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시장이 포화라는 말은 결국 중소 규모의 웹툰 플랫폼의 숫자 역시 한계까지 다다랐다는 말일 것입니다. 실제로 몇몇은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고다른 몇몇은 합병을 통해 중소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앞으로 치고 나가려 단단히 벼르는 중이기도 합니다.

현재 국내 웹툰 시장은 포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보다 능동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 중인 작금의 시류 역시 더는 국내 시장 확장은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포화론을 일찌감치 인지한 결과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여전히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이 선두에 서 있고그 뒤를 레진코믹스’, ‘카카오페이지’ 등이 추격하면서 단단히 세를 굳힌 형국입니다하지만 단지 이들만으로는 현 웹툰 시장을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중소 규모의 다양한 웹툰 플랫폼이 후발주자로 속속 뛰어들면서 국내 웹툰 시장은 명실공히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9년 한 해 동안 웹에서 10회 이상 연재됐거나 종이책으로 출간된 만화를 대상으로 한 ‘2019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의 1차 심사 후보 대상작은 무려 2,500여 작품이 넘습니다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다채로운 만화가 창작되고 향유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도 남을 만한 수치인데요유료 웹툰 플랫폼으로 단단히 자리 잡은 투믹스(www.toomics. com)’는 전신인 짬툰에서 시작해 엠툰을 인수하면서 세를 늘렸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투믹스 공식 홈페이지

2015년 문을 연 ‘짬툰’부터 따져도 웹툰 플랫폼으로서는 비교적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현재 작품 수나 인지도 등에 있어서는 대형 포털사이트 못지않은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네이버나 다음과는 달리 성인 남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차별화된 작품군으로 우선 대결함으로써 현재는 중소(中小플랫폼이라기보다는 강소(強小플랫폼의 면면을 가장 잘 드러낸 곳이라 할 만합니다. 그중 <루갈>(글 그림 릴매)은 ‘투믹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만화 중 하나인데요. 엘리트 형사 강기범은 권력의 수뇌부까지 쥐락펴락하는 범죄조직 ‘불개미’에게 아내와 딸, 그리고 두 눈까지 잃습니다. 여기에 가족을 살해했다는 누명까지 쓴 채 병원에 수감 중, 의문의 편지를 받고 탈출해 실험 단계에 불과하던 불안정한 인공 안구를 이식받습니다. 이후 기범은 거대 기업을 자처하는 난공불락의 불개미 조직을 ‘박멸’하기 위해 설립된 비밀 특수조직 ‘루갈’의 멤버로 합류하면서 힘겹게 복수극의 서막을 올립니다.

통속적인 복수 드라마를 뒤트는 건 첫째로 현대 배경의 드라마와 부러 선을 긋는 SF 요소들입니다. 기범이 이식받은 인공 안구를 필두로 신체를 강화하는 다양한 장치들과 근접전을 염두에 둔 여러 가공의 무기를 앞세운 액션 장면은 피와 살을 뿌리는 고어한 연출과 세련된 작화로 끊임없이 강렬한 이미지의 산을 쌓아나갑니다. 여기에 맞서 온갖 범죄의 중심에 서서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불개미 조직을 핍진하게 설계하고, 특히 주요 악역들이 발하는 잔혹한 기운을 섬뜩하게 묘사함으로써 극에 진중함마저 더합니다. 물론 경찰 시절 기범의 후배였던 미나가 루갈에서는 막내 기범의 ‘사수’가 되어 펼치는 역전된 관계가 주는 색다른 재미, 선배로서 행하는 문자 그대로의 지옥훈련 역시 흥미롭습니다. 자칫 지나치게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지점마다 이를 이완하는 루갈 멤버들의 쾌활한 면면 또한 잘 만든 블록버스터로서의 힘을 어김없이 보여준다현재 <루갈>은 OCN에서 내년 방영을 목표로 드라마로도 제작 중입니다.

 

▲ 영상 출처 : 투믹스 공식 유튜브

2018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 <심해수>(글 이경탁 그림 노미영)는 월간 연재의 장점을 십분 살린 작품입니다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업하는 만큼 세밀한 작화는 물론이고작품 내내 여러 번 펼침컷으로 전개되는 액션 퍼포먼스는 비교할 만한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여기에 마치 공멸을 모색하는 듯 보이는 종말 이후의 이기적인 인간들과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는 소년만화 특유의 상승 정서그리고 가족애라는 인류 보편의 서사를 녹여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심해수>는 해수면이 상승해 육지가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인간이 몰락한 사이 신세계의 포식자로 등극한 거대 식인괴수 심해수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하려는 소년 보타의 모험과 성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문명이 바다 밑으로 침몰한 종말 이후를 배경 삼은 것만큼이나 때때로 바닥까지 침잠하게 만드는 절망적인 상황은 이 작품의 서사적인 면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입니다동시에 결국 심해수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진리를 촘촘히 더해가면서 이야기는 소년만화와 액션 장르에 뿌리를 둔 채 여러 번 변화무쌍하게 진화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만화경 공식 홈페이지(2020년 11월 호)

 

외식배달 주문 서비스업체인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만들어 화제가 된 만화경 (comic.manhwakyung.com)’은 격주간지 형태로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웹툰 플랫폼이지만 마치 새 책이 발간되듯 같은 날 모든 작품을 업로드함으로써 집중도를 높인 것인데요. 특히 작가들의 인터뷰를 함께 수록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한 점도 돋보입니다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난 8월 말 출간된 창간호부터 가장 최근에 출간된 5호까지 총 6각 작품당 최대 6회의 연재분만 공개됐음에도 몇몇 작품은 눈길을 끌기 충분해 보입니다.

<윌슨가의 비밀>(글 그림 MILL2)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극입니다손녀 안나는 아버지와 떨어져 홀로 저택에 머물면서 여전히 이곳에 머무는 몇 명의 관리인의 눈을 피해 할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어나갑니다퍼즐 형식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에까지 독자를 동참시키기에는 조금 모자란 구조지만직접 호러 요소를 덧대면서 요소요소 섬뜩함과 음산함은 물론 상당한 궁금증마저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서구를 배경으로 한 탓에 부분적으로 고딕 장르의 일면까지 엿볼 수 있어,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밝고 화사한 색감과는 무관히 스릴러 색채 또한 고유한 것으로 만든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회사원 채대리>(글 그림 채대리)는 에세이툰 장르가 가진 여러 장점을 포괄하면서 특히 사색에 많은 비중을 할애해 이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33살의 대기업 대리인 채대리의 현재 이야기만이 아니라 회사 동기이자 대학 동기이기도 한 보람의 이야기그리고 대학교 시절수능시험 치던 날어렸을 적 피아노학원 다니던 시절 등을 마구 휘돌며 어쩌면 어느 누구나의 인생의 한 자락이었을 시절을 무심하게 툭툭 건드립니다게다가 단순히 추억을 소환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채대리와 김대리가 떠올리는 과거 어느 시절은 붕어빵틀에 부어지듯 교육받아 회사를 이루는 한 개의 블록이 되어버린 현재와 언제든 맞닿으면서 독특한 울림을 자아내곤 합니다. 때때로 여자로서 늘 남성 중심사회의 일면과 맞닥뜨리는 김보람 대리의 시선이 더해질 때면 작품의 층위는 한층 두터워지는데요제목과 작가 이름마저 채대리라 굳이 에세이툰 장르로 분류하긴 했지만여타의 에세이툰이 황당한 일상과 상황을 개그로 포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작품입니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은 에세이 장르의 본디부터 정수였을 부분을 스토리만화로서 성찰하고 완성한 값진 결과물처럼 보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봄툰 공식 홈페이지 캡처

BL(Boy’s love)과 GL(Girl’s love) 장르를 주력으로 한 듯 보이는 봄툰(www.bomtoon.com)’도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으니그중 <세기의 악녀>(글 네온비 그림 PITO)는 첫손에 꼽을 만합니다이야기는 과거 연기 신동으로 주목받으며 큰 인기를 누리던 아역 배우 이루리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배우에서 은퇴한 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우울한 현재에서 시작합니다. 루리가 연기자 생활을 포기한 이유는 다름 아닌 역변한 외모 때문인데요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충격 때문에 어렸을 적 귀여웠던 외모를 점차 잃어갑니다살도 찌고 피부도 안 좋아져 자신감을 잃은 나머지 연기는커녕 학교마저 포기한 채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조용히 잊히기로 한 것입니다반면 어릴 적에는 늘 단역에 불과했던 루리의 유일한 친구 승찬은 현재는 스타가 되어 승승장구하면서 루리와 완벽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에 과학자인 루리의 이모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수록 점점 더 예뻐지는 미칩(chip)’을 개발해 조카에게 이식함으로써 연기자의 꿈을 되찾아주려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칩을 이식한 루리에게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야기는 아름다움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루리의 단선적인 성장에 국한되진 않습니다우선 실수로 미칩을 거꾸로 삽입한 탓에 루리는 사랑을 받으면 예뻐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야 예뻐진다는 전복적인 설정이 가세합니다. 스타 연기자인 승찬 역시 심한 난독증으로 말미암아 대본을 외우는 데 늘 애를 먹는 터라 루리의 도움 없이는 연기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눈에 띄는 외모로 연예기획사에 발탁된 하라는 출중한 외모와는 달리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연기력의 소유자입니다하라는 창작자의 의도에 걸맞게 대본을 해석한 루리의 도움을 받아 오디션에서 다른 지원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기함으로써 작가의 눈도장을 받기도 합니다이렇듯 세 명의 주인공이 절묘하게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내는 도약과 위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를 더해갑니다.

<소야신집>(글 그림 홍다)은 전하지 못한 말이 의인화된 채 떠도는 가운데 이를 볼 수 있게 된 소년 전세계와 그런 떠도는 말들을 수신자에게 전해주는 소야 우체국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각 에피소드는 늘 애증이라는 모순된 감정으로 점철되곤 하는 인간관계의 틈바구니를 파고든다긴 시간 쌓아온 오해를 불식시키고그동안 죽 잊고 있던 말을 떠올려 전하는 상쾌한 결말만큼이나 따뜻하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로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만화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딜리헙(극락왕생 공식 페이지)

 

딜리헙(dillyhub.com)’의 <극락왕생>(글 그림 고사리박사)은 당산역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던 주인공 자언이 2011년 고시절로 회귀해 귀신과 관련한 기묘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지옥의 호법신 도명존자 때문인데요지나친 공명심에 눈이 멀어 악귀도 아닌 자언을 멋대로 지옥으로 끌고 가려다 이를 관음보살에게 들킨 것입니다관음보살은 도명으로 하여금 2011년 1년 동안 자언과 함께 부산에서 생활하면서 그를 귀인으로 만들어 극락왕생시키도록 명합니다강한 불교색으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별다를 것 없는 여고 안에 한국형 귀신을 여럿 형상화하며 생경한 판타지를 구축한 이 작품은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을 통해 작품의 고유한 매력을 더욱 명확히 드러냅니다.

자언은 죽음 이전그것도 멋대로 옛 학창 시절로 회귀한 것에 대해 의미 없는 시간을 다시 한번 겪는 로만 생각했건만의외로 그 안에서 새삼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자연히 그 과정은 담백하고도 진중한 의미로 수렴됩니다. 또한, 컬러가 아닌 흑백을 고집한 작화 역시 정교하고도 독특한 구상화를 통해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여기에 만화 장르 특유의 개그컷까지 절묘하게 더해지면서 굉장한 재미를 줍니다두말할 필요 없는 수작입니다. 이밖에도 외계 생물그러나 게임을 좋아하는 백수에 불과해 보이는 남자들과의 동거 생활을 짧은 형식으로 구성한 <@-effect>(글 그림 Area)는 여타의 일상만화와는 선을 긋는 무심한 듯 잔잔한 스타일로 눈길을 끌며단편 <란제리요정>(글 그림 다과)은 깜찍한 그림체로 은근하게 정체를 가린 공포만화로서 작품의 메시지에 힘을 더합니다.

웹툰 시장이 포화라는 말은 결국 중소 규모의 웹툰 플랫폼의 숫자 역시 한계까지 다다랐다는 말일 것입니다실제로 몇몇은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고다른 몇몇은 합병을 통해 중소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앞으로 치고 나가려 단단히 벼르는 중이기도 합니다그만큼 많은 작품이 비단 네이버나 다음이 아닌 곳에서 다양한 소재와 연재 주기새로운 구성과 형태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그러나 포화 상태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제한적인 게 사실입니다분명한 건익숙한 웹툰 플랫폼을 벗어나면 반드시 색다른 작품이 보인다는 점입니다물론 개중에는 더러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2,500여 작품이라면 그 안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자신만을 위한 작품 또한 있을 게 분명합니다당연히 그걸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플랫폼이기 때문일 터그야말로 보물을 발굴하는 재미가 도처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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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탈 코르셋’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나부터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장 지워주는 남자> 보고 화장을 조금 덜 하게 됐다”,
“만화 보고 머리를 잘라 봤는데 너무 편하고 좋다”

같은 피드백을 받으면 너무 기쁩니다.
제가 처음 느꼈던 편함을 아니까요.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평범한 외모의 대학생을 모델로 발탁해 서바이벌 메이크업 화보쇼에 출전합니다여기까지 들으면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다시 태어나는 성공담그리고 외모 변신을 통한 자기 긍정 속에서 꽃피는 로맨스를 예측하기 쉬운데요그러나 네이버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는 ‘예쁘지 않았던’ 여성이 예뻐지는 이야기를 넘어 여자는 왜 예뻐야 하는지, 예뻐 보이기 위해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예쁜 외모란 과연 ‘권력’일 수 있는지 등 지금 한국 사회에서 꾸밈 노동과 ‘탈 코르셋’(여성에게 과도하게 요구되는 꾸밈 노동과 규범적 여성성을 거부하는 운동)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끓어오르고 있는 질문들을 던집니다.

TV쇼를 무대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참가자들의 흥미로운 서사가 펼쳐지는 가운데 이러한 질문들을 통과하는 주인공 예슬은 점점 자신을 찾아가며 성장하고, 그가 출연 중인 <페이스오프 신데렐라>는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짜 제목은 화장 지워가는 여자인 것 같다는 독자의 반응이 특히 인상적인 이 작품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가고 있을까요? <화장 지워주는 남자>의 이연 작가를 만났습니다.

 

 

Q. <화장 지워주는 남자>를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대중적인 소재로 얼마나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였습니다소재 선택은 대중적인 소재 중 가장 내 삶에 밀접한 것을 선정했습니다. 마침 당시 네이버웹툰에 메이크업에 관한 만화가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Q. 어떤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를 펼쳐나갈지도 중요했을 텐데,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할 말은 하고 점점 적극적으로 화보 촬영에 참여하는 예슬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 이미지 출처 : 인터넷서점 YES24 도서 소개 이미지

 

역시 대중성을 고려해 평범한 여자와 능력 있는 남자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구상했습니다그런데 주인공이 너무 평범해서 도움만 받으면 매력이 없으니까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았고 민폐 여주라고 욕먹는 것도 싫었습니다. 유성이 메이크업을 해주는 만큼 예슬이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점점 살을 붙여나갔습니다예슬이 사진을 전공한다는 설정은 PD님이 주신 아이디어 입니다.

 

 

Q. 초반에는 평범한 예슬이 화장을 통해 예뻐지며 ‘신분 상승’ 하는 이야기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선 촬영에서 ‘강하고 섹시한 여전사’ 콘셉트를 제안하는 유성에게 예슬이 “전사는 강한 느낌인데 왜 섹시하기까지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 캐릭터의 특별함이 전해진 것 같습니다.

만약 그 질문에 대해 아닌데여전사들도 전부 강한데?”라는 반응만 나왔다면 예슬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로 보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독자들이 얘도 나랑 같은 고민을 하고 있네?’ 라는 생각과 함께 예슬이에게 공감해주셨습니다본인들이 숱하게 보고 겪은 일이 있어서 예슬이를 특별하게 여겨주신 것 같습니다. <화장 지워주는 남자>에서 여성이 고통받는 모습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는데다행히 한 줄만 언급해도 독자들이 맥락을 파악해 주십니다본인이 겪은 경험이 있기에 그게 가능한 거란 생각이 듭니다.

 

 

Q. 예슬이 자라며 들었던 “대학 가면 다 예뻐져”, 메이크업 숍에서 들은 “요새 화장은 예의” 같은 말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모든 사람이 한 번도 안 들어본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사실 저는 어릴 때는 화장품 냄새와 촉감을 싫어해서 스킨로션도 일절 안 발랐습니다나이 먹어도 절대 화장 안 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화장을 시작했습니다.(웃음)

 

 

Q.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SNS의 소위 얼짱이나 아이돌을 보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 같은 말남자 고등학교에 흔히 붙어 있다는 열심히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 같은 급훈이 사회적인 압력으로 존재하니까 저도 당연히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여자의 가치는 예쁨에서 결정된다고 말입니다.

학생 시절에는 톤업 로션에 틴트나 빨간색 립밤 바르는 게 유행이었는데, BB크림도 막 출시될 때라 제법 빠르게 사용했었습니다피부 색조를 균일하게 만들고 잡티를 가려주니까 BB크림 바른 피부를 내 기본값으로 놓은 것 입니다여자는 무조건 잡티 없는백지장 같은 피부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BB크림을 안 바른 내가 결점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고그래서 화장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어느 정도로 화장을 열심히 했나요?

스무 살 때부터8년 정도 본격적으로 화장을 했습니다.제품도 많이 사서“화장품은 인테리어야.그걸 누가 다 발라?손자한테 물려줄 거야!”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입니다.예를 들어 레드 립이 유행이라고 하면 하나만 사는 게 아니라 나가서 모든 색을 발라본 다음 두 개를 샀습니다.

그래 봤자 한 세 번 쓰고 내년 되면 유행 지나가는데.이른바필수템이라는 걸 다 샀고 화장품 정보공유 사이트에이 아이섀도 써보니까 장난 아냐.눈이 엄청 그윽해져!”같은 글이 올라오면그럼 나도 그윽한 눈매 가져야지!”하면서 저한테 어울리는지 테스트도 안 해보고 주문했습니다. (웃음)꼭 유행에 편승해야 하고, ‘이거 없으면 나만 뒤떨어지겠네?’하는 기분으로 지냈는데,이런 경험들을 만화 속 화장품 회사인GC의 경영진들이 잘 써먹고 있더라고요. 제가 엄청나게 몰두하고 열성적으로 해본 기억이 반영되는 것 입니다
.

 

 

Q. 그렇게 화장을 좋아했는데 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탈 코르셋’ 담론을 어쩌다 접하게 되었습니다처음에는 탈 코르셋 인증 사진 같은 걸 보고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했는데요그러다 제게 느낌표를 만들어준 계기가, ‘왜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면 남자는 그냥 단정하게 나오라고 하면서 여자한테만 가벼운 화장을 요구할까?’ 라는 질문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그게 확 와닿은 이유는, 저도 옛날에 아웃렛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매일 규정 때문에 화장하고 갔기 때문입니다심지어 스무 살 때 반영구 아이라인 시술도 받았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아침에 화장 빨리하려고 얼굴에 문신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합니다그냥 화장을 안 하면 되는데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다 보니 여자에게만 꾸밈을 강요하는 회사의 규정 때문에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나아가서는 얼굴에 문신까지 하게 되는 게 노동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이제 거의 화장을 하지 않지만  이게 예전보다 훨씬 편합니다.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누군가 왜 그런 걸까?’라고 질문해줬기 때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그래서 먼저 질문을 던지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Q. 의문을 갖고 생각하더라도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일단 여자들이 좀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신기한 게뭔가 하나를 편하게 하기로 결심하면 거기에 딸려서 바뀌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성인이 되고 하이힐을 신게 되면서 약속에 나갈 때마다 비닐봉지에 단화나 슬리퍼를 넣어 갔습니다친구랑 얘기하다가 발 아프면 갈아신고집에 돌아갈 때도 지하철에서 슬리퍼 신고 갔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편한 신발 신고 가면 되는데예쁜 원피스 입었으니까 예쁜 구두를 신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이제 편한 신발을 신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그에 맞춰서 원피스를 안 입게 되는 것 입니다.

발을 조이는 게 싫어서 그만두니까 몸을 조이는 것도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이걸 탈 코르셋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그렇게 하나부터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그래서 “<화장 지워주는 남자보고 화장을 조금 덜 하게 됐다”, 만화 보고 머리를 잘라 봤는데 너무 편하고 좋다 같은 피드백을 받으면 너무 기쁩니다. 제가 처음 느꼈던 편함을 아니까요.

 

 

Q. 예슬의 친구이자 <페이스오프 신데렐라>의 유력한 우승 후보인 주희원은 아름다운 외모로 인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을 계속 고민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희원이는 예쁜 여자에게서 예쁨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캐릭터입니다흔히 예쁜 여자는 고시 3관왕이라는 말을 하는데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결국 돈 많은 남자 만나서 편하게 산다는 얘기입니다그러면 그 안에서 그 여자의 삶은 없는 거 아닌가요?

예쁜 여자에겐 권력이 있다고 하지만그게 진짜 권력이라면 희원이를 공격하려 했던 남학생이 애초에 그런 짓을 못했겠지요또한희원은 누구보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예쁨에 가려져 실력으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실력보다 외모를 더 인정받는 사람의 딜레마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Q. 희원이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는 점을 비롯해 대회에 참가한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경쟁하면서도 각자의 서사 안에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고군분투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 북트레일러

여캐(여성 캐릭터)는 너무 쉽게 욕을 먹습니다그래서 욕 안 먹는 여캐를 만들려면 캐릭터 설정 폭이 진짜 좁아집니다무조건 정의롭고 정당하고 예쁘면서 사이다를 줘야 하고절대 주인공에게 나쁘게 굴면 안 되고하는 일이 없으면 또 민폐 캐릭터 취급을 받습니다. 희원이도 처음 등장했을 때크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쟤는 X년이다”, “네이버웹툰 핑크 머리는 다 악녀구나” 하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사실 <페이스오프 신데렐라>라는 대회 자체가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축소판인데그걸 놔두고 얘가 나쁘네’, ‘쟤가 더 나쁘네’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캐릭터에 관해 보여줄 때 이 만화의 최종 빌런이 뭘까그게 정말 여자일까정말로 빌런이 사람이기는 할까?’라는 점에 신경을 많이 쓰며 그힙니다.

 

 

Q. 열한 살 키즈 모델 장미미를 통해서는 미디어가 여아를 성적대상화 하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우연히 아동복 쇼핑몰 화보를 봤는데 여아와 남아를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 달랐습니다특히 수영복 화보에서 5~7세 정도로 보이는 여아에게 성인처럼 화장을 시키고 비키니를 입혀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게 한 걸 보고 정말 놀랐는데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런 모습에 긍정적인 반응혹은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 충격받았습니다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희생되지 않으면 좋겠고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도 강화되길 바랍니다.

 

 

Q. 아이돌 메이크업 미션 편에 등장한 걸그룹 멤버 김향기의 “웃으면서 해내고 있는 게 아니었어. 우리에게 허락된 얼굴이 웃는 것밖에 없었던 거야”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생각 끝에 나온 에피소드였나.

악성 댓글 문제도 있고결정적으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건 시중에 돌아다니는 다이어트 레시피였습니다. ‘걸그룹 누구 식단 관리법’ 해서상추만 먹는다거나 아침엔 사과 하나점심엔 아몬드 여섯 알저녁엔 고구마 하나 먹고 끝이라는 식입니다그걸 먹고 엄청 바쁘게 움직이는데건강 쪽으로 많이 걱정되었습니다그래서 아이돌에 관해 알아보니 몸의 고통이 당연시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굶고하이힐이 안 벗겨지도록 테이프를 감고 춤을 추기도 하고몸이 아파도 방송을 해야 하고치마 아래 각도의 사진이 돌아다니거나성희롱적 악성 댓글들이 달리고아파서 표정이 좀 안 좋으면 또 태도가 나쁘다라거나 대충 한다고 지적받고 있었습니다그런 점에서 아이돌은 만화에서 요구되는 욕먹지 않는 여캐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그들이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Q. 동화를 모티브로 한 화보 미션에서는 ‘고수머리 리케’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카드로 내놓아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동화 원전 같은 걸 찾아보기 좋아해서 <푸른 수염>을 쓴 샤를 페로의 작품집을 가지고 있는데, ‘고수머리 리케는 거기에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처음에는 신데렐라나 인어공주로 미션을 생각하다가이번 회차에서 끊고 갈 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고수머리 리케를 던지면 궁금해할 것 같았습니다실제로 모르는 분들이 많았는지 만화가 업로드되고 나서 실시간 검색어로 고수머리 리케가 올라가서 신기했습니다.

 

 

Q. 유성과 예슬 팀뿐 아니라 라이벌 팀의 다양한 화보 콘셉트, 퍼포먼스를 구현하려면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줄거리를 생각해둔 다음 거기에 맞는 콘셉트나 기법을 찾는 편입니다. 메이크업 화보를 굉장히 많이 찾아보고핀터레스트의 메이크업 사진들을 보기도 합니다실제 업계 종사자의 인터뷰를 통해 모티브를 따올 때도 있고 디테일한 표현이나 아이디어는 제가 발전시키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예전에 인터뷰한 사진작가께서 추천하신 닉 나이트를 예슬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라는 설정으로 넣었는데 이 작가의 사진을 검색해보니 존 갈리아노 패션쇼가 나왔습니다굉장히 멋져서 기억해뒀는데나중에 고수머리 리케’ 화보 콘셉트를 구상하다 보니 그 쇼에 나온 것처럼 특수효과로 파우더가 날리는 효과를 넣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그리고 주희원의 아이돌 메이크업 같은 경우 메이크업 자문 선생님께서 모델의 몸에 관절 같은 걸 그려서 진짜 인형처럼 연출해보면 신기하고 재밌을 것 같다고 하신 데서 떠올렸습니다.

 

 

Q. 매회 구성이나 편집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주는데요. 특히 인터넷 방송 시청률 경쟁 편에서 제작진이 진흙탕 싸움을 유발하기 위해 투입한 설정들이 재미있습니다.

 

 

파워 밸런스 맞추는 것과 독자들이 승자를 예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 중요시합니다누가 봐도 이번 화에선 희원이가 이긴다 하면 재미가 없고알지도 못하는 팀이 갑자기 1위 하면 이상하니까 전반적으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지점과 의외성을 혼합해서 내용을 만들고 순위를 종합합니다.

인터넷 방송 편은원래 2라운드로 구성했는데 그러면 8개 팀에 돈이 너무 적게 분배될 것 같아서 3라운드로 늘렸습니다그런데 유성이가 민낯을 공개하면 당연히 시청자가 엄청 늘어날 테니까 예슬이가 얼굴 공개할 이유도 없어지고 임팩트도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그래서 시청률 교환권이라는 아이디어를 냈고그걸 쓰려면 다른 팀 아이템도 만들어야 하니까 전파 방해음소거 같은 설정도 떠올랐습니다

 

 

Q. 외모 강박과 꾸밈 노동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한편 데이트 강간 약물, 택시 기사의 성희롱, 나이 든 비혼 여성을 향한 편견 등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과 폭력도 서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경험담입니다. 제가 택시를 정말 많이 타니까 예슬이가 겪은 택시 에피소드에는 제 경험과 주변 여자들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즉시 달려온 유성이는 픽션이지만 택시 기사의 성희롱은 현실입니다약간의 과장이 있을지언정 택시에서 그런 얘기를 한 번도 안 들어본 여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길에서 전화번호 물어보는 남자한테 거절하면 맞을까 봐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데이트 강간 약물 같은 건 제가 겪은 적은 없지만그걸 테스트하는 매니큐어 자체는 실제로 개발을 한 물건이니까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저런 일이 실제로 있냐?”, “어떻게 저런 일이 한 명한테 다 일어나냐?”라고 하지만그게 아니라는 걸 여자들은 다 알지 않나요?

 

 

Q. 유성과 예슬의 관계는 로맨스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지만, 예슬이 유성에게 너무 의지하거나 그에게 구원받는 관계가 되지 않도록 고심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펼쳐가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구원받는 관계 이야기를 하셨는데결국 구원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남이 해줄 수 있는 건 가벼운 계기를 만들어준다거나 손을 잡아서 이쪽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라고 이끌어주는 정도니까요. 예슬이가 자기 힘으로 변화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유성이가 하는 건 계기를 마련해주는 정도지만그게 누군가에겐 큰 발판이 될 수 있겠죠그런 감정과 관계들을 좋아합니다원래 막 끈적한 감정보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동지애를 더 좋아해서어떤 목표를 향해 예슬이와 유성이가 나란히 이인삼각을 열심히 해 나가며 의견을 주고받는 수평적인 관계로 진행해 나가려고 합니다.

 

 

Q. <화장 지워주는 남자>를 통해 작가로서 무엇을 계속 중심에 두고 싶은지 조금이라도 분명해진 지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성공한 만화는 대부분 남자가 주인공인데, 저는 남자 주인공에 이입을 잘 못 하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니까 만화가로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장 지워주는 남자>를 하면서 독자들이 감사하게도 여자 주인공을 많이 좋아해 주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그러니까 제가 잘 할 수 있는 여자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글 위근우 사진 최민호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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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지난 2019 11 21일 넷플릭스가 CJ ENM의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의 2대 주주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넷플릭스는 OTT(Over The Top Service)라 불리는 글로벌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데요. 넷플릭스는 영상·영화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됐습니다한국에는 최근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연합한 웨이브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넷플릭스가 스튜디오드래곤의 지분 140만 주(4.99%)를 인수한 건 우리가 ‘콘텐츠 IP 시대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IP 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의 약자입니다콘텐츠 IP에 대해 이성민(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원) ‘콘텐츠 지식재산 활용 산업 활성화 방안연구(2016)에서 콘텐츠에 기반을 두어 다양한 장르 확장과 부가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관련 지식재산권 포트폴리오로 정의했습니다산업적 맥락에서 콘텐츠 개별 작품보다 연계 사업의 원천으로 IP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콘텐츠 하나를 잘 만들어 소위 대박을 나게 하는 것보다 연결을 통해 연계수익을 강화하는 것이 콘텐츠 IP의 핵심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웹툰 공식 페이지 캡처

 

바라트 아난드는 <콘텐츠의 미래(The Contents Trap)>에서 콘텐츠 자체의 힘보다 ‘연결(connection)의 힘을 믿으라 주장합니다파일공유 사이트로 공멸할 줄 알았던 음악 산업은 “CD 수요가 감소하는 만큼 라이브 콘서트의 입장권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콘서트 수익이 증가했습니다.(228쪽) 음악 산업은 전통적인 ‘음반 사업이 아니라 포괄적인 콘텐츠 IP 산업이 되었습니다콘텐츠 산업에서 핵심은 ‘연결이고,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건 취향을 공유한 사람 즉 ‘팬덤입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후 대중들은 일상적으로 다량의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콘텐츠에 지급하는 비용은 점점 낮아졌습니다웹툰이나 유튜브처럼 소비 자체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 콘텐츠도 일반화되었습니다콘텐츠를 잘 만들어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무료로 서비스한다고그거 나쁜 거야하지만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격언인  “좋았던 과거의 것들이 아니라 나쁜 오늘의 것들에서 시작해야 한다. (Don’t start with the good old days, but the bad new ones)처럼 우리의 고민은 나쁜 오늘즉 나쁜 새로운 것(bad new ones)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것은 미디어에 종속됩니다만화를 구분하는 명칭도 소년만화청소년만화성인만화순정만화 식이었다그런데 ‘오늘의 것에서는미디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미디어 대신 플랫폼소비를 위한 틀이 등장했습니다디지털 환경은 사용자 편의성을 높여 끊김 없이(Seamless) 독자들을 몰입하게 했습니다. PC에서 웹툰을 보다가스마트폰 앱을 가동해서 봐도 큰 문제가 없다네이버웹툰카카오페이지다음웹툰 등은 수많은 작품을 보편적 대중성을 기반으로 사용자에 맞춰 작품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습니다넷플릭스처럼 완벽한 큐레이션 기반 서비스는 아니지만차곡차곡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심리스한 경험은 사용자의 편의성뿐 아니라 특정 작품을 둘러싼 경험의 확장을 설명하는 데도 유효합니다내가 특정 콘텐츠를 좋아한다면 소셜미디어나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팬덤에 접속할 수 있는데요팬덤에 접속하여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유저들과 함께 IP를 소비하며 가치를 확산합니다아이돌 산업마블 시네마스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마블 영화가 팬덤을 가장 효과적으로 묶어 내고 관리합니다그 중심에는 IP가 있습니다.

▲ 이미지 : 일간스포츠 <아색기가>

 

IP, 사용자 경험팬덤 형성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것의 관점에서 웹툰을 이해해야 합니다애초에 웹툰은 탄생부터 ‘오늘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웹툰은 21세기 시작된 새로운 만화입니다. 기존 만화를 디지털화해 유통한 전자책(e-book)과 구분해야 합니다. 전자책은 유통채널의 확대지만, 웹툰은 새로운 개념의 등장입니다. 1990년대 후반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된 만화와 2001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양영순의 <아색기가> 등의 작품이 디지털로 공유되며 웹툰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료로 콘텐츠에 접근하게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웹툰으로 소비된 <광수생각>이나 <아색기가> 등이 얼마나 많이 공유되었는가를 떠올려 볼까요? 웹툰은 이처럼 디지털 환경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로 등장했고한국형 포털(사용자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사이트에 웹툰 서비스로 안착했습니다. 20061월 네이버 도전만화 서비스가 시작되며 콘텐츠 경험이 구독에서 창작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웹툰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중요 서비스의 하나로 유저를 붙잡아두고트래픽을 올리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레진코믹스 공식 페이지 캡처

 

아이폰 출시 이후 포털에 종속된 웹툰 서비스도 변화했습니다. 2013년 레진코믹스, 2014년 탑툰 등 유료 웹툰 플랫폼이 등장하며 모바일 앱을 통한 ‘구매 경험이 추가되었습니다레진은 런칭 당시 네이버웹툰과 다른 웹툰을 전면에 내세우며 팬덤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경험의 확대와 팬덤 형성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웹툰 유료화를 성공리에 끌어냈습니다.

스마트폰이 끌어낸 변화는 놀라웠고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했습니다콘텐츠 소비특히 디지털 콘텐츠 소비는 스마트폰으로 집중되었습니다. 웹툰은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로 주목받았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다음웹툰컴퍼니)라는 웹툰 회사를 개별 회사로 독립시켰습니다네이버웹툰은 2014년부터 라인웹툰으로 글로벌 서비스에 나섰고, 2018년 네이버 북스를 네이버 시리즈로 개편해 통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카카오는 2016년 카카오 재팬에서 픽코마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8년 다음웹툰컴퍼니를 카카오페이지를 운영하는 포도트리의 사내회사(CIC)로 독립시켰습니다.(현재 포도트리는 카카오페이지로 회사명을 변경)네이버와 다음이 네이버와 카카오로 변화하는 와중에 두 거대 IT 회사는 모두 웹툰 회사를 웹소설전자책 서비스를 포함한 디지털 콘텐츠 회사로 독립시켰습니다그리고 네이버와 카카오는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웹툰을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2019년 9월 24일 네이버웹툰 서비스 밋업에서 김준구 대표는 네이버웹툰의 미래에 대해 “골드러시 시대에는 금맥 찾기보다 청바지 사업이 성공했다는 말이 있다. IP를 꾸준히끊임없이 제공하는 플레이어들에게 글로벌 OTT들의 전쟁은 굉장한 기회이자 성공의 기회다. (중략네이버웹툰은 작가들이 작품을 연재하게 되면 너무나 편안하게 국경을 넘나들며 독자와 IP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전무후무한 플랫폼 (중략) OTT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우리 IP의 가치는 이들을 통해 끊임없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웹툰이라는 IP의 사용자 경험을 글로벌하게 확장하면글로벌 OTT들은 웹툰 IP를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략입니다. 넷플릭스의 스튜디오드래곤 지분 인수의 핵심도 경쟁력 있는 한국의 콘텐츠 IP를 확보하려는 전략입니다. 2019~2020년은 ‘글로벌 콘텐츠 IP 시대’인 것입니다. 글로벌 콘텐츠 IP 시대에 한국 웹툰은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빅 2 체제로 완전히 정착되어가는 것일까요? 두 회사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새로운 작가를 흡수하고, 스튜디오에 투자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게임을 제작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제 중소규모 플랫폼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일까요?

웹툰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낮은 진입장벽을 갖고 있습니다. 만화방 시대에는 시장 독점도 가능했고, 공급을 조정해 신규 시장 진입자를 밀어내기도 했습니다. 잡지-단행본 시대에는 대부분 익숙한 잡지를 구매했기 때문에 신규 잡지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 공유되어온 링크를 누르기만 해도 바로 웹툰을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처럼 콘텐츠를 알리고소비하는 데 중간 단계 ‘미디어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졌습니다문제는 낮은 진입장벽으로 콘텐츠에 접근한 사용자를 붙들어 둘 수 있는 지속력입니다.

콘텐츠 IP의 소비를 지속시키기 위해 ‘취향'이 중요해집니다. 취향을 공유하는 순간 사용자는 팬덤에 들어가는데요. 이를 정리하면, 디지털 시대 콘텐츠의 낮은 진입장벽 콘텐츠 경험 소비 ③취향 공유 ④팬덤 확대 ⑤안정적 수익과 재생산 구조로 이어집니다. 안정적인 생태계의 구성은 꼭 대형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계적인 스타가 된 BTS는 한국의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이 아니었지만취향으로 연결된 팬덤을 꾸준히 관리하고 늘려나갔습니다시대가 변화하기 때문에 취향을 연결한다면 충분히 자체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딜리헙, 만화경, 에끌툰은 눈여겨볼 의미 있는 플랫폼입니다.

 

 

2018 6월 서비스를 시작한 딜리헙은 누구나 자유롭게 플랫폼에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해 수익을 창출하는 ‘오픈 플랫폼입니다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은 아닙니다. 2015년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포스타입도 오픈 플랫폼으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마사토끼작가는 포스타입에 자신의 작품을 연재하고 얻는 수익을 매월 오픈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딜리헙은 기존 오픈 플랫폼과 다른 차별성을 기획하고취향을 연결했습니다딜리헙은 기존 오픈 플랫폼 서비스들과 어느 지점이 다른 걸까요? 구글 플레이에서 딜리헙 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좋은 작품이 보고 싶을 때,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 상자 딜리헙 앱.

새롭게 발견하는 취향. 발견해 보세요.
당신을 사로잡는 특별한 이야기. 멋진 이야기들. 만나보세요.

딜리헙이 준비한 흥미로운 읽을거리.”

 

 

이 중에서 강조된 키워드는 ‘새롭게 발견하는 취향 ‘멋진 이야기들’ 입니다이 지점이 차별점입니다플랫폼이 작가와 독자에게 취향을 제안하고 있습니다딜리헙이 제안한 취향은 무엇일까요딜리헙은 장르 카테고리에 판타지일상드라마 등 익숙한 장르 구분과 함께 BL GL을 명기했습니다플랫폼의 작품을 소개하는 ‘딜리스테이션에서 처음 소개한 작품이 고사리박사 작가의 <극락왕생>입니다작품을 소개하는 카피도 명확합니다. “이제는 여성 주인공들이 활약할 때한국적 판타지를 그리는 여성 서사 화제작입니다카테고리의 구성고양이 캐릭터를 내세운 홍보 등을 함께 종합해 보면 딜리헙이 제안한 취향이 ‘여성 서사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애초에 서비스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작가를 존중하는 플랫폼으로 기획했고이 기획에 공감하는 작가와 독자들이 딜리헙을 통해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현재 딜리헙은 첫 화면에서 다양한 큐레이션을 실시하며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작품과 독자를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에끌툰은 특이하게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웹툰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2015 7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김민석 대표가 2010년 웹툰 <헤븐리스파이>를 연재하는 홈페이지로 시작해 2015 7월부터  ‘에끌툰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기독교적 소재나 세계관을 활용한 웹툰이라는 확실한 취향으로 꾸준히 팬덤을 묶어 내고 있습니다. 종교 웹툰이라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차별성을 갖고 있지만에끌툰은 한발 더 나아가 웹툰을 구독하는 젊은 사용자들과 공감하는 작품을 개발합니다. <마가복음 뒷조사>(글 그림 러스트)처럼 성경을 당대의 문화와 역사적 상황을 담아 살펴보는 작품, <비혼주의 마리아>(글 그림 린든)처럼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젠더 차별의 문제와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 <영생을 주는 소녀>(글 러스트 그림 린든)처럼 SF까지 작품의 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웹툰으로 일반 사용자까지 연결성이 확대되는 작품들을 선보이는데요보수적인 시선으로 보기에는 파격적인 작품들이지만교회 내부의 문제로 인해 등을 돌린교회에 나가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작품들입니다단순한 기독교 웹툰이 아닌 에끌툰만의 차별성은 가치를 만들고경험하게 하며 이에 공감하는 사용자들에게 ‘멤버십에 가입하도록 유도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만화경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 캡처

 

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에서 런칭한 만화경 역시 세분된 취향에 집중합니다우아한형제들이라는 튼튼한 자본에서 시작한 플랫폼이라면 당연히 작품 숫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기존 플랫폼 독자를 끌어내려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만화경은 전혀 달랐는데요. 만화경은 ‘격주 수요일 만화 잡지’ 를 콘셉트로 내세웠습니다목차가 제공되고매호 12 작품 내외가 연재된다심지어 ‘애독자 엽서까지 운영하며 오프라인 만화 잡지를 앱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격주간이나 월간 만화 잡지 형태를 웹툰에 적용하자는 전략은 신선하지만완전히 새롭지는 않습니다더 충격적인 건 작가와 작품 선택입니다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후발주자임에도 유명 작가를 스카우트하지 않았습니다만화경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들에게 연재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직장인 감자>의 감자 작가나 <별일 없이 산다>의 키크니 작가는 기존 웹툰 플랫폼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 작품을 연재해 팬덤을 보유한 작가입니다감자 작가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7만 명이고키크니 작가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6만 명에 이릅니다감자키크니 작가처럼 소셜미디어에 연재해 일정한 규모의 팬덤을 지닌 작가와 함께 만화경은 장르적 재미보다는 일상을 공유하는 작품을 선택하며 플랫폼의 취향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만화경이 선택한 취향은 배민 폰트, ‘배민신춘문예’처럼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우아한형제들이 구축한 차별성과 어우러지며 배달앱을 주로 사용하는 20~30대 독자들을 효율적으로 묶어 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딜리헙에끌툰만화경은 거대한 웹툰 생태계에서 특화된 영역을 차지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습니다이 과정에서 이들 플랫폼은 가치와 경험을 공유하는 콘텐츠 IP 시대에 맞춰 차별화시키고취향을 연결하여 팬덤을 묶어 내고 있습니다같은 취향을 지닌 사용자를 작품-플랫폼과 연결하고자연스럽게 팬덤을 형성한다면 콘텐츠 IP 시대에 중소규모 플랫폼들은 훨씬 효율적으로 생존해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취향이고, 연결이고, 경험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팬덤입니다. 취향-연결-경험이 팬덤을 만든다면 콘텐츠 IP는 재생산 구조로 정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인하 | 만화 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5>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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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글로벌 히트작은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한국 시장 안에서도
잘 통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할 것 같습니다.

 

 

거대해진 한국 웹툰 사업에서 해외 시장 진출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기존의 만화 마니아층이 아닌 일반 대중까지 웹툰과 웹소설을 보는 환경이 만들어지며 유료 시장이 확장되었지만, 한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구울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한정적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빠르게 몸집을 불려온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등 국내 유력 플랫폼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건 단순히 도전이나 욕심의 영역이 아닙니다. 내수 시장의 한계 앞에서 이것은 차라리 미래의 생존을 위한 문제에 가까운데요. 2013년 창립 당시부터 글로벌 사업을 주요 업무로 규정하고 꾸준히 사업적 노하우를 쌓아온 만화 제작사 재담미디어의 글로벌 업무 총괄자인 노은정 이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 그래서입니다.

세계 시장이라는 것이 아직 구체적인 숙제가 아니었던 시절부터 그와 재담미디어가 그렸던 비전그리고 실질적인 어려움과 극복의 경험에 대해그와의 다음 인터뷰엔 거대한 글로벌 시장을 가리키는 장밋빛 전망이 없습니다. 그보단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조금씩 디딤돌을 쌓아온, 화려하진 않지만, 꽤 단단하고 조심스러운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글로벌 사업에 대해 고민하거나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건 바로 이 단단한 디딤돌일 것입니다. 오늘은 재담미디어 노은정 이사와 글로벌 웹툰 시장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재담미디어 내에서 본인을 비롯한 임원들의 업무 분담이 어떻게 되나.

 

 

황남용 대표가 회사 내 모든 업무를 총괄하면서 기획제작영상화, IP 관리시너지팀 등을 관리하고 있고김형남 이사가 기획제작팀에서 재담미디어의 작품 제작 총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글로벌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데재담미디어의 웹툰을 수출하는 건과 해외에서 작품을 가져오는 것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경영 관리도 일부 담당하고 있고요약하면 대표가 전체 사업을 보고 있으면 나를 포함한 임원 둘이서 실무를 나눠서 맡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현재와 비교하면 훨씬 어려운 환경이었을 것 같습니다.

 

2013년에는 작품을 수출하려면 웹툰이라는 개념부터 설명해야 했습니다컷을 잘라서 세로로 배열해 보는 만화라고 설명하면그쪽에선 페이지 만화는 없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페이지 작업을 한 이후에 스크롤 편집을 하는 작가도 있고그 반대로 하는 작가도 있다는 식으로 다시 설명해줘야 했습니다그쪽은 스크롤 뷰 개념이나 플랫폼이 없으니이미 스크롤 방식으로 편집된 웹툰도 스크롤 버전이 아닌 페이지 버전으로 만들어서 전자 출판 서비스 형태의 단행본으로 판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직원들에게 가끔 그럽니다지금은 정말 편하게 수출하는 거라고이젠 해외 바이어들도 다 웹툰이라는 개념을 알고 대표작들을 아는 상황에서 상담을 하니까요.

 

 

Q. 라인웹툰처럼 해외로 진출한 국내 플랫폼이 늘어난 것도 도움이 됐을까요?

 

아직 라인웹툰을 제외하면 해외 진출 플랫폼이 많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분명 라인웹툰의 등장 이후앞서 말한 것처럼 웹툰이라는 개념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런 전체적인 측면에선 도움이 된 게 사실입니다다만 제작자 입장에선 글로벌 사업의 다각화가 필요한데작품이 정해진 플랫폼에서만 서비스될 때 최상의 매출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가령 네이버웹툰에 서비스되는 작품이면 라인웹툰으로만 서비스해야 하는 문제들우선은 플랫폼이 성장하고 발전할수록 제작사에도 많은 기회가 생기리라 기대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Q. 최근 베이징 윈라이우문화미디어유한공사와 MOU를 맺기도 했죠?

 

 

윈라이우는 판권 판매 대행을 하는 업체입니다중국 시장은 업체가 정말 많아서 우리가 일일이 미팅을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 면이 있는데윈라이우문화미디어유한공사의 경우 투명하게 온라인에 판권 판매 마켓을 열어 놓은 곳이라 믿을만하겠다 싶어 세 작품을 계약했습니다.

 

 

Q. 중국 시장이라고 하면 저작권 문제를 비롯해 여러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두 가지 편견이 있습니다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고, 정산이 안된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저희가 지금까지 거래해온 업체의 경우 이런 문제는 거의 없었습니다. 극히 드물게 한두 군데 문제가 있었지만그것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가 처음 중국과 계약을 했던 게 재담미디어가 생기기 전인 2009, 2010년이었는데 이 당시에도 계약이 투명하지 않다기보다는 사업적인 개념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령 뭔가 미심쩍어서 물어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플랫폼과 직접 계약인 줄 알았는데지금 이야기하는 업체가 플랫폼과 직접 계약된 업체가 아니라거나계속 확인할수록 양파처럼 새로운 사실이 나오는 것이죠그러다 보니 그쪽에서 사기를 치는 건 아니더라도 복잡한 경우가 많고 불안감이 있었는데요즘은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하는 일도 있고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가령 해적판이 나오면 플랫폼에서 먼저 공격적인 대응을 하기도 합니다.

 

 

 

Q. 큰 문제는 아니더라도 글로벌 사업 특유의 애로사항은 없나요?

 

▲ 이미지 : Welcon 재담미디어

 

만화 사업 거래 규모가 아직 영상 사업보단 작다 보니 조금 소홀히 취급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피드백이 느린 경우에도 답답하고요하지만 외 사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에서 지원을 잘해줘서 상당히 편하게 일하는 편입니다우리가 동남아시아처럼 좀 작은 시장 진출을 위해 여러 번 출장을 가는 건 좀 부담이 되는데업체들을 한자리에 모아주니 행사에 참여하면 거의 모든업체를 만나 미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수월한 편입니다.

 

 

 

Q. 문화적 차이에 의한 어려움도 있나요?

 

국가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요소들이 있습니다인도네시아는 종교적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거나중국은 아무래도 심의가 강한 편이라 소재에서 한계가 있습니다가령 국가에서 학원 폭력은 절대 안 된다없다이런 입장이니 한국에서 인기 있는 학원 액션물이 진출하기 어렵습니다. 피가 튀면 안 된다고도 하고. BL(Boy’s Love)도 BL인 걸 숨기고 서비스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정서적인 교감까지만 그리고물리적으로는 손도 잡으면 안 됩니다잘 알려진 것처럼 역사 왜곡 같은 것에 대해서도 민감하고좀 의외의 경험도 있습니다대학교 재단 비리를 캐기 위해 남자 기자가 여장을 하고 여대에 잠입하는 설정의 작품을 서비스했었는데학교에 비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렸습니다사실 이야기 초반의 짧은 설정일 뿐인데도 결국 1권을 서비스하는 중에 작품을 내려야 했습니다.

 

 

 

Q. 반대로 국가별로 원하는 장르, 매출이 잘 나오는 장르가 따로 있을까요?

분명히 차이는 있는데, 로맨스 장르는 어느 나라에서나 기본적으로 잘 됩니다아무래도 소재에 있어 국가별 편차랄 게 별로 없습니다어느 나라에나 이성간 로맨스에 대한 문화는 공통으로 존재하고해당 장르에 대한 독자층도 이미 존재하니까요그 외 장르의 경우스릴러나 호러 장르는 태국이나 미국 같은 국가에서 잘 되는 편입니다.

 

 

 

Q. 로맨스가 강세라고 했는데 한국 시장에서 로맨스 장르가 잘 되는 건 30~40대 여성 독자 매출이 높아서인데요. 해외 유료 시장도 같은 맥락일까요?

 

저희 작품 중 <케세라세라>는 타깃 연령이 높은 로맨스 장르인데도 이 작품이 초기에 인도네시아에서 매출이 잘 나왔고 일본에서도 시장 반응이 좋았습니다그런 면에선 분명히 해당 연령대 독자들의 유료 매출 지분이 높은 것 같습니다반면 중국의 경우엔 웹툰 유저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게 7~15세 독자들이더라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유료 결제가 잘 안 나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Q. 작품의 국내 인기가 해외에서도 비례하는 것 같나요?

 

대부분 그렇습니다앞서 말한 <케세라세라>도 그랬지만로맨스나 판타지 장르 국내 인기작은 높은 확률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물론 너무 한국의 일상에 천착한 공감 만화라거나한국어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유희 같은 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윤태호 작가님의 <미생같은 경우도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걸작이지만특정 지역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문화를 이질적으로 느껴 잘 안 된다고도 합니다하지만 기본적으론 한국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굳이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 작품을 프로듀싱 하는 경우는 없나요?

 

▲ 이미지 : 박성우, 최해웅 작가의 글로벌프로젝트 <파동> 공식 이미지 ⓒ재담미디어

재담미디어 초기에 박성우 작가님의 <파동>을 전략적으로 해외 시장에서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박성우 작가님은 워낙에 일본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작가였고 마침 스토리도 나라나 문화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구성이었습니다그래서 대사도 일본에서 읽기 좋게 만드는 식으로 준비해서 완전 동시는 아니지만한국일본중국미국에서 연재했습니다이런 식의 글로벌 기획이 있긴 했지만 모든 작품에 대해 글로벌 히트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진 않습니다그보단 해외 시장에서 통할 것 같은 소재나 스토리일 때 회의를 통해 해당 요소를 좀 더 발전시키는 식으로 경쟁력을 강화합니다우리가 잘하던 걸 잘 유지하면서 해외 시장도 함께 고려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Q. 소속 작가들이 글로벌 진출에 욕심을 낼 수도 있지 않나요.

 

해외에서도 수익이 나온다는 걸 아는 작가님들이 처음부터 그것까지 고려한 기획을 하는 때도 있습니다.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가 중국에서 서비스됐을 때, 어떻게 해야 본인도 잘 될 수 있을지 몰라 질문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외 시장만을 생각하다가 자기 스타일까지 흔들릴 수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잘 조언하려 합니다.

가령 액션이어야 수출이 잘 된다고 하니 안 하던 액션을 하겠노라고 하면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러지 말라고 잘 설득합니다. 그냥 하시던 거 잘 하시면 된다고사실 이건 글로벌 사업과 별개로, 제작사가 작가를 관리하는 문제라고 봅니다국내 시장에서 BL이 잘 된다고 이성애 로맨스를 그리던 작가가 BL을 시도하며 괜히 흔들리면 안 되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작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 과정 자체가 우리 일이니까요.

 

 

 

Q. 재담미디어가 글로벌 사업을 하는 것도, 작가들이 관심을 두는 것도, 결국 국내 웹툰 시장 이상의 파이를 꿈꾸기 때문인데, 그런 맥락에서 웹툰 IP를 이용한 영상 시장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미지 : 드라마 제작이 확정된 (좌) 유노작가의 <고인의 명복>, (우) 지원 작가의 <85년생> ⓒ재담미디어

 

사실 재작년에 영상 자체 제작을 위한 시도를 해봤는데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웃음영상 팀을 내부에 들이는 방식으로 사업을 세팅하다가우리가 해당 분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걸 뼈아프게 느끼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대신 그 과정에서 많은 업체를 만나면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던 건 큰 수확인데요. 덕분에 웹툰 IP 판매도 좀 더 수월해진 면이 있습니다.

현재로선 웹툰 제작에 충실하고, 2차 판권 계약에서 드라마 판권 지분을 일부 가져오는 형태 같은 걸 고려하고 있습니다조금 소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원천 콘텐츠로서의 웹툰 IP를 우리가 아주 잘 만들어서 영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 직접 찾아오게 하자는 게 우리의 생각입니다실제로 앞서 말한 중국의 윈라이우도 먼저 우리에게 접근한 케이스다웹툰을 찾는데 어디로 가면 좋겠냐고 물으면 재담미디어로 가보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때도 있습니다.

 

 

 

Q. 모든 이야기를 종합하면, 재담미디어는 섣불리 판을 키우기보단 잘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제가 담당하는 쪽은 그런데대표님은 좀 더 의욕적으로 일을 확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영상 미디어도 직접 제작하고 싶고글로벌 히트작도 만들고 싶어하죠 (웃음기본적으로 대표가 다양한 사업적 아이디어를 내고 비전을 제시하면 저와 김형남 이사가 그걸 좇아가면서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논의하고 이해가 안 되면 문제를 제기하며 일을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굴러온 것 같습니다.

새롭게 하는 일도 있고리스크 관리를 위해 빠르게 접는 일도 있고가령 재담미디어를 설립할 땐 우리 작품이 많이 쌓이면 그 작품들로 아예 웹툰 플랫폼을 만들어보자는 로드맵도 있었습니다그런데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일의 규모도 너무 컸고수많은 중소 웹툰 플랫폼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걸 보니 이건 건드려선 안 될 일 같더라그런 식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편입니다.

 

Q. 그런 식의 파트너십은 함께 오래 일하다 보니 가지게 된 걸까요?

 

 

어쩌다 보니 오래 일하게 됐습니다. 황남용 대표와 2009년부터 함께 일했으니 벌써 10년입니다. 저는 원래 일본어 통역을 했었는데 2006, 2007년에 일본에서는 폴더폰으로 만화 컷을 다 잘라서 컷 단위로 보는 컷뷰 서비스가 붐이었습니다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그걸 벤치마킹하며 일본 쪽과 미팅했고 그때 통역 일을 많이 하다가 그 업체에 취직까지 했습니다작품을 수입해오면 번역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 업체에서 온라인 만화 잡지 <만끽>도 제작했는데, 그 당시 황남용 대표가 <만끽>에서 일하다가 독립했습니다. 이후 2009년에 다른 회사를 차리며 함께하자고 제안해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Q. 앞서 해외 시장의 반응 변화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폴더폰의 컷툰이 스마트폰의 웹툰으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제가 2007년 처음 만화 업계에 들어올 때만 해도 웹툰 연재는 안 하겠다는 작가들이 다수였으니까요내 만화가 왜 무료냐이런 반응이었습니다하지만 웹툰 시장이 성장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했습니다. 저는 일본 시장을 많이 보는데 저쪽에서 컷뷰 만화가 인기가 있는 것처럼인터넷으로 만화를 보는 일이 활성화될 거라고 봤습니다다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Q. 시장에 대한 예측과 별개로 웹툰에 호감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있을까요?

귀귀 작가의 <정열맨> 같은 젊은 감각의 개그 만화들. 하게 누워서 킬링 타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매우 큰 장점으로 느껴졌습니다.

 

 

 

Q. 과거의 만화와는 다른 콘텐츠, 다른 시장이 생긴 건데 이것이 국제적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나요?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만화 보니?”라고 물을 땐 부정적인 의미가 숨어 있지 않았나요공부 안 하냐혹은 애처럼 만화나 보느냐같은그런데 요즘 웹툰 보니?”라는 말에는 그런 비하적인 뉘앙스가 없는 것 같습니다.

노은정 이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 느낀 점은 그만큼 웹툰이라는 매체가 좋은 대접을 받고 있고 원천 콘텐츠로서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작가들 역시 스스로 지위 향상이 됐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 경향이 해외로도 이어지면서 웹툰이 망가와는 다른 시장을 형성하고 유저를 모으고 있습니다접근도 쉽고그런 면에서 앞으로 해외에서도 원천 스토리로서 인기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근우  최민호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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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그냥 네이버 검색 결과나 제 책이 팔리는 서점에 '베스트셀러딱지가 붙어있다는 것그리고 매달 수백수천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서점의 매대 한쪽에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초판 3천 부가 다 나가면 선방, 5천 부 팔리면 베스트셀러라는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3만 부 판매가 지니는 의미는 엄청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글쎄, 정작 저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 겸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정말진짜로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심지어 인세라는 이름으로 꽤 큰 액수가 통장에 찍혀도 그저 아이번 달도 감사합니다하고 석 달 치 월급을 한꺼번에 몰아받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석 달 치라고 한 이유는인세의 정산이 3개월마다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오히려 ‘베스트셀러’라는 라벨 때문에 나의 마음 한쪽에는 늘 기쁨보다는 부채감이 존재합니다.

 

▲ 이미지 : 책 <썅년의 미학> 이미지 ⓒYES24 전자서점

저의 책 <썅년의 미학>은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쓰고 그린 저의 첫 만화 에세이 단행본입니다. 여성이 여성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페미니즘이지만, 혹은 페미니즘이기에 저는 마케팅을 할 당시에 담당 부서에 나의 책이 ‘페미니즘’ 코너가 아닌 ‘에세이’코너에 놓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좀 더 쉽게 페미니즘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 속에는 제가 겪은 일도 있고 제 주위의 여성이 겪은 일도 있고혹은 우리 모두 겪었으나 그동안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최근 발매된 해당 책의 2권 격인 <썅년의 미학 플러스>의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저는 첫 책이 발매된 지 1년이 넘는 시점에도 서점의 벽장 자리가 아닌 매대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작가로서는 너무도 기쁘지만, 여성으로서는 아직도 이 책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다가 끝내는 슬퍼지는 경험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책이 나오고 1년쯤 지나면 제 책은 다시는 필요 없게 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즈음 되면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당연해서 제가 쓴 이야기는 그저 고루한 이야기 취급을 받기를 바란다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물론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저의 책을 읽고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지만아직 그 길은 요원하기만 합니다게다가 그 와중에 제가 여성의 이야기를 ‘팔아’ ‘돈벌이’로 이용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라는 의견까지 접하고 나니 ‘혹시 정말 내가 뭔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저와는 다른그러니까 남자 작가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 서사가 아니어도 그들은 얼마든지 미소녀 그림을, 미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썼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자인 저는 여성의 이야기를 쓰면 안 되는걸까요?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 제 작품 역시 허구와 사실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수많은 창작물 중 하나일 뿐인데 말입니다.

여성 창작자아니 여성의 진정성은 왜 늘 의심받을까요여성에게만 그 부채감을 느끼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지 않은가요물론늘 겸손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할 것입니다. 저는 여타 다른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과는 달리 작가라는 저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이 없는 편입니다. 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또 자신을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라서가 아니라 작가라는 직업과 저의 작업물이 저를 표현하는 한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으로부터는 저의 그런 태도가 속된 말로 나댄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굳이 여성 작가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남성 작가와 비교하여 여성 작가는 좀처럼 ‘나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재,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 만화가를 단 한 명만 떠올려 볼까요? 아마 매우, 매우 떠올리기 힘들 것입니다. 다른 장르로 옮겨가야 간신히 에세이 분야에서 활동 중인 곽정은 작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남자 작가는 굳이 다른 장르로 옮겨갈 필요도 없이얼마 전에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CF를 촬영한 주호민이말년 작가라든가대형 방송사의 황금 시간대 예능에 고정 출연 중인 기안84 작가가 있지 않던가요왜일까요여성 작가들이남자 작가들만큼 소위 말하는 가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요.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제 주위만 해도 끼도 재능도 열정도 넘치는 여성 작가가 한가득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남성 작가만큼 미디어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사회가 여성 작가 essay 혹은 여성에게만 들이대지는 잣대가 유난히 가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너무도 쉽게 재단당합니다인스타그램에 겨우 댓글 하나 친절하게 달지 않았다고 눈물의 사과를 해야 했던 여자 배우라든가평소에 화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필 사과문을 올려야 했던 여자 아이돌이라든가자신이 선택하여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먹어야 했던 여자 연예인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아주 조금만 실수를 해도 혹은 실수조차 하지 않아도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상황에서 대체 어느 누가, 어떤 여성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 이미지 : 저스툰코미코 <썅년의 미학> 작품 페이지 이미지 ⓒ저스툰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베스트셀러라는 스티커 역시 저에게 있어서는 상처 같은 것입니다. 너무도 커다래서 모두가 볼 수 있고 평생 흉터로 남아 안고 가야만 하는 상처. 과거의 저라면 그 흉터를 가리는 것에 급급했을 것입니다. 운이 좋았죠, 다른 사람 덕분이죠, 라고 말하며 나를 감추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아무리 스스로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대해 실감이 나지 않더라도 누군가 그것에 대해 언급하거나 칭찬의 말을 하면 이제는 더 ‘빼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죠? 대단하죠? 저 멋있죠, 잘났죠? 못하는 게 대체 뭐야~!” 하면서 더 너스레를 떱니다.

일부러 더 나대고, 더 자랑스러워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겸손하지 않고, 나서고, 나의 입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앞으로 만화가를 포함한 모든 여성 창작자들에게도 길을 열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는 좀 더 자랑할 생각입니다. 있는 힘껏 나댈 생각입니다. 제 책의 주제처럼 어차피 여성인 제가 내 마음대로 했을 때 “썅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차라리 자신을 “썅년!”이라고 칭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습니다.

분명 언젠가는 제 만화가, 글이 정말로 ‘낡은’ 취급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수십만 부가 팔렸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역시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 소리를 듣지 않던가요. 하지만 그 메시지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책이 되었고 또 팔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저의 책 역시 그렇다고 믿습니다. 저의 책은, 글은, 만화는, 지금 필요합니다.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여성인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쓰고 그릴 것입니다. 

 


 민서영 <썅년의 미학>을 쓰고 그린 작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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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오늘날 무협 소설은 여러 장르문학 중에서도 신규 독자의 유입이 가장 더딘 분야로 분류됩니다흔히 무협 소설을 서구 판타지 장르에 비견해 동양 판타지라 일컫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어쩐지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손쉬운 비유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정통 판타지 장르와 명확한 대구를 이루면서 무협 소설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무협지에는 정통 판타지처럼 특정한 세계가 존재합니다무림(武林혹은 강호(江湖)라 불리는 중원 대륙이 무대이며이곳은 늘 무()를 수단으로 협()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의 각축장이 됩니다다양한 파벌이 이합집산(헤어졌다가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짐)하는 문파의 개념은 작품마다 달라지기도 하지만대체로 구대문파를 중심으로 한 정파와 그에 대항하는 사파의 대립무공을 얻고 단련하는 일련의 체계나 과정은 거의 모든 무협지의 공통 근간을 이룹니다. 물론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개념들이 각 작품의 개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기존 정통 무협지의 배경과 설정을 이해하지 않고는 작품의 재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주로 젊은 무협 소설 독자들이 퓨전 무협을 애독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코미디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굳이 중원협이라는 무협의 3요소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정파와 사파가 모종의 이유로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유로운 변주나아가 장르에 대한 기만까지 가능해집니다중국 작가 초신우의 만화 <무모협지>는 정통 무협과는 무관하게 무림이라는 이()세계를 우리 세계와 합일시키는 코미디입니다쉽게 말해 무협지의 애독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대 독자의 눈으로 바라본 무협 세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목야방의 방주 풍성모는 절정의 무공을 지녔음에도 외모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된 탓에 나름의 고충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무공이 최고인 무협 세계가 아니던가요. 그래서 풍성모의 고민도 곧 색다른 걱정거리로 치환됩니다예컨대 그는 거구에 대머리라는 외모 때문에 외부인들에게 방주가 아닌 2인자때로는 일개 방파원으로 오해받기 일쑤입니다부방주 당가위가 무림인에게 외모는 중요치 않다며 그에게 진정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한들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습니다특유의 아름다운 은발을 찰랑거리며 말하니 무슨 위로가 될까요이윽고 방주의 고민에 동참하고자 방파원들 모두 삭발을 했더니 정파 무림인들은 그 속도 모르고 이들을 향해 괘씸하다 말합니다.

 

"

너처럼 피를 묻힌 놈도 스님이 된다니.

"

 

코미디의 기본이 의외성이라면 <무모협지>에는 상식을 깨는 캐릭터예상 외의 전개엉뚱한 상황완전히 상반된 요소들의 결합이라는 코미디의 기본 요소들로 그득합니다. 캐릭터들은 온통 무협이라는 상식을 깨는 데 집중합니다. 발모제를 찾아 헤매는 풍성모만이 아니라 다른 무협인의 실상 또한 늘 예상 밖입니다예컨대 대외적으로는 마교(魔敎)’ 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생활고에 허덕이질 않나평생 무공에만 힘쓴 나머지 소양이 부족한 이는 늦은 나이에 학업에 매진 중입니다.

무림인이라더니 정작 중요한 일은 관아즉 공권력에 이양하기도 하며호기롭게 술을 마신 무인들이 학업을 위해 일찍 술자리를 파하며 더치페이를 합니다엉뚱한 상황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여자만 있는 흑락당에 잠입한 소림파 밀정 여초희의 외모는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무척 도드라짐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남성의 듬직한 외모가 아니라 남자라 생리 휴가를 쓸 필요 없는 눈에 띄는 근면함이었습니다또한마교 자석당의 당주 돈모는 강호화타라는 명의로 일컬어지는데 사실 그의 특기는 심리치료입니다. 무림 세계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심리치료를 언급하는 것부터가 황당하지만 현재는 마교주의 조급증을 자폐증으로 바꿔놓은 탓에 숙청대상의 신세가 됐습니다.

이렇듯 무림인을 현대의 생활인처럼 묘사한 듯한 기이한 상황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꽤 특별한 웃음을 선사하지만 <무모협지>는 기어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이를 위해 여타의 개그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과장된 표정이나 동작은 철저히 배제합니다. 시종 진지한 표정과 행동으로 우선 무림 세계를 견고히 구축하는 것이 <무모협지>가 추구하는 개그의 발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곧 무림인답다 싶은 진지한 언행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수려한 그림은 여기에 더더욱 가파른 간극을 더하기 마련입니다.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점차 무협이라는 장르를 전복하는 것으로 발을 넓히는 중입니다. 예컨대 무림인으로 행세만 한다고 온전히 무림인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파를 운영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고 그래서 다른 한편에서는 무협과는 무관한 사업에도 힘쓸 수밖에 없습니다게다가 그 사업이라는 것도 네 칸짜리 훠궈 냄비를 앞세운 요식업입니다. 무림인이라고 해서 사기꾼의 얄팍한 술수에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행인들에게 통행세를 뜯는 악당들을 혼내주기는커녕 오히려 순순히 통행세를 내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직접 길도 내고 나무도 심어서 통행세를 받겠다는데 어쩌겠나요? 모두 무협이라는 장르의 눈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본 상황 일색입니다.

단지 대머리 놀리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현재 풍성모만이 아니라 여러 인물과 장소상황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무협 장르의 상식과 설정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뒤집고 비트는 중입니다물론 대머리는 여전히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개그 코드 중 하나입니다. 발모제를 향한 풍성모의 집착이 계속되는 한 이것을 쉽사리 놓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탈모를 중심에 둔 외모 비하 개그는 상대적으로 금세 희석되는 편입니다외모에 대한 편견을 통해 갖가지 착각과 오해로 파급되는 개그도 재미있긴 합니다그러나 무엇보다 작품의 핵심은 캐릭터 모두를 진지한 무림인으로 두고도 처음부터 이들을 일반적인 강호의 틈바구니에조차 놔두지 않으려는 강렬한 악취미에서 찾는 게 옳을 것입니다. 이야기 전체 구조는 길게 가져가는 가운데서도 한 회마다 단락을 짓는 완결형 에피소드를 지향하기에 각 캐릭터의 포지션마다 무협 장르의 요소요소를 뒤튼 재기는 더욱 돋보입니다. 진지한 무림인들로 판을 벌여놓았으니 하나둘 만남을 주선하고 계속해서 세를 확장하는 것만으로도 무협이라는 견고한 세계를 전복하기엔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조금은 괴상하고 너무나도 진지한 강호인들이 꽤 생경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입니다.

 

 이종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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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그야말로 콘텐츠 레드오션입니다지상파 3사가 전부였던 시대에서 종편케이블 등 채널의 확장을 넘어 플랫폼의 경계까지 모호해졌습니다전파를 타고 수신해야만 방송이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본방 사수를 하기 위해 TV 앞에 앉는다는 말도 옛말이 됐습니다.

2019년의 시청자들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 중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자신이 보고 싶을 때 시청합니다지상파케이블 드라마도 시청률에서 맥을 못 추는 가운데 네이버 V오리지널 웹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5천만 뷰 돌파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습니다이유는 무엇일까요?

 

 

 

■ 성공적 타깃 콘텐츠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철저히 10대를 타깃으로 설정했고 고정 시청자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요즘 10대들이 한번쯤 고민해보고 상상해볼 법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자칫 학교 폭력을 연상시킬 수 있는 제목을 로맨스로 풀어내 10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좌) 늑대의 유혹1 YES24, (중) 도레미파솔라시도 교보문고, (우) 다섯개의별 교보문고

 

2019년 버전 귀여니(인터넷 소설 붐을 일으킨 작가소설의 웹드라마 판인 셈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그 시절 수많은 학생들이 웹소설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다섯 개의 별등을 읽었듯 2019년의 10대들은 타깃층이 확실한 웹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현실인 듯 판타지인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학교 배경 로맨스물은 10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오글거리면서도 보게 만드는 중독성은 하이틴 웹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입니다. 현실과 비슷한 배경에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 설정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선사했고 유치함이 묻어난 대사들은 손발이 오글거림에도 중도 포기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오글거려서 못 보겠다던 <일진에게 찍혔을 때시청자들은 어느새 지현호(강율서주호(윤준원파로 나뉘어 김연두(이은재)의 러브라인을 응원합니다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유치함뻔한 내용인 듯 하지만 궁금해지는 전개는 하이틴 로맨스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에피소드 형식 콘텐츠

 

짧은 에피소드 형식 또한 10대 시청자들에게 통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휴대폰으로 각종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일상인 10대들에게 한 회 당 기본 60길게는 90분 방송 분량의 드라마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학교학원과외 등 쉴 틈 없이 바쁜 10대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의 시간을 할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기본 16부작 드라마를 가만히 시청하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왼쪽부터 지현호(강율), 서주호(윤준원) 콬TV YouTube

 

반면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한 회 당 10분 내외 분량으로 언제어디서든 쉽게 클릭하도록 유도합니다등하교 때수업 중 쉬는 시간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시간잠들기 전 10분 등을 이용해 시청할 수 있도록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갑니다이는 드라마를 시청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영상을 본다는 느낌을 줍니다물리적 시간도마음의 여유도 많지 않은 10대들에게 주 2회 10분 내외 분량의 드라마는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인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 콬TV YouTube 캡처

 

짧은 분량 덕에 공유도 쉬워졌습니다누군가에게 어떤 콘텐츠를 소개하거나 추천할 때 60분 분량의 본편을 들이미는 것이 나을까요예고편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나을까요상대의 시청 의지가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긴 분량을 던져준다면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그에 반해 10분 분량의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편입니다일반적인 드라마 예고편 분량이면 1회를 시청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특히 SNS 공유가 활발한 10대들에게는 손쉬운 접근 방법입니다.

 

 

 

■ 게임의 실사화

 

▲ 이미지 출처 : 일진에게 찍혔을 때 Google play 캡처

<일진에게 찍혔을 때>와 타 웹드라마가 다른 점은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동명의 게임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지난 2016년 제작된 시뮬레이션 게임출시 이후 누적 다운로드 수 200만 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껏 웹툰웹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작품은 많았지만 게임을 드라마로 제작한 작품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게임을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신선함을 줬습니다.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원작이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점을 이용해 각 캐릭터의 매력을 확고히 했고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개연성 있는 서사를 만들었습니다.
 


콘텐츠 총괄 와이낫미디어 측은 스토리 게임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과 타이틀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게임과 다르게 장인물들의 성장 스토리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며 주인공들이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주목해 달라고 관전 포인트를 밝혔습니다.

 

요즘은 인소말고 웹드라마라며? [일진에게 찍혔을 때] Teaser, 7월 30일 6시

 

그 결과 게임 속 등장인물들과 싱크로율 높은 캐릭터가 실사로 탄생했습니다. 신인 배우 이은재, 강율, 윤준원은 각각 김연두, 지현호, 서주호로 분해 게임 속 2D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게임으로 즐기던 이용자들은 웹드라마로 상상이 구현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고 <일진에게 찍혔을 때>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을 게임으로 조종하는 부가적인 콘텐츠를 즐기게 됐습니다.
 


<일진에게 찍혔을 때>가 콘텐츠 레드오션 속 5천만 뷰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타깃에 걸맞은 주제와 형식타 웹드라마와의 차별화 3박자를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게임의 성공적인 드라마화는 플랫폼의 경계를 더욱 허물고, 콘텐츠 시장을 훨씬 넓히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일진에게 찍혔을 때>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게임 원작 드라마 제작의 발판이 되지 않을까요?

 

 

 

 박수인(뉴스엔 기자)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방송트렌드&인사이트 20호"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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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

 

 

 

웹툰 작가로 산다는 것과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일까요? 건초염, 습관성 탈골, 불면증... 웹툰 작가들은 '연재'와' 마감'을 반복하는 고된 작업이 끊임없는데요.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반면에 건강이라는 아주 중요한 구간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웹툰 작가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이종범 작가'의 생각을 들어 보았는데요.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에 건강의 8할을 바치고 이미 망친 건강을 되찾고자 고군분투 중인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 이종범 작가는 대체 왜, 이 글을 쓰게 됐는가

 

웹툰 작가의 건강관리라는 주제로 글을 쓸 작가를 정하는 편집회의에서 제가 지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한 분이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종범 작가 안 건강한데 많이 안 좋은데.” 저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열심히 건강을 지켜내는 작가로 자주 오해받는데요. 이러한 오해를 푸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운동 왕이었던 그는 왜, 건강을 되찾고 싶은가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하드웨어는 튼튼한 편이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든 것을 만화로 습득한 저는 자연스럽게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의 <슬램덩크>의 이끌림을 받아 농구 소년이 되었습니다해적판을 구해서 본 코야마 유우의 <스프린터>를 보고 달리기를 연습하다가 중학생 때는 육상부에서 200m 선수가 되었고만화와는 무관하지만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씨름부에 들어가서 용사급으로 모래판을 누비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이랬습니다.

 

 

 

퇴행성이 아닌 마찰성 관절염이
넓적다리 관절에서 심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운동을 오늘부터 금지하세요."

 

 

이후로 20년 동안 제 삶에서 운동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망한 부자의 3년처럼 저는 그 뒤 20년 가까이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체력과 근력으로 잘 살아남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3개씩 해야만 했던 만화가 지망생 시절에도 밤샘해가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의 제 얼굴 옆에는 언제나 이때는 몰랐다내가 그렇게 되기라는 것을 같은 내레이션 박스가 붙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자면 저는 현재 심각한 허리디스크 질환과 초기 단계의 목 디스크 질환을 갖고 있습니다. 이마의 모근은 절벽에 매달린 악당의 손아귀 힘처럼 점점 약해지는 것인지 매일 단말마 속에서 조금씩 모발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이마가 이렇게 넓었나복부의 내장지방은 흡사 대항해시대의 영국이 식민지를 넓히던 기세로 위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스크림을 먹다 흘려도 절대 땅으로 떨구지 않고 배로 막아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이미지 출처 : <닥터 프로스트> OST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 벅스뮤직)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 시즌 2를 연재하던 당시의 일입니다. 작업실 건물의 샤워실에서 처음으로 디스크 질환에 의한 전신 마비가 왔습니다엄밀히 말하면 마비가 아니고 지독한 고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셈이지만그 자세 그대로 바로 옆 수면실에서 3일 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1년 뒤에는 원고를 그리던 자세 그대로 똑같은 증세가 덮쳐왔습니다. 이번엔 구급차가 와서 저를 싣고 갔습니다.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경각심을 느끼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아주 강력한 동기가 되어줍니다. 미친 듯이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두들기면서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다시 건강해지는 건가, 이제 연재 중에도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 없이 작품을 완결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열심히 하는 저를 좋게 봐주신 관장님이 프로 테스트를 목표로 해보자는 말을 건네자마자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어 관두게 되었습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3년 전까지의 제 상태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재무제표로 치자면 부도 직전나라로 치면 조만간 IMF가 찾아올 지경인 셈입니다그리고 현재 저는 마흔을 2년 앞두고 다시금 총체적인 건강 회복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한 달을 보낸 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 이 글의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의 저를 향한 일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수면 패턴입니다마감 직전의 철야는 마감 직후의 방종으로 이어지게 되고 수면 패턴의 붕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체중 증가모공 약화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운동 부족입니다주로 앉아서 작업하며 에너지의 대부분은 뇌에만 할당하는데요뇌가 근육이었다면 세계 최고의 뇌 근육을 자랑할 종족이 작가입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뇌는 배은망덕하게도 주는 족족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약화되는 건 온몸의 근골격계입니다허리와 어깨손목이 약화되기 시작합니다좋은 점은 이 외에 나빠질 부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이 부위들이 아주 처참하게 망가진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조언이라는 것들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게 마련입니다선배 작가교수어른부모들이 하는 말들은 조언의 형식을 띠는 순간 거꾸로 든 컵의 물처럼 흩어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버리는 조언의 대명사가 바로 운동하라라는 조언입니다흡사 불볕더위 속 아스팔트 위의 드라이아이스 같습니다. 저도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대사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들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그 정도로 빨리 사라집니다.) 그 누구도 이 조언을 듣자마자 그래맞아운동할 거야당장 시작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앞서 말했듯 두려움과 고통은 최고의 동기부여 버튼이 되어주지만건강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보통 낡은 중고차의 제로백처럼 느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몸으로 체험한 고통이 동기를 유발한다면운동을 비롯해 건강한 삶을 위한 동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채워진다는 뜻입니다흔히들 웹툰 연재를 마라톤에 비유합니다그러나 절대로 연재 준비는 마라토너같이 하지는 않습니다그래서 보통 첫 연재 때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쟁여둔 체력을 전부 탕진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그 덕분에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 작가들의 머릿속에선 그동안 클릭할 수 없도록 회색이 되어 있던 건강관리와 운동이라는 버튼이 활성화됩니다.

 

 

주위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을 관찰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자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운동이 필요하다고 기껏 이야기해 놓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필요 때문에 하는 행동은 지속 기간이 짧습니다반대로 가장 오래가는 행동은 쾌락에 의한 행동입니다즉, 자신이 어떤 종류의 운동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모순이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즐거운 운동을 만나게 되고 어떤 사람은 끝끝내 찾지 못하기도 합니다.


"나는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할까?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할까?"고민해본 적 있으신가요? 전자라면 당장 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동호회나 클럽에 가입하는 편이 좋습니다. " 나는 특정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할까?" 그렇다면 "그 스포츠는 몸을 소비하는 쪽의 스포츠일까 단련해주는 스포츠일까." 전자라면 새로운 종목을 찾아볼 일이고 후자라면 매진하면 됩니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것이 대부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제 경우 기나긴 여정 끝에 찾아낸 운동이 바로 탁구와 맨몸 근력운동니다. 전자는 운명적으로 만났고 후자는 필요 때문에 도전했다가 매력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운동이 어렵다면 한껏 기준을 낮춰보시기 바랍니다. 비밀을 한 가지 말하자면어렵지도 않고 효과는 엄청난 건강관리의 핵심이 있습니다투자 대비 효과가 말도 안 되게 좋아서 좀 이상할 지경입니다그건 바로 이른 수면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귓가에서 광속으로 흩어지는 조언이 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지만, 체험에 기반을 둬서 말하자면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밤 10시가량부터 활성화되는 특정 호르몬들에 의해 체중이 줄기 시작하고 이미 망가진 몸이 강해지는 효과까지는 없겠지만 만성적인 무력감과 심리적인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너무 뻔한 방법이지만, 뻔한 만큼 당연한 이유로 작가들은 이 방법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밤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는 이른 수면과 주 5일의 운동을 시작한 지 6주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7㎏의 체중을 감량했고 요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사막화가 진행되던 이마와 머리선 사이의 비무장지대가 조금씩 녹지가 돼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글을 마치려니 비참한 고해성사로 시작해서 다단계 영업같이 끝나버리는 글이 된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작가들 대부분의 귓가에서는 활자들이 흩어지고 사라지고 있지 않을지. 다 이해합니다. 저도 작가로 살고 있으니까요. 저처럼 건강을 잃은 뒤에야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가줄 사람은 없고 그런다고 따라올 종족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한가지 기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본인이 필요성을 느낀 그 순간. 부디 그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길 바랍니다.

 

 

 이종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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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가장 뜨겁고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러나 각 분야나 집단마다 논의의 세기와 속도는 모두 다르고, 오랫동안 여성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온 종교계에서 성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인스타그램에 혜성같이 등장한 웹툰 <비혼주의자 마리아>(@bhon_maria)는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란 ‘마리아’와 ‘한나’ 자매를 통해 교회 내 성차별과 그루밍 성범죄, 성경에 드러난 여성 혐오까지 정면으로 비판하며 화제를 모았고, 1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SNS 입소문과 함께 인기를 끈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원 연재처인 기독교 세계관 웹툰 플랫폼 에끌툰이 비기독교인 독자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 한나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여성 기독교인이자 남성을  ‘돕는 배필’로 살도록 배워온 린든 작가는 어떻게 해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배우며 자라온 모든 크리스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비혼주의 자 마리아>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라는 린든 작가를 만나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Q.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하는 <비혼주의자 마리아> 단행본 제작 프로젝트 후원율이 300%를 넘겼습니다.

 

100%를 채우지 못할까 봐 굉장히 걱정했습니다. 무서워서 텀블벅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을 정도입니다. 1인 출판으로 책을 낸 적은 몇 번 있지만 펀딩을 받아서 진행하는 건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고, ‘굿즈(goods)’라는 것도 처음 만들어봤습니다. 온라인에서 만화를 봐 주시는 게 책 구매로 다 이어지는 건 아닌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다. 본인이 소장하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Q.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에끌툰과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의 공동기획인데, 그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2017년 여름에 IVP의 이종연 간사님을 만났습니다. 교회 내 여성 차별 실태에 관해 얘기하시고 대학 선교단체인 IVF(한국기독학생회) 안의 ‘갓페미’라는 모임에 대한 잡지를 주시며 이런 이야기를 토대로 만화를 그려 보면 어떨지 제안하셔서 일단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어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좋은 제안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페미니즘은 잘 모른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면서도, 어떻게든 공부해서 할 생각이었습니다.

 

 

 

Q. 그전까지 페미니즘에 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땠나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게 나왔고, 나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깊게 고민하거나 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미디어에 비치는 페미니스트의 ‘과격한’ 발언을 보며 ‘어머, 여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체득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내가 여성임에도 남성에게 감정이입 하는 게 쉬웠던 것 같습니다. 내가 여성 혐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Q. 그러다가 좀 더 각성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단 작품을 해야 하니까 페미니즘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며 주제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불타오르질 않았습니다. 나는 여자고, 여성 인권을 공부하고 있고, 이건 다 맞는 말인데 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안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공부를 멈추고 내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더니 그동안 외면하며 꾹꾹 눌러 담았던 일들이 지뢰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제가 3남매 중 장녀인데, 어릴 때 “너는 여자니까 미스코리아 되고, 남동생은 대통령 해야지”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당한 성추행, 데이트 폭력, 결혼 준비하면서 겪은 일,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로서의 경험 등 내가 외면해온 차별의 역사가 너무 많았습니다. 심지어 나는 맹목적인 믿음에 회의를 느끼고 진정한 믿음에 관해 질문해온, 나름 깨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왜 여성으로서의 나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잠을 못 잘 정도로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처럼 교회 안의 다른 여성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Q. 1년 넘는 기간 동안 연재를 준비하며 인터뷰와 그룹 미팅 등의 취재를 거쳤다고 들었습니다.

 

▲ 이미지 : <비혼주의 마리아> 단행본 (출처 : YES24)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이슈화되는 데 비해, 교회 안에서 여성의 발언은 여전히 음지에만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취재가 쉽지 않았는데 지인을 통해 트위터의 존재를 알고 들어가 보니 거기에 다 계시더라고요. (웃음) 익명성이 보장된 곳이라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고, 그것을 보며 배우고 함께 분노할 수 있었습니다. <믿는 페미, 교회를 부탁해>라는 팟캐스트를 만드시는 여성들을 만나 많은 말씀을 들었고, 목사가 될 예정인 남성 전도사로부터 교회 내의 권력 구조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Q. 모태신앙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엄마가 교회에 아주 열심히 다니셔서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며 집에서 독립했고 선교단체 활동을 하게 됐는데, 뭔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원하던 만화학과에 들어갔고 행복한데도 세상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온실 같은 교회에서 자라온 저는 대학 생활, 교우관계에 너무 서툴렀습니다. 내가 복음 만화를 그린다고 했더니 친구들은 이상한 애라고 비웃었고,“이럴 거면 신학 대학 가지 왜 여기에 왔어?”라고도 했습니다.

 

 

 

Q.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나요?

 

전공 수업에 잘 안 나갔고 선교단체에서 요구하는 숙제의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두 발을 이쪽저쪽에 걸쳐놓은 것처럼, 전공에 집중하다 보면 성경 공부와 기도량을 채울 수 없었고, 그 죄책감으로 선교단체 활동에 치우치면 전공의 그 많은 과제를 소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선교단체 사람들은 ‘네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라고 일축했고, ‘대학은 위험한 곳이다’, ‘절대 남자친구 사귀면 안 된다’ 등 엄격한 규율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아멘’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사귀지 말라면 더 사귀고 싶지 않나요? (웃음)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시작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사귄 남자친구가 지금의 남편(에끌툰 대표 일러스트 작가)입니다.

 

 

 

Q. 그래서 <비혼주의자 마리아>라는 제목이 더 강렬했던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 ‘비혼’은 소수의 라이프 스타일이고 기독교 세계관에서 ‘마리아’라는 이름이 갖는 기존의 이미지가 있는데 이런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비혼 라이프’를 그리는 만화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웃음) 사실 ‘비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놀랐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결혼하지 않은 언니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걸 보게 됩니다. 이들이 묶일 공동체가 없고, 주위에서 ‘뭔가 하자 있는 애들’이란 식으로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여성은 남성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여성은 누군가의 짝으로서만 존재하고 그게 전부고 가장 큰 축복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줄 알았습니다. 미디어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노처녀’라는 이름으로 깎아내리고 히스테릭한 사람처럼 묘사하지 않나요? 그런데 비혼이라는 말과 함께 보니 현실에는 혼자서 너무 멋지게 잘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자립 불가능한 여성상을 길러내는 것과 반대로 여성이 충분히 자립적으로 설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단어가 ‘비혼주의자’일 것 같았습니다.

 

 

 

Q. 교회를 떠난 마리아와, 여전히 독실한 한나 자매를 통해 이야기를 펼쳐나간 이유도 궁금합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여동생과 거의 한 몸처럼 자라왔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항상 다른 여성과 비교당하는 것처럼, 자매인 우리도 평생 비교당하며 살아온 데 대한 피로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멀어진 적도 있지만, 결국 생각나고 서로에게 돌아올 만한 관계가 자매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나와 마리아처럼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신앙관을 가질 수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대화하고 연대할 수 있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예고편에서 한나가 결혼예비학교에 갔을 때 듣는 말은 이 이야기가 무엇을 겨냥하려 하는지 명확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남녀평등이다, 페미니즘이다, 요즘 뭐 복잡하지만, 우리는 그냥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그죠? 아멘?”

 

교회 안에는 분명 페미니즘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런 만화를 그릴 거라고 주위 기독교인 언니들에게 얘기했을 때 다들 반응이 “그런 걸 왜 그려?”였습니다. 여성의 인권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그런 일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거나, “페미니즘이 나오고 남녀 갈등이 생긴 건 성경에 나온 대로 살지 않아서 그래. 남자는 일 하고 여자는 애 보고, 이렇게 딱 나누면 해결될 일이야”라는 말을 직접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크고 작은 여성 차별을 겪지만 그걸 가장 극심하게 느낄 때가 결혼을 준비할 때입니다.

 

 

 

Q. 에끌툰과 인스타그램에 함께 연배한다는 결정은 어떻게 내리게 됐나요?

 

에끌툰에 <비혼주의자 마리아> 첫 회가 올라왔을 때 “아름다운 결혼에 관해 얘기하려 하시는군요. 역시 돕는 배필, 아름답습니다.” 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웃음) 여기서만 연재해선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주 늦게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기로 했는데, 반응이 점점 달아오르는 걸 보며 무척 재밌었습니다. <스트리트 페인터> 때부터 수신지 작가님을 좋아했는데, 그분이 인스타그램에 연재하신 <며느라기>의 성공도 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Q. <비혼주의자 마리아>의 일차적 독자를 기독교인으로 봤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랬듯 페미니즘에 비우호적인 이들을 설득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나를 화자로 내세웠습니다. 한나는 평범한 여성 기독교인,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입니다. “당연히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해” 라거나, “바울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건 별로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라는 건 실제로 제가 했던 생각입니다. ‘바울과 여성 혐오’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런 단어를 써도 될까, 너무 신성모독적일까 굉장히 주저했습니다. 저도 뼛속까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요. (웃음) 독자들이 그런 한나에게 감정 이입하길 바랐습니다.

 

 

 

Q. 한나와 마리아가 함께하는 독서모임에서 <바울과 여성>(크렉 S. 키너)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뼈대인 것 같은데요. 왜 바울이었나요?

 

단순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성 차별의 사례만이 아니라, 차별의 근원에 그것을 용인하는 신학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신약의 교리를 완성한 사람이고,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성은 남자에게 순종하라” 등 여성을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구절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양반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이 산을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울이 진짜 그런 의미로 말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Q. 바울이 과거의 차별을 상징한다면, 마리아의 약혼자였던 윤 목사가 미성년자 신도를 상대로 저지르는 그루밍 성폭력은 현재 교회에서 발생하고 은폐되는 범죄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믿는 페미> 팟캐스트에서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인데, 저도 선교단체에서 활동할 때 남자 간사님과 밀폐된 공간에서 1대 1로 공부하고, 같이 밥도 먹고, 때로는 영화도 봤습니다. 그때 저 역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교회 안의 그루밍 성범죄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사를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Q. 그런데 윤 목사는 겉보기엔 너무나 선량한 ‘교회 오빠’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 ‘누가 생각나는데?’ 싶게 흔히 볼 수 있는 얼굴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실제 전도사 시절 초반 윤 목사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이 아이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유하고 있다고 느껴”라는 대사는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더 무서웠습니다. 목사가 성도의 사생활이나 아픔을 다 아는 것이 최고의 덕목처럼 취급되는 관행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고 권력에 익숙해지는 윤 목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교회는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인데 다들 너무 무지하고, 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목사님들도 ‘왜 나를 가해자 취급하냐’는 생각에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권위와 힘을 갖고 있으면 조심하는 게 맞습니다.

 

 

 

Q. 윤 목사의 재판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이 다소 빠르게 마무리되어 아쉬웠습니다. 원래 분량이 정해져 있었나요?

 

처음 계획은 24화였습니다. 바울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조금은 더 학습만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재하다 보니 동시대 여성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루밍 성범죄도 함께 다루며 방향을 조금 선회했고 분량도 늘어났습니다. 윤 목사의 재판 과정 등을 좀 더 깊게 다루고 싶었는데 분량이 넘쳐서 압축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점이 나 역시 아쉽습니다.

 

 

 

Q. 비기독교인인 독자들도 이 작품을 통해 교회와 기독교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그린 만화지만, 남성 중심적 구조 안에서 여성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상황은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여성들의 아픔을 교회 밖에 있는 여성들도 함께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안에서도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데 공감해주신 것 같습니다.

 

 

 

Q. ‘공적 신앙’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 이미지 : <비혼주의 마리아> ⓒ 에끌툰

 

그게 에끌툰의 가장 중요한 방향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에 어떻게 이바지하고,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세상이라는 건, 교회라는 영역을 넘은 하나님의 창조물 전체입니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을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 간다”라고 하지만, 정작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교회가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화를 통해 교회에서 금기시되었던,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궁금했던 질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요?

 

<비혼주의자 마리아>를 마치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져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입니다. 바울에 대해 좀 더 궁금해졌다는 사람들을 위한 지식 중심의 만화도 해보고 싶고, 또 다른 여성 서사 만화를 그리고 싶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내 또래 여성들의 경험이나 신앙의 흔들림에 관해 날것의 느낌으로 풀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여성 기독교인으로서 많은 고민이 이제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것과 부딪히며 만화를 그릴 생각입니다. 우리는 K-Story로 한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최지은 사진 최민호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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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여신의 지위가 현실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그리고 현실 여성의 지위는 여신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죠.
(중략)
빼앗긴 여신의 신화를, 여성의 이야기를 되찾아야 해요. 
그리고 이런 일이야말로 저 같은 창작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죠.

 

 

 

 

' 신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시대의 신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흥행을 올리고 있는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20여 편의 영화 10여 편의 드라마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북유럽이나 수메르 신화아프로퓨쳐리즘(Afrofuturism)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물론이고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과 같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회문화적 요소들까지도 포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신화를 재구축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프로퓨처리즘 : 아프리카+미래주의의 합성어,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문화와 역사, 선진 기술의 발전을 융합시킨 문화 양식
*오리엔탈리즘 :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왜곡된 인식과 태도

 

이러한 시대에 신화의 가치는 태고부터 이어지는 원형적 상징(Archetype Symbol)들에 대한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의 반응이라는 신비감에 고정되지 않습니다. 21세기에 신화는 오히려 일상적이고 동시대적인 것들과 만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이러한 기조들이 일반화되었는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신화를 활용해 성공한 서사들을 보면 신화에 대한 전통적이고 원형적인 가치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신화의 세계관이 주는 설정을 활용해 일상의 문제들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다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신화의 국적성 문제와 활용 방법 '  

 

 

신화의 현대적 가치 판단에 인상적인 자료가 될 수 있는 작품이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입니다. 작품의 근간이 되는 세계관은 불교 세계관인데요. 이제껏 한국적인 신화 요소를 활용한 작품들은 대부분 그 근간이 불교의 세계관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한국의 신화로는 단군신화가 있지만이는 민족성을 고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의미가 더 큽니다. 게다가 신화가 대중적으로 확산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한국에 1600여 년 동안 영향을 주었던 사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민족성을 소거한 한반도의 구성원들에게 집단 무의식으로 작용하기에 쉬웠던 것은 오히려 불교 신화였을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딜리헙 <극락왕생> 페이지

 

그렇다고 해서 불교 신화가 한국적 신화라고 의미화하는 것 역시 적합하지 않습니다. 불교 신화는 해당 사상을 공유한 문화권을 횡단하면서 다양한 가치와 문화적 요소들을 내포한 거대한 세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를 한국적이라고 규정하고 의미부여 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극락왕생>은 한국적입니다. 불교 신화라는 세계관이 철저하게 현대 한국의 일상을 설명하고 있기에 그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각종 신화적 요소들을 끌어모아서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새로운 신화 구축에 활용하고 있다면, <극락왕생>에서는 불교 신화의 세계관과 한국의 설화들을 활용해 현대 한국의 일상과 그 안에서 평범해 보이는 한 여성의 삶을 보여줍니다.


<극락왕생>에서 귀신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자신이 지냈던 고3이라는 일 년 동안을 보장받은 주인공 자언은 이러한 불교 신화의 세계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요소들 위에 축조된 인물입니다. 일상이라는 현실의 세계만이 존재하던 시절에서 인간도,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 천상도, 수라도의 육도로 구분되어있는 사바세계로 인식의 지경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 확장에 따른 다양한 설정들은 전적으로 불교 신화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특히 건을 만들어내는 귀신들에 관한 이야기나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호법신이나 보살과 같은 인물들의 설정 또한 신화로부터 유래합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제약도, 문제의 발생도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 일상의 세계를 다양하게 보는 것 '  

 

▲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인터넷 서점 나츠메 우인장

 

하지만 <극락왕생>을 단순히 불교 신화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만 여길 순 없습니다. 이 작품은 불교 신화라는 세계관을 활용해 일상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일본 만화에서 2000년대까지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퇴치 대상이라고 여겼던 요괴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던 <나츠메 우인장>이 보여주던 방식과도 비슷합니다. <극락왕생>은 어디까지나 합정역 귀신이었던 자언의 고3 생활을 통해서 일상이라는 것의 난해함과 가치를 돌아보게 합니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성여학생이라는 상황에서의 일상은 그저 지나왔을 당시에는 지난하고 치열한 삶이지만 인식의 지경을 넓히고 돌아가 보면 다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즈메리 잭슨이 이야기했던 환상의 강력한 기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이면을 들춰볼 수 있고그것을 통해 현실 그 자체를 전복할 힘을 제공하는 것 말입니다. 지방이라는 장소적 한계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 그리고 수험생이라는 제약투성이의 시기적 한계들은 환상을 통해서 해체되고 다시 재정의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일상에 대한 새로운 정의들이 도출됩니다. 그것은 친구와 가족 같은 대상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고, 사랑과 우정, 타인을 대한 방법과 같은 관계 맺기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상의 다양한 의미들은 거리를 두고 낯설게 함을 통해 통찰할 수 있고 21세기에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환상이라는 매개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극락왕생>은 이미 다양한 서사에서 활용한 서구의 신화적 세계관이 아니라 아직은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는 불교 신화의 세계관을 차용해 낯설게 하기를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집단 무의식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던 불교의 세계관들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통찰하는 게 조금 더 친밀감을 주기도 합니다. 불교의 교리를 모르더라도, 신화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극락왕생>에서 자언이 살아내고 있는 또 한 번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화라는 거대한 세계관이 일상에 맞닿았을 때 일어나는 일종의 화학작용입니다.

 

 

 이지용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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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