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영원한 영웅에 대하여

상상발전소/KOCCA 행사 2014. 8. 4. 10:03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얼마 전 충무공 이순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명량'이 개봉했지요.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가장 적은 자원으로 최대한의 승리를 거뒀던 전투입니다. 세계 해전 역사상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해전으로 기록되어 있죠. 그 외에도 이순신 장군은 많은 승리를 이끌며 조선을 구했고 역사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써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는 자주 차용되는 소재이면서도 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아마 장군의 생애가 평탄하지는 않았으나 그 자신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고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구해낸 불멸의 영웅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우리에게 남긴 기록, 그리고 현대인들이 이순신을 어떻게 기록하였는지, 또 기록하고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 난중일기


▲ 사진1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후로 매일 기록한 난중일기.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역사적 사실과 학술연구 자료로서 높은 가치가 인정될 뿐 아니라, 유래를 찾기 힘든 전쟁 중 지휘관이 직접 기록한 사례인 점을 들어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국보 제76호이고 현재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성격이 굉장히 꼼꼼했기에 일기에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기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기 속에서 당대의 삶의 모습까지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지요.


이뿐만 아니라 혼잡한 시대상 속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 백의종군 이후 지휘관으로 복귀했는데 자신의 목숨으로 키운 수군이 몰락한 모습을 봤을 때의 절망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짊어진 장군이 지녀야 할 책임감 등 충무공이 전쟁 속에서 느낀 것들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어 단순히 위인 이순신의 기록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일기이기도 합니다.


난중일기에서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날짜는 어느 날일까요? 바로 명량대첩이 일어났던 정유년(1597년) 9월 16일입니다. 그만큼 명량해전이 이순신에게도 긴장되고 힘든 전투였다는 뜻이겠지요.


◎ 고전소설 <임진록>과 게임 <임진록>


▲ 사진2 <임진록> 필사본과 게임 <임진록2 + 조선의 반격>



<임진록>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작자, 창작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입니다. 등장인물, 필사 연대, 기술된 내용들을 근거로 보면 가장 이른 이본 출현은 병자호란(1636~1637) 이후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병자호란에서 쓰라린 패배를 입은 조선, 그리고 상처받은 조선의 민중을 치유하기 위하여 쓴 역사 소설이죠. 이 작품에서 이순신은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에 항거하지만, 적장 마홍에게 피살되고 맙니다.


게임 <임진록> 시리즈는 HQ팀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만든 실시간 전략 게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2000년에 출시된 <임진록2>부터 조선군 무장으로 등장합니다. 모든 장수 중 유일하게 공격력과 방어력을 둘 다 향상시키는 오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훈련도감에서 등용할 수 있습니다. HQ팀을 흡수한 조이온에서 나온 <임진록2 + 조선의 반격>에서는 특수기로 기공신포를 쏠 수 있는데 이 위력이 어마어마합니다.


◎ 게임 <거상(巨商)>


<거상>은 AK인터렉티브에서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한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인터넷을 통해 모두 같은 가상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의 일종)입니다. 2002년에 출시되었습니다. 애초 <거상>은 조이온 엔터테인먼트사에서 개발하고 감마니아 코리아사에서 운영을 담당하였으나, 2008년 AK인터렉티브에서 인수하여 개발과 운영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임진록2 + 조선의 반격>의 개발사인 조이온에서 개발했던 만큼 위의 <임진록>에서 나온 장수들과 기술이 등장합니다.



▲ 사진3 <거상>의 용병 활잡이, 이순신, 거북차



<거상>에는 용병을 기용하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이 용병 중 하나가 이순신입니다. 처음에는 활잡이로 시작해서 활잡이가 전직하면 이순신이 되고, 이순신이 한 번 더 전직하면 거북차가 됩니다. 이 이순신은 <임진록>의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기공신포를 쏠 수 있습니다. 거북차는 강강술래라는 기술도 사용 가능합니다.


◎ 소설 <칼의 노래>


▲ 사진4 '생각의나무' 2001년 판 <칼의 노래(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생각의나무' 2010년 판 <칼의 노래>, 

'문학동네' 2014년 판 <칼의 노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2001년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간행한 김훈의 장편소설입니다. 같은 해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충무공을 다룬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이순신을 1인칭에서 서술합니다. 그래서 장군의 마음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죠. 이를 통하여 김훈은 이순신을 다가가기 힘든 완벽한 영웅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하였습니다.


명문장들로 가득 채워진 <칼의 노래>. 소설은 이순신의 생애 중 딱 2년만을 다룹니다. 원균이 이순신을 대신하여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차지했던 1597년 무렵부터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는 1598년까지 말이죠. 전투에 임하는 심정,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혈육을 잃은 아픔 등 개인적인 부분까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꼼꼼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고독한 각오를 수백, 수천 번 다져가며 꿋꿋이 싸워가는 충무공의 모습은 독자들을 마음 아프게 하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 소설 <불멸>,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 사진5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아마 많은 분께서 대중매체의 '이순신'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 김명민이 2004~2005년에 '이순신' 역으로 열연했던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입니다. 그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롱런한 작품이죠. <불멸의 이순신>에서 마치 이순신이 살아 돌아온 듯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김명민은 이 드라마 이후로도 계속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명배우의 반열에 올라있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은 상관의 명령이라도 원칙에 어긋난 명은 따르지 않았고, 인사와 상벌(賞罰)에 엄격한 규칙을 지키는 공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세상이 혼란한 시기에도 늘 군법을 따랐으며 연고, 온정 등에 휘둘린 인사처리를 하지 않았기에 그의 부하들이 이순신을 더욱 믿고 따를 수 있었죠. 또한, 늘 임금 선조의 견제를 받으며 이순신 자신의 업적보다 훨씬 좋지 않은 대우를 받았으면서도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라를 지키는 데 집중하였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이 바로 김탁환이 1998년 출판한 소설 <불멸>입니다. 2004년에 드라마화되면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재판되었던 소설이죠. <불멸>은 이순신과 원균 등의 인물을 통하여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를 형상화하고 선조, 광해군, 류성룡 등을 통해 정치와 야망이 꿈틀대는 정치판을 그리며 허균, 이달, 한석봉 등을 통해 눈물과 한이 어우러지는 예술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원균을 명장이지만 흐름을 잘못 읽은 장수로 기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한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죠.



▲ 사진6 불멸의 이순신 플래쉬 게임



인기가 워낙 많았던 <불멸의 이순신>이었기에 플래시 게임도 나왔습니다. 그 당시 일본인들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었기에 바다를 지킨 이순신과 우리의 바다를 빼앗으려는 일본인들의 모습으로 패러디 게임이 나온 것이죠. <불멸의 이순신>의 인기와 독도에 대한 관심이 상승하던 시기여서 이 게임도 상당히 인기를 얻었습니다.


◎ 배한성의 고전열전 난중일기


▲ 사진7 <배한성의 고전열전 난중일기> 타이틀



<배한성의 고전열전 난중일기>는 MBC라디오에서 2010년 10월 18일부터 2014년 4월 13일까지 방영했던 <배한성의 고전열전>이라는 라디오 드라마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시리즈입니다. <배한성의 고전열전>에서는 삼국지, 수호지, 그리고 난중일기 순서대로 라디오 드라마 방영을 했었습니다.


<배한성의 고전열전 난중일기>는 국내 라디오 방송 최초로 우리 고전을 소재로 한 드라마입니다. 역사 교육의 부재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하고 있는 요즘, 라디오 드라마 난중일기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역사 교육의 재미와 의미를 일깨워주는 한편,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로 인해 촉발된 한일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역사를 통하여 국난 극복의 자부심을 일깨우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를 현대의 감각으로 해석하여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까지 7년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당시의 역사를 오늘날의 시대 상황에 접목하여 촌철살인의 시사풍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순신을 너무나도 강직하여 상사에게 아부하지 못해 출세하지 못하는 샐러리맨으로 묘사하는 등, 현대적 시각으로 신선한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종영하였지만, 팟캐스트에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 <역사저널 그날> 6월 22일 임진왜란, 29일 정유재란 편


▲ 사진8 <역사저널 그날> 타이틀



요즘 대세인 시사 프로그램이 바로 <역사저널 그날>인데요, 이 프로그램은 역사 교수, 고등학교 한국사 교사, 영화감독, 시인 등 여러 패널이 나와서 우리나라 역사 중 한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역사에 대해서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하면서도 정확한 역사를 알려주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지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올해 6월 8일부터 6월 29일까지 임진왜란에 대해서 4부작에 걸쳐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특히 4부작 중 3부와 4부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3부는 '조선의 반격, 바다로부터 시작되다'라는 부제와 함께 조선의 첫 승전보이자 이순신이 바다에서 첫 승리를 거머쥔 옥포해전에 대한 이야기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죠. 4부는 일본이 조선을 재차 침략했던 정유재란을 다루며, 이순신 생애 최고의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시사프로그램은 재미없고 딱딱하다'는 편견을 깨부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은 이순신에 대해서 쉽고 재밌게 풀어냅니다. 이순신이 활약했던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는지, 경과는 어떠한지 그리고 이순신은 어떤 활약을 했는지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단순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할 뿐 아니라 현대에 비추어 과거 역사적 잘못은 반성하고 잘했던 점은 칭찬하고요, 또한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평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토론합니다.


◎ 영화 <명량>


▲ 사진9 영화 <명량> 스틸컷



7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명량>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순신 최고의 승리, 그리고 세계 역사상 길이 남을 해전인 명량대첩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 조선이 다시 극도로 혼란스러워지자 조정은 장수 직에서 파면되었을 뿐 아니라 백의종군을 하고 있던 이순신에게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시점은 전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시점이었죠.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은 이순신이 일궈놓았던 수군을 대부분 잃었고, 이순신에게 남은 것은 오직 12척의 배뿐.


사실 조정은 이순신이 왜적들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었죠. 오히려 조정은 수군을 육군으로 전부 통합시키려는 생각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순신은 상소를 올립니다.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조정에서는 해군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지만, 이순신은 포기하지 않고 백성들이 가져온 배 한 척을 보강하여 13척으로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섭니다.


너무나도 규모가 커서 오히려 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명량해전. 벌써 영화 <명량>에 대해서도 '역사 왜곡이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진행 중입니다. 영화 <명량>에서 묘사하는 명량해전이 숫자가 정확한 역사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역사학회에서도 명량해전에 대해서 확실한 기록은 내지 못하고 있고요.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없어 명량해전을 완벽히 재연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지만 열 배, 혹은 스무 배가 훨씬 넘는 적을 상대로 출전한 충무공의 고뇌와 용기, 마음가짐, 그리고 전술 등을 영화 내에서 묘사해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 통영한산대첩축제


▲ 사진10 통영한산대첩축제 홈페이지



통영은 한산대첩과 당포해전이 있던 곳입니다. 통영한산대첩축제는 해마다 충무공과 장졸들의 호국 얼을 기리고 당시 조선을 구한 한산대첩을 축하하는 축제이죠. 올해로 어느덧 53회를 맞이하는 역사 깊은 축제입니다. 통영한산대첩축제는 단순히 즐기는 행사가 아닌, 임진년 그 날, 나라를 지켜낸 충무공과 부하 장졸들이 흘린 피와 땀을 느끼며 그들의 호국정신을 받들고 후손들에게 계승하는 의미 깊은 축제입니다.


한산대첩은 조선의 전라, 경상도 연합함대가 일본 와키자카 야스하루,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연합군을 무찌른 전쟁입니다. 조선으로서는 국가의 존망이, 일본에는 전쟁의 승패가 걸린 큰 해전이었죠. 한산도 대첩 전에 이순신은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기에 일본은 점점 보급로가 차단되고 있었고, 한산대첩에서 크게 패한 후에 일본은 정유재란을 일으키기까지 조선 해상 장악에 대한 의욕을 아예 잃게 됩니다.


한산대첩은 세계 4대 대첩으로 거론되곤 하는데요,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조선군이 아주 큰 차이로 이겼을 뿐 아니라 한산대첩에서 사용된 전술이 매우 치밀하고 극도로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학익진을 복병과 함께 연계하여 사용, 매복, 속임수 등 여러 전술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일본군을 대파하였습니다.


이를 기린 통영한산대첩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축제로 공식 지정되기로 하는 등 한국 대표 축제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거북선, 군선, 판옥선 등을 볼 수 있고 매일 국악 공연, 전통 무예 시연 등 여러 가지 무대가 펼쳐집니다. 통영한산대첩의 꽃은 한산대첩 재연입니다. 매우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죠. 한산도를 바라볼 수 있는 이순신 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느낄 수 있으며 한산대첩 당시의 모습을 현장감 있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대중매체, 예술, 행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명장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걸고 있는 이순신 장군. 아무리 힘들어도 꿋꿋이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했고, 부하들에게는 상벌에 엄격한 공정한 상관이었습니다. 위에서 어떠한 압박이 들어와도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명령을 거부하기도 한 정의로운 사람이었죠. 강직한 성품 때문에 고초를 겪는 일도 많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도 많았지만, 이순신은 언제나 자신이 지켜야 할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충무공, 그리고 많은 위인의 정신을 잊고 쾌락만 추구하며 혹은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굴곡이 많았지만 결국 불멸의 영웅으로 남은 이순신 장군의 삶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남겨줍니다. 늘 공정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주변의 압박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본받아야 하겠지요.


위인의 삶은 언제나 가시밭길입니다. 하지만 그 힘든 길을 걷는 위인 한 명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우리 시대에도 이순신 장군처럼 시대를 밝히는 등불 같은 위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임진록

위키백과 - 임진록(게임)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칼의 노래


ⓒ 사진 출처

- 표지 두산백과(doopedia.co.kr)

- 사진1 두산백과(doopedia.co.kr)

- 사진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사진3 <거상> 공식 홈페이지

- 사진4 인터넷 교보문고

- 사진5 KBS <불멸의 이순신> 공식 페이지

- 사진6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 - 독도를 사수하라!

- 사진7 MBC <배한성의 고전열전 난중일기> 공식 홈페이지

- 사진8 KBS <역사저널 그날> 공식 페이지

- 사진9 <명량> 공식 스틸컷

- 사진10 통영한산대첩축제 홈페이지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