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미술관을 걷는 이곳의 나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9.02.20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 혹은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과의 접목이 예술에서도 활발하다. 이러한 융합 현상은 소위 ‘뉴미디어아트’로 통칭되는 시각예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사물인터넷, 생명공학, 증강현실, 가상현실, 3D프린팅, 홀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날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우선 사물인터넷(IoT) 예술은 센서를 통해 사물의 움직임이나 사람의 활동 내지 생각을 포착해 작품화하는 예술이다. 지구촌의 날씨를 표현하는 설치 작품인 미국 산호세 공항의 <이클라우드(eCLOUD)>, 미니애폴리스 시민들이 트위터에 작성한 글들을 분석하여 추출한 감정 상태를 거대한 LED조명으로 표현하는 프로젝트인 <미미(MIMMI)>, 베를린 시민들의 얼굴을 카메라로 관측하여 실시간 감정 데이터의 평균값을 이모티콘(smiley)으로 표현하는 <기분을 보여주는 가스탱크(Stimmungsgasometer)> 등이 대표적이다. 


헤더 듀이해그보그(HeatherDewey-Hagborg)의 <스트레인저 비전스(StrangerVisions)


다음으로, 1936년에 열린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스타이컨 참제비고깔>전을 효시로 하는 바이오아트는 생명공학기술과 예술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장르이다. 주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생체 실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창작한다. 다루는 생명공학의 분야에 따라 DNA를 활용 또는 변형하는 작품, 조직공학 예술, 신체 혹은 생명 자체를 다룬 작품 등으로 분류되며 기술적 보철(사이보그) 예술을 포함하기도 한다. 길거리에 있는 머리카락이나 담배꽁초 등의 DNA를 분석해 사용자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헤더 듀이해그보그(Heather DeweyHagborg)의 <스트레인저 비전스(St ranger Visions)>, 발광 해파리의 유전자를 주입해 알비노 토끼로 만든 카츠(Eduardo Kac)의 <GFP 버니(GFP Bunny)>, 말의 혈장을 자기 몸에 수혈한 후 자신의 신경계와 내분비계가 변화를 일으키는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은 장테트(Marion LavalJeantet)의 <말이 내 안에 살기를>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또한, 증강현실(AR)을 이용한 예술은 실제 세계에 3차원 가상객체를 혼합하여 실제 세계와 가상세계의 실시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아무 것도 없는 하얀색 전시대에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대면 금송아지가 나타나는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금송아지>가 대표적이다. 또한 스페인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파블로 발부에나(Pablo Valbuena)의 <증강된 조각(Augmented Sculpture series)>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전시되었다. 가상현실 예술로는 최근 구글의 틸트 브러시를 활용한 퍼포먼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패트릭 트레셋(Patrick Tresset)의 ‘바울(Paul)’


하지만 무엇보다 예술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접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는 인공지능 예술이다. 과연 인공지능은 사람과 같은 창의력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래서 마침내 예술가의 입지를 흔들고야 말 것인가?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와 유사한 화풍의 그림을 그려낸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나 ‘바울과 e다윗’을 비롯해 수없이 등장하는 드로잉 로봇들을 볼때마다 인공지능 예술가의 등장에 대해 찬반양론을 펼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다분히 공급자적 관점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만든 예술과 사람이 만든 예술의 구별은 갈수록 의미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뉴미디어 이론가 로이 에스콧(Roy Ascott)의 말대로,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비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퍼뜨리고 꿀을 얻듯 인공지능의 예술과 인간의 예술 사이를 오가면 그만이다. 물론 두 예술 사이에서 마르셀뒤샹의 이른바 엥프라멘스(Inframince,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내는 능력의 보유 여부는 여전히 숙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과거에도 기술과의 융합을 시도한 예술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일시적으로 호기심과 경이감에 호소하다가 사라지곤 했다. 기술과 속도를 숭배했던 미래파 예술이 대표적이다. 현재 선보이는 여러 기술융합예술 또한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 할 수 있다는 회의론이 많다. 물과 기름처럼 기술과 예술이 제대로 융합되지 않은 채 기술 이벤트를 보는 건지 예술작품을 보는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작품 등, 어설픈 접목으로 인해 작품의 수준만 떨어뜨리는 사례들도 흔하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은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도태되든지 아니면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근대 이후 대중들로부터 소외를 경험하고 있는 예술이 첨단기술과의 융합으로 인해 다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산호세 공항의 설치미술작품 <이클라우드(eCLOUD)>


산업혁명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문화예술 또한 성장할 것이라 기대감이 높았다. 많은 이들이 노동시간의 감소로 늘어난 여가시간을 문화예술로 채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들 즉 순수, 기초 혹은 고급예술로 불리는 예술들의 상황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예전의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장르들이 더 많다. 왜 그럴까. 혹자는 K-POP 등 대중문화와의 자원경쟁에서 패배하기 때문이라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술가 혹은 예술단체의 공급자 위주의 생산방식을 지적하기도 한다. 근대 이후 생겨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구호는 예술가로 하여금 소비자를 예전보다 훨씬 덜 의식하게 만들었다. 소비자를 의식하지 않는 예술이 소비자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시각예술이 현대사회에서 소외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시간의 소비에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시간은 그 무엇보다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트렌드 분석가 페이스 팝콘(Faith Popcorn)은 모든 것을 하길 원하는 현대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바로 시간절약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립예술기금(NEA)의 최근 조사결과에서도 예술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장애요인으로 경제적 여유(38%)를 제치고 시간 소모(47%)가 첫 번째로 꼽혔다. 미술관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관람객의 평균 체류 시간은 1시간을 넘지 않는다. 각각의 전시물을 관람하는 시간은 불과 9.3초라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어쨌든 30초 미만이다. 그러나 미술관에 한 번 방문하려면 왕복 시간까지 감안하여 최소 2~3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한다.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화랑을 들를 때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다리와 발의 통증(museum leg syndrom)을 비롯해 오랜 시간 감상에서 오는 인지적 피로감 등, 소위 ‘미술관 피로(museum fatigue)’를 감수해야 한다. 관람빈도가 낮은 관람객들일수록 미술관과 화랑은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는 가상현실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원격현전(telepresence)의 구현을 통해 이러한 장벽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VR 미술관과 구글의 아트 팔레트 등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르파블로 발부에나(Pablo Valbuena)의 <증강된 조각(Augmented Sculpture series)>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로 그려진 렘브란트 화풍의 그림


물론, 원격현전에 의한 예술이 단지 소비자의 편리성 추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격현전은 거리의 제약을 넘어 관람객의 능동적 참여와 예술가와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 에스콧은 이를 텔레프레즌스 아트(Telepresence Art)라고 불렀다. 컴퓨터와 통신망 기술을 이용하여 창조적인 참가의장을 지구상에 확장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식, 이른바 ‘지구 의식(global consciousness)’의 개척을 도모하는 예술표현을 일컫는다. 소비자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현대의 예술이 소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의 미술관을 걷는 이곳의 관람객’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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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송사마다 음악 방송을 쏟아 낸다.

시청률이 저조할 뿐 아니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순위를 집계함으로써

공정성을 의심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순위제 음악 방송.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순위제 음악 방송의 역할과 방향성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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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현존하는 순위제 음악 방송 숫자로만 보자면 대한민국은 분명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중음악 강국이다. 농담이 아니다. 꽉 채운 일주일, 7일 동안 서울 곳곳에서는 매일같이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화요일은 SBS MTV <더 쇼>, 수요일은 MBC MUSIC <쇼! 챔피언>, 목요일은 Mnet의 <엠카운트다운>, 금요일은 KBS <뮤직뱅크>, 토요일은 MBC <쇼! 음악중심>, 일요일은 SBS <SBS 인기가요>가 전파를 탄다. 유일하게 비어 있는 월요일은 아리랑 TV의 <Simply K-Pop> 녹화가 진행된다. 방송 요일은 금요일이지만 출연진을 섭외하려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공중파 프로그램과 스케줄이 겹치지 않아야 하니 달리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순위제 음악 방송이 이렇게까지 많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프로그램이 각자의 방식으로 순위를 집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녹화로 진행되는 <Simply K-Pop>을 제외하면 모든 프로그램이 각자의 순위를 각자의 방식으로 집계해 발표하고 그에 따라 1위에게 상을 수여한다. 점수는 음원과 음반 판매 점수를 기본으로 제작진의 취향에 따라 시청자 선호도, 방송 횟수, 문자투표 등을 더해 구성된다. 한국에서 딱 일주일만 보내면 총 6개의 다른 듯 닮은 음악 방송 차트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초점은 당연하게도 차트의 공정성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마치 연례행사처럼 반복된 음악 방송 순위 집계 방식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음악 방송과 차트에 대한 신뢰를 단계적으로 무너뜨렸다. 2000년대 이후 지상파 음악 방송들이 악화된 여론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혹에 순위제 폐지와 부활을 지난하게 반복하는 동안 음악 방송 제작이 가능한 채널은 더욱 늘어났고 음악 방송 차트가 갖는 권위는 그만큼 희미해졌다.


경쟁자가 늘어난 만큼 각 채널은 인기 가수를 먼저 섭외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결국 차트 공정성은 커녕 방송 출연 유무가 1위 수상과 직결되는 웃지 못할 현실이 반복되었다.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방송사와의 껄끄러운 파워게임 끝에 자사 채널에 출연하지 않게 된 특정 기획사 소속 가수에게 높은 점수가 돌아가지 않도록 집계 방식을 수정한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았다. 세간에 떠도는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충분히 반박할만한 객관적 근거도 없었다. 1위 한 번이 간절한 아이돌 팬덤의 비난 수위는 높아졌고 시청률은 그에 반비례하듯이 소수점을 향해 한없이 낮아져 갔다. 방송은 결국 각 채널의 재방송 시간대인 주말 오후 3~5시대에 고정 편성되었다. 가장 뜨겁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감자. 순위제 음악 방송은 어쩌다 이런 존재가 되었나.



이쯤 되면 순위제 음악 방송의 제작과 송출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방송사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고, 팬들은 공정하지 않다고, 대중은 아이돌 가수만 나온다고 외면하고 있는 음악 방송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까지 박복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가.


시청률과 여론 모든 면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보여주고 있는 지금 순위제 음악 방송의 밑바탕엔 무엇보다 급격하게 변화한 시대상황이 있었다. 종영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순위제 음악 방송으로 회자되는 KBS <가요톱10>을 회상해 보자.


이미지 출처 : KBS <뮤직뱅크>


프로그램이 방송된 1981년에서 1998년까지는 인터넷은 물론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도 공신력 있는 차트의 존재는 요원했고,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가요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우리말로 된 음악들이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 그들의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는 인류보편적인 관심사였고 해당 방송사가 갖고 있는 지역별, 연령별로 무작위 추출한 전국 투표인단의 존재도 순위를 가려내는 데 있어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중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요톱10>의 종영이 1998년이라는 건 무척 상징적이다. 눈부신 속도로 발달한 인터넷과 각종 시스템 덕에 21세기 들어 음반 판매량은 시간 단위로 업데이트되기 시작했고, 어느새 ‘대세’와 동일한 이름이 되어 버린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는 시간도 모자라 5분 단위 차트까지 만들어 냈다. 음악을 즐기는 이들의 자세도 변화했다. 소비자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특정 가수를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팬덤’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에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자리했다. 전자는 음악 방송 순위에 한없이 민감했고 후자는 시대에 유연히 대응하지 못한 음악 방송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이미지 출처 : 멜론 실시간 음원 차트


이렇듯 마지막 남은 권위마저 위태로워진 순위제 음악 방송을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방송사들에게도 물론 이유는 있다. 다름 아닌 음악 방송 출연권을 통해 붙잡은 인기 아이돌과 기획사와의 밀접한 교류 그리고 은밀한 거래다. 방송프로그램의 입장에서는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건 물론 연기도, 진행도, 예능도 할 줄 아는 전도유망한 젊은 스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청률과 화제성의 보증 수표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자사 음악 방송에 출연시킨다는 건 팬들을 대상으로 한 실시간 문자 투표 시스템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당 가수와 드라마, 예능 등 방송사가 보유한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 출연 협상시 방송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도 드러내 말하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러한 비밀스런 거래는 그대로 방송사가 그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음악 방송 제작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새 노래를 낸 가수에게는 무대가 필요하다. 특히 국내는 물론 해외 팬들에게도 실시간으로 무대를 선보여 최대한 많은 팬을 확보해야 하는 최근 아이돌 그룹의 경우는 무대 하나하나가 더욱 절박하다. 이러한 상황이 몇 년 반복되는 사이 출연진은 대부분 예능이나 다른 프로그램에 섭외가 가능한 인기 아이돌로 채워졌다. 비슷한 처지의 가수들이 음악 방송 무대 위에서 복작거리는 사이 역시 비슷한 체급끼리 경쟁해야 하는 팬덤은 몇 배로 피곤해졌고 이 경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 방송이 그 방송 같다며 채널을 돌렸다. 철저하게 주객이 전도된 상황, 순위제 음악 방송은 누구를 위한 방송도, 무엇을 위한 방송도 아닌 채 지금을 맞이했다.



이미지 출처 : KBS <뮤직뱅크>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어진 순위제 음악 방송들은 안타깝게도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선택만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 방송을 향한 대중의 관심도를 회복할만한 새로운 콘텐츠 개발은 여전히 외면한 채, 지금도 충분히 볼모로 잡혀 있는 아이돌 팬덤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기획이 가리키고 있는 대부분의 화살표가 쏠려 있는 실정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변별력 없는 라인업은 그대로, 출근길이나 퇴근길은 물론 대기실까지 습격해 가수가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영역에 카메라를 들이밀어 사진을 찍고 자투리 영상을 만들어 내는 형태가 가장 흔했다. 3분~4분의 무대를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새벽같이 기자들을 모았고 팬들은 더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섰다. 반복되는 불필요한 상황으로 쌓인 피로는 수시로 음악 방송의 존립 명분과 순위 집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향해 분노의 방향을 틀었다. 여론은 다시 나빠질 것이고, 순위제는 또다시 폐지될 것이며, 다시 부활할 것이다.


이러한 무의미한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꽤 단순할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지표만을 활용한 설득력 있는 순위 집계 방식, 무대미술에서 카메라 워크까지 합이 잘 맞는 완성도 높은 무대연출, 타 프로그램과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개성 있는 라인업, 한국 대중음악 지형도와 발전에 대한 작은, 아주 작은 관심.


사실 이러한 방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프라는 이미 넘칠 만큼 갖춰져 있다. 비록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오기는 했지만 케이팝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성장, 발전해 온 수준 높은 방송 인프라를 바탕으로 각자의 강점과 개성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채롭고 흥미로운 음악 방송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좋은 날이 올 때쯤이면 어쩌면 순위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한 화젯거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아직 만회할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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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기술과 결합한 패션의 신세계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9.02.13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IT 기술과 패션의 융합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옷과 IT 기술이 결합하는 것이다. 수많은 도전과 혁신으로 ‘아저씨들이나 입는 청바지 브랜드’라는 초기 브랜드 이미지를 벗고 재도약 중인 리바이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870년 세계 최초로 청바지를 만들어 유통했던 이 브랜드는 2000년대 들어 큰 침체에 빠져 있었다. 2011년 리바이스에 합류한 칩 버그(Chip Bergh) 최고 경영자는 강력한 브랜드 리모델링 끝에 리바이스의 인지도를 개선하고 하락하는 매출을 반등시키는 데 성공했다. 칩 버그는 ‘청바지의 원조’라는 전통과 IT 기술이라는 변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유서 깊은 브랜드가 과거에만 지나치게 머무르면 낡고 먼지 쌓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역사를 무시하면 가장 강력한 자산으로부터 멀어지는 꼴이 된다.”며 IT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과거의 유산을 최신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는 핫(Hot)한 아이템으로 바꾸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1, 2. 2017년 9월 리바이스가 구글(Google ATAP)과 협업하여 제작한 스마트 재킷(Smart Jacket)은 출시 직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3. 옷소매를 쓸어 넘기거나 두드리면 음악 변경이나 메시지 수신 등, 스마트폰과 연결된 다양한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해 9월 리바이스는 트러커재킷(트럭 운전사들이 즐겨 입는다는 뜻의 데님 재킷) 출시 50주년을 맞이하여 구글 첨단 기술 제품팀(Advanced Technology And Products, ATAP)과 협력해 ‘스마트 트러커재킷’을 출시했다. 2015년 ‘프로젝트 자카드’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이 스마트 트러커재킷은 데님 원단 속에 구리 소재로된 전도성 물질을 넣어, 입은 채 소매 부분을 터치하기만 해도 스마트폰을 제어할 수 있는 웨어러블(Wearable) 기기다. 스마트 트러커재킷은 옷소매를 좌우로 쓸어 넘기거나 두드려 음악 변경이나 전화 응대, 수신 문자 확인, 구글 지도 등을 실행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 단추에서 울리는 진동이나 미리 연결해 둔 이어폰을 통해 현재 위치나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다. 전용 앱을 통해 개인에게 맞게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한 번 ‘충전’하면 2주 정도 이용할 수 있고, 스마트 모듈을 탈·부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세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스마트 트러커재킷을 통해 리바이스의 옷은 다시금 시장에서 통하는 핫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2017년 기준 리바이스 트러커재킷 판매량은 전년 대비 40% 이상 늘어났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리바이스는 현재 구글과 협력해 두 번째 스마트 재킷을 준비하고 있다.


옷만 기술을 통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옷을 대중에게 알리는 마케팅 방식도 IT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의류 브랜드 타미힐피거는 2015년 고객이 자사 매장에서 모델들의 런웨이(패션쇼에서 모델이 걷는 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가상현실 패션쇼 마케팅을 진행했다. 가상현실 기기만 있으면, 매장을 방문한 고객이나 집에 있는 고객 모두 실제 패션쇼에 참가한 것처럼 360도로 런웨이 현장을 감상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일반 고객이 패션쇼를 감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패션 채널에서 하는 방송도 패션쇼를 직접 보길 원하는 고객의 열망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하지만 패션쇼에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패션쇼를 모든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마케팅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에르메스, 발렌시아, 폴로, 랄프로렌 등 내로라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가상현실을 활용한 패션쇼 마케팅을 앞다투어 선보였다.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디올은 ‘디올 아이(DiorEye)’라고 이름 붙인 전용 가상현실 헤드셋을 선보였다. 


범용 가상현실 기기 대신, 직접 가상현실 기기를 개발해 패션 마케팅에 나선 기업도 있다.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디올은 ‘디올 아이(Dior Eye)’라고 이름 붙인 전용 가상현실 헤드셋을 선보였다. 디올 아이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디올 런웨이의 백 스테이지 풍경은 물론,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둘러싸인 모델과 디올의 주요 디자이너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독립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개최한 패션쇼 런웨이를 일반 동영상뿐만 아니라 가상현실 기기용 360도 영상으로도 제작하여 관객들에게 현장에 온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용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가장 큰 변화는 옷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유통 환경의 변화다. 중국 최대 인터넷상거래 사업자인 알리바바는 2016년 가상현실을 활용한 쇼핑 시스템을 선보였다.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알리바바 앱을 실행하면 가상으로 만든 백화점이 소비자 눈앞에 펼쳐진다.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옷을 둘러보고, 패션쇼와 같은 각종 이벤트를 체험한 후 실제로 해당 물건을 즉시 구매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알리바바는 놈매직(GnomeMagic)이라는 가상현실 연구소를 설립하여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지난 8월에는 마이 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세계 최초 혼합현실(Mixed Reality) 쇼핑몰도 개장했다. 혼합현실이란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실감나는 증강현실 기술을 의미한다. 알리바바의 본사가 위치한 중국 항저우 일대에 세워지는 ‘타오바오마이아(Taobao maia)’는 모든 쇼핑이 증강현실로만 이뤄지는 쇼핑몰이다. 소비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헤드셋 ‘홀로렌즈’를 착용하고 쇼핑몰에 들어서면 곳곳에 진열된 상품의 홀로그램을 통해 상품의 정보를 얻은 후 이를 구매할 수 있다. 타오바오마이아는 제품 진열부터 판매까지 모든 것이 무인화 되어 있다. 비자는 단지 증강현실 헤드셋을 끼고 매장에 입장해서 서비스를 경험한 후, 다시 헤드셋을 반납하고 자신이 구매한 제품을 받아서 퇴장하면 된다. 경험, 구매, 지불이라는 모든 절차가 자동화된 미래의 쇼핑몰인 셈이다.


패션에 인공지능을 결합한 패션 큐레이션 스타트업 스티치 픽스(Stitch Fix)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하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던 카트리나 레이크(Katrina Lake)가 2011년 설립한 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바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맞춤형 패션 큐레이션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신체 사이즈, 취향, 옷을 입을 시기 등의 정보를 앱과 사이트를 통해 알려주면 패션 큐레이터와 인공지능이 이를 분석해서 엄선한 5개의 패션 아이템을 보내준다. 사용자는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구매하면 된다. 스티치 픽스는 수천 명의 패션 큐레이터를 고용하고 있지만, 패션 추천의 핵심은 수집한 빅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정교한 인공지능이다. 100여 명의 개발자들이 사용자가 선호하는 패션과 트렌드를 분석해 수백 개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추천 시스템에 적용했다. 스티치 픽스는 이 알고리즘을 토대로 사용자의 신체 사이즈, 피부톤 등을 분석해 사용자가 마음에 들어 할 패션 아이템을 찾아낸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찾아낸 패션 아이템을 사람인 패션 큐레이터가 한 번 더 검증함으로써 정확도를 높이고, 사용자의 구매율도 함께 높인다. 이러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해 11월 미국 나스닥에 입성한 스티치 픽스는 약 26억 달러의 시가 총액과 6000여 명이 근무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IT 기술을 활용한 추천 서비스를 통해 소규모 다품종 유통을 추구하는 스티치 픽스의 사례는 대규모 소품종 유통을 중시하는 패스트 패션이 지배해 왔던 기존 패션 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유통업계의 강자 아마존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패션 큐레이션 사업에 진출했다. 2017년 아마존은 사용자가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하면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인 알렉사를 통해 사용자에게 어울리는 패션 아이템을 제안하는 ‘에코 룩’을 선보였다. 아마존은 여러 패션 브랜드를 인수한 상태인 데다가 로봇이 자동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재단사 로봇과 주문형 생산 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등, 에코 룩과 시너지 효과를 낼 요소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사실 에코 룩의 비즈니스 모델은 스티치 픽스와 동일하다. 그러나 아마존닷컴으로 미국 온라인 유통 업계를, AI 스피커 알렉사로 가정용 인공지능 기기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인 아마존이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는 훨씬 클 전망이다. 실제로 아마존이 에코 룩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자 51달러로 최고점을 찍었던 스티치 픽스의 주가는 26달러 정도로 하락했다. 위기감을 느낀 스티치 픽스의 최고경영자 카트리나 레이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티치 픽스의 강점은 패션에 특화된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수천 명의 패션 큐레이터’라며, ‘이는 아마존이 결코 따라하지 못하는 스티치 픽스만의 강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롯데쇼핑에서 개발한 챗봇 ‘로사(LOSA·LOTTE SHOPPING Advisor)’

국내 패션업계에서 패션과 IT기술을 접목한 사례다. (이미지 출처 : 롯데백화점)


이러한 변화는 해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패션과 IT 기술의 결합으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쇼핑은 인공지능 챗봇 ‘로사’를 개발해 쇼핑을 즐기러 온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브랜드와 패션 아이템을 추천해주고 있다. 로사는 사물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기술(컴퓨터 비전)을 활용해 사용자가 촬영한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유사한 스타일의 제품까지 소개해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강릉 직영점을 가상현실과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지능형 쇼핑몰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맞춰 한시적으로 운영된 이 매장은 상품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스마트 행거, 옷을 직접 입지 않아도 디스플레이를 통해 옷을 입은 모습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미러, 신체 인식 기능을 통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해주는 스마트 브로셔, 증강현실을 통해 원하는 아이템을 입어볼 수 있는 AR 피팅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시로 언급한 두 회사의 도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국내의 모든 패션 브랜드가 패션과 IT 기술의 융합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어째서 패션 브랜드들은 꾸준히 IT 기술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일까? 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객 경험 향상과 쇼핑 실패 방지에 따른 구매율 향상이다. 오프라인 쇼핑은 만족도가 높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반면 온라인 쇼핑은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쇼핑 실패에 따른 만족도 저하라는 문제가 있다. IT 기술은 이러한 쇼핑 업계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기술을 통해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이들의 구매를 유도한다. 개인의 취향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패션 아이템을 제시함으로써 쇼핑이 실패한 확률을 최소화한다. 를 통해 정체된 매출과 영업이익을 신장시키고,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팬을 만들 수 있다. 패션 업계에서 IT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무의미할 것이다. 핵심은 고객 만족이다. 패션 브랜드를 비롯한 모든 기업에게 IT 기술은 고객 만족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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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 :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는 TV 예능 프로그램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5년째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엄마 없이 48시간 동안 홀로 아이를 돌보는 아빠의 모습에서 육아의 고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시청자는 초보 아빠의 육아 도전기를 응원하고 아이의 성장과 그들의 일상에

열광한다. 연예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끈 리얼리티 육아 예능, 그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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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형지(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파일럿 프로그램 방영 당시, 아직은 아빠 중심의 육아가 낯설었던 우리 사회에서 호응을 얻으면서 2013년 11월에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었다. 프로그램은 특별한 연예인 아빠가 아닌 여느 평범한 가정 속 아빠의 모습을 공개했다. 육아가 낯설고 힘든 아빠, 친구 같은 아빠, 재미있는 아빠. 그렇게 시작한 아빠 육아가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인기다. 지난 2015년 2월 1일 방송 시청률이 최고 19.8%를 기록했고, 2018년 현재까지 동 시간대 시청률 1위(12월 2일 기준)를 유지 중이다.

 

이미지 :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하면서 다양한 아빠 육아의 모습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꾸려갔다. 무엇보다 제작진은 모범적인 아빠의 모습을 출연진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엄마 없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와 아빠는 나름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바랐고, 밀착 카메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그 과정에서 아빠도 아이도 점점 성숙하고 성장했다. 일만 하던 아빠가 가족 안에 있는 모습이 편안해지고, 익숙해졌다. 시청자는 이런 아빠와 아이를 응원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자신들의 가정에 투영하기 시작하였다.

 

프로그램은 유교문화를 관습적으로 강조해 온 한국 육아 문화의 변화 움직임을 반영, 가정에서 아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그려냈다. 주 5일제 근무환경의 정착과 아빠의 가정 내 정주시간 확대, 여가활동 장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 및 남성의 육아 휴직 장려라는 사회 제도적 변화에 방송이 능동적으로 대처해 순기능을 담당한 것이다.

 

이미지 :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 휴직자는 1만 명을 돌파했다. 남성의 육아 휴직이 허용된 1995년 이후 약 20여 년 만의 성과다. 정책적으로도 ‘아빠의 달1)’ 제도를 마련해 아빠의 육아 휴직에 따른 가정 내 소득 감소 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이다.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가정 밖의 역할에 충실했던 아빠가 가정 안으로 들어오기가 좀 더 수월해진 것이다. 남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전환과 여성의 사회진출 확산으로 가정 내 맞벌이가 자연스럽게 ‘맞육아’로 이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방송도 아빠가 육아하면서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what to do for my family)’를 알려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

 

출연 연예인이 각자의 방식대로 아이들과 교감하고 함께하는 모습은 주말 오후 가정에서 TV를 보던 아빠 시청자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프로그램은 아빠로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와 무엇을 할지에 대한 일종의 육아 지침서를 제공했다. 아빠 시청자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빠 육아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연예인 2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연예인의 가정과 2세의 사생활이 그대로 공개되었다. 특별할 것만 같았던 연예인의 삶이 ‘육아코드’와 맞물리면서 우리와 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방송이 거듭될수록 연예인은 시청자와 가까워졌고, 더 친근해졌다. 게다가 연예인 2세가 커가는 모습에 시청자는 대리만족을 느꼈다. 마치 연예인 지망생이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을 응원하듯이 시청자는 그렇게 연예인 2세를 향한 팬덤(fandom)을 형성했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순진함, 때로는 귀엽고 영특한 모습이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이미지 :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제 ‘대한민국, 만세!’ 하면 배우 송일국의 아이들 삼둥이를 떠올릴 시청자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첫 회부터 시청자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추성훈의 딸 사랑이는 2016년 3월에 하차한 후에도 매 특집방송마다 출연해 근황을 전할 정도로 인기가 여전하다. 최근에는 ‘언어천재’, ‘허니제조기’ 등으로 인기몰이 중인 축구선수 박주호의 딸 나은이까지, 연예인 2세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연예인에 대한 것 그 이상이다. 이러한 인기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키즈테이너(kids-tainer)로 만들었다.

 

한편에서는 어린 자녀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일상이 노출되고, 주변의 과도한 관심 속에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성장환경을 우려하기도 한다. 아이의 미성숙한 정서와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연예인 2세의 방송 출연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본래의 제작 의도와는 달리 연예인 2세의 스타성에 치중하는 것에 대한 시청자 지적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미지 : 공식 홈페이지 <슈퍼맨 칼럼> 게시판

 


제작진측은 어린 자녀의 방송출연에 대한 시청자의 우려와 부정적인 시각에 대한 조치로 2014년 7월부터 프로그램의 공식 홈페이지에 <슈퍼맨 칼럼> 게시판을 열었다. 해당 게시판을 통해 교육 평론가 겸 소아정신과 자문의가 회차별 방송에 나왔던 아빠의 육아 방식과 아이의 행동에 대해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포맷은 사실에 기반하기 때문에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락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를 극대화하여 재미와 감동을 더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청자에게 사실을 관찰하게 한다. 시청자에게 일종의 관음을 허용한 셈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무엇을 엿볼까? 육아에 낯선 초보 아빠와 자녀의 좌충우돌 일상에서 시청자는 공감을 느꼈고 밀착카메라에 담긴 아이들의 엉뚱한 돌발행동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시청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연예인은 어떻게 살고, 어떤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지, 아이와 어디를 가는지를 관찰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연예인의 육아용품과 관련 이벤트, 장소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커졌고, 방송에서 노출됐던 육아 및 교육 상품 등이 유명세를 타면서 매출이 급증하기도 했다. 방송 이후에는 관련 상품에 대한 구매 문의가 SNS에 쏟아졌고, 실제로 방송에 나왔던 상품의 구매 후기를 자신의 SNS에 올리는 시청자도 많았다.

 


이미지 :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결국,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빠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는 사회현상을 대변하면서도 리얼리티에 대한 시청자 니즈(needs)를 자극했다. 베일에 감춰진 연예인의 사생활이 육아코드로 시청자에게 노출됐다. 유행에 민감한 시청자는 연예인의 일상을 엿보면서 그들의 육아팁을 얻어내고 다양한 소통 채널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소비했다. 방송이 직·간접적으로 육아 관련 산업 활성화에 기여한 것이다. 하지만 협찬(PPL) 논란이나 과도한 소비조장, 상대적인 박탈감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가족의 롤모델(role-model)을 탄생시켰다.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연출(play happy families)하는 것에 급급했다면, 지금과 같은 롱런(long-run)은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프로그램은 육아 산업(child rearing industry)의 활성화와 키즈테인먼트(kids-tainment)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내 키즈 산업에 대한 투자가 2018년에 40조 원이 넘어섰을 만큼 관련 시장을 주목하는 기업도 많다.

 

이미지 : 미국판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젝트 대드(project DAD)>

 

육아프로그램은 다양화된 한국 사회의 가족 구성과 급변하는 육아환경에 대한 제도적 분석과 사회적 대응을 통해 문화적이고 시장 경쟁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에 그 성패가 달렸다. 또한, 중국이나 동아시아권 같이 우리와 유사한 문화권을 상대로 콘텐츠 판로를 꾸준히 개척해야 한다. 이미 아빠 육아 콘셉트는 영문화권에서도 시장성을 인정받아, 지난 2016년 11월 미국판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젝트 대드(project DAD)>가 방송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국식 육아와 리얼리티 예능이 해외 콘텐츠 시장과 문화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방송 5년째를 맞은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앞으로도 아빠의 능동적인 육아 참여라는 사회적 순기능은 물론 미디어 산업과 육아 상품 시장에서 건전한 소비와 성과를 유도하는 ‘순환고리’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할리우드에 마침내 도래한 ‘아시안 웨이브’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9.01.30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할리우드에서 동양은 언제나 주변부에 머물러왔다. 동양인 배우가 주연을 맡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어렵사리 등장하더라도 줄거리 속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부분의 경우 동양인 단역들은 우스꽝스럽고, 소심하며, 경쟁심이 강하고, (많은 경우) 공부를 잘하는 동양인 스테레오타입에 꼭 들어맞는 장식품으로 활용되곤 했다.


미국의 화이트워싱 관행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실사 영화에서 원작 일본인 주인공 배역에 스칼렛 요한슨이 기용된 것 이 최근 사례다.


심지어는 마땅히 동양인이 맡았어야 할 배역을 당연하다는 듯 다른 인종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20세기 초반에 처음 시작된 할리우드의 이른바 ‘화이트 워싱’(백인이 아닌 배역을 백인 배우에게 맡기는 일)관행은 아직도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실사화 영화에서는 원작의 일본인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 역에 백인인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되어 빈축을 샀고 그 이전에는 마블 원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티벳 고승의 역할을 백인 배우 ‘틸다 스윈튼’이 맡아 논란이 됐다.


근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마블 영화에서도 화이트워싱은 있었다.

<닥터 스트레 인지>에서 백인 여배우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에인션트 원’은 원래 티벳인이다.


이런 동양인 배역 축소 현상은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백인이 꼭 필요하다’는 할리우드의 오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공각기동대’ 실사판 영화의 화이트 워싱이 반발을 일으켰을 때 헐리우드 각본가 맥스 랜디스는 브이로그를 통해 “불행한 일이지만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며 “현재 할리우드에는 국제적인 수준의 인지도를 가진 일류(A-list) 아시안 여성 배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할리우드 내 동양인 배우들의 기회 부족 문제는 최근 에미상 여우주연상에 ‘아시아 최초’로 노미네이트된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의 사례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세를 탄 샌드라 오는 드라마 <킬링 이브>로 에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에미상 69년 역사상 아시아 배우가 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최초다. 샌드라 오는 이전에도 드라마 부문에서 에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다섯 차례 오른 바 있으며,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30년 경력의 실력파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직전까지의 그의 할리우드 커리어는 퍽 단조로웠다. 지난 4년 간 샌드라 오는 소규모 독립영화에 출연하거나 조연을 맡거나 웹시리즈에 등장하거나 성우 연기를 하는 등, 주류 무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에미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동양인 출신의 배우나 제작자가 자주 후보에 오르내리지 못하는 것을 수여자들만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헐리우드 전반에 걸쳐 동양인 주요 배역이 아예 존재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올라 대학교에서 사회학대학 학과장을 지내고 있는 낸시왕 유엔 교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양인 배역은 아예 만들어지지 않거나 주변부에 머물기 때문에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은 일류로 등극할 만한 기회가 원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여성으로 한정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는 “1,100개의 인기 영화에서 드러난 불평등 현상”(Inequality in 1,100 Popular Films)이라는 논문에서 “2017년에 인기를 끈 상위 100편의 영화 중 여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의 수는 33편이었고, 그 중 백인 아닌 배역은 4편에 그쳤다.”며 “대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에서, 통상적으로 ‘과소하게 대표돼 온’(underrepresented) 인종 출신의 여성 배우에게 허락된 핵심 배역은 매우 적었다”고 전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미국에서 단순한 영화 이상의 사회적 의의를 가진 작 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할리우드의 해묵은 분위기를 고려하면, 지난 8월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2018년 8월 15일 개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흥행 수입은 첫 주에만 3,500만 달러였다. 로맨틱 코미디로서 지닌 저력과 재미를 인정받으며 이후로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기도 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싱가폴 출신의 미국 유학생인 주인공이 싱가폴로 돌아가 겪는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당연히 모든 배역은 동양인 배우들이 맡았다.


감독 존 추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통해 동양 배우들의 입지를 넓히고자 노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배우들에게 직접 연락해 오디션 영상을 보내라고 얘기했었다. 배우 캐스팅 과정을 최대한 오픈하자는 게 우리가 공통적으로 지닌 생각이었다. 그런(신인) 배우들, 특히 여러 동양 배우들에게 있어 배역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잘 있기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존 추는 더 나아가 이번 영화가 “단순히 영화가 아닌 하나의 사회운동(movement)”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일개 영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가도 현지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동양인만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1993년에 개봉한 <조이 럭 클럽>이 마지막이었다. 무려 25년 간 비슷한 유형의 메이저 영화가 없었다는 사실은 이번 영화를 유독 소중히 여기고 있는 동양계 미국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해 준다.



여러 맥락을 고려했을 때, 미국 현지 동양인들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바치는 관심을 그저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과 존중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들이 해당 작품을 두 손 들어 반기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이 ‘동양계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할리우드 여러 경영자 및 제작자들의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출신 성분’이 강조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깊이 고민해볼 만하다. <크레이지 리치아시안>이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동양 영화라는 뿌리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을 각색한 이번 작품이 만약 로맨틱 코미디가 지녀야 할 기본적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었더라면 이 정도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으리라는 것이 미국 안팎 영화 평론가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아시안’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스스로 ‘사회운동’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추앙되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지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보기 드문 동양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화의 작품성과 의의가 과대평가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완성도는 높을지 모르나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의 로맨스’라는 진부한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분석이나, 싱가폴 인구 구성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 인도 계열 인물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 등은 가볍게 넘어가기 힘들다.


더불어, 영화 자체의 훌륭함에 대한 논의보다도 동양계 영화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종차별의 한 형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의 개성에 집중하지 않고 그들의 ‘소속’만 강조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의 가장 보편적 정의 중 하나다.


<서치>는 동양인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영화 안에서 인종적 담론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또 다른 동양인 주역 영화로서 비슷한 시기에 적지 않은 성공을 기록했지만 인종적 캐치프레이즈를 전혀 내세우지 않았던 <서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한국계 배우 존 조의 출연과 더불어 탄탄한 서사, 독특한 연출이 화제를 모으며 한국에서 유독 더 많은 인기를 끈 영화 <서치>는,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으면서도 영화 어느 곳에서도 인종적 담론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인종 융화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일 수 있다. 주인공들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은 ‘따로 언급될 필요조차 없는’ 자연스러운 일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연 배우 존 조 또한 본 작품의 ‘아시아 영화로서의 가치’에 대해 동일한 소견을 밝힌 바 있다. 현지 연예 매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 함께 온라인으로 진행한 시청자와의 대담에서 존 조는 “내가 <서치>에 관해 좋아하는 한 가지 사실은, 이 영화가 마치 (좀 더 진보된) 미래에서 온 영화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도 우리(시청자와 본인)는 이 영화가 얼마나 ‘동양인을 대변하고 있는가’(representation)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게 그저 당연한 일인 것처럼 아예 논하지 않는다.”면서 “<서치>는 아시아계 가족, 그 중에서도 한국계 가정을 특정해 다루지만 그 설정은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종차별 타파의 최종단계(endgame)를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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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를 찾는다.

영화 속 숨은 의미를 해석하고, 다음 편 스토리 어떻게 될지 추측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솔직한 해석과 스토리를 콘텐츠에 녹이는 영화 리뷰 크리에이터 민호타우르스.

그는 자신이 영화의 다양한 재미를 함께 즐기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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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정수(편집부) / 사진. 김성재




민호타우르스는 스토리가 들어있는 콘텐츠라면 모두 좋아했다. 책, 게임, 드라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영화 <타이타닉> 제작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게 영화는 오래 전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무엇을 하고 살지 고민이 많던 대학 시절, 목소리가 좋다는 주위의 칭찬에 성우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스트래픽(보이스 라디오 개인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스트래픽 자키 랭킹 2위에 오르는 쾌거를 얻고, 그 계기로 만화영화 리뷰 채널 ‘대형팬더’의 패널로 활동한다. 하지만 74편을 끝으로 대형팬더에서 하차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대형팬더는 저에게 너무나 좋은 추억이예요.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져 그만두었습니다. 대형팬더만은 끝까지 가져가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유튜브에서 떠났던 그가 어떤 계기로 개인 채널을 운영하게 되었을까?


“크리에이터 활동에 올인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는 쉽지 않더군요. 문득 내가 남들보다 스펙은 부족하지만, 유튜브에 있어서 그들보다 앞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채널을 운영해보고자 가족들에게 1년만 더 믿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지금의 ‘민호타우르스’ 채널은 이렇게 탄생 했다.




민호타우르스가 영화 리뷰를 메인 주제로 삼은 것은 쉽게 내려진 결정은 아니었다.


“채널을 운영하기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시장을 조사했었어요. 유튜브 인기 탭을 3주 내내 보고 있었죠. 제가 분석한 인기 있는 콘텐츠는 게임, 먹방, 커버 연주 등의 콘텐츠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3가지 주제만 반복한다면 대박이 나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나를 지탱해줄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채널의 주제를 잡기 위해 그가 거친 과정은 총 5단계다. 이 과정은 민호타우르스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입문자를 위한 강연에서도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채널을 만들 기 전에는 ‘자아성찰’이 필요합니다. 먼저 ‘나의 매력’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나의 매력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어떻게 드러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그 다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면 눈빛과 목소리부터 달라집니다. 보는 사람이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얼마나 느껴지느냐에 따라 구독 버튼에 손이 가겠죠?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내가 잘하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먼저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채널의 주제를 정합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해당 주제로 ‘주2회 업로드로 2년 이상’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와 ‘트렌드’ 에 편승할 수 있는지를 분석해보면 됩니다. 저는 채널을 시작할 때 이 5단계의 과정을 거쳤고, 그렇게 나온 결과가 바로 ‘영화 리뷰’였습니다.”



“뇌피셜의 한계를 모르는 명탐정! 민호타우르스입니다.” 이 대사는 민호타우르스의 ‘뇌피셜록’ 코너의 시작 멘트다. 마치 만화 캐릭터와 같은 힘찬 목소리는 민호타우르스 채널만의 상징적인 오프닝이다.


YouTube 민호타우르스 채널


저만의 스토리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것이 제 매력이라 생각해요. ‘뇌피셜록’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영화를 제 주관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스토리텔링 하듯이 리뷰를 하는 코너입니다. <인피니티 워>가 개봉하기 전, 저만의 예측을 정리해 스토리텔링 했는데 개봉 후 영화를 보니 맞는 것들이 있었어요. 댓글에 달린 ‘성지순례 왔습니다’라든지 ‘민호타우르스는 자기만의 마블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반응들을 보고 기분이 좋았어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팬들이라면 앞으로 그 시리즈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그런 재미를 함께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자신만의 스토리와 해석이 모두의 공감을 살 수는 없다고 한다.


솔직함과 공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고, 한 순간에 등을 돌립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받을 때 많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영화 리뷰 채널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저작권’은 피해갈 수 없는 숙제다. 민호타우르스는 어떻게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고 영화 리뷰 콘텐츠를 만들까?


“저는 ‘공정 이용(Fair use)’이 합치되는 영화 리뷰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알기 전 제 채널이 저작권 이슈로 인해 존폐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어요. 모 사이트에서 제 채널을 공격하자는 글이 올라온 뒤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 위반 경고 2개를 받았어요. 그 당시 경고를 받은 콘텐츠가 영화 <보그만>과 <오펀 천사의 비밀> 리뷰 영상이었습니다. 친한 유튜버 ‘법알못 가이드’ 님과 함께 이 콘텐츠가 저작권 침해 콘텐츠가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공정 이용을 알게 되었어요. 공정 이용이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특수한 경우의 저작권법입니다. 제 리뷰 콘텐츠는 공정 이용 저작권법 제28조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해서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는 조항에 해당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YouTube <민호타우르스>


그러나 저작물을 인용한 콘텐츠가 공정 이용에 합치되더라도, 그로 인해 수익이 발생한다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하지만 민호타우르스는 상업적 목적을 가져도 공정 이용에 부합하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미국의 판례를 근거로 유튜브 영화 리뷰 채널 최초로 이의 제기를 신청한다.


“제가 <오펀 천사의 비밀>을 리뷰하고 나서 이 영화가 한국 유튜브 VOD 판매 순위가 1위가 된 적이 있어요. 또 당시 <시빌 워>가 개봉하던 때라 마블 영화들이 네이버 영화 검색 순위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네이버에서는 영화 검색어 순위에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결말을 굉장히 궁금하게 리뷰를 했던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오펀 천사의 비밀>을 만든 워너브라더스 측에 이의 제기 할 때, ‘영상은 극히 일부만 사용했으며, 소리의 대부분은 민호타우르스의 목소리다. 한국에서는 현재 마블 대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의 채널에 리뷰가 올라간 이후 <오펀 천사의 비밀>이 한국 유튜브 VOD 서비스 1위를 기록했다. 당신들은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수익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선처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식의 내용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워너브라더스 측은 이의를 받아들였고,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유튜브 광고 수입까지 돌려주었다. <보그만> 영화제작사도 마찬가지로 리뷰 콘텐츠를 공정 이용으로 받아들여 경고를 철회했다. 민호타우르스는 이를 계기로 공정 이용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제는 제작사, 배급사 등에도 도움이 되고, 공정 이용에 합치될 수 있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요. 현재 유튜브에 많은 영화 리뷰 채널이 있는데, 리뷰가 흥미를 유발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결말까지 스포일러 하는 등 공정 이용에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런 리뷰 영상 한 편만 보면 굳이 영화를 찾아보지 않아도 되니 이런 것들은 영화사 측에서는 저작권 침해일 수 있죠. 제 채널에서는 영화 리뷰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저만의 생각, ‘뇌피셜록’처럼 제 머릿속에서 창조해낸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MCN은 혼자서 콘텐츠 제작과 비즈니스를 감당해야하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아직 소속사가 없는 민호타우르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MCN 회사에 들어가면 1인 미디어를 운영하면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 협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추진도 해보고, 새로운 길을 개척도 해볼 수 있죠. 스스로 활로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1인 미디어의 큰 매력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운영은 가끔 ‘면벽수련’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독자 수가 적을 때는 12시간 넘게 편집해서 영상을 업로드해도 조회수가 겨우 20을 넘고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쳤는데 메아리가 오지 않는 느낌이죠. 그런 정신적 데미지까지 모든 것은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꾸준한 ‘면벽수련’ 끝에 그는 결국 백만, 천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됐다. 그리고 최근에는 천만 조회수를 달성한 것보다 더 뿌듯한 순간이 있었다.


“얼마 전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HBO)의 첫 리뷰 영상이 조회수 백만을 넘긴 것이 너무 뿌듯했어요. 당시에는 아직 <왕좌의 게임>이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인데 팬으로서 최초로 리뷰 콘텐츠를 만들었죠. 아는 유튜버가 그 영상를 보더니, 마블같은 인기 콘텐츠를 다뤄야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저만의 생각과 관점을 꾸준히 <왕좌의 게임> 리뷰에 녹였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왕좌의 게임>을 알고 함께 즐겨줘서 더 뿌듯하고 행복해요.”


앞으로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앞으로도 제 주관이 담겨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 리뷰를 꾸준히 만들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제 리뷰를 보며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어’라고 즐거워하며 위안과 행복을 얻었으면 합니다. 공감할 수 있는 리뷰를 편하게 얘기하는 ‘오랜 친구’ 같은 크리에이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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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역할을 넘나들다, 게임 속 AI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9.01.23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인공지능(AI)과 게임은 언뜻 보면 별 관계가 없는 영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인공지능은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일손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이용자들이 보다 나은 콘텐츠를 경험하도록 돕는다.


인공지능을 가장 앞장서서 도입한 게임 장르는 전략시뮬레이션(RTS)다. 네트워크가 발달하지 않은 환경에서 나왔던 1990년대 초기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이용자와 컴퓨터가 대결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했다. 이 때 컴퓨터를 움직였던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몇 가지 방식 안에서 이용자에 따라 대결할 방법을 고르던 게임 인공지능은 <스타크래프트>(1998)에 와서는 이용자 패턴을 먼저 읽은 후 여러 가지 수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9월 열린 e스포츠 대회 <블레이드&소울> 토너먼트 월드챔피언십에서는 엔씨소프트의

‘비무 인공지능’이 프로게이머와의 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올해 9월 열린 e스포츠 대회 <블레이드&소울> 토너먼트 월드챔피언십에서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엔씨소프트에서 강화학습으로 훈련시킨 인공지능이 프로게이머와 대전하여 승리를 거둔 것이다. 강화학습은 인간이 별도로 명령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스스로 공부하며 발전하는 형태다. 2016년 세상을 흔들었던 알파고가 바둑을 배웠던 방식이 일종의 강화학습이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끼리 하는 대전을 통해 프로게이머 수준까지 성장했다. 프로게이머 수준으로 세팅한 반응 속도(0.2~0.3초)에 맞춰 움직이고 다양한 스킬을 구현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녔다. 공수 균형, 방어형, 공격형 스타일을 습득한 비무 인공지능은 이 대회에서 각각 유럽, 중국, 한국 프로게이머와 대결을 펼쳐 2승 1패를 기록했다. 대전게임에서 최정상급 실력을 가진 인간의 반응과 전략을 읽어내고 이를 극복한 것이다.


이 사례는 국내 게임사가 보유한 인공지능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한 것을 의미한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게임사는 각각 이용자 수준에 맞는 인공지능 캐릭터를 제공할 수 있다. 게임 안에서 적절한 수준의 상대방을 찾아주는 매칭 시스템이 한 차원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 샘 알트만 등이 창립한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기업 ‘오픈 AI’의 인공지능 또한

게임 ‘도타 2’에서 프로게이머를 1대1 대결에서 꺾는 성과를 보였다.


블리자드는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와 협력해인간과 대결하는 <스타크래프트2> 인공지능을 실험하고 있다. 북미 비영리조직인 오픈 AI (Open AI) 역시 <도타2>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전게임보다 한 단계 복잡한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전략시뮬레이션(RTS)게임에서 이 시도들이 성과를 거둔다면 인공지능은 물론 게임 경험 발전에도 큰 계기가 될 전망이다. 엔씨소프트 역시 사내에서 인공지능끼리 대결하는 간단한 수준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테스트하고 있다.



대전게임이나 전략시뮬레이션에 쓰이는 인공지능이 겉으로 드러난 기술이라면, 게임 제작에 쓰이는 인공지능은 무대 뒤에 숨은 주인공이다.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국내 주요 게임사는 모두 인공지능 조직을 따로 갖추고 게임 제작에 적용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지에서 사람 이미지를 인식한 후 이를 이미지로 매핑해 포즈를 구하는 기술(: 덴스포즈)의 예시


인공지능이 가장 활발하게 도입될 분야는 비주얼 분야다. 넷마블은 최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코코 덴 스포즈 챌린지’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2D 이미지에서 사람 이미지를 인식한 후 이를 3D 이미지로 매핑해 포즈를 구하는 기술(DensePose: 덴스포즈)을 평가한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몇 가지 2D 이미지에서 다양한 3D 캐릭터를 생산할 수 있다. 원화가 곧 움직이는 게임 캐릭터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쉽다. 엔씨소프트 역시 AI를 통해 애니메이션 수작업을 줄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AI가 걷기, 뛰기 등 기본적인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하여 직접 그리지 않은 응용동작인 ‘옆으로 구르기’나, ‘좀비처럼 걷기’를 구현하는 식이다. 


넥슨 모바일 게임 ‘듀랑고’는 인공지능에게 게임월드 조정 기능 중 일부를 맡기는 등 인공지능을 폭넓게 적용한 사례다


한편, 넥슨은 올해 초 출시한 모바일게임 <듀랑고>에 인공지능을 폭 넓게 적용했다. 인공지능에 게임월드를 조정하는 기능 일부를 맡겨 운영진의 일손을 줄였다. 공룡 등 선사시대 동식물이 등장하는 이 게임은, 이용자가 지나가는 배경에 상황에 맞게 동식물이 자동으로 생성되도록 만들었다. 무작위로 생성되는 섬의 기후나 환경에 맞게 지형이 만들어지고 풀과 나무가 자란다. 따로 지정하지 않아도 육식동물은 사냥하고, 초식 동물은 이를 피해 다닌다. 배가 부르면 자고, 배가 고프면 사냥이나 채집에 나선다. 넥슨은 <듀랑고>를 통해 게임 내 인공지능 적용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게임 운영은 게임 내 부정행위를 잡고 플레이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인공지능은 게임 내 경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실, 게임 운영은 이미 상용수준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된 분야이기도 하다.


넥슨의 어뷰징 탐지 팀 조사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적용한 ‘욕설 탐지’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많은 욕설을 잡아내고 정확도마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 설정한 금칙어와 같은 글자가 발견되면 블라인드 처리하는 일반적 방식은 10분간 욕설 231건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실제로 41%가 제재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욕설 탐지기에 같은 게임을 적용하니 10분 동안 246건에 달하는 욕설을 잡아냈다. 이 중 제재 대상은 96%에 달했다. 


이 실험에 활용한 인공지능 역시 강화학습 기반이다. 스스로 언어를 학습하고 문맥 흐름을 읽어서 욕설을 거른다. 예를 들어 금칙어 기반 프로그램은 ‘년’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단어 모두를 잡아내지만, 인공지능은 쓸 수 있는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를 구분한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자리’ 문제다. 게임운영이나 제작에 적용되는 인공지능은 그동안 사람이 해왔던 작업을 대체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의 일을 단언할 수 없기에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일손이 줄어드는 영역도 분명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닮고자 하는 이 새로운 기술은 결국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는 것이다. 게임 제작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면 게임회사는 그동안 사람이 해 오던 수작업과 반복 작업을 줄일 수 있다. 단순 노동이 줄면 근로자는 더욱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을 도입했다고 해서 무조건 해당 분야에서 사람이 맡는 역할이 축소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욕설 탐지 등 운영 부문은 결국 최종 단계에서 사람의 검수를 거쳐야 한다. 정무 판단까지 인공지능에 맡길 배짱 좋은 회사는 없다. 게임 아트 종사자들은 인공지능에 단순 노동을 맡긴 후 새로운 발상, 새로운 컨셉 개발에 집중할 것이다.


이는 게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기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위기를 맞을 직업군에 항상 꼽힌다. 보도 자료를 올리고 증시 시황을 전달하거나 스포츠 결과를 보도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실을 취재하여 이를 가공해 기사로 만드는 본질적인 기자의 업무는 여전히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한다.


게임 제작은 근본적으로 ‘창의성’에 뿌리를 둔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캐릭터에 이용자는 열광하기 마련이다. 일하는 사람이 업무의 본질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잡다한 업무량을 덜어 주는 것이 인공지능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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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김씨네 편의점>은 탄생할 수 있을까?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9.01.21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2018년은 ‘탈 화이트워싱(Whitewashing)'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한 지난 8월을 일컬

 ‘아시아의 8월(Asian August)’이란 말까지 생겼다.

한국계 배우들을 캐스팅한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의 성공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과연 한국의 드라마·영화 콘텐츠에서도

인종의 다양성을 품은 변화의 바람이 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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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유진(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아시아의 8월(Asian August)은 원작자와 콘텐츠 생산자의 확고한 의지가 만든 일종의 성과였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원작자 케빈 콴(Kevin Kwan)은 “주요 배역이 모두 아시아계 배우로 캐스팅된 영화가 할리우드의 정형화된 시스템에서도 성공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에게(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 원작자인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Jenny Han)은 영화화 계약 당시 “주인공은 반드시 동양계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영화 <서치>의 아니쉬 차간티(Aneesh Chaganty)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왜 주인공을 한국계 가족으로 설정했는가?’라는 질문에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부터 한국계 배우 존 조와 함께 하고 싶었다. 존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인이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서치>, 소설 <파칭코>


지난 8월 TV 콘텐츠로 영역을 넓힌 애플은 드라마 <파친코>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파친코>는 재미동포 작가 이민진 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 4대에 걸쳐 사는 가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았다. 드라마 <파친코>는 한국을 비롯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이민자 가정이 서구문화권에서 창작된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파친코>가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6년 캐나다 국영방송 CBC는 토론토의 오래된 저소득층 지역인 리젠트 파크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국계 이민자 가정의 삶을 그려낸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을 선보였다. <김씨네 편의점>은 지난 9월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공개되며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김씨네 편의점>은 단순히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불완전한 개인 간 갈등과 이로 인한 내적 고민을 섬세하게 그린다는 점에서 다문화주의를 지향하는 캐나다에서 성공한 ‘탈 화이트워싱’ 콘텐츠 사례로 평가받는다.


<김씨네 편의점>


<김씨네 편의점>에는 고집 센 가부장적 아빠이자 애국자인 김상일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학벌·계급 문화에 길들여진 엄마 김용미, 그리고 아들 정과 딸 자넷이 등장한다.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성이지만, 이 가족을 이민 1세대 부모와 2세대 자식들 간의 언어·문화적 갈등의 측면에서 접근하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씨네 편의점>은 한국 문화를 제법 사실적으로 소개한다. 한 에피소드에서 김상일은 손님에게 한국의 태권도·합기도와 일본 무술의 차이점을 열심히 설명하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손님에게 ‘인삼’과 ‘진셍’(Ginseng, 인삼의 일본식 발음)의 차이를 설파하며, 한국어인 인삼으로 부를 것을 재차 강조한다. 딸 자넷은 사촌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한인타운에서 순두부찌개를 먹기도 한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수용 가능한 행동이 타문화권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해’를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다. 가벼운 딱밤이 아동폭력으로, 똥침은 성추행으로 오해 받는 모습은 현지 시청자들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한국 시청자에겐 문화차이에 대한 간접경험을 제공한다.



드라마는 한국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김상일은 틈만 나면 손님과 딸에게 일제강점기 등 한국의 역사를 설명하고,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그의 투철한 애국심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일으킨다. 편의점 앞 불법주차 차량이 일본산 자동차라고 착각하고 딸에게 경찰에 신고할 것을 지시하지만, 이내 한국산 현대 자동차라는 것을 알고 황급히 말린다. 하루는 딸과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남자가 편의점으로 딸을 데리러 오자 다짜고짜 “한국의 광복절이 언제인 줄 아느냐?”고 묻기도 한다.


정과 자넷의 사촌으로 등장하는 나영도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인물로 꼽힌다. 고양이 귀 머리띠를 하고 공주풍 옷을 입은 나영의 모습은 실제 한국 여성들의 모습과 상당히 동떨어져있다. 시도 때도 없이 셀카봉을 들고 ‘브이(V)’자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거나 ‘깍두기’를 외치며 미소를 짓는 모습 역시 한국 관광객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에 가깝다.


<김씨네 편의점>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차별이라기 보단 다양성 발현의 일부로 읽히도록 만드는 ‘관계성’이다. 주변 인물 누구도 이들을 이방인 혹은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으며, 상일 등 개별 인물들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서 유연성을 보인다. 가령 김상일이 게이 고객으로부터 ‘성소수자 혐오자’라는 비난을 받자 게이를 대상으로 한 할인행사를 벌인 에피소드는 보수주의자가 ‘다른’ 문화와 공존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문화주의 사회에서 지녀야 할 포용과 어울림의 미덕을 보여준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좌) 연극 <김씨네 편의점> 한 장면 , (우) 연극 <김씨네 편의점> 최인섭


<김씨네 편의점>은 이민 1.5세인 최인섭 씨가 극본·연출·제작·연기까지 총괄한 동명의 독립연극에서 출발했다. 한 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온 최 씨는 토론토의 이토비코(Etobicoke)에서 친척이 운영하던 ‘김씨네 잡화상’이라는 편의점 건물 위층에 살았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씨네 편의점>은 가족과 친구들의 삶, 그리고 제 삶의 조각들을 하나, 둘 모아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민자 가정의 삶에 뿌리를 두고 만들어진 연극은 2011년 토론토 연극축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김씨네 편의점>은 그해 143개 출품작 가운데 ‘베스트 프린지 10’에 뽑히고, 이듬해 토론토연극비평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연극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드라마 제작이 확정된 후 최씨는 드라마 공동제작과 극본을 맡았다. 드라마는 방영 3개월 만에 약 93만 명의 고정 시청자를 확보했으며, 시즌2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주인공 대부분을 실제 한국계 배우들이 맡았다는 점도 몰입도를 높였다. 드라마에서는 아들 정 역을 맡은 중국계 미국인 배우 리우 시무를 제외한 이선형(김상일 역), 윤 진(김용미 역), 방 안드레아(자넷 역) 모두 한국계 배우로, 이들은 한국어 대사는 물론 콩글리시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냈다. 배우 이선형은 <김씨네 편의점>으로 2017년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Canadian Screen Awards)’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김씨네 편의점>의 성공은 물론 할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한국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서구 문화권에서 유색인종의 인구 비율은 점차 높아졌으며 경제·문화적으로도 힘이 커지고 있다. 또한 ‘非백인’ 중심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방송·영화인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탈 화이트워싱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 때, 우리의 드라마·영화 콘텐츠는 이러한 흐름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을까.


단군신화에서 유래한 단일민족 신화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법무부는 이미 2016년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3.9% 수준으로, 이 중 절반은 중국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중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한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중국 동포 캐릭터를 등장시킨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했지만, 대부분이 이들을 ‘범죄집단’으로 묘사하거나 배척할 대상으로 그려 논란이 됐다.


중국 동포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들, (좌측부터) <황해>, <청년경찰>, <범죄도시>


<김씨네 편의점>이 만들어진 캐나다에서 한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0.5%(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 담보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또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다문화주의 토양을 먼저 다지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movie)가 아니라 하나의 움직임(movement)이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연출한 존 추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도 다문화주의 토양의 밑거름이 될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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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영화의 확장과 도전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9.01.16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은 2.35:1의 와이드 스크린 비율의 영화인데 주인공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과 그가 처한 현실을 탁 트이게 펼쳐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갑갑하게 시야를 제한하기 위해 화면비를 역설적으로 이용하는 영화다. 그러다가 후반부에 닐이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으로 화면비가 바뀌면서 (동시에 음향도 소거되면서) 무중력 상태의 달이라는 공간을 추체험하게 만든다. 오직 우주와 땅바닥이 닿아 있는 달의 지평선. 만약 VR로 이를 구현한다면 어떻게 연출했을지 상상해보자. 우주선의 좁은 공간에서 우주복까지 입고 있어 시야각이 제한된 비행사가 낑낑대며 우주선 계단을 내려가 처음으로 달의 표면을 둘러보려고 고개를 돌려볼 때의 1인칭 시점에서의 순간. 불안한 핸드헬드(hand-held)와 그걸 지켜보는 비스듬한 시선, 그 전쟁 같은 카메라 워크와 사각의 프레임 없이도 무중력의 갑갑함, 혹은 먹먹함을 전달 할 수 있을까. 기존의 영화 문법이 지닌 장점을 뛰어넘는 VR만의 고유한 문법을 전 세계 감독들이 도장 깨기 하듯 차근차근 극복해나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어떤 작품들이 이를 해결해나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영화 <캠프파이어 크리퍼스>


2D영화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360도 영상의 특징을 활용한 사례 가운데 먼저 국내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영화아카데미의 KAFA+ NEXTD교육 과정이 배출한 작품 가운데 올해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뉴미디어VR 부문에 출품한 배경헌 감독의 <의릉>. 이 작품의 주인공은 꿈을 꾸는 듯한 모호한 현실에서 혼란을 겪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상황을 관객이 360도로 둘러보게 되면 실은 관객의 시점 뒤편에 주인공과 흡사한 다른 인물이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보게 된다. 여기서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컷 없이 인물의 등장만으로 시공간이 뒤틀려 있음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은 하나의 공간을 둘러보지만 사방이 같은 시간대나 같은 공간일 필요가 없다. 사방을 둘러보는 행위만으로 시점을 변화시키는 내러티브 전략을 고민한 사례로는 덱스터와 장현윤 감독이 협업<프롬 더 어스>가 있다. 후반부의 어떤 장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데 그 장면을 ‘보기’ 직전까지는 사실 1인칭 시점의 ‘나’가 누군지 관객은 모른다는 게 핵심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고개를 돌려야’ 작품의 주제가 성립되는 이야기다. 이 또한 ‘360도 영상’ 특유의 스케일을 활용한 예다.


<힐즈 아이즈>, <혼스>를 연출한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은 <캠프파이어 크리퍼스: 미드나잇 미치><캠프파이어 크리퍼스: 더 스컬 오브 샘> 연작 시리즈를 통해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360도 영상’이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히려 사방을 둘러볼 수 없게끔 심리적 제약을 줌으로써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상했다. 예를 들면, 늑대인간의 무자비한 학살극이 펼쳐지는 숲 속에서 사방에 시체가 나뒹구는 와중에 관객의 시선은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게 되니, 고개를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라 쩔쩔맨다. 산 속에서 만난 연쇄살인마의 극악무도한 살인행각을 직접 겪어볼 수 있게 만드는 순간도 등장하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돌려 상황을 외면하고 싶게 만든다. 이 작품들 모두 고개를 돌려본다는 행위를 어떻게 스토리 안에 녹여낼 수 있을지를 고심한 실사 기반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 모두 기존 영화의 프레임 제약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데 앙헬 마누엘 소토 감독

<디너 파티> 카메라의 위치를 극복하려 한다.


1960년대 UFO에 납치됐다 풀려난 것으로 알려진 베티와 바니 힐 커플의 이야기를 체험하게 만든 이 작품은 VR만의 카메라 워킹 문법을 시도해 평화롭게 인물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UFO에 사로잡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 ‘속으로’ 관객을 천천히 안내한다. 이들 모두 기본적으로 360도 실사 영상 촬영 혹은 애니메이션 기반의 작품인데 2018년 선댄스 국제영화제 뉴프론티어 섹션에서 소개됐던 마르틴 알레, 니코 카사베키아 감독의 <배틀스카>는 기존의 영화 문법이 아시네마틱 VR의 문법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16살 소녀 루페가 교도소에서 친구 데비를 알게 되어 ‘펑크’ 음악을 만들게 되는 이야기인데, 루페가 일기장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고 펑크 밴드를 하게 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의 자유로운교차를 기반으로 한, 흡사 무대 연출에 가까운 장면 퍼포먼스가 눈앞에 펼쳐지고, 소품과 대사의 활용이 공간과 프레임의 제약을 뛰어넘어 펼쳐진다. 컷 편집 대신 관객이 바라보는 시선을 의도적으로 바꿔주는 스테이지의 등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이를테면, 관객이 예능 프로그램을 찍는 열 대의 카메라 자체가 되어 계속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카메라를 바꾸어 찍게 되는 (시선을 변경하게 되는)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프레임의 제약과 VR의 만남에 대한 흥미로운 또 다른 사례로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VR Cinema in BIFF’ 섹션에 초청됐던 소우 카에이 감독의 <결혼반지 이야기 VR>를 꼽을 수 있다. VR로 일종의 만화책을 보는 형식을 고안하여 만화책의 고정된 프레임을 자유자재로 눈 앞에 펼쳐놓는, 이른바 ‘라이브 스크린’ 형식을 시도했다. 영화 스크린이란 프레임의 제약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고, VR이라고 해서 꼭 360도 전체를 둘러보지 않아도 된다는 시야의 제약을 되려 장점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그 밖에 복운석 감독<탐정 K>360도 영상 위에 또 다른 화면을 겹쳐 놓는 방식으로 다면 스크린 형태를 재해석했고,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시각미술 변천사 1: 캐나다 VR 영화’ 전시에서 상영됐던 갤런스코러, 타일러 앤필드 감독의 <보이지 않는 세계>란 작품은 가상의 공간 안에 거대한 3개의 스크린을 벽면처럼 크게 펼쳐놓은 뒤에 각기 다른 영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스크린의 확장을 꾀한다. <결혼반지 이야기 VR>과 <탐정 K>, <보이지 않는 세계> 등의 사례는 360도 영상 촬영 기반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게 프레임의 제약과 확장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앙헬 마누엘 소토 감독의 영화 <디너 파티>


촬영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곧 촬영할 피사체나 공간, 즉 카메라에 담는 모든 것의 접근이 달라진다는 말과 같다. 일례로 360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는 특징을 기록물로서의 다큐멘터리에 그대로 접목한 사례가 있다. ‘동두천 외국인 관광특구’라고 불리는, 한국 내 미군기지 주변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김진아 감독의 <동두천 VR>이나 평창 동계 올림픽을 주제로 장애인 올림픽 팀인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동계훈련 현장을 VR로 담은 박규택 감독의 <바람>과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동두천 VR>은 영화가 시작하면 360도 영상으로 촬영된 동두천 기지촌 어느 골목 앞이 보이는데카메라가 움직이거나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어서 HMD를 쓴 관객 스스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그러다 몇 번의 장면 전환이 이뤄지면서 낮과 밤이 바뀌고 넓은 골목에서 좁은 골목으로 공간이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관객은 카메라가 비추는 골목을 계속 걷고 있는 한 여성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카메라가 도착하는 공간은 그 여성의 좁은 방안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갑갑하고 우울한 거리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어느 여성의 허름한 쪽방 생활을 눈앞에서 ‘경험’하게끔 해주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어떤 목적이다. “동두천이라는 공간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관객이 그 속에서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읽어내길 바랐다”는 김진아 감독에게는 여성의 신체에 대해 기존의 영화가 늘 보여줬던 방식이나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VR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진아 감독은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거나 섹스어필의 소재로 사용하곤 했던 기존 영화의 관점에서 벗어나 대체 영상을 만들어보길 원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녀는 이 사건의 영상화에 담긴 ‘윤리적 재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사 영화보다 VR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말을 되새겨보면 VR 영상의 특징 즉, 관객이 360도 영상 안에서 어디를 얼마나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는가에 따라 자신만의 영화적 경험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매체적 특징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한계도 따른다. 관객의 시선을 연출자가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인가. <동두천 VR>은 기록물로서의 다큐멘터리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관객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시켜서 지루하게 만드는 단점도 부각시켰다. 한편, <바람>의 박규택 감독은 “장애인 스포츠경기가 일반 경기에 비해 박진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VR 영상을 통해 보여주겠다”는 연출 의도를 갖고 어떻게 하면 선수의 입장에서 실제 경기에 참여하는 느낌을 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일반 스포츠 영화가 경기의 박진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빠른 편집이나 카메라의 패닝, 달리샷, 줌인과 줌아웃 등의 촬영 기법은 이 작품에서 쓸 수가 없었다. 카메라 시점이 좌우로 조금만 흔들려도 헤드셋을 쓰고 보는 관객이 심한 멀미를 느끼기 때문에 카메라를 움직여야 할 때는 최대한 직선거리를 활용했다. 물론, 멀미를 유발하지 않을 정도의 부드럽고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도 고민했다. 하지만 <바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360도로 촬영 가능한 카메라를 어떤 공간에 위치시켜야 위태롭고 신기한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즉 카메라의 위치도 고민한다. 사람이 아니라 경기 도구인 ‘퍽’의 시점에서 경기를 경험할 수도 있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이는 물론 극영화에서도 카메라의 시점을 이용해 연출할 수 있겠지만 VR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편집 없는 몰입을 느끼게 해줬다.



360。 영상 촬영을 위한 전용 카메라와 360。 영상을 편집하는 풍경


앞서 언급한 모든 작품이 360도 촬영에 기반을 둔 VR 영화로서의 새로운 문법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훌륭한 사례다. 그 중 올해 CGV 4DX관을 통해 관객과 만난 구범석 감독의 <기억을 만나다>를 따로 강조하고 싶다. 이 작품은 구체적으로 360도 영상 촬영 기반의 실사 작업도 충분히 한 편의 상영용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구범석 감독은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그리고 VR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이 기술의 가능성을 “교감에서 찾았다.”고 말한 적 있다. 그 말인즉슨, 사람들이 으레 VR은 액션이나 호러 등 장르적인 충격 효과를 주는데 용이한 매체라고 여길 법한 고정관념을 깨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장르가 멜로다. 이미 프로듀서가 단편영화 시나리오용으로 써놨던 이야기를 포맷만 2D 대신 VR로 선택해 찍은 작품인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일반 영화 문법과 비교할 수 있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기억을 만나다>가 기본적으로 2D 상업영화의 정서와 드라마 작법을 그대로 갖고 오면서, VR만의 표현방식을 앞세워 감동을 유발시킨다는 전략을 취했다는 점이다. 래서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시야각 밖의 상황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60도 전체를 활용한 장면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클로즈업 장면이다. 일반 영화와 달리 360도의 영상을 얻어내야 되기 때문에 카메라가 피사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카메라 자체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클로즈업 장면을 보게 되면 관객 스스로가 인물들과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이 바라 볼 수 있는 두 대상을 관객과 일직선상에 놓고 마주보게 하여 관객이 180도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면도 있다. 심지어 이 작품은 과감하게 컷 편집도 도입했다. 구범석 감독은 “VR 영상에서는 카메라를 갑자기 180도로 돌리면 관객이 인지 부조화를 겪을 수 있지만, 아예 컷을 하고 다른 상황을 보여주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2D 문법과 VR 문법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기억을 만나다>의 성과라면 일반 영화의 문법을 과감하게 VR로 옮겨와 활용하는 도전을 했다는 데 있다. 와이드 스크린 형태의 영화와 VR 영화는 막연히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조금은 깨뜨리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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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9.01.14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가짜뉴스란 ‘잔혹한 기사 제목이나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진과 영상을

혐오 목적으로 마치 기사처럼 거짓으로 꾸민 거짓말, 선동’으로 정의된다.

인터넷에 만연히 떠돌고 있는 가짜뉴스. 가짜뉴스는 왜 이용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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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넷플릭스(Netflix)가 현지화 전략의 하나로 폴란드에서 만든 8부작 드라마 <1983>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를 디지털 미디어 시대 버전으로 각색한 것이다. 드라마 <1983>속에서 가상의 폴란드 정부(당과 보안국)는 1천만 명의 젊은이들에게 트라슈카라는 스마트폰을 공급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묵인한다. 이를 통해 당은 ‘자유’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만, 그 이면에는 삼촌(uncle)이라고 불리는 베트남계 사업가가 고용한 수백 명의 IT 전문가들이 트라슈카와 일상을 함께하는 젊은이들을 감시한다.


이 방식은 분류카드를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보다 효율적이고, 체제를 위협하는 민주주의자를 적발하여 처단하기도 쉽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여전히 트라슈카에 자신의 사적 정보를 유출하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당과 지도자’를 모욕한다. 그들에게 심어진 ‘자유’라는 환상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마약이다. 거짓이 진실을 묻어버리고, 자유에 대한 환상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게 만든다.


<1983> 포스터 & 스틸이미지


이러한 인식의 출발은 어이없게도 자연자원의 유한성 발견에서 비롯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질주하던 자본주의는 1973년 중동에서 발생한 석유파동으로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석유파동으로 갑자기 치솟은 유류가격은 전 세계적으로 노동을 통해 구축되었던 금융자본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 전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높은 임금과 엄격해진 규제를 피해 생산시설을 저개발국가로 대거 이동시켰다. 자본주의 생산시설의 전 지구적 도피는 필연적으로 뉴욕과 런던에 몰려있는 금융자본이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생산시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정보통신 기술개발을 견인했다.


탈현대는 개인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다. 개인은 더 이상 욕망을 절제하며 신성한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다. 또한 ‘오래된 전통’에 따르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인은 자아실현과 실천 가능한 책임만 수행한다.


이 시대를 이끄는 규제철학은 ‘규제된 자율규제(Regulierte Selbstregulierung)’이다. ‘규제된 자율규제’는 헌법적 가치로 규정된 권리와 의무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국가통제와 기업이 자발적으로 헌법적 가치를 실천하는 자율 사이에 위치한다.


‘규제된 자율규제’는 개개인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자율적으로 실천해야 할 책임을 적시한다. 그러나 탈현대시대의 ‘규제된 자율규제’가 반드시 그 사회를 신뢰사회로 견인하지는 못했다. ‘규제된 자율규제’를 실천하더라도 정보유통을 독점한 사람들은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탈현대를 배신한 정보독점과 정보조작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규제된 자율규제’를 근간부터 뒤흔들었다. ‘탈진실(post truth)’로 불리는 ‘자율이 위협받는 시대’는 정치적 성공과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소수집단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디지털기술 발달로 ‘자율’은 공동체 이익을 대변하는 법치와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극단적으로 쟁취하려는 자치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인터넷 개인방송에 대한 오해와 저주는 그 어디쯤에서 시작된다.



인터넷 개인방송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가짜뉴스’가 만연하다는 비난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짜뉴스는 대략 ‘잔혹한 기사제목이나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진과 영상을 혐오목적으로 마치 기사처럼 거짓으로 꾸민 거짓말, 선동’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인터넷 개인방송이 ‘가짜뉴스’를 생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가짜뉴스’는 인터넷을 활용한 봇(Bot)과 플랫폼(Platform) 서비스에 길들여진 이용자의 의식을 조작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발생한다.


물론 가짜뉴스가 인터넷에서 많이 떠도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접한 기사나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는데, 이 ‘좋아요’는 단순히 해당 콘텐츠에 공감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수익을 가져다준다. 페이스북(Facebook), 유튜브(YouTube)가 그렇다. 또한 아프리카TV를 비롯한 대다수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의 작동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이용자들의 호응 정도에 따라서 인터넷 개인방송 운영자와 플랫폼은 광고수익을 나누어 갖는다. 가짜뉴스 유포자는 ‘좋아요’가 누적되는 만큼 경제적 이익도 얻지만, 그로 인한 여론조작을 통해 정치적으로 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러한 행위를 명백한 범죄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대다수 가짜뉴스는 범죄로 규정될 만큼의 기만 요소가 들어있지 않지만 누군가를 기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분명한 악행이다.


가짜뉴스 관련 뉴스보도 (이미지 출처 : JTBC 캡쳐)


현재 가짜뉴스가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영역은 정치 분야다. 주로 거짓 주장이나 만들어진 스캔들은 정치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데 이용된다. 정치적 혐오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켜서 여론을 극단적으로 나뉘게 하고 이것이 결국 선거를 통한 투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대다수 연구자들은 선거에서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변수인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정보조작, 거짓말은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낯선 현상이 아니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정치체계에서는 진실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짜뉴스는 크게 잘못된 정보, 조작된 정보, 악의적 정보로 나눌 수 있다.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는 내용은 비록 허위이지만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없는 정보이다. 종종 기자들이 보도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여 타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때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의 대부분은 현실적 악의가 없는 단순 실수로 오보정정을 통해 시정된다.


‘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는 정보를 제공하는 자가 허위로 만들어 낸 내용을 현실적 악의를 갖고 유포하는 경우이다. 조작된 정보를 개인이나 집단, 조직, 특정 국가에 피해를 줄 목적으로 유포하기 때문에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좁은 의미로 기만을 목적으로 한 가짜뉴스는 조작된 정보에 해당한다.


‘악의적 정보(Mal-information)’는 정보 내용은 사실이지만, 누군가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사생활을 침해하기 위해 악의를 갖고 유포하는 정보이다. 이 경우에도 현실적 악의를 갖고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보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거나 진실이다. 잘못된 정보(오보)든 조작된 정보나 악의적 정보든 결론적으로는 모두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가중시킨다.


가짜뉴스는 잘못된 정보와 조작된 정보에만 해당한다. 그러나 사실을 적시하는 악의적 정보도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고 개인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가짜뉴스는 정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서 사회적 신뢰가 상실되게 만든다. 또한 쓸모 있는 정보와 쓸모 없는 정보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이를 구분해내기 위해 많은 사회적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가짜뉴스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미디어 활용 교육이 중요하다. 미디어 활용 교육은 크게 ‘자세히 관찰하기’, ‘심사숙고’, ‘비판적 읽기’, ‘출처 확인’ 등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모든 정보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만일 헤드라인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면 의심해볼 만하다. 또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선동하는 주장만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


둘째는 자세히 관찰한 결과 정보에 의심이 간다면, 그 주장을 전달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이 정보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고민해야 한다.


셋째는 비판적 읽기이다. 가짜뉴스의 전형적인 전달 방식은 문장을 따옴표에 넣는 것이다. 기자나 전달자가 직접 취재하거나 확인하지 못했고, 누군가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의구심이 드는 정보가 어디서 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내용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면, 반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여론이란 하나의 주장이 아니라 다양한 견해가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뉴스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다. 누가 의심스러운 정보를 퍼뜨리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저작물에는 출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도 작성자, 편성책임자, 그들의 주소와 연락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세한 정보가 누락되었다면, 그것은 조작된 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해당 사안에 대해 특정 언론사만 보도했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를 구분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제도설계를 통해서 가짜뉴스의 악의성, 오용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방안을 제안하려고 한다.


첫째, 뉴스 생산자의 윤리적 기준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모든 제도의 1차적 대응방안은 자율적인 교정과 실천이다. 이러한 자율적 기준 확립과 책무성에 대한 논의는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익을 얻는 전문적 주체들이 책무성을 인지하고, 스스로 규율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둘째, 뉴스 생산 주체만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무성 실천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감독기구를 통해서 협치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작동시킬 수 있는 규율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셋째, 수용자 입장에서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보를 심사숙고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미디어 활용 교육이 더 필요하다.


넷째, 정부의 역할이다. 중세시대처럼 악의적 허위정보를 유통시켰다는 이유로 사람을 화형 시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사안도 아니다. 이미 통치수단으로 법이 존재하지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고 사회를 통합시키기 위한 보완 입법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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