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콘텐츠 레드오션입니다지상파 3사가 전부였던 시대에서 종편케이블 등 채널의 확장을 넘어 플랫폼의 경계까지 모호해졌습니다전파를 타고 수신해야만 방송이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본방 사수를 하기 위해 TV 앞에 앉는다는 말도 옛말이 됐습니다.

2019년의 시청자들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 중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자신이 보고 싶을 때 시청합니다지상파케이블 드라마도 시청률에서 맥을 못 추는 가운데 네이버 V오리지널 웹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5천만 뷰 돌파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습니다이유는 무엇일까요?

 

 

 

■ 성공적 타깃 콘텐츠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철저히 10대를 타깃으로 설정했고 고정 시청자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요즘 10대들이 한번쯤 고민해보고 상상해볼 법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자칫 학교 폭력을 연상시킬 수 있는 제목을 로맨스로 풀어내 10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좌) 늑대의 유혹1 YES24, (중) 도레미파솔라시도 교보문고, (우) 다섯개의별 교보문고

 

2019년 버전 귀여니(인터넷 소설 붐을 일으킨 작가소설의 웹드라마 판인 셈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그 시절 수많은 학생들이 웹소설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다섯 개의 별등을 읽었듯 2019년의 10대들은 타깃층이 확실한 웹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현실인 듯 판타지인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학교 배경 로맨스물은 10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오글거리면서도 보게 만드는 중독성은 하이틴 웹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입니다. 현실과 비슷한 배경에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 설정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선사했고 유치함이 묻어난 대사들은 손발이 오글거림에도 중도 포기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오글거려서 못 보겠다던 <일진에게 찍혔을 때시청자들은 어느새 지현호(강율서주호(윤준원파로 나뉘어 김연두(이은재)의 러브라인을 응원합니다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유치함뻔한 내용인 듯 하지만 궁금해지는 전개는 하이틴 로맨스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에피소드 형식 콘텐츠

 

짧은 에피소드 형식 또한 10대 시청자들에게 통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휴대폰으로 각종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일상인 10대들에게 한 회 당 기본 60길게는 90분 방송 분량의 드라마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학교학원과외 등 쉴 틈 없이 바쁜 10대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의 시간을 할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기본 16부작 드라마를 가만히 시청하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왼쪽부터 지현호(강율), 서주호(윤준원) 콬TV YouTube

 

반면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한 회 당 10분 내외 분량으로 언제어디서든 쉽게 클릭하도록 유도합니다등하교 때수업 중 쉬는 시간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시간잠들기 전 10분 등을 이용해 시청할 수 있도록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갑니다이는 드라마를 시청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영상을 본다는 느낌을 줍니다물리적 시간도마음의 여유도 많지 않은 10대들에게 주 2회 10분 내외 분량의 드라마는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인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 콬TV YouTube 캡처

 

짧은 분량 덕에 공유도 쉬워졌습니다누군가에게 어떤 콘텐츠를 소개하거나 추천할 때 60분 분량의 본편을 들이미는 것이 나을까요예고편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나을까요상대의 시청 의지가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긴 분량을 던져준다면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그에 반해 10분 분량의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편입니다일반적인 드라마 예고편 분량이면 1회를 시청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특히 SNS 공유가 활발한 10대들에게는 손쉬운 접근 방법입니다.

 

 

 

■ 게임의 실사화

 

▲ 이미지 출처 : 일진에게 찍혔을 때 Google play 캡처

<일진에게 찍혔을 때>와 타 웹드라마가 다른 점은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동명의 게임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지난 2016년 제작된 시뮬레이션 게임출시 이후 누적 다운로드 수 200만 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껏 웹툰웹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작품은 많았지만 게임을 드라마로 제작한 작품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게임을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신선함을 줬습니다.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원작이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점을 이용해 각 캐릭터의 매력을 확고히 했고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개연성 있는 서사를 만들었습니다.
 


콘텐츠 총괄 와이낫미디어 측은 스토리 게임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과 타이틀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게임과 다르게 장인물들의 성장 스토리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며 주인공들이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주목해 달라고 관전 포인트를 밝혔습니다.

 

요즘은 인소말고 웹드라마라며? [일진에게 찍혔을 때] Teaser, 7월 30일 6시

 

그 결과 게임 속 등장인물들과 싱크로율 높은 캐릭터가 실사로 탄생했습니다. 신인 배우 이은재, 강율, 윤준원은 각각 김연두, 지현호, 서주호로 분해 게임 속 2D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게임으로 즐기던 이용자들은 웹드라마로 상상이 구현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고 <일진에게 찍혔을 때>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을 게임으로 조종하는 부가적인 콘텐츠를 즐기게 됐습니다.
 


<일진에게 찍혔을 때>가 콘텐츠 레드오션 속 5천만 뷰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타깃에 걸맞은 주제와 형식타 웹드라마와의 차별화 3박자를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게임의 성공적인 드라마화는 플랫폼의 경계를 더욱 허물고, 콘텐츠 시장을 훨씬 넓히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일진에게 찍혔을 때>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게임 원작 드라마 제작의 발판이 되지 않을까요?

 

 

 

 박수인(뉴스엔 기자)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방송트렌드&인사이트 20호"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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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

 

 

 

웹툰 작가로 산다는 것과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일까요? 건초염, 습관성 탈골, 불면증... 웹툰 작가들은 '연재'와' 마감'을 반복하는 고된 작업이 끊임없는데요.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반면에 건강이라는 아주 중요한 구간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웹툰 작가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이종범 작가'의 생각을 들어 보았는데요.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에 건강의 8할을 바치고 이미 망친 건강을 되찾고자 고군분투 중인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 이종범 작가는 대체 왜, 이 글을 쓰게 됐는가

 

웹툰 작가의 건강관리라는 주제로 글을 쓸 작가를 정하는 편집회의에서 제가 지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한 분이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종범 작가 안 건강한데 많이 안 좋은데.” 저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열심히 건강을 지켜내는 작가로 자주 오해받는데요. 이러한 오해를 푸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운동 왕이었던 그는 왜, 건강을 되찾고 싶은가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하드웨어는 튼튼한 편이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든 것을 만화로 습득한 저는 자연스럽게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의 <슬램덩크>의 이끌림을 받아 농구 소년이 되었습니다해적판을 구해서 본 코야마 유우의 <스프린터>를 보고 달리기를 연습하다가 중학생 때는 육상부에서 200m 선수가 되었고만화와는 무관하지만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씨름부에 들어가서 용사급으로 모래판을 누비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이랬습니다.

 

 

 

퇴행성이 아닌 마찰성 관절염이
넓적다리 관절에서 심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운동을 오늘부터 금지하세요."

 

 

이후로 20년 동안 제 삶에서 운동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망한 부자의 3년처럼 저는 그 뒤 20년 가까이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체력과 근력으로 잘 살아남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3개씩 해야만 했던 만화가 지망생 시절에도 밤샘해가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의 제 얼굴 옆에는 언제나 이때는 몰랐다내가 그렇게 되기라는 것을 같은 내레이션 박스가 붙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자면 저는 현재 심각한 허리디스크 질환과 초기 단계의 목 디스크 질환을 갖고 있습니다. 이마의 모근은 절벽에 매달린 악당의 손아귀 힘처럼 점점 약해지는 것인지 매일 단말마 속에서 조금씩 모발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이마가 이렇게 넓었나복부의 내장지방은 흡사 대항해시대의 영국이 식민지를 넓히던 기세로 위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스크림을 먹다 흘려도 절대 땅으로 떨구지 않고 배로 막아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이미지 출처 : <닥터 프로스트> OST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 벅스뮤직)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 시즌 2를 연재하던 당시의 일입니다. 작업실 건물의 샤워실에서 처음으로 디스크 질환에 의한 전신 마비가 왔습니다엄밀히 말하면 마비가 아니고 지독한 고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셈이지만그 자세 그대로 바로 옆 수면실에서 3일 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1년 뒤에는 원고를 그리던 자세 그대로 똑같은 증세가 덮쳐왔습니다. 이번엔 구급차가 와서 저를 싣고 갔습니다.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경각심을 느끼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아주 강력한 동기가 되어줍니다. 미친 듯이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두들기면서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다시 건강해지는 건가, 이제 연재 중에도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 없이 작품을 완결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열심히 하는 저를 좋게 봐주신 관장님이 프로 테스트를 목표로 해보자는 말을 건네자마자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어 관두게 되었습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3년 전까지의 제 상태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재무제표로 치자면 부도 직전나라로 치면 조만간 IMF가 찾아올 지경인 셈입니다그리고 현재 저는 마흔을 2년 앞두고 다시금 총체적인 건강 회복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한 달을 보낸 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 이 글의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의 저를 향한 일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수면 패턴입니다마감 직전의 철야는 마감 직후의 방종으로 이어지게 되고 수면 패턴의 붕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체중 증가모공 약화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운동 부족입니다주로 앉아서 작업하며 에너지의 대부분은 뇌에만 할당하는데요뇌가 근육이었다면 세계 최고의 뇌 근육을 자랑할 종족이 작가입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뇌는 배은망덕하게도 주는 족족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약화되는 건 온몸의 근골격계입니다허리와 어깨손목이 약화되기 시작합니다좋은 점은 이 외에 나빠질 부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이 부위들이 아주 처참하게 망가진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조언이라는 것들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게 마련입니다선배 작가교수어른부모들이 하는 말들은 조언의 형식을 띠는 순간 거꾸로 든 컵의 물처럼 흩어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버리는 조언의 대명사가 바로 운동하라라는 조언입니다흡사 불볕더위 속 아스팔트 위의 드라이아이스 같습니다. 저도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대사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들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그 정도로 빨리 사라집니다.) 그 누구도 이 조언을 듣자마자 그래맞아운동할 거야당장 시작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앞서 말했듯 두려움과 고통은 최고의 동기부여 버튼이 되어주지만건강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보통 낡은 중고차의 제로백처럼 느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몸으로 체험한 고통이 동기를 유발한다면운동을 비롯해 건강한 삶을 위한 동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채워진다는 뜻입니다흔히들 웹툰 연재를 마라톤에 비유합니다그러나 절대로 연재 준비는 마라토너같이 하지는 않습니다그래서 보통 첫 연재 때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쟁여둔 체력을 전부 탕진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그 덕분에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 작가들의 머릿속에선 그동안 클릭할 수 없도록 회색이 되어 있던 건강관리와 운동이라는 버튼이 활성화됩니다.

 

 

주위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을 관찰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자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운동이 필요하다고 기껏 이야기해 놓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필요 때문에 하는 행동은 지속 기간이 짧습니다반대로 가장 오래가는 행동은 쾌락에 의한 행동입니다즉, 자신이 어떤 종류의 운동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모순이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즐거운 운동을 만나게 되고 어떤 사람은 끝끝내 찾지 못하기도 합니다.


"나는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할까?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할까?"고민해본 적 있으신가요? 전자라면 당장 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동호회나 클럽에 가입하는 편이 좋습니다. " 나는 특정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할까?" 그렇다면 "그 스포츠는 몸을 소비하는 쪽의 스포츠일까 단련해주는 스포츠일까." 전자라면 새로운 종목을 찾아볼 일이고 후자라면 매진하면 됩니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것이 대부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제 경우 기나긴 여정 끝에 찾아낸 운동이 바로 탁구와 맨몸 근력운동니다. 전자는 운명적으로 만났고 후자는 필요 때문에 도전했다가 매력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운동이 어렵다면 한껏 기준을 낮춰보시기 바랍니다. 비밀을 한 가지 말하자면어렵지도 않고 효과는 엄청난 건강관리의 핵심이 있습니다투자 대비 효과가 말도 안 되게 좋아서 좀 이상할 지경입니다그건 바로 이른 수면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귓가에서 광속으로 흩어지는 조언이 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지만, 체험에 기반을 둬서 말하자면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밤 10시가량부터 활성화되는 특정 호르몬들에 의해 체중이 줄기 시작하고 이미 망가진 몸이 강해지는 효과까지는 없겠지만 만성적인 무력감과 심리적인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너무 뻔한 방법이지만, 뻔한 만큼 당연한 이유로 작가들은 이 방법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밤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는 이른 수면과 주 5일의 운동을 시작한 지 6주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7㎏의 체중을 감량했고 요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사막화가 진행되던 이마와 머리선 사이의 비무장지대가 조금씩 녹지가 돼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글을 마치려니 비참한 고해성사로 시작해서 다단계 영업같이 끝나버리는 글이 된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작가들 대부분의 귓가에서는 활자들이 흩어지고 사라지고 있지 않을지. 다 이해합니다. 저도 작가로 살고 있으니까요. 저처럼 건강을 잃은 뒤에야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가줄 사람은 없고 그런다고 따라올 종족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한가지 기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본인이 필요성을 느낀 그 순간. 부디 그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길 바랍니다.

 

 

 이종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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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가장 뜨겁고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러나 각 분야나 집단마다 논의의 세기와 속도는 모두 다르고, 오랫동안 여성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온 종교계에서 성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인스타그램에 혜성같이 등장한 웹툰 <비혼주의자 마리아>(@bhon_maria)는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란 ‘마리아’와 ‘한나’ 자매를 통해 교회 내 성차별과 그루밍 성범죄, 성경에 드러난 여성 혐오까지 정면으로 비판하며 화제를 모았고, 1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SNS 입소문과 함께 인기를 끈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원 연재처인 기독교 세계관 웹툰 플랫폼 에끌툰이 비기독교인 독자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 한나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여성 기독교인이자 남성을  ‘돕는 배필’로 살도록 배워온 린든 작가는 어떻게 해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배우며 자라온 모든 크리스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비혼주의 자 마리아>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라는 린든 작가를 만나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Q.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하는 <비혼주의자 마리아> 단행본 제작 프로젝트 후원율이 300%를 넘겼습니다.

 

100%를 채우지 못할까 봐 굉장히 걱정했습니다. 무서워서 텀블벅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을 정도입니다. 1인 출판으로 책을 낸 적은 몇 번 있지만 펀딩을 받아서 진행하는 건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고, ‘굿즈(goods)’라는 것도 처음 만들어봤습니다. 온라인에서 만화를 봐 주시는 게 책 구매로 다 이어지는 건 아닌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다. 본인이 소장하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Q.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에끌툰과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의 공동기획인데, 그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2017년 여름에 IVP의 이종연 간사님을 만났습니다. 교회 내 여성 차별 실태에 관해 얘기하시고 대학 선교단체인 IVF(한국기독학생회) 안의 ‘갓페미’라는 모임에 대한 잡지를 주시며 이런 이야기를 토대로 만화를 그려 보면 어떨지 제안하셔서 일단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어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좋은 제안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페미니즘은 잘 모른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면서도, 어떻게든 공부해서 할 생각이었습니다.

 

 

 

Q. 그전까지 페미니즘에 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땠나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게 나왔고, 나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깊게 고민하거나 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미디어에 비치는 페미니스트의 ‘과격한’ 발언을 보며 ‘어머, 여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체득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내가 여성임에도 남성에게 감정이입 하는 게 쉬웠던 것 같습니다. 내가 여성 혐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Q. 그러다가 좀 더 각성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단 작품을 해야 하니까 페미니즘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며 주제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불타오르질 않았습니다. 나는 여자고, 여성 인권을 공부하고 있고, 이건 다 맞는 말인데 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안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공부를 멈추고 내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더니 그동안 외면하며 꾹꾹 눌러 담았던 일들이 지뢰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제가 3남매 중 장녀인데, 어릴 때 “너는 여자니까 미스코리아 되고, 남동생은 대통령 해야지”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당한 성추행, 데이트 폭력, 결혼 준비하면서 겪은 일,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로서의 경험 등 내가 외면해온 차별의 역사가 너무 많았습니다. 심지어 나는 맹목적인 믿음에 회의를 느끼고 진정한 믿음에 관해 질문해온, 나름 깨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왜 여성으로서의 나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잠을 못 잘 정도로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처럼 교회 안의 다른 여성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Q. 1년 넘는 기간 동안 연재를 준비하며 인터뷰와 그룹 미팅 등의 취재를 거쳤다고 들었습니다.

 

▲ 이미지 : <비혼주의 마리아> 단행본 (출처 : YES24)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이슈화되는 데 비해, 교회 안에서 여성의 발언은 여전히 음지에만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취재가 쉽지 않았는데 지인을 통해 트위터의 존재를 알고 들어가 보니 거기에 다 계시더라고요. (웃음) 익명성이 보장된 곳이라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고, 그것을 보며 배우고 함께 분노할 수 있었습니다. <믿는 페미, 교회를 부탁해>라는 팟캐스트를 만드시는 여성들을 만나 많은 말씀을 들었고, 목사가 될 예정인 남성 전도사로부터 교회 내의 권력 구조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Q. 모태신앙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엄마가 교회에 아주 열심히 다니셔서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며 집에서 독립했고 선교단체 활동을 하게 됐는데, 뭔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원하던 만화학과에 들어갔고 행복한데도 세상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온실 같은 교회에서 자라온 저는 대학 생활, 교우관계에 너무 서툴렀습니다. 내가 복음 만화를 그린다고 했더니 친구들은 이상한 애라고 비웃었고,“이럴 거면 신학 대학 가지 왜 여기에 왔어?”라고도 했습니다.

 

 

 

Q.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나요?

 

전공 수업에 잘 안 나갔고 선교단체에서 요구하는 숙제의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두 발을 이쪽저쪽에 걸쳐놓은 것처럼, 전공에 집중하다 보면 성경 공부와 기도량을 채울 수 없었고, 그 죄책감으로 선교단체 활동에 치우치면 전공의 그 많은 과제를 소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선교단체 사람들은 ‘네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라고 일축했고, ‘대학은 위험한 곳이다’, ‘절대 남자친구 사귀면 안 된다’ 등 엄격한 규율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아멘’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사귀지 말라면 더 사귀고 싶지 않나요? (웃음)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시작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사귄 남자친구가 지금의 남편(에끌툰 대표 일러스트 작가)입니다.

 

 

 

Q. 그래서 <비혼주의자 마리아>라는 제목이 더 강렬했던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 ‘비혼’은 소수의 라이프 스타일이고 기독교 세계관에서 ‘마리아’라는 이름이 갖는 기존의 이미지가 있는데 이런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비혼 라이프’를 그리는 만화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웃음) 사실 ‘비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놀랐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결혼하지 않은 언니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걸 보게 됩니다. 이들이 묶일 공동체가 없고, 주위에서 ‘뭔가 하자 있는 애들’이란 식으로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여성은 남성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여성은 누군가의 짝으로서만 존재하고 그게 전부고 가장 큰 축복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줄 알았습니다. 미디어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노처녀’라는 이름으로 깎아내리고 히스테릭한 사람처럼 묘사하지 않나요? 그런데 비혼이라는 말과 함께 보니 현실에는 혼자서 너무 멋지게 잘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자립 불가능한 여성상을 길러내는 것과 반대로 여성이 충분히 자립적으로 설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단어가 ‘비혼주의자’일 것 같았습니다.

 

 

 

Q. 교회를 떠난 마리아와, 여전히 독실한 한나 자매를 통해 이야기를 펼쳐나간 이유도 궁금합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여동생과 거의 한 몸처럼 자라왔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항상 다른 여성과 비교당하는 것처럼, 자매인 우리도 평생 비교당하며 살아온 데 대한 피로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멀어진 적도 있지만, 결국 생각나고 서로에게 돌아올 만한 관계가 자매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나와 마리아처럼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신앙관을 가질 수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대화하고 연대할 수 있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예고편에서 한나가 결혼예비학교에 갔을 때 듣는 말은 이 이야기가 무엇을 겨냥하려 하는지 명확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남녀평등이다, 페미니즘이다, 요즘 뭐 복잡하지만, 우리는 그냥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그죠? 아멘?”

 

교회 안에는 분명 페미니즘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런 만화를 그릴 거라고 주위 기독교인 언니들에게 얘기했을 때 다들 반응이 “그런 걸 왜 그려?”였습니다. 여성의 인권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그런 일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거나, “페미니즘이 나오고 남녀 갈등이 생긴 건 성경에 나온 대로 살지 않아서 그래. 남자는 일 하고 여자는 애 보고, 이렇게 딱 나누면 해결될 일이야”라는 말을 직접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크고 작은 여성 차별을 겪지만 그걸 가장 극심하게 느낄 때가 결혼을 준비할 때입니다.

 

 

 

Q. 에끌툰과 인스타그램에 함께 연배한다는 결정은 어떻게 내리게 됐나요?

 

에끌툰에 <비혼주의자 마리아> 첫 회가 올라왔을 때 “아름다운 결혼에 관해 얘기하려 하시는군요. 역시 돕는 배필, 아름답습니다.” 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웃음) 여기서만 연재해선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주 늦게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기로 했는데, 반응이 점점 달아오르는 걸 보며 무척 재밌었습니다. <스트리트 페인터> 때부터 수신지 작가님을 좋아했는데, 그분이 인스타그램에 연재하신 <며느라기>의 성공도 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Q. <비혼주의자 마리아>의 일차적 독자를 기독교인으로 봤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랬듯 페미니즘에 비우호적인 이들을 설득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나를 화자로 내세웠습니다. 한나는 평범한 여성 기독교인,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입니다. “당연히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해” 라거나, “바울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건 별로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라는 건 실제로 제가 했던 생각입니다. ‘바울과 여성 혐오’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런 단어를 써도 될까, 너무 신성모독적일까 굉장히 주저했습니다. 저도 뼛속까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요. (웃음) 독자들이 그런 한나에게 감정 이입하길 바랐습니다.

 

 

 

Q. 한나와 마리아가 함께하는 독서모임에서 <바울과 여성>(크렉 S. 키너)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뼈대인 것 같은데요. 왜 바울이었나요?

 

단순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성 차별의 사례만이 아니라, 차별의 근원에 그것을 용인하는 신학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신약의 교리를 완성한 사람이고,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성은 남자에게 순종하라” 등 여성을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구절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양반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이 산을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울이 진짜 그런 의미로 말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Q. 바울이 과거의 차별을 상징한다면, 마리아의 약혼자였던 윤 목사가 미성년자 신도를 상대로 저지르는 그루밍 성폭력은 현재 교회에서 발생하고 은폐되는 범죄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믿는 페미> 팟캐스트에서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인데, 저도 선교단체에서 활동할 때 남자 간사님과 밀폐된 공간에서 1대 1로 공부하고, 같이 밥도 먹고, 때로는 영화도 봤습니다. 그때 저 역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교회 안의 그루밍 성범죄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사를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Q. 그런데 윤 목사는 겉보기엔 너무나 선량한 ‘교회 오빠’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 ‘누가 생각나는데?’ 싶게 흔히 볼 수 있는 얼굴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실제 전도사 시절 초반 윤 목사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이 아이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유하고 있다고 느껴”라는 대사는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더 무서웠습니다. 목사가 성도의 사생활이나 아픔을 다 아는 것이 최고의 덕목처럼 취급되는 관행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고 권력에 익숙해지는 윤 목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교회는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인데 다들 너무 무지하고, 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목사님들도 ‘왜 나를 가해자 취급하냐’는 생각에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권위와 힘을 갖고 있으면 조심하는 게 맞습니다.

 

 

 

Q. 윤 목사의 재판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이 다소 빠르게 마무리되어 아쉬웠습니다. 원래 분량이 정해져 있었나요?

 

처음 계획은 24화였습니다. 바울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조금은 더 학습만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재하다 보니 동시대 여성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루밍 성범죄도 함께 다루며 방향을 조금 선회했고 분량도 늘어났습니다. 윤 목사의 재판 과정 등을 좀 더 깊게 다루고 싶었는데 분량이 넘쳐서 압축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점이 나 역시 아쉽습니다.

 

 

 

Q. 비기독교인인 독자들도 이 작품을 통해 교회와 기독교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그린 만화지만, 남성 중심적 구조 안에서 여성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상황은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여성들의 아픔을 교회 밖에 있는 여성들도 함께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안에서도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데 공감해주신 것 같습니다.

 

 

 

Q. ‘공적 신앙’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 이미지 : <비혼주의 마리아> ⓒ 에끌툰

 

그게 에끌툰의 가장 중요한 방향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에 어떻게 이바지하고,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세상이라는 건, 교회라는 영역을 넘은 하나님의 창조물 전체입니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을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 간다”라고 하지만, 정작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교회가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화를 통해 교회에서 금기시되었던,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궁금했던 질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요?

 

<비혼주의자 마리아>를 마치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져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입니다. 바울에 대해 좀 더 궁금해졌다는 사람들을 위한 지식 중심의 만화도 해보고 싶고, 또 다른 여성 서사 만화를 그리고 싶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내 또래 여성들의 경험이나 신앙의 흔들림에 관해 날것의 느낌으로 풀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여성 기독교인으로서 많은 고민이 이제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것과 부딪히며 만화를 그릴 생각입니다. 우리는 K-Story로 한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최지은 사진 최민호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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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여신의 지위가 현실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그리고 현실 여성의 지위는 여신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죠.
(중략)
빼앗긴 여신의 신화를, 여성의 이야기를 되찾아야 해요. 
그리고 이런 일이야말로 저 같은 창작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죠.

 

 

 

 

' 신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시대의 신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흥행을 올리고 있는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20여 편의 영화 10여 편의 드라마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북유럽이나 수메르 신화아프로퓨쳐리즘(Afrofuturism)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물론이고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과 같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회문화적 요소들까지도 포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신화를 재구축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프로퓨처리즘 : 아프리카+미래주의의 합성어,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문화와 역사, 선진 기술의 발전을 융합시킨 문화 양식
*오리엔탈리즘 :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왜곡된 인식과 태도

 

이러한 시대에 신화의 가치는 태고부터 이어지는 원형적 상징(Archetype Symbol)들에 대한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의 반응이라는 신비감에 고정되지 않습니다. 21세기에 신화는 오히려 일상적이고 동시대적인 것들과 만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이러한 기조들이 일반화되었는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신화를 활용해 성공한 서사들을 보면 신화에 대한 전통적이고 원형적인 가치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신화의 세계관이 주는 설정을 활용해 일상의 문제들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다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신화의 국적성 문제와 활용 방법 '  

 

 

신화의 현대적 가치 판단에 인상적인 자료가 될 수 있는 작품이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입니다. 작품의 근간이 되는 세계관은 불교 세계관인데요. 이제껏 한국적인 신화 요소를 활용한 작품들은 대부분 그 근간이 불교의 세계관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한국의 신화로는 단군신화가 있지만이는 민족성을 고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의미가 더 큽니다. 게다가 신화가 대중적으로 확산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한국에 1600여 년 동안 영향을 주었던 사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민족성을 소거한 한반도의 구성원들에게 집단 무의식으로 작용하기에 쉬웠던 것은 오히려 불교 신화였을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딜리헙 <극락왕생> 페이지

 

그렇다고 해서 불교 신화가 한국적 신화라고 의미화하는 것 역시 적합하지 않습니다. 불교 신화는 해당 사상을 공유한 문화권을 횡단하면서 다양한 가치와 문화적 요소들을 내포한 거대한 세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를 한국적이라고 규정하고 의미부여 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극락왕생>은 한국적입니다. 불교 신화라는 세계관이 철저하게 현대 한국의 일상을 설명하고 있기에 그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각종 신화적 요소들을 끌어모아서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새로운 신화 구축에 활용하고 있다면, <극락왕생>에서는 불교 신화의 세계관과 한국의 설화들을 활용해 현대 한국의 일상과 그 안에서 평범해 보이는 한 여성의 삶을 보여줍니다.


<극락왕생>에서 귀신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자신이 지냈던 고3이라는 일 년 동안을 보장받은 주인공 자언은 이러한 불교 신화의 세계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요소들 위에 축조된 인물입니다. 일상이라는 현실의 세계만이 존재하던 시절에서 인간도,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 천상도, 수라도의 육도로 구분되어있는 사바세계로 인식의 지경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 확장에 따른 다양한 설정들은 전적으로 불교 신화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특히 건을 만들어내는 귀신들에 관한 이야기나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호법신이나 보살과 같은 인물들의 설정 또한 신화로부터 유래합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제약도, 문제의 발생도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 일상의 세계를 다양하게 보는 것 '  

 

▲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인터넷 서점 나츠메 우인장

 

하지만 <극락왕생>을 단순히 불교 신화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만 여길 순 없습니다. 이 작품은 불교 신화라는 세계관을 활용해 일상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일본 만화에서 2000년대까지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퇴치 대상이라고 여겼던 요괴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던 <나츠메 우인장>이 보여주던 방식과도 비슷합니다. <극락왕생>은 어디까지나 합정역 귀신이었던 자언의 고3 생활을 통해서 일상이라는 것의 난해함과 가치를 돌아보게 합니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성여학생이라는 상황에서의 일상은 그저 지나왔을 당시에는 지난하고 치열한 삶이지만 인식의 지경을 넓히고 돌아가 보면 다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즈메리 잭슨이 이야기했던 환상의 강력한 기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이면을 들춰볼 수 있고그것을 통해 현실 그 자체를 전복할 힘을 제공하는 것 말입니다. 지방이라는 장소적 한계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 그리고 수험생이라는 제약투성이의 시기적 한계들은 환상을 통해서 해체되고 다시 재정의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일상에 대한 새로운 정의들이 도출됩니다. 그것은 친구와 가족 같은 대상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고, 사랑과 우정, 타인을 대한 방법과 같은 관계 맺기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상의 다양한 의미들은 거리를 두고 낯설게 함을 통해 통찰할 수 있고 21세기에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환상이라는 매개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극락왕생>은 이미 다양한 서사에서 활용한 서구의 신화적 세계관이 아니라 아직은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는 불교 신화의 세계관을 차용해 낯설게 하기를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집단 무의식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던 불교의 세계관들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통찰하는 게 조금 더 친밀감을 주기도 합니다. 불교의 교리를 모르더라도, 신화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극락왕생>에서 자언이 살아내고 있는 또 한 번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화라는 거대한 세계관이 일상에 맞닿았을 때 일어나는 일종의 화학작용입니다.

 

 

 이지용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지금, 만화"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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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가 처음 만날 무렵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곳에 와있다.

 

실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오래전 처음 만화를 그려 돈을 벌기 시작했던 때, 훗날 늙은 개 한 마리를 샅샅이 들여다보며 매일 말을 걸고, 반응을 살피고, 개에 대해 생각하고, 개를 그리고 또 그린 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게 만화는 그저 노력 대비 수입이 좋은 아르바이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치 사회 문제를 풍자적으로 그리는 이른바 ‘시사 만화가’였기 때문에 채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로부터 ‘정 화백’ 또는 ‘정 선생’으로 불렸습니다. 요즘 한국 범죄 영화에 등장 하는 마약 제조상이나 손목 하나쯤 잃고 은둔한 도박 고수 같은 호칭이었습니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벌써 이런 작품을 그리느냐, 대단하다, 장래가 촉망된다 등등의 칭찬을 들었고 이따금 공모전 같은 데서 상도 받았으며 덕분에 잔뜩 우쭐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철이 없었습니다. 그때의 ‘정 화백’은 꽤 밥맛없는 인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나와 놀아주었던 친구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새삼 감사의 마음과 사과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밥맛없게 굴어서 미안해요.

 

 

그때 들었던 칭찬은 진짜 내가 잘 그려서 였다기보다는 원고료 인상 대신 말 몇 마디로 퉁치려는 데스크의 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제 와서 의심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일이겠지만. 하여튼 여차 여차해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으며 요즘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16년 하고도 4개월가량을 함께 살아온 개 한 마리와 단둘이 제주도에서 헤엄도 치고, 해변을 달리고, 바다 쓰레기를 주우며 분노하다가 마감이 닥치면 갑자기 “앗 뜨거! 큰일 났네하며 부리나케 만화 도 그립니다. 원래 둘은 아니었고 개가 두 마리여서 합이 셋이었는데 하나는 제주도에 내려온 지 1년 만에 뇌종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녕, 소리야. 떠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개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속에서 울적한 비구름이 순식간에 뭉게뭉게 모여듭니다. TV에서 어떤 어린이 연기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우는 연기를 잘해요, 하고 묻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슬픈 생각을 해요. 엄마가 멀리 떠난다든지.... 아이는 대답을 하며 벌써 눈물을 그렁거렸습니다. 나도 떠나보낸 개 생각을 하면 언제든지 금방 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린이도 아니고 연기자도 아니어서 써먹을 일 이 없는 게 좀 유감스럽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엔 불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다행인 것 같은 일은, 그때 내가 개들과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10년 넘게 잔뜩 찍어 놓은 개들의 사진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주에 막 내려온 도시 촌놈의 어리둥절함에 대해 주간지에 에세이를 연재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 사진을 책으로 만드는 일은 원래 항상 내 만화보다 내가 찍은 개 사진이 더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동안 먹이고 재우고 산책시키고 병원에 데려갔으니 이제 너희들이 돈을 벌어 오너라하고요.


그런데 그저 찍어놓은 사진들을 엮으면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일이 기대했던 것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수만 장의 사진 중에서 책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는 작업은 매우 곤란했습니다. 아무리 거저먹기 프로젝트였다고 해도 사진만으론 책의 모양새가 갖춰질 것 같지 않아 중간중간 만화를 넣기로 했는데 그 작업도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비극은 내 등 뒤에 있었습니다. 내가 책상에 코를 박고 일하는 동안, 개들은 산책하고 싶어서 들끓는 피를 한숨으로 삭이며 속수무책으로 소파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개가 아팠습니다. 많이 아팠는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실은 내색을 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책 작업만 끝나면 내가 실컷 놀아주마 하고 중얼거렸지만, 개에게 그럴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그때 나는 몰랐습니다. 책 만드는 작업이 끝난 후부터 홍보 활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아픈 개를 부둥켜안고 안 아픈 개는 리드 줄로 끌며 제주에서 서울까지 병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마침 처음 병을 발견했던 때에는 설 연휴와 주말이 겹쳐 긴 연휴가 생기는 바람에 문 연 동물병원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 이전에도 이후로도 아직 그만큼 긴 일주일을 겪어본 일이 없습니다.

 

 

책이 나오고 인터뷰며 북토크며 홍보행사에서 개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했던 무렵에 아픈 개는 이미 내 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앞에 앉아 있는데 슬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써먹을 데도 없는 눈물이 솟구쳐서 삼키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책 만드는 일 말고 또 다른 하나의 일, 그러니까 제주 생활에 대한 에세이는 매주 꼬박꼬박 연재하고 있던 일이어서 당시 내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는 아니어도 꽤 담기게 되었습니다. 너무 징징거리면 그나마 얼마 안 되던 독자마저 떨어져 나가버릴까 봐 나름 의연한 척 자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는지 거기 담긴 문장들은 내게 일종의 인덱스가 되어 지금도 한 줄만 읽으면 당시 있었던 일과 감정들이 주르륵 딸려나오는 것입니다.

 


<노견일기>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기록해 둔 시기의 기억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사이사이의 일들까지 잘 떠올릴 수 있지만, 기록해두지 않은 때의 기억은 흐릿하거나 모호하거나 아예 내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언젠가 깨달았습니다. 나는 출퇴근 같은 걸 한 적이 없고 집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부분 24시간 내내 개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 땐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이든 부부간이든 하루 중 절반 내외의 시간은 떨어져 있는 게 보통 일터이므로, 생활시간으로 환산하면 풋코와의 16년은 그 배의 시간에 가깝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득 우리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으시고 하루 종일 나와 한 공간에 계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모골이 송연해지고 호흡곤란이 올 것 같은 기분이 좀 듭니다. 혹시 우리 개들도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겠지만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그래서 이 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가 되었고, 우리는 서로 삶 전체를 지켜봐 온 동반자 겸 관찰자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존재가 머지않아 내곁을 떠나가리라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선망하고 있던 때 즐겨 펼쳐보던 책 <세계의 명견들>에는, 풋코와 같은 폭스테리어 종의 평균 수명이 10년에서 14 년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비록 병으로 떠나긴 했지만 12년을 살다 간 소리는 그럭저럭 제 수명을 누렸다고 볼 수 있겠고 풋코는 이제 그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소리의 경우 이별을 알지 못한 채 갑자기 맞닥뜨렸지만, 풋코와의 이별은 어쩌면 차분히 준비하면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내게 지금을 기록할 도구가 필요했고 내가 만화가다 보니 그게 <노견일기> 라는 만화가 된 것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던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 <노견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던 때는 겨울이었는데, 아마도 그게 풋코와의 마지막 겨울이 되리라고 예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함께 한 번의 겨울을 더 보냈고, 그다음의 봄, 여름까지 두 계절을 더 난 다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풋코는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리고 있는데, 아직도 바다에 가면 해변을 뛰어다니고 첨벙첨벙 헤엄치기를 즐길 만큼 건강해서 도무지 이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는 동 안 <노견일기>의 연재 역시 1년을 넘겼고, 의외로 많은 독자로 부터 격려와 응원의 반응을 얻고 있어서 좀 얼떨떨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노견일기>가 연재되는 포털 사이트의 댓글란은 언제부턴가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나누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야기, 함께 살고 있는 개나 고양이에 관한 사랑과 염려, 또 그에 대한 다른 독자들의 위로로 가득한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시시한 내 만화보다 훨씬 절절한 사연이 많아서 나 역시 눈물을 쏟곤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엔 <노견 일기> 연재 원고 중 앞부분을 묶어 책으로 냈습니다. 책 머리말엔 이렇게 적었습니다.“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가 처음 만날 무렵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다.”



 그랬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함께 사는 삶을 통해 개들은 그런 나를 어디론가 조금씩 이끌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삶 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좀 더 자신 밖의 세상과 조화롭게 공존하길 갈망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대도시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개들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고, 내게 만화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탐구의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대체 인간은 왜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 을 들여가면서 개를 기르는 걸까요? 언젠가 필연적으로 찾아올 이별의 순간을 알면서도 애정을 쏟는 건 어째서일까요? 종을 넘어선 다른 존재와의 교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 일까요? 내 생각엔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은, 얼마 간 인간이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아무짝에도 쓸 모없는 것, 삶이 어느 정도의 풍요를 누릴 때 인간은 그것을 추구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개 기르기 의 인문학’이랄까요.

고백하건대 <노견일기> 안에는 창작자로서 나의 회한 같은 것도 남몰래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대부분 내 생활의 조각을 잘라 만화로 가공하는 일을 해왔는데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내 이야기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 가상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잘 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사실 그런 시도를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능력 부족과 게으름 탓으로 내가 지은 남의 이야기는 편집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 하드 디스크 안에서 잠자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노견일기>에는 가끔 그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노견일기>는 대부분 내가 겪거나 보고 들은 이야기인 게 맞지만 100% 사실 그대로는 아니고 심지어 이따금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도 있다는 걸 얘기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사실을 알고 <노견일기>의 독자들이 내게 돌을 던진다면? 음,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세상에 통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근거로 삼고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김우열 작가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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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아직 건네지 못한 인사가 남았다.
엄마, 안녕!

 

 

재미있는 말입니다. 별생각 없이 쓰는 ‘안녕’은, 곱씹을수록 재미있습니다. 명사로서의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뜻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인사를 건넬 때 쓰는 감탄사로서의 ‘안녕’은 다릅니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만나거나 헤어질 때’ 쓰는 감탄사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니, 완전히 극단의 상황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상황에서 같은 발음으로 ‘안녕’을 말합니다.


웹툰 <안녕, 엄마>는 <사랑스러운 복희씨>로 꽤 많은 팬덤을 가진 김인정 작가의 새 작품입니다. 복희씨에게 푹 빠져있던 독자들의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롤로그 공개 후, 댓글 창에는 <안녕, 엄마>의 ‘안녕’이 ‘Hello’인지 ‘Goodbye’인지에 대한 의견으로 분분했습니다. 나란히 서서 요리를 하는 엄마와 딸. 그리고 엄마에게 전하는 메시지, ‘안녕, 엄마.’ 이 모녀는 어떤 인사를 건네는 것 일까요.

 

 

 

' 밥 먹었냐는 안부와 진심 '  

 

“밥 먹었어?” 떨어져 있었던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우리는 안부를 묻기 위해 말합니다. 진짜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기 보다는 잘 지냈냐는 말의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물론 아주 우회적인 표현이라고만 할수도 없습니다. 오래 전 밥도 못먹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그 사람의 안위를 파악하기 위해 ‘밥 먹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밥 먹었냐’는 인사로 서로를 맞이합니다.

 

밥 때가 되었으면 함께 밥을 먹자는 의미로, 밥때가 지났으면 밥을 잘 챙겨 먹었냐고 걱정하는 의미로. 생각하면 참으로 정겨운 인사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그것은 다르다. 엄마의 ‘밥 먹었냐’는 질문은 안부를 묻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응” 혹은 “아니”의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밥을 먹었냐는 것입니다. <안녕, 엄마>도 그렇게 시작됩니다. 엄마와의 전화에 은영이는 “응, 먹었어” 라고 답합니다. 예상되는 엄마의 물음은 “밥 먹었어?”. 엄마는 늘 진짜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 합니다(뭘 먹었는지까지도!). 그래서 우리는 그 질문에 소홀해지기도 합니다.


골치 아픈 전화를 받는 와중에 엄마의 연락을 무심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은영’이도 그랬습니다.
 ‘안녕’을 둘러 싼 의견에 답을 먼저 말하자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은영이는 엄마와 헤어졌습니다. 엄마의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전화 통화를 나누었던 엄마는 영정 사진이 되어 돌아왔는데요. 은영이는 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은영이는 다시 엄마를 만납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아닌, 헤어짐과 만남 입니다.

 

 

 

 

' 엄마와 딸, 두 이야기 '  

 

 

 

엄마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은영이가 받은 것은 엄마의 일기장입니다. 하나뿐인 딸 은영이는 이 일기장을 조심스레 손에 쥡니다. ‘자기 물건 건드리는 거 싫어할 텐데.’ 은영이는 엄마를 보내고서도 엄마에게 다가서기 힘들어합니다. 잡다한 메모가 적힌 일기장을 받아들고도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는 건 제일 싫어했겠지.’ 엄마가 돌아온 것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일기장과 함께 돌아온 엄마. 엄마는 ‘죽음’이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은영이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냅니다. 은영이는 엄마의 일기장을 단숨에 읽지 못하고 한 장씩, 천천히 넘깁니다. ‘냉혈한’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차가웠던 엄마와 서먹할 수밖에 없었던 은영이는 일기장을 통해 엄마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까요? 엄마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은영이지만, 엄마를 찾아가는 와중에 은영이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마주합니다. 엄마, 그리고 딸의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집니다.

 

 

 

' 이상적인 관계? '  

 

 

혼자 남은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하나씩 좇습니다. 그 과정에서 은영이는 몰랐던 엄마의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존재도 몰랐던 엄마의 남자 친구, 삶의 괴로움, 흔적. 엄마가 언젠가 꼭 가고 싶었다던 바닷가를 찾은 은영이는 장례식장에서부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마음껏 엄마를 그리워하고 싶었던 것일까요?서툰 관계의 끝에서 은영이의 마음이 그렇게 쏟아집니다.

 

 

▲ 이미지 : <안녕, 엄마> 단행본 판매 사이트 캡처 (https://bit.ly/2NbuKOr)

 

그래서인지 이야기 초반엔 엄마의 흔적을 좇았다면 이후부터는 은영 이의 ‘속마음’들이 드러납니다.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희선이를 보며 은영이는 생각했습니다. ‘이상적인 관계.’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희선이에게 은영이는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감정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하지만 은영이는 이제 생각합니다.‘엄마도 힘들 때 내가 보고 싶었을까?’ 사실 희선이도 엄마와의 관계가 쉽지 않습니다. 은영이처럼 서먹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다 보니 적당한 거리가 없는 것이죠. 성인이 되어 떠나가려는 희선이에게 서운한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서 답답함을 느끼는 희선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은영이에게 털어놓은 희선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세상에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요?

 

 

' 나를 만나다 '  

 

일기의 마지막 장에 가까워질수록 엄마는 흐릿해집니다. 선명하던 엄마는 말없이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은영이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곧 엄마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은영이는 처음부터 엄마가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깊은 후회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은영이가 만들어 낸 자기방어와 같은 환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좇은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와 미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엄마와 꼭 닮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내가 안고 가야 할 상처와 기억,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이제 엄마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나를 만나고 “안녕”, 엄마를 보내며 인사합니다. “엄마, 안녕.”

 

 

 강정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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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웹툰 업계의 역설, 플랫폼의 숫자가 늘어나고 웹툰 시장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웹툰 작가들의 지위는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불공정거래 중 가장 큰 비중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익 배분과 관련된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웹툰 시장이 매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013년 1,500억 원 정도였던 웹툰 시장의 규모가 2015년에는 2,347억 원으로 늘어났고, 2018년에는 8,800억 원(추정치)에 이를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해외로 수출되는 웹툰의 비중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웹툰 시장이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실력 있는 웹툰 작가들이 늘어나 다양한 웹툰 작품이 생겨난 것이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웹툰 시장이 크게 성장한 만큼 웹툰 작가들의 지위가 그에 걸맞게 높아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상당수의 작가는 적은 수입과 계약 해지의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웹툰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국내 웹툰의 성장 과정과 그와 관련하여 웹툰 계약에서의 불공정거래의 발생 원인을 살펴보고 최근 발생한 불공정거래 사례를 통하여 개선방안을 도출하고자 합니다.

 


 

 

 

' 웹툰의 등장과 웹툰 플랫폼 ' 

 

디지털 매체 및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기존의 출판 만화 (인쇄 만화)와는 전혀 다른 형식의 만화 장르로 웹툰이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초창기의 웹툰은 현재와 같은 형태가 아니었으며, 일반 네티즌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이 개인 창작 공간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 작품을 개시하면 그곳을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불특정다수가 입소문을 내거나 공유를 하는 방식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이미지 : 네이버-다음-네이트웹툰 로고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네이버(NAVER), 네이트(NATE), 다음(Daum)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포털 업체들이 자신의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 가능한 콘텐츠의 하나로 웹툰에 주목하고 이를 사업화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웹툰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포털 사이트에서 웹툰이 정기적으로 연재되면서 웹툰이 하나의 장르로서 본격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부터 점차 대중에게 인지도 있는 작가와 작품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인터넷 포털 업체에서 웹툰을 정기적으로 연재를 한 것은 현재와 같이 웹툰 시장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후 포털 업체 이외에도 웹툰 연재만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겨났으며 2018년 기준으로 이와 같은 웹툰 사업자(유통 플랫폼)의 숫자는 60여 개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 웹툰 계약에서 불공정거래의 발생 ' 

 

 

역설적으로 웹툰 플랫폼의 숫자가 늘어나고 웹툰 시장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웹툰 작가들의 지위는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웹툰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노출할 수가 없게 되고, 한정된 공간(사이트) 내에 자신의 작품을 연재하기 위해서는 웹툰 플랫폼의 눈치를 보거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립적인 창작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웹툰 작가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극히 일부의 작가들을 제외하면) 웹툰 플랫폼에 예속되는 지위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웹툰 작가를 사업자로 볼 것인가, 노동자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하는 쟁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이 웹툰 플랫폼이 웹툰 작가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웹툰 계약에서의 불공정거래가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웹툰 계약에서의 불공정사례(1) - 레진코믹스 ' 

 

▲ 이미지 출처 : 레진코믹스 로고

 

웹툰 플랫폼 중 하나인 ‘레진코믹스’와 연재 작가들 간의 갈등은 웹툰 계약에서의 불공정거래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갈등의 원인은 레진코믹스에서 계약 내용(조건)을 작가들과 충분하게 협의하여 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설정한 뒤 작가들에게는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히 웹툰 연재 마감 시간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어기면 예외 없이 패널티를 부과하는, 이른 바 ‘지각비’ 조항은 -법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많은 작가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레진코믹스 사태가 크게 부각된 데에는 갈등 이후 해결 과정에서 레진코믹스가 작가들에게 보여주였던 태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오히려 더 큽니다. 레진코믹스는 작가들과의 분쟁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메인화면에 노출하지 않거나 광고를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대응습니다. 이는 웹툰 플랫폼이 연재 작가들을 자신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 웹툰 계약에서의 불공정사례(2) - 케이툰 ' 

 

웹툰 작가들이 웹툰 플랫폼과의 관계에서 겪고 있는 불공정거래 중 가장 큰 비중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익 배분과 관련된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익 배분과 관련해서는 웹툰 사업자가 웹툰 작가들에게 적정한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수익과 관련한 정보를 작가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하는 문제가 더 큽니다.

 

▲ 이미지 출처 : KTOON 구글 플레이 스토어 공식 이미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케이툰과 연재 작가 간의 갈등도 그와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케이툰 사례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케이툰 쪽이 (유통사를 통하여) 작가들에게 일방적으로 연재 중단을 통보한 것이 갈등의 원인이지만 그 이면에는 웹툰 플랫폼인 케이툰이 작가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유통사와 작가들이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해당 유통사를 통해 작품을 공급받으면서 작가들에게는 매출이나 수익과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점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큽니다. 

현재도 케이툰 쪽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작가들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공간은 케이툰이고, 독자들 역시 케이툰을 통해 작품을 접한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케이툰의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케이툰이 어쩔 수 없이 연재 중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작가들에게도 그 점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웹툰 사업자로서 책임 있는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 불공정거래 개선을 위해 플랫폼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 

 

▲ 이미지 : 2018 한국콘텐츠진흥원 발표 <웹툰작가 실태조사> 보고서 中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웹툰 계약에서의 불공정거래가 발생하는 원인은 웹툰 플랫폼이 작가들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계약 조건을 설정하거나 계약 사항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하는 점이 큽니다. 계약 조건과 관련해서는 웹툰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의 당사자인 웹툰 플랫폼과 작가들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마련한 웹툰 표준계약서를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표준계약서를 마련한 기간이 오래되어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현실에 맞게 적절히 보완할 필요는 있습니다. 웹툰 플랫폼은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어서는 안 될 것이며, 구체적인 계약 내용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에 작가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정보 제공과 관련하여 웹툰 플랫폼은 웹툰을 연재하는 작가들 역시 함께 사업을 이끌어가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작가들에게 해당 웹툰 작품과 관련된 매출액이나 광고 수입 등 수익 현황 등을 정기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불공정거래 개선을 위해서는 웹툰 플랫폼이 작가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우리 웹툰이 양적인 성장에서 그치지 않고 질적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조일영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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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이제 웹툰은 한국의 유력한 서사 매체가 되었다는 것이고 드라마는 이러한 웹툰의 강점을 흡수하거나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동시대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웹툰이 드라마 시장에 던지는 질문은 절대 만만하지 않은데요. 약 5년 전, 2014년 10월에 열린 
tvN 드라마 <미생> 제작보고회에서 연출을 담당했던 김원석 감독은 동명의 원작 웹툰과의 정서적 교집합에 대해, 작은 사건 하나에도 현미경으로 들이밀 듯 세세하게 비추는 연출을 시도했노라 밝힌 바 있습니다. 사실 원작이 다음웹툰에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 만화가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찬사를 보내던 중에도 혹자는 갈등과 해소의 파고가 그리 높지 않은 <미생>의 스토리로는 영상화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만큼 연출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겠죠. 

 

기존 한국의 오피스 드라마에선 재벌 2, 3세 남자 주인공과 신입 여성 직원의 로맨스를 그리거나, 회사의 명운이 걸린 대기업 간 암투가 벌어지는 반면, <미생>에선 정직원이 되기 위한 인턴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세상 무엇보다 박진감 넘치게 그려졌습니다. 주제 선정, 발표 팀원 간 호칭 정리 같은 아주 작지만, 본인들에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순간들을, 김원석 감독의 카메라는 밀도 높게 잡아냈는데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높은 시청률과 대중과 평단의 고른 호평이 있었습니다. <미생>은 한국 오피스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것은 연출자와 드라마 작가, 연기자들의 공로지만, 또한 웹툰 원작이 가진 장점을 전혀 다른 미디어인 드라마 안에 유의미한 수준으로 이식하려는 노력이 더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웹툰 원작이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OSMU) 혹은 트랜스 미디어를 통해 드라마 시장에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웹툰 원작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성들이 드라마의 기존 문법에 변화라는 압박을 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웹툰의 드라마화는 단순히 해당 드라마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거나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느냐는 것과 별개로 한국 드라마의 문법에 유의미한 영향과 경쟁 압력을 줬느냐는 맥락에서도 돌아볼 만합니다.

 


 

 

 

' 소재주의, 웹툰 원작을 다루는 양날의 방식 ' 

 

▲ 이미지 : tvN <도깨비> 공식 이미지

 

드라마의 러브콜을 받은 웹툰들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라면 소재적인 특성이 한눈에 드러나는 장르물이라는 것입니다. 메디컬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오피스 드라마는 회사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법정 드라마는 법정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꽤 오래된 농담(이자 진담)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국 드라마에서 SF나 판타지, 추리, 공포, 스포츠 등 장르적 특성은 거의 언제나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라는 좀 더 거대한 요소에 흡수되기 일쑤였습니다. 

나름 신화적 세계관과 공들인 CG를 선보였던 김은숙 작가의 tvN <도깨비>를 예로 들어 볼까요? 천 년 조금 안 되게 살아온 신적 존재인 김신(공유)과 전생의 업보 등이 뒤얽힌 세계를 설정에 깔고 있지만, 결국 드라마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으나, 어딘가 어수룩한 매력의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끌리는 연약하지만 씩씩한 여성의 연애라는 김은숙 표 트렌디 드라마의 오랜 문법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만화 혹은 웹툰 특유의 장르적 특성과 소재주의는 한국 드라마에 어느 정도의 다양성을 부여합니다.


 

 

▲ 동영상 : OCN <닥터 프로스트> 무빙툰, 출처 : OCN 공식 유튜브

 

OCN에서 방영한 2014년 작 <닥터 프로스트>는 원작과 같이 주인공인 천재 심리학 교수 프로스트(송창의)의 추론을 중심에 놓고 강력 범죄를 해결하는 추리물로 만들어졌습니다. 원작인 웹툰 <닥터 프로스트>는 사이코패스나 해리성 장애, 프로파일링 등 기존 추리 장르물에서 선호하던 극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일상 영역에서 겪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을 주로 다뤘다는 점에서 드라마에 원작의 미덕이 고스란히 전달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원작의 스핀오프처럼 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구구절절한 캐릭터 설명 없이 천재 심리학자와 경찰의 수사 공조라는 설정을 무리 없이 그려낼 수 있었는데요. 



해당 드라마의 완성도를 한국의 <크리미널 마인드>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국내 IP(Intellectual Property)I로 심리 분석과 범죄 해결이라는 요소를 결합해 서사로 풀어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종의 퇴마 장르라 할 수 있을 2016년 작 tvN <싸우자 귀신아> 역시 귀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박봉팔(옥택연)과 수능을 못 치른 한으로 원혼이 된 김현지(김소현)라는 캐릭터를 활용해 원작처럼 호러, 액션, 로맨틱 코미디가 뒤섞인 혼합 장르를 지향한 바 있습니다.

 

 

 

▲ 이미지 : KBS2tv <동네 변호사 조들호>

 

2016년 작 KBS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경우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게 바뀌었고, 소소한 에피소드 위주였던 원작과 달리 거대 권력과 다툼을 그려내며 기존 법정 드라마의 거대 서사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이러한 거대 서사에 대한 집착은 두 번째 시즌인 <동네 변호사 조들호: 죄와 벌>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여전히 직관적인 제목 안에서 감자탕집 강제 퇴거 문제, 유치원 원장의 아동 학대 등 현실적인 분쟁 이슈를 녹여내며 최고 시청률 17%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주의는 많은 경우, 원작의 재밌는 설정 한두 가지만을 가져와 기존 드라마의 문법에 끼워 맞추는 수준의 방식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가장 뜨거운 배우 중 하나인 주지훈을 캐스팅하고 100억이 넘는 제작비를 들이고도 시청률 3%에 그친 2019년 작 MBC <아이템>이 있습니다. 원작으로부터 제목과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물 ‘아이템’이라는 설정만 가져오고, 그 외 캐릭터와 서사의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들어낸 이 드라마는 정의로운 검사와 사이코패스 재벌 2세의 대결이라는 구도 안에 ‘아이템’ 이란 소재를 끼워 넣었는데요. 그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드라마에서  ‘아이템’에 집착하는 재벌 2세 조세황(김강우)의 악행 상당수가 굳이 ‘아이템’을 쓰지 않아도 가능한 일들이란 것이죠.

 

▲ 동영상 : MBC <아이템> 예고편 출처 : MBC dream 유튜브 채널

 

검경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지닌 이가 굳이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 교통경찰에게 시력을 빼앗는 향수를 쓰는 모습을 보며 판타지의 장르적 쾌감을 느끼긴 어렵습니다. 즉 기존 드라마의 선악 구도에 ‘아이템’을 억지로 끼워 넣은 느낌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냄새를 눈으로 본다는 설정만 남기고 주인공부터 배경까지 모든 걸 흔한 한국 로맨틱 코미디로 구성한 2015년 작 <냄새를 보는 소녀>, 역시 제목과 미신을 맹신하는 주인공이라는 설정만 남긴 2016년 작 <운빨로맨스> 등에서 반복됐고, 지금까지 웹툰의 드라마화에서 꾸준히 벌어지는 문제들입니다. 

다시 말해 웹툰 원작의 독특한 설정과 소재는 꾸준히 드라마 시장의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정작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웹툰 특유의 정서와 서사적 특징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작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편의적 소재주의의 함정을 소위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지난해 말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큰 기대를 받았던 두 편의 웹툰 원작 드라마 tvN <계룡선녀전>과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경우를 보면 단순히 캐릭터와 서사의 ‘싱크로율’을 기계적으로 높이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캐릭터와 설정, 그리고 이야기의 구성 요소 상당 부분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 이미지 : tvN <계룡선녀전> 공식 포스터

 

<계룡선녀전>은 심지어 극 중 호랑이로 변신하는 점순이 캐릭터를 CG로 구현하는 노력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원작에 담긴 로맨스 서사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기존 한국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클리셰를 답습하느라 원작의 미덕을 조금도 살리지 못하는 우를 범합니다. <계룡선녀전>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이자 예민한 성격에 이성을 신봉하던 정이현(윤현민)은 드라마에선 예민하다기보다는 과거 SBS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이어져 온 흔한 ‘버럭남’이 되었고, 그런 이현과 적절히 건조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유지하던 이함숙(전수진)은 드라마에선 이현을 짝사랑하며 선옥남(문채원)과 이현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만듭니다. 

 

▲ 이미지 :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인물 관계도, 홈페이지 캡처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원작 파괴 방식도 <계룡선녀전>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데, 병적인 결벽증을 지닌 청소업체 CEO 장선결(윤균상)은 원작에서도 예민했지만, 드라마 안에선 대놓고 타인에게 까칠하게 굽니다. 또한, 여기서도 원작에 없던 최군(송재림) 캐릭터가 등장해 주인공 선결과 길오솔(김유정)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만듭니다. 


해당 원작들이 한국 드라마 속 클리셰의 대척점 혹은 보완할 지점에서 로맨스를 구성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계룡선녀전> 원작에서 정이현과 선옥남, 혹은 정이현과 김금 사이의 이성애적 로맨스는 그저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며, 중요한 건 각 인물이 서로와의 관계 안에서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총체적 과정입니다.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경우 원작부터 명백한 로맨스 장르지만, 선결과 오솔의 로맨스는 두 인물의 심리적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복잡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과 관계들을 눈에 띄게 납작한 K-로맨스 캐릭터로 변환해버렸습니다. 어차피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로 범벅된 대본은 차고 넘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웹툰 IP를 원하는 것일까요? 정말로 원작의 장점을, 기존 서사 매체에선 볼 수 없던 개성 있는 캐릭터와 서사를 이식하겠다는 욕심이 있기나 한 걸까요?

 


 

 

 

▲ 이미지 : tvN <미생> 공식 포스터

 

로맨스는 언제나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주요 요소였고, 특히 ‘욘사마’ 열풍을 일으킨 KBS <겨울연가>의 성공과 한류 열풍 이후 절절한 로맨스는 한국 드라마를 규정하는 장르적 특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랑이, 로맨스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이 안에서 통념처럼 자리 잡은 로맨스 공식이 맥락 없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드라마 <미생>의 주요 미덕 중 주인공 장그래(임시완)와 동료 안영이(강소라) 사이의 로맨스 없는 동료애를 꼽을 수 있는 부분을 예로 들 수 있죠. 라마 안에서도 성공적이었지만 꼭 로맨스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통념을 이겨냈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회사 일과 조직의 메커니즘이라는 소재에 깊이 천착한 원작의 관점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동시에 세대론 적인 관점까지 녹여낸 <미생>에서 장그래와 안영이 포함 동기들 간의 신뢰 가득한 수평적 관계는 작품의 주제 의식과 희망적인 전망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구도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에 로맨스가 끼얹어져 장그래와 안영이 사이, 혹은 장백기(강하늘)까지 포함된 삼각관계가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물이 나왔을까요?

 


 

 

 

 

▲ 이미지 :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홈페이지 캡처

 

<미생>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역시 tvN에서 방영됐던 2018년 작 <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시 기존 한국 드라마의 문법을 배반하며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원작 웹 소설과 웹툰보다 좀 더 뻔뻔하게 그려진 이영준(박서준)과 더 단호해진 김미소(박민영) 캐릭터는 존 한국 드라마 속 재벌 2세와 여성 직원 간 로맨스라는 클리셰를 비틀어 관계를 역전시킵니다. 

‘자뻑’에 빠진 이영준에게 질린 김미소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를 통보하고, 이영준은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원하면 연애까지 해주겠노라 선심 쓰듯 말하다가 거절당하는 모습은 기존의 재벌 왕자님 캐릭터와 로맨스 서사를 뒤틀고 희화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로맨틱 코미디에 충실한 작품이 되었지만, 드라마의 초반 임팩트는 확실했습니다. 원작이 왜 인기를 얻었는지, 재미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이해한 연출과 연기는 드라마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좋은 선례가 나왔음에도 많은 드라마가, 심지어 웹툰 원작 드라마들조차 K-드라마적 클리셰와 고정된 문법을 고민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아쉬운 부입니다.


 

 

 

' 웹툰이라는 경쟁 압력 '  

https://youtu.be/QriU9pvotY4

▲ 동영상 : CON <타인은 지옥이다> 캐스팅 영상, 출처 : OCN 유튜브 채널

 

올해 하반기 기대작으로 스릴러물 OCN <타인은 지옥이다>와 코미디인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등이 있습니다. 네이버 웹툰 자회사인 스튜디오 N이 참여한 이들 라인업에서 원작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드라마의 문법을 다양화하는 결과물들이 나오길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웹툰이 드라마에 미치는 진정한 영향은 웹툰의 드라마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보단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서사 장르로서 웹툰이 드라마에 미치는 경쟁 압력이라는 것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동영상 :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공식 영상, 출처 : 넷플릭스 코리아

 

가령 넷플릭스 <킹덤>의 경우 김은희 작가가 참여한 만화 <신의 나라>가 확장된 프로젝트입니다. 이것은 만화 원작의 드라마화인 동시에 만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조선 시대 좀비물이라는 설정이 넷플릭스를 통해 더 구체화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또한 <미생>의 김원석 감독은 이후 연출작인 tvN <시그널>, <나의 아저씨>에서도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최대한 배제하거나 지연하며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이러한 드라마 시장의 작은 변화들이 모이고 모여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

다만 확실한 건, 이제 웹툰은 한국의 유력한 서사 매체가 되었다는 것이고 드라마는 이러한 웹툰의 강점을 흡수하거나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동시대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벌한 적자생존의 법칙을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 장르든 시대에 맞춰 계속해서 변화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서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진보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웹툰이 드라마 시장에 던지는 질문은 절대 만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근우  | 2008년 엔터테인먼트 전문 웹진 <매거진 t>에 입사해 대중문화 전문 기자로 활동을 시작.  <텐아시아>, 웹매거진 <아이즈>에서 취재팀장으로 일했다. <지금만화> 1~3호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쓴 책으로 <웹툰의 시대>, <프로불편러 일기>,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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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의 마스터피스 <짱>에 이은 현란한 액션 만화의 목적지 <악의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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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짱>의 현상태는 이후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악의 혈통>을 다루기 앞서 전작 <짱>을 언급하자면 <짱>은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장기 연재된 임재원 작가의 학원 만화입니다. 출판 만화의 부침에도, 여러 차례의 매체 변경에도 임재원 작가는 한결같이 주인공 현상태와 그의 친구들을 그려왔습니다. <짱>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학교 폭력의 본질을 심도 있게 파고든 작품이라서요? 아닙니다. 이 같은 시도가 없진 않았지만 서사의 추동력은 어디까지나 짱이 되기 위한 일진 학생의 욕망입니다. 

그러면 동시대성을 반영한 작품이어서? 부분적으로 옳은 답일 수 있습니다. ‘짱’이라는 신조어가 확산된 90년대를 반영하며 특히 작가의 거주지 인천은 작품 속 구체적 공간으로 재현됩니다. 하지만 이 답은 여전히 미흡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시간이 멈춘 <짱>의 세계는 어느 순간 현실보다는 학원 만화 장르의 시공간에 보다 깊숙이 연계됩니다. 그러면 인기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탁월한 액션 신입니다. 액션 만화인 만큼 동어반복처럼 들리지만, <짱>의 액션은 그만큼 압도적이며 오랜 기간 독자를 매혹시켰습니다.  임재원 작가는 액션 만화의 장인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악의 혈통>이라는 웹툰을 내놓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생깁니다. 임재원 작가는 <악의 혈통>을 통해 어떻게 액션을 구성하고 또한 그 액션을 통해 무엇을 그려낼까요?

이미지_ⓒ대원씨아이 '짱(임재원作)' 출처:북새통 홈페이지

 

심판자의 수직적 형상


<짱>의 액션 신을 볼까요? 싸움이 시작되면 인물들은 어지러이 얽히다 이후 정교하게 짜인 동선으로 차례차례 분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절된 칸들은 속도감 있게 나열되면서 독자를 고조시키는데 그러다 찰나의 순간 엄청난 타격감으로 장면을 폭파시킵니다. <악의 혈통>에서도 이러한 매혹적인 액션 신은 여전합니다. 도입부를 볼까요? 화면 중심에 시각 정보를 집중한 후 수직 스크롤로 운동성을 더한 웹툰 연출과 함께, 특유의 역동적 구도와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유감없이 펼쳐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악의 혈통>의 액션은 어딘가 부자연스럽습니다. 결정적 순간 자꾸만 머뭇거리며 예전 같은 타격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타격감은 중요합니다. 리듬감을 발생시키고 액션과 액션을 자연스럽게 이어줍니다. 그래서 <악의 혈통>의 결여된 타격감은 액션 흐름을 끊고 때론 정지된 화면처럼 만듭니다. 이러한 결함은 단순히 작화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서사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한데, 학원 폭력을 다룬 <짱>과 달리 <악의 혈통>은 칼, 망치를 사용하는 살인을 다루기에 육체의 충돌을 자유롭게 폭발시킬 수 없습니다. 

<악의 혈통>은 본능적으로 살인자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춘 주인공 진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법에 의하지 않고 악의 혈통이라 불리는 살인자를 처단합니다. <악의 혈통>의 세계는 선과 악이 뒤엉켜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끔직한 도덕극의 무대며, 그 안의 인물들은 우월한 심판자와 비천한 죄인으로 관계 맺습니다. 주인공은 차갑게 아래를 내려 보고 살인자는 공포에 질린 채 위를 올려봅니다. 로우 앵글과 하이 앵글이 번갈아 교차하며 주인공에게 권능과 위압감을, 살인자에게는 공포와 무력감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인물의 기하학적이며 심리적인 구도는 수직의 이미지로 형상화됩니다. 물론 주인공과 살인자의 위치는 뒤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극적으로 대립하는 구도만큼은 변함없습니다. 

심판자와 살인자 두 인물로 구성된 수직적 이미지는 끊임없이 여러 형태로 변주됩니다. 과잉된 무기 또한 이러한 수직적 이미지의 변주인데요. 망치와 칼은 형태 그 자체로 더 나아가 살인자의 신체와 결합할 때 각각 판사봉과 십자가가 됩니다. 주인공은 심판의 도구들을 휘두른다기보다 수직 즉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데, 이 무자비한 폭력은 수직 스크롤을 따라 심판의 이미지를 더욱 강렬히 표출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 죄와 벌, 심판자와 처벌자 이 모든 것은 총체적으로 수직의 형상으로 수렴됩니다.

 

 

액션만화가 보여줘야 하는 것들

<악의혈통> 글 JQ STUDIO, 그림 임재원, 투믹스 연재

 

<악의 혈통>의 이야기는 법의 무력함에서 시작됩니다. 법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불신은, 법과 윤리의 근본적 쟁점과 맞닥뜨리게 하는데요. 주인공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까요?  또한 악을 처벌한다면 어느 선까지 행해져야 할까요? 그 밖에 심도 있는 많은 질문이 제기될 것입니다. 사실 이 같은 질문은 특별한 건 아닙니다. 이미 미국 수정주의 슈퍼히어로 작품에서는 자경주의 윤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며, 국내 꼬마비 작가의 <살인자ㅇ난감>에서도 <악의 혈통>과 유사한 설정으로 초월적 단죄를 다룬다<악의 혈통>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서 심판의 윤리적 위상을 검토합니다. 초반부 주인공 진수는 살인자를 구별하는 능력과 함께 자신이 그들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가학적 폭력과 수직적 카니발리즘(동족포식)에 사로잡혀 버린 것일까요? 아버지 죽음 이후, 심판을 확신하는 진수에게 내면의 갈등은 더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인공의 욕망은 소거되고 그래서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은 말 그대로 멈춥니다.

 

 

이제 <악의 혈통>은 다층적 세계가 아닌 선악이 투쟁하는 이항 대립적 세계가 됩니다. 우린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악의 혈통>은 액션 만화입니다. 주인공은 서사의 관점에서는 선악의 경계에 걸친 단독자지만, 액션 만화의 관점에서는 경이로운 액션을 보여주는 행위자입니다. 액션 만화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결투, 폭력, 살인과 같은 극적인 행위를 정교한 형식으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폭력의 카타르시스와 액션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그런데도 <악의 혈통>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의미를 상실한 액션과 폭력은 공허하며 종국엔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란한 액션의 동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서사와 형식의 긴장에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서사와 형식이라는 두 점을 잇는 궤적 사이엔 수많은 선택이 존재합니다. 당장 결론을 짓기보다 대신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악의 혈통>은 어떻게 액션을 구성했고 무엇을 그려냈나? 보다 비관적이지만, <악의 혈통>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짱>의 후일담입니다.

 

 

 오혁진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지금,만화 vol.3"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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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핑크퐁 ‘상어 가족’

 

 

 

키즈 콘텐츠, 새로운 한류 스타 키즈 콘텐츠가 새로운 한류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분홍색 여우 캐릭터 ‘핑크퐁’은 명실공히 새로운 한류 스타의 등장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핑크퐁의 ‘상어 가족(Baby Shark)’ 영상은 글로벌 영상 플랫폼 유튜브(YouTube)에 게시된 지 2년 만에 11억 뷰를 달성하며 한류를 이끌고 있는 유명 가수들과 비슷한 기록을 내고 있다. 한류 대표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2012년 유튜브에서 게시된 지 2년 만에 19억 뷰를 달성했었다. 핑크퐁의 유튜브 기록이 한류 스타 못지않은 것이다. 이런 인기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트렌드를 통해 지난 12개월간 ‘Pinkfong(핑크퐁)’의 검색 트렌드를 분석해본 결과, 검색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국가도 아시아, 유럽, 미주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핑크퐁이 새롭게 떠오른 한류 스타라면 기존 스타로는 뽀로로가 있다. 뽀로로는 이미 국내에서 ‘뽀느님’ ‘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키즈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3년에 태어난 뽀로로는 2004년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프랑스 지상파인 ‘TF1’에 방영, 47.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는 영국·중국·일본 등 33개국에 애니메이션 방영이 시작돼 한국의 대표적인 키즈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120여 개국 이상에 애니메이션이 수출돼 세계 어린이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싱가포르 등지에서는 뽀로로 테마파크가 만들어져 현지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뽀로로 저작권의 수입은한 해 120억 원 이상, 캐릭터 상품 전체 매출은 5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버스를 의인화한 ‘꼬마버스 타요’는 50여 개국에 수출됐고, 800여 종의 캐릭터 상품이 출시됐다. 홍콩이나 미국에서는 뽀로로를 능가하는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1인 방송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키즈 콘텐츠도 등장했다. 전문 MC가 나와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을 1인 방송 형태로 보여주는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이미 유튜브 구독자 수 171만 명을 달성하고 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은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유쿠’, ‘아이치이’, ‘텐센트’, ‘소후’ 에 콘텐츠를 공급하며 중국과 동남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키즈 콘텐츠가 확산된 환경적 변화로는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부모의 등장을 들 수 있다. 키즈 콘텐츠 주요 소비자인 영유아를 키우는 30~40대 부모는 20대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디지털 콘텐츠 이용에 매우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영유아 부모의 육아정보 이용실태 및 활용 지원 방안(2014)’ 보고서에 따르면, 0~5세 영유아를 둔 부모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9.0%가 ‘퍼스널미디어’를 육아정보 습득의 주요 경로로 꼽았다. ‘지인’에게서 육아 정보를 얻는다는 응답(20.0%)에 비해 3배 가량 높은 수치다. 퍼스널미디어에는 네이버, 다음, 구글 등 ‘범용 포털’이 72.8%로 가장 많았고 ‘온라인 동호회’도 16.5%로 나타났다.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디지털 네이티브 부모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스마트 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한 키즈 콘텐츠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재미에 초점을 둔 콘텐츠 제작 전략의 변화도 키즈 콘텐츠의 한류 붐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키즈 콘텐츠는 교육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가 중심이었다. 과거 대표적 키즈 콘텐츠 였던 ‘뽀뽀뽀’, ‘TV유치원 하나둘셋’은 여러 상황에 대해 교육하는 콘텐츠로 구성됐다. 키즈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교육적 효과에 대한 기준이 높았다. 그러나 최근 콘텐츠는 교육보다는 아이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중점을 두고 제작되고 있다. 핑크퐁의 ‘상어 가족’은 동요 콘텐츠를 약 2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로 제작했으며,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후렴구(뚜루루 뚜루) 때문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1인 방송 형식의 콘텐츠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방송 진행을 담당하는 크리에이터 ‘캐리’가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을 약 15분간 보여준다. 장난감 기능을 설명하고 가르치기보다는 아이 대신 놀아보는 것을 중심으로 영상이 제작됐다. 교육적 효과보다는 즐길 수 있는 키즈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시장이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핑크퐁 ‘베이비 샤크 챌린지(Baby SharkChallenge)’

 

 

재미 중심으로 제작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쉽게 진출하게 만들어줬다. ‘핑크퐁’이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상어 가족’ 음악에 맞춰 율동을 추는 패러디 영상 ‘베이비 샤크 챌린지(Baby Shark Challenge)’가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현지의 인기 연예인들이 핑크퐁 ‘상어 가족’ 노래에 맞춰 춤을 춘 영상이 인기를 얻었고 삽시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패러디 영상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로 인해 핑크퐁 유튜브 페이지 인도네시아 구독자 수가 300% 늘어나는 등 단시간에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영상 플랫폼 서비스는 해외 시장과 한국의 키즈 콘텐츠를 직접 연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키즈 콘텐츠를 수출하기 위해 현지의 콘텐츠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방송국, 배급사와 별도의 계약을 맺어야만 진출이 가능했다. DVD로 제작할 때도 국가별 코드가 정해져 있어서 글로벌 유통이 어려웠다. 하지만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영상 플랫폼은 이런 장벽을 낮췄다. 고객은 현지에 직접 진출하지 않아도 원하는 콘텐츠가 있으면 직접 찾아서 클릭하고 즐길 수 있게 됐다. 마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얻게 되고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했던 것처럼, 한 번 주목을 받게 되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환경은 콘텐츠 제작 수준은 높지만 자본력과 해외 진출 경험이 부족했던 한국의 키즈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줬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키즈 콘텐츠의 해외 매출 비중이 커진 것이다. 유튜브의 국내 상위 20개 키즈 채널의 시청 시간 70% 이상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또한 뽀로로, 타요 등을 제작하는 ‘아이코닉스’가 제작한 유튜브 전용 콘텐츠를 담은 앱은 매출의 60%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핑크퐁 제작업체 ‘스마트스터디’의 앱 다운로드 수 해외 비중은 약 44%, 앱과 유튜브 채널 수익은 전체 매출의 56%(‘16년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도 키즈 콘텐츠 시장에서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해외 진출 교두보 역할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중심의 키즈 콘텐츠 이용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2017년 한국 미디어 패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저학년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4년 22.6%에서 2017년 37.2%로 증가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처음 이용하는 평균 나이도 낮아지고 있다. 2014년 육아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가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시기는 평균 2.27세로 나타났으며,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주중 31.65분, 주말 39.05분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도 0~11세의 스마트폰 보급이 증가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저 연령대로 확산될수록 키즈 콘텐츠 시장도 성장할 것이다. 앞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스마트폰 보급이 낮은 연령대로 확산 됨에 따라 글로벌 키즈 콘텐츠 유통과 제작에도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유튜브가 우위를 점해오던 키즈 콘텐츠 유통 시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글로벌 OTT 사업자뿐만 아니라 카카오와 같은 소셜네트워크 사업자까지 키즈 시장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전세계 190개 국가, 1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 사업의 강자이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키즈 콘텐츠 프로그램 시청률이 미국 내 13%, 미국 외 글로벌 지역에서 61% 급성장 했다고 분석했으며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키즈 콘텐츠 강화를 선포했다. 이미 넷플릭스는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보고 있으며, 키즈 콘텐츠 서비스를 위해 연령대 맞춤형 추천 서비스와 영어 음성 지원, 자막 등을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자회사 ‘블루핀’을 통해 키즈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 키즈’ 서비스를 리뉴얼 했다. ‘카카오 키즈’는 2만 여종의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으며 중국어 버전 서비스를 중국 내 로컬 안드로이드 앱 마켓인 360, 바이두, QQ에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양질의 키즈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키즈 콘텐츠의 인기가 커질수록 캐릭터 IP(지적재산권)의 활용 기회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디즈니는 증강현실 그림책을 위한 라이브 텍스처링(Live Texturing)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차원 그림책에 색깔을 입히면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그림책의 캐릭터 가 모바일 기기 화면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진다. 앞으로도 증강현실뿐만 아니라 가상현실 등의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키즈 콘텐츠와 융합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융합은 고객에게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고 기업에는 수익 채널을 다양화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키즈 콘텐츠의 해외 진출 성공사례는 그동안 드라마, 음악 중심이었던 한류를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키즈 콘텐츠는 아이들만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성인까지 아우르는 가족 콘텐츠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매우 높다. 또한 성인이지만 어린시절 갖고 놀았던 장난감과 캐릭터를 좋아하는 키덜트(Kidult) 시장이 성장하면서 과거에 인기 있었던 키즈 콘텐츠들이 다시 인기를 얻는 모습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키즈 콘텐츠를 아이들만 보는 콘텐츠로 한정 짓지 않고 장기적인 전략을 통해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 미키 마우스의 시작은 6분 분량의 무성 단편 흑백영화 ‘미친 비행기’ 였다. 미키 마우스를 만들 당시 디즈니는 작고 가난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였으며 영화 업계에서는 아이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며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우뚝 성장해 전세계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키즈 콘텐츠의 한류를 기점으로 디즈니와 같은 세계적인 키즈 콘텐츠 기업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글 김현중 KT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hjolleh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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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