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그리고 팬덤: 성장과 진화

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2020. 10. 14. 13: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출처 : Billboard(www.billboard.com)

 

201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는 방탄소년단이 시상식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문구는 “ARMY, IT’S HAPPENING”이었습니다. 간단한 이 한 줄은 방탄소년단의 팬덤아미를 아티스트의 소식을 전하는 대상으로 직접 호출했다는 데에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2017년 빌보드 뮤직 어워즈(Billboard Music Awards)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수상을 시작으로 본격화한 방탄소년단의 북미 흥행에서 아미의 이름은 늘 함께 불렸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출연 소식을 알리는 트윗     출처 :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공식 트위터

 

K-Pop을 향한, 특히 북미시장에서의 관심은 팬덤에 대한 호기심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K-Pop 콘텐츠를 팬덤 활동까지 포함한 일종의종합 패키지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각종 온라인 투표, 집단 스트리밍, 해시태그 운동 등 온라인에서 시작해 오프라인으로 번져 가는 팬덤의 단체행동과 그 원동력인 열정을 흥미로워 하는 셈입니다. 팬덤에서 음악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 싶음은 물론일 것입니다.

 

팬덤 담론은 대체로 몇 가지 형태를 띱니다. 또래 커뮤니티로서의 팬덤이나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팬덤, 또는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아티스트의 홍보를 헌신적으로 대신하는 집단으로서의 팬덤 담론입니다. 이들 담론은 1990년대부터 팬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틀로 작용해 왔지만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팬덤은 아티스트와 추종자로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K-Pop산업의 성장과 함께 팬덤의 자기인식이나 아티스트와의 역학도 크게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팬덤의 자기인식 변화

 

 

멤버 변동 관련 팬덤 발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팬덤의 발언력이 커지고 그 대상 범주 역시 확장한다는 점입니다. 아티스트 처우, 이벤트 현장의 팬 대응, 콘텐츠 내용에 대한 항의 등 사안은 다양합니다. 이중 가장 극단적인 것은 멤버 퇴출 요구입니다. 2019년 마약류 취급과 성매매 알선 등 다양한 혐의로 구성된 이른바버닝썬 게이트가 발생하자 빅뱅의 팬들은 핵심인물로 드러난 빅뱅 전 멤버 승리에 대한 퇴출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어 씨엔블루의 이종현 역시 불법촬영물이 공유된 단톡방 가담자로 알려지자 팬덤에서 퇴출 요구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일부 해외 팬들은 승리의 콘서트가 예정돼있던 공연장 앞에 모여 승리 지지 시위를 펼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간극은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반드시 국내 팬이 해외 팬보다 윤리의식이 높아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변동에 대해 팬덤이 집단적으로 습득한 경험의 차이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슈퍼주니어의 멤버 추가(2007) 2PM의 멤버 탈퇴(2010) 사례에서 볼 수 있듯, K-Pop 아이돌 팬덤은 멤버 구성 변화에 무척 민감한 성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그룹의 모든 멤버가 팬덤과 함께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2014년 엑소, 소녀시대 등의 멤버 탈퇴는 팬들에게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이후 팬들의 시선에서 그룹 활동에 불성실한 멤버, 갑작스럽게 결혼이나 출산, 연애 등을 발표한 멤버 등에 대해서는 그룹퇴출 요구가 팬들로부터 일어나는 일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팬덤, 모든 경우의 일관된 반응은 아닙니다. 아이돌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언급될 때마다 강력히 반발하는 방식으로 완강한 지지를 이어나가는 팬덤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멤버 변동이라는 가장 민감한 사안에서도 팬덤의 대응은 점차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점입니다. 전력으로 저지하려던 시대에서 수용하는 시대로, 다시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멤버를 보이콧할 수도 있는 시대로 말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팬덤의 자기인식과 맞물립니다. 1세대 아이돌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우상 같은 존재였다면 이후 아이돌은 데뷔 과정이 리얼리티 방송으로 중계되거나 팬들에 의해 선발되는 형태로 바뀌어 왔습니다. 팬덤에게 아이돌은 숭배의 대상에서 지지하고 육성할 대상으로, 그래서 팬덤은 숭배자에서 지지자로 자기인식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지지자로서의 팬은 아이돌을 보살피고 후원하며 그의 커리어가 성공적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는 존재입니다. 팬의 인식 변화는 더 나아가서 소비자로 변했습니다. 소비자로서의 팬은 아이돌에게 금전적, 감정적 자산을 지출하고 그에 따라 유무형의 재화를 제공받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혼자만의 즐거움일 수도 있고, 환상의 유지일 수도 있으며, 구체적인 감정 노동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돌의 매력이 반감되거나 흥행이 실패하는 등 구매한 상품의 가치가 떨어질 때, 또는 기대했던 재화가 제공되지 않을 때, 팬은 더 이상 참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요계에 복귀한 1세대 아이돌 팬덤에서 발생한 몇 가지 잡음은 시대의 변화를 잘 드러내 줍니다. 어느 팬덤이라도 아이돌과 팬덤 사이에 갈등은 발생할 수 있지만, ‘오빠로서의 아이돌의 역할에 익숙한 몇몇 이들은 왜 팬덤이오빠 말씀토를 다는지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압적이거나 안하무인의 태도로 팬덤의 불만을 산 1세대 아이돌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콘텐츠 관련 팬덤 발화

 

팬덤이 기획사 또는 아이돌을 향해 발언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은 숭배자보다는 지지자와 소비자가 결합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과거보다 뚜렷한 경향을 보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6년 방탄소년단의여성혐오 공론화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일부 팬들이 SNS에 계정을 만들어, 방탄소년단의 과거 가사 속에 여성혐오적 표현이 있다며 개선을 요청한 사건입니다.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이 비판을 받아들이고 공식 팬카페에 피드백을 게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방탄소년단은 여성학 서적을 읽거나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고 있음을 어필하기도 하고, 전향적인 의지를 담은 곡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 실질적 의미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남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이들의 “Love Yourself” 연작을 관통하는 주제의식 속 소수자의 연대나, 여성혐오적 가사로 비판받은 초기곡상남자 (Boy In Love)’를 스스로 빗대어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ove)’를 발표하며 보다 성숙한 연심을 보이는 인물상을 제시한 사례 등은 방탄소년단이 팬덤의 불만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콘텐츠와 성장서사 속에 적극적으로 융합한 성취로 이해하기에 충분합니다.

 

결말은 긍정적이지만 당시 방탄소년단의 팬덤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방탄소년단안티와 팬의 충돌로 이해하기도 하고, 숭배자 형태의 전통적 팬과 지지자/소비자 형태의 새로운 팬의 충돌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2016년 당시 방탄소년단을 견제하고자 하는 타 보이그룹 팬들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비판과 비난 중 일부가 여성혐오 논란으로 이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2015년부터의 통칭페미니즘 리부트와도 맞물린 이 사건 이후로, 특히 젠더 이슈에 관련된 팬덤의 공론화는 수시로 발생했습니다. 아티스트와 소속사 측의 대응도 적지 않게 이어졌습니다. 개중에는 태도의 변화나 사과만이 아니라 이미 발표한 뮤직비디오나 음원을 수정해서 재배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SNS를 통한 팬덤의 의견 교환이 활발해지고 서로 다른 팬덤이나 팬덤 외부 집단과의 접점도 많아지면서 이와 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자주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이슈와 팬덤 집단행동

 

 

방탄소년단 팬들이 운영하는 자선 모금 단체 'One In An ARMY' 소개 자료     출처 : One In An ARMY 홈페이지

 

‘원 인 언 아미(One In An ARMY)’는 전 세계의 방탄소년단 팬들이 기부가 필요한 사안을 선정해 기부금을 조성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18년 한 팬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난민 주택 마련이나 어린이 예술 치료 등 다양한 이슈에서 각급 NGO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활동합니다. 방탄소년단 멤버의 생일을 기념하여지민과 함께 집을(Home With Jimin)”, “정국과 함께 힘을(Strengthen With Jungkook)” 등의 표어를 걸고 다채로운 사안에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2019 2월 진행된호석과 함께 미소를(Smile With Hoseok)”은 페루의 구순구개열 치료에 미화 8천 달러 이상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특정 아티스트의 팬덤이 모여 사회적 사안에 기부금을 조성하는 사례는 이외에도 적잖이 있습니다. 일례로 공연장 등의 현장에 팬들이 보내는 화환은 불우이웃 돕기를 위해 기부되는 쌀 화환으로 대체되어 한국 대중음악계 고유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이런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부터 팬덤이 아이돌에게 오토바이나 차량 등 고가의 선물을 하는 사례가 있었고, 이는 세간의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에 따라 콘서트나 생일 등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아티스트 명의의 기부나 숲 조성 등이 대안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아이돌 팬덤이 갖는 특유의 인정욕구와 스타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인 셈입니다.

 

 

흑인 인권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한 '원 인 언 아미'     출처 : One In An ARMY 트위터

 

‘원 인 언 아미는 분명 방탄소년단이 직접적으로 천명한 주제의식과 유니세프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아 이뤄졌고,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팬덤이 있기에 가능한 기획으로 보입니다. 모든 팬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기에는 방탄소년단의 특수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티스트의선한 영향력이 점차 K-Pop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함에 따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팬덤의 기부 활동은 앞으로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티스트 비호 활동: '여자 연예인 연검 정화봇'의 사례

 

 

‘연검 정화라는 이름의 활동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빈도로 연결되는 연관 검색어들이 포털사이트에 노출되므로, 부정적이거나 모욕적인 연관 검색어보다 많은 검색 이력을 생성함으로써 긍정적인 연관 검색어의 순위를 끌어올리는 행동을 말합니다. 2019년에는 조금 특이한 사례가 발견되었는데, ‘여자 연예인 연검 정화봇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그것입니다. 여성 연예인의 악플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선정적이고 모욕적인 연관 검색어를 긍정적인 키워드로 대체해 보자는 움직임입니다.

 

출처 : 여자 연예인 연검 정화봇 트위터

 

해당 계정의 신원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K-Pop 아이돌 팬덤 문화에 익숙한 인물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 계정이 안내하는정화법은 몇 가지 행동요령을 수반합니다. 포털 사이트의 어뷰징 차단 알고리듬을 피하기 위한 대책으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며 팬덤에 팬덤을 거쳐 전승되는 방법들입니다. 또한 부정적인 어휘가 연관 검색어로 결합되는 것을부정한 상태로 간주하거나, 이를 집단적 노력으로정화한다는 것 역시 팬덤에서 자주 발견되는 사고방식입니다.

규모가 있는 아이돌 팬덤이라면 연검 정화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여자 연예인 연검 정화봇’은 각자의 팬심을 떠나 여성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응원하겠다는 취지로 개설되었습니다. 팬심은 흔히 경쟁의식을 동반하므로, 팬덤이 다른 아티스트를 위해 움직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K-Pop산업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여러 팬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돌 팬덤 출신 혹은 유사한 멘탈리티를 가진 인물에 대해 반드시 특정 아티스트를 향한 배타적 팬심으로서만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이 아니며, 팬덤의 양식 그대로 다른 이슈에 행동하는 일도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여성 아이돌의 여성 팬덤

 

 

 

여성 팬의 가시화

 

 

출처 : (좌)마마무 공식 홈페이지, (우)레드벨벳 공식 홈페이지
출처 : (좌)선미 공식 페이스북, (우)태연 공식 홈페이지

 

1990년대 1세대 아이돌은 남성 아티스트의 여성 팬을 중심으로 산업에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콘서트 예매자 중 여성 비율이 80%에 달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마마무를 비롯해, 레드벨벳, 선미, 태연 등 다수의 여성 아티스트 팬덤이 여초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성 아티스트의 여성 팬이 최근에야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분류되는 베이비복스(1996년 데뷔)도 유망 보이그룹 팬덤의 괴롭힘으로 고통 받았던 팬들의 회고가 뒤늦게 여초 커뮤니티에 등장해 회자되기도 했고, 2007년 데뷔한 소녀시대, 원더걸스 역시 상당한 비중의 여성 팬덤이 형성된 바 있습니다. 다만 여성 팬은 남성 아티스트를 추종한다는 통념에 가려 최근에야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9 11월 마마무의 팬 쇼케이스의 경우 여성 예매자가 91.6%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콘텐츠의 변화

 

 

여성 팬의 가시화는 콘텐츠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남성 아이돌은 코어 팬덤을 중심으로, 여성 아티스트는 대중적 인지도를 중심으로 한다는 기초 전략이 과거의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여러 음반을 관통하는 복잡한 서사적 설정(세계관)은 팬덤형 아티스트의 것으로 간주됩니다. 단발적 히트와 대중적 노출을 중심으로 할 때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좌)여자친구 공식 페이스북, (우)우주소녀 공식 페이스북

 

최근 여성 아이돌은 세계관을 도입하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자친구(2015년 데뷔), 우주소녀(2016년 데뷔)는 데뷔 당시 각각 학교를 무대로 한 연작이나 우주 공간을 뛰어넘는 만남이라는 테마를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2~3년 차에는 연속적인 세계관보다는 단발성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팝적 성향의 곡들을 잇따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우주소녀가 2018년부터, 여자친구가 2019년부터 다시 서사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은 팬덤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팬덤이 모이고 특히 여성 팬들의 관심이 유수의 걸그룹에게 몰리는 환경적 변화에 힘입어 다시 세계관이 중요한 무기가 된 것입니다.

 

 

드림캐쳐 - Piri     출처 : Happyface entertainment 유튜브

 

이외에도 드림캐쳐(2017년 데뷔)악몽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일련의 서사를 구축해 놓고 신곡을 발매할 때마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으로 팬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드림캐쳐는 특히 해외 팬들의 큰호응과 함께 데뷔 1년 차에 유럽 투어에 나서는 등 중소기획사 신인 걸그룹으로는 매우 드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물론 팬덤의 성별 차이를 일관된 취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티스트와 이성 팬덤이라는 이분법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보이그룹과 걸그룹의 콘텐츠가 보이던 뚜렷한 성별 이분법 역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달의 소녀 - Butterfly     출처 : Danal Entertainment 유튜브

 

변화는 상업적 전략만이 아닌 태도에도 적용됩니다. 이달의 소녀(2016년 프리데뷔, 2018년 정식 데뷔)는 처음부터 각 멤버가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설정과 함께 뮤직비디오와 가사 속에 수수께끼 같은 기호를 삽입하며세계관을 강하게 내비친 바 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이들의 정식 데뷔곡 ‘Butterfly’는 가상 세계의 픽션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소녀들에 대한 송가로 완성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세계 각지에서 억압과 절망을 뚫고 일어나 춤추고 달리는 소녀들의 이미지로 구성되었고, 이들의 프로덕션 자체가 종종 비판받았던 피상적소녀성의 기호인 교복 치마 등이 말끔히 제거된 채 힘 있고 우아한 군무를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트와이스(TWICE) - Feel Special     출처 : JYP Entertainment 유튜브

 

트와이스의 사례 또한 흥미롭습니다. 과거보다 눈에 띄게 활달한 이미지의 ‘Fancy’를 선보인 데 이어 걸그룹으로서의 동료애와 자존감을 주제로 한 ‘Feel Special’을 발표한 것입니다. 트와이스는 팬덤의 남초 성향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특히 걸 그룹 콘텐츠에 있어서 서사성이나 메시지보다는 매력적인 리듬과 멜로디의 러브송이라는 팝송의 고전적 미덕을 중시하는 성향을 보여 왔습니다. 그래서 트와이스가 아티스트의 실제 삶과 메시지를 콘텐츠에 녹여낸 것은 이례적인 행보라 할 만합니다. ‘Feel Special’은 일부 멤버의 건강 문제와 맞물려 K-Pop 팬덤 전반에 반향을 일으켰는데, 연대의 의지와 건강한 자존감이라는 메시지 또한 여성 팬들에게 각별하게 다가올 수 있는 주제의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여성 팬과 '걸 크러시'

 

 

출처 : (좌)청하 공식 페이스북, (중)블랙핑크 공식 페이스북, (우)ITZY 공식 홈페이지

 

소위걸 크러시이미지는 이미 2015년 경부터 K-Pop산업에서 익히 회자되는 기호가 되었습니다. 2012년 경부터 대대적인 붐을 일으킨 통칭청순걸그룹의 유행이 조금씩 쇠퇴하며걸 크러시의 유행이 점쳐졌고 상당수의 여성 아이돌이 이를 표방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에게 어필하는 여성을 정형화한다는 비판, 성소수자를 지우는 워딩이라는 비판, 무분별하게 차용되는 콘셉트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2018년을 기점으로 과감한 스타일링과 도전적인 태도, 진취적인 내용, 긴박감 있는 곡풍 등이 여성 아티스트의 곡으로 대거 등장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선미, 청하, 태연 등 여성 솔로 아티스트들과 레드벨벳, 마마무, 블랙핑크 등이 이러한 맥락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데 이어, 특히 2019년에는 에버글로우, 있지(ITZY) 등 신인 걸그룹들도걸 크러시이미지를 통해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는 시장에서의 차별화와 단면적인걸 크러시이상의 이미지를 구사하고자 하는 기획 차원의 노력이나, 각을 드러낸 아티스트들의 영향력도 주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성 팬들의 지지가 촉매로 작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여성 팬이 여성 아티스트의 강한 이미지만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 아티스트가 평면적으로 대상화되지 않고,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는 수요가 커지고, 그 일환으로서걸 크러시의 지분이 확대되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여자)아이들 - Lion     출처 : Mnet K-pop 유튜브

 

오마이걸 - Destiny     출처 : Mnet K-pop 유튜브

 

 

2019 8월부터 방송된 엠넷퀸덤이 그 한 예입니다. 여성 아이돌들이 출연해 경쟁하는 서바이벌 쇼로, 아이돌들이 직접 콘셉트를 설계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AOA너나 해’, (여자)아이들의 ‘Lion’ 등 진취적인 이미지의 무대들이 시청자의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청순’, ‘섹시’, ‘걸 크러시등으로 분류된 여성 아이돌의 이미지가 보다 복잡한 스펙트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방송을 지켜보는 여성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사며 각별한 감흥을 제공했습니다. 그러한 수요를 평소 현장에서 느껴온 이들이기에 이를 믿고 도전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여성 팬들의 존재가 여성 아이돌들에게 편견을 딛고 새로운 모습을 일구는 바탕이 되었다고 볼 만한 대목입니다.

 

2019년의걸 크러시를 단순히 돌고 도는 유행의 하나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2010년 전후의 애프터스쿨, 포미닛 등의 카리스마 걸그룹을 단순히 리바이벌하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한 어필을 덜어내고 새로운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도 트렌드의 변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십대 여성에게 동경을 일으킬 수 있는 이미지로 기획된 있지의 모습이나, (여자)아이들이편견을 무너뜨리고 여왕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가사를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장면 등은 대중의 어떠한 요청에 부응한 흐름이 분명 존재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줍니다. 애초에 K-Pop 아이돌산업의 탄생이 1990년대 젊은 여성층에게 불었던꽃미남’ 붐과 맞물렸던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 아티스트들의 콘텐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성 팬덤의 존재는 어쩌면 몇 가지 유행에 그치지 않고 K-Pop산업의 취향을 조금은 더 핵심적인 영역까지 바꿔나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팬 카페와 팬덤 커뮤니티의 변화

 

출처 : Google Play

 

출처 : Google Play

 

2019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위버스(Weverse), SM엔터테인먼트는 리슨(Lysn)을 각각 론칭했습니다. 팬덤 전용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위버스에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와 함께 여자친구의 커뮤니티가 개설됐습니다. 리슨에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팬 커뮤니티가 각 팬덤 이름으로 등록됐고, 소속사와 무관하게 팬들이 관심사에 따라 커뮤니티를 개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두 서비스는 단순한 애플리케이션이라기보다는 팬덤 플랫폼으로서 흥미로운 양상을 보입니다. 보다 미시적으로는 기존의공식 팬 카페를 대체하는 플랫폼들입니다.

 

 

 

 

 

팬 카페

 

 

잘 알려진 것처럼 1990년대 팬덤은 지역 팬클럽과 전화 사서함 등을 통해 조직화되어 있었고, 2000년대 들어 각종 연예 커뮤니티로 활동 거점을 옮겼습니다. 특히 공개 게시판 형태의 커뮤니티가 많은 이용자를 흡수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디시인사이드, 베스티즈 등이, 2020년 현재는 인스티즈, 더쿠(theqoo) 등의 사이트에서 여러 팬덤의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웹사이트들이 비교적 개방된 공간이라면, 팬 사이트는 같은 아티스트의 팬들만 모이고 여러 가지 팬덤 활동을 해나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중앙 커뮤니티가 전부 명맥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다음(Daum) 카페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통칭공식 팬 카페는 기획사의 직접 관리 하에 팬과 아티스트가 소통하는 공식 창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스케줄 등의 정보 전달이 주된 목적이라면 공식 웹사이트로 충분할 수 있고, 가입 절차가 번거롭다는 점에서, 팬 서비스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플랫폼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팬 카페가 여전히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은내밀한 소통에 주력한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티스트에 관한 퀴즈를 맞혀야 가입 신청을 할 수 있고, 신청이 승인된 이후에도 회원 등급 상향조정을 따로 신청해야 하는 등,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팬 카페의 회원 수가 팬덤의 규모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인식되어 온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회원끼리도 일단은 서로가 팬이기에 카페에 들어와 있음을 전제하게 됩니다. 아티스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올리기도 하고, 반대로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만 브이라이브, 인스타 라이브, 트위터 등을 통한 아티스트와의 직접 소통이 활발해지면서내밀한 소통이라는 팬 카페의 강점도 점차 퇴색했습니다. 리슨이나 위버스는 이런 팬 카페를 대체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서 기획되고 등장했습니다.

 

 

 

 

 

리슨과 위버스

 

 

두 플랫폼 모두 게시판 중심의 다음 카페와는 달리 타임라인 형태의 인터페이스를 채택했습니다. 아티스트로부터의 메시지와 팬들의 메시지 모두를 담고 있으며, 티저나 뮤직비디오 등 일반적인 아티스트 콘텐츠도 게재됩니다. 그 외에 일정 시간대에만 코멘트나 응원을 할 수 있는 동영상 콘텐츠를 비롯해, 공연이나 이벤트의 티켓, MD 등 역시 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구매하도록 해 충성도 높은 팬덤의 관심사를 모두 한 곳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 팬들이 모이는 공간인 만큼 팬들이 서로의 메시지를 번역해서 소통에 기여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위버스의 경우 팬이 메시지를 등록할 때아티스트에게 숨기기(Hide from artist)’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부정적인 이슈에 대한 집단행동을 비롯, 굳이 아티스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용을 팬들끼리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서비스 초기에는 팬덤의 강한 반발을 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위버스에 대한 팬들의 불만은 팬 카페에 대한 상대적인 것이었습니다. 팬 카페는 까다롭기로 널리 알려진 가입 퀴즈를 통과한진짜 팬들이 폐쇄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가입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열린 플랫폼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과거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도 활동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소속감의 희석, 아티스트와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팬덤의 ‘분탕’, 티켓 사재기, 기자들의 염탐 등 외부인 유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이런불만은 팬 카페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내밀함에 대한 팬들의 애착을 엿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잡음에도 불구하고 두 서비스는 모두 다른 대안 없이 해당 팬덤의 공식적인 창구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리슨(Lysn)

 

SM엔터테인먼트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 이런 플랫폼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우선 다음 카페의 특성상 쉽지 않았던 외국인 팬의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또 타사 플랫폼인 다음 카페가 제공하는 기능에 용도를 맞춰야 했던 팬 카페와 달리, 팬덤과 기획사, 아티스트 측의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기능을 변경하거나 추가할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당장 음반이나 굿즈 등의 쇼핑 기능만 해도 다음 카페에서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아티스트에게 높은 관심을 가진 사용자들의 연령대, 성별, 지역 및 활동 빈도, 구매율 등의 데이터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매력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버스(Weverse)

 

흥미로운 것은 게시판 형태의 팬 카페에서 SNS 타임라인 형태로의 변화입니다. 10건 이상의 게시물 제목을 보여주고 선택해 읽도록 하는 게시판에 비해, 타임라인 형식은 한 화면에 들어오는 정보량이 적습니다. 게시한 지 오래된 글을 보려면 스크롤을 많이 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게시물의 노출 빈도가 빠르게 낮아집니다. 동시에 모든 게시물의 본문이 노출되므로 각 게시물의 정보값 밀도도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팬들이 놓치고 싶지 않은 콘텐츠, 즉 아티스트로부터의 메시지는 별도의 메뉴로 분리돼 있고, 팬덤 내부의 소통은 보다 즉각적이면서 캐주얼하게 이뤄지도록 설계했습니다. SNS 시대의 감성과 가독성에 보다 부합하는 외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팬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분쟁이나 매우 뜨거운 의견 교환이 발생할 만한 형태를 의도하지는 않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점차 발언력이 증대되고 있는 팬덤이 아티스트의 커리어와 콘텐츠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금, 팬덤의 여론을 견제하기 위해 플랫폼을 바꿨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 것입니다. 팬 카페는 그 자체로 기획사의 관리 하에 있고 팬들도 공식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기존에도 토론이나 분쟁은 다른 폐쇄 커뮤니티나 SNS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팬 카페와는 확연히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플랫폼은 팬덤 행동양식의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이외의 아티스트도 향후 리슨이나 위버스에 커뮤니티를 개설하거나, 혹은 이와 유사한 독자적인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팬덤의 공식 팬 카페 시대가 저물고 다음 시대가 열림에 따라, 기획사와 팬덤의 관계 및 역학에도 변화가 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앞으로도 관심을 두고 지켜볼 만합니다.

 

 

 

 

 


 

 

최근 몇 년, 해외의 음악 매체나 서비스들이 K-Pop 팬덤을 호명하며 온라인 투표를 독려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K-Pop 팬덤의 열정이 갖는 상업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국내의 팬덤 담론 역시 선행을 하는기특한 소녀들이나 기획사의 홍보 업무를 대신 해주는 경제적 자원으로서의 시각이 고작인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아이돌 팬덤에 성인의 비중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진지 10년이 넘도록 팬덤은 십대 소녀들이라는 고착화된 편견을 유지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팬덤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소비하고 지지하며, 아티스트의 커리어와 콘텐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팬덤의 구성이 산업 자체에 변곡점을 가져올 잠재력을 지니기도 하고, 다시 산업의 환경이 팬덤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팬덤은 단일한 의견이나 성향을 가진 집단도 아니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늘상 변화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짧은 글에서 논하는 팬덤 역시도 그 복잡한 실체의 일부를 다룬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K-Pop산업의 변화와 그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팬덤을 이해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편견 없고 정확한 관찰과 담론이 더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2019 음악 산업백서'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