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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25 채식주의자와 맨부커상, 그리고 당신
  2. 2015.02.12 일상의 동반자 라디오, 라디오의 진화를 듣다

채식주의자와 맨부커상, 그리고 당신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6. 5. 25. 09: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그러니까 벌써 8년 전의 일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굴지의 대기업 최고경영자 인터뷰를 하러 집무실을 찾았죠. 환한 유리창 밖으로 청와대가 슬쩍 보이는 그런 멋들어진 곳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질문이 뭐였는진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기억나는 건 오로지, 답일 정도로 충격이 상당했습니다. 되짚어 보면 취미쯤을 묻는 그런 평범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한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만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죽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중략)” 


맞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이었습니다. 교과서에 등장하고,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엔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나올 정도로 그 유명한이야기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다소 투박한 경상북도 사투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구성지게 들렸습니다. 청각으로 전해지는 여름 장날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달빛 쏟아지는 메밀밭이 불쑥 머릿속을 채웠지요.

글을 외워 향유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궁금했습니다. 매년 봄이 돌아오면 지리산에 올라 지인들과 달이 뜨는 밤에 돌아가며 글을 입으로 들려준다는 답에 더는 묻질 못했습니다. 즐거운() 놀이라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게 인터뷰를 하고 돌아와 그날 밤 다시 이효석(1907~1942) 단편집을 펼쳤습니다.

◀ 만화 <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 필 무렵>을 들려줬던 올해로 71세를 맞은 신헌철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과의 만남을 떠올린 건 순전히 뉴스 때문이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힌다는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을 받았단 이야기였죠. 고백하건대 비늘 쓰인 저의 눈엔 이 책은 사실 고통스러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름답지만 음울한, 절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리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었지요. 도대체 왜, 이 여성은 삶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것도 음식을 거부하는 것으로란 지극히 단편적인 제 물음의 답은 이렇게 튀어나오더군요.



                                                                            도서 <채식주의자> ▶



‘...언닌 알고 있었어?'

대답 대신 영혜는 물었다.

'....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중략)'


-한강, <채식주의자> 중 일부 발췌

 

물과 빛만을 먹고서도 땅을 받치고 살아가는 나무가 된 여자의 이야기로 다시 책을 읽어 내려갔을 땐 묘한 희열이 일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 책은 10년 전 구상된 이야기에서 가지를 뻗어 나왔습니다. 소설가 한강 씨가 밝힌 대로라면 2002년 겨울부터 시작된 중편의 이야기가 엮여 각각의 중편과 다른 이야기가 되는 조합으로 탄생했다고 합니다. 각각 완성된 이야기들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져 또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된다니 원고지 앞에서 오랜 시간 씨름을 했을 작가의 노력과 필력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2007년에 지금처럼 한 권의 형태로 묶여 나왔던 이 책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게 된 건 조력자의 힘이 컸습니다. 벽안의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8)였습니다. 영국인인 그녀는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해 이 책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겼던 모양입니다. 그의 손에서 영어로 옮겨지지 않았던들 한국 문학계에 전례 없던 이 같은 단비가 내리긴 어려웠을 겁니다. <엄마를 부탁해>로 해외에도 이름을 알린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으로 체면을 구겼던 문단과 목말랐던 출판계가 크게 반색하고 나설 정도로 말이죠.

 

 

시상식이 열리는 영국과 바다 건너 이 땅과의 시차마저 고려한 한강 씨의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를 보낸다>는 수상 소감이 전파를 탈 즈음 전해진 다른 이야기가 있었지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시인 최영미(55)씨의 이야기였습니다. 생활보조금을 받게 될 정도로 빈궁한 시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는 일이 쉽잖은 것은 맞습니다만, 보조금을 탈 수준으로 궁핍과 다투는 시인의 모습은 또 다른 고민을 불러오더군요. 게다가 세계를 호령하는 굴지의 IT(정보기술) 공룡인 구글이 이제는 인공지능(AI)알파고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다지 않습니까.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자리마저 알파고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일까요.

 

◀ 도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웹 소설로 연봉 1억 원을 버는 작가도 있다는데, 왜 유명 시인은 밥을 굶을까요. 왜 작가들의 희비는 교차하는 것일까요스토리텔링이 가져다주는 확장성은 무한합니다. 이 스토리텔링이 돈이 되느냐 마느냐는 향유하는 자들이 얼마나 무리지어 있느냐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의 비보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있더군요. ‘그간 먹고 사는 데 정신없어 자기계발 서적이나 들춰볼 뿐 문학 서적과 담을 쌓고 지냈다는 탄식이었지요. 서점들은 앞다퉈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그의 전작들을 알리기에 나서고 있지요, 이 바람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요. 대학입시처럼 목적이 있는 글 읽기로만 우리의 문학을 봐오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것은 아닌가요. 정작 우리는 우리 글을 즐기는 방법조차 잊은 채로 말이죠. 열쇠는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웹 소설 시장이 폭증할 수 있는 스낵컬처를 만든 이가 우리인 것처럼요.

 



스토리헬퍼


기왕에 이야기에 대한 잡설을 늘어놨으니 첨언할 게 하나 있습니다. 설을 배우기 시작한 알파고와는 좀 다릅니다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참고할 만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스토리헬퍼란 소프트웨어입니다. 소위 되는 이야기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이야기의 틀을 잡을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입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혹 작가를 꿈꾸는 분들은 한 번쯤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떠하실지. 백수 시절에 커피숍을 들락거리다 끄적인 소설이 억만장자가 되게 했다는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사진출처

표지사진 <채식주의자>, 만화 <메밀꽃 필 무렵> 이미지 네이버 영화

<채식주의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미지 네이버 책

스토리헬퍼 메인 이미지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일상의 동반자 라디오, 라디오의 진화를 듣다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5. 2. 12. 11:08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 상상발전소 기사 공모전 수상작 / 김현아 -


2014년 9월 11일, <무한도전> 멤버들이 라디오 DJ로 변신했습니다. 라디오가 예전 아날로그의 한 매체라는 인식이 무색하게, 라디오 방송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라디오는 ‘소리’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청취자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디지털과 닮아있는 매체입니다. 청취자의 일상과 함께하며 미디어의 시류에 적응해 온 라디오, 오늘은 라디오의 진화에 대해 귀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사진1 경성방송국과 내부 연주 모습 

 


일제 강점기인 1927년 2월 16일, 조선총독부 산하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이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 미 군정 체제 아래 경성방송국이 서울 중앙 방송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의 상업 방송 색채가 도입되고 광고를 위한 규칙적인 ‘편성’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정시에 방송이 시작했고, 15분마다 ‘KBS’라는 콜사인이 나왔습니다. 

 

방송의 규칙성은 사람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실제로 라디오가 없는 시골에서는 앰프로 라디오 방송을 함께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특정 라디오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편성표를 보고 방송이 시작하는 시각에 맞추어 라디오를 켰습니다. 규칙적인 청취습관이 형성된 것입니다. 라디오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편성표에 적힌 같은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바야흐로 라디오를 통해 근대적인 시간, 대중적인 시간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사진2 영화 <쎄시봉>, <써니>의 영화 스틸컷

(영화를 통해 70년대의 음악다방 문화와 라디오 청취습관을 엿볼 수 있다)



1964년, 서울 FM 방송국이 국내 최초 첫 FM 방송을 도입합니다(이후 1966년, 동양 TBC에 합병). 그러나 1970년대 흑백 TV가 보급되면서, 라디오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라디오는 ‘대중’을 위한 매체가 아닌 ‘리스너(listener)’를 위한 매체로 적응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유입된 미국 로큰롤·히피 문화로 인해 청년들은 음악다방에서 빈번히 만났습니다. 그곳에는 항상 음악 DJ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DJ 기반의 다방문화가 라디오에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DJ로는 최초의 라디오 DJ인 최동욱,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이종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황인용 등이 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각종 팝 음악과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에 나온 팝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하고는 했습니다. 1990년대 CD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음악 소개 기능이 줄어들 때까지, 라디오는 음악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교본이었습니다.



 

라디오는 소리로 전달되기에 청취자가 일하면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핵심 프로그램을 출, 퇴근 시간과 정오 시간에 편성하여 운전하는 샐러리맨과 가사 일을 하는 주부를 공략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라디오는 CD, MP3에게 ‘리스너’를 뺏겼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이를 인정하고 또 한 번 적응을 택했습니다. 이번에는 라디오가 인터넷을 품으며 1996년에 MBC 라디오가 최초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KBS 라디오가 인터넷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 서비스를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 영상1 TV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한 <두시 탈출 컬투쇼>


 

SBS 라디오 <두시 탈출 컬투쇼>는 SBS funE 채널을 통해 TV 프로그램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그리고 MBC 라디오 <심심타파>는 아이돌 DJ인 신동(슈퍼주니어)과 보이는 라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라디오 코너에 TV 예능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했습니다. 또한, 이를 별도로 녹화해 유튜브에 업로드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영상에 익숙한 어린 청취자들에게 라디오의 매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팟캐스트로 라디오의 ‘편성’이 무의미해졌습니다. 청취자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맞는 라디오를 검색해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다운받아 듣게 되었습니다. 기존 올드미디어는 이러한 변화에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는 달랐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일찍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행하고 편성을 청취자와 나누고 있었습니다. 

 

탄탄한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라디오는 빠른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 구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어플을 통해 청취자는 라디오와 훨씬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어플, 인터넷, 팟캐스트 등 라디오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청취자와 만나고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입니다. 



▲ 사진3 방송사의 라디오 어플리케이션 (왼쪽부터 SBS 라디오 어플 고릴라, KBS 라디오 어플 콩) 



그렇다면 2014년 눈에 띄는 라디오의 시도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선 라디오 특유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생방송의 강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KBS라디오 <가요광장>은 주중-주말 2 DJ 체제를 도입, 모든 방송을 라이브로 진행하였습니다. 경기방송은 <DJ 처리와 함께 아자아자 시즌2>에서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6시간에 걸쳐 생방송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공개방송을 청취자를 위한 서비스 차원이 아닌 공연의 수준까지 높이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지난 9월 MBC라디오 <정준영의 심심타파>에서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밤샘 공개방송을 마련했었습니다. 연말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함께 4시간 연속 공개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날 4시간에 걸친 공개방송은 공연의 밀도를 높여주었습니다.

 

EBS 라디오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란 프로젝트를 통해 음성이 주는 ‘상상력’에 집중했습니다. 배우들이 한국 근‧현대 문학을 낭독하고, 이를 ‘오디오북’으로 판매하는 OSMU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라디오는 본인의 정체성을 공고화하면서 꾸준히 변화했습니다. 라디오는 그 어떤 올드미디어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한 매체입니다. 지금까지 라디오가 정적이라고 생각하여 멀리하셨다면, 오늘 크게 라디오를 켜보는 게 어떨까요?



ⓒ 사진 출처

- 표지 자체제작

- 사진1 정보통신산업진흥원

- 사진2 제이필름 무브픽쳐스, 토일렛 픽쳐스

- 사진3 SBS, KBS

 

ⓒ 영상 출처
- 영상1 SBS funE 유튜브 공식채널

 

ⓒ 참고자료

- <라디오 혁명>(김은규,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3)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