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오롯이 담는 그릇, 음반의 매력을 조명하다

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2016. 1. 25. 10: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쌍팔년도' 쌍문동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극 중 등장인물의 마음을 전달하는 장치로 '카세트테이프'가 여러 번 등장니다. 4회에서는 선우(고경표 분)가 자신의 독서실 서랍에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보며 누가 선물했을지 궁금해하고, 6회에서는 좋아하는 덕선(혜리 분)에게서 카세트 테이프를 선물 받은 택(박보검 분)이 워크맨을 들고 끙끙대면서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죠. 


영화 <건축학개론> 중 1994년의 서연(수지 분)은 호감 있는 승민(이제훈 분)에게 CD 플레이어에 연결된 이어폰 한쪽을 꽂아주고, 두 사람의 귀에는 김동률의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음악을 담은 매체는 시대별로 달라졌는데요. 턴테이블로 작동되던 LP의 시대에서 워크맨으로 들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의 시대로, 그다음에는 CD의 시대로 넘어갔죠. LP나 카세트테이프, CD는 매체의 특징이 조금씩 달랐을 뿐, 손으로 쥐어볼 수 있는 '음반'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현재 음악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디지털 음원'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다양한 시대상을 반영한 콘텐츠들과 복고 열풍에 힘입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음반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 사진 1. 영화 <건축학개론> 메인포스터.

포스터 오른쪽, 서연(수지 분)과 승민(이제훈 분)은 휴대용 CD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음악을 함께 듣고 있다.



여러 매력이 있겠지만, 음반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음반만의 소장가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디지털 파일로 보관되는 음원의 경우, 컴퓨터나 기기 사정으로 인해 유실되기 쉬운데요. 이에 비해 물리적 형태를 갖춘 음반은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한번 잊어버린 음원은 다시 생각해내기 쉽지 않지만, 책꽂이에 꽂혀있는 음반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눈에 띄면 곧바로 재생될 수 있겠죠. 


음반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음반으로 음악을 들어야 제대로 듣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음반의 재질이나 아트워크, 또는 트랙 순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뮤지션의 의도가 담겨 있기에, 음반으로 음악을 접할 경우에는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뜻인데요. 서양에서 건너온 록 음악에 동양적인 매력을 물씬 담아내는 밴드 아시안체어샷의 EP <탈>은 한지 재질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발매된 정규 1집의 앨범에서는 자개 공예와 한국 전통 화법을 접목한 표지를 선보였는데요. 아시안체어샷은 앨범 아트워크를 통해서 밴드가 추구하는 동양적인 매력, 그리고 한국색을 잘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 사진 2. 한지 재질로 만들어진 아시안체어샷 EP <탈>, 자개공예가 접목된 아트워크가 매력적인 정규앨범 <Horizon>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 그리고 트랙리스트는 뮤지션들이 음반을 제작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하죠. 윤하의 2집 정규앨범 <Someday>에 수록된 트랙 "Rain & The Bar"는 가사가 한 마디도 없는 30여 초의 짧은 곡입니다. 빗소리, 구두 소리, 그리고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 아련한 재즈 음악 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오는데요. 듣다 보면 비 오는 날, 윤하 씨가 재즈 바에 도착해서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는 장면이 자동으로 연상됩니다. 그리고 다음 트랙 "빗소리"는 윤하 씨가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곡처럼 여겨지죠. 


또한, 이 트랙은 앨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어주는 분기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앨범 발매 직후,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 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Rain & The Bar", 이 곡 덕분에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다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최대 스트리밍사이트 멜론을 기준으로 봤을 때, "Rain & The Bar"의 '좋아요' 수는다른 곡에 비해 조금 낮은 편인데요. 아마도 단일 음원으로서는 이 곡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여겨집니다. 앨범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색감, 그리고 이어지는 앞뒤 트랙을 발견할 때의 카타르시스. 음반을 구매한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상대적으로 대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디씬에서도 음반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음원 전송사용료 개선안"에 따르면, '한 곡을 스트리밍 할 때 권리자가 받는 사용료를 월정액 스트리밍 기준 3.6원에서 4.2원으로 인상한다'고 합니다. 개선안은 2016년 2월부터 적용될 예정인데요. 뮤지션들은 "사실상 음원으로 들어오는 돈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태도를 보일 만큼, 스트리밍 수익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그렇다면, 음반은 어떨까요? 인디 뮤지션 인메이 씨에 따르면, 대표적인 음반 판매처 핫트랙스에서 14,500원인 음반이 한 장 판매될 때마다, 권리자에게 들어오는 수익금은 8,000원이라고 하는데요. 이 중 레이블이 20%를 갖더라도, 음악가 본인은 나머지 80%에 해당하는 6,400원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한 트랙을 1,500번 이상 스트리밍 하더라도 음반 한 장에서 나오는 수익금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뮤지션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음반 구매, 끌리지 않으신가요? 



2016년 1월,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KT&G 상상마당 2층 갤러리는 약 50여 팀의 레이블, 또는 뮤지션들이 발매한 각종 CD와 MD, 그리고 특별히 제작된 카세트테이프들로 가득 찼습니다. "음반시장의 활성화, 그리고 대중에게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마켓형 전시, 레이블마켓"이 열렸기 때문이죠. 매년 기획되는 상상마당 레이블마켓에서는 수많은 샘플 CD, 그리고 여러 대의 CD 플레이어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관심이 있는 음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후 구매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로 9회를 맞이한 상상마당 레이블마켓은 CD뿐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에도 주목했는데요. 음악 관계자들이 "2015년 나와 함께한 음악"으로 추천했던 6팀의 음악은, 비주얼 작가들의 아트워크와 만나며 독특한 매력을 지닌 카세 테이프로 재탄생했습니다. 한 팀당 90개씩 제작되었던 한정판 카세트테이프는, 판매가 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매진되었을 정도로 높은 호응을 받았다고 해요. 9회 레이블마켓을 기념해서 제작된 핀버튼 역시 카세트테이프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레이블마켓을 방문한 후,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종이를 작성해서 SNS에 업로드하면 핀버튼을 증정받을 수 있습니다. 뮤지션과 레이블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 레이블마켓의 주체가 되어 자신만의 감성을 나누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기획된 이벤트라고 하네요.


▲ 사진 3. <레이블마켓>에 진열된 CD.

판매용 CD와 별도로 샘플용 CD가 비치되어, 전시장 내에 있는 CD 플레이어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 사진 4. 한정판 테이프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는 관객 모습


소규모 공연 역시 레이블마켓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마침, 제가 레이블마켓을 방문했던 이 날은 권나무 씨의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권나무 씨의 호소력 짙으면서도 편안한 목소리, 이성혁 씨가 연주하는 맑은 음색의 기타소리, 그리고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강희원 씨의 비올라 선율이 합을 이루며 상상마당 갤러리를 가득 채웠는데요. 공연이 진행되는 시간 내내 관객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을 정도로, 몰입감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예정되었던 시간을 훌쩍 넘긴 50여 분간의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줄을 서서 공연을 마친 권나무 씨의 싸인을 받기도 하고, 갤러리에 마련되어 있던 CD와 테이프를 청음 하면서 레이블마켓을 자유롭게 만끽했는데요. 레이블마켓이 진행되는 동안 소규모 공연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공연 날짜에 맞춰서 레이블마켓을 방문하면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사진 5. 레이블마켓을 가득 채운 권나무 씨의 공연 현장


▲ 사진 6. <레이블마켓>에서 열릴 예정인 소규모 공연 일정표


'음원 시대'에도 여전히 음반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시대상을 담은 콘텐츠와 복고 열풍에 힘입어 LP와 카세트테이프를 제작하는 뮤지션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요. 소비자와 권리자 모두에게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하는 음반의 매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고, 여러 모델의 CD 플레이어를 생산하는 기업이 다시 나타날 수 있겠죠? 수년 간 불황이라는 말을 듣는 음반 산업이 그렇게, 다시 기지개를 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사진 출처

사진 1. 네이버영화

사진 6. KT&G 상상마당 홈페이지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