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히트작은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한국 시장 안에서도
잘 통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할 것 같습니다.

 

 

거대해진 한국 웹툰 사업에서 해외 시장 진출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기존의 만화 마니아층이 아닌 일반 대중까지 웹툰과 웹소설을 보는 환경이 만들어지며 유료 시장이 확장되었지만, 한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구울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한정적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빠르게 몸집을 불려온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등 국내 유력 플랫폼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건 단순히 도전이나 욕심의 영역이 아닙니다. 내수 시장의 한계 앞에서 이것은 차라리 미래의 생존을 위한 문제에 가까운데요. 2013년 창립 당시부터 글로벌 사업을 주요 업무로 규정하고 꾸준히 사업적 노하우를 쌓아온 만화 제작사 재담미디어의 글로벌 업무 총괄자인 노은정 이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 그래서입니다.

세계 시장이라는 것이 아직 구체적인 숙제가 아니었던 시절부터 그와 재담미디어가 그렸던 비전그리고 실질적인 어려움과 극복의 경험에 대해그와의 다음 인터뷰엔 거대한 글로벌 시장을 가리키는 장밋빛 전망이 없습니다. 그보단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조금씩 디딤돌을 쌓아온, 화려하진 않지만, 꽤 단단하고 조심스러운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글로벌 사업에 대해 고민하거나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건 바로 이 단단한 디딤돌일 것입니다. 오늘은 재담미디어 노은정 이사와 글로벌 웹툰 시장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재담미디어 내에서 본인을 비롯한 임원들의 업무 분담이 어떻게 되나.

 

 

황남용 대표가 회사 내 모든 업무를 총괄하면서 기획제작영상화, IP 관리시너지팀 등을 관리하고 있고김형남 이사가 기획제작팀에서 재담미디어의 작품 제작 총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글로벌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데재담미디어의 웹툰을 수출하는 건과 해외에서 작품을 가져오는 것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경영 관리도 일부 담당하고 있고요약하면 대표가 전체 사업을 보고 있으면 나를 포함한 임원 둘이서 실무를 나눠서 맡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현재와 비교하면 훨씬 어려운 환경이었을 것 같습니다.

 

2013년에는 작품을 수출하려면 웹툰이라는 개념부터 설명해야 했습니다컷을 잘라서 세로로 배열해 보는 만화라고 설명하면그쪽에선 페이지 만화는 없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페이지 작업을 한 이후에 스크롤 편집을 하는 작가도 있고그 반대로 하는 작가도 있다는 식으로 다시 설명해줘야 했습니다그쪽은 스크롤 뷰 개념이나 플랫폼이 없으니이미 스크롤 방식으로 편집된 웹툰도 스크롤 버전이 아닌 페이지 버전으로 만들어서 전자 출판 서비스 형태의 단행본으로 판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직원들에게 가끔 그럽니다지금은 정말 편하게 수출하는 거라고이젠 해외 바이어들도 다 웹툰이라는 개념을 알고 대표작들을 아는 상황에서 상담을 하니까요.

 

 

Q. 라인웹툰처럼 해외로 진출한 국내 플랫폼이 늘어난 것도 도움이 됐을까요?

 

아직 라인웹툰을 제외하면 해외 진출 플랫폼이 많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분명 라인웹툰의 등장 이후앞서 말한 것처럼 웹툰이라는 개념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런 전체적인 측면에선 도움이 된 게 사실입니다다만 제작자 입장에선 글로벌 사업의 다각화가 필요한데작품이 정해진 플랫폼에서만 서비스될 때 최상의 매출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가령 네이버웹툰에 서비스되는 작품이면 라인웹툰으로만 서비스해야 하는 문제들우선은 플랫폼이 성장하고 발전할수록 제작사에도 많은 기회가 생기리라 기대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Q. 최근 베이징 윈라이우문화미디어유한공사와 MOU를 맺기도 했죠?

 

 

윈라이우는 판권 판매 대행을 하는 업체입니다중국 시장은 업체가 정말 많아서 우리가 일일이 미팅을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 면이 있는데윈라이우문화미디어유한공사의 경우 투명하게 온라인에 판권 판매 마켓을 열어 놓은 곳이라 믿을만하겠다 싶어 세 작품을 계약했습니다.

 

 

Q. 중국 시장이라고 하면 저작권 문제를 비롯해 여러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두 가지 편견이 있습니다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고, 정산이 안된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저희가 지금까지 거래해온 업체의 경우 이런 문제는 거의 없었습니다. 극히 드물게 한두 군데 문제가 있었지만그것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가 처음 중국과 계약을 했던 게 재담미디어가 생기기 전인 2009, 2010년이었는데 이 당시에도 계약이 투명하지 않다기보다는 사업적인 개념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령 뭔가 미심쩍어서 물어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플랫폼과 직접 계약인 줄 알았는데지금 이야기하는 업체가 플랫폼과 직접 계약된 업체가 아니라거나계속 확인할수록 양파처럼 새로운 사실이 나오는 것이죠그러다 보니 그쪽에서 사기를 치는 건 아니더라도 복잡한 경우가 많고 불안감이 있었는데요즘은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하는 일도 있고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가령 해적판이 나오면 플랫폼에서 먼저 공격적인 대응을 하기도 합니다.

 

 

 

Q. 큰 문제는 아니더라도 글로벌 사업 특유의 애로사항은 없나요?

 

▲ 이미지 : Welcon 재담미디어

 

만화 사업 거래 규모가 아직 영상 사업보단 작다 보니 조금 소홀히 취급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피드백이 느린 경우에도 답답하고요하지만 외 사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에서 지원을 잘해줘서 상당히 편하게 일하는 편입니다우리가 동남아시아처럼 좀 작은 시장 진출을 위해 여러 번 출장을 가는 건 좀 부담이 되는데업체들을 한자리에 모아주니 행사에 참여하면 거의 모든업체를 만나 미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수월한 편입니다.

 

 

 

Q. 문화적 차이에 의한 어려움도 있나요?

 

국가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요소들이 있습니다인도네시아는 종교적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거나중국은 아무래도 심의가 강한 편이라 소재에서 한계가 있습니다가령 국가에서 학원 폭력은 절대 안 된다없다이런 입장이니 한국에서 인기 있는 학원 액션물이 진출하기 어렵습니다. 피가 튀면 안 된다고도 하고. BL(Boy’s Love)도 BL인 걸 숨기고 서비스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정서적인 교감까지만 그리고물리적으로는 손도 잡으면 안 됩니다잘 알려진 것처럼 역사 왜곡 같은 것에 대해서도 민감하고좀 의외의 경험도 있습니다대학교 재단 비리를 캐기 위해 남자 기자가 여장을 하고 여대에 잠입하는 설정의 작품을 서비스했었는데학교에 비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렸습니다사실 이야기 초반의 짧은 설정일 뿐인데도 결국 1권을 서비스하는 중에 작품을 내려야 했습니다.

 

 

 

Q. 반대로 국가별로 원하는 장르, 매출이 잘 나오는 장르가 따로 있을까요?

분명히 차이는 있는데, 로맨스 장르는 어느 나라에서나 기본적으로 잘 됩니다아무래도 소재에 있어 국가별 편차랄 게 별로 없습니다어느 나라에나 이성간 로맨스에 대한 문화는 공통으로 존재하고해당 장르에 대한 독자층도 이미 존재하니까요그 외 장르의 경우스릴러나 호러 장르는 태국이나 미국 같은 국가에서 잘 되는 편입니다.

 

 

 

Q. 로맨스가 강세라고 했는데 한국 시장에서 로맨스 장르가 잘 되는 건 30~40대 여성 독자 매출이 높아서인데요. 해외 유료 시장도 같은 맥락일까요?

 

저희 작품 중 <케세라세라>는 타깃 연령이 높은 로맨스 장르인데도 이 작품이 초기에 인도네시아에서 매출이 잘 나왔고 일본에서도 시장 반응이 좋았습니다그런 면에선 분명히 해당 연령대 독자들의 유료 매출 지분이 높은 것 같습니다반면 중국의 경우엔 웹툰 유저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게 7~15세 독자들이더라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유료 결제가 잘 안 나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Q. 작품의 국내 인기가 해외에서도 비례하는 것 같나요?

 

대부분 그렇습니다앞서 말한 <케세라세라>도 그랬지만로맨스나 판타지 장르 국내 인기작은 높은 확률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물론 너무 한국의 일상에 천착한 공감 만화라거나한국어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유희 같은 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윤태호 작가님의 <미생같은 경우도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걸작이지만특정 지역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문화를 이질적으로 느껴 잘 안 된다고도 합니다하지만 기본적으론 한국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굳이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 작품을 프로듀싱 하는 경우는 없나요?

 

▲ 이미지 : 박성우, 최해웅 작가의 글로벌프로젝트 <파동> 공식 이미지 ⓒ재담미디어

재담미디어 초기에 박성우 작가님의 <파동>을 전략적으로 해외 시장에서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박성우 작가님은 워낙에 일본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작가였고 마침 스토리도 나라나 문화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구성이었습니다그래서 대사도 일본에서 읽기 좋게 만드는 식으로 준비해서 완전 동시는 아니지만한국일본중국미국에서 연재했습니다이런 식의 글로벌 기획이 있긴 했지만 모든 작품에 대해 글로벌 히트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진 않습니다그보단 해외 시장에서 통할 것 같은 소재나 스토리일 때 회의를 통해 해당 요소를 좀 더 발전시키는 식으로 경쟁력을 강화합니다우리가 잘하던 걸 잘 유지하면서 해외 시장도 함께 고려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Q. 소속 작가들이 글로벌 진출에 욕심을 낼 수도 있지 않나요.

 

해외에서도 수익이 나온다는 걸 아는 작가님들이 처음부터 그것까지 고려한 기획을 하는 때도 있습니다.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가 중국에서 서비스됐을 때, 어떻게 해야 본인도 잘 될 수 있을지 몰라 질문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외 시장만을 생각하다가 자기 스타일까지 흔들릴 수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잘 조언하려 합니다.

가령 액션이어야 수출이 잘 된다고 하니 안 하던 액션을 하겠노라고 하면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러지 말라고 잘 설득합니다. 그냥 하시던 거 잘 하시면 된다고사실 이건 글로벌 사업과 별개로, 제작사가 작가를 관리하는 문제라고 봅니다국내 시장에서 BL이 잘 된다고 이성애 로맨스를 그리던 작가가 BL을 시도하며 괜히 흔들리면 안 되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작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 과정 자체가 우리 일이니까요.

 

 

 

Q. 재담미디어가 글로벌 사업을 하는 것도, 작가들이 관심을 두는 것도, 결국 국내 웹툰 시장 이상의 파이를 꿈꾸기 때문인데, 그런 맥락에서 웹툰 IP를 이용한 영상 시장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미지 : 드라마 제작이 확정된 (좌) 유노작가의 <고인의 명복>, (우) 지원 작가의 <85년생> ⓒ재담미디어

 

사실 재작년에 영상 자체 제작을 위한 시도를 해봤는데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웃음영상 팀을 내부에 들이는 방식으로 사업을 세팅하다가우리가 해당 분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걸 뼈아프게 느끼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대신 그 과정에서 많은 업체를 만나면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던 건 큰 수확인데요. 덕분에 웹툰 IP 판매도 좀 더 수월해진 면이 있습니다.

현재로선 웹툰 제작에 충실하고, 2차 판권 계약에서 드라마 판권 지분을 일부 가져오는 형태 같은 걸 고려하고 있습니다조금 소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원천 콘텐츠로서의 웹툰 IP를 우리가 아주 잘 만들어서 영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 직접 찾아오게 하자는 게 우리의 생각입니다실제로 앞서 말한 중국의 윈라이우도 먼저 우리에게 접근한 케이스다웹툰을 찾는데 어디로 가면 좋겠냐고 물으면 재담미디어로 가보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때도 있습니다.

 

 

 

Q. 모든 이야기를 종합하면, 재담미디어는 섣불리 판을 키우기보단 잘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제가 담당하는 쪽은 그런데대표님은 좀 더 의욕적으로 일을 확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영상 미디어도 직접 제작하고 싶고글로벌 히트작도 만들고 싶어하죠 (웃음기본적으로 대표가 다양한 사업적 아이디어를 내고 비전을 제시하면 저와 김형남 이사가 그걸 좇아가면서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논의하고 이해가 안 되면 문제를 제기하며 일을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굴러온 것 같습니다.

새롭게 하는 일도 있고리스크 관리를 위해 빠르게 접는 일도 있고가령 재담미디어를 설립할 땐 우리 작품이 많이 쌓이면 그 작품들로 아예 웹툰 플랫폼을 만들어보자는 로드맵도 있었습니다그런데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일의 규모도 너무 컸고수많은 중소 웹툰 플랫폼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걸 보니 이건 건드려선 안 될 일 같더라그런 식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편입니다.

 

Q. 그런 식의 파트너십은 함께 오래 일하다 보니 가지게 된 걸까요?

 

 

어쩌다 보니 오래 일하게 됐습니다. 황남용 대표와 2009년부터 함께 일했으니 벌써 10년입니다. 저는 원래 일본어 통역을 했었는데 2006, 2007년에 일본에서는 폴더폰으로 만화 컷을 다 잘라서 컷 단위로 보는 컷뷰 서비스가 붐이었습니다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그걸 벤치마킹하며 일본 쪽과 미팅했고 그때 통역 일을 많이 하다가 그 업체에 취직까지 했습니다작품을 수입해오면 번역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 업체에서 온라인 만화 잡지 <만끽>도 제작했는데, 그 당시 황남용 대표가 <만끽>에서 일하다가 독립했습니다. 이후 2009년에 다른 회사를 차리며 함께하자고 제안해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Q. 앞서 해외 시장의 반응 변화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폴더폰의 컷툰이 스마트폰의 웹툰으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제가 2007년 처음 만화 업계에 들어올 때만 해도 웹툰 연재는 안 하겠다는 작가들이 다수였으니까요내 만화가 왜 무료냐이런 반응이었습니다하지만 웹툰 시장이 성장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했습니다. 저는 일본 시장을 많이 보는데 저쪽에서 컷뷰 만화가 인기가 있는 것처럼인터넷으로 만화를 보는 일이 활성화될 거라고 봤습니다다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Q. 시장에 대한 예측과 별개로 웹툰에 호감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있을까요?

귀귀 작가의 <정열맨> 같은 젊은 감각의 개그 만화들. 하게 누워서 킬링 타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매우 큰 장점으로 느껴졌습니다.

 

 

 

Q. 과거의 만화와는 다른 콘텐츠, 다른 시장이 생긴 건데 이것이 국제적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나요?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만화 보니?”라고 물을 땐 부정적인 의미가 숨어 있지 않았나요공부 안 하냐혹은 애처럼 만화나 보느냐같은그런데 요즘 웹툰 보니?”라는 말에는 그런 비하적인 뉘앙스가 없는 것 같습니다.

노은정 이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 느낀 점은 그만큼 웹툰이라는 매체가 좋은 대접을 받고 있고 원천 콘텐츠로서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작가들 역시 스스로 지위 향상이 됐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 경향이 해외로도 이어지면서 웹툰이 망가와는 다른 시장을 형성하고 유저를 모으고 있습니다접근도 쉽고그런 면에서 앞으로 해외에서도 원천 스토리로서 인기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근우  최민호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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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그냥 네이버 검색 결과나 제 책이 팔리는 서점에 '베스트셀러딱지가 붙어있다는 것그리고 매달 수백수천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서점의 매대 한쪽에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초판 3천 부가 다 나가면 선방, 5천 부 팔리면 베스트셀러라는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3만 부 판매가 지니는 의미는 엄청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글쎄, 정작 저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 겸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정말진짜로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심지어 인세라는 이름으로 꽤 큰 액수가 통장에 찍혀도 그저 아이번 달도 감사합니다하고 석 달 치 월급을 한꺼번에 몰아받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석 달 치라고 한 이유는인세의 정산이 3개월마다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오히려 ‘베스트셀러’라는 라벨 때문에 나의 마음 한쪽에는 늘 기쁨보다는 부채감이 존재합니다.

 

▲ 이미지 : 책 <썅년의 미학> 이미지 ⓒYES24 전자서점

저의 책 <썅년의 미학>은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쓰고 그린 저의 첫 만화 에세이 단행본입니다. 여성이 여성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페미니즘이지만, 혹은 페미니즘이기에 저는 마케팅을 할 당시에 담당 부서에 나의 책이 ‘페미니즘’ 코너가 아닌 ‘에세이’코너에 놓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좀 더 쉽게 페미니즘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 속에는 제가 겪은 일도 있고 제 주위의 여성이 겪은 일도 있고혹은 우리 모두 겪었으나 그동안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최근 발매된 해당 책의 2권 격인 <썅년의 미학 플러스>의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저는 첫 책이 발매된 지 1년이 넘는 시점에도 서점의 벽장 자리가 아닌 매대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작가로서는 너무도 기쁘지만, 여성으로서는 아직도 이 책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다가 끝내는 슬퍼지는 경험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책이 나오고 1년쯤 지나면 제 책은 다시는 필요 없게 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즈음 되면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당연해서 제가 쓴 이야기는 그저 고루한 이야기 취급을 받기를 바란다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물론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저의 책을 읽고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지만아직 그 길은 요원하기만 합니다게다가 그 와중에 제가 여성의 이야기를 ‘팔아’ ‘돈벌이’로 이용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라는 의견까지 접하고 나니 ‘혹시 정말 내가 뭔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저와는 다른그러니까 남자 작가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 서사가 아니어도 그들은 얼마든지 미소녀 그림을, 미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썼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자인 저는 여성의 이야기를 쓰면 안 되는걸까요?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 제 작품 역시 허구와 사실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수많은 창작물 중 하나일 뿐인데 말입니다.

여성 창작자아니 여성의 진정성은 왜 늘 의심받을까요여성에게만 그 부채감을 느끼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지 않은가요물론늘 겸손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할 것입니다. 저는 여타 다른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과는 달리 작가라는 저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이 없는 편입니다. 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또 자신을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라서가 아니라 작가라는 직업과 저의 작업물이 저를 표현하는 한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으로부터는 저의 그런 태도가 속된 말로 나댄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굳이 여성 작가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남성 작가와 비교하여 여성 작가는 좀처럼 ‘나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재,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 만화가를 단 한 명만 떠올려 볼까요? 아마 매우, 매우 떠올리기 힘들 것입니다. 다른 장르로 옮겨가야 간신히 에세이 분야에서 활동 중인 곽정은 작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남자 작가는 굳이 다른 장르로 옮겨갈 필요도 없이얼마 전에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CF를 촬영한 주호민이말년 작가라든가대형 방송사의 황금 시간대 예능에 고정 출연 중인 기안84 작가가 있지 않던가요왜일까요여성 작가들이남자 작가들만큼 소위 말하는 가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요.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제 주위만 해도 끼도 재능도 열정도 넘치는 여성 작가가 한가득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남성 작가만큼 미디어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사회가 여성 작가 essay 혹은 여성에게만 들이대지는 잣대가 유난히 가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너무도 쉽게 재단당합니다인스타그램에 겨우 댓글 하나 친절하게 달지 않았다고 눈물의 사과를 해야 했던 여자 배우라든가평소에 화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필 사과문을 올려야 했던 여자 아이돌이라든가자신이 선택하여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먹어야 했던 여자 연예인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아주 조금만 실수를 해도 혹은 실수조차 하지 않아도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상황에서 대체 어느 누가, 어떤 여성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 이미지 : 저스툰코미코 <썅년의 미학> 작품 페이지 이미지 ⓒ저스툰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베스트셀러라는 스티커 역시 저에게 있어서는 상처 같은 것입니다. 너무도 커다래서 모두가 볼 수 있고 평생 흉터로 남아 안고 가야만 하는 상처. 과거의 저라면 그 흉터를 가리는 것에 급급했을 것입니다. 운이 좋았죠, 다른 사람 덕분이죠, 라고 말하며 나를 감추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아무리 스스로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대해 실감이 나지 않더라도 누군가 그것에 대해 언급하거나 칭찬의 말을 하면 이제는 더 ‘빼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죠? 대단하죠? 저 멋있죠, 잘났죠? 못하는 게 대체 뭐야~!” 하면서 더 너스레를 떱니다.

일부러 더 나대고, 더 자랑스러워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겸손하지 않고, 나서고, 나의 입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앞으로 만화가를 포함한 모든 여성 창작자들에게도 길을 열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는 좀 더 자랑할 생각입니다. 있는 힘껏 나댈 생각입니다. 제 책의 주제처럼 어차피 여성인 제가 내 마음대로 했을 때 “썅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차라리 자신을 “썅년!”이라고 칭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습니다.

분명 언젠가는 제 만화가, 글이 정말로 ‘낡은’ 취급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수십만 부가 팔렸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역시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 소리를 듣지 않던가요. 하지만 그 메시지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책이 되었고 또 팔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저의 책 역시 그렇다고 믿습니다. 저의 책은, 글은, 만화는, 지금 필요합니다.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여성인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쓰고 그릴 것입니다. 

 


 민서영 <썅년의 미학>을 쓰고 그린 작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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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오늘날 무협 소설은 여러 장르문학 중에서도 신규 독자의 유입이 가장 더딘 분야로 분류됩니다흔히 무협 소설을 서구 판타지 장르에 비견해 동양 판타지라 일컫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어쩐지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손쉬운 비유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정통 판타지 장르와 명확한 대구를 이루면서 무협 소설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무협지에는 정통 판타지처럼 특정한 세계가 존재합니다무림(武林혹은 강호(江湖)라 불리는 중원 대륙이 무대이며이곳은 늘 무()를 수단으로 협()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의 각축장이 됩니다다양한 파벌이 이합집산(헤어졌다가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짐)하는 문파의 개념은 작품마다 달라지기도 하지만대체로 구대문파를 중심으로 한 정파와 그에 대항하는 사파의 대립무공을 얻고 단련하는 일련의 체계나 과정은 거의 모든 무협지의 공통 근간을 이룹니다. 물론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개념들이 각 작품의 개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기존 정통 무협지의 배경과 설정을 이해하지 않고는 작품의 재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주로 젊은 무협 소설 독자들이 퓨전 무협을 애독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코미디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굳이 중원협이라는 무협의 3요소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정파와 사파가 모종의 이유로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유로운 변주나아가 장르에 대한 기만까지 가능해집니다중국 작가 초신우의 만화 <무모협지>는 정통 무협과는 무관하게 무림이라는 이()세계를 우리 세계와 합일시키는 코미디입니다쉽게 말해 무협지의 애독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대 독자의 눈으로 바라본 무협 세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목야방의 방주 풍성모는 절정의 무공을 지녔음에도 외모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된 탓에 나름의 고충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무공이 최고인 무협 세계가 아니던가요. 그래서 풍성모의 고민도 곧 색다른 걱정거리로 치환됩니다예컨대 그는 거구에 대머리라는 외모 때문에 외부인들에게 방주가 아닌 2인자때로는 일개 방파원으로 오해받기 일쑤입니다부방주 당가위가 무림인에게 외모는 중요치 않다며 그에게 진정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한들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습니다특유의 아름다운 은발을 찰랑거리며 말하니 무슨 위로가 될까요이윽고 방주의 고민에 동참하고자 방파원들 모두 삭발을 했더니 정파 무림인들은 그 속도 모르고 이들을 향해 괘씸하다 말합니다.

 

"

너처럼 피를 묻힌 놈도 스님이 된다니.

"

 

코미디의 기본이 의외성이라면 <무모협지>에는 상식을 깨는 캐릭터예상 외의 전개엉뚱한 상황완전히 상반된 요소들의 결합이라는 코미디의 기본 요소들로 그득합니다. 캐릭터들은 온통 무협이라는 상식을 깨는 데 집중합니다. 발모제를 찾아 헤매는 풍성모만이 아니라 다른 무협인의 실상 또한 늘 예상 밖입니다예컨대 대외적으로는 마교(魔敎)’ 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생활고에 허덕이질 않나평생 무공에만 힘쓴 나머지 소양이 부족한 이는 늦은 나이에 학업에 매진 중입니다.

무림인이라더니 정작 중요한 일은 관아즉 공권력에 이양하기도 하며호기롭게 술을 마신 무인들이 학업을 위해 일찍 술자리를 파하며 더치페이를 합니다엉뚱한 상황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여자만 있는 흑락당에 잠입한 소림파 밀정 여초희의 외모는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무척 도드라짐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남성의 듬직한 외모가 아니라 남자라 생리 휴가를 쓸 필요 없는 눈에 띄는 근면함이었습니다또한마교 자석당의 당주 돈모는 강호화타라는 명의로 일컬어지는데 사실 그의 특기는 심리치료입니다. 무림 세계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심리치료를 언급하는 것부터가 황당하지만 현재는 마교주의 조급증을 자폐증으로 바꿔놓은 탓에 숙청대상의 신세가 됐습니다.

이렇듯 무림인을 현대의 생활인처럼 묘사한 듯한 기이한 상황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꽤 특별한 웃음을 선사하지만 <무모협지>는 기어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이를 위해 여타의 개그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과장된 표정이나 동작은 철저히 배제합니다. 시종 진지한 표정과 행동으로 우선 무림 세계를 견고히 구축하는 것이 <무모협지>가 추구하는 개그의 발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곧 무림인답다 싶은 진지한 언행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수려한 그림은 여기에 더더욱 가파른 간극을 더하기 마련입니다.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점차 무협이라는 장르를 전복하는 것으로 발을 넓히는 중입니다. 예컨대 무림인으로 행세만 한다고 온전히 무림인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파를 운영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고 그래서 다른 한편에서는 무협과는 무관한 사업에도 힘쓸 수밖에 없습니다게다가 그 사업이라는 것도 네 칸짜리 훠궈 냄비를 앞세운 요식업입니다. 무림인이라고 해서 사기꾼의 얄팍한 술수에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행인들에게 통행세를 뜯는 악당들을 혼내주기는커녕 오히려 순순히 통행세를 내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직접 길도 내고 나무도 심어서 통행세를 받겠다는데 어쩌겠나요? 모두 무협이라는 장르의 눈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본 상황 일색입니다.

단지 대머리 놀리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현재 풍성모만이 아니라 여러 인물과 장소상황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무협 장르의 상식과 설정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뒤집고 비트는 중입니다물론 대머리는 여전히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개그 코드 중 하나입니다. 발모제를 향한 풍성모의 집착이 계속되는 한 이것을 쉽사리 놓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탈모를 중심에 둔 외모 비하 개그는 상대적으로 금세 희석되는 편입니다외모에 대한 편견을 통해 갖가지 착각과 오해로 파급되는 개그도 재미있긴 합니다그러나 무엇보다 작품의 핵심은 캐릭터 모두를 진지한 무림인으로 두고도 처음부터 이들을 일반적인 강호의 틈바구니에조차 놔두지 않으려는 강렬한 악취미에서 찾는 게 옳을 것입니다. 이야기 전체 구조는 길게 가져가는 가운데서도 한 회마다 단락을 짓는 완결형 에피소드를 지향하기에 각 캐릭터의 포지션마다 무협 장르의 요소요소를 뒤튼 재기는 더욱 돋보입니다. 진지한 무림인들로 판을 벌여놓았으니 하나둘 만남을 주선하고 계속해서 세를 확장하는 것만으로도 무협이라는 견고한 세계를 전복하기엔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조금은 괴상하고 너무나도 진지한 강호인들이 꽤 생경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입니다.

 

 이종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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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그야말로 콘텐츠 레드오션입니다지상파 3사가 전부였던 시대에서 종편케이블 등 채널의 확장을 넘어 플랫폼의 경계까지 모호해졌습니다전파를 타고 수신해야만 방송이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본방 사수를 하기 위해 TV 앞에 앉는다는 말도 옛말이 됐습니다.

2019년의 시청자들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 중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자신이 보고 싶을 때 시청합니다지상파케이블 드라마도 시청률에서 맥을 못 추는 가운데 네이버 V오리지널 웹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5천만 뷰 돌파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습니다이유는 무엇일까요?

 

 

 

■ 성공적 타깃 콘텐츠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철저히 10대를 타깃으로 설정했고 고정 시청자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요즘 10대들이 한번쯤 고민해보고 상상해볼 법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자칫 학교 폭력을 연상시킬 수 있는 제목을 로맨스로 풀어내 10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좌) 늑대의 유혹1 YES24, (중) 도레미파솔라시도 교보문고, (우) 다섯개의별 교보문고

 

2019년 버전 귀여니(인터넷 소설 붐을 일으킨 작가소설의 웹드라마 판인 셈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그 시절 수많은 학생들이 웹소설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다섯 개의 별등을 읽었듯 2019년의 10대들은 타깃층이 확실한 웹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현실인 듯 판타지인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학교 배경 로맨스물은 10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오글거리면서도 보게 만드는 중독성은 하이틴 웹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입니다. 현실과 비슷한 배경에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 설정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선사했고 유치함이 묻어난 대사들은 손발이 오글거림에도 중도 포기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오글거려서 못 보겠다던 <일진에게 찍혔을 때시청자들은 어느새 지현호(강율서주호(윤준원파로 나뉘어 김연두(이은재)의 러브라인을 응원합니다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유치함뻔한 내용인 듯 하지만 궁금해지는 전개는 하이틴 로맨스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에피소드 형식 콘텐츠

 

짧은 에피소드 형식 또한 10대 시청자들에게 통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휴대폰으로 각종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일상인 10대들에게 한 회 당 기본 60길게는 90분 방송 분량의 드라마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학교학원과외 등 쉴 틈 없이 바쁜 10대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의 시간을 할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기본 16부작 드라마를 가만히 시청하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왼쪽부터 지현호(강율), 서주호(윤준원) 콬TV YouTube

 

반면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한 회 당 10분 내외 분량으로 언제어디서든 쉽게 클릭하도록 유도합니다등하교 때수업 중 쉬는 시간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시간잠들기 전 10분 등을 이용해 시청할 수 있도록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갑니다이는 드라마를 시청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영상을 본다는 느낌을 줍니다물리적 시간도마음의 여유도 많지 않은 10대들에게 주 2회 10분 내외 분량의 드라마는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인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 콬TV YouTube 캡처

 

짧은 분량 덕에 공유도 쉬워졌습니다누군가에게 어떤 콘텐츠를 소개하거나 추천할 때 60분 분량의 본편을 들이미는 것이 나을까요예고편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나을까요상대의 시청 의지가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긴 분량을 던져준다면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그에 반해 10분 분량의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편입니다일반적인 드라마 예고편 분량이면 1회를 시청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특히 SNS 공유가 활발한 10대들에게는 손쉬운 접근 방법입니다.

 

 

 

■ 게임의 실사화

 

▲ 이미지 출처 : 일진에게 찍혔을 때 Google play 캡처

<일진에게 찍혔을 때>와 타 웹드라마가 다른 점은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동명의 게임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지난 2016년 제작된 시뮬레이션 게임출시 이후 누적 다운로드 수 200만 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껏 웹툰웹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작품은 많았지만 게임을 드라마로 제작한 작품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게임을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신선함을 줬습니다.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원작이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점을 이용해 각 캐릭터의 매력을 확고히 했고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개연성 있는 서사를 만들었습니다.
 


콘텐츠 총괄 와이낫미디어 측은 스토리 게임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과 타이틀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게임과 다르게 장인물들의 성장 스토리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며 주인공들이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주목해 달라고 관전 포인트를 밝혔습니다.

 

요즘은 인소말고 웹드라마라며? [일진에게 찍혔을 때] Teaser, 7월 30일 6시

 

그 결과 게임 속 등장인물들과 싱크로율 높은 캐릭터가 실사로 탄생했습니다. 신인 배우 이은재, 강율, 윤준원은 각각 김연두, 지현호, 서주호로 분해 게임 속 2D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게임으로 즐기던 이용자들은 웹드라마로 상상이 구현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고 <일진에게 찍혔을 때>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을 게임으로 조종하는 부가적인 콘텐츠를 즐기게 됐습니다.
 


<일진에게 찍혔을 때>가 콘텐츠 레드오션 속 5천만 뷰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타깃에 걸맞은 주제와 형식타 웹드라마와의 차별화 3박자를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게임의 성공적인 드라마화는 플랫폼의 경계를 더욱 허물고, 콘텐츠 시장을 훨씬 넓히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일진에게 찍혔을 때>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게임 원작 드라마 제작의 발판이 되지 않을까요?

 

 

 

 박수인(뉴스엔 기자)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방송트렌드&인사이트 20호"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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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

 

 

 

웹툰 작가로 산다는 것과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일까요? 건초염, 습관성 탈골, 불면증... 웹툰 작가들은 '연재'와' 마감'을 반복하는 고된 작업이 끊임없는데요.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반면에 건강이라는 아주 중요한 구간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웹툰 작가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이종범 작가'의 생각을 들어 보았는데요.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에 건강의 8할을 바치고 이미 망친 건강을 되찾고자 고군분투 중인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 이종범 작가는 대체 왜, 이 글을 쓰게 됐는가

 

웹툰 작가의 건강관리라는 주제로 글을 쓸 작가를 정하는 편집회의에서 제가 지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한 분이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종범 작가 안 건강한데 많이 안 좋은데.” 저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열심히 건강을 지켜내는 작가로 자주 오해받는데요. 이러한 오해를 푸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운동 왕이었던 그는 왜, 건강을 되찾고 싶은가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하드웨어는 튼튼한 편이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든 것을 만화로 습득한 저는 자연스럽게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의 <슬램덩크>의 이끌림을 받아 농구 소년이 되었습니다해적판을 구해서 본 코야마 유우의 <스프린터>를 보고 달리기를 연습하다가 중학생 때는 육상부에서 200m 선수가 되었고만화와는 무관하지만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씨름부에 들어가서 용사급으로 모래판을 누비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이랬습니다.

 

 

 

퇴행성이 아닌 마찰성 관절염이
넓적다리 관절에서 심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운동을 오늘부터 금지하세요."

 

 

이후로 20년 동안 제 삶에서 운동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망한 부자의 3년처럼 저는 그 뒤 20년 가까이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체력과 근력으로 잘 살아남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3개씩 해야만 했던 만화가 지망생 시절에도 밤샘해가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의 제 얼굴 옆에는 언제나 이때는 몰랐다내가 그렇게 되기라는 것을 같은 내레이션 박스가 붙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자면 저는 현재 심각한 허리디스크 질환과 초기 단계의 목 디스크 질환을 갖고 있습니다. 이마의 모근은 절벽에 매달린 악당의 손아귀 힘처럼 점점 약해지는 것인지 매일 단말마 속에서 조금씩 모발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이마가 이렇게 넓었나복부의 내장지방은 흡사 대항해시대의 영국이 식민지를 넓히던 기세로 위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스크림을 먹다 흘려도 절대 땅으로 떨구지 않고 배로 막아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이미지 출처 : <닥터 프로스트> OST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 벅스뮤직)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 시즌 2를 연재하던 당시의 일입니다. 작업실 건물의 샤워실에서 처음으로 디스크 질환에 의한 전신 마비가 왔습니다엄밀히 말하면 마비가 아니고 지독한 고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셈이지만그 자세 그대로 바로 옆 수면실에서 3일 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1년 뒤에는 원고를 그리던 자세 그대로 똑같은 증세가 덮쳐왔습니다. 이번엔 구급차가 와서 저를 싣고 갔습니다.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경각심을 느끼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아주 강력한 동기가 되어줍니다. 미친 듯이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두들기면서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다시 건강해지는 건가, 이제 연재 중에도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 없이 작품을 완결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열심히 하는 저를 좋게 봐주신 관장님이 프로 테스트를 목표로 해보자는 말을 건네자마자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어 관두게 되었습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3년 전까지의 제 상태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재무제표로 치자면 부도 직전나라로 치면 조만간 IMF가 찾아올 지경인 셈입니다그리고 현재 저는 마흔을 2년 앞두고 다시금 총체적인 건강 회복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한 달을 보낸 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 이 글의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의 저를 향한 일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수면 패턴입니다마감 직전의 철야는 마감 직후의 방종으로 이어지게 되고 수면 패턴의 붕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체중 증가모공 약화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운동 부족입니다주로 앉아서 작업하며 에너지의 대부분은 뇌에만 할당하는데요뇌가 근육이었다면 세계 최고의 뇌 근육을 자랑할 종족이 작가입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뇌는 배은망덕하게도 주는 족족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약화되는 건 온몸의 근골격계입니다허리와 어깨손목이 약화되기 시작합니다좋은 점은 이 외에 나빠질 부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이 부위들이 아주 처참하게 망가진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조언이라는 것들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게 마련입니다선배 작가교수어른부모들이 하는 말들은 조언의 형식을 띠는 순간 거꾸로 든 컵의 물처럼 흩어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버리는 조언의 대명사가 바로 운동하라라는 조언입니다흡사 불볕더위 속 아스팔트 위의 드라이아이스 같습니다. 저도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대사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들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그 정도로 빨리 사라집니다.) 그 누구도 이 조언을 듣자마자 그래맞아운동할 거야당장 시작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앞서 말했듯 두려움과 고통은 최고의 동기부여 버튼이 되어주지만건강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보통 낡은 중고차의 제로백처럼 느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몸으로 체험한 고통이 동기를 유발한다면운동을 비롯해 건강한 삶을 위한 동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채워진다는 뜻입니다흔히들 웹툰 연재를 마라톤에 비유합니다그러나 절대로 연재 준비는 마라토너같이 하지는 않습니다그래서 보통 첫 연재 때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쟁여둔 체력을 전부 탕진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그 덕분에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 작가들의 머릿속에선 그동안 클릭할 수 없도록 회색이 되어 있던 건강관리와 운동이라는 버튼이 활성화됩니다.

 

 

주위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을 관찰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자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운동이 필요하다고 기껏 이야기해 놓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필요 때문에 하는 행동은 지속 기간이 짧습니다반대로 가장 오래가는 행동은 쾌락에 의한 행동입니다즉, 자신이 어떤 종류의 운동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모순이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즐거운 운동을 만나게 되고 어떤 사람은 끝끝내 찾지 못하기도 합니다.


"나는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할까?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할까?"고민해본 적 있으신가요? 전자라면 당장 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동호회나 클럽에 가입하는 편이 좋습니다. " 나는 특정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할까?" 그렇다면 "그 스포츠는 몸을 소비하는 쪽의 스포츠일까 단련해주는 스포츠일까." 전자라면 새로운 종목을 찾아볼 일이고 후자라면 매진하면 됩니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것이 대부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제 경우 기나긴 여정 끝에 찾아낸 운동이 바로 탁구와 맨몸 근력운동니다. 전자는 운명적으로 만났고 후자는 필요 때문에 도전했다가 매력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운동이 어렵다면 한껏 기준을 낮춰보시기 바랍니다. 비밀을 한 가지 말하자면어렵지도 않고 효과는 엄청난 건강관리의 핵심이 있습니다투자 대비 효과가 말도 안 되게 좋아서 좀 이상할 지경입니다그건 바로 이른 수면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귓가에서 광속으로 흩어지는 조언이 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지만, 체험에 기반을 둬서 말하자면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밤 10시가량부터 활성화되는 특정 호르몬들에 의해 체중이 줄기 시작하고 이미 망가진 몸이 강해지는 효과까지는 없겠지만 만성적인 무력감과 심리적인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너무 뻔한 방법이지만, 뻔한 만큼 당연한 이유로 작가들은 이 방법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밤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는 이른 수면과 주 5일의 운동을 시작한 지 6주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7㎏의 체중을 감량했고 요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사막화가 진행되던 이마와 머리선 사이의 비무장지대가 조금씩 녹지가 돼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글을 마치려니 비참한 고해성사로 시작해서 다단계 영업같이 끝나버리는 글이 된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작가들 대부분의 귓가에서는 활자들이 흩어지고 사라지고 있지 않을지. 다 이해합니다. 저도 작가로 살고 있으니까요. 저처럼 건강을 잃은 뒤에야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가줄 사람은 없고 그런다고 따라올 종족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한가지 기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본인이 필요성을 느낀 그 순간. 부디 그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길 바랍니다.

 

 

 이종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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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가장 뜨겁고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러나 각 분야나 집단마다 논의의 세기와 속도는 모두 다르고, 오랫동안 여성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온 종교계에서 성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인스타그램에 혜성같이 등장한 웹툰 <비혼주의자 마리아>(@bhon_maria)는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란 ‘마리아’와 ‘한나’ 자매를 통해 교회 내 성차별과 그루밍 성범죄, 성경에 드러난 여성 혐오까지 정면으로 비판하며 화제를 모았고, 1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SNS 입소문과 함께 인기를 끈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원 연재처인 기독교 세계관 웹툰 플랫폼 에끌툰이 비기독교인 독자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 한나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여성 기독교인이자 남성을  ‘돕는 배필’로 살도록 배워온 린든 작가는 어떻게 해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배우며 자라온 모든 크리스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비혼주의 자 마리아>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라는 린든 작가를 만나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Q.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하는 <비혼주의자 마리아> 단행본 제작 프로젝트 후원율이 300%를 넘겼습니다.

 

100%를 채우지 못할까 봐 굉장히 걱정했습니다. 무서워서 텀블벅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을 정도입니다. 1인 출판으로 책을 낸 적은 몇 번 있지만 펀딩을 받아서 진행하는 건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고, ‘굿즈(goods)’라는 것도 처음 만들어봤습니다. 온라인에서 만화를 봐 주시는 게 책 구매로 다 이어지는 건 아닌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다. 본인이 소장하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Q.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에끌툰과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의 공동기획인데, 그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2017년 여름에 IVP의 이종연 간사님을 만났습니다. 교회 내 여성 차별 실태에 관해 얘기하시고 대학 선교단체인 IVF(한국기독학생회) 안의 ‘갓페미’라는 모임에 대한 잡지를 주시며 이런 이야기를 토대로 만화를 그려 보면 어떨지 제안하셔서 일단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어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좋은 제안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페미니즘은 잘 모른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면서도, 어떻게든 공부해서 할 생각이었습니다.

 

 

 

Q. 그전까지 페미니즘에 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땠나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게 나왔고, 나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깊게 고민하거나 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미디어에 비치는 페미니스트의 ‘과격한’ 발언을 보며 ‘어머, 여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체득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내가 여성임에도 남성에게 감정이입 하는 게 쉬웠던 것 같습니다. 내가 여성 혐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Q. 그러다가 좀 더 각성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단 작품을 해야 하니까 페미니즘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며 주제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불타오르질 않았습니다. 나는 여자고, 여성 인권을 공부하고 있고, 이건 다 맞는 말인데 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안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공부를 멈추고 내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더니 그동안 외면하며 꾹꾹 눌러 담았던 일들이 지뢰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제가 3남매 중 장녀인데, 어릴 때 “너는 여자니까 미스코리아 되고, 남동생은 대통령 해야지”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당한 성추행, 데이트 폭력, 결혼 준비하면서 겪은 일,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로서의 경험 등 내가 외면해온 차별의 역사가 너무 많았습니다. 심지어 나는 맹목적인 믿음에 회의를 느끼고 진정한 믿음에 관해 질문해온, 나름 깨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왜 여성으로서의 나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잠을 못 잘 정도로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처럼 교회 안의 다른 여성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Q. 1년 넘는 기간 동안 연재를 준비하며 인터뷰와 그룹 미팅 등의 취재를 거쳤다고 들었습니다.

 

▲ 이미지 : <비혼주의 마리아> 단행본 (출처 : YES24)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이슈화되는 데 비해, 교회 안에서 여성의 발언은 여전히 음지에만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취재가 쉽지 않았는데 지인을 통해 트위터의 존재를 알고 들어가 보니 거기에 다 계시더라고요. (웃음) 익명성이 보장된 곳이라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고, 그것을 보며 배우고 함께 분노할 수 있었습니다. <믿는 페미, 교회를 부탁해>라는 팟캐스트를 만드시는 여성들을 만나 많은 말씀을 들었고, 목사가 될 예정인 남성 전도사로부터 교회 내의 권력 구조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Q. 모태신앙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엄마가 교회에 아주 열심히 다니셔서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며 집에서 독립했고 선교단체 활동을 하게 됐는데, 뭔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원하던 만화학과에 들어갔고 행복한데도 세상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온실 같은 교회에서 자라온 저는 대학 생활, 교우관계에 너무 서툴렀습니다. 내가 복음 만화를 그린다고 했더니 친구들은 이상한 애라고 비웃었고,“이럴 거면 신학 대학 가지 왜 여기에 왔어?”라고도 했습니다.

 

 

 

Q.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나요?

 

전공 수업에 잘 안 나갔고 선교단체에서 요구하는 숙제의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두 발을 이쪽저쪽에 걸쳐놓은 것처럼, 전공에 집중하다 보면 성경 공부와 기도량을 채울 수 없었고, 그 죄책감으로 선교단체 활동에 치우치면 전공의 그 많은 과제를 소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선교단체 사람들은 ‘네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라고 일축했고, ‘대학은 위험한 곳이다’, ‘절대 남자친구 사귀면 안 된다’ 등 엄격한 규율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아멘’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사귀지 말라면 더 사귀고 싶지 않나요? (웃음)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시작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사귄 남자친구가 지금의 남편(에끌툰 대표 일러스트 작가)입니다.

 

 

 

Q. 그래서 <비혼주의자 마리아>라는 제목이 더 강렬했던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 ‘비혼’은 소수의 라이프 스타일이고 기독교 세계관에서 ‘마리아’라는 이름이 갖는 기존의 이미지가 있는데 이런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비혼 라이프’를 그리는 만화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웃음) 사실 ‘비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놀랐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결혼하지 않은 언니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걸 보게 됩니다. 이들이 묶일 공동체가 없고, 주위에서 ‘뭔가 하자 있는 애들’이란 식으로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여성은 남성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여성은 누군가의 짝으로서만 존재하고 그게 전부고 가장 큰 축복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줄 알았습니다. 미디어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노처녀’라는 이름으로 깎아내리고 히스테릭한 사람처럼 묘사하지 않나요? 그런데 비혼이라는 말과 함께 보니 현실에는 혼자서 너무 멋지게 잘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자립 불가능한 여성상을 길러내는 것과 반대로 여성이 충분히 자립적으로 설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단어가 ‘비혼주의자’일 것 같았습니다.

 

 

 

Q. 교회를 떠난 마리아와, 여전히 독실한 한나 자매를 통해 이야기를 펼쳐나간 이유도 궁금합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여동생과 거의 한 몸처럼 자라왔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항상 다른 여성과 비교당하는 것처럼, 자매인 우리도 평생 비교당하며 살아온 데 대한 피로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멀어진 적도 있지만, 결국 생각나고 서로에게 돌아올 만한 관계가 자매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나와 마리아처럼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신앙관을 가질 수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대화하고 연대할 수 있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예고편에서 한나가 결혼예비학교에 갔을 때 듣는 말은 이 이야기가 무엇을 겨냥하려 하는지 명확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남녀평등이다, 페미니즘이다, 요즘 뭐 복잡하지만, 우리는 그냥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그죠? 아멘?”

 

교회 안에는 분명 페미니즘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런 만화를 그릴 거라고 주위 기독교인 언니들에게 얘기했을 때 다들 반응이 “그런 걸 왜 그려?”였습니다. 여성의 인권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그런 일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거나, “페미니즘이 나오고 남녀 갈등이 생긴 건 성경에 나온 대로 살지 않아서 그래. 남자는 일 하고 여자는 애 보고, 이렇게 딱 나누면 해결될 일이야”라는 말을 직접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크고 작은 여성 차별을 겪지만 그걸 가장 극심하게 느낄 때가 결혼을 준비할 때입니다.

 

 

 

Q. 에끌툰과 인스타그램에 함께 연배한다는 결정은 어떻게 내리게 됐나요?

 

에끌툰에 <비혼주의자 마리아> 첫 회가 올라왔을 때 “아름다운 결혼에 관해 얘기하려 하시는군요. 역시 돕는 배필, 아름답습니다.” 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웃음) 여기서만 연재해선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주 늦게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기로 했는데, 반응이 점점 달아오르는 걸 보며 무척 재밌었습니다. <스트리트 페인터> 때부터 수신지 작가님을 좋아했는데, 그분이 인스타그램에 연재하신 <며느라기>의 성공도 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Q. <비혼주의자 마리아>의 일차적 독자를 기독교인으로 봤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랬듯 페미니즘에 비우호적인 이들을 설득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나를 화자로 내세웠습니다. 한나는 평범한 여성 기독교인,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입니다. “당연히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해” 라거나, “바울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건 별로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라는 건 실제로 제가 했던 생각입니다. ‘바울과 여성 혐오’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런 단어를 써도 될까, 너무 신성모독적일까 굉장히 주저했습니다. 저도 뼛속까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요. (웃음) 독자들이 그런 한나에게 감정 이입하길 바랐습니다.

 

 

 

Q. 한나와 마리아가 함께하는 독서모임에서 <바울과 여성>(크렉 S. 키너)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뼈대인 것 같은데요. 왜 바울이었나요?

 

단순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성 차별의 사례만이 아니라, 차별의 근원에 그것을 용인하는 신학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신약의 교리를 완성한 사람이고,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성은 남자에게 순종하라” 등 여성을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구절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양반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이 산을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울이 진짜 그런 의미로 말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Q. 바울이 과거의 차별을 상징한다면, 마리아의 약혼자였던 윤 목사가 미성년자 신도를 상대로 저지르는 그루밍 성폭력은 현재 교회에서 발생하고 은폐되는 범죄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믿는 페미> 팟캐스트에서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인데, 저도 선교단체에서 활동할 때 남자 간사님과 밀폐된 공간에서 1대 1로 공부하고, 같이 밥도 먹고, 때로는 영화도 봤습니다. 그때 저 역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교회 안의 그루밍 성범죄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사를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Q. 그런데 윤 목사는 겉보기엔 너무나 선량한 ‘교회 오빠’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 ‘누가 생각나는데?’ 싶게 흔히 볼 수 있는 얼굴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실제 전도사 시절 초반 윤 목사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이 아이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유하고 있다고 느껴”라는 대사는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더 무서웠습니다. 목사가 성도의 사생활이나 아픔을 다 아는 것이 최고의 덕목처럼 취급되는 관행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고 권력에 익숙해지는 윤 목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교회는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인데 다들 너무 무지하고, 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목사님들도 ‘왜 나를 가해자 취급하냐’는 생각에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권위와 힘을 갖고 있으면 조심하는 게 맞습니다.

 

 

 

Q. 윤 목사의 재판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이 다소 빠르게 마무리되어 아쉬웠습니다. 원래 분량이 정해져 있었나요?

 

처음 계획은 24화였습니다. 바울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조금은 더 학습만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재하다 보니 동시대 여성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루밍 성범죄도 함께 다루며 방향을 조금 선회했고 분량도 늘어났습니다. 윤 목사의 재판 과정 등을 좀 더 깊게 다루고 싶었는데 분량이 넘쳐서 압축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점이 나 역시 아쉽습니다.

 

 

 

Q. 비기독교인인 독자들도 이 작품을 통해 교회와 기독교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그린 만화지만, 남성 중심적 구조 안에서 여성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상황은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여성들의 아픔을 교회 밖에 있는 여성들도 함께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안에서도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데 공감해주신 것 같습니다.

 

 

 

Q. ‘공적 신앙’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 이미지 : <비혼주의 마리아> ⓒ 에끌툰

 

그게 에끌툰의 가장 중요한 방향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에 어떻게 이바지하고,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세상이라는 건, 교회라는 영역을 넘은 하나님의 창조물 전체입니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을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 간다”라고 하지만, 정작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교회가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화를 통해 교회에서 금기시되었던,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궁금했던 질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요?

 

<비혼주의자 마리아>를 마치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져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입니다. 바울에 대해 좀 더 궁금해졌다는 사람들을 위한 지식 중심의 만화도 해보고 싶고, 또 다른 여성 서사 만화를 그리고 싶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내 또래 여성들의 경험이나 신앙의 흔들림에 관해 날것의 느낌으로 풀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여성 기독교인으로서 많은 고민이 이제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것과 부딪히며 만화를 그릴 생각입니다. 우리는 K-Story로 한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최지은 사진 최민호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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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여신의 지위가 현실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그리고 현실 여성의 지위는 여신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죠.
(중략)
빼앗긴 여신의 신화를, 여성의 이야기를 되찾아야 해요. 
그리고 이런 일이야말로 저 같은 창작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죠.

 

 

 

 

' 신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시대의 신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흥행을 올리고 있는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20여 편의 영화 10여 편의 드라마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북유럽이나 수메르 신화아프로퓨쳐리즘(Afrofuturism)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물론이고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과 같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회문화적 요소들까지도 포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신화를 재구축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프로퓨처리즘 : 아프리카+미래주의의 합성어,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문화와 역사, 선진 기술의 발전을 융합시킨 문화 양식
*오리엔탈리즘 :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왜곡된 인식과 태도

 

이러한 시대에 신화의 가치는 태고부터 이어지는 원형적 상징(Archetype Symbol)들에 대한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의 반응이라는 신비감에 고정되지 않습니다. 21세기에 신화는 오히려 일상적이고 동시대적인 것들과 만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이러한 기조들이 일반화되었는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신화를 활용해 성공한 서사들을 보면 신화에 대한 전통적이고 원형적인 가치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신화의 세계관이 주는 설정을 활용해 일상의 문제들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다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신화의 국적성 문제와 활용 방법 '  

 

 

신화의 현대적 가치 판단에 인상적인 자료가 될 수 있는 작품이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입니다. 작품의 근간이 되는 세계관은 불교 세계관인데요. 이제껏 한국적인 신화 요소를 활용한 작품들은 대부분 그 근간이 불교의 세계관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한국의 신화로는 단군신화가 있지만이는 민족성을 고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의미가 더 큽니다. 게다가 신화가 대중적으로 확산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한국에 1600여 년 동안 영향을 주었던 사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민족성을 소거한 한반도의 구성원들에게 집단 무의식으로 작용하기에 쉬웠던 것은 오히려 불교 신화였을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딜리헙 <극락왕생> 페이지

 

그렇다고 해서 불교 신화가 한국적 신화라고 의미화하는 것 역시 적합하지 않습니다. 불교 신화는 해당 사상을 공유한 문화권을 횡단하면서 다양한 가치와 문화적 요소들을 내포한 거대한 세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를 한국적이라고 규정하고 의미부여 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극락왕생>은 한국적입니다. 불교 신화라는 세계관이 철저하게 현대 한국의 일상을 설명하고 있기에 그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각종 신화적 요소들을 끌어모아서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새로운 신화 구축에 활용하고 있다면, <극락왕생>에서는 불교 신화의 세계관과 한국의 설화들을 활용해 현대 한국의 일상과 그 안에서 평범해 보이는 한 여성의 삶을 보여줍니다.


<극락왕생>에서 귀신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자신이 지냈던 고3이라는 일 년 동안을 보장받은 주인공 자언은 이러한 불교 신화의 세계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요소들 위에 축조된 인물입니다. 일상이라는 현실의 세계만이 존재하던 시절에서 인간도,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 천상도, 수라도의 육도로 구분되어있는 사바세계로 인식의 지경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 확장에 따른 다양한 설정들은 전적으로 불교 신화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특히 건을 만들어내는 귀신들에 관한 이야기나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호법신이나 보살과 같은 인물들의 설정 또한 신화로부터 유래합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제약도, 문제의 발생도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 일상의 세계를 다양하게 보는 것 '  

 

▲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인터넷 서점 나츠메 우인장

 

하지만 <극락왕생>을 단순히 불교 신화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만 여길 순 없습니다. 이 작품은 불교 신화라는 세계관을 활용해 일상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일본 만화에서 2000년대까지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퇴치 대상이라고 여겼던 요괴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던 <나츠메 우인장>이 보여주던 방식과도 비슷합니다. <극락왕생>은 어디까지나 합정역 귀신이었던 자언의 고3 생활을 통해서 일상이라는 것의 난해함과 가치를 돌아보게 합니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성여학생이라는 상황에서의 일상은 그저 지나왔을 당시에는 지난하고 치열한 삶이지만 인식의 지경을 넓히고 돌아가 보면 다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즈메리 잭슨이 이야기했던 환상의 강력한 기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이면을 들춰볼 수 있고그것을 통해 현실 그 자체를 전복할 힘을 제공하는 것 말입니다. 지방이라는 장소적 한계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 그리고 수험생이라는 제약투성이의 시기적 한계들은 환상을 통해서 해체되고 다시 재정의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일상에 대한 새로운 정의들이 도출됩니다. 그것은 친구와 가족 같은 대상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고, 사랑과 우정, 타인을 대한 방법과 같은 관계 맺기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상의 다양한 의미들은 거리를 두고 낯설게 함을 통해 통찰할 수 있고 21세기에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환상이라는 매개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극락왕생>은 이미 다양한 서사에서 활용한 서구의 신화적 세계관이 아니라 아직은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는 불교 신화의 세계관을 차용해 낯설게 하기를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집단 무의식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던 불교의 세계관들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통찰하는 게 조금 더 친밀감을 주기도 합니다. 불교의 교리를 모르더라도, 신화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극락왕생>에서 자언이 살아내고 있는 또 한 번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화라는 거대한 세계관이 일상에 맞닿았을 때 일어나는 일종의 화학작용입니다.

 

 

 이지용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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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가 처음 만날 무렵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곳에 와있다.

 

실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오래전 처음 만화를 그려 돈을 벌기 시작했던 때, 훗날 늙은 개 한 마리를 샅샅이 들여다보며 매일 말을 걸고, 반응을 살피고, 개에 대해 생각하고, 개를 그리고 또 그린 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게 만화는 그저 노력 대비 수입이 좋은 아르바이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치 사회 문제를 풍자적으로 그리는 이른바 ‘시사 만화가’였기 때문에 채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로부터 ‘정 화백’ 또는 ‘정 선생’으로 불렸습니다. 요즘 한국 범죄 영화에 등장 하는 마약 제조상이나 손목 하나쯤 잃고 은둔한 도박 고수 같은 호칭이었습니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벌써 이런 작품을 그리느냐, 대단하다, 장래가 촉망된다 등등의 칭찬을 들었고 이따금 공모전 같은 데서 상도 받았으며 덕분에 잔뜩 우쭐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철이 없었습니다. 그때의 ‘정 화백’은 꽤 밥맛없는 인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나와 놀아주었던 친구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새삼 감사의 마음과 사과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밥맛없게 굴어서 미안해요.

 

 

그때 들었던 칭찬은 진짜 내가 잘 그려서 였다기보다는 원고료 인상 대신 말 몇 마디로 퉁치려는 데스크의 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제 와서 의심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일이겠지만. 하여튼 여차 여차해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으며 요즘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16년 하고도 4개월가량을 함께 살아온 개 한 마리와 단둘이 제주도에서 헤엄도 치고, 해변을 달리고, 바다 쓰레기를 주우며 분노하다가 마감이 닥치면 갑자기 “앗 뜨거! 큰일 났네하며 부리나케 만화 도 그립니다. 원래 둘은 아니었고 개가 두 마리여서 합이 셋이었는데 하나는 제주도에 내려온 지 1년 만에 뇌종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녕, 소리야. 떠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개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속에서 울적한 비구름이 순식간에 뭉게뭉게 모여듭니다. TV에서 어떤 어린이 연기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우는 연기를 잘해요, 하고 묻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슬픈 생각을 해요. 엄마가 멀리 떠난다든지.... 아이는 대답을 하며 벌써 눈물을 그렁거렸습니다. 나도 떠나보낸 개 생각을 하면 언제든지 금방 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린이도 아니고 연기자도 아니어서 써먹을 일 이 없는 게 좀 유감스럽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엔 불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다행인 것 같은 일은, 그때 내가 개들과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10년 넘게 잔뜩 찍어 놓은 개들의 사진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주에 막 내려온 도시 촌놈의 어리둥절함에 대해 주간지에 에세이를 연재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 사진을 책으로 만드는 일은 원래 항상 내 만화보다 내가 찍은 개 사진이 더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동안 먹이고 재우고 산책시키고 병원에 데려갔으니 이제 너희들이 돈을 벌어 오너라하고요.


그런데 그저 찍어놓은 사진들을 엮으면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일이 기대했던 것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수만 장의 사진 중에서 책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는 작업은 매우 곤란했습니다. 아무리 거저먹기 프로젝트였다고 해도 사진만으론 책의 모양새가 갖춰질 것 같지 않아 중간중간 만화를 넣기로 했는데 그 작업도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비극은 내 등 뒤에 있었습니다. 내가 책상에 코를 박고 일하는 동안, 개들은 산책하고 싶어서 들끓는 피를 한숨으로 삭이며 속수무책으로 소파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개가 아팠습니다. 많이 아팠는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실은 내색을 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책 작업만 끝나면 내가 실컷 놀아주마 하고 중얼거렸지만, 개에게 그럴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그때 나는 몰랐습니다. 책 만드는 작업이 끝난 후부터 홍보 활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아픈 개를 부둥켜안고 안 아픈 개는 리드 줄로 끌며 제주에서 서울까지 병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마침 처음 병을 발견했던 때에는 설 연휴와 주말이 겹쳐 긴 연휴가 생기는 바람에 문 연 동물병원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 이전에도 이후로도 아직 그만큼 긴 일주일을 겪어본 일이 없습니다.

 

 

책이 나오고 인터뷰며 북토크며 홍보행사에서 개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했던 무렵에 아픈 개는 이미 내 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앞에 앉아 있는데 슬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써먹을 데도 없는 눈물이 솟구쳐서 삼키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책 만드는 일 말고 또 다른 하나의 일, 그러니까 제주 생활에 대한 에세이는 매주 꼬박꼬박 연재하고 있던 일이어서 당시 내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는 아니어도 꽤 담기게 되었습니다. 너무 징징거리면 그나마 얼마 안 되던 독자마저 떨어져 나가버릴까 봐 나름 의연한 척 자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는지 거기 담긴 문장들은 내게 일종의 인덱스가 되어 지금도 한 줄만 읽으면 당시 있었던 일과 감정들이 주르륵 딸려나오는 것입니다.

 


<노견일기>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기록해 둔 시기의 기억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사이사이의 일들까지 잘 떠올릴 수 있지만, 기록해두지 않은 때의 기억은 흐릿하거나 모호하거나 아예 내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언젠가 깨달았습니다. 나는 출퇴근 같은 걸 한 적이 없고 집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부분 24시간 내내 개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 땐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이든 부부간이든 하루 중 절반 내외의 시간은 떨어져 있는 게 보통 일터이므로, 생활시간으로 환산하면 풋코와의 16년은 그 배의 시간에 가깝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득 우리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으시고 하루 종일 나와 한 공간에 계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모골이 송연해지고 호흡곤란이 올 것 같은 기분이 좀 듭니다. 혹시 우리 개들도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겠지만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그래서 이 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가 되었고, 우리는 서로 삶 전체를 지켜봐 온 동반자 겸 관찰자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존재가 머지않아 내곁을 떠나가리라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선망하고 있던 때 즐겨 펼쳐보던 책 <세계의 명견들>에는, 풋코와 같은 폭스테리어 종의 평균 수명이 10년에서 14 년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비록 병으로 떠나긴 했지만 12년을 살다 간 소리는 그럭저럭 제 수명을 누렸다고 볼 수 있겠고 풋코는 이제 그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소리의 경우 이별을 알지 못한 채 갑자기 맞닥뜨렸지만, 풋코와의 이별은 어쩌면 차분히 준비하면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내게 지금을 기록할 도구가 필요했고 내가 만화가다 보니 그게 <노견일기> 라는 만화가 된 것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던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 <노견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던 때는 겨울이었는데, 아마도 그게 풋코와의 마지막 겨울이 되리라고 예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함께 한 번의 겨울을 더 보냈고, 그다음의 봄, 여름까지 두 계절을 더 난 다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풋코는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리고 있는데, 아직도 바다에 가면 해변을 뛰어다니고 첨벙첨벙 헤엄치기를 즐길 만큼 건강해서 도무지 이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는 동 안 <노견일기>의 연재 역시 1년을 넘겼고, 의외로 많은 독자로 부터 격려와 응원의 반응을 얻고 있어서 좀 얼떨떨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노견일기>가 연재되는 포털 사이트의 댓글란은 언제부턴가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나누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야기, 함께 살고 있는 개나 고양이에 관한 사랑과 염려, 또 그에 대한 다른 독자들의 위로로 가득한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시시한 내 만화보다 훨씬 절절한 사연이 많아서 나 역시 눈물을 쏟곤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엔 <노견 일기> 연재 원고 중 앞부분을 묶어 책으로 냈습니다. 책 머리말엔 이렇게 적었습니다.“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가 처음 만날 무렵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다.”



 그랬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함께 사는 삶을 통해 개들은 그런 나를 어디론가 조금씩 이끌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삶 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좀 더 자신 밖의 세상과 조화롭게 공존하길 갈망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대도시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개들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고, 내게 만화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탐구의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대체 인간은 왜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 을 들여가면서 개를 기르는 걸까요? 언젠가 필연적으로 찾아올 이별의 순간을 알면서도 애정을 쏟는 건 어째서일까요? 종을 넘어선 다른 존재와의 교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 일까요? 내 생각엔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은, 얼마 간 인간이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아무짝에도 쓸 모없는 것, 삶이 어느 정도의 풍요를 누릴 때 인간은 그것을 추구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개 기르기 의 인문학’이랄까요.

고백하건대 <노견일기> 안에는 창작자로서 나의 회한 같은 것도 남몰래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대부분 내 생활의 조각을 잘라 만화로 가공하는 일을 해왔는데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내 이야기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 가상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잘 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사실 그런 시도를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능력 부족과 게으름 탓으로 내가 지은 남의 이야기는 편집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 하드 디스크 안에서 잠자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노견일기>에는 가끔 그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노견일기>는 대부분 내가 겪거나 보고 들은 이야기인 게 맞지만 100% 사실 그대로는 아니고 심지어 이따금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도 있다는 걸 얘기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사실을 알고 <노견일기>의 독자들이 내게 돌을 던진다면? 음,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세상에 통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근거로 삼고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김우열 작가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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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아직 건네지 못한 인사가 남았다.
엄마, 안녕!

 

 

재미있는 말입니다. 별생각 없이 쓰는 ‘안녕’은, 곱씹을수록 재미있습니다. 명사로서의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뜻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인사를 건넬 때 쓰는 감탄사로서의 ‘안녕’은 다릅니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만나거나 헤어질 때’ 쓰는 감탄사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니, 완전히 극단의 상황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상황에서 같은 발음으로 ‘안녕’을 말합니다.


웹툰 <안녕, 엄마>는 <사랑스러운 복희씨>로 꽤 많은 팬덤을 가진 김인정 작가의 새 작품입니다. 복희씨에게 푹 빠져있던 독자들의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롤로그 공개 후, 댓글 창에는 <안녕, 엄마>의 ‘안녕’이 ‘Hello’인지 ‘Goodbye’인지에 대한 의견으로 분분했습니다. 나란히 서서 요리를 하는 엄마와 딸. 그리고 엄마에게 전하는 메시지, ‘안녕, 엄마.’ 이 모녀는 어떤 인사를 건네는 것 일까요.

 

 

 

' 밥 먹었냐는 안부와 진심 '  

 

“밥 먹었어?” 떨어져 있었던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우리는 안부를 묻기 위해 말합니다. 진짜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기 보다는 잘 지냈냐는 말의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물론 아주 우회적인 표현이라고만 할수도 없습니다. 오래 전 밥도 못먹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그 사람의 안위를 파악하기 위해 ‘밥 먹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밥 먹었냐’는 인사로 서로를 맞이합니다.

 

밥 때가 되었으면 함께 밥을 먹자는 의미로, 밥때가 지났으면 밥을 잘 챙겨 먹었냐고 걱정하는 의미로. 생각하면 참으로 정겨운 인사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그것은 다르다. 엄마의 ‘밥 먹었냐’는 질문은 안부를 묻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응” 혹은 “아니”의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밥을 먹었냐는 것입니다. <안녕, 엄마>도 그렇게 시작됩니다. 엄마와의 전화에 은영이는 “응, 먹었어” 라고 답합니다. 예상되는 엄마의 물음은 “밥 먹었어?”. 엄마는 늘 진짜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 합니다(뭘 먹었는지까지도!). 그래서 우리는 그 질문에 소홀해지기도 합니다.


골치 아픈 전화를 받는 와중에 엄마의 연락을 무심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은영’이도 그랬습니다.
 ‘안녕’을 둘러 싼 의견에 답을 먼저 말하자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은영이는 엄마와 헤어졌습니다. 엄마의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전화 통화를 나누었던 엄마는 영정 사진이 되어 돌아왔는데요. 은영이는 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은영이는 다시 엄마를 만납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아닌, 헤어짐과 만남 입니다.

 

 

 

 

' 엄마와 딸, 두 이야기 '  

 

 

 

엄마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은영이가 받은 것은 엄마의 일기장입니다. 하나뿐인 딸 은영이는 이 일기장을 조심스레 손에 쥡니다. ‘자기 물건 건드리는 거 싫어할 텐데.’ 은영이는 엄마를 보내고서도 엄마에게 다가서기 힘들어합니다. 잡다한 메모가 적힌 일기장을 받아들고도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는 건 제일 싫어했겠지.’ 엄마가 돌아온 것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일기장과 함께 돌아온 엄마. 엄마는 ‘죽음’이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은영이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냅니다. 은영이는 엄마의 일기장을 단숨에 읽지 못하고 한 장씩, 천천히 넘깁니다. ‘냉혈한’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차가웠던 엄마와 서먹할 수밖에 없었던 은영이는 일기장을 통해 엄마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까요? 엄마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은영이지만, 엄마를 찾아가는 와중에 은영이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마주합니다. 엄마, 그리고 딸의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집니다.

 

 

 

' 이상적인 관계? '  

 

 

혼자 남은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하나씩 좇습니다. 그 과정에서 은영이는 몰랐던 엄마의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존재도 몰랐던 엄마의 남자 친구, 삶의 괴로움, 흔적. 엄마가 언젠가 꼭 가고 싶었다던 바닷가를 찾은 은영이는 장례식장에서부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마음껏 엄마를 그리워하고 싶었던 것일까요?서툰 관계의 끝에서 은영이의 마음이 그렇게 쏟아집니다.

 

 

▲ 이미지 : <안녕, 엄마> 단행본 판매 사이트 캡처 (https://bit.ly/2NbuKOr)

 

그래서인지 이야기 초반엔 엄마의 흔적을 좇았다면 이후부터는 은영 이의 ‘속마음’들이 드러납니다.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희선이를 보며 은영이는 생각했습니다. ‘이상적인 관계.’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희선이에게 은영이는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감정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하지만 은영이는 이제 생각합니다.‘엄마도 힘들 때 내가 보고 싶었을까?’ 사실 희선이도 엄마와의 관계가 쉽지 않습니다. 은영이처럼 서먹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다 보니 적당한 거리가 없는 것이죠. 성인이 되어 떠나가려는 희선이에게 서운한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서 답답함을 느끼는 희선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은영이에게 털어놓은 희선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세상에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요?

 

 

' 나를 만나다 '  

 

일기의 마지막 장에 가까워질수록 엄마는 흐릿해집니다. 선명하던 엄마는 말없이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은영이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곧 엄마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은영이는 처음부터 엄마가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깊은 후회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은영이가 만들어 낸 자기방어와 같은 환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좇은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와 미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엄마와 꼭 닮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내가 안고 가야 할 상처와 기억,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이제 엄마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나를 만나고 “안녕”, 엄마를 보내며 인사합니다. “엄마, 안녕.”

 

 

 강정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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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누적 조회 수 8억 뷰. 네이버 일요 웹툰 39주 연속 1. OCN 드라마틱 시네마 원작.

 

이것은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의 성공을 수식하는 문구들입니다. 총 88화로 구성된 이 작품이 누적 조회 수 8억 뷰를 넘겼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90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봤다는 뜻입니다. 이는 전체 웹툰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블록버스터급 성공입니다.



공포나 스릴러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주위에서 꼭 한 번 읽어보라는 추천에 따라, 작품이 연재를 마칠 때쯤 비로소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스토리가 가진 팽팽한 긴장감과 인물의 심리묘사는 단숨에 읽는 이를 작품 속으로 빨아들였는데요.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문득문득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불편한 감정들이 느껴졌습니다.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어둡고 축축하고 침울한 분위기낯설고 거북한 느낌의 캐릭터들냉소적이고 곤두서 있는 대사들처음에는 이런 어두움과 불편함이 이질감을 느끼게 했습니다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이 작품을 읽다가 떠오른 나 자신의 타인들에 대한 적의와 적대의 감정이었습니다.

 

▲ 이미지 : 김용키 작가 <타인은 지옥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타인은 지옥이다>의 성공은 바로바로 이러한 지점을 정확하게 소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작품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타자에 대한 적의와 관계에 대한 상실감그리고 탈출구도 없는 답답함으로 드러났습니다. 작가 역시 얼마 전 출판된 만화책의 서두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주는 무력함, 공포와 스트레스를 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요다. 정말 그 의도가 정확하게 먹힌 것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나와 타자 사이의 거리감에서 발생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작품의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첫 번째 두려움은 사람입니다. 나를 제외한 타자들그들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낯선 타자는 더욱 위험합니다. 낯선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로 바뀌는 것은 나에 대한 적의와 위협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윤종우에게는 그를 위협하는 절대적 타자들이 등장합니다도대체 그 적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존재들. 이것이 종우와 독자가 마주하는 공포입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두 번째 두려움은 고립입니다. 종우는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믿어주는 사람도, 도망갈 수 있는 곳도 없었습니다. 그가 잠시나마 믿고 소통했던 친구들은 종우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음이 금세 드러났고 그 대가로 그들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종우는 이러한 과정에서 철저하게 심리적으로 고립되고, 결국 자신을 막장의 상황까지 몰아갑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 두 가지 공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내재하고 있는 근원적 공포입니다. 우리는 타자와 함께 살아가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혼자 고립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타자와 나 사이에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장벽이 놓여 있습니다결국우리의 삶은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혼자 고립되지 않도록 그런 타자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절대적 아이러니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피할 수 없는 관계의 근원적 모순입니다.

 

 

▲ 영상 출처 : OCN 공식 유튜브

<타인은 지옥이다> 2~3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메타포로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2화에서는 한 술집 골목에서 취객들이 싸움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종우와 선배 재호는 이를 목격하고도 슬쩍 외면합니다. 하지만 얼마후 그들은 골목에서 맞고 있었던 취객의 죽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종우와 재호는 싸움을 말리거나 신고함으로써 사건에 개입할 수 있었지만괜한 시비에 말려들기 싫어 상황을 외면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선택한 타자로서의 거리감과 무관심은 또 다른 타자의 죽음으로 연결됩니다. 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결과는 매우 극단적이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수많은 익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타인은 지옥이다>의 주인공 종우를 통해 우리나라 청년 세대들이 갖는 사회와 관계에 대한 불안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종우는 지방에서 상경하여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게 된 25세 인턴사원으로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서울에서도 가장 싼 고시원을 구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의 흙수저 계급 청년입니다. 작품 속에서 종우는 돈이 없어 더 나은 고시원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인턴 신분으로 회사의 제일 아래 계급에서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며, 직장 생활에서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상사와 갈등을 빚는 인물입니다.


경제적 빈곤,불안정한 주거,낮은 사회적 지위,인간관계마저 서툰 종우의 모습은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흙수저 청년 세대들의 평범한 얼굴로,이 시대 청년들의 갈등과 고민을 오버랩시키고 있습니다. 김용키 작가는 이렇게 우리 안에 잠재한 다양한 심리적 공포와 현실의 불안을 반영하는 상징들을 기반으로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탁월한 연출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품을 이끌어 갑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다음에 이어질 상황에 대해 끊임없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스토리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데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직접 묘사하는 방법보다는 다양한 암시와 단서 제공을 통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다양한 음향 효과와 미지의 시선들, 간접적인 상황 묘사 등으로 심리적 긴장감과 압박감을 높이고, 단서와 정황 증거들을 조금씩만 노출하여 불안과 위협을 가중합니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작가는 미지의 상황들에 대한 자들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킴으로써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공포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OCN <타인은 지옥이다> 공식 포스터

 

이제 이 작품은 웹툰의 성공을 넘어 출판과 드라마로 그 외연을 확장했습니다. 7월에는 단행본 3권 분량으로 만화책이 출판되어 판매되기 시작했고, 얼마 전 드라마화 되어 임시완이동욱이정은 등 실력파 연기자가 대거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종영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결합한 드라마틱 시네마라는 형식, 화제성 있는 배우들의 출연, 여기에 감독과 스텝들이 전작에서 보여준 새로움이 더해져 한층 기대감을 높였는데요 한국형 스릴러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이 작품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김용키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응원합니다. 

 

 김성진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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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계약해지, 이상한 수익분배구조? 웹툰 작가 불공정거래 계약 해결방안은?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웹툰 업계의 역설, 플랫폼의 숫자가 늘어나고 웹툰 시장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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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원작과 달라서 성공한 드라마 vs 웹툰 원작과 달라서 아쉬운 드라마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제 웹툰은 한국의 유력한 서사 매체가 되었다는 것이고 드라마는 이러한 웹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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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강림>, 여신 숭배 뒤에 숨은 부드러운 억압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시선이 바깥에 있다. 메이크오버에 관한 만화들이 우후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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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에서 독립 만화 작가로, <무슨만화>의 OOO작가

[BY 한국콘텐츠진흥원] 포털에서 웹툰을 연재하는 분들이 다 같이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는 거라면,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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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 존’ 시대에 육아 만화를 그린다는 것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영유아 및 어린이 출입 금지’라는 문장에서 주어를 청소년 혹은 중년으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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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트링은 웹툰 IP 사업의 비가역적인 미래일까?

[BY 한국콘텐츠진흥원] 기존 웹툰 매니지먼트 업체들이 작가 에이전시 업무 위주로 활동했던 것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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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왕>과 <복학왕> 사이, 동시대 학원물 속 ‘인싸’에 대한 욕망과 재현의 문제

[BY 한국콘텐츠진흥원] 현실 반영이 반성적 전유를 거치지 못할 때 텍스트의 핍진성은 자칫 사회적 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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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