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의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영화 <NLL-연평해전>

상상발전소/방송 영화 2014.06.12 11:03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 사진1  'NLL-연평해전' 이미지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국내와 일본을 오가며 열린 한·일 월드컵으로 전국은 붉은 악마와 태극기로 뒤덮였고, 4강 진출이라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선전으로 온 국민은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열기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 사건이 있습니다. 6월 29일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열리던 날, 오전 9시 54분 북한의 경비정 2척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였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남한 해군 고속정 4척이 퇴거하라는 경고 방송과 함께 교전 대비태세를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은 참수리 357호정을 향해 선제공격을 가했고, 조타실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곧바로 인근 해역에 있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정들이 교전에 합류하였고, 양측 함정 사이의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한의 대응사격으로 크게 격파된 북한 경비정은 10시 43분 퇴각하기 시작해 10시 50분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상하였고, 이로써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습니다.

 

1999년 6월 15일 오전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이전까지 ‘서해교전’이라고 불리다가 2008년이 되어서야 승전의 의미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명칭이 격상되었습니다.

 


▲ 사진2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모습


 

그러나 제2연평해전으로 인해 정장 윤영하 소령을 비롯하여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까지 6명의 해군이 전사하였고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참수리 357호 고속정은 침몰하였습니다.

 

평소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이었던 윤영하 소령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참수리 357호정을 이끌었던 정장이었습니다. 그는 교전의 시작과 함께 적의 정조준 사격을 몸으로 막아내고 전사하였습니다. 진급을 불과 이틀 앞둔 한상국 하사는 신혼 6개월의 새신랑이었습니다. 한상국 하사는 침몰한 배에서 40여 일 후 발견된 순간까지도 조타키를 꽉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조천형 중사 또한 신혼의 꿈에 젖은 젊은 아내와 백일이 채 되지 않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는 20M 함포 방아쇠를 당기다 포탄을 맞고 산화하였습니다. 참수리 357호정의 22mm 벌컨포 사수였던 황도현 중사는 함상에서 행사가 열리면 늘 사회를 도맡곤 하는 밝고 활기찬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황도현 중사는 당시 북한의 포탄이 머리를 관통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방아쇠를 꼭 쥔 채 전사하였습니다.

 

서후원 중사는 대구기능대를 다니며 정보기능운용기능사, 전산응용기공산업기사, 수치제어밀링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3개나 가진 전도유망한 엔지니어였습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 내연사임에도 불구하고 노출된 갑판에서 기관총을 잡고 끝까지 응사하다 전사하였습니다. 박동혁 병장은 동생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의무병으로 해군에 자원입대하였습니다. 빗발치는 총탄과 파편을 맞으면서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갑판 위를 뛰어다니며 혼신을 다한 박동혁 병장은 병상에서 84일간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순국하였습니다.

 

참수리 357호정에는 6명의 전사자뿐만 아니라 총알이 다리를 관통해 교전 후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정장을 대신하여 부하들을 지휘했던 부정장 이희완 중위, 왼쪽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도 한 손으로 대응사격을 멈추지 않았던 권기형 상병 등 바다 위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사력을 다해 싸웠던 젊은 국군장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이야기가 영화를 통해 다시 국민들에게 기억되려 합니다.

 


 

▲ 사진3  2013년 당시 재능 기부로 제작되었던 'NLL-연평해전' 포스터

 


사실 '제2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작품은 그간 여러 쟁쟁한 감독들이 관심을 보이며 제작을 준비해 왔습니다. 지난 2009년 곽경택 감독은 현빈·이정진·주진모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아름다운 우리>의 제작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백운학 감독 역시 <연평해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제작에 뜻을 내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감독의 영화는 2010년에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크랭크인이 무기한 연기되고 해군의 지원도 어려워졌으며, 상황적으로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려 끝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로제타시네마 대표 김학순 감독은 해군 병장 출신으로 2006년부터 ‘제2연평해전’에 관한 영화를 기획해 왔습니다. 그는 뜻을 함께하는 제작자들과 차근차근 영화를 준비해 나갔고, 2007년 당시 여러 영화 제작사가 탐내던 최순조 작가의 소설 ‘연평해전’의 판권을 사들이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곽경택 감독과 백운학 감독이 ‘제2연평해전’을 영화화하겠다는 계획을 나란히 발표하면서 투자는 분산되었고, 이내 2010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김학순 감독의 영화 또한 제작이 중단되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라는 이유로 재개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으나, 김학순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고 2012년 6월 영화 ‘NLL-연평해전’ 제작을 공식화하고 다시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김학순 감독은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연평해전 생존자들을 여러 차례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 해군의 훈련 현장마다 따라다니며 자료를 수집했고, 참수리 357호정의 정교한 세트를 제작하기 위해 위해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모형의 제작자를 수소문 끝에 찾아가 설계 내용을 알아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6년간 전국의 추모 행사에 일일이 찾아다니며 유가족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젊은 아들들의 고귀한 희생을 국민들은 기억해야 한다.’며 영화 제작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영화 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국방부, 해군과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되어 제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외부적으로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100여 명의 제작진과 배우들은 모두 재능 기부로 참여하며 제작비를 아끼고 또 아꼈지만, 제2연평해전을 영상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최소 60억의 제작비가 필요했습니다. 부족한 예산때문에 섬세한 장면의 표현을 위한 세트 촬영이 필요한데도 세트를 지을 비용이 마땅치 않아 포기하기도 하고, 카메라 한 대만으로 한 장면을 이리저리 돌려 찍기도 하였습니다.

 


▲ 사진4,5  제2연평해전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NLL-연평해전' 서포터즈


 

그리하여 ‘NLL-연평해전’ 제작사 로제타시네마는 대국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모금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학생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국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제작비 모금에 참여하였습니다.

 

구순 어르신의 꼬깃꼬깃한 용돈과 수년간 모은 온 가족의 돼지저금통, 해외 작전지역에서 고생 중인 장병들의 피땀 어린 급여도 있었고, 몇 달 간의 가족 외식비와 해외여행경비나 회갑연, 고희연 등의 행사까지 취소하고 그 비용을 후원금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해군 부녀자 회는 제작에 도움을 위해 전국 릴레이 바자회를 펼쳤고 전국의 학교와 단체들, 정˙재계 인사들의 후원 또한 잇달았습니다.

 

또한, 영화가 제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청년단체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에서는 ‘영화 NLL-연평해전을 위한 2030나눔 서포터즈’를 조직하여 영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거리에 나서 ‘제2연평해전’을 국민에게 알리고, 추모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영화 홍보에 앞장섰습니다. 그렇게 국민들은 기적의 행보를 함께 하였습니다.

 


▲ 사진6  'NLL-연평해전' 촬영 현장

 


전례 없는 대대적인 후원의 물결로 2013년 9월 기준 약 27억 원에 달하는 후원 기금이 모였고, 영화 ‘NLL-연평해전’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환경에서 제작에 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급사와 투자사 없이 영화진흥위원회 기금과 빈약한 제작 자금만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때와는 달리 전문 영화인들이 속속 합류하여 제대로 된 제작진 면모를 갖추고 예산이 없어 포기해야 했던 세트촬영과 장면들이 추가되고, 특수효과 및 CG 작업이 보강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투자, 배급사가 교체되고 주연배우들이 하차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NLL-연평해전’은 새로운 배급사와 투자 및 배급 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진구, 이현우 등의 배우들과 출연을 조율 중이며, 한국영화 사상 최초 3D 전쟁영화인 만큼 더 좋은 품질의 영화로 거듭나기 위해 재정비를 하고 촬영을 재개하면서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 사진7  제2연평해전의 참수리 357호정과 전사자들


 

2014년 6월, 12년 전의 그때처럼 전국은 또다시 붉은 물결로 뒤덮이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할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희미해져 가지만, 또 누군가의 아물어지지 않는 아픈 상처는 다시금 따끔거릴지도 모릅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젊은 청춘들이 영화를 통해 다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주었던 젊은 심장의 마지막 박동을,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국민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사진출처

- 표지 영화 'NLL-연평해전' 공식 홈페이지

- 사진1 영화 'NLL-연평해전' 공식 홈페이지

- 사진2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 페이스북 페이지

- 사진3 'NLL 연평해전' 페이스북 페이지

- 사진4,5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 홈페이지

- 사진6 'NLL-연평해전' 공식 홈페이지

- 사진7 '영화 「NLL-연평해전」을 위한 2030 나눔서포터즈' 페이스북 페이지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