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 <사도>가 개봉을 했습니다. <사도>는 <왕의 남자>, <황산벌> 등을 제작한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과 함께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등 연기력 탄탄한 ‘믿고 보는’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영화의 주인공인 사도세자는 지금까지 많은 콘텐츠에서 그려진 바 있는 단골 인물입니다.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세자’라는 타이틀은 수많은 재해석을 부르며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쓰이고 있죠. 그러나 수없이 보여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사도’의 이야기를 궁금해 합니다. 과연 그가 가진 이야기의 매력은 무엇일지, 그리고 콘텐츠들에서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왔는지를 살펴볼까요?



영조 38년(1762), 세자를 폐하고 뒤주에 가두라는 명이 내려집니다. 이것은 아들 사도세자에게 아버지인 영조가 직접 내린 명이었습니다. 사도세자는 8일 간 뒤주에 갇혀 있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라는 평을 받는 사건입니다.


▲ 사진 1. 영화 <사도> 스틸컷


그러나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가 처음부터 어긋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조 11년(1735), 영조가 42세에 낳은 늦둥이 아들로, 영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영조는 왕자가 태어난 이듬해,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는데요. 이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빠른 세자 책봉입니다. 그리고 세자는 그런 영조의 기대에 부응하듯, 3살 때부터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하는 등 어릴 때부터 총명함을 뽐냅니다.


그러나 세자가 자라기 시작하고, 그의 활동적, 진취적 성향과 무인적, 예술가적 기질은 점차 영조와 마찰을 빚게 됩니다. 영조는 그러한 아들의 기질을 누르고 경계하길 바랐지만 그것은 잘 되지 않았고, 점차 갈등은 시작됩니다.


왕으로써 완벽과 탕평을 추구하며 조선의 부흥을 이끌었던 왕 영조. 그 이면에는 천민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들로서의 정통성 논란과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에 대한 열등감과 불안이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뿐인 아들 세자에게 더욱 기대했을 것이고, 아들이 더욱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을 테죠. 그러나 세자는 무예,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점차 학문을 멀리하게 되었고, 그의 정치에 대한 생각들은 영조의 것과 조금씩 어긋나게 됩니다. 영조는 그런 그를 다그치기만 하게 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세자는 그러한 마찰 속에서 아버지를 꺼리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 사진 2. 영화 <사도> 스틸컷


영조 25년(1749), 세자는 15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하게 되는데요. 이는 영조가 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을 더욱 키우고 말았고, 이는 양위 파동과 함께 터져버리고 맙니다. 그 전부터 몇 차례 양위를 선언한 바 있던 영조는 대리청정이 시작된 이후에도 몇 차례 양위하겠노라 이야기하며 갖가지 이유로 세자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세자는 두려움에 떨며 석고대죄를 해야만 했죠. 이러한 반복 속에서 세자는 광기어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를 두려워해 불안에 떠는 증세를 보이거나, 유희를 즐기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뒤틀려만 갔고, 그 와중에 영조의 눈에는 세자의 아들인 세손(훗날 정조)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정치싸움과 영조와 세자와의 뒤틀린 관계 속에서, 영조 38년(1762), 아버지는 아들을 ‘뒤주에 가두라는’ 명을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임오화변’입니다. 이후 아들이 죽은 후에야 영조는 위호를 복귀시키고 ‘사도(思悼)’, ‘생각하며 슬퍼한다’라는 시호를 내리게 되죠. (훗날 사도세자는 정조에 의해 ‘장헌세자(莊獻世子)’로 개칭, 고종 때 장조(莊祖)로 추존됩니다.)


과연 임오화변의 정확한 원인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노론이 지배적인 당시 사회에서 소론을 옹호했던 세자가 당쟁에 희생된 것이라는 의견과, 엄격한 영조와 미쳐버린 사도세자 사이에서 벌어진 삐걱임이었다는 의견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어떤 이유였든, 뒤주 속에 8일이나 가둬두고 죽게 한 다소 끔찍한 죽음의 방식은 많은 이에게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합니다. 사도세자에게 영조는 어떤 아버지였을지,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어떤 아들이었을지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수많은 콘텐츠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주목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 그림 1. 콘텐츠 속 사도세자에 대한 두 가지 해석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콘텐츠 속 사도세자의 성격도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그가 주로 아버지를 두려워하다 미쳐버린, 유약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반면, 최근에는 대부분의 작품이 그를 당쟁에 희생된 개혁가로 그리고 있죠.


1988년 방영한 <조선왕조 500년>시리즈의 제 9편인 <한중록>에서 최수종이 연기한 사도세자는 유약한 인물입니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한중록>의 기록에 충실한 해석을 보였고, 세자는 엄격한 아버지의 밑에서 미쳐버리고 말죠. <하늘아 하늘아>(1988), <대왕의 길>(1998) 속 사도세자 역시 그러한 광기 어린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영원한 제국>에서 사도세자를 노론의 모함으로 희생된 인물로 그린 이후, 사도세자는 ‘당쟁에 희생된 개혁가’의 모습으로 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드라마 <이산>, 영화 <역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는 이러한 사도세자의 모습에 상상력을 더욱 가미해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탈출했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사도세자는 북벌을 꿈꾸지만, 결국 노론에 의해 암살되고 말죠.


▲ 사진 3. 드라마 <비밀의 문>의 사도세자 이선


<비밀의 문>은 개혁가로서의 사도세자를 더욱 자세히 그려냅니다. 세자 이선은 ‘의궤살인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대한 큰 뜻을 품게 되는 인물입니다. 강한 왕권을 강조하는 아버지 영조와 달리 여항의 백성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진취적 생각을 품게 되죠. 그는 그 과정에서 노론, 그리고 아버지인 영조와 대립합니다. 여기서 그는 미치광이가 아닌,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다가 끝내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들을 살리기 위해 뒤주에 스스로 들어가게 되지요.


콘텐츠 속 사도세자에 대한 해석은 이처럼 극명하게 변화했는데요. 이러한 시각의 변화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합리한 일들이 판을 치는 현대사회, 대중은 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주 속에서 죽어간 사도세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죠. 이러한 사도세자의 모습이 역사 왜곡이라 주장하는 의견도 많지만, 대중이 원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그저 유약한 광인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개혁가인 것입니다.


영화 <사도>에서는 이러한 사도세자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일 수 없었던 ‘왕’ 앞에서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로서의 그에 대해 좀 더 인간적으로 깊숙이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예고편에서 공개된 배우 유아인의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혼신의 연기는 사도세자의 가슴 속 깊이 억눌린 울분을 가감 없이 표출할 듯합니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역사 속 인물들. 한 쪽에 치우쳐서가 아닌, 입체적 인물로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눈에 비치는 ‘사도세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 사진 출처

표지 사진. 쇼박스 공식 페이스북

사진 1, 2. 영화 <사도> 공식 홈페이지

그림 1. 직접 제작

사진 3. SBS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