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스틸러(Scene Stealer)라는 말을 아시나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연기력이나 개성으로 주연보다 주목받는 조연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씬 스틸러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 나이트>(2006)의 악역 조커가 있습니다. 조커는 故 히스 레저의 광기에 가까운 연기력으로 주목받은 것은 물론, "법과 규제를 뛰어넘은 선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면, 또한 법을 뛰어넘는 악을 행사할 권리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캐릭터이기도 했습니다. 더 이전의 작품에서 찾아보면 <레옹>(1994)의 스탠 필드(게리 올드만 역), <싸이코>(1960)의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 역) 등이 있습니다.

 


▲ 사진1 <다크나이트>의 악역 조커



앞서 말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영상 속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다는 것인데요. 우리는 주인공을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악역을 기억합니다. 우리나라의 콘텐츠에서도 씬 스틸러로 기억되는 악역들이 있습니다. 특히 올해 콘텐츠들은 악역 열전이라 할 정도로 인상적인 악역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영상, 만화, 텍스트 등 다양한 우리나라의 콘텐츠 속 악역들을 소개합니다.

 



▲ 사진2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의 캐릭터 포스터



가장 먼저 소개할 악역은 올해 사극 블록버스터 중 하나로 주목받았던 <군도: 민란의 시대>의 조윤(강동원 역)입니다. 이 영화는 철종 13년 궁핍한 시절, 탐관오리의 횡포에 맞선 의적떼 군도와 그 수장 도치(하정우 역)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 대적점에 있는 것이 조선 최고의 무관 조윤입니다. 그는 극악한 방법으로 양민들을 수탈하면서 그의 세력을 키워나갑니다. 



▲ 사진3 <군도>의 악역 조윤(강동원 역)



영화의 주인공이 의적떼인 군도와 도치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조윤의 영화'라는 영화평이 주를 이루었는데요. 이는 조윤이 악역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의붓어머니에게 언제나 천대받던 인물이라는 설정은 관객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또한 배우 강동원의 뛰어난 용모가 영화 <군도>를 '조윤의 영화'라는 별명을 얻게 하는데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무게중심을 잃은 영화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윤이라는 인물이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사진4 영화 <끝까지 간다>의 포스터


 

<군도>의 조윤이 영화가 끝마칠 때까지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었다면,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조진웅 역)은 그와 반대로 영화의 끝 장면까지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극악무도한 악역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고건수(이선균 역)는 영화의 주인공으로써는 너무나 모자란 면이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날 경찰서로 가다 실수로 뺑소니 사고를 내어 사람을 죽이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어머니의 관 속에 시체를 숨깁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조차 착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고건수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것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박창민이 고건수의 악행을 뛰어넘을 정도의 절대 악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건수의 뺑소니 사고를 비롯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며 여러 방법으로 그를 협박합니다.

 


▲ 사진5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박창민(조진웅 역)



나쁜 녀석, 그리고 더 나쁜 녀석의 이러한 만남은 영화 전체에 끊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하는데요. <끝까지 간다>의 긴장감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의 관객들에게 통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 초청되는 한편 해외 30여 개국에 배급 판권을 판매하였습니다.

 


 

▲ 사진6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포스터



2014년 하반기에 인기몰이한 드라마 중에서는 <왔다! 장보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청률 35% 이상을 기록한 이 드라마는 사실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속합니다. 이 드라마 속에는 기억상실, 계모, 악녀 등의 키워드가 모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와 합쳐지고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내면서, 종영 후에 <왔다! 장보리>는 '명품 막장 드라마'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 사진7 <왔다! 장보리>의 악역 연민정(이유리 역)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주인공 장보리(오연서 역)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악녀, 연민정(이유리 역)입니다. 그녀가 <왔다! 장보리>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장보리보다도 깊이 기억되면서 이 드라마는 <왔다! 연민정>이란 별칭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자신을 고아로 소개하고 인화(김혜옥 역)의 양녀가 되는 연민정은 이후로도 끊임없이 거짓과 악행을 반복합니다. 그녀는 동거한 남자친구의 아이를 버리거나 인화의 친딸인 장보리가 친모와 만나지 못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등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악행들을 매화마다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마지막 회에서는 연민정의 첫사랑 문지상(성혁)이 우연히 만나는 유치원 선생님 민소희가 연민정의 외모에 점을 찍고 나타나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이는 <왔다! 장보리>의 작가 김순옥 분이 <아내의 유혹>의 작가이기도 하여 이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유혹> 역시 희대의 악녀로 기억되는 신애리(김서형 분)가 등장했다는 것을 기억해 보면, 악역은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 하는 순기능도 있는 듯합니다.


 

 

▲ 사진8 웹툰 <노블레스>의 단행본 표지

 


이번에는 웹툰 속 악역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07년부터 시작되어 네이버 대표 웹툰으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웹툰 <노블레스>는 인간을 위해 싸우는 뱀파이어라는 컨셉의 소년만화입니다. 소년만화답게 각 에피소드마다 인간을 위협하는 악역이 등장합니다. 이중 가장 초반에 나온 악역이 M-21입니다. M-21 또한 사연이 있는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여학생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는 그에게는 기억을 삭제당하고 생체실험을 당했으며, 동료인 M-24의 약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던 사연이 있었습니다. 결국, M-21은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에서 학생들을 돕고 인간의 편으로 돌아서는 선택을 합니다.

 


▲ 사진9 웹툰 <노블레스>의 단행본 표지

위 세 명의 캐릭터는 모두 악역으로 등장하였다가 인간 편으로 돌아섰다.



M-21뿐만이 아니라 이후 <노블레스>의 악역 중에는 악의 편에 서 있으나 인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악역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에피소드가 끝날 때에는 자기희생을 하거나 주인공의 편에 서게 됩니다. 이런 역할로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는 적군에 설 수밖에 없던 M-24, 여동생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불사하던 타카오 등이 있습니다.


 


▲ 사진10 모바일게임 <쿠키런 for Kakao>



이번에는 게임 속 악역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보급 등으로 최근 게임에서는 모바일 게임이 단연 대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요즈음의 모바일게임은 화면 너머의 다른 사용자와 상대하는 방식의 RPG 게임이 많다 보니 특정한 악역을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용자끼리의 경쟁 속에서도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악역이 상정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쿠키런 for Kakao>의 마녀입니다. 

 


▲ 사진11 학습만화로 출시된 <쿠키런>

 


<쿠키런>은 쿠키 캐릭터가 달리면서 젤리를 획득,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꼭 악역이 필요한 게임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녀의 오븐에서 먹히지 않기 위해 탈출한 쿠키들'이라는 설정이 추가되면서 각각의 쿠키에 개성이 부여되고, 사용자들은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 관심을 끌게 됩니다. 한편 <쿠키런>을 출시한 데브시스터즈는 이러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쿠키런의 주 타겟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습만화를 출시하였습니다. 즉, <쿠키런>의 악역 마녀는 게임 속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쿠키런>이라는 세계관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에 나타난 악역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쿠키런>의 악역 마녀를 제외하면 최근 악역 캐릭터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악행을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지고 있어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고, 또 하나는 현실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악무도하여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악역입니다. 이러한 악역의 유형에는 사람은 실수든 고의든 악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현재 우리는 콘텐츠 속 악역을 보며 울고 웃습니다. 주인공보다 영향력 있는 악역들이, 2015년에는 또 어떻게 콘텐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지 기대해 봅니다.

 


ⓒ 사진 출처

- 사진1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 사진2~5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사진6,7 MBC

- 사진8, 9 재미주의

- 사진10 데브시스터즈

- 사진11 서울문화사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