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사)한국애니메이션학회 회장>


애니메이션・캐릭터의 제작 단계 중 기획은 전체의 틀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국산 애니메이션의 위상이 높아지는 가운데, 명품 콘텐츠를 탄생시킬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탄탄한 기획력과 창의성을 갖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 사진1 국내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마리이야기>

 


 

1990년대 중후반부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가치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며 다방면에 걸쳐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붐이 일어났으며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 다양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개봉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마리이야기>(2001), <오세암>(2002), <원더풀데이즈>(2003) 등 기획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들이 차례로 개봉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해외 유수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작품성은 인정받았으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러한 현상이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기획, 제작 능력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 유치 자체가 어려워졌고, 현재까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후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실패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무엇보다 ‘기획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토리와 시나리오의 미흡함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았으며, 이외에 제작 파이프라인 구축의 미비함, 소재 개발 역량의 부족, 마케팅과 배급에 관한 문제점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결국 오랜 하도급 작업으로 작품의 제작 능력은 우수하지만 그에 비해 창작 애니메이션 기획에 필요한 역량을 지닌 창작자 중심의 창의적인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각도의 지원 정책이 마련되었고, 이에 따른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었습니다. 또한 제작 위주로 시행되던 지원 정책도 투자, 기획, 제작, 배급, 마케팅 등 제작 단계의 전반에 걸쳐 지원되는 형식으로 다양화하면서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 기반 마련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 사진2 국산 애니메이션 최초로 200만 관객을 동원한 <마당을 나온 암탉>

 


 

이런 기조에 힘입어 영유아 대상 애니메이션들이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이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200만이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이제 국산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하나의 장르영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공통점은 기획 단계에서 제작 방향이 비교적 명확하게 설정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 영화 제작사의 기획력과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제작 역량이 상호 보완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동안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 문제점으로 드러났던 시나리오 부분은 영화 전문 작가와의 작업을 통해 원작을 극장용 작품으로 훌륭하게 각색했으며, 어려움이 많은 투자나 배급, 마케팅 등은 영화 제작사의 전문 프로듀서들이 체계적으로 접근하면서 많은 문제를 풀어낸 것입니다.

 


▲ 사진3, 정교한 그래픽이 돋보였던 김문생 감독의 <원더풀데이즈>(좌)

해외 합작의 우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볼츠앤블립>(우)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제작되었거나 현재 제작 중인 극장용 또는 TV시리즈 애니메이션들을 살펴보면, 해외 제작사와의 공동 제작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름빵>, <곤>, <뛰뛰빵빵 구조대> <볼츠앤블립>, <두리둥실 뭉게공항>, <뽀로로 슈퍼썰매대모험> 등 많은 애니메이션이 합작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과거의 공동 제작은 애니메이션 선진국과의 협업을 통해 기획력 및 제작 노하우 등을 전수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공동 제작은 경쟁력 있는 우리 작품을 해외 마켓에 내놓고 해외 제작사 혹은 배급사의 투자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우리의 기획력과 제작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다소간의 불신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의 기획 단계라고 하면 작품의 제작을 위한 사전 준비 과정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획 단계에서는 시장 환경 분석에서 투자 유치, 마케팅 계획 수립, 예산과 제작 스케줄 관리 등 작품의 원활한 제작을 위해 필요한 부분도 많습니다. 특히 마케팅 부분은 주로 후반 제작 단계에서 중점적으로 고려되는 경향이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해야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를 활용한 사업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보카 폴리>를 제작한 로이비쥬얼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케팅 및 캐릭터 라이선싱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초기 단계부터 홍콩의 완구회 사인 실버릿과 라이선싱 계약을 맺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완구류를 개발했고, 애니메이션 방영과 거의 동시에 완구류가 출시되며 시너지효과를 일으켰습니다.

 


 ▲ 사진5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대원미디어의 <곤>



이처럼 애니메이션은 작품 그 자체의 질적 우수성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어떻게 기획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작품 제작의 외적인 부분은 사업기획 전문인력인 애니메이션 프로듀서가 담당하는 영역인데, 애니메이션의 사업적 성공은 프로듀서의 능력과도 커다란 연관성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확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현재 트렌드나 산업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고 냉철한 시장 분석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내수시장이 협소한 경우, 프로듀서는 작품의 성격과 규모에 맞는 국내외 제작 스태프를 섭외하기 위한 인적・사업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최근 국산 애니메이션은 제작비 투자 및 환수를 고려해 글로벌 마켓을 타깃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 입니다. 해외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와 유머 코드를 지닌 글로벌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기본적인 기획은 국내 스태프들이 담당하되, 시나리오 및 연출을 해외 작가 및 감독에게 맡기기도 합니다. 문화와 정서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글로벌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해외 네트워크가 필수요소임을 증명합니다.

 

<2013 애니메이션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종사자 중 68.2%가 제작업이며, 사업기획직은 7.0%, 마케팅・홍보직은 6.3%라고 합니다. 제작업과 사업기획직은 연평균 각각 3.2%와 2.6% 증가한 반면 마케팅・홍보직은 1.0% 감소한 수치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애니메이션은 성공적인 제작을 위해 기획 단계가 탄탄하게 준비되어야하고, 애니메이션을 사업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경험이 많은 기획 관련 창의 전문 인력이 대다수 필요합니다.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현장에서기획 인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 사진6, 7 프로듀서의 활약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좌)

성백엽 감독과 이정호 PD의 치밀한 기획이 만나 완성된 <오세암>

 


최근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문화산업계의 창조적인 신화들은 전적으로 창의적인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황금알에만 집착하지 말고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합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투자하고 지켜보면서 결과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 사진 출처

- 표지 영화사 청어람, 명필름, 필름앤윅스, 틴하우스, (주)레드로버 , ToonBox Entertainment, 대원미디어

- 사진1 영화사 청어람

- 사진2 명필름

- 사진3 필름앤웍스 , 틴하우스

- 사진4 (주)레드로버 , ToonBox Entertainment

- 사진5 대원미디어

- 사진6 명필름

- 사진7 마고21



본 기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창조산업과 콘텐츠> 3·4월호(http://bit.ly/1AkWNtP)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