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는 서비스다

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2012. 6. 12. 11:39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콘텐츠는 서비스다

 

이 기 현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연구팀 수석연구원)

 

 

콘텐츠가 산업으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세기 서구에서는 이미 소설문학이 대중화되면서 출판산업이 획기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등에서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지킬박사와 하이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까지 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들은 모두 원천 콘텐츠가 되어 훗날 20세기에 들어서서 만화, 영화, TV 프로그램, 뮤지컬 등 수 많은 OSMU의 대상이 된다.

 

19세기 대중소설의 흐름에 대해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등으로 포장하는 것은 비평가들의 고상한 언어일 뿐, 이와는 무관하게 소설은 출판을 통해 이미 대중들의 일상 속에서 그 문화적 기능을 십분 발휘하며 확산되었다. 대중소설의 기능과 역할은 이로부터 200년(<오만과 편견> 1813년 출간)이 지나고 있는 현재에도 크게 변함이 없다. 다만,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와 전자책의 등장으로 인해 소설의 유통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품의 창작이나 독자의 차원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일전에 '책은 죽었다’라는 저서를 출간한 어느 외국 학자의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책이여 영원하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편, 19세기말 (우연인지 빛이라는 뜻의 '뤼미에르' 형제가 개발한) 시네마토그라프로 시작된 영화산업은, 이미 20세기 초 표현주의 영화(독일)나 <전함 포템킨>의 몽타쥬 기법(러시아) 등 다양한 실험과 도전으로 영상미학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그 후 1세기 가까운 시간을 거치면서 수많은 걸작들과 거장, 스타 배우들을 탄생시키면서 1년에 세계 전체인구만큼의 관람객수와 100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펠리니(F. Fellini)나 비스콘티(L. Visconti)를 낳은 이탈리아나 누벨바그와 고다르(J. L. Godard)의 프랑스 등 전통적인 영화 강국들의 명성이 부침하면서, 최근에는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이 이른바 글로벌 전략을 통해 상업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다채로웠던 영화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역설적이게도 최근의 <아바타>나 <트랜스포머>류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의 현실은 겉으론 화려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빈곤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도 문제의 핵심에는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의 변질보다는 서비스 유통구조의 문제가 놓여 있다. 메이저 배급사들에 의한 글로벌 시장의 장악은 결과적으로 콘텐츠의 다양화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대접(?)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이 영화의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는 국내 영화 배급구조에 대해 일갈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텔레비전은 빛의 강도를 전기신호로 전환하는 기술에서 출발하여 브라운관, 전자총, 베어드(J. Baird)의 기계식 TV에서 EMI의 전자식 TV 등 다양한 기술들이 결합하여 발전하면서 20세기 매스미디어의 시대를 열었다. 텔레비전은 매체 속성상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콘텐츠와 서비스가 태생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그러나 최근 IPTV나 스마트 TV, OTT(over the top) 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가 등장함에 따라 지상파나 케이블 TV의 견고했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 역시 콘텐츠의 변화 이전에 기술발전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방송 콘텐츠나 영화는 새로운 서비스 사업자들에게도 매력적인 킬러 콘텐츠이며, Hulu, Netflix, Amazon 등과 같은 기업들이 수익모델의 개발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결국 이 킬러 콘텐츠들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인 셈이다.

 

이처럼 콘텐츠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통시적으로 고찰해 보면, 그 성장과 발전의 토대에는 대중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할 것인지에 대한 부단한 고민과 노력이 있어 왔다. 가능한 한 많은 대중을 유인하기 위한 유통과 배급기술의 발전이 콘텐츠 자체의 발전을 능가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이 대중성이라고 하는 매우 양가적인 가치가 창작자에게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자본의 논리와 맞물려 콘텐츠의 획일화라는 덫에 걸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대중성은 산업이나 비즈니스의 차원에서 볼 때 시장의 수요나 구매력을 의미하지만, 문화의 창조성과는 항상 불편한 긴장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콘텐츠산업의 생태계는 매우 유연하고 또 역동적이다. 굳이 사회학의 이론을 빌자면, 문화산업의 장(場 field)도 시장과 비시장 영역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다. 역설적이지만 시장을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의 외부(비시장 영역)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대중성과 상업성에 매몰된 대중매체를 통해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인디음악,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창작 애니메이션, 공연예술, 작가주의 소설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모두 문화의 진정한 창조성을 발아시키는 소중한 배양액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K-Pop이라는 지극히 상업적인 대중음악이 요란스럽게 유럽에 입성한 것을 두고 '신한류'의 확산을 기대하는 조급한 태도에 필자는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미 오래 전부터 조용히 유럽 관객들을 매혹시켜 오고 있는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나 나윤선의 개성적인 재즈 음악, 그리고 매니아층을 두텁게 쌓아가고 있는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와 같은 감독들의 영화에 우리는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콘텐츠는 곧 서비스이며, 궁극적으로 창작자와 이용자가 서로 소통하는 서비스이어야 한다. 창작자는 잠재적인 독자와 관객들을 향해 자신의 정열과 감수성을 쏟아낼 것이고, 반대로 독자와 관객은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공유하게 된다. 적어도 문화 영역에서의 소통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들의 기억과 추억 속에 남아있는 콘텐츠들은 모두 이처럼 창작자와 이용자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졌던 콘텐츠라는 점이다.

 

콘텐츠산업에서의 서비스란 독자, 관객, 시청자 등 이용자 집단을 지향하는 개념이어야 하며, 창작자와 이용자 사이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앞으로 콘텐츠의 유통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더욱 복잡한 구조를 띠게 될 것이지만, 새로운 유통 서비스들이 창작자와 이용자 간의 창조적 소통에 오히려 장애가 되지 않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는 유용한 콘텐츠와 쓰레기 콘텐츠(junk content)를 분리수거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대이며, 이 또한 창조적 소통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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