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간의 조건'

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2013.03.11 11:19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간의 조건'

 

 지상파DMB 한국DMB㈜ QBS
이희대 편성제작팀장

  

 

 휴대폰, TV, 인터넷 ... 너무도 익숙한 현대인의 필수품인 이 세가지를 떼어내고 장기간 생활할 경우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이처럼 흥미로운 기획으로 시작되었던 KBS의 파일럿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이 올 1월부터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다. 프로그램이 의도했듯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시청자들도 공감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파일럿 시리즈 안에서 출연진들이 특히 어려움을 호소했던 장면들은 아무래도 휴대폰과 관련된 것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현대의 휴대폰은 말 그대로 스마트한 폰으로 역할하며 이 프로그램에서 금지한 휴대폰, TV, 인터넷의 3가지 기능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이 같은 봉인이 해제되었을 때 그들이 가장 만면에 화색을 띄었던 기기가 바로 휴대폰이었다.

 이러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특히 공감을 느꼈던 인상적 장면 중 하나는 휴대폰을 압수당한 출연진들이 아주 가까운 지인의 전화번호조차도 기억하지 못해 통화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해 쩔쩔 매던 상황이었다.


 수백 명의 전화번호를 저장해주고, 정보를 검색, 영화를 예매하거나 주변의 맛 집을 찾아내는 등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는 것도 인정되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드는 대목이다. 저장된 번호의 폰이 없으면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전화를 걸 수 없고, 간단한 사자성어도 검색부터 손이 가고, 내비게이션이 없이는 길도 못 찾게 되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자조석인 우려가 남 말이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저명한 정보기술 미래학자인 니컬러스 카는 이러한 우려가 단지 걱정만 할 수준이 아님을 담아 책으로 펴낸 바 있다. 작년 2012년 한해 국립중앙도서관 이용자가 많이 찾은 책 베스트 5에도 꼽힌 바 있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는 인터넷은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 처리에는 도움을 주지만, 집중력이나 깊이 있는 사색에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PC나 스마트폰 사용으로 정보량은 급증했으나 그걸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사고 기회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인간은 니컬러스 카의 말처럼 인터넷, 스마트폰 등 문명 기기들에 종속되어 계속 더 '인간의 조건'을 잃어가게 되는 것일까?  

 

 

 

그의 책의 처음과 끝에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슈퍼 컴퓨터 '할'(HAL 9000)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저자는 '할' 이야기를 빗대어 현 디지털 시대의 인터넷, 정보기술, 스마트기기에 길들여져 사고와 스키마 방식 자체도 이들의 인터페이스 형태로 귀속되어가고 있는 인류에 대한 경고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작 영화에서 아직도 칭송 받는 유명한 Scene 중 하나는 일명 '뼈다귀' Scene이 있다.


영화 도입부, 인류의 시조격인 유인원들이 등장한다. 이 유인원들이 처음 발견한 도구이자 무기가 바로 '뼈다귀'다. 한 유인원이 이 도구를 사용 후 몸부림 치다 하늘 높이 던지는데, 빙글빙글 하늘에서 회전하던 '뼈다귀'는 곧바로 2001년 우주 상공의 '우주선'으로 점프 컷 한다. 무려 3만년 이상을 한 컷으로 건너 뛴 편집이다!


작고한 감독의 마음까지는 알 수 없으나, 이 Scene의 의미는 아마도 석기시대로부터 21C에 이르기까지 '인류'로 이름 붙여진 이 영장류들이 바로 이 '도구'와 함께 진화하며 살아 오고 있음을 은유한 것이 아닌지 생각한다.

 

 저자도 이 '도구' 또는 도구에 기반한 '기술'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도구에 대한 두 가지 오래된 시각을 소개한다.

 

 하나는 기술 결정주의, 또 하나는 도구의 사회구성주의다.

 

 기술 결정주의에 따르면 기술의 진보는 기술 스스로의 자주적 힘으로 발전해왔고, 인간과 사회의 통제와 관련 없이 자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인간 역사의 발전은 바로 이 기술 변수에 의존하여 영향을 받으며 진행되어 왔다는 주장이다.
도구의 사회구성주의는 인간 사회가 기술을 구성한다, 즉 도구 또는 기술이란 사회 집단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구성되는 일종의 수단이지 그 스스로의 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기술은 이처럼 수용자에 의해 변형되는 것이며 종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이 책은 이 오래된 역사적 논쟁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전하고 있다.
기술 결정주의로 해석되어야 할 명백한 시점이 왔으니 이를 인정하되 기술의 유혹에 그대로 순응하지 말고 사회 구성주의의 시각으로 현실을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

 

 니콜라스 카의 이야기는 이 같은 상황에 현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매우 공감이 가는 사례들과 인용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온라인 상의 편리한 DB에 기대어 인간이 기억이라는 활동 자체를 점차 적게 하거나 또는 인터넷이 DB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의 인터페이스에 오히려 따라 가게 되면서 마치 기계인  '할'에게 의존하는 우주선 승무원과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앞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살펴본 것처럼 거의 수 만년간 인간이 도구와 함께 진보한 것은 명백하다. 다만, 이러한 도구의 발전이 필연인가 아니면 인간이 선택한 것인가에 대해 시각을 어떻게 보느냐는 어떤 예를 드느냐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다고 보인다.

 

 저자는 계산기의 등장은 오히려 단순 작업을 축소 시켜서 그 상위의 수학적 사고를 축적하는데 도움이 된 반면, 온라인 또는 인터넷은 오히려 넘쳐나는 인스턴트 정보에 의해 단편적 사고를 갖게 하기 쉬울 수 있음에 대한 지적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갖게 해준 정보의 보편적 접근성, 그리고 상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명제는 이를 뛰어 넘는 도구로서의 역할과 의미라는 생각이 함께 든다.

 

 '조선왕조실록' 사이트(http://sillok.history.go.kr)를 예로 들어보자.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중인   이 사이트는 500여간 집필된 약 1700여권의 조선왕조실록의 DB를 통해 조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외교"을 검색하면 약 505건, "요리"를 검색하면 1812건이 검색되고 이중 왕조 별로 또 각 색인 별 당시 기사를 살펴볼 수 있는 식이다. 해당 사이트는 역사학계뿐 아니라 이종 학문의 학자들, 초 중고 학생들, 요리연구가, 드라마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만약,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 등이 지원되지 않았다면 무려 500여 년간의 역사 기록을 일반인이 접근해 살펴본다는 것은 난센스였을 것으로 보이고 또한 사학과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학생, 학자, 전문가들에게 이 같은 학문적 통섭의 기회가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저자가 우려한 바와 이들은 그저 검색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왕조에 해당 검색어가 많이 나왔다면 당시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을 지를 유추하고 이를 탐구해 자신의 분야에 응용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사고의 단편, 획일화라는 단점보다는 정보의 보편적 접근성을 통해 이종 학문간의 새로운 결합을 시도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한 예로 살펴볼 수 있겠다.

 

 도구가 인간의 생활 양식을 바꾸기도 하지만 역시 이를 수용하여 다시 재 발전 시키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더 동의하게 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구가 그러한 쪽에 더 가깝다라는 생각에서 또한 기인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주창한 동기부여론을 보면 인간이 추구하는 동기에는 크게는 생존적 동기와 사회적 동기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생존적 동기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배고픔, 갈증, 추위를 회피하고 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상태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상태를 원하는 것이 본능이라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동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욕망들이다.  종족 번식과 관련된 성욕(sex), 이성간 사랑(love),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parenthood), 타인과의 경쟁과 관련된 우월욕구와 질시(Jealousy), 집단으로 행동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동정(sympathy), 우정(friendship), 존경-복종(respect-obedience) 등은 대표적인 사회적 동기이다. 

 

 인간은 이러한 욕망과 동기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제품을 만들어 낸다, 즉 도구를 진화 시킨다.

 

 PC와 인터넷이 우리 뇌의 신경 시스템과 많은 부분 닮았고, 또 어느새 그 처리과정에 익숙해지다 보면 너무 편해져서 뇌의 능력이 감소될 것이라는 경고는 물론 의미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 보았듯 인간은 바로 이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내재된 본능이었고, 또 하나의 본능적 욕구인 사회적 동기도 인터넷이 제공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 기능으로 충족되고 있기에 당 시대 최고의 발명품인 이 인터넷을 우리는 향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과연 수만 년간 도구를 진화시켜온 인간의 욕망이 현재 인터넷 또는 스마트폰이라는 발명품의 스키마에 국한되어 종속될지 아니면 그 이상의 욕망 실현 도구를 다시 만들어 기술 결정주의자들과의 싸움을 재연할 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도구의 발전 속에서도 '인간의 조건'은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