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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문화원형스토리] 서울시 3.1운동 표지석 투어

by KOCCA 2013. 8. 23.

 


 

 

 지난 해 한 설문조사에서 ‘안중근 의사를 아십니까?’란 질문에 ‘안과의사인가요?’라고 답한 고등학생이 충격을 준 바가 있는데요. 자라나는 세대의 역사의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광복 68주년을 맞은 올해, 아이들과 함께 서울시의 3.1운동 관련 표지석을 탐방하며 그 날의 함성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 독립선언문 배부터 
  

사진 2. 독립선언문 배부터의 현재 주변 모습과 기념표석

 

‘독립선언문 배부 터’는 말 그대로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천도교 대표 등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 배부하던 곳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는 보성사 사장 이종일의 책임하에 비밀리에 인쇄가 시작되었고 배포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 학생단 등으로 분담하여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3월 1일 전까지 전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할 수 있었다고 해요. 이 배포 작전은 3.1운동 전, 온 국민이 총궐기할 수 있었던 전초적인 힘을 주지 않았을까요?

 

◎ 종로 YMCA 
  

사진 3. 종로YMCA 3.1독립운동 유적지 터의 현재 주변 모습과 기념표석

 

 3.1운동의 3대 주축 세력인 학생단의 거점장소이자, 독립운동 준비 장소였던 ‘종로 YMCA’. 각종 민족운동 집회가 개최되었던 곳이죠. 국내에서 3.1운동과 관련하여 학생단의 독립운동이 처음 조직화되기 시작한 것은 1919년 1월 하순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청년회 청년부의 회원모집을 협의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시내 각 전문학교 대표급 학생 9명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종로 YMCA를 지날 때마다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푸른 청춘이 생각날 듯 합니다.


◎ 세브란스 병원 
  

사진 4. 독립운동 유적지 세브란스 병원의 현재 주변 모습과 기념표석

 

독립운동 유적지로 손꼽히는 곳 중에 '세브란스 병원' 또한 중요한 장소였다고 해요. 이 곳은 3.1운동을 위해 학생 대표자와 기독교계 지도자가 연석회의를 한 장소였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각 종교계는 물론, 각계각층이 힘을 합쳐 거사를 준비했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장소를 의미 없이 지나쳤던 우리가 부끄러워지네요.

 

◎ 손병희 집터
  

사진 5. 독립운동가 손병희 집터의 현재 주변 모습과 기념표석

 

3.1운동 거사 전날인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 중 23인은 독립선언식 절차를 최종 점검하기 위해 가회동 손병희의 집에 모였다고 합니다. 거사를 앞두고 어떤 때보다, 어떤 장소보다 가장 긴장감과 비장함이 느껴졌을 곳이 아니었을까요? 손병희 선생은 구한말의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입니다.


◎ 보신각 앞
  

사진 6. 3.1독립운동 기념터 보신각 앞의 현재 주변 모습과 기념표석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가장 크게 들렸을 곳이 바로 보신각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종로 보신각 앞은 1919년 3월 1일 시위 군중들의 타종을 시작으로, 3.1운동의 상징적 구심점이 되었죠. 그 이후, 임시정부(한성정부)의 수립을 선포하는 4월 23일의 국민대회가 열린 곳도, 이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보신각 앞을 지날 때, 이 기념표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네요.

 

◎ 3.1독립운동 기념터(선은전 광장)

 

사진 7. 3.1독립운동 기념터(선은전 광장)의 현재 주변 모습과 기념표석

 

표석의 이름만으로도 가장 치열했을 것 같은 장소죠. 이 장소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던 시위대와 이를 가로막는 일제관헌이 격돌했습니다.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시작으로, 오후 3시 경 덕수궁 대한문을 지나 장곡천정(현 소공로)를 거쳐 남산 조선총독부를 향해 행진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렬은 지금 기념표석이 있는 자리인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앞에 이르자, 학생과 시민이 합류하여 인파가 3천 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일제 군경과 맞섰던 시위대의 용기가 용맹스럽습니다.

 

◎ 마포전차 종점 
 

사진 8. 독립운동 유적지 마포전차 종점의 현재 주변 모습과 기념표석

 

독립만세운동의 종점지였던 '마포전차 종점'입니다. 오후 8시경에 이르러서 약 1천 명의 군중이 이 곳에 모여 끝까지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것처럼 서울 곳곳에서의 독립만세시위는 해가 저물도록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독립선언의 공약삼장(公約三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질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수십만 명의 군중 활동에도 단 1건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죠. 세상에 이런 평화적인 독립 운동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어떠한 민족보다고 가장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독립의지를 표현했던 우리 조상들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3.1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막상 표석을 따라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그 준비과정과 전개과정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말, 기념표석을 따라 걸으며 3.1운동 그 날의 거국적이고 감동적인 함성을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 이 기사는 2010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프로젝트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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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모든 사진은 문화콘텐츠닷컴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에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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