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창작이 선사하는 통쾌함 - B급 영화의 매력

상상발전소/방송 영화 2015. 6. 15. 10: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 이어 <스파이>가 호평을 받으며 흥행 중입니다. 혹시 이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스파이 영화라는 점, 그리고 ‘B급 영화’라는 점입니다. 수많은 메이저 영화 틈에서 앞으로 훅훅 달려나가고 있는 B급 영화들. 소위 ‘병맛’(‘맥락이 없고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관객은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마는데요. 청소년 관람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킹스맨>은 610만명이 넘는 누적관객수를 기록했고, 스파이는 개봉 10일 만에 누적관객 1,557,491명을 기록하기도 했죠. (2015.5.31 기준) 과연 관객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B급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 사진 1.영화 <짝패>


매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과연 ‘B급 영화’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질이 낮다, 저예산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유치하다, 난잡하고 허술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특징이 존재합니다. 


처음 B급 영화가 등장한 건 1940년대 초 미국 영화계에서였습니다. 헐리우드 제작 시스템 하에서, 유명 배우, 감독이 참여한 높은 예산의 영화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예산으로 제작된,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를 ‘끼워 팔기’식으로 동시 상영했는데요. 전자를 A movie, 후자를 B movie라 불렀고, 이것이 ‘B급 영화’의 시작이었습니다. B급 영화의 경우 저예산으로 관객을 사로잡아야 했기에 공포, 범죄스릴러, SF 등의 장르가 주를 이뤘고, 자극적이거나 흥미, 오락성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비롯한 B급 영화는 점차 독자적인 특징들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은 저예산 영화, 독립 영화를 뜻하기도 하고, ‘B급 정서와 감수성’을 지닌 영화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B급 영화를 향한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싸구려영화’가 아닌, 독자적 특징을 가진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이죠.


내용이 탄탄하거나 화려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만의 정서와 재치를 가지고 있는 B급 영화. 최근에는 유명한 감독, 배우가 자진해서 B급 영화를 연출, 출연하기도 한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격자>의 경우 촌스러움과 과장 등 B급 영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85회 아카데미 상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정말 대놓고 B급이라 소리치는 듯한 영화 <다찌마와 리>와 <짝패>는 류승완 감독에게 ‘한국의 액션키드’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죠.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쿠엔틴 타린티노의 <킬빌> 등의 경우 이후 영화 및 대중매체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답니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 외에, B급 영화는 제작자의 부족한 역량으로 인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진 영화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 사진 2. 영화 <킹스맨> 스틸컷


매튜 본 감독의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높은 아이큐와 뛰어난 운동실력을 가졌지만 사회에선 루저로 낙인 찍힌 주인공 에그시가 해리에 의해 젠틀맨 스파이, 즉 ‘킹스맨’ 후보로 스카우트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립니다.


영화 속 매너와 젠틀함을 고수하면서 보여주는 과장된 액션신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게 뭐야? 하고 실소를 터뜨리게 하고, ‘약 빨고 만들었다’는 평가를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관객은 그 ‘매너 있게 약 빤’ 영화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고 맙니다. 악당 또한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릅니다. 악당 발렌타인은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한 악당이 아닙니다. 독특한 말투로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이야기하며, 피를 보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죠. 그 뿐 아니라 영화에서는 사람이 반으로 잘리는 모습이 다소 코믹하게 나타나는 등 여러 가지 황당한 설정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빚어내는 이야기가 ‘재밌고 통쾌하다’는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 웅장한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머리 폭죽신은 그야말로 경이로울 지경이죠.


▲ 사진 3. 영화 <스파이> 스틸컷


폴 페이그 감독의 영화 <스파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쿠퍼는 CIA에서 근무하지만 현장에 투입되는 멋쟁이 CIA요원이 아닙니다. 단지 뚱뚱한 내근직 여직원일 뿐이죠. 그러나 CIA요원들의 정체가 전부 악당조직에 드러나면서 정체가 발각되지 않은 쿠퍼가 스파이로 투입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스파이로 발탁된 쿠퍼는 당당히 앞으로 나가나 싶더니 여기저기서 넘어지거나 사고를 칩니다. 또한 쿠퍼의 비밀 무기는 멋있고 세련된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무좀약과 치질 환자용 물티슈죠. 다른 인물들도 뭔가 이상합니다. 쿠퍼의 활약을 막는 또다른 스파이 포드는 행동보단 말이 앞서는 인물입니다. 가장 기존 스파이와 가까워 보이는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 파인마저도 재채기를 하다 적을 죽여버리죠. 이렇게 기존 스파이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딘가 모자란 인물들, 그리고 조금은 허술한 이야기와 함께 욕과 유머, 몸개그가 판을 치는 코미디는 이 영화가 ‘B급 영화’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인지시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대중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이상하게 웃기고, 뭔가 나와 비슷해 공감을 부르는 인물들. 대중은 그러한 ‘스파이’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처럼 위 영화들은 기존 스파이 영화와 조금 다른 주인공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스파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짊어진 임무의 막중함과 위험성을 진지하게 그렸고, 주인공은 언제나 ‘스파이’라는 역할 때문에 고독한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스파이영화의 ‘관습’이었죠. 그러나 <킹스맨>과 <스파이>의 주인공은 모두 진지함, 완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한 과장되고 황당하며, 다소 ‘막 나가는 듯한’ 스토리와 설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선한 인물설정과 극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스파이 영화에서 감히 시도되지 못했습니다. 메이저 영화는 관습과 규칙에 얽매여 있고, 좀 더 세련되고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야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B급 영화라면 가능합니다. 고고하지 않아도, 유치하고 모자라거나 ‘병맛’인 것 같아도 마음껏 실험정신을 펼칠 수 있죠. 그런 이야기 속, 앞뒤 신경 쓰지 않고  보여주는 통쾌함은 깊은 뼛속부터 느껴지게 됩니다.


또한 B급 영화의 경우,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스파이>는 액션과 코미디 모두를 장르로 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장르와의 혼합에 개방적이며, 그렇게 대중이 원하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화들은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고, 모자라고 촌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중은 더욱 환호합니다. 재미가 기본이 되는 B급 영화의 경우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히 존재하며, 촌스러움이 빚어내는 향수는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합니다.


B급 영화는 이제 그만의 개성을 갖게 되었고, 메이저 영화에선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창작을 가능케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B급 코드’는 이제 광고와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보여집니다.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지요. 이렇듯 문화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관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개성 있는 작품들이 더욱 많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많은 이를 사로잡으면서도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 사진 출처

사진 1. 영화사 외유내강

사진 표지, 2, 3.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