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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 불어온 느와르의 바람 - 2014년 개봉한 느와르 영화들

by KOCCA 2014. 7. 30.




느와르, 라고 하면 생소해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마니아층에는 잘 알려진 장르이고 한 번쯤 들어보셨을 분들도 계시겠으나 지금까지 영화계에서 비슷한 장르인 조폭물이나 범죄물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제작되지 않았던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3년 개봉한 영화 <신세계>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느와르 장르의 영화가 속속들이 개봉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실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제작자, 그리고 관객들에게 느와르가 어필하는 매력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통칭 ‘느와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영국의 고딕 소설을 칭하던 것에서 그 어원이 유래합니다. 느와르가 영화의 한 관습적 특징이나 장르를 칭하게 된 것은 1940~1950년대에 이르러서인데요, 하나의 장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필름 느와르는 영화의 서사적 특징이나 소재보다는 영화 전체에 깔린 음울한 분위기나 사선의 구도 등의 스타일을 가리키는 단어로 더 많이 쓰였습니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멜로, 액션 할 것 없이 암울한 분위기의 영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이를 통틀어 필름 느와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96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의 필름 느와르의 유행은 사그러들었으나 이후 1960년대 프랑스의 ‘네오 느와르’, 1980년대 홍콩에서의 갱스터물을 중심으로 한 느와르 열풍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사진1, 2 느와르 영화의 시초라 불리는 영화 <말타의 매>(1941)

 


이렇게 느와르의 개괄적인 의미를 짚고 보니, 왠지 해외 영화의 사례만 있어 느와르와 우리 콘텐츠는 상당히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부터 느와르의 색을 띤 영화들이 등장했고, 그중 전설로 남은 영화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1년 개봉하여 지난해 후속편이 나온 영화 <친구>입니다. 


흔히 조폭물로 기억되는 이 영화는 준석, 동수, 상택, 준호 4명의 어린 시절부터 지속한 우정이 조직관계 내 배신 등으로 깨어진다는 줄거리를 볼 때 실상 느와르에 가깝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친구>는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그 당시로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한 영화인데요. 이 영화 이후로 필요 이상으로 조폭을 미화하는 영화가 등장하거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모방 범죄를 일으키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있기는 하였으나, 작품 자체로 볼 때 <친구>는 실제 조직에 의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였으며 경상도 사투리를 차용하는 등의 노력을 보인 한국형 느와르의 시초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사진3 대표적인 한국 느와르 영화 <친구>(2001)

 


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요즈음의 ‘느와르 열풍’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친구> 이후에도 느와르물은 꾸준히 제작되었으나 2013~2014년에 느와르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만 해도 많은 수가 나왔으니 요즈음은 가히 열풍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시기적으로 앞선 <신세계>를 비롯하여 최근 극장가에서 상영이 끝났거나 상영 중인 느와르 영화들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러한 느와르 영화의 잇따른 개봉에 ‘느와르 열풍’의 영향이 있었던 만큼, 영화들을 면밀히 바라보는 동안 앞으로 느와르 장르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창작자나 감상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점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2010년대 형 한국 느와르의 신세계를 열다 - <신세계>

 

▲ 사진4,5  영화 <신세계> 포스터와 스틸컷(2013)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 과장(최민식 분)의 제의로 조직과 융합한 금융기업에 잠입한 이자성(이정재 분)은 8년 동안 금융기업 내에서 활동하며 기업의 2인자인 정청(황정민 분)의 오른팔이 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기업 회장의 죽음에 따라 회장 자리를 둔 권력 싸움이 일어나고, 적이지만 의리로 쌓아온 친분이 있는 정청과 작전의 성공만을 목표로 하는 경찰 사이에서 주인공 자성은 갈등하게 됩니다.


<친구> 이후에도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 <범죄와의 전쟁> 등 웰메이드 느와르물로 평가되는 영화들이 있었지만 2014년 느와르물의 개봉에 영향을 준 영화로 언급되는 영화는 역시 <신세계>(2013)입니다. 이는 관객 수라는 가시적인 지표가 있으며, “살려는 드릴게”, “드루와 드루와” 등의 익숙한 명대사 등을 만들어낸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역시 주인공 이자성과 정청의 우정인데요. 거대한 금융기업 내에서 회장 자리를 노리는 권력 싸움, 경찰의 은밀한 개입 등이 얽힌 가운데 이 둘의 우정은 더욱 빛납니다. 이렇게 이성 간의 사랑에 버금가는 우정을 다룬 영화를 '버디(Buddy)물'이라고도 부르는데요. 홍콩 느와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러한 우정관계 때문인지 <신세계>는 종종 홍콩 영화 <무간도>(2002)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조직에 들어와서 생겨난 두 남주인공의 진한 유대감과 한쪽이 언더커버(undercover: '비밀리에'라는 뜻으로, 비밀리에 범죄조직 등에 잠입하는 경찰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생기는 내·외적 갈등은 두 영화 모두에 드러난 서사의 중심이자 매력 포인트입니다.

 

 

▲ 사진6,7 서로 닮은 두 영화 <무간도>와 <신세계>

 

 

2. '느와르'를 붙잡았지만 약간은 아쉬운 영화 - <황제를 위하여>


▲ 사진8,9 <황제를 위하여> 포스터와 스틸컷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승부 조작에 연루된 후 모든 것을 잃게 된 ‘이환’(이민기 분)은 빠져나갈 곳 없는 인생의 바닥에서 부산 최대의 조직의 대표인 상하(박성웅 분)를 만나게 됩니다. 이환의 잠재력을 본능적으로 알아본 상하는 다른 조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철저하게 적용되는 조직 사회에서 이환은 상하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감춰두었던 야망을 키워가게 됩니다.


<신세계>에서 새로이 주목받은 것은 느와르라는 장르뿐만이 아닙니다. <신세계>에서 이중구 역으로 새로이 주목받은 배우 박성웅은 이후 <찌라시> 등 이전보다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느와르 영화에 속하는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배우 이민기와 함께 열연했습니다.


모 영화관에서 두 주연배우가 직접 홍보에 나서거나 인터넷에 영상이 유출되는 등 작품 외적인 요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영화가 실질적으로 관객 수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고 평단의 호평도 얻지 못했다는 점인데요. 전 운동선수가 조직원이 되는 비현실적인 설정이나 작품 곳곳에 드러난 조폭을 미화하는 요소들, 개연성 없는 선정적인 장면 등은 비판받기도 하였습니다.

 

3. 느와르, LGBT를 만나다 - <하이힐>

  

▲ 사진10,11 영화 <하이힐> 포스터와 스틸컷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춘 강력계 형사 ‘지욱’은 범인을 단숨에 제압하는 타고난 능력을 발휘해 경찰은 물론 거대 범죄 조직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존재로 불립니다.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감추기 위해 더욱 거친 남자의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지욱은 내면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마음먹게 됩니다.


<하이힐>은 암흑가를 돌며 범죄자를 처단하는 형사가 등장한다는 점이나 전체적인 분위기 등에서 정통 느와르가 될 뻔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주인공 형사 지욱(차승원 분)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면, <하이힐>은 타 느와르 영화와는 차별점을 갖는 영화가 됩니다. 강력계 내는 물론 범죄 조직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불리는 지욱의 이면에는 여성이 되고 싶은 욕구를 애써 억누르는 모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장르의 혼합은 최근 콘텐츠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느와르와 성 소수자 소재의 결합은 상당히 새롭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결합이 반대로 낯설음을 유발한 것인지 <하이힐>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시도와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생소한 소재이다 보니 관객들이 많이 찾지 않았다는 평입니다. <웰컴 투 동막골>, <아는 여자> 등 대중들이 공감하는 영화를 다수 제작하였던 장진 감독에게, 이번 영화에서 관객들이 기대한 것 또한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보편적인 감동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4. 범죄로 변해버린 신들의 놀음판 - <신의 한 수>


▲ 사진12,13 영화 <신의 한 수>의 다양한 포스터.


 

프로 바둑 기사 태석(정우성)은 내기바둑판에서 살수(이범수) 팀의 음모에 의해 형을 잃고 살인 누명을 쓰게 됩니다. 교도소 복역을 마친 태석은 살수에 대항하기 위해 팀을 만듭니다. 각자의 복수와 마지막 한판 대결을 위해 모인 태석(정우성), 주님(안성기), 꽁수(김인권), 허목수(안길강)는 승부수를 띄울 판을 짜고, 범죄와 결부된 승부가 시작됩니다.


바둑이라는 소재와 범죄, 액션이 결합한 소재가 영상 콘텐츠에서는 생소하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는 영화라기보다는 만화로 표현하기 더 쉬워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고스트 바둑왕>, <미생> 등 바둑을 다룬 만화들은 창작된 각국에서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제작팀도 이를 인식한 것인지, 주연배우를 등장시킨 포스터 외의 만화로 구성된 캐릭터 포스터 등을 별도로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만화의 칸 속에서만 이루어질 줄 알았던 스포츠와 판타지의 결합이 영화 속에서 재현되고 거기에 범죄 세계, 즉 느와르 장르의 색을 띠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느와르라는 이름의 심리 드라마 - <좋은 친구들>

 

▲ 사진14,15 영화 <좋은 친구들>의 포스터와 스틸컷 

 


현태, 인철, 민수는 우정을 나눈 친구입니다. 그런데 현태의 집에 강도화재사건이 발생하여 현태의 가족은 몰살당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경찰조차 의심한 현태는 결국 스스로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친구인 인철과 민수에게도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조사를 하면서 현태가 느끼게 되는 것은 친구에 대한 의심뿐입니다.


<좋은 친구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친구>와 같은,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범죄와 연루되면서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다만 <친구>가 관계를 와해시키는 환경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좋은 친구들>의 경우 친구는 물론 인간 사이의 보편적인 관계성 자체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가 느와르의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느와르보다는 심리 드라마로 보아 달라고 인터뷰하기도 하였고요. 


따라서 화려한 액션이나 거대 조직 등을 기대한 관객에게 이 영화는 실망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물의 관계성에 대해 관객이 몰입하고 따라갈 수 있는가가 이 영화의 흥행과 평을 좌우할 듯합니다. 다만 자칫 방향감각을 잃을 수 있는 영화의 전체 서사를 세 인물의 관계에 집중하였다는 점은 의의로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개봉한 느와르 영화들의 줄거리와 평가 등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친구>를 필두로 하였던 1980년대 조폭영화 열풍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친구>의 줄거리에서 우리는 ‘느와르’의 핵심이 되는 암울한 분위기나 범죄의 결말이 친구 관계의 와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나온 많은 영화는 <친구>의 완성된 서사보다는 명대사, 조폭이라는 소재에 혹하여 단순히 싸움을 보여주거나 조폭을 미화시키는 경향이 강했다고 평해집니다.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2014년의 느와르 열풍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신세계>는 일부 관객층에만 꾸준히 향유되던 느와르 영화를 다시 양지로 끌어오는 중요한 역할을 해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후 개봉한 <황제를 위하여> 등의 영화에서 우리는 또다시 조폭에 대한 미화나 필요 없는 느와르 설정의 도입 등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르나 소재의 트랜드성이라기보다는 콘텐츠 자체가 가지는 서사의 완결성과 메시지, 이를 뒷받침하는 연출력 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느와르 물에만 한정할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어두운 부분은 있으며 콘텐츠 제작자에게 이러한 부분은 한 번쯤 콘텐츠에서 다뤄보고 싶은 소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열풍'이나 유행 등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제작자의 신념, 즉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확실해야 존재해야 빛을 발할 것입니다.

 

필름 느와르가 처음 생겨난 1940년대와 홍콩 느와르가 유행한 1980년대 등은 각 나라에서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가 있던 직후였습니다. 어두운 시대에 사람들은 암울한 영화를 찾나 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또다시 느와르가 유행할 것인가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으나 느와르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에서 제작자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관객이 원하는 바를 함께 고려한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 사진 출처

- 표지 오퍼스 픽쳐스

- 사진1, 2 First National, Warner Bros

- 사진3 시네라인2

- 사진 4, 5 사나이픽쳐스

- 사진 6 Media Asia Films

- 사진7 사나이픽쳐스

- 사진8,9 오퍼스픽쳐스

- 사진10,11 장차

- 사진12,13 오퍼스픽쳐스

- 사진14,15 오퍼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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