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A:IR 홈페이지

 

 

“스팀펑크(steampunk)란 SF, 더 좁게는 대체 역사물의 하위 장르 중 하나를 지칭한다. 20세기 산업 발전의 바탕이 되는 기술(예: 내연기관, 전기 동력) 대신, 증기기관과 같은 과거 기술이 크게 발달한 가상의 과거, 또는 그런 과거에서 발전한 가상의 현재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가상현실, 사이보그와 같은 전자·정보 기술의 영향으로 변모되는 미래를 묘사한 사이버펑크(cyberpunk)에서 사이버(cyber) 대신 증기기관의 증기(steam)를 합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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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홀의 차기작 MMORPG ‘A:IR’는 스팀펑크와 판타지 세계관을 결합해 공중에서의 생활과 전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미지 출처 : A:IR 홈페이지)

 

‘배틀그라운드’로 간만에 한국 게임의 존재를 전 세계에 새롭게 드러낸 블루홀은 2017년 지스타(G-STAR)에서 차기작으로 ‘A:IR’라는 이름의 MMORPG 개발 정보를 공개했다. ‘Ascent: Infinity Realm’이라는 제목의 약 자를 ‘AIR’로 의도한 데서 드러나는 목적은 공중에서의 이야기가 게임의 중심에 자리함을 가리킨다. 게임 속 세계관에서 공중에 떠 있는 도시와 거대 비행선을 유지 하는 힘은 게임 속 반중력 부유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부유석 자체만으로 함선과 건물을 띄우는 것은 아니다. ‘A:IR’에서는 거대한 병기들과 장비를 공중에 띄우기 위해 톱니바퀴와 금속 장치들로 정밀하게 설계된 기계를 사용한다. 육중한 기계들이 철컹이는 모습은 마치 초기 산업사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기계들이 구현하는 기술은 19세기 당시의 기술이 아닌,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발전돼 보이는 일종의 오버 테크놀로지다.

 

 

과거의 기술을 소재로 하지만 그 구현의 결과물이 현재의 기술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이러한 모습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래소년 코난’과 ‘천공의 성 라 퓨타’, ‘스팀보이’, ‘나디아’ 등을 통해 우리는 꽤나 익숙하게 이러한 설정을 받아들인다. SF(Science Fiction)의 세부 장르 중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스팀펑크라는 장르가 ‘A:IR’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장르적 근거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기술시대를 살아가게 된 결정적 변곡점으로써 육중한 금속덩어리 느낌의 기계기술 시대가 주는 이미지는 한 시대를 가리키는 일종의 코드가 돼 계속 상상의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초기 산업시대의 기술을 상징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한 스팀펑크 세계관은 산업시대의 기계들로 현대 이상의 오버테크놀로지를 구현하는 것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거대기관, 비행정, 지상전함, 증기와 스모그 등은 과거지향적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꿈꾼다.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스팀펑크는 증기를 가리키는 ‘스팀(Steam)’과 폐급 물건, 불량배 등을 가리키는 말에서 넘어온 특유의 분위기를 가리키는 ‘펑크(Punk)’의 조합으로 탄생한 개념이다. 펑크가 일종의 분위기를 가리키는 문화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스팀펑크는 증기 혹은 증기기관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의 세계관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증기기관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면 스팀펑크가 대략 어떠한 분위기를 가리키는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증기기관차가 보여주는 검은 금속의 육중한 중량감, 무거 운 금속 덩어리가 철컹이면서 움직이는 기계적인 소리와 진동, 하얗게 뿜어내는 증기와 기적소리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는 단지 증기기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류가 자연의 이용한 힘을 벗어나 기계를 돌리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 등이 스팀펑크를 상징하는 대표 적인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스팀펑크가 단지 증기기관에 의해 변화한 시대의 모습을 다루는 것들만 지칭하지 않는다. 증기기관의 시대는 실제 인류 역사의 한 토막이며, 우리는 이를 산업혁명의 시대, 근대 초기라는 역사적 개념으로 부르고 있다.

 

 

스팀펑크는 그러한 증기기관의 시대를 토대로 해 뻗어 나온 상상력의 산물로, SF의 한 분야에 속하는 가상의 세계관을 가리킨다. SF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과학적 상상력의 토대위에서 그려낸 가상의 이야기를 지칭한다.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대체로 미래지향적이라는 특징 덕분에 많은 SF작품들이 가깝게는 얼마 후의 미래부터 멀게는 몇 세대 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경향 속에서, SF 안에서의 스팀펑크는 일종의 대체역사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스팀펑크는 19세기 근처를 중심으로 실제 역사에서 펼쳐진 증기기관 동력 중심으로 나타난 기계 세계로부터 시작되는 가상의 역사를 상상의 근거로 한다. 이를테면 증기기관 이후 현대 사회의 주요 동력원 자리를 차지한 가솔린 엔진 등의 내연기관, 전기와 원자력 등의 발전이 없는 상태로 증기기관 동력만이 지속적으로 발전 해 온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팀펑크 안의 세계는 19세기스러운 면모이면서 동시에 19세기에 머물지 않는 독특한 상상력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20세기의 산물인 디젤엔진 비행기 대신 스팀펑크에서는 주로 비행선 류의 발전형이 등장하며, 전기 대신 가스등이 거리의 밤을 밝히곤 한다. 증기엔진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지상전함, 대형 프로펠러와 가스 기구로 날아다니는 초대형 공중요새와 같은 실제 역사와 무관한 창조물들이 스팀펑크의 세계를 가로지른다.

 

 

대체역사물로써의 스팀펑크는 미래가 아닌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증기기관의 시대를 되돌아보면서 지금의 기술을 대체하는 상상력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이는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반드시 절대적인 결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새로운 가정을 던져 준다. 증기기관이 다른 동력원에 밀려 퇴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 삶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달리 비교할 데가 없었던 21세기의 인류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를 다른 무언가와 대 조할 수 있는 근거를 얻었다. 더불어 스팀펑크는 현실의 대체를 통한 질문을 기술 혁명의 기원이 되는 증기기관에 던짐으로써 기술문명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되물음과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장르로서 의미를 얻을 수 있었다. 미래지향적인 다른 SF 와는 사뭇 다른, 마치 과거를 다루는 듯 하면서도 하나의 과거로부터 뻗어 나온 또 다른 현재 혹은 평행우주의 미래에 대한 상상의 나래로서 스팀펑크는 독특한 매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동경의 세계로 자리한다.

 

 

스팀펑크가 세계관의 중심에 들어가는 게임들은 적지 않다. ‘사이베리아’, ‘바이오쇼크 안피니트’, ‘프로스트펑크’ 등에서 스팀펑크 고유의 느낌은 제각각의 게임 이야기로 녹아난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2002년 첫 출시된 어드벤처 게임 ‘사이베리아’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회색빛의 낯 선 공간 안에서 퍼즐과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미스터리 한 사건을 추적해 가는 어드벤처 게임 ‘사이베리아’는 2017년 시리즈 3편을 발매하면서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스팀펑크 어드벤처물이다.

 

 

게임 속에서 주요한 테마로 다뤄지는 자동인형 (Automaton)은 디지털, 전기 기술의 등장 이전 기계식 장치로 자동화를 만들어내던 방식이었다. 현실에서는 보다 간단한 전기장치에 의해 밀려났지만, ‘사이베리아’ 에서는 이들 태엽장치 방식의 장치들이 쇠퇴하지 않고 꾸준히 발전해 톱니바퀴들의 작동으로 인공지능을 구현 하는 수준의 오버 테크놀로지를 표현하며 스팀펑크물의 진수를 선보인다.

 

 

인기 액션게임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자 전체 시리즈의 프리퀄인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스팀펑크와 디젤펑크 사이를 오가는 독특한 분위기로 시 선을 끌었다. 창공을 떠다니는 거대한 공중 도시가 게임의 중심 배경인 ‘바이오쇼크: 인피니티’는 1910년대라는 시간 설정 속에 거대한 도시를 공중으로 띄우는 기술적 상상력을 그려내면서 스팀펑크의 느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철도는 공중에 설치돼 ‘스카이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고, 플레이어는 스카이라인을 타면서 공중 액션을 펼치기도 한다.

 

 

2018년 출시예정 게임 ‘프로스트펑크’는 조금 독특하게 스팀펑크의 스타일을 내는 게임이다. 제작사인 ‘11비트 스튜디오’의 전작으로 전쟁 속 민간인의 생존이라는 참담함을 그려낸 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의 후속작으로 빙하기의 도래로 인해 고립된 인류가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동력기관인 증기기관에 모여 근근이 채굴하는 석 탄으로 기관을 가동하면서 살아남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생존형 게임이다.

 

 

과거가 아닌 문명의 몰락을 통해 다가온 미래의 유일한 동력으로 상정된 증기기관을 통해 게임은 새로운 위치에 스팀펑크의 개념 갖다 놓으며 전작과 유사하게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018년 1분기 출시를 예고한 이 게임은 스팀펑크의 상징인 증기기관이 단지 디자인 요소나 장식에 그치지 않고 세계관 속에서 생존자들의 유일한 동력원이라는 개념으로 활용되면서 기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스팀펑크를 구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팀펑크를 본격적으로 세계관의 중심에 놓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서브 요소를 통해 스팀펑크의 느낌을 살리는 게임들도 적지 않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끈 대 작 게임들은 세계관 어딘가에 항상 조금씩 스팀펑크 요소들을 배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이어가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스팀펑크 요소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게임 속 세계관에서 ‘필트오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국가는 설정상 스팀펑크 스타일을 유지하는 곳이다. 필트오버 출신 챔피언들의 디자인은 그래서 스팀펑크의 이미지들이 강하게 묻어난다.

 

 

궁극기를 사용하며 톱니바퀴 모양의 조준점을 나타내는 케이틀린, 아예 기계 포탑을 조립하는 것을 기술의 골자로 하는 하이머딩거, 톱니바퀴 자동 인형을 연상케 하는 사실상 스팀펑크 캐릭터인 오리아나 등의 캐릭터 디자인은 대체로 스팀펑크의 그것을 모티브로 삼는다.

 

 

전략시뮬레이션, MMORPG 등 다채로운 장르로 출시되는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세계 속에도 스팀펑크 요 소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워크래프트 3’에 처음 등장 하는 휴먼 진영의 공성병기는 처음 유닛 이름이 ‘스팀탱크’로, 증기엔진을 사용해 움직이는 공성병기였다.

 

 

이 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넘어가면서 게임 안에는 고블린과 노움이라는 두 진영이 기계공학의 전문가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활용하는 증기엔진, 톱니바퀴 등은 대체로 스팀펑크의 요소들로부터 차용한 것들이다. 실제 플레이어의 기술로 도입된 기계공학의 주요 생산품들도 용수철, 나사, 톱니 등 초기 기계공학의 부품들과 이를 조합한 스팀펑크스러운 제작물을 통해 ‘워크래프트’ 세계관 안에 스팀펑크가 포함돼 있음을 드러낸다.

 

 

인류의 눈부신 기술 발전이 열어젖힌 근현대의 새로운 생활양식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함께 제시했다. 급증한 평균수명, 풍부해진 먹거리와 볼거리, 지구 전체의 상황을 순식간에 확인할 수 있는 정보화까지 기술의 발전은 상상 못할 편의와 행복을 제공했지만, 그와 동시에 발달한 기술은 전쟁에서 더 많은 사람을 더 손쉽게 죽였고 중심세계 밖의 지역들을 끊임없이 착취하며 빈부격차를 더 크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현대기술의 안락함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그 어두운 이면을 살피려는 비판적 시선이 끊이지 않는 속에 스팀펑크는 우리의 당면 과제인 현대기술을 대체역사라는 새로운 상상을 통해 기술의 밖에서 지금의 우리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효과를 갖는다.

 

 

SF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현재의 우리를 대비시키며 전기 이후의 기술을 대체한  구기술의 발전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가 걸어 온 풍요와 타락의 양면적 역사를 완전히 다른 시점에서 반성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 독특한 시점을 제공한 다. 현대 기술로도 구현 불가능한, 거대한 공중부양도시와 비행정은 그래서 단순한 상상력의 창조물이 아닌, 이 시대에 대한 일종의 대체 희망으로서 더욱 의미 깊다.

 

 

그런 대체희망으로서의 가치가 잠재해있기에 스팀펑크 라는 독특한 가상의 세계는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환상의 공간이면서도 현실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스팀펑크 세계관은 좀 더 새롭고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 내길 원하는 게임 콘텐츠에서 매력적인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요소다. 그래서 적지 않은 게임들이 스팀펑크를 세계관의 기본으로 차용하거나, 게임 속 곳곳에 스팀펑크의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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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경혁 칼럼니스트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판타지드라마!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상상발전소/방송 영화 2015.02.10 11:06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판타지 장르가 우리나라에서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부터 입니다. 연애소설, 문학작품과 달리 판타지는 시공간의 제한적 요소를 탈피한 스토리들을 담아내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후 판타지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듯하였는데요. 판타지 장르에 대해 식은 대중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던 것은 한국 최초로 만든 판타지 드라마였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나라의 첫 판타지 드라마를 짚어보고 대중이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한국 최초 판타지 장르로 제작된 ‘태왕사신기’는 2007년 35.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드라마의 판타지 장르 제작이라는 획기적인 시도와 430억 원의큰 제작비로도 방영 전부터 시청자, 제작자들에게 집중을 받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하며 물을 부리는 능력, 쇠를 부리는 능력, 불의 힘을 갖은 여인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습니다.



▲ 사진1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대중이 판타지 장르에 대해 낯설어하고 거부할 가능성을 뒤로하고 성공한 ‘태왕사신기’의 인기요인은 각 캐릭터가 갖춘 판타지능력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주인공 담덕(배용준)은 한국 역사 최고의 영토를 넓힌 업적을 갖고 있는 광개토대왕입니다. 그는 리더십과 정의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천신의 피를 이어받은 쥬신의 왕입니다. 담덕의 온화한 캐릭터와 달리 대장로(최민수)는 쥬신의 후예들이 하늘의 힘을 가질 수 없도록 막고, 자신이 하늘의 힘을 갖기 위해 악의 행동을 하는 역할입니다. 이렇게 담덕(배용준)과 대장로(최민수)의 대립하는 모습이 인기요인으로 시청자들에게 더욱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인:아홉번의 시간여행’은 SF를 테마로 남자 주인공이 향초를 태우며 시간 여행을 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에게는 20년 전 향 한 개와 알수 없는 글로 가득한 다이어리를 유품으로 남기고 히말라야에서 동사를 당한 형 정우가 있었습니다. 현재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사는 주인공인 선우가 우연히 향 하나를 피우게 되며 향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동안 몰랐던 형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풀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듭니다. ‘나인:아홉번의시간여행’은 선우(이진욱)이 보여주는 시간여행 판타지인 동시에 그를 사랑하는 민영(조윤희)이 보여주는 멜로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 사진2 tvN 드라마 '나인' 



▲ 영상1  tvN 드라마 '나인' 티저 영상



tvN 에서 2013년 방영한 ‘나인:아홉번의 시간여행’은 자체 최고 시청률 2.1%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테마와 향초를 피우면 나타나는 고정된 법칙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더욱 사로잡았습니다. 9개의 향에는 9개의 법칙이 있는데 향을 태운 뒤 연기를 맡으면 향을 태운 사람만 과거로 이동하는 법칙,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등의 법칙이 있는데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게 했던 것에는 향에 관련된 법칙들과 그 속에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선우의 모습 그리고 선우와 민영의 멜로와 함께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13년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는 영화 <도둑들>의 김수현, 전지현이 함께 출연하며 방영 전 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이 작품은 가장 최근 국내뿐만이 아닌 국외에서 지금까지도 엄청난 흥행을 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외계남, 한류여신의 만남’ 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하였는데요. 주인공 도민준, 천송이의 개성 있는 캐릭터의 성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며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가 아닌 코믹 요소까지 찾아볼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 사진3 SBS 드라마 '별에서온 그대' 공식홈페이지 



‘별에서 온 그대’는 탑배우 천송이의 능청스러운 성격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요소였는데요. 극 중 한류여신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혼자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털털하고 때로는 백치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인 도민준은 오랫동안 살면서 몸에 밴 선비 같은 모습과 천송이를 지켜주는 모습이 캐릭터의 인기요인이었는데요. 이외에도 천송이가 치맥을 좋아하고 첫눈 오는 날 치맥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외에서 '치맥 열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가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이 보았을 때 공감 가는 탑스타의 행동, 남자 주인공의 판타지적 능력이 로맨스와 만나는 것을 보여주며 더욱 흥미를 끌었던 것이 아닐까요? 




‘시크릿 가든’은 2010년 방영한 판타지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입니다. 2012년 '신사의 품격', 2013년 '상속자들' 등 여러 작품을 히트시킨 김은숙 드라마 작가가 극본을 맡은 드라마입니다. '시크릿 가든'은 명장면, 명대사를 남기며 35.2%의 흥행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스턴트우먼과 백만장자의 사랑을 담았으며 우연히 산장에 들어가 몸이 바뀌게 되는 신비의 묘약을 먹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 주인공인 하지원이 스턴트우먼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며 극 중에서 액션을 하는 장면도 시청자들에게는 드라마를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는데요.


 

▲ 사진4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 사진5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여기에 '시크릿 가든'은 신비한 물을 먹은 후 서로 몸이 바뀌는 판타지적 요소가 담겨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몸이 바뀜으로써 상대방의 삶에 대해 조금은 알아가는 기회가 되는데요. 이 사건을 통해서 이들의 인연은 이어지고 이후 서로에게 감정이 생겨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마법의 판타지적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았을 옥탑에 사는 평범한 여자와 백만장자와의 사랑, 그들 각자 사는 방식을 비교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하게 합니다. 비록 마법 같은 요소는 없지만, 현실 속에서 누구나 꿈꿀 수 있는 판타지를 갖게 하는 점이 드라마 성공의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중이 판타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봤을 이야기들을 구체화하여 보여줌으로써 간접적으로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왠지 모를 충족감을 심어주고 더욱 흥미롭게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 사진 출처

- 표지 tvN

- 사진1 MBC

- 사진2 tvN

- 사진3 SBS

- 사진4, 5 SBS


ⓒ 영상 출처

- 영상1 tvN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상의 세계 속 희망의 공간, SF&판타지 도서관

상상발전소/KOCCA 행사 2014.06.16 13:19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최근 영화나 게임, 심지어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우리는 쉽게 SF나 판타지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타워즈>나 <에일리언>,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의 본격적인 SF나 판타지물부터 시작하여 <어벤져스>의 세계관, <화이>의 괴물 같은 , 부분적으로 SF적인 요소가 도입된 콘텐츠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한국에서 SF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일련의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SF나 판타지를 포함하는 영상 혹은 게임 콘텐츠를 보다 보면 한 번쯤 그 원작이 되는 소설이나 만화책을 찾아보거나 SF 판타지 장르 콘텐츠를 한 곳에 모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서관들은 학술 자료를 구비하는 것에 치중하여 장르문학 책들을 구비하기 어려운 실정에 있습니다. 게다가 순수문학이나 실용서에 비해 대중화 되어있지 않아 장르문학 입문자는 어떤 책부터 읽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SF&판타지 도서관(전홍식 관장)입니다.

 


 ▲ 사진1 SF&판타지 도서관의 로고

 


SF&판타지 도서관은 2009년 3월에 개관하여 2012년 5월에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이전한 바 있는데요. 국내 SF와 판타지 장르의 저변을 넓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도서관법 제31조 제1항 및 제40조 제2항에 따라 전문도서관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은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건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도서관입니다. 따라서 운영 역시 정기 회원의 후원과 기부, 상영관 대관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약 10,000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데요. 도서관에서 다루는 콘텐츠의 범위는 다양합니다. 본격 SF소설과 판타지소설부터 장르적 요소를 지닌 라이트노벨이나 만화책, 영화 등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또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자연과학 서적까지 SF와 판타지의 범주를 특정 기준에 국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SF&판타지 도서관은 SF 매니아 뿐만 아니라 SF와 판타지에 대한 관심을 가진 누구나 친숙하게 범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즉 듀나, 김보영, 이영수 등 한국 SF 작가의 팬들과 <아이언맨>, <어벤져스> 등의 영화의 원작이 궁금해 도서관을 찾은 이들 등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 것입니다.

 

 

▲ 사진2,3 장르문학부터 라이트노벨, 만화책까지 다양하게 구비된 SF&판타지 장서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 

 


특징적인 것은 이 도서들의 대부분이 창립 당시 관장님이 소장하고 있던 장서와 출판사, 개인 기증의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각종 장르문학 출판사와 개인의 기증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이는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통해 책을 만난다’는 도서관의 모토와도 부합합니다. 이러한 취지 하에 도서관에서는 책의 기증이나 나눔, 감상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한 독서공간이 아닌 문화공간으로의 발돋움을 위해 도서관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공간 이외에 넓은 로비, 상영관, 회의실 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도서 열람은 물론, 각 공간의 취지에 맞는 상영회, 보드게임, 작가와의 만남 등 장르문학과 연관성을 갖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됩니다. 

 

이 가운데 특징적인 행사로 작가와의 만남을 꼽을 수 있습니다. SF&판타지 도서관에서의 대담은 출판사 주최의 대담이나 사인회, 인터뷰에 비해 열린 분위기에서 진행됩니다. 가장 최근인 5월 17일 작가와의 만남 행사는 콘텐츠의 종류를 불문하고 활동하는 전혜진 작가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는데요. <월하의 동사무소> 등 라이트노벨로 데뷔하여 만화 <레이디 디텍티브> 스토리 작업, 장르문학 단편집인 <홍등의 골목>등에 참여한 재능 많은 작가입니다. 


도서관 내 회의실에서 진행된 행사는 흔히 볼 수 있는 강의나 토론식 만남보다는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파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독자와 작가, 독자와 독자 간에 활발하게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최근작인 <홍등의 골목>에 대한 내용적인 질문부터 전혜진 작가의 평소 생활에서 힘든 점, 서브컬쳐적 취향에 대한 질문 등 질문의 범주를 규제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담이 이루어졌습니다.

 

 

▲ 사진4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작가 전혜진



▲ 사진5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위해 준비된 행사 테이블

 

 

자유로운 분위기는 SF&판타지 도서관 자체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도서관이 SF&판타지를 좋아하며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고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여기에서 비롯한 토론 등이 콘텐츠 발전의 필수 조건임을 생각할 때 이 문화는 SF&판타지 도서관에만 국한하기에는 아까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이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또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SF&판타지 도서관을 설립 및 운영하시는 전홍식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사진6 SF&판타지 도서관의 전홍식 관장님



Q.SF&판타지 도서관을 설립하신 취지는 무엇인가요?

A) 사실 처음 설립할 때부터 뚜렷한 취지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해 보자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째서 이런 도서관을 운영하는지 묻고 저 역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이 도서관의 방향성은 단순한 ‘장르문학 도서관’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SF&판타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고 SF&판타지 문화를 새롭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면 했어요. 그래서 기존의 SF&판타지의 팬들이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SF를 좋아하고 SF에 관심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되었지요.


그런 취지로 저희는 SF&판타지 장르 영상 상영회와 작가와의 만남 등의 행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이 처음 지어졌을 때에는 사당에 있었는데 그 면적이 연희동으로 이사한 지금 도서관의 1/4도 안 되었어요. 그럼에도 회의실을 구비하고 상영회 등을 꾸준히 개최했지요. 


또, 연희동으로 이사하고 새로 생긴 공간인 로비가 어찌 보면 책을 위한 공간이 부족한 것에 비해 낭비로 생각될 만큼 넓어요. 그런데도 이 장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을 위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책을 보고 사람과 교류하기 위한 공간이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저희 도서관의 모토 중 하나가 이겁니다. 책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통해서 책을 만난다. 사실 책을 보고 나서 사람들과 그 책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좋은 책을 소개 받고. 이런 식으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고요. 저희 도서관에서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행사인 작가와의 만남도 다른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대담이나 인터뷰 자리랑 분위기가 약간 다릅니다. 이곳에서는 작가 스스로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단순히 형식적인 질의가 아니라 작가와 독자들이 동등한 관계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웃고 즐길 수 있는 거죠.


Q.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은 물론이고 <별에서 온 그대> 등 SF와 판타지 요소는 직/간접적으로 콘텐츠 전반에서 쓰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SF와 판타지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 헷갈리는데요. 두 개념의 범주를 설정한다면? 

A. SF와 판타지를 한마디로 구분하기는 힘듭니다. SF와 판타지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혼종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에는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두 장르에 명백하게 다른 방향성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SF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능성의 세계에요. '하늘을 날면 좋겠다'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하늘을 날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하는 장르입니다. 이 발상이 연결된 것이 이카루스 신화인데요. ‘하늘을 날기 위해 당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밀랍 날개를 만들었다. 그런데 하늘 높이 날다 보니 밀랍은 태양열에 약하기 때문에 녹아 내렸고 추락했다.’ 따라서 인간의 가능성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이 SF라고 할 수 있지요. 


판타지는 꿈과 환상으로 꾸며낸 세계 속의 모험담입니다. 판타지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에서 모험을 해요. 특히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는 판타지 문학은 일상생활에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내용을 따르죠. <호빗>,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피터 팬> 등이 그런 예입니다. 이런 식으로 신비한 세계를 경험하고 모험을 하죠. <반지의 제왕>의 작가 J.R.R톨킨은 그래서 판타지를 '도피의 문학'이라고도 했습니다.


Q. 한국 최초의 장르문학, 그것도 SF&판타지 장르문학을 다루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계신데요. 사실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나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SF나 판타지적 요소가 활용되고 있음에도 SF&판타지 장르 자체는 아직 음지에 머무른다는 점은 좀 아쉬운데요.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자국 콘텐츠의 생산이나 트랜드에 맞춘 콘텐츠의 다양화 등 여러 방안이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관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이건 장르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 전반으로 이야기가 확대되겠는데요. SF&판타지 영화나 만화를 더 많이 만들어서 활성화시키는 것도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누가 만드느냐, 어떤 마음으로 만드느냐 등에 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은 우리나라에서는 취미활동, 즐길 거리들이 터부시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제가 도서관 운영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말들 중 하나가 '돈이 많으시군요.'에요. 참 이상하죠. 제가 돈이 많아서 이걸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저를 소개할 때 'SF&판타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직업이 아니라 취미다.' 라고 해요. 만약 직업으로 도서관 운영을 하고 있었다면 돈이 부족해지는 순간에 운영을 그만두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것에 관계없이 때로는 좋아서 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좋아서 책을 본다,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를 한다. 저 역시 좋아서 하는 일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도서관의 관장이자 한국콘텐츠 아카데미 스토리텔링 강사이고, 이 일들 또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했죠. '당신은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군요.' 저는 남들보다 돈도 시간도 많지 않아요. 단지 제가 갖고 있는 것을 다른 것에 쓰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에 말이죠. 그런데 그걸 보고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죠.


도서관을 연 지 얼마 안 되어서 자금 마련 차원의 책 전시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이 와서 말씀하셨죠. '야 이런 거 말고, 뭐 남는 책 없냐?' ‘남는 책’? 갑자기 그 말이 확 와 닿는 거에요. 그분이 말씀하신 건 실용서 등 당장 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이었겠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르소설을 들이지 않는다’는 규칙이 제정된 도서관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한 함의의 장르소설인 무라카미 하루키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은 도서관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이 사회에서 형성된 ‘되는 책’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도서관은 ‘독서실화’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곤 하지요. 가까이 있는 책들을 두고 참고서 등을 가져와서 공부를 하니까요. 이는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공부’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부를 쉽게 한 편이에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키는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공부에 임하지는 않았지만 성적은 잘 나왔어요. 책을 한번 보면 바로 이해를 하기 때문이었고, 그 이해력은 제가 평소에 책을 좋아하며 많이 읽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결국 개인이 공부를 하고 싶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책에 대한 애정이고, 책을 통해 하는 ‘공부’나 '성적은 결과적인 부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애정이 없는 한 장르문학은 물론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이 표출될 리 만무합니다.


또한,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여가’라고 일컫는 활동들 역시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도서관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이 고3인데 판타지 소설에 빠져 학교도 빠지고 있다는 겁니다. 즉 중독이었지요. 저 역시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학생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 학생이 판타지 소설이 재미있어서가 아닌, 판타지소설에 빠져 자아를 잃어버려서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게임에 빠져서 아이를 방치하다 죽여 화제가 된 부모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단지 게임을 도피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에요. 영화를 한 편 보더라도 자신이 보고 싶던 영화를 찾아가서 영화 보는 사람은 의외로 찾기 힘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을 ‘오타쿠’ 등의 용어로 폄하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저는 즐거워서 하는 일에는 절대로 중독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일은 그 결과에 반드시 만족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족을 하게 되면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습니다. 딱 끝내고 “난 만족했어. 이제 새로운 걸 해보자!” 라는 주체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겁니다.



▲ 사진7 로비에 진열된 SF&판타지 관련 영상물 DVD와 판매하는 장르문학 책들 


Q.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례라 그런지 더 공감 가는 이야기입니다. 판타지소설에 ‘중독’된 학생의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이 학생이 읽은 판타지 소설에서 진짜 찾을 수 있었을 즐거움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A. 아까 좋은 판타지 작품들은 일상생활에서 여정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 판타지 작품이 주는 것은 판타지 세계에서 얻는 대리만족 이상입니다. 대리만족을 얻기에는 지나치게 고생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지요. 영화화된 <호빗>, <반지의 제왕>의 호빗들이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등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역경을 겪은 결과 그들에게 변화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호빗>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는 모험 자체를 거부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는 모험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해 있습니다. 도로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마녀를 물리치게 되죠. 그녀가 만난 오즈가 진짜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와 '집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교훈을 얻지요.


판타지의 정의를 ‘꿈과 환상으로 만들어진 세계 속의 모험담’이라고 정의했었죠. 여기서의 모험담은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해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스토리텔링을 보면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됩니다. 비록 꿈과 환상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특이하긴 하지만 결국 그 세계에서도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노력하면서 그 주인공이 바뀐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역경을 극복, 노력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겠구나 하는 메시지를 주는 거죠. 그래서 좋은 판타지 작품을 보게 되었을 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 좋아! 열심히 해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판타지는 SF와 달리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판타지 속 세계는 어차피 꿈이고 실현되지 않는 환상인 겁니다. 하지만 요는 그 안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겁니다. 그런 주인공을 보고 우리는 현실세계에 부딪히는 힘을 얻어요.


하지만 양산형 판타지 소설, 혹은 ‘이공깽’은 다릅니다. 판타지 소설 분야에서는 흔히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라 부르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아마 위에서 언급한 판타지 소설에 중독된 고등학생 역시 이러한 양판소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만화책 대여점이나 만화방 등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거의 비슷한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양산형’으로 불리는 것이지요. 양판소에는 우리가 진정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없습니다. 


좋은 작품은 주인공을 처음부터 지나친 절망 혹은 지나친 행운의 상황에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은 처음에 멋도 모르고 당해요. 그러다 조금씩, 그것도 주인공 스스로가 아닌 주변에서 배울 거리를 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왔을 때 주인공은 그 동안 배운 것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힘을 갖습니다.


제대로 된 판타지는 도피문학이 아니에요. 제대로 된 판타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응원을 해 줘요. 그것이 양판소에 등장하는 ‘찌질함’일지라도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주인공 프로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반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고 '내 거야!'를 외치며 달려들던 놈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꿋꿋하게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장면에서 우리는 감동하게 되잖아요. 그 결과 그는 비록 한 손가락을 잃지만, 그로 인해 세상을 구하게 됩니다. 


영화판에서는 생략된 <반지의 제왕> 소설 원작을 보면 그들이 반지 원정을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마을이 쑥대밭이 되어 있어요. 나쁜 마법사 사루만이 부하들을 데리고 호빗들의 마을 샤이어를 엉망으로 만든 거죠. 그런데 프로도는 이 상황에서 호빗들과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치고 마을을 재건합니다. 이전의 그들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죠. 이러한 성장이 바로 반지의 제왕을 덮었을 때 미련 없이 다른 작품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지 못한 작품을 너무 많이 읽고 있어요. 사실 이런 좋은 작품의 경우는 처음에 읽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단번에 영웅이 되는 양판소와 달리 이 주인공들은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를 극복했을 때의 희열이 대단한 거죠. 그게 바로 좋은 작품의 원리라고 생각해요. 이런 좋은 작품이 상당히 많습니다. SF와 판타지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판타지나 SF가 허황되다'라는 이유로 피하거나 중독되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 즐거움이 결여된 중독은 현실을 살아갈 힘을 잃고 환상세계에 함몰되게 하지만, 좋은 판타지소설을 즐겼을 때에는 환상세계에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대조가 와 닿네요. 관장님께서는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으셨나요?

A. 제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 중에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는 <끝없는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창작자로서, 도서관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내가 도서관에서 하는 하나하나가 전부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게임 콘텐츠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사실 창작자로서 성공한 게임을 많이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스토리텔링 강의를 가르치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책에서 읽은 이론을 가르치면서도 저 자신에게 반신반의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게임 개발에서 실패했던 것은 실질적인 경험으로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의할 수 있게 해 주었죠. 저는 소설가도 아니고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강의를 통해 글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 시간을 즐기고 있고 그걸 통해서 언젠가는 '교수님 덕분에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Q.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말씀하신 좋은 책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좋은 책을 쓰시는 대신에 관장님 자체가 한 권의 책과 같은 역할이 되겠네요!

A. 그렇죠. 제 아내가 비슷한 말을 했어요.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저는 그런 것들이 우리 자신을 점점 좋게, 즐겁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즐겁게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웃고 조금이라도 감동을 느껴준다면 거기서 희열을 느껴요. 그리고 그 감동을 나누기 위해 더 시간을 들여서 노력하게 됩니다. 저는 강의하면서 중간에 쉬거나 졸았던 적이 없어요. 그 순간이 즐겁거든요. 어떤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형하고 같이 일하는지 알아요? 형하고 같이 있으면 왠지 즐겁고 행복해져요.' 저에게 있어서는 엄청 멋진 칭찬이었어요. 그리고 '그래, 내가 갈 길이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Q. 마지막으로 관장님 본인과 SF&판타지 도서관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신다면?

A. 일본에 시바노 타쿠미라는 분이 있어요. 일본 SF 팬클럽을 만든 사람이자 저의 롤모델이기도 한 사람이죠. 이 SF 팬클럽에서 여는 일본 SF 대회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행사는 정부 주도의 행사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행사는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여는 행사였어요. 재미있는 점은 행사의 내용이 단지 한 자리에 모여서 SF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10만원 정도 되는 적지 않은 참가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국에서 약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몰립니다. 시바노 타쿠미 씨가 돌아가시기 이전에 SF 대회에서 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옆자리를 보십시오. 모두 SF를 좋아합니다.'


SF&도서관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아직까지 열악한 환경인 것이 사실이라 봉사자나 참여자는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 즐겁다고 해요. 다 좋아하니까. 영화관이라면 할 수 없는, 좋아하는 장면에서 박수를 치고 환성을 지르고 놀랄 수 있는 상영회 문화가 이곳에는 있어요. 도서관의 상영관은 때때로 대관을 받고 외부 상영회를 열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 <가면 라이더>라는 특수 촬영물 장르 작품의 상영회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상영관 안에서 사람들이 가면 라이더 노래를 건물이 떠나가도록 부르는 거에요! 그런데 문 밖에서 듣고 있자니 그 신나는 노래만으로 즐겁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어요. SF&판타지 도서관은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문화를 확산시키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도서관에서 제1회 비블리오 배틀(비블리오 배틀: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자랑하는 행사)을 개최했습니다. 비블리오 배틀을 통해 저는 또 한번 이런 행사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20명과 조촐하게 진행하려던 행사는 좁은 로비에 60명이라는 대인원이 들어찬 채 진행되었습니다. 앉을 자리조차 없었죠. 그런데 누구 하나 힘들다는 말이 없었어요.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즐거워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기증받은 책들을 팔았는데 순식간에 동났어요. 사람들이 그만큼 공감을 하고 즐거웠던 거죠. 저는 도서관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저는 SF&판타지 도서관이 행복한 사람을 많이 있게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역시 행복을 이끌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제가 행복해지고 싶어요.


 

콘텐츠 산업의 발전이 영화의 관객 수, 수출 그래프 등의 수치로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장르 콘텐츠의 다양화, 새 인재 육성 등 콘텐츠 발전을 위해서 자칫 단기적인 방향만을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장르문학 뿐 아니라 문화 콘텐츠의 발전을 논하기 이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들과 교류하며 발전시키는 행복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전홍식 관장님의 인터뷰는 짧게는 기자의 우문에 응답하는 현답이었고, 크게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할 문제에 대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올 여름에도 우리의 상상력을 극장 혹은 모니터 스크린 등에 옮긴 SF와 판타지 영화, 게임, 드라마 등이 속속들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당장 상영중인 영화 가운데서도 돌연변이로 인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나 한국에 좀비가 등장했을 때를 가정한 <신촌좀비만화> 등에서 우리는 SF와 판타지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지요. 이 콘텐츠들을 보고 진짜 즐거움을 찾으셨다면, 또한 그 즐거움을 책 그리고 사람과 나누고 싶으시다면, 이번 주말에는 SF&판타지 도서관에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 SF&판타지 도서관에 가고 싶으시다면!

 

*운영시간 

월요일, 화요일  : 휴관

수요일 ~ 금요일  : 오후 03시 ~ 오후 08 시

토요일, 일요일  : 오후 01시 ~ 오후 09 시 (평일 중 공휴일은 토, 일요일 기준으로 적용)

추석 연휴 및 설 연휴, 1월 1일을 제외한 공휴일에는 정상운영

 

*홈페이지: http://www.sflib.com/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sflibrarykr

*트위터: https://twitter.com/sflibrary

 


▲ 그림1 SF&판타지 도서관의 약도(지도 제작: 맛굴 님)

 

 

 ⓒ 사진 출처

- 표지 직접 촬영

- 사진1~7 직접 촬영

- 그림1 SF&판타지 도서관 홈페이지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인문학적, SF적 배경 설정 (2)
:애니메이션 『프랙탈』로 보는 ‘라이프로그’②

 

선 정 우 (출판기획사 코믹팝 대표, mirugi.com 운영)


지난 회에 이어, 애니메이션 『프랙탈』이 도입한 미래학적인 설정에 대해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번에는 블로그, SNS 등을 포괄하는 용어로 국내에서도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던 ‘라이프로그’라는 개념에 대해서다.


【『프랙탈』 애니메이션 DATA】
- 전 11화
- 2011년 1월~2011년 3월 일본 방영
- 한국에서는 케이블TV, IPTV 등에서 애니플러스 채널로 방영
원작:만델브로 엔진 (야마모토 유타카, 아즈마 히로키, 오카다 마리의 그룹명)
원안:아즈마 히로키 (대표작 평론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소설 『퀀텀 패밀리즈』)
감독:야마모토 유타카 (대표작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연출, 『칸나기』 감독)
시리즈구성: 오카다 마리 (대표작 『토라도라!』『방랑소년』『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린 아직 모른다.』『블랙★록 슈터』 시리즈구성)
캐릭터디자인: 타시로 마사코
애니메이션제작:A-1 Pictures

 

- 애니메이션 『프랙탈』(2011년 방영/야마모토 유타카 감독)의 포스터. (C)フラクタル製作委員會


■『프랙탈』과 라이프로그(lifelog)
‘라이프로그’란 인간의 생활을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하는 행위, 혹은 그 기록 자체를 뜻한다. 블로그(blog)라든지, 휴대전화의 GPS 기능을 통한 위치 정보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기록하는 것 등이 현재 실현되어 있는 라이프로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더 확장한다면 개인이 매일매일 어떤 것을 먹었는지 사진 등으로 기록하는 푸드로그(foodlog)라든지, 본인이 읽은 책, 들은 음악, 시청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기록하는 것도 라이프로그라 할 수 있다. 일견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된 정보 같지만, 이런 라이프로그를 디지털화하여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시기 어떤 지역에 거주하는 어느 정도 나이의 인물의 삶이 정확하게 검색되고 통계지어질 수 있다면, 그 시대의 생활사(史)를 정확하게 살펴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라이프로그가 데이터베이스로 이용 가능해진다면 광고 분야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미국과 일본에서 일반적인 온라인서점인 아마존(amazon)은 개인의 구입 및 검색 내역을 자동적으로 분석하여 그 사람이 사이트에 재방문할 때 ‘최근 체크한 상품과 관련된 또 다른 상품’이나 ‘최근 검색한 상품을 구입한 다른 사람들이 같이 구매한 상품’을 보여주는데, 이런 것이 라이프로그를 시스템에 도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라이프로그가 인류 전체로 확대된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경제 형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논의가 존재하는데, 『프랙탈』은 그런 최신 개념을 즉시 도입하여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 온라인서점 아마존 사이트에는 이런 식으로 컴퓨터 사용자의 검색 내용을 바탕으로 자동 추천 상품이 리스트로 표시된다. 필자가 애니메이션 『UN-GO』를 검색했더니 추천 상품으로 『UN-GO』 애니메이션 관련 서적과 영상 상품, 그리고 『UN-GO』의 원작자인 사카구치 안고의 책이 나왔다. 그 아래에는 필자가 며칠 전에 일본의 철도 관련 CD를 검색했기 때문에 비슷한 CD를 ‘관련 상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프랙탈』의 배경 설정은 원안 담당의 아즈마 히로키가 이미 2006년에 소설가 사쿠라자카 히로시(대표작 『All you need is kill(올 유 니드 이즈 킬)』) 및 전자화폐·지역통화·정보사회학 등을 전공한 연구자 스즈키 켄과 공동으로 시도했던 소설과 설정으로 이루어진 엔터테인먼트 기획 『기트 스테이트(GEET STATE)』에서 그 일단을 볼 수 있었다. 『기트 스테이트』는 환경 관리형 권력이 전면화된 2045년의 일본 사회를 예측해보자는 일종의 ‘미래학과 엔터테인먼트의 융합’을 목표로 했던 프로젝트인데, 이 작품을 필두로 애니메이션 『프랙탈』의 설정, 2010년도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한 소설 『퀀텀 패밀리즈』, 그리고 2011년에 발표한 정치와 사회의 미래상을 그려낸 철학서 『일반의지 2.0』에 이르기까지 아즈마 히로키는 일관되게 현대의 인류가 거둔 기술적 성취와 경제·사회적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했다. 그것은 SF이기도 하고 인문학이기도 하며 결과적으로는 말 그대로 ‘철학’인 것이다. 그런 철학을 애니메이션에 도입한 작품이 『프랙탈』이라 할 수 있겠다.


■ 나노머신과 ‘세뇌’의 공포
애니메이션 『프랙탈』에서는 나노머신을 통해 전 세계 인류의 ‘라이프로그’를 담당하는 프랙탈 시스템이란 것을 ‘네트워크로 구성된 계산기 수 조 대의 총체’라고 하여 국가나 특정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앞서 언급한 온라인서점 아마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 라이프로그는 현재로선 기업이나 광고 등 자본주의 사회와 결합되어 있다. 2009년도에 개봉된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게이머』에는 가상공간의 캐릭터(아바타)로서 실제 인물을 직접 조종한다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내용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사이어티’라는 일종의 온라인게임은, 가상공간의 게임 캐릭터를 조종하는 현재의 온라인게임과는 달리 조종하는 객체가 실제 인간이라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조종당하는 인간은 ‘나노머신’이 심어져 있어 게임회사가 소유한 특정 공간에서는 외부의 ‘게임 플레이어’에게 조종당하게 된다는 설정인데, 이 게임을 만든 천재 과학자는 작중에서 “1억 명이 내가 사라는 걸사고 내가 시키는 대로 투표하고 내가 시키는 일만 하는 거지”라는 발언을 한다.

 

자신이 개발한 나노머신을 유포시키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정도의 움직임을 강제할 수 있는 나노머신이 가까운 미래에 개발된다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그런 나노머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대중의 움직임이 조종될 수 있다는 우려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파워블로거가 기업과 결합되어 지나친 광고를 했다는 것이 문제시된 적이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런 문제는 광고라는 점을 감춘 채 광고를 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소위 ‘바이럴 마케팅’이나 일본에서 일컬어지는 ‘스텔스 마케팅’이라는 것들이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노머신처럼 완전히 조종할 수는 없다고 해도, 대중은 쉽게 세뇌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과거 냉전 시대나 그 이전 미국에서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해 품었던 의심 이래 자주 볼 수 있던 일종의 ‘클리셰’라 할 수 있겠다.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좀비영화나 외계인이 인간의 신체를 강탈한다는 형태의 SF영화가 그런 ‘세뇌’에 대한 공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된 바 있었다.

 

『프랙탈』에서도 라이프로그를 제공하고 기본소득을 받는 프랙탈 시스템이 노후화되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자, 그런 시스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이와 다시금 시스템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3 레볼루션』에서 현실 세계의 노고에 지친 나머지 다시 가상세계인 ‘매트릭스’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물과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알던 사람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있겠지만 주변이 모두 세뇌되어 있는데 나만 혼자 세뇌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 자체도 이미 공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랙탈』에서 그려지고 있는 내용이 그런 공포를 그리고 있진 않지만, 작중에서 보여지는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다양한 사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미래학’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분명한 SF라고 할 수 있을 텐데, SF 문화가 워낙 마니아의 전유물인 것처럼 되어 있는 국내에서도 보다 다양한 SF애니메이션이 등장하길 바란다. 과거 케이블TV에서 방영된 국산 애니메이션 『레스톨 특수구조대』나 극장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에서 환경 관련으로는 미래 배경의 SF 작품을 선보였으나, 또 다른 방향의 SF도 보고 싶은 것이다.

 

 

- 왼쪽은 『레스톨 특수구조대』(1999년 방영/이동익 감독), 오른쪽이 『원더풀 데이즈』(2003년 개봉/김문생 감독)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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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인문학적, SF적 배경 설정 (1)
:애니메이션 『프랙탈』로 보는 ‘기본소득(베이직 인컴)’①

선 정 우 (출판기획사 코믹팝 대표, mirugi.com 운영)


■ 애니메이션의 현실 반영
창작 작품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고 사회가 작품 세계를 뒤따라가기도 한다는 사례는 많이 존재한다. 물론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도 사회상의 변화가 반영되는데, 그 중에서도 학문적인 분야의 최신 학설이나 이론, 새로운 과학적 연구 결과나 고고학적 발견이 작품에 반영되는 사례를 최근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90년대 이후 국내와 일본에서 최근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과거와 다르게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취향과 욕망에만 매몰되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또 반대로 그런 지적에 대해 추억에만 묻혀 현재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구세대의 잔소리라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과거에도 취향과 욕망에 충실했던 작품은 존재했고 현재에도 사회를 반영한 작품은 존재하고 있다. 한국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 편수가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보니 일본 애니메이션만큼 다양성이 보기 힘들었으나, 최근에는 『와라! 편의점』과 같은 어느 시간대에나 방영하기 쉬운 에피소드 중심형 TV애니메이션부터 『마당을 나온 암탉』과 같은 가족영화, 『돼지의 왕』이나 『은실이』와 같은 작가주의형 현실 비판 영화 등이 등장하며 보다 다양하게 현실이 반영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이 주로 현실 반영의 방법으로 그 시대의 사회상을 그려내는 것에 반해, 작품수가 훨씬 많은 일본에서는 보다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신 학설이나 이론의 도입이나, 새로운 과학적 연구 결과나 고고학적 발견을 바탕으로 한 작품의 제작이 그것이다. 지금부터 몇몇 일본 애니메이션의 사례를 통해 어떤 식으로 이런 시도가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 왼쪽부터 『와라! 편의점』(2009년부터 방영/조준영 감독), 『마당을 나온 암탉』(2011년 개봉/오성윤 감독), 『돼지의 왕』(2011년 개봉/연상호 감독), 『은실이』(2012년 개봉/김선아, 박세희 감독) 포스터.


■ 애니메이션 『프랙탈』에 도입된 ‘기본소득’ 개념
실제 작품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겠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개념이 있다. 국가, 혹은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기초 소득을 제공한다는, 요즘 한국에서라면 ‘궁극의 포퓰리즘’ 쯤으로 불릴 것 같은 정책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처럼도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긴 요원할 것 같은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근래 여러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을 전후해서 몇몇 정당에 공약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런 개념을 2011년 일본에서 방영된 TV애니메이션 『프랙탈』에서는 적극적으로 배경 설정에 도입했던 것이다.

 

우선 ‘기본소득’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재산이나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는 생계 곤란이라든지 무언가의 조건을 내걸고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만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다르다. 종래의 사회보장제도는 그 시민이 복지 혜택을 받을 만한 정당한 자격이 되는지 심사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그 심사를 위한 행정 기구가 필요하지만, 기본소득의 경우에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1인당 일정액을 지급하기만 하면 되므로 관료 조직의 간소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 기본소득을 저축이나 투자에 사용할 수 없고 오직 기초생활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빈부의 격차와 무관하게 빈자에게든 부자에게든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이 ‘기본소득’ 개념의 일견 불합리해 보이는 점을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본래 기본소득 개념은 16세기부터 그 구상이 나왔고 18세기 말 영국의 사회사상가 토마스 페인이 주장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논의는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됐고, 벨기에의 철학자 필립 판 파레이스가 1995년 제창하면서 단순한 공상 수준이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제기되었다. 국내에서는 주로 좌파 계열 정당에서 이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사실 기본소득 논의가 2000년대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제기된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영향도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자의 기본소득 연계의 의도는,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생활보호, 최저임금제도, 사회보장제도 등과 같은 복지 정책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국민에게 최저한도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것이 기본소득의 목적이다. 이미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많은 나라에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실업보험, 의료보장제도, 의무교육제도, 육아수당 등 각종 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기본소득은 이처럼 개별 보증을 넘어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방향으로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제도인 것이다. 사실 모든 생활보장제도에는 한계가 있는데, 예를 들어 불평등성이 그 중 하나다. 이미 현행 소득세의 경우에도 상대적인 저소득층은 환급을 통해 일정액을 돌려주기도 하고 고소득층의 경우에는 높은 세율을 통해 많은 세금을 거두기도 하는 등 기본소득 개념과 별로 크게 충돌하지 않는 방향이 도입되어 있다. 다만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일본 경제학자 나카타니 이와오는 “가난한 사람들은 세무서에 들러 세금 환급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준비해 제출할 여유도 없고 그런 재테크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똑같이 세금을 내도, 세금 제도를 잘 아는 어떤 이는 환급을 받고 어떤 이는 환급을 받지 못하는 모순. 또 고소득층의 경우에는 본인이 세금 제도를 잘 모르더라도 높은 소득으로 인해 개인적인 세무 업무를 세무사라든지 외부에 전담시켜 쉽게 환급을 받고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렇지 못하게 되는 불평등성. 이런 부분을 해소하자는 것 역시 기본소득의 목적 중 하나이다.


■ 애니메이션 『프랙탈』
『프랙탈』 애니메이션은, 22세기에 확립된 세계 관리 네트워크인 ‘프랙탈 시스템’이 인체에 심어진 일종의 나노머신을 통해 라이프로그를 수집하고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나, 사람들은 낙원과 같은 생활을 얻게 되어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개인주의 사회가 일반화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도펠’이라 불리는 일종의 아바타를 통해서만 타인과 접촉할 뿐, 직접적으로 실제 인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부모 자식 간에도 좀처럼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 에러가 쌓인 ‘프랙탈 시스템’은 붕괴의 위기를 겪게 되면서 일어나는 모험담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다.

 

『프랙탈』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나노머신을 통해 라이프로그를 정기적으로 프랙탈 시스템에 제공하면서 기본소득을 얻고 있는데, 이 기본소득은 저축이나 투자 등에 사용할 수는 없고 오직 기초 생활에만 쓸 수 있다. 그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종래의 자본주의에서와 같은 고전적 시장 경제 시스템을 위해 별도의 통화도 존재하고 있다. 『프랙탈』 작중에서는 프랙탈 시스템의 노후화로 인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여 기본소득을 받지 못한 일종의 난민들이라든지, ‘로스트 밀레니엄 운동’이라 하여 프랙탈 시스템 탓에 인류가 타락했다며 기본소득을 거부하고 프랙탈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조직도 존재한다. 로스트 밀레니엄 운동의 조직은 땅을 경작하고 가축을 기르는 등 과거와 같은 ‘노동’을 하자는 조직도 있고, 무장 투쟁을 통해 프랙탈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과격파 테러 집단도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프랙탈』은 작품 외적인 문제 등으로 인하여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국내와 일본의 일부 시청자 중에는 간혹 『프랙탈』이란 작품의 실패 원인을 원안 담당인 평론가 겸 소설가 아즈마 히로키(주)에게 돌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프랙탈』 스태프 리스트에 ‘원안’으로 표기된 아즈마 히로키가 맡은 것은 이런 프랙탈 시스템이나 세계관의 설정 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아즈마 히로키가 『프랙탈』의 스토리나 캐릭터 부분의 중심적인 내용을 전부 다 맡았다면, 그런 경우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스태프 표기 방법에서 보통 ‘원작’으로 나오게 된다. ‘원안’은 그 작품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정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체적인 내용은 감독 등과 같은 연출자나 ‘시리즈구성’으로 표기되는 각본 팀의 메인 스토리 작성자가 담당하게 된다. 『프랙탈』에서는 감독인 야마모토 유타카가 작품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했을 것이고, 개별적인 스토리는 시리즈구성을 맡은 일본의 인기 각본가 오카다 마리가 담당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아즈마 히로키는 트위터 등을 통해 2011년 당시부터 본인이 『프랙탈』 애니메이션에 제한적인 참여밖에 하지 못했음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역시 『프랙탈』 애니메이션판은 아즈마 히로키의 미래 세계에 대한 설정을 많이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나 캐릭터에 있어서는 각본가(‘시리즈구성’이란 직함)와 연출가가 중심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주) 아즈마 히로키:일본의 비평가이자 소설가. 현재 도쿄공업대학 세계문명센터 인문학원 디렉터 겸 특임교수이자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를 맡고 있다. 1993년 「솔제니친 시론」이란 논문으로 평론가 데뷔한 이후 1998년 출간한 저서 『존재론적, 우편적─자크 데리다에 대해』로 산토리학예상 수상. 그 후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2001년/한국어판 2007년),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2007년/한국어판 2012년), 『일반의지 2.0─루소, 프로이트, 구글』(2011년/한국어판 2012년) 등으로 비평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했다. 또한 2007년부터는 소설가로서도 활동을 시작하여 2009년 출간한 첫 번째 단독 저서인 SF 『퀀텀 패밀리즈』가 이듬해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하여 작가로서도 성공적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 평론가 겸 소설가 아즈마 히로키의 저서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일본어판과 한국어판, 그리고 『일반의지 2.0』과 아즈마 히로키가 기획·편집을 담당한 무크지 『미소녀게임의 임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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