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오랜 여운, 단편영화의 매력

상상발전소/방송 영화 2015. 5. 29. 10:43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본 단편영화는요?

첫 번째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답하셨던 분들도, 두 번째 질문에는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셨을 거에요. 영화 관람은 전 국민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국민적인 취미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5년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개봉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같은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한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화를 즐겨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관람하는 영화는 한 시간 이상 상영되는 장편영화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단편영화는 주변에서 개봉 사례를 보기도 쉽지 않고, 무척이나 낯선 장르로 인식되는데요. 단편영화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상영시간 20분 이내의 영화는 단편영화로 분류됩니다. 영화의 역사는 단편영화부터 시작했는데요. 세계 최초로 상영된 영화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작품으로, <시오타에 도착하는 기차> 등 1분 내외의 짧은 작품 10편이 연속 상영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당시에는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에, 세계 최초의 영화가 단편영화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화 제작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단편영화는 여전히 유효한 장르입니다. 최근 제작된 단편영화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겨울왕국>의 속편, <겨울왕국 열기>입니다. 본편과 다르게 속편은 7분짜리 짧은 영화로 제작되어 영화 <신데렐라>가 시작하기 전에 상영되었는데요. 본편이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인 만큼, 단편영화 <겨울왕국 열기>를 보기 위해 <신데렐라>를 예매하는 관객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단편영화는 한 편이 단독으로 상영되기 보다는 연관성을 지니는 단편영화끼리 묶어서, 또는 다른 장편영화와 함께 상영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 사진 1. <겨울왕국 열기>에서, 감기에 걸린 엘사가 기침을 하자 탄생한 눈사람들



단편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셨다면, 이젠 단편영화를 직접 만나볼 차례겠죠?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5월 15일부터 25일까지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영화의 발상지 유럽에서는 단편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서, 해마다 많은 단편영화들이 만들어지는데요. 이번 영화제에서는 유럽 29개국에서 제작된 50편의 단편영화를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상영되었습니다. 이 중 저는 17일 일요일에 열렸던 특별 프로그램 '유럽의 문화와 단편영화 만들기'에 참석했는데요. 이 날 관람한 영화 중, <간과 감자>는 송일곤 감독님이 폴란드 유학 시절 제작하신 영화였습니다. 


동생 카인은 형 아벨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형의 간을 내어주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감자를 얻는 길을 택합니다. 식구들이 모여 감자를 먹던 도중, 형 아벨의 영혼이 나타나는데요. 여기서 아벨의 영혼이, 자신을 살리지 않은 동생의 선택에 분노하면서 복수를 예고했다면 이 영화는 아마 장편영화로 진행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벨이 슬픈 미소를 지으면서 끝나버립니다. 아마 단편영화였기에 일반 관객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의 아벨이 가능했겠지요. 또한, 이야기가 짧게 압축되어 있어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결말과 더욱 진한 여운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관람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송일곤 감독님은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의 관계를 시와 소설의 관계에 비유하셨는데요. 단편영화에는 감독이 말하고 싶은 바가 더 함축적으로, 밀도 있게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사진 2. 유럽단편영화제 현장 사진


매주 단편영화를 만나 볼 수 있는 영화관도 있는데요. 바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상상마당 시네마입니다. 이곳에서는 매주 화요일마다 단편 상상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에요. 월마다 테마를 정해서 그와 관련된 단편영화를 서너 편 연속 상영하는 방식인데요. 5월, 단편 상상극장의 선택은 바로 찰리 채플린이었습니다. 거의 백여 년 전에 만들어졌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 일곱 편은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을 통해 2015년의 관객들과 만났는데요. 찰리 채플린의 단편영화 연작을 보면서, 저는 시트콤 에피소드를 여러 편 보는 것처럼 유쾌함과 편안함을 만끽했습니다. 


사실 이 날 상영된 영화는 상영 시간이 짧고, 대사가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로 제작된 영화였어요. 그래서 영화 속 등장인물의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고, 영화의 설정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상당 부분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요. 그리고 영화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은 제 마음대로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또한, 사건이 늘어지지 않고 임팩트 있게 전개되기 때문에 영화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는데요. 마치, 핵심 내용만 콕콕 집어주는 알짜 참고서 같았달까요. 6월에 개최되는 상상마당 음악영화제와 관련, '랩 사용 설명서'라는 테마로 <33리>, <뉴타운 고스트>, <사브라> 이렇게 세 편이 연속 상영될 예정입니다.



장편영화와 비교했을 때, 단편영화는 제작과정이 상대적으로 용이합니다. 그래서, 영화계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통로 역할을 주로 하는데요. 영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과제 또는 공모전을 위해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영화계에 데뷔하고 싶은 아마추어 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수단으로 단편영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또한, 단편영화의 제작에는 상대적으로 자본이 적게 투자됩니다. 그만큼 단편영화는 상업적 색채가 덜한데요. 상업성과 수익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양한 주제를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합니다. 단편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비슷비슷한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제와 독특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 산업의 발달과 함께 미래의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촬영 기술과 편집 기술이 보편화 되면서 일반인도 영화 제작에 도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요. 또한 다양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면서, 단편영화는 '영화계 입문을 위해 거쳐 가는 과정'이 아닌, 그 자체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장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사진 3. 제14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 포스터


6월 25일부터 일주일간 '장르의 상상력展'을 주제로 하는 제14회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개최됩니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경쟁부문 상영작품 공모전에는, 보름간 무려 870여편의 영화가 접수되었다고 하는데요. 단편영화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겠죠? 최근 영화제는 경쟁부문 상영작을 발표했는데요. 선정된 영화 57편은 비정성시(사회적 관점을 다룬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 희극지왕(코미디), 절대악몽(공포/판타지), 4만번의 구타(액션/스릴러), 이렇게 5개 장르로 나뉘어서 상영될 예정입니다. 5월 21일 개봉한 영화, <간신>의 민규동 감독님이 영화제의 대표 집행위원을 맡으셨는데요. 민규동 감독님은 영화 감독의 커리어를 단편영화로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를 이어붙여서 만든 옴니버스 영화에도 여럿 참여하시면서 단편영화에 대한 애정을 계속 보여주신 분이에요. 이번 영화제에서 보여주실 멋진 활약도 기대 중입니다. 더불어, 이번 영화제를 통해, 단편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장르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라면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분방한 정신이 어울려 있기에 미래는 항상 단편영화에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미래를 이끌 만큼의 놀라운 잠재력을 지닌 단편영화. 그 독특한 관점과 매력이 궁금하다면 가끔은 단편영화를 관람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 사진출처

표지, KT&G 상상마당 홈페이지

사진 1 디즈니

사진 3 미쟝센 단편영화제 홈페이지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