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그림 한 장을 보며 저 그림 속 요정이 액자 밖으로 나와서 내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피터팬을 따라다니는 샘 많은 팅커벨처럼, 저 그림 속 귀여운 요정도 내 주위를 맴돌며 나와 함께라면 나도 피터팬처럼 알 수 없는 신비의 세상을 맘껏 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었다.




 

정지되어 있는 종이 속 그림이 어느 순간 내 눈 앞에서 움직인다면?
그림 속 세상이 현실처럼 느껴진다면?
그림 속 인물 혹은 생물이 나에게 말을 건다면?


그것처럼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최근 기술의 발달로 많은 애니메이션이 3D로 제작되고, 우리는 안경을 쓰고 애니메이션을 봄으로써  애니 속 세상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마치 내가 애니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들과 함께 대화를 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내 눈 바로 앞에서 우리는 그들을 만난다.

내 눈 앞에서 그림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어렸을 적 나의 작은 상상이 꿈처럼 이루어진다. 마치 신데렐라에 나오는 마법사가 허름한 신데렐라를 빛나는 공주처럼 만들어줬던 그 마법처럼...



 



 

이렇게 움직이는 그림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9세기이다. 벨기에 물리학자 조셉 플래토(Joseph Plateau)가 1932년 8개의 그림이 연속으로 그려진 원판으로 뚫린 홈 사이로 보이는 그림을 거울에 비추는 페나키스티스코프(Phenakistiscope)라는 장치를 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페나키스티스코프(Phenakistiscope)는 회전 원판의 그림을 회전시켜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만드는 광학 기구로, 관객은 거울 앞에서 원판을 잡고 회전시키면서 원판의 가느다란 구멍을 통해 거울에 비치는 연속된 그림을 보게 되고 이를 통해 그림 속의 사물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낀다. 짧은 시간 관찰이 계속되면서 잔상이 남게 되고, 이 잔상은 정지되어 있는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셉 플래토(Joseph Plateau)는 이 발명품으로 인해 애니메이션의 선구자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1934년에는 영국인 윌리엄 조지 호너(William George Horner)는 조트로프(Zoetrope)를 고안해 냈으며, 이것 역시 홈을 통해 이미지를 볼 수 있게 제조되었다. 회전하는 원통의 안쪽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작은 구멍을 통해 회전 드럼이 만드는 움직이는 환영을 볼 수 있었다. 조트로프는 구조가 간단하여 값싸고 쉽게 만들 수 있었으며 매우 인기 있는 오락형태이자 초기 애니메이션 기구였다.

이후 사진이 발명되면서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고,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여 사람과 동물의 연속된 움직임을 포착했다. 1872년부터는 모션픽처(활동사진 : ①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뜻 또는 일련의 정사진이나 영상들이 스크린에 영사될 때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상태. ②초창기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세크라멘토 경마장에서 연속동작 사진을 촬영하였다. 1872년에 제작된 그의 초기 사진 작품은 수세기 동안 참고자료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어떤 형태였을까?





1876년 프랑스의 화가인 에밀레이노(Emile Reynaud)는 조트로프 개념을 도입하고 조트로프를 개조하여 만든 프락시노코프(Praxinoscope)에 의해 그것을 매직랜턴프로젝터와 혼합하여 최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고 최초로 대중에게 움직이는 그림을 선보였다. 레이노는 이것을 ‘빛을 내는 무언극’이라 불렀으며, 이후 프락시노스코프는 시각극장으로 확대 발전되면서 세계 최초의 뒤에서 영사한 그림 애니메이션이 15분간 상영되었다. 지금으로서는 15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시간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로는 그림이 내 눈 앞에서 움직인다는 꿈이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후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발달과 더불어 계속 성장하였고, 텔레비전이 도래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살펴본 이유는 단순하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관객들이 이들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

문득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 애니메이션들을 보며 우리가 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의 질도 양도 이전에 비해 늘었지만, 이상하게 그 많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전만큼의 감동과 희열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D가 당연시 되면서 캐릭터들의 움직임도 실제처럼 느껴지고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것만 같지만, 마음은 이전처럼 가까워지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어쩌면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그 시간들을, 그 꿈과 초심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림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그 옛날, 캐릭터가 지금처럼 생동감이 있지 않아도 애니메이션을 보며 웃고 울며 감동과 기쁨을 느꼈던 그 옛날. 문득 그 시절이 그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위부터 슈퍼보드, 영심이, 캡틴플레닛, 웨딩피치, 세일러문, 알라딘>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어린 시절만 해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이 인기가 많았었고, 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을 따라하거나 관련 물품들을 수집하는 등의 일들이 많았었다. 그 애니메이션이 일본 것이든, 미국 것이든 한국 것이든 국적에 상관없이 캐릭터가 주는 이야기와 감동은 분명 컸다. 지금보다 엉성하고 어설픈 움직임이었지만, 그 시절 애니메이션들은 내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 때 꿈꾸었던 내 작은 상상의 나래들에 가끔은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지금보다 기술적으로 발전되고 성장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옛날 간직했던 꿈과 초심이라는 것을...

그 옛날 그림이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에 기구들을 하나하나 만들고 발전시켰던 그 때 그 시절 마음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다해도 우리 가슴속에 오랫도록 남을 수 있는 우수한 콘텐츠는 결국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 진정성을 줄 수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지금의 아이들이 혹은 어른들이 훗날 나이를 먹어 그 옛날을 추억했을 때, 그들의 기억 속에, 그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애니메이션들이 많길 나오길 바라면서, 기왕이면 그 애니메이션들이 한국에서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오늘 글을 마친다.




글 ⓒ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기자 / 최아름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