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의 인수합병, 플랫폼 경쟁력 강화의 시동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20. 2. 24. 18: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한국 방송산업의 기술 변화는 최근 10년 극적으로 빠르게 전개됐습니다. 그러나 변화에 걸맞다고 할 만한 기업 간의 변화는 드물었던 게 사실인데요. 이 가운데 유료방송업체 간 인수합병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이같은 결합은 어떤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요?

 

[억압된 역동성]

 

그동안 한국 방송산업의 환경 변화에 대한 대처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억압된 역동성”입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최근 1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방송산업에서 환경변화의 강도에 걸맞는 기업결합은 드물었습니다. MSO간의 인수합병이나 MPP간의 인수합병은 더러 있었지만,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와 CJ헬로비전,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결합을 승인하기 전까지 이종 플랫폼간 인수합병은 없었습니다.
가장 큰 콘텐츠 제작역량을 가져온 지상파 3사는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인수합병의 주체도 대상도 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자본력을 가진 통신3사에 의한 MSO 인수는 경쟁제한성의 우려로 견제를 받아왔다. 그 결과, 우리 방송산업에서는 기업이 환경변화에 반응하여 외부로부터 새로운 역량을 결합해나가는 역동성이 억압되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을 접고자 하는 기업들이 업계탈출의 기회를 잡기도 어려웠는데요. 따라서, 유료방송산업은 기업의 비효율성, 서비스 질적 성장의 한계, 낮은 ARPU 등의 고질적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웠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와 CJ헬로비전,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결합을 승인하며 유료방송업체간 인수합병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플랫폼간의 인수합병으로 유료방송기업의 몸집이 커지는 것은 유료방송시장에 여러 가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습니다. 

 

[플랫폼 경쟁력 강화의 시동]


드디어, 방송산업에 불어 닥친 변화와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플랫폼 경쟁력 강화의 시동이 걸렸습니다. 비록 한차례 합병이 불허되었지만, 통신사의 MSO 합병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에서 통신 3사는 인수합병을 통한 유료방송시장의 점유율 확보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이번에 두 건의 인수합병이 마무리되면, KT 주도적 유료방송시장은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이 비교적 균등해지는데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유료방송 점유율은 2018년 말 기준, KT 31.07%(KT스카이라이프 포함), LG유플러스(CJ헬로 포함) 24.54%,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포함) 23.92%로 정립(鼎立)관계가 됩니다. 케이블방송은 IPTV 성장과 함께 감소하는 시장점유율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업계 탈출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상파방송은 통신사와의 OTT통합을 위해, 정부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글로벌 OTT 기업의 국내 시장 영향력에 대처하고자 통신사와 MSO의 결합이 긍정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LG유플러스와 CJ헬로비전,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결합을 두고 주요 통신사들에 의한 유료방송시장 장악이라는 일부의 비판 속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는 결합승인을 했습니다. 3년 전 다수의 권역에서 합병기업에 의한 유료방송의 시장지배적 지위가 형성될 수 있음을 근거로 SKT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불허된 적이 있습니다. 3년 전엔 뚜렷한 반대 입장을 보였던 지상파방송사들도 이번엔 달랐습니다. 3년 동안 달라진 것은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나 시장지배력에 대한 우려의 정도가 아니라, 방송산업 전반과 정부가 국내 방송산업에 대해서 느끼는 위기감의 정도라고 봐야 합니다.
  
잠깐 미국 통신회사인 AT&T가 내년에 OTT서비스인 HBO MAX를 출범하는 것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거리 전화 서비스를 해오던 AT&T는 2006년 미국 동남부 지역전화회사인 벨사우스와 그 자회사인 싱귤라를 인수하여 AT&T모빌리티를 설립함으로써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편, 방송플랫폼 사업으로는 2006년 IPTV인 U-Verse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5년 위성방송 DirecTV를 인수했습니다. 콘텐츠 영역에서는 2016년 타임워너를 인수한 후, 콘텐츠 역량을 모아 2018년 워너미디어를 설립했는데, 워너미디어는 2020년엔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 MAX를 출범할 예정입니다. AT&T는 통신망 서비스에서 방송 플랫폼 서비스, 콘텐츠 사업, 그리고 그 콘텐츠에 기반한 OTT 서비스로 확장을 꾀하고 있는 중입니다. 위기감에 대한 인식과 변화에 대한 절실함을 그대로 드러낸 인수합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결합한 역량들을 멜팅팟(melting pot)에 넣어버리지 않고, 샐러드보울(salad bowl)에 넣고 다양한 조합으로 다양한 색깔과 맛을 내는 방식으로 각각의 역량을 최대치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콘텐츠 활성화 없다면 빛좋은 개살구]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사업승인에서 CJ헬로와 티브로드를 각각 인수하면서 투자를 통해 8VSB 채널 수 확대, 디지털TV HD급 화질 업그레이드 등의 케이블방송 서비스의 경쟁력 강화 전략을 제시하였고, VR, AR와 같은 5G 콘텐츠 제작 시스템 구축 등의 계획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한국 방송산업에 그렇게 위협적으로 와 닿는 것은 결국 기술적 측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제공하는 콘텐츠의 압도적인 질적 우위 때문입니다. 또한, 넷플릭스가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에 긴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기술력 때문이 아니라, 디즈니가 가진 그간의 저작권과 스토리 만들기 100년의 저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합리적 콘텐츠 가치산정부터]


콘텐츠 활성화는 합리적 가치산정에서 시작됩니다. 플랫폼사와 방송채널사업자, 그리고 플랫폼과 이용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콘텐츠 공급에 대한 적정한 지불이 좋은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소비하게 함으로써, 전체 시장을 활성화시킵니다. 전자는 수신료배분 쟁점이고, 후자는 낮은 ARPU의 쟁점입니다.
  
IPTV와 케이블방송이 방송채널사업자에 대해 지불하는 수신료 배분율이 각각 약 15%, 25% 정도로 차이가 있다 보니, 방송채널사업자 입장에는 통신사와 케이블방송의 인수합병에 대해 우려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높은 배분율을 기준으로 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배분율을 기준으로 조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일 것입니다. 유료방송 플랫폼의 성장은 콘텐츠 산업과의 상생적 관계를 구축해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단순히 수치의 조정작업에만 매달린다면 소모적이고 상처가 남는 협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업계 간에 많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고충과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적정수준과 향후 계획이 수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요금의 인상이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동반한다면, 소비자 복지 측면에서도 필요합니다. 통신사와 케이블사의 인수합병에서 요금인상의 쟁점도 중요한데, 승인조건으로 케이블TV 수신료가 물가상승률을 초과인상하는 것을 금지했고, 고가형 및 디지털 방송상품 전환 강요를 금지했습니다. 이처럼 과도한 요금인상이나 서비스 전환 강요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건전한 시장을 훼손시키므로 정책적 개입이 있어야 하지만, 요금인상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출혈경쟁으로부터 시작된 낮은 ARPU(사업자의 서비스 가입자당 평균 수익), 소극적 투자, 콘텐츠의 질적 저하, 소비자 만족도 저하 등의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결집된 역량의 활용]



통신사 3두 체제로 정리된 유료방송이 결집된 역량을 어떻게 사용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이 인수합병을 결합상품시장의 확장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련업계와 이용자들의 우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서비스와 콘텐츠 인프라 등에 대한 통신사의 투자 의지를 구체화하면서 완화될 것입니다. 

콘텐츠 영역과의 공정한 거래관계를 정착시키고, 방송사업으로부터의 수익이 콘텐츠 영역으로 순환될 수 있는 구조를 조성함으로써, 플랫폼사의 지속성장은 물론이고, 한국 미디어 산업의 체질을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글. 임정수(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방송트렌드&인사이트 21호"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