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문화콘텐츠로 구현하기 가장 쉬운 콘텐츠 원형에는 단연 역사 속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만든 것은 과거의 역사이고, 따라서 우리가 역사 속 인물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들이 동일한 인물에 대해서 끊임없이 재해석을 해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일 것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사료들에 해석자의 상상력이 결합하여 나오는 결과물로서의 콘텐츠를 비교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상상발전소에서는 이미 콘텐츠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역사인물에 대해 개략적으로 다루어 본 적이 있는데요.('역사 품은 브라운관' - 매력적인 인물, 재생산의 의의) 이번에는 이 가운데에서도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 과거,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부터 시작하여 정조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소설, 드라마, 영화 등으로 재해석되어 왔습니다. 콘텐츠 원형으로서 정조대왕의 매력은 최근 개봉했던 <역린>의 흥행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먼저 정조라는 인물의 일생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에서 선왕으로 평가되는 왕으로는 정조를 제하고도 몇 명 꼽을 수 있지만 정조라는 인물이 스토리텔링적 측면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분쟁을 싫어하고 모든 붕당을 포용하며,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자 한 그의 정책이 정조 자신의 상처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 그림1 정조의 연대기

 


정조는 1752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소학>, <동몽선습> 등 유교적 역사서와 왕의 자질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시절의 교육은 훗날 정조가 탕평책을 비롯한 영조의 정책과 국가관을 계승하는 결과로 이어지지요. 


1759년에 세손으로 책봉되는 등 평탄한 듯 보였던 정조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완전히 뒤바뀝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논란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당쟁이라 불리는 권력싸움에 휘말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1살의 어린 나이였던 정조가 거대한 권력 투쟁의 피해자,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정조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나는 하늘을 꿰뚫고 사무치는 원한을 안고서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사람이다.” 


과도한 권력의 충돌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는지 가장 잘 알고 있던 정조가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영조의 정치관을 답습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1775년, 23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수행할 정도로 총명했던 정조는 1776년 영조의 죽음 이후 모든 붕당에서 관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과 서얼 출신의 인재 등용(서얼허통) 및 노비제의 개혁, 규장각 설치와 문신개혁 등 백성을 위한 개혁 정치를 펼쳤습니다. 


이러한 정책들 때문에 정조는 오늘날까지 바람직한 개혁정치의 표본이자 리더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우리가 잘 아는 실학자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등의 업적도 이러한 정책적 보호 하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노론 등 반대파 세력의 압박과 암살 위협,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사도세자를 지키지 못한 정조 자신의 책임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가 있었습니다. “왕이 된 것이 즐겁지 않다.”라는 정조의 말은 그래서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내/외적으로 작용하는 막중한 부담 때문인지, 정조는 조선의 신부흥기를 이끌어냈다는 평가에도 불구 1800년에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합니다.


신부흥기 조선의 중심, 권력의 폭력성을 가장 잘 아는 자가 권력의 꼭대기에 섰다는 아이러니. 이렇게 정조는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정조라는 한 인물의 일생에서도 그의 일생의 어느 부분을 다루느냐 혹은 어떤 성격적 측면을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다양한 콘텐츠가 파생되는 것이지요.


 


▲ 그림2 정조의 일생 중 특정 부분을 다룬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

 


정조를 다루는 영상 콘텐츠에는 대표적으로 정조의 일대기 전체를 다룬 77부작 드라마 <이산>(2007), 정조의 즉위 직후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 세력이자 기존 지배세력, 노론과의 싸움을 그린 영화 <역린>(2014), 이인화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정조의 의뭉스런 죽음을 중심으로 1800년대 조선의 당쟁과 음모에 초점을 맞춘 영화 <영원한 제국>(1995) 등이 있습니다. 


한편 정조 즉위 이후 다양한 계층의 관리 등용이나 천주교 등 타 사상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 등은 정약용, 박지원 등의 실학자가 활동하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는데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상 콘텐츠에도 정조는 도움을 주는 인물로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목민심서>의 저자 정약용을 탐정으로 가정한 드라마 <조선추리활극 정약용>(2009),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원작으로 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등에서 정조는 조언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로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몇 개의 작품에서 정조라는 인물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 사진1 드라마 <이산>의 프로모션 컷

 


드라마 <이산>은 <허준>(1999), <대장금>(2003) 등 인기 사극을 다수 연출한 이병훈 PD의 연출작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나 단막 드라마 등은 대부분이 정조라는 인물의 하나의 성격적 단면을 부각시킨 것에 비해 77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 이르는 정조의 일생을 다양하게 나타냅니다. 


따라서 단순히 ‘비운의 왕세자’ 혹은 ‘조선의 현군’ 등 하나의 수식어로 한정될 수 있는 정조의 성공과 실패, 야망과 절망, 빛나는 업적과 안타까운 사랑 등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아닌 인간 ‘이산’의 많은 모습을 77화에 나누어 면밀히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겠죠. <이산>에서 다른 영화들과 구분되는 것은 성송연(한지민 분)과 이산(이서진 분)의 사랑이야기가 서사의 핵심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선왕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성송연은 실제로 정조의 후궁 중 한 명인 의빈 성씨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의빈 성씨는 천민 출신으로 궁에 들어와 후궁에 봉해진 이례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아들이 세자로 봉해졌다는 것 또한 정조가 의빈 성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지요. 다만 그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드라마 속에 나타난 정조와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 등은 드라마적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사진2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스틸컷


 

2011년 개봉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주인공은 정약용을 모티브로 한 명탐정(김명민 분)입니다. 추리극과 코미디, 사극이라는 장르의 신선한 결합 덕분인지 4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는데요. 


영화의 전체적 줄거리는 명탐정이 공납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지만 이 영화에서도 정조(남성진 분)는 조연답지 않은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정조를 주연으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 그의 트라우마나 성장과정에서의 고뇌를 다루는 반면, 이 영화에서의 정조는 유쾌하고 호방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작중에서 명탐정은 공납의 비리를 해결하다 실수를 저지르거나 위기에 처하는 등의 일들을 겪는데, 이런 명탐정을 용서하고 다시 명을 내리거나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구해주는 것이 정조입니다.


영화 내에서 정조대왕의 비중이 많지는 않지만 천주교의 유입과 일부 관료들의 비리 등 다양한 사상과 인간상이 혼합되던 조선 후기에 ‘허당 명탐정의 활약’이라는 픽션적 요소가 개입될 수 있었던 것은 인재등용과 사상 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정조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현재 <조선명탐정 2> 역시 기획과정에 있다고 하니, '조선 신부흥기'라 불리는 정조 시대를 자유롭게 노닐던 명탐정이 또 어떤 활약을 하게 될지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사진3,4 <역린> 스틸컷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실제로 정조가 즉위식 때 말했다는 이 문장은, 영화 <역린>의 화두가 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역린>의 배경이 정조가 왕이 되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배후를 추적하던 정조 1년이기 때문입니다. 정조 즉위 직후 홍국영과 함께 노론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 세력을 정리하는 과정을 정치 스릴러, 액션 등을 가미하여 그려내고 있습니다. 


앞의 <조선명탐정>이나 작년 900만 관객을 동원한 <관상> 등 최근 사극이 코미디적인 장르와 결합되는 추세인 것에 비해 <역린>은 전체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때문에 정조 암살 음모를 둘러싼 ‘운명의 24시간’은 관객의 취향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아버지의 원수들과 함께 조정을 이끌어나가야 했던 정조의 고뇌와 당시 왕권을 둘러싼 분쟁을 시간을 들여 묘사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역린>에서 고뇌와 개혁의 인물로 묘사되는 정조(현빈 분)외에도 영화의 또 다른 묘미는 악역으로 상정된 어린 나이에 영조의 계비가 된 정순왕후(한지민 분)입니다. 정순왕후 역을 맡은 한지민 배우는 앞서 언급한 <이산>과 <조선명탐정>에서도 등장하여 정조와 깊은 인연을 자랑하는데요. 각 드라마와 영화에서 정조와의 로맨스를 보여 주는 성송연, 조선의 상단을 주름잡는 상인 한 객주 등으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한지민 배우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것도 정조 관련 콘텐츠를 즐기는 한 방법이 될 듯합니다.

 


 

위 영상 콘텐츠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정조의 일생에 콘텐츠 원형을 두고 거기에 연출과 각본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팩션에 기반한다는 점입니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의 장르를 지칭하는 신조어입니다. 따라서 위의 콘텐츠들이 제작된 것은 정조대왕이 불우한 어린 시절로 시작하여 암살로 의심되는 죽음까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콘텐츠로서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것은 창작자의 재량에 달렸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이는 비단 정조라는 한 인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원형으로 하여 콘텐츠를 다룰 때에 마땅히 지향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즉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가진 역사적 인물의 발굴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자의 상상력이 함께할 때 콘텐츠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우리 역사에 대한 재고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정도전>을 비롯하여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 <명량-회오리바다> 등이 개봉을 앞둔 이 상황에서 <역린>을 필두로 한 정조, 그리고 사극 열풍은 우리 역사 콘텐츠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 참고자료

- kocca 문화콘텐츠닷컴

- 팩션 어원: 두산백과


ⓒ 사진 및 그림 출처

- 표지 쵸이스컷 픽쳐스(주)

- 그림1~2 작성자 편집

- 사진1 MBC 홈페이지

- 사진2 청년필름(주), 위더스필름(주)

- 사진3,4 쵸이스컷 픽쳐스(주)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