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영화 <장희빈,1961>

 

시리즈 연재물 <한국영상콘텐츠가 사랑한 역사인물>에서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방송영상콘텐츠와 영화영상콘텐츠 속에서 많이 등장한 역사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그 인물들이 왜 영상콘텐츠에 많은 회수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 영상콘텐츠, 역사 속의 장희빈

 

최근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까지 숙종대의 후궁 희빈 장씨는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영상콘텐츠에만 총 9번 등장했습니다. 그 때문에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에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태희 씨에게 ‘9대 장희빈’이라는 별칭까지 생겨날 정도였지요.

 

▲ 사진2 영화 <요화 장희빈, 1968>

 

최초로 희빈 장씨를 다룬 영상콘텐츠는 1961년 영화 <장희빈>입니다. 뒤이어 1968년에는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요화 장희빈>이라는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요화’라는 단어에서 대번에 알 수 있듯이, 이 당시 장희빈의 캐릭터는 ‘요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뒤이어 1971년에는 TV드라마에 장희빈의 캐릭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에서 그리는 장희빈의 캐릭터는 이전에 나온 두 편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요부였습니다.

 

 

▲ 사진3 SBS <장희빈>의 정선경

 

그 이후 장희빈은 1981년 MBC<여인열전-장희빈>의 이미숙, 1988년 MBC<조선왕조 500년>의 전인화, 1995년 SBS<장희빈>의 정선경을 거치며 기존의 ‘요부’의 이미지를 벗고 ‘당차고 섹시한 악녀’로 변신합니다. 2002년 KBS2<장희빈>의 김혜수 까지의 여배우들은 이와 같은 캐릭터에 맞는 도도한 이미지의, 약간은 표독스러운 인상을 줄 수 있는 배우들이었습니다.

 

 

▲ 사진4 MBC <동이>의 이소연

하지만, 2010년 MBC<동이>의 이소연은 이전과는 다른 장희빈의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게다가 이전의 영상콘텐츠들이 전부 장희빈을 주연으로 내세운 것과 다르게 이 드라마는 동이,즉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가 주인공인 드라마였죠. 조금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가장 역사 왜곡을 많이 한 드라마로 거론되고 있지만, 새로운 시각을 가진 드라마라는 점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SBS<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여태까지 가지고 왔던 장희빈의 이미지를 전부 던져버린 파격적인 시각에서 장희빈을 재조명 하게 됩니다.

 

 

▲ 사진5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포스터

 

◎ 마치 드라마와 같은 질곡의 인생을 살다간 여인?

 

희빈 장씨는 정9품의 역관 장현과 계실 파평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1남 1녀의 막내딸입니다. 아버지는 중인 신분이고, 어머니는 노비의 신분이라고 <숙종실록>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종모법(신분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법)에 따라 희빈 장씨는 천인이 됩니다. 역사에 따르면 천인인 희빈 장씨는 궁녀로 입궐하고, 우연히 숙종의 눈에 띄고, 후궁이 되고, 품계가 차근히 오르고, 마침내는 왕후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 사이에는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에게 내쫓김을 받았다가 다시 입궐하게 되고, 숙종의 후비 인현왕후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다시 빈으로 강등됩니다. 이 사실로만 본다면 인물의 삶을 따로 각색하지 않아도 한편의 드라마,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 사진6 <숙종실록>의 기록 중 한 구절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정설로 알고 있는 희빈 장씨에 대한 기록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희빈 장씨의 이미지를 전달해 주었던 기록들인 <숙종실록>, <사씨 남정기>, <인현왕후전> 등은 모두 인현왕후의 측근들이 쓴 기록이라는 점이 이 주장에 힘을 더해주는데요. <숙종실록>의 경우 인현왕후의 둘째 오빠인 민진원이고, <사씨 남정기>는 전형적인 서인의 한 사람인 김만중이 썼으며, <인현왕후전>은 작자 미상이나 인현왕후의 측근 궁인 중 한사람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입니다.

 

 

▲ 사진7 왼쪽부터 희빈 장씨가 묻혀있는 <대빈묘>,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인 <명릉>

 

실제로 희빈 장씨의 어머니는 노비의 신분이 아닌 중인의 신분이었고,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장현의 첩이 아닌 정실부인 이었으며, 민진원이 실록에 기록한 바와 같이 조사석과 사통하였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 숙종이 정사에 희빈 장씨를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실제로는 그 총애의 정도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릅니다.

 

▲ 사진8 취선당 터인 낙선재

 

숙종은 지금의 창경궁과 창덕궁의 사이를 잇는 낙선재의 근처에 희빈 장씨를 위해 ‘취선당'을 지어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실제로 낙선재 근처의 너른 잔디밭이 취선당 터라고 하는데, 이곳은 창덕궁의 후원과도 가깝고 몫이 좋아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또한, 희빈 장씨가 취선당에서 사사된 사실은 숙종이 희빈 장씨를 극진히 총애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됩니다. 후궁은 본래 궁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안되는 법도가 있었고, 사약을 내리는 경우는 시신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어 그렇게 해석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아들을 낳은 숙빈 최씨의 경우는 그 때문에 희빈 장씨의 사사는 서인과 남인의 극렬한 세력 다툼 속에서 경종을 지키기 위한 숙종과 희빈 장씨의 최후의 처단이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이렇게 숙종이 생전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희빈 장씨라는 가설 아래 만들어져 지극히 멜로의 성격을 띈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 사진9 희빈 장씨의 아버지 장형의 묘

 

또, 희빈 장씨의 집안이 알려진 바와 같이 몹시 천하거나 불우한 집안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아버지 장형은 정9품의 역관이었고, 외할아버지 윤성립은 종4품의 역관, 외삼촌은 육의전의 면포상인, 할아버지 장응인은 정3품의 무관, 삼촌인 장형은 종1품의 숭록대부이며 거부, 친오빠는 내금위 소속의 무관이었다고 합니다. 한양의 거부였던 삼촌인 장형이 남인의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어 대왕대비 전의 궁인으로 입궁할 수 있었고, 대왕대비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니 실제로 가장의 역할을 하며 입궁하였던 궁녀들과는 그 모양새가 다른 것 같습니다.


 

▲ 사진10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장옥정 역의 김태희

 

 

장희빈, 앞으로의 영상콘텐츠 속에서는 어떻게 발전할까?

 

최근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이전에 우리에게 다가왔던 장희빈과 다른 캐릭터의 장희빈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서 시청자들은 이전의 장희빈과 다르게 설정된 주인공 옥정의 모습이 낯설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것이 결국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시청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고, 제작진은 캐릭터의 성격을 완전히 없애고 숙종과 장옥정과의 멜로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새롭게 변모하고자했던 장희빈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 점차 악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장희빈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틀에 박힌 모습으로 존재한다면, 앞으로의 장희빈은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발판삼아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새로운 장희빈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역사왜곡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탄탄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현왕후의 측근들이 기록한 장희빈의 모습과는 다른 측면의 캐릭터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봅니다.

◎ 사진출처

- 사진1 네이버 영화 캡쳐

- 사진2,3,4,5,6,10 각 방송국 드라마 캡쳐

- 사진7,9 구글 이미지검색

- 사진8 다음 블로그 <메아리>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