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이 한창인 이때,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기자는 원래부터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새로 나온 애니메이션 작품을 챙겨 보는데,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세 가지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 <발광하는 현대사>, 그리고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입니다. 세 작품은 위에 올린 포스터만큼이나 서로 다른 작품색을 가지고 있는데, 셋 다 굉장히 눈여겨 볼 만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 세 작품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사진1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 <발광하는 현대사>,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포스터

 

 

 

처음으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작품은 바로 CJ E&M, 넥스토리, 애니하우스 썬의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입니다. 제목을 보시는 순간 "아!" 하실 분이 계실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넷마블에서 서비스 중인 온라인게임 <차구차구>와 관계가 있습니다.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이하 차구차구)는 인기 온라인게임 <마구마구>의 후속작 격으로 2013년 4월에 발표된 게임 <차구차구>를 원작으로 하여 CJ E&M 사상 최초로 자체 지적 재산권을 갖고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영상1 유명한 애니송 가수 TULA가 불러 더욱 유명해진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의 주제가 <시간이 또>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 줄거리

축구가 세상의 중심인 시대, 유소년 축구계의 강팀인 이글 타이푼스의 주장 '메이르'는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이자 축구계를 휘어잡고 있는 엘레멘탈 그룹 회장 라모스의 손자이다. 그러나 독선적이고 모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승리와 자신의 골 득점만이 축구의 전부인 줄 아는 선수이다. 그런데 어느 날 라모스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라모스는 메이르에게 저택 외에는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고, 유산과 기업을 물려받고 싶으면 유서 깊은 유소년 축구대회인 '주니어 아스타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라는 유언만 남긴다. 설상가상으로 기업 내부의 정적(政敵)이었던 팔콤 본부장이 기업과 유산을 노리고 견제를 하자 메이르는 위기에 처한다.

 

한편 경기장 밖에는 핫도그 장사꾼의 아들 '강차구'가 있다. 비록 자신은 몸이 약해 축구를 직접 하지는 못하지만, 축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축구를 진정으로 즐기며 선수가 아닌 감독을 꿈꾸고 있다. 차구는 우연히 메이르와 아는 사이가 되지만 메이르는 자존심 때문에 같이 축구팀을 만들자는 차구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에 차구와 전직 볼걸(ball girl) 수지, 최근 해체된 약팀 돌핀 위너스의 잔류 선수들, 새로이 모집한 아이들이 가세하고 끝내 메이르까지 팀에 들어오게 되면서, 차구를 감독으로 하는 새로운 유소년 축구팀인 '타이거 킹즈'가 만들어진다. 과연 타이거 킹즈는 제100회 주니어 아스타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까?

 

 

 

 

▲ 사진2 정작 게임 <차구차구>와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게임 <차구차구>를 해 보셨다면 애니메이션을 보고 "응? 저게 차구차구라고?" 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 차구차구에서는 실제의 선수들과 실제의 팀이 등장하지만, 애니메이션 차구차구는 완전히 가상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이 축구라는 소재와 제목 말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제작진은 게임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니 제약이 너무 많았고 저번 브라질 월드컵 전에 내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게임 기획제작에 참여하셨던 분들도 차구차구 애니메이션은 게임과 독자적인 방식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고 합니다. 더욱이 단순히 게임을 따라 '차구차구'라고 제목을 짓지 않고 '아스타를 향해'라는 말을 붙인 것도 눈에 띄는데, '아스타'(Astar)는 작중에 나오는 축구대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중국어로 하면 "阿斯达"로서, "~에 달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阿斯达 A star"라고 쓰면 바로 "별이 되다."라는 뜻이 됩니다. 중국어로도 의미가 있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이 작품이 애초 중국 진출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 사진3 감독이 카드를 사용하면 경기장의 선수가 필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 사진4,5 카드를 쓴다고 해서 완전히 허구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기술을 쓰지 않으면 보통의 축구 애니메이션 같기도 합니다.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카드와 축구를 결합한 이른바 '카드로딩 축구'라는 특이한 개념의 스포츠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세계관 속의 축구에서는 감독이 '스킬 카드'라는 특수한 카드를 몇 장 가지고 경기를 하게 되는데요. 스킬 카드는 각각 공격, 수비, 기타 능력향상 등의 역할을 하고 감독이 이를 선수에게 사용하게 되면 선수가 카드에 기록된 기술을 사용하여 슛, 패스, 수비 등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차구차구가 기존 축구 애니메이션들과 다른 점은 바로 선수들이 사용하는 필살기나 특수 기술의 사용 권한이 모두 감독에게 있기 때문에 내용 중 감독의 비중이 큰 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기엔 선수들 사이의 기술 싸움이라기보다 감독들 사이의 전략 싸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카드로서 선수의 신체 능력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 선수들도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기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사진6,7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축구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 5월 31일부터 KBS1TV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했는데, 방영 직후부터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으로 국내외적으로 축구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줄거리 때문입니다. 차구차구를 두고 애니메이션 팬들은 '막장 애니메이션'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는데요. 정말로 내용이 소위 '막장'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동 대상의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좀 더 어른스러운, 그러니까 드라마 등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나 내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메이르가 아스타컵에 출전하게 된 계기나 차구가 쏟아내는 독설 아닌 독설, 심지어 차구차구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멱살 잡기'까지, 여태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은 착하고 올바른 것만 나온다."는 세간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인터넷의 몇몇 애니메이션 관련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급기야는 방영 후 1개월여가 지난 시점에서 동인지*까지 출간되는 위엄(?)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동인지: 팬들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패러디 만화, 소설, 일러스트 따위를 실어 인쇄한 책자. 원래는 문학계 등에서 같은 경향의 사람들끼리 쓴 글을 묶어서 발행한 잡지를 일컫는 말이나 만화 및 애니메이션 팬들이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인터넷에서는 뜻이 약간 변하였다.

 

 

 

▲ 사진8 차구차구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메이르의 멱살 잡기'

 

 


▲ 사진9 차구차구 특유의 강한 드라마성은, 축구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과의 차별화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팬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뜨거운 반응에 의한 팬덤의 형성은 마치 과거 <장금이의 꿈>, <변신자동차 또봇>, <고스트 메신저> 등의 작품이 보여주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차구차구 제작진은 이러한 반응을 사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작품에 대한 자신이 없었거나 상황을 그리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매우 바빠서였다고 하네요.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불과 15개월 정도가 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보통의 TV용 애니메이션이 기획에 짧으면 2년, 길면 3년 정도 걸리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인데요. 따라서 그동안 모든 제작진이 주말도 없이 작업에 열중하였다고 합니다.

 

 

 

▲ 사진10 방영도중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차구의 아버지 강마구가 판매하는 핫도그의 위생상태에 대한 의혹이

일자 블로그에서 곧바로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빠듯한 제작 일정은 전체 본편 내용의 1/3가량이 방영된 7월 말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 제작진은 그런 와중에서도 팬들이 인터넷에 올려준 차구차구 관련 게시물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공식 홈페이지와는 별개로 공식 블로그도 운영 중인데요. 공식 블로그 자체가 드문 것은 아니지만 놀라운 것은 공식 블로그에서 팬들이 좋아하는 요소들과 궁금해하는 것들을 바로바로 반영한 게시물을 올려 준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 제작진은, 마케팅 계획을 세울 때 공식 블로그를 만들어 시청자와 소통해 나가는 기록이 쌓이게 되면 나중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블로그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팬들의 차구차구 관련 유행어나 코드를 받아들이고 이를 젊은 스태프들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통해 승화시키면서 TV 애니메이션도 마치 드라마처럼, 시청자와 쌍방향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청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 또한 사람들이 차구차구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끔 하는 이유입니다.

 

 

 

▲ 사진11 타이거 킹즈는 과연 무사히 팀원들을 모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인가?

 


차구차구가 이렇듯 애니메이션 팬들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방영 2개월이 넘은 아직 별다른 홍보나 VOD서비스 등의 접근성 향상이 없다는 점 때문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의 말로는, 오는 9월부터 투니버스에서 방영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부가 서비스 및 홍보 활동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또한, 부가적인 상품이나 콘텐츠 등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카드로딩 축구' 이야기에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차구차구는 현재 TCG*를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상품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차구차구를 주제로 한 색다른 콘텐츠도 준비 중인데 이제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것이라고 하네요. 많은 기대 바랍니다.

 

* TCG (Trading Card Game): 카드를 사용하는 게임으로서 게임과 더불어 수집이 목적인 것. 대표적으로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 과 <유희왕> 등이 있다.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는 현재 KBS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30분에 방영 중이며 9월 10일부터는 투니버스에서도 방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작품은 스튜디오 다다쇼의 따끈따끈한 신작 <발광하는 현대사>입니다. 2012년 발표된 강도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요. 특이하게도 TV 방영용이나 극장 상영용이 아닌 IPA(Internet Protocol Animation)이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공개된 작품입니다.

 

 

 <발광하는 현대사> 줄거리

 

일러스트레이터 '이현대'는 교통방송 리포터인 '정민주'와 사귀는 사이이다. 그런데 정작 현대는 대학 후배인 '순이'와 결혼하게 되고, 민주는 순이의 직장 부하인 '훈'과 동거를 시작한다. 이미 결혼했으나 현대는 민주를 잊지 못하고 민주에게 계속 연락을 하지만 퇴짜를 맞는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현대는 자신이 출강하는 강좌의 수강생 '주부 학생', 현대의 선배이자 교수인 '춘배' 밑의 대학원생 '미정', 춘배를 통해 소개받은 재벌가 여성 '영희' 등과 만나며 관계를 가진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민주를 잊을 수 없다. 한편 민주는 영희의 남편이자 오랫동안 몰래 자신과 사귀어 온 '철수'가 영희와 이혼하고 자신과 결합하게 되기를 바라지만 뜻대로 잘 안 된다.

 

한편 동거남 훈이가 자신과 관계를 맺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왜인지 훈이는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민주와의 동거에서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는 훈이는 급기야 순이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그렇게 여러 인물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 사진12 <발광하는 현대사>의 주인공 이현대

 

 

 

원작 웹툰을 이미 보신 분이시라면, 또 그렇지 않다고 해도 위의 줄거리 요약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발광하는 현대사>는 19세 이상 관람가 애니메이션입니다.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소위 말하는 '야한' 애니메이션은 1994년에 개봉한 오중일 감독의 <블루 시걸>, 1998년, 1999년에 나온 <누들누드>, 2001년에 나온 <러브 머신>과 <콘체르토> 이후로는 사실상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성인용 영상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비디오 대여점 등이 사라지면서 주로 OVA* 형식으로 발매되었던 성인용 애니메이션도 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 OVA: Original Video Animation의 약어로, TV 방영이나 극장 상영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비디오나 DVD, 블루레이 등으로 출시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뜻. 최근에는 비디오 테이프대신 DVD를 많이 사용하므로 ODA라는 용어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한국에도 성인용 애니메이션이 다시 등장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VOD, IPTV와 함께 모바일 장비의 보급이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발광하는 현대사>는 단순히 오랜만에 나온 성인용 한국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넘어, VOD 시장을 개쳑하려 하는 작품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스튜디오 다다쇼의 전작에서는 쭉 감독을 맡아 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프로듀서를 맡은 연상호 감독은 오래전부터 한국 애니메이션을 위한 수익구조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데 노력해 왔던 사람이었습니다. <발광하는 현대사>가 'VOD 전용 애니메이션', 심지어 생소한 용어인 IPA라는 말까지 들고 나온 것은 그간 고민해왔던 것을 이제 시험대에 올려보고 싶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 사진13 홍덕표 감독의 2004년작 <남자다운 수다>

 


앞서 연상호 감독이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작품의 감독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2002년 <사이>, 2004년 <남자다운 수다>, 2007년 <아주까리>를 발표했으며 실사영화 계에서도 활동한 전력이 있는 홍덕표 감독입니다. 많이 알려진 사람은 아니나, 강도하 작가의 원작이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홍덕표 감독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여성적 작품 성향에 맞는다는 판단하에 작품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홍덕표 감독은 기본적인 틀은 원작에 맞추되 영상으로 풀어내었을 때 매끄럽게 보이게 하였다며 연출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 사진14 얼핏 보면 치정극이지만 숨겨진 뜻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는 등장인물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어 얼핏 보면 단순한 막장 드라마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고들어 가 보면 이것이 한국 사회와 현대사에 대한 묘한 은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는데, 주인공 현대는 현대사회를 상징하며 교통방송 리포터인 여주인공 민주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이 모두 상징하는 바가 있으며, 이것을 마음속에 담고 작품을 보게 된다면 이 작품이 단순한 치정극으로만 보이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 사진15 이현대 대 위기!

 


그런 상징성 말고도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행동은 우리의 삶, 특히 우리 내면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조금 과장된 측면도 없지는 않으나, 여성을 끊임없이 탐닉하는 현대, 내면에 아픔을 간직한 민주, 사랑을 갈구하는 주부 학생, 주변 사람을 자기 멋대로 조종하려 하는 춘배와 그에 휘둘리는 미정,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훈과 주변 상황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순이 등등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 있든 드러나지 않았든 삶에서 한 번쯤 경험해 보았거나 느끼고 지나쳤을 것들입니다.

 

 


▲ 사진16 아픔을 가진 민주와 그 원인이 된 철수

 

 

 

▲ 사진17 불안한 고요는 과연 언제 깨질 것인가?

 

 


성인용 IPA를 향한 스튜디오 다다쇼의 실험! 과연 이들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발광하는 현대사>는 지난 7월 10일에 발매되어 현재 각종 VOD서비스와 IPTV서비스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 주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을 제공하는 곳에 따라 작품을 묶은 형식이 달라서 어느 곳은 상, 중, 하 3편으로 묶어서 올리기도 하고, 어떤 곳은 전편을 묶어 4시간가량 하는 영상으로 올려놓은 곳도 있습니다. 제작진이 원래는 22분짜리 11편으로 된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서 관객이 한 번에 전편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틈날 때마다 잠깐잠깐 챙겨서 보는 것을 의도했기 때문에 작품을 구매하시거나 감상하실 때 이를 고려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작품은 오늘 개봉 예정인 작품입니다. 바로 연필로 명상하기, EBS, 김영사의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입니다. 제목에서도 아실 수 있다시피 우리에게 친숙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한데 묶은 것입니다. 원작 소설의 줄거리는 이미 알고 계신 분이 많으실 것이므로 따로 적지는 않겠습니다.

 

 

 

▲ 사진18 <소중한 날의 꿈> 포스터

 

 


2011년 6월, 11년의(!) 기다림을 뚫고 한 애니메이션이 개봉합니다. 바로 <소중한 날의 꿈>입니다. 70~80년대를 살던 한 소녀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작게나마 깨달아 간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주제의식과 아름다운 작화 덕분에 국내외에서 찬사를 받았습니다. 작품을 만든 안재훈 감독은 개봉 이후 이곳저곳에서 열린 GV(관객과의 대화)나 인터뷰 등에서 "언젠가는 한국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것은 바로 안재훈 감독 자신에게 한국 문학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어려운 여건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되었지만, 이번 작품은 그런 안재훈 감독의 뜻에 공감해 준 EBS와 김영사의 참여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이 개봉한 지 1년 만인 2012년에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메밀꽃 필 무렵>이 상영되었고 이후 <봄봄>과 <운수 좋은 날>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애초 <한국단편문학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졌던 작품 제목도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고 얼마 전 막을 내린 SICAF 2014에서 드디어 일반에 공개됩니다.

 

 

 

▲ 영상2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예고편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우리가 오래전 국어나 문학 수업 시간에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한국 문학의 주옥같은 단편 소설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원작이 있는 콘텐츠를 접할 때 많이 보는 것 중 하나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였는가 아니면 재해석을 하였는가인데,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 원작 소설의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상영 후 GV에서 나온 평들 가운데서도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원작을 한 번 더 탐독한 뒤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면 원작과 다른 부분이 분명히 보일 것입니다. 안재훈 감독은 원작가 선생님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내 글을 그림으로 옮기니 이렇게까지 되는구나!"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애정을 담은, 창작의 묘미가 드러나는 장면들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작품 곳곳에서 원작에서는 잘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 바꾼 장면 등을 볼 수 있습니다.

 

 

▲ 사진19,20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메밀꽃밭의 묘사가 인상적인 <메밀꽃 필 무렵>

 


이 작품의 첫 순서인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달밤 메밀꽃밭이 나오는 장면이 정말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다른 두 작품까지 통틀어 전반적으로 배경묘사가 훌륭한 편이지만 이 작품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안재훈 감독은 우리 눈높이 같은 산에 메밀꽃을 정성스럽게 잘 그려 놓고, 정말 내가 나귀를 타고서 누군가와 걷는 이런 느낌을 관객들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하셨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 작품을 위해 메밀꽃을 그린 국내 화가의 작품을 모두 보았을 정도라니 놀랍지요. 작품을 보다 보면 정말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에 봉평의 메밀꽃밭에 가면 말 그대로 '소금을 뿌린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사진21,22 판소리 창을 도입하여 원작의 해학성을 배가시킨 <봄봄>

 


두 번째 순서인 <봄봄>은,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판소리 창으로 늘어놓는 독특한 형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판소리를 애니메이션에 사용한 예는 그동안 1991년 MBC와 동양동화에서 만든 <심청>, 2009년 플라잉피그에서 만든 <멍석골 서당> 정도밖에 없었을 정도로 한국 애니메이션에서도 드문 방식인데요. 안재훈 감독 자신이 국악을 좋아함에도 우리 것이 어설프게 작품에 들어가면 싸구려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그간 판소리를 작품에 쓰지는 않았으나, 김유정 선생이 이 작품에서 보여 준 해학은 판소리 형식이 아니면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여 판소리 형식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창은 '국악계의 아이돌'이라고 일컬어지는 남상일 씨가 맡아 주셨는데요. 작화에 맞춰 창을 녹음하고 또 보완하여 녹음하는 등의 작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굉장히 재미있는 내레이션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사진 23,24,25 1920년대 경성의 모습과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운수 좋은 날>

 


마지막 순서인 <운수 좋은 날>은 배경이 되는 1920년대 경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천도교중앙대교당, 종각, 숭례문, 남대문역, 광화문 앞 거리, 수표교, 종로, YMCA 건물 등등 당시에도 볼 수 있었던 명소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살리기 위해 제작진은 사진, 신문기사, 박물관, 심지어 외국인 선교사의 기록까지 많은 자료를 조사하였다고 합니다. 전작 <소중한 날의 꿈>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 김 첨지가 끄는 인력거나 화폐, 차량, 가게 등의 소품이나 작은 장소도 놓치지 않고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배경이나 소품뿐만이 아니라 원작 소설 특유의 우중충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 있는데, 덕분에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기자도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습니다.

 

 


▲ 사진26 SICAF 2014에서 관객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안재훈 감독 (가운데)

 


총감독인 안재훈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잊혀 가는 우리 문학을 재조명하면서 한편으론 문화콘텐츠 원석으로서의 우리 문학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믿기 힘들게도 이제는 이런 문학 작품들이 교과서에서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점점 사라져 가며 그로 인해 자기 정체성마저 흐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 소통의 문제가 오래전부터 지적됐는데, 공유하는 기억이 더 많아질수록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 문학은 그 자체로 많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많이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 문학이 가진 나름의 장점이 주목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나중에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날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애니메이션<겨울왕국>으로 재탄생되었듯이 말입니다.

 

 

▲ 사진27 2003년 발행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운수 좋은 날>

 


한국 문학을 영상으로 남기는 일이 비단 이 작품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행히 이 작품 이후로도 다른 문학작품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세 작품을 한데 묶어서 1년에 하나씩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지금은 황순원의 <소나기>,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그리고 김동리의 <무녀도>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8월 21일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상영관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설령 이 글을 보셨다고 해도 작품 본편을 집 주변에 있는 극장에서 보시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도 있는 작품이지만 개봉했을 때 꼭 극장을 찾아가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모두 행복한 국어 시간 되시길.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화제작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여럿 나오는 것은 꽤 드문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큰 화제가 되는 작품이 1년에 한두 작품 정도가 나오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제 점점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괜찮다고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나오는 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작품을 묶어서 이야기 드려도 딱히 시의성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앞으로도 이런 기사를 쓸 기회가 더 많이 오도록, 우리 애니메이션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사진 및 영상 출처

 - 표지  CJ E&M, 스튜디오 다다쇼, 연필로 명상하기

- 사진1  CJ E&M, 스튜디오 다다쇼, 연필로 명상하기

- 사진2 게임 <차구차구> 공식 홈페이지

- 사진3,4,5,6,7,8,9,11  CJ E&M

- 사진 18,19,20,21,22,23,24,25 연필로 명상하기

- 사진26, 27 직접 촬영

- 사진10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 공식 블로그

- 사진12,14,15,16,17 스튜디오 다다쇼

- 사진13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 영상1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 공식 유튜브 채널

- 영상2 연필로 명상하기 공식블로그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