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노래하는 음유시인, 트루베르(Trouvere)를 아시나요?

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2016. 1. 8. 10: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시를 노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정제된 단어들로 이루어진 시는 그 자체로 운율을 가지는 하나의 노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이 시에 정말 곡이 덧입혀져, 하나의 선율로 부를 수 있는 진짜 노래가 된다면 어떨까요? 인디 그룹 '트루베르(Trouvere)'는 시를 가사로 하여 곡을 쓰는 음악인들입니다. 그들이 어떤 시를 어떻게 노래하고 있는지 들어보도록 할까요?



'트루베르(Trouvere)'는 프랑스어로 음유시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만든 윤석정 시인이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요. 2007년 결성된 트루베르의 현재 멤버는 윤석정 시인, 리더이자 래퍼인 PTycal, 보컬 나디아, 프로듀서 DJ tama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싱어송라이터 서지석 등 역시 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파주 북소리 축제를 비롯한 여러 축제 등에 참여해 거리공연을 하기도 하고, ‘시를 읽는 밤’이라는 주제의 공연, 캠프·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의 파티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기도 합니다.


사진 1 트루베르 멤버 나디아, DJ Tama, PTycal


신동엽의 ‘산에 언덕에’에 곡을 붙인 <산에 언덕에>, 김소연의 ‘너를 이루는 말들’에 곡을 붙인 <너를 이루는 말들>…. 트루베르의 노래는 모두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때 원칙이 있다면, 시의 모든 구절을 절대 변형하지 않는다고 해요. 가령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의 경우도 '힌 (흰)'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는데요.


하지만 시를 그대로 노래로 만드는 데에는 정말 큰 제약이 하나 있습니다. 시는 그 자체로 운율을 가지되 모든 행의 글자 수가 똑같이 떨어지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요. 한 소절 당 글자 수에 제약이 있기 마련인 노래가 어떻게 시의 모든 구절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 트루베르는 그 답으로 ‘랩’을 선택했습니다. 내재된 리듬은 있되 글자 수에 큰 제한이 없는 '랩'은 그들의 원칙을 보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이용악의 <오랑캐꽃> 등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시부터, 안현미의 <어항골목> 등 비교적 젊은 작가의 시까지 모두 아우르는 트루베르의 음악. 그중에서 세 곡을 소개해드리고자 하는데요. 음악도 듣고, 시도 감상하면서 감수성에 불을 지펴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 <비 오는 밤> : 시 홍사용, 노래 트루베르


동영상 1 트루베르 <비 오는 밤>(시 홍사용)


한숨에 무너진 / 설움의 집으로 / 혼자 우는 어두운 밤 / 또다시 왔구나 // 잠 속에 어린 꿈 / 눈물에 젖는데 / 님 없는 집 혼자 나를 / 찾는 이 누구냐 // 귀여운 음성은 / 님이라 했더니 / 애처로운 그림자는 / 헛꿈이로구나 // 이 몸은 쓸쓸한 / 맘 아픈 거리로 / 애끓이는 그림자를 / 따라나가 볼까 // 누-진 내 가슴 / 흐너진 내 설움 / 궂은비 슬피우니 / 또 어이 하려나


임 대신 비만 오는 밤, 자신의 연인을 홀로 기다리고 그리는 이의 마음을 담은 <비 오는 밤>. 쓸쓸한 가사가 애절한 곡조에 얹혀서 전해집니다.

 

· <봉도> : 시 윤석정, 노래 트루베르


동영상 2 트루베르 <봉도>(시 윤석정)


나는 나를 떠도는 섬 / 시가 된 나는 떠돌이 섬 / 시의 행간에 숨어 있는 섬 / 순간과 순간 사이를 항해하는 섬 / 시작과 끝이 한 몸인 섬 / 나는 나를, 기억을 잃어버린 섬 / 입속에 나를 감추고 나를 노래하는 섬 // 나는 나를 떠도는 섬 / 시가 된 나는 떠돌이 섬 / 내가 있거나 내가 없는 섬 / 죽음이 언어를 낳는 섬 / 혹은 언어가 죽음을 낳는 섬 / 나는 시가 된 섬 / 나는 떠도는 영혼의 섬 / 태어난 적이 없는 언어를 찾아 떠도는 섬


시가 되어 어딘가를 끝없이 항해하는 떠돌이 섬. ‘섬’으로 끝나는 모든 행이 모여 섬의 테두리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이런 시(詩)> : 시 박목월, 노래 트루베르



동영상 3 트루베르 <이런 시>(시 박목월)


슬며시 다가와서 / 나의 어깨를 툭치며 / 아는 체 하는 / 그런 詩, // 대수롭지 않게 / 스쳐가는 듯한 말씨로써 / 가슴을 쩡 울리게 하는 / 그런 詩, // 읽고 나면 / 아, 그런가부다 하고 / 지내쳤다가 / 어느 순간에 / 번개처럼 / 번쩍 떠오르는 / 그런 詩, // 투박하고 / 어수룩하고 / 은근하면서 / 슬기로운 / 그런 詩 / 슬며시 / 하늘 한자락이 / 바다에 적셔지 듯한, 푸나무와 / 푸나무 사이의 / 싱그러운 / 그것 같은 / 그런 詩, //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 문득 쳐다보는, / 갈라진 구름 틈서리로 / 밤하늘의 / 눈동자 같은 / 그런 詩.


자신에게 다가왔으면 하는 ‘시(詩)’에 대한 묘사가 맑은 느낌으로 전해집니다. 시의 분위기에 맞춰, 노래도 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인데요.



원래 시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시조를 비롯한 옛 시가는 모두 노래로 불리던 작품이었고, 모든 노래의 가사도 어떤 의미로는 시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오면서 문학과 음악 사이에는 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문학은 점점 어려워지고, 음악은 더욱 대중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렇게 대중음악이 늘어나고, 음악은 누구나 가볍게 누릴 수 있는 장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는 누구나 읽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존재가 되었죠. 교양의 상징으로 자리한 만큼, 시는 무겁게 읽혔습니다.


이런 시기인 만큼 문학과 음악의 만남은 의미가 있습니다. 교양의 상징으로, 우리에게서 멀어진 문학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향유할 때의 또 다른 즐거움이 부여되면서, 문학은 단순한 교양이 아닌 즐길 거리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됩니다. 그렇게 시와 사람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게 되죠.


사진 2 월간 트루베르 1주년 공개방송 ‘그리고 그리운 시인들’의 트루베르


트루베르의 시작도 ‘시는 늘 엄숙하고 무겁게 접해야 할까’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파티처럼 통통 튀는 분위기, 가벼운 분위기의 문학 모임도 많이 생겼지만, 아직 시를 읽는 상황을 떠올리자면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낭송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트루베르와 그들의 음악의 등장은 시를 즐기는 방식 자체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때로는 애절한, 때로는 밝은 선율 위에서 시구는 더욱 큰 생명력을 얻어 움직이게 됩니다.


시의 감성과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다는 밴드 트루베르(Trouvere). 애정을 푹 담아 음악을 하고, 문학을 하는 그들의 열정이, 그들의 음악과 공연에 담겨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낯설지만 무엇보다 따뜻하고 깊은 가사를 가진 그들의 음악! 그럼 즐길 준비가 되셨나요?


ⓒ 사진 및 동영상 출처

표지, 사진 1 트루베르 공식 네이버 블로그 ‘트루베르’

동영상 1 유튜브 채널 'PTycal Ko'

동영상 2 유튜브 채널 ‘nadia0107'

동영상 3 유튜브 채널 ‘트루베르 truovere'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