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과 가벼움 사이 - 풍자 개그의 비밀

상상발전소/방송 영화 2011. 12. 26. 11: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최근 삶이 각박해짐에 따라 풍자 개그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잇따라 터지는 이 사회의 큰 사건들, 치솟는 물가, 청년 실업 등으로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짐에 따라 풍자 코미디들은 세태를 꼬집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아주 옛날부터 이치에 맞지 않는 사람이나 현상을 비판할 때 어떤 사람들은 진중한 말이나 글로 신랄하게 비판했던 반면, 이야기를 만들거나 가벼운 말이나 글로 포장하여 겉으로는 웃겨 보이지만 속에는 날카로운 칼을 숨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솝우화, 토끼전, 봉산탈춤, 양반전, 호질 등의 작품은 구성도 탄탄하지만 비판할 어떤 주제에 관해 빠짐없이 서술하고 비판할 대상을 희화화했기 때문에 후세에서도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반드시 문학 작품이 아니더라도 코미디 프로, 라디오에서도 풍자는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사회에 사는 서민으로서의 애환을 반영하여 '비합리적인 세상'이라는 주제로 세태를 풍자하거나 보수로 대표되는 현 정부를 타깃으로 토크쇼 형태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길래 이들은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걸까요?

  


 

 사람들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에는 '우월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는 큰 공동점이 있습니다. 특정 대상이 무언가 덜떨어지거나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언행을 할 때 사람들은 웃습니다. 왜 일부러 덜떨어지는 언행을 자처하는 걸까요? 바로 보는 사람들이 우월감을 느낄 때 비로소 웃기 때문입니다.


풍자의 영역에서도 희화화의 대상이란, 인간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언행을 하는 것들이 됩니다. 비록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희화화를 보면 '저게 엘리트들이 할 행동이냐'라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우월감을 느낄 것입니다. 봉산 탈춤에서도 양반들이 덜 떨어지는 역할을 주로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런 유머도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이뤄져야지 미풍양속이나 도덕 관념를 저해하는 언행을 한다면 웃기는 커녕 눈쌀만 찌푸려지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또한 마음에 안 드는 대상을 희화화함으로써 '해방감'을 줄 때 사람들은 크게 웃습니다. '풍자'에서 해방감은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인데요. 사람들은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현실이나 사람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만, 막상 정면으로 덤빌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작가나 코미디언이 맘에 안 드는 대상을 말이나 글로써 난도질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못 하는 걸 대신 해주는구나.'하면서 속시원함을 느끼고 웃습니다. 하지만 희화화의 대상과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굉장히 화가 날 것입니다. 양반을 조롱하는 탈춤을, 양반들이 보고 크게 비난한 이유도 바로 공감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우월감'을 느끼든 '해방감'을 느끼든 그 저변에는 '공감'이 깔려있어야 합니다. 웃는다는 것은 그 말과 행동에 '같은 생각,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 뜻과 다름없지요. 풍자 역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대상을 써야 웃길 수 있습니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웃음이란 경직된 현실, 기성적인 것, 기계적이고 무반성적으로 이뤄지는 행동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풍자의 대상으로 자주 쓰이는 것도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 경직된 조직이었습니다. 그래서 풍자를 하는 주체는 주로 평민(서민)들이었습니다.

'나는 꼼수다'는 현 정권의 부조리함을 풍자하고, '사마귀 유치원'에서는 서민들이 살기 힘든 세상, 기득권 계층 등을 주로 풍자합니다. 풍자하는 주체는 이런 것들을 꼬집으며,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유연하고 활기차게 살아가도록 합니다.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현실, 인습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 등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잃게 합니다. 웃지 않는다는 건 활기가 없고,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관습에서 얽매여 참신함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발하고 엉뚱한 발언을 해야 웃는다는 것과 연관이 있죠). 

 웃음이 지향하는 가치는 사람들간의 유화, 젊은이다운 생기, 제도와 인습에서 벗어난 참신함입니다. 물론 '공감'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어야 합니다. '비판'이라고 하면 진중함과 심각함을 떠올려 유머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풍자'는 대상을 가벼운 말이나 글로 묘사함으로써 활기를 되찾게 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기능이 조화된 것이지요.

 

 하지만 풍자 개그도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편파적이고, 조롱에 가까운 질 낮은 유머를 구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성적이 떨어지거나 운동을 심하게 못 하거나, 못생기거나 가난한 아이를 놀리고 웃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나 풍자 둘 다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단점을 꼬집고, 웃음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죠. 풍자에서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가장한 편파적이고 조롱에 가까운, 그러니까 자기들 입장에서 맘에 안 드는 대상을 불공정하고 비인간적으로 깎아 내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생방송 토론에서 인기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편파적이고 질 낮은 조롱이라고 비판한 논설위원

  

진보 지식인으로 유명하지만 현 정권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논리보단 감정을 앞세운다고 비판했다

 

 학교다닐때 국어시간에 풍자 관련 문학은 많이 배웠지만, TV나 라디오같은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하니 새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아무튼 풍자 코미디에 웃는 이유는 그것에 공감해서이고,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것들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자칫하면 위험해질수도 있는 풍자, 재미있는 촌철살인이 되느냐 질 낮은 개그가 되느냐는 주체의 동기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