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 시대가 있었다. 소리라든지 대사 없이 오로지 행동으로만 메시지가 전달되는 영화였다. 무성영화라는 그 자체만으로 여전히 그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화가 주는 박진감과 생동감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바로 사운드(음향)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주얼이 강조되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그 시각적인 만족감의 이면에는 사운드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음향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영화계에서 배우와 달리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게 스태프라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음향 관련 스태프는 영상을 담당하는 이들에 비해서 훨씬 인원도 적다 보니 더 노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음향 엔지니어이자 독립영화 기획과 제작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인식 음향감독을 만났다.

소리 외적으로 내면을 채워야 하는 이유

가수가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성대를 보호하고 아낀다면 음향감독이 신체 부위 중 가장 애정을 갖고 관리하는 기관이 있다면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바로 귀다. 일반 사람들에 비해 음향감독의 청각은 훨씬 더 섬세하고 예민하다고 한다. 박인식 감독이 이 분야 일을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라고 한다면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 가질 않는다는 것.

“시끄러운 곳에는 가질 않습니다. 나이트클럽 간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네요. 차에서 라디오나 음악을 들을 때도 볼륨을 5 이상 넘기지 않습니다. 고막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소리와 귀는 묘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요, 소리를 크게 들을수록 귀는 멀어지고 작게 들을수록 섬세해집니다. 오죽하면 여러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옆 테이블이나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나누는 얘기도 저에겐 다 들릴 정도죠. 얘기가 전혀 안 들릴 곳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제가 대화에 불쑥 불쑥 끼어들 때면 다들 깜짝 놀라죠. 이런 커피점에서 일어나는 많은 소리 중에서 음악과 대화가 구분돼 들리는 것도 저에겐 새로울 것도 없고요.”


존재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를 상대하기 때문일까, 음향감독의 귀는 왜곡된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청각이 발달돼 있고 섬세하기 때문에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하더라도 고가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고가라고 하더라도 기준이 달랐다. 그들이 사용하는 건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는 헤드폰이지 듣기 좋은 소리로 들려주는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작업할 땐 왜곡되지 않은 날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향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귀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좋은 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때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했기 때문에 소리에 대한 적응이 조금 빨랐을 수도 있었겠죠. 그렇다고 인문학적인 베이스를 결코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기술적인 스킬만으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소리 외적으로 자신의 내면이 채워져 있어야 감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음향을 만들 수 있겠죠. 배우들 목소리를 담을 때도 다음 감정이 어떨 것인지 그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결과물은 분명 다릅니다.”

박인식 감독은 이를 위해서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 필사하듯 소리가 강조된 영화를 많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영화도 그렇게 복기하면서 보다 보면 사운드뿐만 아니라 편집까지 뜯어볼 수 있는 능력이 탄탄하게 쌓인다는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직

음향감독은 영화에 어울리는 소리를 결정하며 그에 맞는 소리를 영상물에 넣는 작업을 진행한다. 영화 속 대사는 촬영할 때 동시녹음을 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서 촬영 또는 편집이 끝난 후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하기도 한다. 녹음된 소리 이외에 천둥소리, 빗소리, 자동차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보강하거나 섞어서 적절한 장면에 넣는 것도 음향감독의 몫이다. 이처럼 음향감독이 하는 일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보니 그들을 사운드 수퍼바이저, 사운드 엔지니어, 음향 디자이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음향감독은 현장에서 촬영할 때 녹음하는 감독과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하는 감독으로 나눠집니다. 대화를 비롯해 부족한 소리를 더빙하거나 효과음악을 입히는 것은 물론, 음악감독이 만들어놓은 음악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부터 5.1채널로 믹싱하는 작업 등 상당히 다양합니다. 중요한 건 대사를 포함한 모든 사운드의 현장감 있게 전달하는 것이겠죠. 1차적으로는 대사가 될 것이고요. 극장에서 관객이 듣는 소리는 알게 모르게 사운드가 첨부된 걸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음향감독에게 주어지는 여건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촬영 현장에 50여 명의 스태프가 있다면 대부분은 비주얼에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할 정도다 보니 음향 파트는 소홀해지기 쉽다. 아무래도 현장에서는 시각적인 그림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좋은 소리를 담고자 하다 보면 다른 파트와 본의 아니게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그렇다고 후반작업할 때 편하냐, 그런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그때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죠. 편집이 다 끝난 상황에서 녹음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이처럼 음향작업이라는 건 정해져 있는 데드라인 앞에서 언제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진행되곤 하죠. 마지막 공정이다 보니 그만큼 책임감도 커지고요.”

박인식 감독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을 물려받은 끼와 열정으로 돌리기도 했지만, 끈질기게 공부할 수밖에 없는 노력 없이는 버티기가 힘든 곳이 이 쪽 분야라고 소개했다. 나만의 것이라는 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걸 보고 경험하며 공부해야 카피를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이유에서다.

“음향 관련 일이 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진입장벽이라는 게 존재하죠.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다 줘도 배우거나 경험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섬세함을 요구하는 게 사실이고요. 독립영화에서도 촬영감독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녹음 쪽은 힘들어하거든요. 그만큼 전문적인 일이라는 것이겠죠. 영화 쪽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음향은 자신이 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은 없을 거에요. 전문 기술직이기 때문이죠.(웃음)”


콘텐츠는 서로 일맥상통한다

박인식 감독이 음향과 인연을 맺은 건 고등학교 졸업 후 방송 관련 녹음실에 취업하면서부터였다. 녹음실에 취업한 건 주변 눈치 때문에 취업할 곳을 찾다 그나마 여기가 음향을 다루다 보니 기존 음악과 비슷할 것 같아서 취업을 결정했다는 다소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고.

“2년 정도 녹음실에서 어시스트로 일했어요. 그러다 <전원일기> <베스트극장> 등의 프로그램에 현장에 나가면서 동시녹음이라는 걸 경험했죠. 저로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제작현장에 함께 있다 보니 감독, 배우, 스태프들의 역할이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가 된 것이었죠. 비록 제가 맡고 있는 분야는 음향이었지만 하나를 전문적으로 파고 들어가니 나머지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8년 정도 방송 음향 관련 일을 하다 박인식 감독은 지난 1996년 영화계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영화는 방송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신천지였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정성을 들이는 부분부터 방송과는 달랐고 영화 쪽에서 전달하는 솔직함도 박 감독과는 잘 맞는 것 같았다. 2년이 지난 1998년부터 그는 음향감독이 아닌 영화 전반적인 기획과 제작을 맡는 감독으로서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화제가 된 독립영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1999년 화롯가의 아이들이라는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어요. 평소에는 각자 자기의 일을 하다가 영화 프로젝트가 생기면 모여서 작업을 하는 식이었죠. 저는 기존 상업영화에서 음향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번 돈을 독립영화 제작에 사용했죠. 콘텐츠라는 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독립영화 기획과 제작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박인식 감독은 ‘극장에서 돈 주고 보는 영화만 영화가 아니라 개인의 기억도 충분히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가 이후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문화 콘텐츠를 전공한 것도 콘텐츠가 갖고 있는 파워와 다른 유사한 콘텐츠와의 연계성과 소통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비디오 시장이 죽으면서 독립영화도 더 힘들어진 게 사실이죠. 저 같은 경우는 음향을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업영화에서 돈 벌어서 독립영화에 투자했어요. 아직 배급문제로 개봉하지 못한 작품도 있고, 독립영화를 만들 땐 1인 7역을 소화해야만 할 때도 있었지만 제도권 영화가 아닌 곳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죠. 지금까지 저는 흔히 말하는 ‘쎈’ 영화를 많이 만들었어요. 돈도 없고 스타도 아닌 배우로 촬영하는데 스토리까지 밋밋하면 누가 보겠냐 하는 생각이 있었다 보니 충격을 줄 수 있는 영화를 찍었죠. 그런데 요즘은 따뜻한 얘기를 담고 싶더라고요.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자비 같은 걸 담아서 제 영화가 그런 종교적인 기능을 해서 단 한 명이라도 평화와 안정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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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