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수용자를 넘어 콘텐츠 재생산자로 거듭나는 팬덤

상상발전소/문화기술 2016. 2. 15. 10: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좋아하는 배우나 아이돌을 보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 '빠순이' 혹은 '빠돌이'라고 호칭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또는 게임에 심취한 사람들은 '오타쿠'라고 공공연하게 놀림당하는 경우도 있었죠.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순수한 열정으로 좋아하는 '팬심'은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는데요. 2015년 9월, 추석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가 좋은 반응을 얻어 정규편성에 성공한 MBC의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에는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이 총출동해서,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상당한 통찰력을 자랑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과거에는 주로 자신을 숨기던 '덕후'들이, 이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덕후' 출연자를 대하는 사회자와 패널, 판정단, 그리고 방송 후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다 보면, 사회적 분위기가 변했음을 느끼고는 합니다. 


이제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놀림의 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더 큰 결과를 끌어내는 원동력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죠. 단순한 수용자에서 벗어나서 색다른 콘텐츠를 제안하고, 또 이끌어가는 사람들. 팬심 충만한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를 함께 알아볼까요?


▲ 사진 1. MBC <능력자들>의 기획 의도 소개



오늘날, 팬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 중 가장 강력한 분야는 팬들이 직접 찍은 사진, 또는 영상을 뜻하는 '직찍·직캠'입니다. 촬영의 대상은 주로 아이돌그룹일 때가 많은데요.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지 않는 행사에서의 공연 영상, 또는 입·출국길 공항 사진이나 출·퇴근길 사진이 대다수를 이룹니다. 스케줄이 공지되면 카메라를 준비하고 가서 기다리다가, 멤버들이 지나가면 그 순간을 바로 포착하는 것이죠. 특히나 애정을 갖고 촬영한 사진이기에, 그리고 사진 하나하나 공들여 보정 작업을 진행하기에 이 사진들은 정말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데요. 


때로는, 같은 날 촬영된 가장 객관적인 사진, '기사 사진'과 나란히 비교되기도 할 정도랍니다. 이렇게 사진을 촬영하는 팬들은 대부분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그 홈페이지나 개인 SNS에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업로드하고는 하는데요. 이들을 '홈페이지 마스터', 줄여서 일명 '홈마'라고 지칭합니다. 멤버 전체를 비슷한 비중으로 촬영하는 공식 사진과는 다르게, 홈마들은 주로 한 멤버만 집중해서 촬영합니다. 덕분에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를 찍는 홈마,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구도나 색감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홈마를 선택해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받아볼 수 있죠. 또한, 이렇게 촬영된 고품질의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홍보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최근 들어 일부 홈마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직찍에 대한 열정이 앞선 나머지 비공식 스케줄을 알고 찾아오거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또한, 홈마의 직찍으로 구성된 포토북·캘린더 판매에 있어서도, 그 수익금이나 해당 연예인의 초상권에 대한 소속사의 권리 등의 문제가 조금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고요. 직찍만이 갖는 장점이 있는 데다가 현재 팬덤문화의 큰 부분으로 떠오른 만큼, 직찍에 대한 무조건적인 제재는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문제가 커질 경우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겠죠.


유튜브에서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찾아보다가, 날짜와 무대 뒤에 (멤버이름 ver.) 라고 표시되어 있는 영상을 보신 적 있나요? 이 영상은 주로 해당 멤버의 팬들이 촬영한 직캠 영상인데요. 대부분의 음악방송에서는 카메라가 해당 파트를 부르는 멤버, 또는 센터에 있는 멤버의 모습을 비추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가 방송에 나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팬들이 촬영하는 직캠 영상에서는 무대 전체를 비추기보다는, 무대 내내 특정 멤버만 비추는 영상이 대세인데요. 무대 내내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나 계속해서 볼 수 있고, 방송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안무나 표정까지 생생하게 알 수 있기에, 나날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직캠 덕분에 음악 차트 역주행을 기록한 EXID 역시, <위아래>를 부르는 하니 버전 직캠 영상이 큰 역할을 했죠. 


▲ 영상 1. Mnet 멀티캠이란?


이렇듯, 특정 멤버 버전 직캠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아예 방송국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가 탄생했는데요. 바로 엠넷 TV의 '멀티캠' 서비스입니다. 기존 음악 방송은 여러 개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리면서, 그 부분에 적합한 하나의 카메라만을 선택해서 방송에 내보냈는데요. 엠넷 TV의 멀티캠 서비스에서는, 시청자가 자신이 원하는 카메라 화면을 선택해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멤버를 볼지, 어떤 화면을 볼지, 방송사가 아니라 시청자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멀티캠 서비스는 팬들의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된 음악 방송에서도 직캠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ENG 카메라를 비롯한 전문 방송 장비로 직캠과 유사한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돌그룹 팬층을 위주로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 영상 2. Mnet이 제공하는 하니 직캠


직캠에 주목하는 것은 방송사뿐만이 아닙니다. 사적인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던 과거의 공연과는 달리, 현재는 팬들이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뮤직비디오나 특별 라이브클립 영상을 제작하는 사례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요. 가수 이승환 씨는 2015년 9월 19일에 진행했던 <빠데이-26년> 공연에서 '직캠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촬영한 5분 이내의 직캠 영상을 드림팩토리 이메일로 보내면, 드림팩토리 측에서 편집해서 추후 라이브 영상 클립으로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추후 공개된 영상을 통해서 팬들은, 자신이 현장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각도에서의 무대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보낸 영상이 어느 부분에 사용되었나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고요. 드림팩토리는 라이브 영상의 말미, 직캠을 보내준 팬들의 이름을 영화 크레딧처럼 표기하며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는데요. 팬과 뮤지션이 함께 만들어낸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 영상 3. 이승환 <슈퍼히어로> 라이브 영상.



클럽공연, 또는 록 페스티벌 라인업 공지를 볼 때마다 설레고 들뜨면서도 2% 정도는 아쉬운 기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모든 사람을 100% 만족하게 할 라인업은 없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내 취향이 조금 더 반영되었다면 하는 마음이 조금은 생기기 마련이죠. 이런 아쉬움이 모여서 탄생한 페스티벌이 있다는데요. 바로 "우리가 주최하는 락페, 우주락페"입니다. 인디음악 매니아들이 모인 'DC인사이드 인디밴드갤러리' 유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던 우주락페는 올해로 3회째를 맞이했다는데요. 그동안 우주락페는 팬들의 바람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서 장소 및 일정부터, 라인업에 들어갔으면 하는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투표를 진행했다고 해요. 


올해 역시 약 일주일간 라인업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요. 무려 4,300여 명이 투표에 참가했으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라인업 11팀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각 팀의 스케줄과 다른 제반 사항이 있기에 상위 10여 개 팀이 연달아 섭외된 것은 아니지만, 팬들이 자체적으로 공연 기획에 나섰다는 점, 그리고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공연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우주락페는 남다른 공연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사진 2. 2016 우주락페 라인업 투표 결과와 최종 라인업 포스터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보고 싶었던 영화가 어느새 스크린에서 내려와 버렸다고요?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내가 원하는 영화 상영 스케줄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CJ CGV가 제공하는 주문형극장 TOD 서비스를 이용하면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CGV 공식 홈페이지에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극장에서 상영 신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요가 보장되어야 하기에, 현재 TOD 서비스 방침에 따르면 200명 이상 '나도 볼래요'가 달성되면 영화 상영 확정이 확정된다는데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상영이 확정될 경우 신청자에게는 영화관람권을, 그리고 투표 참여 전원에게는 2,000원 할인 쿠폰을 증정하고 있습니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배우 이정현 씨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바로 TOD 서비스를 통해 영화 재상영이 확정된 바 있고요. 2월 초에는 영화 <벨벳골드마인>의 상영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또한, 상영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될 때까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같은 영화를 계속해서 매주 재신청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영화를 다운받아서 조그마한 노트북 화면으로 보는 것과 영화관에서 좋은 사운드와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느낌이 확 다르기 때문이겠죠? 사실, TOD 서비스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상영이 확정되는 영화 횟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 조금 아쉬운데요. TOD 서비스 자체를 CGV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 사진 3. CGV가 제공하는 주문형극장 TOD 서비스 이용 안내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요. 기존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팬들은 분명, 오늘날 콘텐츠산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직찍·직캠 문화, 또는 소비자가 결정할 수 있는 공연·영화 스케줄에 이르기까지, 열정을 가진 팬들이 없었다면 이런 문화는 결코 생겨나지 못했겠지요. 사생팬이나 팬덤 간 다툼 등 다소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꾸준히 자정 작용을 거치면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팬덤. 이들이 미래에 만들어낼 기상천외한 문화는 또 어떤 것일지, 그 미래가 기대됩니다.


ⓒ 사진 및 영상 출처

표지사진. MBC FM4U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홈페이지

사진 1. MBC <능력자들> 홈페이지

사진 2. Facebook <우주락페> 페이지

사진 3. CJ CGV 홈페이지

영상 1. YouTube Mnet K-POP 채널

영상 2. YouTube Mnet Official 채널

영상 3. 네이버 tvcast  드림팩토리 채널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