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소스 멀티 유즈는 신기루인가, 아니면 오아시스인가?

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2013. 6. 21. 10:21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이상민 (소설가, 칼럼리스트, 컨텐츠 기획자)



21세기는 문화산업에서 각국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고 최후 승부처가 바로 문화산업이다. 이것은 2005년에 타계한 세계적인 석학이자 현대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그의 예견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듯, 오늘날 문화산업은 경제성장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고, 전체산업에서의 비중뿐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도 점점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것은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3년 기준으로 국내문화산업의 규모는 약 41조 원(2003년 기준) 수준이며 계속 성장해오고 있다. 한편 세계문화산업의 연평균성장률은 약 5.2%로 전체경제성장률인 3.2%를 훨씬 웃돌고 있어 문화산업의 규모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출처: 문화콘텐츠란 무엇인가, 최연구, 2006.2.28, ㈜살림출판사 - 살림지식총서 217)


이제 문화산업은 국가 브랜드라는 차원에서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이런 문화산업 시장의 성패는 얼마나 뛰어난 양질의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에 달렸다. 또한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전략이 요구되는데 그중에서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이하 OSMU)란 하나의 콘텐츠, 혹은 소스를 게임, 영화, 출판, 완구 등 다양한 매체/방식으로 판매하여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하나의 인기 소재(이를 테면 인기 캐릭터)만 있으면 추가적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상품으로 전환해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는다. OSMU의 가장 큰 장점은 마케팅 비용을 상대적으로 줄일 뿐만 아니라 한 장르에서의 성공이 다른 장르의 문화상품 매출에도 영향을 끼치는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데 있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많은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OSMU’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너나할 것 없이 ‘OSMU’라는 포맷으로 콘텐츠를 개발하리란 단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OSMU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십수 년 동안 국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OSMU의 사례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만큼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덤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소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OSMU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콘텐츠라면 누가 뭐래도 조지 루카스의 출세작 <스타워즈>다.


<스타워즈>는 77년 영화로 개봉한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게임, 완구, 애니메이션, 출판 등 거의 모든 매체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또한 상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프렌차이즈 시리즈이다. <스타워즈>와 관련된 다양한 부가상품들은 지난 36년 동안 천문학적인 수준의 수익을 냈고 이후에도 계속 벌어들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얼마나 벌어들였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워즈>라는 원천 소스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세상에 선보였던 스타워즈 게임들은 단순히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는 동어반복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원작의 설정을 빌려와 때로는 후일담을, 때로는 프리퀄을,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또한 원작에선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던 캐릭터들을 각각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혀 새로운 시각/해석으로 <스타워즈>라는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게임들도 많았다. 이것은 원작을 몰라도 스타워즈 월드를 즐기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냈고, 더 많은 팬을 확보하는 힘이 되었다. <스타워즈>가 성공한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듯 다양한 부가상품들을 창출해내는 과정의 중심에 원작자인 조지 루카스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OSMU가 성공하기 위해선 원천 소스에 대한 이해와 장악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동안 국내에서 OSMU를 표방했던 다양한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를 했던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90년대 초반,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통해 데뷔해 선풍적인 인기를 거둔 소설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이우혁의 <퇴마록>이 영화화 결정이 나자 뚜껑을 열어보기도 전에 성공적인 OSMU의 모델로 남을 거란 성급한 기대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의 낙관적인 사전 기사와는 달리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란 타이틀을 내세워 개봉한 영화<퇴마록>은 원작의 팬들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흥행도 참패를 면치 못했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앞서 예를 들었던 <스타워즈>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걸었기 때문이다. 원작자를 배제하고 원작에 대한 이해도 태부족인 상태에서 단지 누적 판매 1천만 부라는 인기에만 기댄 아주 안일한 기획이었다. 제작진이 원작자를 조금만 더 배려하고, 원작의 팬들이 무엇을 바랐는지 알았더라도 영화<퇴마록>은 적어도 그런 결과를 낳진 않았을 것이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OSMU에 있어선 미국에 버금가는 문화콘텐츠 강국이다. 특히 애니메이션 산업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인프라는 엄청난 강점이다. 최근 일본 TV 애니메이션 시장을 들여다보면 오리지널 각본보다는 원작이 있는 2차 창작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라이트노블이 있다. 영미권의 영어덜트 소설에 비유할 수 있는 라이트노블은 일본 특유의 문화와 정서에서 파생된 새로운 경향의 소설군이다. 라이트노블의 정의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만화가 갖고 있는 비주얼이 입혀진 소설이라는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렇다보니 라이트노블은 기존의 소설들보다 애니메이션과 같은 영상매체로 옮기기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마켓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 라이트노블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있다. 일본의 OSMU가 대단히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데엔 부가상품을 창출해해는 인프라, 그리고 그것을 소화하는 다양한 마켓이 있기 때문이다(이 부분에 대해선 우리가 심도 있게 고민 해봐야할 부분이다. OSMU가 정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 아니면 우리 환경에는 맞지 않은 방식은 아닌지).

 

   

 

여기서 잠깐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가 참여한 OSMU 프로젝트인 <더 라스트 뱀파이어 블러드>라는 작품이 있다. ‘사야’라는 이름의 뱀파이어 소녀가 주인공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시이 감독은 <야수들의 밤>이란 소설을 집필했다. 국내에도 소개가 된 이 소설은 극장판 <더 라스트 뱀파이어 블러드>와는 시간적 배경이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몇 년 후에 제작된 TV판 애니메이션인 <블러드 플러스>는 훨씬 더 훗날의 일을 그렸고, 가장 최근에 제작된 <블러드c>는 주인공의 설정만 빌려온 외전격인 성격을 띠고 있다. 또, 국내 여배우인 전지현이 주현을 맡은 실사 영화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일련의 작품들이 다루는 이야기가 전부 다른 시간대, 내용을 다루고 있어 마치 연대기를 보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블러드> 프로젝트는 OSMU에 필요한 기획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흔히 우리 대중문화계를 진단하면서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기획’의 부재다. OSMU에서 기획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하나의 원천 소스(혹은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가?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원천 소스에 대한 이해와 장악력이 충족되었다면 다음은 ‘기획’이 관건인 것이다. 그래서 좋은 프로듀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현실에서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기획보다는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앞서 <퇴마록>의 예를 들었지만 늘 안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근래에는 성공적인 사례들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뮤지컬로 시작해서 소설과 연극, 영화로도 개발되어 흥행을 거둔 <김종욱 찾기>라든지, 인터넷 소설로 시작하여 TV드라마에 이어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된 <옥탑방 고양이>는 성공적인 OSMU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나려면 좋은 원작(소스)의 발굴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뛰어난 기획자, 그리고 매체(분야) 간의 유기적인 협업이 이뤄져야할 것이다.


얼마 전, <퇴마록>의 원작자가 직접 영화화를 기획하고 주도한다는 기사가 났다. 예단은 금물이지만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흐름으로 이어져서 우리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가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