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분야의 IP(Intellectual Property)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IP가 보유하고 있는 대중적인 흥행 가능성입니다. 만화와 소설은 이전에도 다른 콘텐츠들의 원작으로 활용되었지만 최근 웹툰과 웹소설로 변화하며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의 2차 콘텐츠로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내외에서 새로운 콘텐츠의 원천으로 시장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한국 애니메이션에서는 타 분야 IP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사례가 드문 상황입니다. 주된 원인은 영유아용 완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애니메이션산업 구조에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는 상품 시장의 필요에 맞춘 자체적인 IP 창작과 애니메이션 제작이 더 선호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유아용 완구로 주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모델은 점차 시장의 포화 내지는 확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며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나 해외 시장 진출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타 분야의 IP, 그중에서도 웹툰과 웹소설을 애니메이션의 IP로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으로 타 분야, 특히 웹툰과 웹소설 IP의 활용 가능성과 가치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 출처 : 핑크퐁 pinkfong.com

 

 

웹툰 및 웹소설의 전략적 가치

 

일반적으로 콘텐츠 산업에서 타 분야의 IP를 활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주요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원작의 대중적 인지도와 시장성을 기본으로 흥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② 기획, 개발 과정에 필요한 창의적 역량의 부족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③ 제작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④ 마케팅 및 프로모션, 자금조달 시 원작의 지명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브레드이발소 / KBS

 

이외에도 웹툰 및 웹소설 산업이 성장하면서 부각되고 있는 몇 가지 전략적 가치에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애니메이션 내수 시장의 확장 가능성입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10세 이하 연령대를 주력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웹툰 및 웹소설은 대형 포털을 기반으로 하며 청소년 이상의 연령대에서 대중성과 시장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 연령 중심의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 고연령 시장으로 확장을 모색함에 있어 웹툰 및 웹소설 부문의 가치는 매우 높습니다.

 

두 번째는 해외 시장 진출 확대 가능성입니다.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은 투입되는 제작비 대비 소규모인 내수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문구나 완구 등 부가상품에 의존하고 있으며, 해외 시장 진출을 반드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한국의 웹툰 및 웹소설은 글로벌하게 소비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새로운 콘텐츠 형식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도 소비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세계화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 작용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인지도를 형성한 웹툰 및 웹소설 IP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해, 내수 시장의 한계를 넘는 세계적 흥행과 안정적 해외 시장 진출의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제작비 조달 방안의 확대 가능성입니다. 흥행에 성공한 인기 웹툰 및 웹소설의 IP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게 되면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는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확보한 웹툰 및 웹소설 IP라면 글로벌 OTT 플랫폼, 해외 배급사, 투자사, 콘텐츠 기업 등과의 연결을 더 쉽게 해 줄 수 있고, 투자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협업 가능성 또한 높여 줍니다. 예를 들어 만화 관련 투자 옵션이 약정되어 있는 펀드라면 웹툰 및 웹소설 IP 연관 프로젝트를 우선 투자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으며, 나아가 실사 영화나 드라마와의 공동 프로젝트로 확대될 가능성도 생깁니다.

 

네 번째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대체재로서의 가치입니다. 아직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지만 그것이 다양한 콘텐츠 수요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웹툰 및 웹소설은 일본의 망가 및 라이트노벨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소재 면에서 차별화를 이루면서 상이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애니메이션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즉, 청소년 이상 연령대에 소구하는 글로벌 애니메이션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무기로 한국 웹툰 및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네이버 웹툰 / 네이버 시리즈 <재혼황후 웹툰과 웹소설>

 

 

웹툰 및 웹소설의 애니메이션 제작 시 위험 요인

 

웹툰 및 웹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전략에는 위와 같은 장점들이 있지만,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위험 요인들도 주의깊게 고려해야 합니다.

 

첫 번째 요인은 원작 IP 흥행 주기와의 시기적 불일치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원작이 대중적으로 소비되며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시점에 빠르게 제작하여 흥행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제작 기간이 길기 때문에 원작에 대한 대중의 소비가 왕성한 시기에 맞추어 제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웹툰 및 웹소설은 유행과 소비의 주기가 짧은 편입니다. 또한 유사한 작품의 반복적 재생산이 많으면서 그 소비 또한 빠르게 확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장기간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사이에 해당 IP의 소비 시기가 지나고 유행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IP를 활용하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요인은 한국에서 웹툰 및 웹소설 IP의 주요 소비자와 애니메이션의 주요 소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지하듯 애니메이션 시장은 영유아 중심인 반면 웹툰 및 웹소설 시장은 청소년 이상 연령대 중심입니다. 이런 연령대의 불일치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합니다. 즉 애니메이션의 잠재 시장 확대라는 장기적, 미래지향적 관점에서는 웹툰 및 웹소설 부분은 목표해야 할 연령대가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개척되지 않은 시장이라는 것은 단점과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세 번째 요인은 IP가 공개된 플랫폼 간 규모 차이에서 비롯되는 대중적 인지도의 격차입니다. 포털 등 대형 플랫폼은 대규모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플랫폼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IP는 통상 강력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규모 플랫폼에서 유통된 IP라면 그에 대한 소비는 덜 활발할 수 있습니다. IP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면 그 활용 가치는 낮을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요인은 미디어 환경과 포맷입니다. 영상 콘텐츠의 제작 포맷은 미디어 여건에 영향을 받아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영상 콘텐츠 소비의 무게 중심이 유튜브 등 OTT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아직 한국 애니메이션의 일반적인 제작 포맷은 TV용 시리즈와 극장용 장편의 두 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웹툰 및 웹소설 IP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때, 염두에 두는 미디어나 제작 포맷이 해당 IP에 적합한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작품 내용, 투자 유치, 흥행 가능성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IP 관리 전략 체계화의 필요성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협소한 내수 시장 규모로 인해 IP의 발굴과 구매가 좁은 범위에 한정되었습니다. 또한 작품의 완성에 있어서나 흥행의 가능성에 있어 불확실성이 높았기 때문에 IP 관련 거래에서는 계약 기간을 짧게 정하면서 매절 형식으로 계약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웹툰 및 웹소설의 소비 시장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웹툰 및 웹소설에 대한 글로벌 대기업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IP를 관리하거나 매매하는 관점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IP 관리 전략은 글로벌 사업전개를 염두에 두고 더욱 체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한 인지도를 갖춘 IP라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관련되는 모든 콘텐츠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사업 로드맵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파트너 기업들에게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지속하며 시너지를 강화할 수 있는 사업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IP는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IP가 집약되지 않고 사업 권리별로 흩어지게 되면 개별 콘텐츠들의 제작과 흥행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시너지가 형성되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례로 중국의 대형 플랫폼들은 IP의 계약 기간으로 기본 7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콘텐츠 전 분야에 걸쳐 최대한의 판권을 확보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장편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의 웹툰 IP 활용 사례

 

장편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는 청소년 이상 연령대 시장의 개척을 목표로 하고, 협소한 내수 시장 규모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중점을 두어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제작, 투자, 소비 모두가 급성장하며 한국의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필요로 하던 중국을 핵심적으로 고려하면서, 중국 이외의 해외 시장까지 아우를 수 있는 IP를 발굴하고자 했습니다.

 

* 출처 : 서울산업진흥원(SBA)

적절한 IP를 찾기 위해 우선 중국의 콘텐츠 소비 성향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대규모로 시범 서비스를 진행한 차이나 모바일의 모바일 만화 서비스 현황을 분석했는데, 이를 통해 중국 만화 시장의 소비자 취향은 크게 ‘섹시/로맨스’ 선호와 ‘공포/괴담’ 선호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지속적인 분석을 통해 ‘섹시/로맨스’ 그룹의 작품들은 중국에서 흥행을 하더라도 다른 해외 국가들에서는 흥행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작품의 내용과 표현의 수위 등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건전했고, 따라서 중국의 수요와 중국 이외 국가들의 수요 간 격차가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공포/괴담’ 그룹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표현과 그에 대한 수용은 한국은 물론 다른 해외 국가들에서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또한 ‘섹시/로맨스’ 작품들에 대해서는 예상보다 문화적 취향이나 선호에 편차가 컸던 반면, ‘공포/괴담’ 작품들은 문화적인 차이에 큰 영항을 받지 않고 직관적으로 수용 되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중국 시장과 더 넓은 글로벌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가능 성이 높은 ‘공포/괴담’ 그룹의 작품들 중에서 IP를 발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음 단계로, 전략에 부합하는 IP를 찾기 위해 한국의 공포 관련 웹툰들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공포 웹툰들은 비주류여서 작품 자체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이미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극화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발견된 작품이 <기기괴괴>였습니다. <기기괴괴>는 독창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던 공포물이었으며, 작품의 신선함과 잠재력에 주목하여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나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과 같은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기기괴괴>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IP 전략으로 구체화했습니다.

 

뒤이어 원작자가 소속된 매니지먼트 기업과 협상하여 IP를 구매했습니다. 계약 후 3개월 시점까지 연재된 에피소드들 중 10편을 선정하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 하되, 계약 기간 내에 메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계약의 효력이 유지되는 것으로 협의되었습니다. 원작이 옴니버스 구성이었기 때문에 2차 판권도 에피소드별로 계약하는 것이 이 계약에서 특징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원작자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참여하거나 검수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하여 제작사가 자유롭게 원작의 각색과 변형을 진행했습니다.

 

* 출처 : 에스에스애니멘트·트리플픽쳐스

 

IP 계약 후 4개월이 지난 2015년 7월에 <기기괴괴> 에피소드 중 하나인 <성형수> 편이 중국에서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크게 화제가 되었고, 나아가 중화권 전반에서도 빈번히 회자되었습니다. 이런 반응에 힘입어 프로젝트는 <성형수> 단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의 싸드(THAAD) 배치, 그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과 한국 콘텐츠에 대해 까다로워진 심의 등 불안정한 시장 상황이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프로젝트는 꾸준히 진행되어 결국 <기기괴괴 성형수>의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기기괴괴 성형수>는 코로나19 대응 2.5단계였던 2020년 9월 9일 개봉하여 극장 관객 10만 명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해외의 20여 개 국제 영화제에서 공식 초청을 받았고, 대만, 싱가포르, 홍콩, 호주, 뉴질랜드, 독일, 일본의 7개 국가에서는 선판매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20년 9월 18일에 대만에서, 10월 8일에 싱가포르에서, 10월 18일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10월 22일에 홍콩에서 연달아 개봉했습니다. 대만과 홍콩에서는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일본에 판매되었다는 것 또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결국 중국 개봉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중국 이외의 글로벌 시장에도 소구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애니메이션 산업백서'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