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 부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만화축제가 펼쳐집니다. 바로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부천국제만화축제인데요, 올해로 18회를 맞는 부천국제만화축제는 매년 알찬 콘텐츠를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흔히 만화를 '재미있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화 또한 글, 그림처럼 표현 방식의 일부이며, 재미뿐만이 아닌, 시대를 고발하는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이번 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선 만화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콘텐츠가 아님을 보여주는 전시가 많았습니다. 그중 다소 무겁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들에 대한 전시가 있었습니다. 바로, 기획전 '만화의 울림, 전쟁과 가족'입니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만화의 울림, 전쟁과 가족이라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2015년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인 '광복 70주년'을 맞아 '잊혀지는 것들', 하지만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들'에 주목했습니다. 식민 통치의 아픔, 남북 간의 한국 전쟁,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으나 그 이면의 '산업화', '도시화'의 그늘.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고통받는 전쟁의 피해자들과 경제 성장 뒤에 존재하는 그늘인 소시민들의 아픔을 다루었는데요,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시대별로 나누어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영상 1 이여원 '나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해결되지 않은 사회배상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나비'는 흑백과 빨간색의 선명한 색채 대비로 간결하며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왜 그곳에 있는지를 설명하며 애니메이션은 시작하며, 아직까지 사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나비'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비단 사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려 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어느새 시야에서 보이지 않아 잊혀 가고 있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우리 또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영상 2 김준기 '소녀 이야기'


'목숨만 부지하자. 목숨만 살면 내 몸을 뺏아가도 내 마음만은 안 뺏아간다'

생전 정서운 할머니가 인터뷰 때 하신 말씀입니다. 김준기 감독의 '소녀이야기'는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했으며, 생전 인터뷰 육성을 담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은 故 정서운 할머니의 인터뷰 육성과 함께 진행됩니다. 일본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공장에서 2~3년만 일하면 된다는 거짓말에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녀이야기'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보듬고자 제작된 애니메이션입니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긴 하지만, 교과서에서, 혹은 뉴스로 접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직접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故 정서운 할머니의 음성과 할머니가 겪었던 참상을 고발하는 영상은 의식하고 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위안부 문제를, 우리의 마음에 박히게 합니다.



 사진 3. 오! 한강


한국전쟁부터 80년대 민주화 운동까지 냉전 시대 사상의 갈등, 그리고 현실과 신념 사이에서의 고뇌가 이강토, 이석주 부자의 삶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화가 이강토는 북한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지만, 무자비한 살상이 이루어지는 전쟁, 좌우 이념 대립에 회의감을 느끼고 전향합니다. 그 후 이강토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죽산 조봉암을 지지하지만,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 셋째도 평화라며 평화통일론을 지지하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조봉암은 간첩 혐의로 몰려 사형당하고, 이강토는 그에 대한 극사실주의 작품을 그려 현실을 비판합니다. 또 다른 아버지처럼 따르던 조봉암을 잃은 이강토의 절절한 심정이 전시되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작품에 나온 '조봉암'은 실제 존재했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오! 한강은 이렇게 실재 인물인 조봉암을 등장시켜 가상의 픽션이지만 실재감을 높였습니다. 덧붙여 이강토의 아들 석주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시대에 조봉암의 이름이 잊혀가는 장면을 넣어, 분단 이후로 이데올로기 냉전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작품으로 보여주며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민족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진 4. 인천 상륙 작전

 

최근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은 2015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흥남철수 직후의 1951년 1월까지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 및 한국전쟁을 어린 철구의 가족을 중심으로 상세히 그려낸 만화입니다. 작품은 험난한 시대에서 살아남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일반 소시민들, 그리고 좌우 이념 대립에 희생당한 한 가정의 비극을 그렸습니다. 주인공 철구의 아버지는 한강대교 폭파사건으로 두 다리와 팔을 잃고 얼굴 반쪽이 불탄 불구자가 되어 인민군의 선전도구가 되어 돌아다니다 종전 직후에는 빨갱이의 활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수난을 당합니다. 철구의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죽임을 당하고 전쟁고아가 된 철구는 미군에 의해 입양을 가게 됩니다. 인천상륙작전은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덤덤하게 한국전쟁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함과 동시에, 전쟁에 관련 없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냈습니다. 



 사진 5. 태일이


최호철의 '태일이'는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게 했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생애, 그리고 1960년대 당시의 노동환경을 그린 만화입니다.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태일이 십 대 소녀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 저임금 무휴 근무, 비좁은 작업실 등 열악한 근로환경의 부당성을 자각하고 노동운동을 하게 되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풀어냈습니다. 『전태일 평전(1983)』과 전태일의 수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1988)』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으며,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고달픈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사진 6. 지 편한 세상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지역재개발로 고통받는 철거민들의 모습을 그립 만화로, 김홍모, 김성희, 김수박,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 작가가 일산 덕이동, 부천 중3동, 성남 단대동, 서울 상도4동 등 실제 철거 지역에서 취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중 유승하 작가의 '지 편한 세상'은 용산구 신계동을 배경으로, 단란하게 살아가던 가족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뉴타운 건설로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의 이름은 '편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집을 강제 철거로 잃은 주인공인 정아의 가족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지 편한 세상'이죠. 정아의 가족이 철거민의 생존권을 주장하며 외로이 투쟁하는 모습과 고층 아파트가 대비를 이루는 장면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만화를 재미있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전시가 불편할 것입니다. 마냥 재밌고 밝은 것만 만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분명한 캐릭터성, 그리고 보기 쉬운 그림은 만화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합니다. 이러한 힘을 가진 만화는 어떠한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서 굉장히 효과적이죠. 제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의 기획전시 '만화의 울림, 전쟁과 가족'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광복 70년 동안에는 빛도 있었지만, 그것에 가려진 그늘과 상처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죠. 

 

사진, 영상 출처

영상 1. 이여원 작가

https://www.youtube.com/watch?v=wGsJKy8mikU

영상 2. 김준기 감독, 콘텐츠스쿨재학생

[출처] 부천국제만화축제 - 우리나라의 70년을 다 (비공 카페)

 https://www.youtube.com/watch?v=WnLqKSOOVYw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