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좀비물을 만든다고?’ 전대미문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 <부산행>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좀비 영화는 할리우드나 유럽에서나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우려와는 달리 <부산행>은 큰 인기를 끌며 흥행 역사를 새로 세우고 있습니다. 개봉 첫날 관객 수 87만 명으로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달성함은 물론 개봉 19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좀비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을 기념하며 이번 기사에서는 좀비의 탄생과 그 변천 과정을 다뤄보고, 한국만의 신선한 좀비 콘텐츠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진 1. 영화 <화이트 좀비> 포스터


좀비란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자의식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존본능만이 남은 존재입니다. 콩고어 은잠비(Nzambi)“에서 유래된,”되살아난 시체이죠. 좀비 괴담은 17세기와 18세기 아이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티를 점령한 프랑스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수많은 흑인 노예를 부려 목화, 사탕수수, 커피를 재배하였는데요, 혹사당하던 흑인 노예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경우 끔찍한 저주를 받아 자유가 약속된 사후세계에 도착하지 못하고 영혼 없는 좀비 노예로 평생을 보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아이티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전래동화로 남아있던 좀비가 부두교와 접목하여 부두술사에게 노예로 부려지는 존재로 그려지게 되었죠


첫 좀비 영화로 알려진 <화이트 좀비 (1932)>에서는 낮에는 무덤에서 자고 밤에 일어나 부두술사의 조종을 받는 노예 좀비가 등장합니다. <화이트 좀비> 속 좀비들은 흑인 노예들의 슬픔을 담고 관객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존재로 자유를 찾고 부두술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좀비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죠?

 

 사진 2.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영문 타이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만들어졌는데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은 좀비 영화의 대부라 불릴 정도로 좀비 영화계에 큰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는 아이티 부두교의 좀비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 좀비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부두술사와 같은 주인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인육을 섭취하며 단체행동을 하는 좀비들이죠. 무의식 상태에서 느리게 걸어 다니는 좀비는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상징으로 사용되는데요,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없이 자본주의와 미디어에 잠식된 1960년대의 중산층을 은유하여 좀비물의 새로운 역사를 세웠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사진 3. 영화 <새벽의 저주> 포스터


이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좀비의 특성 역시 변화하였습니다. <28일 후 (2003)>, <새벽의 저주 (2004)> 등에서 볼 수 있듯이 21세기 영화에서의 좀비들은 빠른 움직임으로 세계적인 재앙을 끌고 오는 비인간적인 존재로 발전합니다. 자유시장(free market)을 강조하고 정부로부터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을 기대하기 힘든 사회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중산층의 시선으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이죠.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서일까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좀비물은 매년 제작이 되고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죠.

 


좀비의 시작과 할리우드 좀비 영화의 변천사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 이젠 최근 들어 등장하기 시작한 국내의 좀비 콘텐츠를 간단히 한번 만나보실까요?

 

1.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 (2011)>

 

▲ 사진 4.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 도서 세트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국내의 좀비 콘텐츠는 강풀 작가님의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입니다. 한 회 평균 조회 수 200, 누적 페이지뷰 15천만을 기록한 <당신의 모든 순간>좀비를 피해 도망치고 백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아닌, 모든 사람이 좀비로 변한 세상에서 생존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생존한 사람은 물론 좀비가 되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개개인의 애틋한 사연과 우정, 사랑, 가족애 등 짙은 휴머니즘이 담겨있죠. 좀비가 등장하는 대부분 콘텐츠가 공포물임을 생각해보면 좀비 만화와 순정 만화, 그리고 따뜻한 감성 만화가 결합한 <당신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신선한 작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2. 도심형 RPG, 참여형 스포츠 페스티벌 '좀비런'


▲ 사진 5. 출발선에서의 좀비런참가자들


다음으로는 좀비 떼를 피해 뛰어다니며 생존하는 참여형 스포츠 페스티벌 '좀비런'입니다. 2013년 봄, 연세대학교 축제에서 시작한 '좀비런'은 축제 이후 과천 서울랜드,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 그리고 최근에는 대구스타디움에서까지 진행된 인기 행사입니다. '좀비런'의 참가자는 좀비 플레이어, 러너 플레이어로 나뉘는데요, 좀비 플레이어는 좀비로 분장하여 '생존자'인 러너 플레이어를 뒤쫓고, 러너 플레이어는 좀비 플레이어를 피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출발선 3km 너머 지점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영화, 게임 등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좀비물 속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다니, 정말 재밌는 발상의 콘텐츠임에 틀림없습니다.

 

3. 영화 <부산행 (2016)>

 

 사진 6. 영화 <부산행> 포스터


마지막으로는 앞으로 국내 좀비 콘텐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된 <부산행>입니다. <부산행> 이전에는 해외에서 좀비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 국내 영화계에는 성공한 좀비 작품이 없었습니다. 잔인하고 혐오감을 주는 외양의 좀비들이 국내 정서와는 다소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부산으로 가는 KTX 열차 안에서 좀비들에 맞서 싸우는 내용의 <부산행>, 어떻게 좀비물의 장르적 한계를 극복했을까요? 우선, <부산행>의 등장인물들은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백신을 찾아서 인류를 구원하는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고 재난 속 평범한 사람들을 다뤘습니다. “소재가 아무래도 특별한 편이다 보니 관객들이 소재가 낯설어서 튕겨 나가지 않길 바랐다.”<부산행>의 연상호 감독님은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죠. 또한, 할리우드에서 흔히 보던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외형의 감염자들과는 다른, 국내 정서가 녹아든 한국형 감염자들이 등장합니다. 기괴한 각도로 움직이지만, 흔히 좀비물 하면 떠오르는 혐오감을 주는 비주얼이 배제된 것입니다. 국내 첫 좀비 상업영화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좀비 영화를 영화관에서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사진 7. 8월 중순에 개봉하는 영화 <부산행> 프리퀄 <서울역> 포스터

 

“‘한국에서 스릴러물을 만든다고?’ <살인의 추억(2003)>이 나오기 전만 해도 스릴러물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 물론 그 이후 잘 자리 잡았지만. 이번 영화(<부산행>)가 또 한 번 장르적 지평을 넓히길 바란다.”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연상호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연상호 감독님 말씀대로 천만 관객을 넘긴 <부산행>은 국내 좀비 소재 영화의 역사를 세웠습니다. 국내에서 뿐이 아니라 개봉 전에는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에서 찬사를 받았고, 지금은 미국과 프랑스로부터 리메이크 러브콜을 받고 있죠. 앞으로도 국내에서 외면받던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 계속되어 한국은 물론 세상을 놀라게 할 빅 킬러 콘텐츠가 탄생하길 기대해봅니다.

 

사진 출처

커버 사진, 사진 6. <부산행> 공식 홈페이지

사진 1. <화이트 좀비> 위키피디아

사진 2, 3, 7. 네이버 영화

사진 4. YES 24 <당신의 모든 순간> 책 소개 이미지

사진 5. “좀비런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