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천지에 진동합니다. 구역질이 올라오지만 살기위해 참아야 합니다. 인공적인 소리가 사라진 거리는 온통 신음소리입니다. 보기 흉하게 훼손되고 부패한 시체들이 걸어 다니며 내는 소리죠. 그들에게 인간성이라곤 없습니다. 따라서 당신을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저 신선한 먹잇감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당신은 생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달립니다. 하지만 발에 채인 깡통의 저렴한 소리 때문에 살아있는 시체들에게 발각됩니다. 군침을 흘리며 당신을 향해 내달리는 죽은 자들. 목숨을 담보로 한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괴물 같은 이들까지 오직 당신의 살을 맛보기 위해 한 마음으로 뛰쳐나옵니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당신은 점점 숨이 가빠옵니다. 하지만 이들은 숨차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점점 느려지는 당신과 사냥 성공을 눈앞에 둔 걸어 다니는 시체들. 살아남은 자들은 저주와도 같은 현실에 하늘을 원망할 뿐입니다.


좀비 아포칼립스(Apocalypse, 종말)는 많은 이들이 공포를 느끼는 장르 중 하나입니다. 보통 B급문화로 분류하지만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이 관련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면서 점점 인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간혹 과학적 이유를 근거로 좀비 아포칼립스가 불가능하다며 좀비물이 비과학적임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이지 못하더라도 죽은 자가 되살아나 산 자의 살을 먹는 것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좀비물의 불모지와도 같던 국내에도 최근 좀비 콘텐츠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드라마,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좀비물을 만들고 있지만 역시 만화/웹툰 분야만큼 활발하게 제작하는 형편은 아닙니다. 예년보다 덥다고 하는 올 여름, 여러분의 더위를 식혀줄 좀비 웹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John Murphy - 'In the house - In a heartbeat'(영화 ‘28일 후’, ‘28주 후’ 삽입곡)

John Murphy 웹사이트 - (http://johnmurphyofficial.com/)

John Murphy의 앨범 구입 - (http://www.johnmurphyofficial.com/store/)

* 음악과 함께 기사를 읽어주세요~



▲사진 1. 웹툰 <데들리 키스> 

출중한 외모는 모두가 선망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뻐지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고 식스팩을 만들고자 피트니스센터 문을 두드립니다. 많은 시간과 자본, 고통이 따르는 걸 보면 멋진 외모를 갖는 것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잘생겨질 수 있고 예뻐질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눈앞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키스한 사람의 얼굴도 선남선녀로 바뀐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기꺼이 키스를 받으시겠습니까?

▲사진 2. 웹툰 <데들리 키스> 중 일부. 왼쪽부터 주인공 강한나, 주은빈


레진코믹스에서 연재중인 웹툰 <데들리키스>는 좀비물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합니다. 일반적으로 좀비하면 떠오르는 것이 ‘썩어가는 육체’와 ‘타인의 살을 탐하려는 욕망’입니다. 하지만 <데들리키스> 속 좀비들은 부패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습니다. 후광이 비칠 정도로 아름다워서 이름도 ‘후광인’이라 할 정도이니 기존의 좀비처럼 인상이 찌푸려지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이들의 유일한 욕구는 살아있는 사람과 키스 하는 것입니다. 이들과 키스한 사람은 얼굴이 연예인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첫 문단의 키스할 수 있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뇌를 잃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으리라 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은 자의식 없는 좀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아름다움이 독이 되는 사회를 그립니다. 작중 인물들이 다들 아름답다고 하는 ‘후광인’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사는 우리의 눈에는 과도한 성형수술을 한 사람처럼 부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아름답지만 뇌가 없는 후광인들, 남들처럼 아름다워지기 위해 무조건 자신의 외모를 남들과 똑같이 만들려 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봤을 때 다른 점이 있을까요?


<데들리 키스> http://www.lezhin.com/comic/deadly_kiss



서울 사람들에게 지하철은 발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굳이 어느 발을 내뻗고 어느 발을 빼야할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듯 서울 사람들은 지하철을 자기 몸처럼 이용합니다. 그만큼 서울시민에게 지하철은 없는 것이 이상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길거리가 온통 아비규환입니다. 죽은 자는 산 자를 먹기 위해, 산 사람은 계속 살아남기 위해 살아 숨 쉬는 사람을 공격하고 물건과 목숨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했던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1호선 끝자락까지 가야합니다. 당신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요? 웹툰 <1호선>은 이 같은 상황을 가정해 이야기를 이끕니다.

▲사진3. 웹툰 <1호선> 중 일부. 주인공이 여자친구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을 거의 매회 1호선 지도에 표시한다.


작품 속 한반도는 부산에서 시작한 괴질로 초토화 되었습니다. 고작 이틀 만에 서울에 상륙한 괴질은 처음에는 감기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다 이내 사람을 좀비로 만들거나 두 눈이 파랗게 변하는 면역자로 만듭니다. 여자친구와 만나자는 약속을 한 후 일주일을 앓아누운 주인공, 일어났을 때 그의 오른쪽 눈은 파랗게 변했습니다. 그가 내딛은 새로운 세상은 온통 부서지고 망가진 적막입니다.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집이 있는 곳까지 가기위해 무작정 1호선을 따라 나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삶의 방향이나 인간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바이러스의 비밀과 한 쪽만 파란 자신의 눈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사진4. 웹툰 <1호선>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광화문 집회를 하는 장면 중 일부.


<1호선>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주최한 만화공모전 대상작입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세필로 그리는 것처럼 섬세하게 등장인물들의 심리변화를 묘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주인공이 그중 가장 극적인데, 초반의 주인공은 우유부단하여 도와준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하며 독자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세상풍파 다 겪은 주인공은 변한 세상에서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입니다. 묵시록적 세계에서 도덕성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도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도 주인공은 도덕적인 선택을 합니다. 항상 그의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의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멍청하다 비난하지만 결국 위기에서 주인공을 건지는 것은 그의 도덕성이었습니다. <1호선>은 윤리의 힘을 말합니다. 인간성 없는 인간이 좀비와 다를 게 있을까요? 그래서 <1호선>은 대상작다운 휴머니즘 웹툰입니다.


<1호선>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subwayline1



좀비와 산 사람 간의 차이점을 말해봅시다. 혹자는 영혼을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성과 감성의 유무를 논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차이점이 있고, 그 기준으로 우리들은 좀비와 산 사람을 나눕니다. 하지만 영혼, 이성, 감성 등은 인간과 좀비의 근원적인 차이가 될 수 없습니다. 작품에 따라서 애매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28일 후> 속 좀비들은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살아있는 사람’이므로 영혼이 있으며, <웜 바디스>의 좀비는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좀비는 결국 같은 존재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인간과 좀비를 가르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판 능력’입니다.

  

일반적인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정보를 얻을 때 이 정보가 옳은지, 자신에게 유익한지 판단합니다. 이렇게 인간이라면 스스로 자신이 얻은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좀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변 환경의 변화에만 반응하여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지도 판단하지 못한 채 움직이고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웹툰 <데드데이즈>는 이 점을 조명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다루는 대상이 독특합니다. 생각 없이 움직이는 존재가 좀비가 아닌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진5. 웹툰 <데드데이즈> 중 일부. 이미지 속 인물은 주인공 여진국.


작품 속에서 사람들은 좀비가 출현하자 물리면 감염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물린 자는 두려움에 떨고, 물리지 않은 자는 물린 자를 처형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감염 경로는 물리는 것이 아니었고, 더 큰 음모를 가진 다른 경로라는 사실을 주인공 일행은 알아챕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다들 그들의 의견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기존 좀비 콘텐츠와 대중매체가 선입견을 만들어 우리의 비판적인 사고를 막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기회를 차단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대중매체에 의해 획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좀비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을까요? ‘자기의견’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사진6. 웹툰 <데드데이즈> 중 좀비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대한민국의 모습. 뉴스에서는 관련 사건을 보도한다.


더 무서운 점은 대중매체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우리 현실에도 고스란히 전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에 달린 댓글을 보면 독자들도 좀비의 등장에 당연히 ‘물려야’ 감염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조금씩 의구심을 가지며, 말미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작가의 의도대로 끌려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작가 한 사람의 의도에도 좌지우지 되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다 시즌2 격으로 연재 중인 <데드데이즈 제로>에서 드러나는 거대 기득권 집단의 음모를 알아채면, 기존 좀비물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고차원의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데드데이즈>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28998&weekday=sun



좀비 콘텐츠는 생명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복합적으로 섞인 결과물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삶을 박탈당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 정상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비는 차갑고, 탐욕적이며, 인간의 살을 갈구하는 동물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우리는 그런 좀비의 모습을 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이질감이 먼저 들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동질감 입니다. 좀비는 인간의 부정적인 특징을 극대화한 대상입니다. 폭력적이고, 본능에만 충실하며,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한 존중감이 없습니다. 우리는 괴물이 된 인간에게 부정적인 동질감을 느끼며,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 걱정되어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등장인물이 좀비들의 먹잇감이 될 바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국내 좀비 영상콘텐츠 시장은 아직 서구권에 비해 협소합니다. 서구권에서 영화 <새벽의 저주>와 <28일 후> <28주 후>시리즈, 드라마 <워킹데드> 등을 제작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이 없습니다. 좀비 웹툰은 이런 현실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워킹데드>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잘 만든 웹툰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1호선>은 북미 웹툰 업체 ‘타파스틱(tapastic)’에서, <데드데이즈>는 네이버 웹툰의 해외 서비스인 ‘라인 웹툰’에서 영어로 연재 중입니다. 세계인이 함께 즐기기 시작한 우리의 좀비 웹툰, 여러분도 무더운 여름을 잊기 위해 함께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영상출처

-영상 John Murphy's Official Youtube Channel


ⓒ사진출처

-표지 네이버 웹툰 <데드데이즈>(일 연재, 글/그림: DEY)

-사진1~2 레진코믹스 <데들리 키스>(금 연재, 글/그림: team 박만두)

-사진3~4 다음 웹툰 <1호선>(완결, 글/그림: 이은재)

-사진5~6 네이버 웹툰 <데드데이즈>(일 연재, 글/그림: DEY)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