 동창 ‘성철’에게는 길 잃은 덕출을 챙겨줄 기회를 주고(33화), 덕출의 도전을 촬영하고 이를 자극적으로 편집해 그의 꿈을 웃음거리로 만든 PD 박정서(22화)는 바로 다음 화에 성관에게 사과를 건네게 합니다. 덕출의 도전을 의심하고, 사사건건 심한 말을 쏟아내는 성산마저 그의 뒷모습과 눈물을 조명함으로써 독자에게 그를 이해하게 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나빌레라> ⓒ다음웹툰

 

이들의 반대편에서는 작품 곳곳에 있는 조력자들과 선한 역할을 대변하는 캐릭터들이 작가의 교훈을 대신 전하기도 합니다. ‘자식 번듯하게 잘 사는 거로 부모가 자식 앞에 약자가 돼야(15화)’ 할 이유는 없다고 일갈하는 엄마,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이 원하고 계신 걸지도 모르잖아? 그런 거면 우리가 도움은 못 되더라도 방해는 하지 말자(31화)’고 형제들을 설득하는 막내 ‘성관’. 심지어 가족도 아닌 성산의 친구 민구는 친구 아버지인 덕출에게 ‘부족한 저희 식구들을 대신해서 아버지 친구로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19화)’하다 하고, 스승인 경국은 제자 채록에 ‘난 한 번도 널 의심한 적 없어. (중략) 네가 해내 줄 거라고 늘 믿고 있었다(55화)’라며 군말 없이 그의 무모함을 덮어줍니다. 독자의 마음을 대변하고나아가 덕출과 채록 등 주요 인물을 향한 애틋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인물들에게 깊은 갈등이나 감정의 골은 절대 생길 수 없습니다이 덕분에 할아버지 덕출과 손자뻘 채록은 자연스레 친구처럼 지내게 되고스승 경국과 제자 채록 사이 불편한 권위주의는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나빌레라>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 흐름은 신선하고 창의적인 예술보다는 멋지고 아름다운 이상(理想)’에 가깝습니다그것은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소통의 부재나 오해를 쉽게 발생시키지도 않고설사 그것이 생겨나더라도 오래 끌고 가지 않습니다. 실제 가족이든 덕출과 채록 사이 형성된 대안 가족이든 세대 간 갈등이 먼 나라 얘기가 된 작품 속 세계는 인물들의 휴머니즘적 면모가 그 어디에서보다도 두드러집니다. 이는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 덕출이 물리적으로 칠순 노인의 몸으로 유연한 몸과 체력을 자랑하고, 스스로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걸 찾아보고(3화)’ 발레단에 들어가며, 스마트폰으로 쉽게 셀카를 찍을 정도로 젊게 사는 인물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칠십 평생을 허물없이 건실하고 세심하며, 심지어 크게 몸 불편한 곳 없이 시대에 뒤처짐도 없이 영민하게 살아온 노인에게 자식과 주변 인물들은 저마다 그 표현 방식이 다를지언정 같은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웹툰으로서의 장르성은 훈훈한 서사와 설정 위에 미려한 심상을 덧댈 수 있게 합니다. 시종일관 균질한 색온도로 섬세하게 조율한 화풍 위에 세월의 흔적이 드리운 노인의 깊은 주름은 얇고 짧은 선 몇 개로, 생의 최종 장을 보내고 있는 어두운 낯빛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밝고 화사한 톤으로 표현됩니다. 젊은 사람들과 비교해 어딘지 다르고 느릴 수밖에 없는 노인의 동작과 행동은 컷을 읽는 독자 저마다의 상상에 따라 남들과 엇비슷한 양태와 템포에 수렴합니다게다가 이 모든 것은 절대 어색하지 않습니다현실과 다른 작품 속 아이와 같은 낭만은 팍팍한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사고를 나풀대는 춤으로 뒤바꿉니다.

 

나비의 꿈:
‘그건 꿈이었을까?’


작품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주인공의 주체성과 도전 의식이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성장 및 관계성 회복 등의 주제 의식을 발레라는 예술 형식에 투영함으로써 무척 온건하게 담아냈습니다. 만약 여기서 발레가 없었다면 이는 현실에서 생존권을 포함한 사람답게 사는 삶’에 관한 담론 자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여러 사회문제나 이를 위시한 각종 변혁의 의지를 외면하고 그에 볼멘소리를 내는 보수적 논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의 삶이면 충분하지 않으냐는 것이는 아버지 덕출에게 지금까지 점잖게 잘 살아(2)’왔는데 이제 와서 왜 그렇냐는 듯 반대하는 성산의 의심과 닮았습니다

 

한 개인이든 개인을 아우르는 세대든 사람됨을 지향하는 주체의 치열한 투쟁은 시대와 집단을 아울러 함께 응원하고 힘을 보태야 할 공공의 혁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나빌레라>는 예술을 빌려 투쟁의 가장 우아한 면만을 남깁니다. 덕출의 꿈을 채록보다 먼저 돕고 응원한 경국의 말마따나 비상의 꿈은 ‘추하지 않습니다(30화)’. 안타깝게도 마지막 순간에 덕출은 모든 것을 망각합니다. 발레에 매진했던 마지막 생애는 물론, 지난 70년 세월이 마치 스쳐 지나간 백일몽이 된 마냥 그의 기억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장자의 ‘나비의 꿈(胡蝶之夢)’ 설화가 주는 교훈처럼 작품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현실이든 꿈이든 상관없다는 사실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온라인서점 예스24 홈페이지

 

덕출의 도전이 헛되지 않은 것은 그의 꿈과 도전에 함께 했던 채록과 주변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 이야기가 추하지 않은 것은 그 의지가 주변 인물에게 남아 이어졌기 때문입니다시 <승무>에는 춤을 추는 승려에 관한 사연이 일절 생략돼 있습니다오히려 그의 춤사위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만이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의 시절은 너를 만나 다행이고 우리를 만나 꿈만 같구나(56)’ 덕출 한 사람의 소망에서 출발한 <나빌레라>의 이야기는 우리의 것으로 남았습니다

 

누군가는 B급 발레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각자의 실패와 상처를 안은 아이들을 ‘아직 목표를 가진’ ‘엘리트’로 믿고 그 꿈을 돕는 경국, 채록에 평생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형으로 남겠다(35화)’고 고백하는 성관, ‘해보고 싶은 거 해보고, 가보고 싶은 곳’에 가보며 ‘행복하게 살(7화)’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어받을 혜진, 게다가 가벼운 농담조나 작품에 대한 불만 하나 없이 댓글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독자들까지. 덕출의 춤을 지켜본 이들에 의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저마다의 날갯짓이 이어집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기성 부문 가작 지정 평론  장병욱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시간을 20년으로 늘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이 지나가고, 웰빙이 지난 자리에 가성비와 소확행이 찾아왔습니다. ‘좋은 삶, 건강한 삶’을 지향하던 사람들은 이제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것, 그리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소비의 방향을 옮기고 있습니다.

 

"고도성장기, 잔치는 끝났습니다."


한국은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무서운 줄 모르고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주 어렸거나 태어나지 않았던 시기인 당시는 현재 세대에겐 말하자면 전설과 같은 시기입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역사 속 시대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고도성장기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때문에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있던 마지막 시기였습니다이제 인류는 그런 시기를 지나 저성장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저축으로 내 집 마련’ 이 가능했던 마지막 시기에는 저축과 투자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다가올 찬란한 순간이 오늘이 아닌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청년에게 ‘세계’란, IMF로 기억되는 어린시절과 2008년 금융위기로 기록된 경제 침체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새롭게 경제활동인구로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중반~1996년 태생)는 저성장을 피부로 느끼며 성장했고, 양극화를 눈으로 보고 자라났습니다. 모험하지 않는다고 꾸짖는 어른들에게, 모험했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세대로 자라났습니다. 다가올 내일은 불안하고, 가장 빛나는 건 나의 오늘인 세대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지금의 안정을, 미래의 행복 대신 현재의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입니다. 고도성장이라는 잔치가 끝난 곳에서, 당연히 사람들은 현재의 행복을 찾습니다. 미래에는 행복이 없거나, 너무나 불확실하거나, 있더라도 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인 가구의 증가저출산고용불안 등의 여러 사회적 맥락이 작용하면서 고도성장이라는 잔치가 끝난 후에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가치보다 불확실해지면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자리 잡은 셈입니다인터넷 문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웹툰 역시 이런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발 빠르게 반영했습니다. 2014년부터 연재중인 yami 작가의 <일단 질러질렐루야>는 잔치가 끝난 시대현재의 즐거움과 생활의 편리함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 이미지출처 : 일단질러! 질렐루야Ⓒyami 다음

 

고도성장기에 성공했거나적어도 그들을 보고 함께 성장해온 세대에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야심도 없고도전과 노력을 하지 않는 세대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고스펙 경쟁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지독한 무기력에 시달리는 세대이기도 합니다독립을 위한 보증금을 마련하려면 안정적인 가정과 저축할 수 있는 수입이 필요합니다하지만 10년 넘게 지속된 취업난줄어든 안정적인 일자리는 이마저도 녹록지 않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일단 질러! 질렐루야>의 등장인물들은 결코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직접 사용해본 물건을 ‘나리’와 ‘닭둘’이라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무기력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작품인 만큼, 낙천적인 성격의 나리와 현실적인 성격의 닭둘은 현대 청년을 의미하는 메타포입니다. 엘리트로 성장해 대형 로펌에서 일했지만 좋은 직장을 뛰쳐나와 웹툰 작가로 일하는 닭둘은 경쟁과 착취에 지친 청년을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나리는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린 청년을 대변합니다작품은 청년세대의 삶을 종합해서 보여주기보다소비라는 측면에서 행복을 논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키워드 중 하나는 덕질입니다작품 속 캐릭터들에게 덕질은 일상의 일부로 등장합니다그리고 작품의 주제가 되는 아이템은 이런 덕질을 윤택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일상에서 쉽게 소비하는 물건을 소개하기보다,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아이디어 제품’을 소개하는 질렐루야는 소비 키워드를 모두 잡았습니다. 현대 소비의 키워드 중 하나인 ‘가성비’는 곧 ‘똑똑한 소비’로 치환됩니다. 똑똑한 소비는 다시 ‘남들은 모르는 나의 즐거움’으로 자리잡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적은 재화를 들여 최대의 만족을 얻는 방법 자체가 게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유튜브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는 가성비’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이나 글입니다가격 대비 성능이 얼마나 좋은가또 이런 제품은 어떻게 구매할 수 있는가를 가이드해주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단순히 언박싱’ 혹은 리뷰가 아닌 생활 밀착형 소비를 키워드로 잡습니다이를 통해 작품을 보는 독자들은 작가의 소비를 작품을 통해 관전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하진 않지만있으면 삶의 질이 올라가는’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닭둘과 나리가 ‘질렐루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당연히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쾌감을 주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나리와 닭둘의 연애담과 작가 특유의 유머가 더해져 독자는 작품을 단순히 제품 소개가 아닌 ‘만화’로 읽게 됩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등장시키기보다 아예 배제하는 과감한 선택은 ‘저성장 시대의 청년’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겐 공감과 정보, 그리고 재미를 주기 위한 판타지로 바뀌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행복한 삶을 지속하려는 방법으로 소비를 선택한 만큼소비로 인한 죄책감은 최대한 덜어냈습니다.

 

"소비로 확실해지는 행복"

 

어떤 관점에서 <일단 질러! 질렐루야>는 실재하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IMF와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개인이 피할 수 없는 재난에 가까운 상황은 상수로 존재하고, 이런 상황에서 회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청년세대는 이런 상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세대입니다.



‘플라네타리움’ 에피소드(12화)에서 나리는 닭둘과 가만히 누워 플라네타리움이 만들어내는 우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평생 집을 못 살지도 몰라철이 덜 들었단 소리를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가고기타도 사서 쳐 보고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도 보고그런 세계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부동산이라는지금까지 나리를 둘러싼 세계가 공고하게 지켜오던 세계는 이미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너무 먼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지금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면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나리의 이 말은 현재 많은 청년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일단 질러질렐루야>는 에피큐리언적인 낙관에서 오는 찰나의 쾌락을 즐기는 자세도데카당스적인 현실 부정과 전위적인 쾌락도 추구하지 않습니다오로지 현실과 그 현실에서 벌어지는 소비그것으로 개선되는 삶의 질에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바꿀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을 인정하되, 그 현실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현실의 무거움이 만들어 놓은 무기력의 자리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내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능동적인 사고를 채우는, 말하자면 확실한 행복을 위한 소비, 그리고 소비로 확실해지는 행복을 찾습니다.



‘88만 원 세대’, ‘N포세대’ 같은 이름이 붙여져 낙인찍힌 세대는 사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구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무기력하고 포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청년세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잔치가 끝난 곳에서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일단 질러질렐루야>는 나리와 닭둘의 삶을 통해 잔치가 끝난 시점에 노동자로 현실에 뛰어든 현재의 청년세대를 그리고 있는 만화입니다생활툰의 진화를 바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기성부문 우수상 자유 평론  이재민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지옥사원> 인간다운 것은 좋은가?

상상발전소/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토리 2020. 3. 25. 16: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단어에도 좋고 나쁨이 있습니다. 본뜻과 상관없이 좋은 이미지를 가진 단어가 있는가 하면 까닭없이 비호감인 단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적’, ‘비인간적’이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단어의 본 뜻만 놓고 보면 ‘사람다운 성질’이 있거나 없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만, 본능적으로 인간적인 것은 좋은 것, 비인간적인 것은 나쁜 것으로 인식되고는 합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Humane(인간적인)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으로, Inhumane(비인간적인)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으로 인식됩니다. ‘짐승 같다’는 말을 비난의 의미로 쓰는 것도,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가 붙은 ‘인간미’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왜 좋은 걸까요?네온비, 캐러멜 작가의 <지옥사원>에서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인간답다는 것이 왜 좋은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이자 철저한 외부자인 ‘악마를 통하여 제기됩니다.

 

"<지옥사원> 내(內) 악마의 설정"

△ 이미지 출처 : 지옥사원Ⓒ네온비, 캐러멜 다음

 

불지옥을 배경으로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종교적인 악마에서, 파우스트를 졸졸 따라다니는 다소 미련한 악마에 이르기까지, 악마는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하게 묘사됩니다. 특히 현대에는 <악마와 계약연애>처럼 매력적인 외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나 <데스노트>에서처럼 철저한 방관자의 모습으로 개성 있게 변주되기도 합니다.<지옥사원>의 경우에는 악마의 설정이 다소 이중적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지옥에서의 악마들은 인간과 다른 바 없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지옥 대장 크루페논은 악마가 소멸하면 슬퍼하고, 하급 악마 루테로스는 자신의 우상인 악마 쿼터를 동경합니다. 심지어 상급 악마끼리 서로를 질투하고 견제하는 모습까지 보이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반면에 지구에 내려와 인간의 몸속으로 빙의한 악마는 지옥에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인간에 빙의된 악마는 ‘공감능력과 측은지심은 없고오직 욕망만이 남아서 철저히 그 욕망의 달성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인간으로 따지면 반사회적 행동장애를 가진, 소시오패스 같은 존재입니다. 실제로 반사회적 행동 장애 환자의 경우 어떠한 행동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이는 공감능력의 결여에 기인합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현견이라는 등장인물이 악마 쿼터가 빙의된 인간을 두고 고순무는 소시오패스야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설정을 뒷받침 해 줍니다. 다소 이중적인 이러한 설정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인간과 악마라는 존재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류애를 발휘하는 대상이 인간에 국한되어 있듯이 악마로서도 공감이나 측은지심은 악마에게만 발휘되는 성질의 것인 셈입니다악마에게 인간은 양계장의 닭과 같은 존재이므로 측은지심을 가질 까닭이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악마는 불행 구슬(작품에서 악마가 사용하는 연료이자 식량)을 얻기 위해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인간이 달걀을 수거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과 악마의 비교 분석을 통한 인간다움의 고찰"

 

<지옥사원>은 이렇게 인간과 상이한 존재인 악마 ‘쿼터 고순무라는 인간의 몸에 빙의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쿼터에게 빙의를 당한 인간은 행동이나 사고방식에서 보통의 인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외향은 인간과 다르지 않지만실체는 악마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차이를 인지하는 것이 인간다움에 관한 고찰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있는데악마인 쿼터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쿼터에게는 무엇이 없기에 보통의 인간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지옥사원> 41화, Ⓒ네온비, 캐러멜 다음

 

무엇이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는 그 차이의 실체가 ‘인간성이며쿼터는 그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의 인간과 다른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인간성의 결여가 ‘도덕성’의 부재로 표현됩니다. 본인의 욕망을 위해서 다른 인간이 저축해 놓은 돈을 허락 없이 쓴다든지, 트럭에 치여 죽은 모녀를 보며, 희생자가 본인이 아닌 것에 안도하는 식입니다. 게다가 인간을 경제적 능력에 따라 높은 등급과 낮은 등급으로 구분한다든지 하는, 인간이 했다면 뭇매를 맞았을 말도 스스럼없이 합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간단한 수준의 도덕성도 학습되지 않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수준의 도덕성은 작품이 중반부로 가면서 악마도 충분히 흉내 낼 수 있게 됩니다. 그 이후 악마는 도덕성보다 좀 더 고차원적인 ‘예의’를 학습합니다. 예의는 특정 공동체에 따라서 특이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도덕보다 복잡합니다.인간과 구별되는 악마의 특성이 ‘도덕성과 예의의 결핍이라는 점은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합니다도덕성과 예의가 인간다움 그 자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간다움의 한 측면을 대변한다고는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지옥에서 온 소크라테스"

 

△ 이미지 출처 : <지옥사원> 45화, Ⓒ네온비, 캐러멜 다음

 

그렇다면 <지옥사원>에서 쿼터는 도덕과 예의를 어떠한 방식으로 학습했을까요? 놀랍게도 악마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이용하여 주변인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지’, ‘그것이 단순한 감정 낭비 이상의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원래 그런 것이라면 선량한 인간의 죽음을 이용하는 악인들은 왜 존재하는지’, ‘인간이라고 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타인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 인간적인지‘ 등 쿼터는 연이은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다움의 본질을 파고듭니다.쿼터의 질문을 받은 인간은 그럴듯한 논리를 들어 설명하려 노력하지만결국 모든 대답의 끝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리고 ‘응당’ 그래야 한다는 대답뿐입니다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대답하는 사람을 아포리아(Aporia: 막다른 골목)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인간답다는 것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주체가 비인간적인 존재이자 철저한 외부자인 ‘악마’라는 점도 흥미롭지만더 흥미로운 점은 인간다움에 대한 악마의 결론입니다인간답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독자에게 쿼터의 결론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인간답다는 것은, 개인을 사회에서 도태시키는 ‘약점’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결론이 쉬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높은 등급’의 사람과 ‘낮은 등급’의 사람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회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쿼터의 말에 따르면 회사란 평범한 인간들에게 악마 같은 능력을 원하는 곳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를 창립한 '정진저' 회장 자체가 악마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지옥사원 82화, Ⓒ네온비, 캐러멜 다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결론이 회사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인간적인 모습은 회사 밖에서도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 모습은 고순무에게 빙의한 쿼터가, 애인인 송아리의 부모님에게 결혼 허락을 받는 자리에서 잘 나타납니다. 인간다운 고순무가 못 미덥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던 송아리의 부모님은, 쿼터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결혼을 승낙합니다. 인간다움은 이 사회에서 손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인간다운 고순무의 귀환을 바라는 사람은 애인인 송아리뿐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쿼터의 말이 맞는지도 모  막연히 좋은 뜻으로 쓰였던 인간다움보다는, 잘 갖춰진 무기가 되는 비인간성이 현대 사회에서 더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이
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

 

그런데도 네온비, 캐러멜 작가는 이 지구상에 인간다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그래서인지 시즌 1의 막바지에 가장 인간적인 '고순무'의 영혼은 가장 비인간적인 골드그룹 회장 '김중규'의 몸으로 들어갔습니다인간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면서 왜 비인간적일수록 높은 등급이 되기 쉬운지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대답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송아리가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이 아직 굴러가는 이유는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즌 2에서는 인간다운 고순무에 의해서 더 좋게 바뀔 골드그룹을 기대해 봅니다.

 

 

2019 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작 : 신인 부문 우수상 자유 평론   조아라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아직 건네지 못한 인사가 남았다.
엄마, 안녕!

 

 

재미있는 말입니다. 별생각 없이 쓰는 ‘안녕’은, 곱씹을수록 재미있습니다. 명사로서의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뜻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인사를 건넬 때 쓰는 감탄사로서의 ‘안녕’은 다릅니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만나거나 헤어질 때’ 쓰는 감탄사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니, 완전히 극단의 상황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상황에서 같은 발음으로 ‘안녕’을 말합니다.


웹툰 <안녕, 엄마>는 <사랑스러운 복희씨>로 꽤 많은 팬덤을 가진 김인정 작가의 새 작품입니다. 복희씨에게 푹 빠져있던 독자들의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롤로그 공개 후, 댓글 창에는 <안녕, 엄마>의 ‘안녕’이 ‘Hello’인지 ‘Goodbye’인지에 대한 의견으로 분분했습니다. 나란히 서서 요리를 하는 엄마와 딸. 그리고 엄마에게 전하는 메시지, ‘안녕, 엄마.’ 이 모녀는 어떤 인사를 건네는 것 일까요.

 

 

 

' 밥 먹었냐는 안부와 진심 '  

 

“밥 먹었어?” 떨어져 있었던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우리는 안부를 묻기 위해 말합니다. 진짜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기 보다는 잘 지냈냐는 말의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물론 아주 우회적인 표현이라고만 할수도 없습니다. 오래 전 밥도 못먹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그 사람의 안위를 파악하기 위해 ‘밥 먹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밥 먹었냐’는 인사로 서로를 맞이합니다.

 

밥 때가 되었으면 함께 밥을 먹자는 의미로, 밥때가 지났으면 밥을 잘 챙겨 먹었냐고 걱정하는 의미로. 생각하면 참으로 정겨운 인사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그것은 다르다. 엄마의 ‘밥 먹었냐’는 질문은 안부를 묻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응” 혹은 “아니”의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밥을 먹었냐는 것입니다. <안녕, 엄마>도 그렇게 시작됩니다. 엄마와의 전화에 은영이는 “응, 먹었어” 라고 답합니다. 예상되는 엄마의 물음은 “밥 먹었어?”. 엄마는 늘 진짜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 합니다(뭘 먹었는지까지도!). 그래서 우리는 그 질문에 소홀해지기도 합니다.


골치 아픈 전화를 받는 와중에 엄마의 연락을 무심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은영’이도 그랬습니다.
 ‘안녕’을 둘러 싼 의견에 답을 먼저 말하자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은영이는 엄마와 헤어졌습니다. 엄마의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전화 통화를 나누었던 엄마는 영정 사진이 되어 돌아왔는데요. 은영이는 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은영이는 다시 엄마를 만납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아닌, 헤어짐과 만남 입니다.

 

 

 

 

' 엄마와 딸, 두 이야기 '  

 

 

 

엄마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은영이가 받은 것은 엄마의 일기장입니다. 하나뿐인 딸 은영이는 이 일기장을 조심스레 손에 쥡니다. ‘자기 물건 건드리는 거 싫어할 텐데.’ 은영이는 엄마를 보내고서도 엄마에게 다가서기 힘들어합니다. 잡다한 메모가 적힌 일기장을 받아들고도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는 건 제일 싫어했겠지.’ 엄마가 돌아온 것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일기장과 함께 돌아온 엄마. 엄마는 ‘죽음’이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은영이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냅니다. 은영이는 엄마의 일기장을 단숨에 읽지 못하고 한 장씩, 천천히 넘깁니다. ‘냉혈한’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차가웠던 엄마와 서먹할 수밖에 없었던 은영이는 일기장을 통해 엄마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까요? 엄마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은영이지만, 엄마를 찾아가는 와중에 은영이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마주합니다. 엄마, 그리고 딸의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집니다.

 

 

 

' 이상적인 관계? '  

 

 

혼자 남은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하나씩 좇습니다. 그 과정에서 은영이는 몰랐던 엄마의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존재도 몰랐던 엄마의 남자 친구, 삶의 괴로움, 흔적. 엄마가 언젠가 꼭 가고 싶었다던 바닷가를 찾은 은영이는 장례식장에서부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마음껏 엄마를 그리워하고 싶었던 것일까요?서툰 관계의 끝에서 은영이의 마음이 그렇게 쏟아집니다.

 

 

▲ 이미지 : <안녕, 엄마> 단행본 판매 사이트 캡처 (https://bit.ly/2NbuKOr)

 

그래서인지 이야기 초반엔 엄마의 흔적을 좇았다면 이후부터는 은영 이의 ‘속마음’들이 드러납니다.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희선이를 보며 은영이는 생각했습니다. ‘이상적인 관계.’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희선이에게 은영이는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감정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하지만 은영이는 이제 생각합니다.‘엄마도 힘들 때 내가 보고 싶었을까?’ 사실 희선이도 엄마와의 관계가 쉽지 않습니다. 은영이처럼 서먹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다 보니 적당한 거리가 없는 것이죠. 성인이 되어 떠나가려는 희선이에게 서운한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서 답답함을 느끼는 희선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은영이에게 털어놓은 희선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세상에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요?

 

 

' 나를 만나다 '  

 

일기의 마지막 장에 가까워질수록 엄마는 흐릿해집니다. 선명하던 엄마는 말없이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은영이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곧 엄마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은영이는 처음부터 엄마가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깊은 후회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은영이가 만들어 낸 자기방어와 같은 환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좇은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와 미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엄마와 꼭 닮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내가 안고 가야 할 상처와 기억,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이제 엄마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나를 만나고 “안녕”, 엄마를 보내며 인사합니다. “엄마, 안녕.”

 

 

 강정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지금, 만화" 모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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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우리 생활을 깨알같이 녹인 웹툰들

상상발전소/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토리 2015. 6. 29. 10: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한국에 수입된 외국 만화를 볼 때면 입학식 날 벚꽃이 피는 모습, 교실에서 짝꿍 없이 한 명씩 앉아 있는 모습, 짧은 팬츠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위화감이 솟아오를 때가 많습니다. 입학식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열리고, 교실에서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앉고, 늘어난 체육복을 교복 대신 입는 모습이 바로 우리가 보아왔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죠. 한국 웹툰은 우리나라 작가가 그리는 만큼,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요, 우리 생활을 녹인 웹툰들을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 네이버 웹툰 연애혁명


'232'작가의 연애혁명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웹툰입니다. 작가가 그만큼 중고등학생들의 일상을 잘 녹여냈기 때문이죠. 교복처럼 입는 저지와 삼선슬리퍼, 일상복까지 학생들이 많이 입는 스타일을 그대로 그려낼 뿐만이 아니라, 학교생활이나 여가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상당히 현실감 있게 그렸습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체육대회에서는 각 반이 컨셉을 잡아서 옷을 맞추고, 응원 카드를 만들고 응원하는 모습 등 학교 생활의 꽃인 체육대회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가 시간도 웹툰의 주인공들이 중고등학생들이 자주 가는 노래방, 피시방, 카페 등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면서 학생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SNS나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개그나 패러디 등을 그려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이 공감할만한 유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웹툰이라는 만화 특성상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학생들이 공감하는 만큼 한국의 중고등학생을 잘 표현하는 웹툰인 것 같습니다. 



▲ 네이버 웹툰 여탕보고서


‘마일로’ 작가의 여탕보고서는 여타 일상툰과는 방향을 달리합니다.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일상툰이기 때문이죠.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인 만큼 목욕탕을 주제로 웹툰을 그리기는 부끄럽고 어려울 것 같으나, 작가는 코믹한 캐릭터를 통해 목욕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려냅니다. 어렸을 적 바가지를 포개어 수영하던 냉탕, 자동식 수도꼭지의 불편함, 온도조절에 실패했을 때의 슬픔, 목욕탕에서 때 벗기는 아이들까지 소소한 소재지만 목욕탕을 한 번쯤 가보았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댓글 창은 어느새 추억과 공감의 나눔터가 됩니다. 특히 여탕보고서라 여탕에서의 이야기만 나오기 때문에 남녀목욕탕 간의 차이를 소개하는 분들이 많아 남녀 간의 서로 다른 목욕탕 문화를 댓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이 웹툰의 묘미입니다.



▲ 다음 웹툰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안나보니따' 작가의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웹툰 제목만 보아도 뭉클하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흔한 잔잔한 일상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엄마'와 같이하는 일상을 재조명하여 그려내는 이 웹툰은 많은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속상해서 울고 있으면 토닥토닥 달래주는 엄마, 머리를 묶어주던 엄마의 손, 엄마를 보면서 하나하나씩 배워나가는 어린 나. 몽실몽실한 그림체로 그려내는 일상을 보다 보면 마음까지 힐링되는 따뜻한 작품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는 '공뷰'로 제공되고 있는데요, 움직이는 그림과 배경음악을 통해서 좀 더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입니다. 모바일에 최적화가 되어있으니, 여러분도 모바일로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를 보며 힐링하는 건 어떨까요?


▲ 네이버 베스트 도전만화 대학일기

 

기나긴 고등학교 3년 수험생활을 학생들은 대학교에 대한 로망으로 버텨내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대학생활을 이야기하며 수험생들의 로망을 깨버리는 웹툰이 있는데요, 바로 '대학일기'입니다. 실제로 대학일기는 현재 대학생활 중인 작가가 생생한 대학생활을 그린 웹툰입니다. 단순한 그림체지만 생생한 표정과 공감되는 대사, 에피소드 때문에 인터넷에서 많이 회자가 되었습니다. 수강신청 때문에 피시방까지 갔지만 실패하고, 시험기간에 과제까지 몰아쳐서 정신을 놓으며 과제하고, 학교 앞에 먹을 것이 천지지만 결국 밥버거를 선택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많은 독자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공감하는데요,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많은 대학생들이 프로필 사진을 대학일기의 그림으로 바꿔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최근에는 네이버 밴드에서 대학일기 이모티콘을 이벤트로 증정하는 등 그 인기가 더욱 높아졌는데요, 정식으로 등단한 웹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기를 얻는 이유는 높은 공감대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기까지 우리의 일상생활을 잘 녹여낸 웹툰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나와 내 옆의 사람이 경험하는 가까이에 있는 소재인 만큼, 독자들과 소통하고, 또한 독자와 독자 간의 소통도 많이 이루어지는 웹툰들인데요, 앞으로도 우리 생활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웹툰이 더욱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웹툰 연애혁명

네이버 웹툰 오빠왔다

네이버 웹툰 여탕보고서

다음 만화속 세상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네이버 베스트 도전 대학일기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 사진1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는 모습

 

 

다들 웹툰 즐겨 보시나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웹툰을 챙겨보았지만 대형 포탈사이트의 투자와 몇몇 작품의 영화화 및 연극화, 유명 만화가들의 참여 등으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콘텐츠가 되었죠. 웹툰은 이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출판만화를 대체할 수 있는 한국 만화 콘텐츠의 떠오르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 웹툰, 이제는 스마트 폰으로 본다

 

 

◀ 사진2 네이버 웹툰용 모바일 이미지

 

웹툰은 스마트폰 · 태블릿 PC 등의 휴대용 전자기기가 발달과 함께 더욱 성장세를 띄었는데요. 대중교통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짬 날 때마다 틈틈이 한 화씩 보기 좋은 콘텐츠다 보니 독자들이 스마트폰으로도 웹툰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인터넷만 터진다면 어디서나 들고 다닐 수 있는 만화책이 생긴 셈이었지요.

 

웹툰이 원래 PC용으로 제작되던 것이다 보니 모바일에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한 감이 있었죠.

 

곧이어 네이버, 다음 등의 대형 포탈 사이트에서는 스마트 기기로 접속했을 때 모바일 페이지로 연결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스마트폰 화면에 딱 맞는 사이즈의 창에서 편안하게 스크롤을 내리며 웹툰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웹툰, 어플리케이션으로 스마트하게 본다

 

하지만 모바일 페이지로 보는 것도 사실 불편하긴 마찬가지죠. 때문에 매번 인터넷을 켜고 웹툰 페이지에에 접속해서 보는 번거로움을 해결해주는 웹툰 어플리케이션이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이 생겨났지만 대표적인 웹툰 앱은 다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사진3 네이버 웹툰 어플리케이션

 

대형 포탈로는 네이버가 최초로 웹툰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지요. 네이버 웹툰 앱에서는 스마트 기기에 최적화된 UI를 제공하여 장르별, 형식별로 손쉽게 원하는 웹툰을 찾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부가기능들도 제공했는데요. 마이웹툰 메뉴에 내가 즐겨 보는 웹툰만 따로 저장해 놓아 모아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고, 최근 본 웹툰 탭에서는 말 그대로 최근에 본 웹툰의 히스토리를 보여주어. 원하는 웹툰을 내려받아 저장해 놓고 볼 수 있는 임시저장 웹툰 기능은 다운로드한 콘텐츠를 48시간 동안 열람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 밖에도 컷 전환에 애니메이션을 적용하는 등 스마트폰에서 볼 때 다양한 효과를 맛볼 수 있는 스마트툰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네이버입니다.

 

▲ 사진4 다음 웹툰 어플리케이션


또 다른 대형 포탈 다음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인 2013년 6월에야 웹툰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했는데요. 나중에 나온 만큼 네이버 웹툰 앱이 가지고 있던 부가기능들에 더해 다음 웹툰 앱만의 편의기능들을 추가했습니다. 일단 연재, 완결, 리그웹툰을 따로 볼 수 있도록 탭을 나누어 놓았고요, 독자들이 매긴 별점 순으로 실시간 만화 순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들과 작가의 베스트 댓글만 모아서 볼 수 있는 베플 메뉴, 어플 내부에서 스크린샷 촬영 및 공유를 지원하는 컷 공유 기능, 1화부터 웹툰을 쉽게 정주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주행 기능 등 알찬 메뉴들로 독자들에게 어필했지요.

 

▲ 사진5 왼쪽부터 어플리케이션 <모두의 웹툰>, <레진코믹스> 어플리케이션

 

 

대표적인 포탈인 네이버와 다음 말고도 웹툰은 다양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전부 찾아서 보는 웹툰 매니아들은 네이버 웹툰 앱, 다음 웹툰 앱을 깔아도 여전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각 사이트의 만화를 구독해야 했죠. 그런 이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모두의 웹툰>같은 앱입니다. <모두의 웹툰>은 인터넷상에서 연재되는 대부분의 웹툰 모바일 페이지로 바로 연결되는 링크들을 모아 놓은 어플리케이션으로, 웹툰 매니아들의 수고를 크게 덜어 주었지요.

 

파워블로거 레진과 유명 개발자 구루가 합심해서 만들어낸 <레진코믹스>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만 서비스한다는 점이 좀 색다릅니다. 성숙한 독자를 위한 어른의 만화 서비스, 코믹스 콘텐츠의 프리미엄 채널을 표방하는 <레진코믹스>는 코인과 D-day 시스템을 도입하며 유료화를 선언하는 등 기존 웹툰들과는 좀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사토끼, 네온비, 가스파드 등 다른 포탈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웹툰 작가들이 다수 참여해서 큰 이슈를 모으기도 했죠.

  

이처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어플리케이션들이 만들어지는 건 웹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일어나는 바람직한 현상이겠죠. 만화를 유해매체로만 보던 시각들도 웹툰의 성공 및 OSMU 덕분에 많이 옅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휴대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 이젠 성향에 맞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스마트하게 웹툰을 구독하세요!

 

◎ 사진출처

- 사진1-5 직접 촬영 및 모바일 화면 캡쳐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사진1 네이버 웹툰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한국의 출판 만화 시장은 IT기술의 발전, 다양한 콘텐츠의 발달, 불법 스캔본의 유포, 대여점의 유행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타격을 받고 점차 사그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듯 나타난 게 바로 웹툰이죠. 인터넷 상에 만화가들이 개인적으로 올리던 만화들에서 시작된 웹툰은 이제는 대형 포탈인 네이버, 다음 등에서 관리하는 사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웹툰 연재 사이트에서 만화가들을 고용해 원고료를 주며 웹툰을 업로드하여 독자들의 포탈 유입을 유도하기 시작한 거죠.

 

수 년 동안 이러한 방식이 이어져 오면서 암묵적으로 굳어진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웹툰은 무료다'라는 점이었는데요. 독자 입장에서야 손해 볼 것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인식 때문에 만화라는 콘텐츠 자체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조회수나 광고가 아닌, 웹툰 콘텐츠 자체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유료화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추세인데요, 그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 포털 웹툰 부분 유료화

 

▲ 사진2 뒷부분 유료화가 완료된 다음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

 

다음, 네이버 등 웹툰 대형 포탈에서 웹툰의 부분 유료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주로 완결웹툰을 위주로 유료화가 이루어지는데요. 웹툰의 앞쪽 몇 화까지는 무료로 공개해 놓고 그 뒷부분을 보려면 현금결제를 해야 하는 식입니다. 만화 특성 상 에피소드 웹툰보다는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웹툰에 적용되었지요. 얼마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 웹툰 같은 경우 부분 유료화를 진행했음에도 여전히 높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답니다.

  

이런 부분 유료화는 포탈 사이트 뿐 아니라 웹툰 작가에게도 훨씬 나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는데요. 연재 중인 웹툰 작가는 조회수와 별점 등의 요소에 따라 인센티브가 책정되지만 일단 완결된 웹툰은 만화가의 손을 떠나게 됩니다. 즉 독자들이 아무리 웹툰을 보고 댓글을 달고 별점을 줘도 작가에게 직접 돌아가는 수익은 더 이상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완결 웹툰 부분 유료화가 진행되면 독자들의 구매로 만화가에게 일부 수익이 들어가고, 유료화 되기 전에 웹툰을 보려는 독자들에 의해 연재 중 작가의 인센티브 또한 증가하게 됩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으로 웹툰을 구매하는 독자들은 콘텐츠를 정당하게 구매했다는 뿌듯함을 가지게 되니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유료웹툰 서비스 - 레진코믹스

 

▲ 사진3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레진코믹스의 온라인 페이지 레진닷컴

 

 

파워블로거 레진과 유명 개발자 구루가 합심해서 만들어낸 레진코믹스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새로운 방식으로 웹툰을 서비스하고 있는데요. 바로 유료 기반의 독립적 만화 전문 서비스입니다. 레진코믹스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웹툰을 서비스하며, 코인이라는 어플리케이션 내 화폐를 결제하여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만들어 놓았죠.

 
레진코믹스 내의 만화는 유료 만화와 무료 연재 만화로 나뉩니다. 유료 만화는 말 그대로 코인을 결제하여 볼 수 있는 만화들이고, 무료 만화는 일반 웹툰 처럼 정해진 기간을 기다리면 한 편씩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웹툰과 차이가 있다면 한 편씩 업로드가 되는 게 아니라 이미 업로드되어 있지만 잠겨 있던 만화의 잠금이 D-day가 되면 하나씩 풀린다는 점인데요. 코인으로 결제하면 D-day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만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무료로 연재되지만 부분적인 유료 방식을 적용했다고 볼 수 있겠죠. 코인으로 구입한 만화는 '내 서재'라는 공간에 따로 저장되어 마치 구매해둔 만화책을 책장에서 꺼내 보듯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 사진4 왼쪽부터 D-day가 되면 무료로 풀리는 연재 웹툰, 유료웹툰

 

 

웹툰을 보다 가치있게 하기 위한 레진코믹스의 의도가 작가들에게 잘 어필되었는지 얻어 가스파드, 루드비코, 네온비, 유승진, 꼬마비, 등 대형 포탈에서 웹툰을 연재했던 작가들과 비록 아마추어 연재였지만 누리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작가들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색다른 레진코믹스의 시도는 독자들에게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어플리케이션 발매 48시간 만에 구글플레이 만화 부문 매출 1위를 기록했고, 5000만 이상의 누적 방문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텀블벅 후원 연재 - 마사토끼의 <맨 인 더 윈도우>

 

 

▲ 사진5 텀블벅 페이지를 통한 후원 연재중인 마사토끼의 <맨 인 더 윈도우>

 

데뷔 이전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 오고 있는 만화가이자 스토리작가 마사토끼는 지금 텀블벅을 통한 후원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만화를 연재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텀블벅이란 독립적인 문화창작자들을 위한 온라인 펀딩 플랫폼으로, 부담없는 후원을 통해 아티스트 개인에게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이트입니다.

 

일정 분량을 미리 그려서 무료로 게제한 뒤, 적절한 선에서 편당 원고료를 설정해서 텀블벅을 통해서 후원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목표액이 달성되는 순간 다음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다음화가 완성되면 역시 무료로 게제한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후원을 개시해서 다다음 화를 이어 나갑니다.

 

만화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그 수익을 자율적인 후원에 맡길 뿐 만화를 보는 것 자체는 제한하지 않는 마사토끼의 방식은 적지 않은 호응을 얻어 <맨 인 더 윈도우>는 벌써 49화까지 독자들의 후원에만 의존해 연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거대 포탈, 개인 창업자, 그리고 한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웹툰의 유료화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화를 보다 가치 있는 콘텐츠로 여길 수 있도록, 웹툰 작가들이 작품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다시 새로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앞에서 우리 독자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금전적 여유가 된다면 만화가들에게 힘을 보태 줄 수 있겠고, 여유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반사적 이익을 누리며 무료로 공개되는 웹툰만을 즐겁게 보면 되겠죠. 그렇더라도 웹툰=무료라는 생각 하에 만화라는 콘텐츠가 애초에 무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 양 착각한 채 근거 없는 비난을 일삼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유료 시장의 확대로 한국 만화 시장이 발전해서 더 재미있고 좋은 만화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합시다!


 

◎ 사진출처

- 사진1 네이버 웹툰 홈페이지

- 사진2 다음 만화속세상

- 사진3,4 레진코믹스

- 사진5 https://www.tumblbug.com/ko/miw49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