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음악을 들으며 미국 속살을 헤집다'

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2017.11.07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여러분은 컨트리 음악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이런 모습 아닐까요? 큼지막한 챙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통기타를 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느끼한 콧소리로 분위기 잡는 아재, 존 덴버, 케니 로저스, 돌리 파튼처럼 이미 세상을 떠나거나 흰머리칼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원로 가수들, 보수적이면서도 조금은 촌스러운 미국 백인들만의 음악, 미식축구와 더불어서 미국적이되 너무 미국적이어서 미국 밖으로 퍼져 나가기 힘든 그들만의 문화’. 적어도 저한테는 그랬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꼭 그렇지 만은 않더라고요. 어쩌면 그런 무겁고 딱딱한 고정관념에 가려져 그 매력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힙합의 고장 동부, 록의 성지 서부가 아닌, 컨트리와 어울리는 중부 지역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유색인종은 눈씻고 봐도 찾기 힘들고, 조용하고 보수적인 분위기, 그 안에 머물면서 미국 문화의 다른 측면, 말하자면 더 깊은 속살을 봤습니다. 3년동안 가요담당기자를 하긴 했지만, 대중음악 전문가는 아닙니다. 애호가라고 하기에도 내공은 형편없어요. 그래도 제가 맛본 미국문화의 속맛과 속내음을 컨트리 선율을 통해 살짝 공유할까 합니다. 문화 상차림에도 편식보단 골고루 먹는게 좋을 테니까요. 몸에 좋으면서 생긴 것보다 썩 맛있는 반찬도 많답니다. 음악이라는 식단에서 컨트리가 그런 성격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나름대로 컨트리 음악이 가진 의미에 대해 짚어보려고 해요.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여러분은 미국 팝 음악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호쾌한 록과 메탈, 거칠고 울퉁불퉁한 랩과 힙합, 끈적한 R&B, 경쾌한 펑키와 디스코, 자유로운 재즈 선율...대개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나열한 음악 장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저는 기득권과 맞선 저항의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백인 지배에 억눌려온 흑인들의 음악, 기성 세대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그 저항의 맞상대, 저항의 대척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섣부른 결론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컨트리의 위치가 그쯤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종적으로는 백인, 성향으로는 보수적인 중장년층이 압도적으로 즐기는 음악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미국 대중문화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저항의 음악 저편에 축을 이루고 있는 컨트리 음악과의 만남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아마도 제법 놀랄 겁니다. 오 수재너’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 같은 분위기의 노래만 상상하다 엄연히 컨트리로 분류되는 요즘 노래들을 들어보면요. ‘이런 노래가 컨트리였나 싶을 정도로 다채롭고 역동적이고 그리고 때로는 어깨가 들썩여지고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노래들이 꽤 많아요. 마치 아이돌 음악을 통해 K팝을 접한 한류팬이 어느 날 트로트 음악의 묘한 뽕끼에 혹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요? 제가 요즘 노래 몇가지를 골라봤으니 한번 감상해보세요. 이런 노래도 컨트리였나 싶을 정도로 무지개보다 더 다양한 빛깔을 가지고 있답니다. 



<Chris Young - Think of You (Duet with Cassadee Pope> 중에서 - 영상 출처 : 유튜브



이 노래는 작년 한해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크리스 영과 캐서디 폽의 듀엣곡 ‘Think of You’입니다. 그래미상을 비롯해 주요 컨트리 음악 시상식에서 올해의 퍼포먼스 부문 후보까지 올랐지만 아쉽게도 상복은 없었지만요. 그런데 전 이 노래 들어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네, 이거 그냥 가요계에서 얘기하는 미디엄 템포 아냐? 드라마나 영화 엔딩 타이틀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데? , 근데 이게 컨트리였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Dan + Shay - From The Ground Up (Official Music Video>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댄과 셰이라는 남성 듀오가 부른 ‘From the Ground Up’이라는 노래예요. 감미롭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서정적이고, , 진부하지만 이런 형용사는 다 갖다붙이고 싶네요. 멜로디만큼이나 가사도 순수해요. 65년간 해로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예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사랑 노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노래가 컨트리로 들리시나요?



<Keith Urban - The Fighter ft. Carrie Underwood>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이 노래 꽤 핫합니다. 요즘 컨트리 음악을 대표하는 남녀 스타로 꼽을 수 있는 키스 어번(니콜 키드만의 새 남편으로도 알려져있죠)과 캐리 언더우드(오디션 프로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으로 톱스타로 성장한 대표 케이스로 꼽힙니다)가 부른 듀엣곡 ‘The Fighter’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키스어번의 노래에 캐리 언더우드가 피처링을 했다고 해야겠네요. 경쾌하고 세련되면서도 살짝 뽕끼가 느껴지지 않나요? 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중 장년층의 대표적 노래방 스테디셀러인 서울패밀리의 '이제는'이 연상되더라고요, 이런 노래도 컨트리랍니다.



<서울패밀리 - 이제는>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Enchanted - Carrie Underwood - Ever Ever After>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컨트리의 활동 영역은 생각보다 꽤 넓어요. 당대 최고 음악의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애니메이션 주제가까지 진출했지요. 이 음악, 캐리 언더우드의 ‘Ever ever after’ 2006년 디즈니가 내놓은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의 주제가입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합성이라는 점, 디즈니의 뻔한 공주 해피엔딩 이야기를 스스로 비꼬고 뒤튼 셀프 풍자극이었다는 점에서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컨트리 음악을 주제곡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파격이었어요. 컨트리와 록 발라드를 적절히 접목하면 훌륭한 사랑노래인 동시에 영화음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케이스죠. 뮤직비디오도 참 공들여 잘 만들지 않았나요? 물론 디즈니라는 든든한 자본이 있기에 가능했겠지만요. 작곡가는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전문 알란 멘켄이라는 점도 이채로워요. 



<Florida Georgia Line - God, Your Mama, And Me ft. Backstreet Boys>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역시 잘 나가는 컨트리 듀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과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함께 부른 ‘God, your mama and me’입니다. 전 이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노래가 아주 좋아서라기보다는,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보이그룹의 재결성과 귀환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가봅니다. 90년대 꽃미남 보이밴드 BSB를 기대하고 있을 여성분들이라면 이들의 늙수구레(?)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컨트리의 콜라보까지 하는군요. 원래는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의 노래였던 것을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목소리를 입혔다고 합니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은 플로리다와 조지아에서 자라난 교회 오빠 둘로 구성돼있답니다. 정말 교회에서 음악하다 만났다네요. 컨트리가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미국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내슈빌의 중심가 - 이미지 출저 :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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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동반자 라디오, 라디오의 진화를 듣다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5.02.12 11:08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 상상발전소 기사 공모전 수상작 / 김현아 -


2014년 9월 11일, <무한도전> 멤버들이 라디오 DJ로 변신했습니다. 라디오가 예전 아날로그의 한 매체라는 인식이 무색하게, 라디오 방송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라디오는 ‘소리’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청취자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디지털과 닮아있는 매체입니다. 청취자의 일상과 함께하며 미디어의 시류에 적응해 온 라디오, 오늘은 라디오의 진화에 대해 귀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사진1 경성방송국과 내부 연주 모습 

 


일제 강점기인 1927년 2월 16일, 조선총독부 산하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이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 미 군정 체제 아래 경성방송국이 서울 중앙 방송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의 상업 방송 색채가 도입되고 광고를 위한 규칙적인 ‘편성’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정시에 방송이 시작했고, 15분마다 ‘KBS’라는 콜사인이 나왔습니다. 

 

방송의 규칙성은 사람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실제로 라디오가 없는 시골에서는 앰프로 라디오 방송을 함께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특정 라디오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편성표를 보고 방송이 시작하는 시각에 맞추어 라디오를 켰습니다. 규칙적인 청취습관이 형성된 것입니다. 라디오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편성표에 적힌 같은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바야흐로 라디오를 통해 근대적인 시간, 대중적인 시간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사진2 영화 <쎄시봉>, <써니>의 영화 스틸컷

(영화를 통해 70년대의 음악다방 문화와 라디오 청취습관을 엿볼 수 있다)



1964년, 서울 FM 방송국이 국내 최초 첫 FM 방송을 도입합니다(이후 1966년, 동양 TBC에 합병). 그러나 1970년대 흑백 TV가 보급되면서, 라디오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라디오는 ‘대중’을 위한 매체가 아닌 ‘리스너(listener)’를 위한 매체로 적응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유입된 미국 로큰롤·히피 문화로 인해 청년들은 음악다방에서 빈번히 만났습니다. 그곳에는 항상 음악 DJ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DJ 기반의 다방문화가 라디오에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DJ로는 최초의 라디오 DJ인 최동욱,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이종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황인용 등이 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각종 팝 음악과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에 나온 팝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하고는 했습니다. 1990년대 CD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음악 소개 기능이 줄어들 때까지, 라디오는 음악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교본이었습니다.



 

라디오는 소리로 전달되기에 청취자가 일하면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핵심 프로그램을 출, 퇴근 시간과 정오 시간에 편성하여 운전하는 샐러리맨과 가사 일을 하는 주부를 공략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라디오는 CD, MP3에게 ‘리스너’를 뺏겼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이를 인정하고 또 한 번 적응을 택했습니다. 이번에는 라디오가 인터넷을 품으며 1996년에 MBC 라디오가 최초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KBS 라디오가 인터넷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 서비스를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 영상1 TV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한 <두시 탈출 컬투쇼>


 

SBS 라디오 <두시 탈출 컬투쇼>는 SBS funE 채널을 통해 TV 프로그램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그리고 MBC 라디오 <심심타파>는 아이돌 DJ인 신동(슈퍼주니어)과 보이는 라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라디오 코너에 TV 예능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했습니다. 또한, 이를 별도로 녹화해 유튜브에 업로드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영상에 익숙한 어린 청취자들에게 라디오의 매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팟캐스트로 라디오의 ‘편성’이 무의미해졌습니다. 청취자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맞는 라디오를 검색해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다운받아 듣게 되었습니다. 기존 올드미디어는 이러한 변화에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는 달랐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일찍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행하고 편성을 청취자와 나누고 있었습니다. 

 

탄탄한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라디오는 빠른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 구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어플을 통해 청취자는 라디오와 훨씬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어플, 인터넷, 팟캐스트 등 라디오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청취자와 만나고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입니다. 



▲ 사진3 방송사의 라디오 어플리케이션 (왼쪽부터 SBS 라디오 어플 고릴라, KBS 라디오 어플 콩) 



그렇다면 2014년 눈에 띄는 라디오의 시도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선 라디오 특유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생방송의 강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KBS라디오 <가요광장>은 주중-주말 2 DJ 체제를 도입, 모든 방송을 라이브로 진행하였습니다. 경기방송은 <DJ 처리와 함께 아자아자 시즌2>에서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6시간에 걸쳐 생방송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공개방송을 청취자를 위한 서비스 차원이 아닌 공연의 수준까지 높이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지난 9월 MBC라디오 <정준영의 심심타파>에서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밤샘 공개방송을 마련했었습니다. 연말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함께 4시간 연속 공개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날 4시간에 걸친 공개방송은 공연의 밀도를 높여주었습니다.

 

EBS 라디오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란 프로젝트를 통해 음성이 주는 ‘상상력’에 집중했습니다. 배우들이 한국 근‧현대 문학을 낭독하고, 이를 ‘오디오북’으로 판매하는 OSMU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라디오는 본인의 정체성을 공고화하면서 꾸준히 변화했습니다. 라디오는 그 어떤 올드미디어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한 매체입니다. 지금까지 라디오가 정적이라고 생각하여 멀리하셨다면, 오늘 크게 라디오를 켜보는 게 어떨까요?



ⓒ 사진 출처

- 표지 자체제작

- 사진1 정보통신산업진흥원

- 사진2 제이필름 무브픽쳐스, 토일렛 픽쳐스

- 사진3 SBS, KBS

 

ⓒ 영상 출처
- 영상1 SBS funE 유튜브 공식채널

 

ⓒ 참고자료

- <라디오 혁명>(김은규,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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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서의 음악-대중음악, 시대의 자화상

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2015.01.14 10:45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창조산업과콘텐츠 편집부>



음악은 시대의 거울이고,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나라 잃은 슬픔을 표현한 ‘나그네의 설움’과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귀국선’부터, 경제성장을 자축한 ‘서울의 찬가’와 당시의 청년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아침이슬’, 청소년을 대변하는 ‘교실이데아’와 88만 원 세대의 송가라 불리는 ‘싸구려 커피’에 이르기까지. 삶을, 그리고 문화를 반영하는 사료로서 대중음악은 무엇을 기록해왔을까요?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중략)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1989년에 발표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는 호젓한 당시 정동 인근의 풍경을 선명하게 그려냈습니다. 사실 그로부터 2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정동의 풍경은 노랫말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광화문 연가’의 가사 그대로의 풍경을 만나게 돼 새삼 왼쪽 가슴이 뭉클해지는 미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노랫말에 비친 과거의 풍경은 이렇듯 생생해서, 때로는 노래를 통해 내가 몰랐던 시절로 순식간에 회귀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에는 ‘명치좌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라는 가사가 등장합니다. 1938년, 명동은 우리나라를 통틀어 가장 도시적인 곳이었고,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을 가리키는 명치좌(明治座)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박향림의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면 그때 그 화려했던 명동 거리가, 그리고 어린 동생을 떼어놓고 혼자만 번화가로 나들이를 가는 ‘모던보이’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대중가요가 기록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풍경만은 아닙니다. 노랫말을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것은 바로 시대적인 기조와 사회의 변화상입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정처 없는 이 발길 (중략) 옛님이 그리워도/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라는 가사로 당시의 아픔을 묘사한 이 노래는 나라 잃은 민족에게는 위안이었고, 후일을 기약하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설움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1945년, 마지못해 조국을 떠났던 동포들이 귀국선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발표된 이인권의 ‘귀국선’은 ‘돌아오네 돌아오네/고국산천 찾아서/얼마나 그렸던가/무궁화 꽃을’이라며 광복의 기쁨으로 가득 찬 당대 사회상을 노래했습니다.

 


▲ 사진1



광복과 전쟁이라는 부침의 역사를 겪으면서는 ‘울어라 은방울’ ‘전우야 잘 자라’ 같은 노래가 널리 불렸고, 재건의 시기라 불리는 1960년대에 들어서는 빠른 템포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명숙이 부른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1961)는 전국에 노란색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직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았던 그때, 먹고사는 일이 지옥 같았다던 시절, 산업화와 서구화를 향한 열망이 노래를 통해 발현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조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종이 울리네/꽃이 피네/새들의 노래/웃는 그 얼굴’이라고 경쾌하게 노래했던 패티김은 ‘아름다운 서울’에 살겠노라며 가파른 경제성장을 시작하던 당시를 기록했습니다.



 

초창기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가 트로트였다면, 1970년대를 전후로 주류를 형성한 것은 팝송과 포크송, 록 음악 같은 청춘의 음악이었습니다. 팝송의 유행은 미군의 주둔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데, 패티김・조용필・신중현을 비롯한 당시의 인기 가수들은 대부분 미8군에서 공연을 하며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팝송이 대중화하면서 청년들은 포크송과 록 음악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격변의 시기였던 1970~80년대, 자유를 외치던 청춘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 바로 음악이다. 양희은의 ‘아침이슬’, 이장희의 ‘그건 너’,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 송창식의 ‘고래사냥’,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은 그 시절 젊은이들의 희망과 저항, 사랑과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주옥같은 명곡입니다.


▲ 사진2



그렇다면 오늘날 청춘의 모습은 대중음악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요? 2005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Ex의 ‘잘 부탁드립니다’는 동시대 청년들의 구직난을 익살스러운 가사로 풀어내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2008)는 ‘잉여’라고 부를 만한 청춘의 슬픈 자화상을 담아냈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어쨌든 ‘눅눅한 비닐 장판에/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중략)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라는 자조적인 가사의 이 곡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으며 ‘88만 원 세대의 송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히 가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데 다소 소외됐던 청소년을 주요 소비층으로 끌어들였고, 스타 시스템 등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전국구 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중략)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시대에 대한 유감을 거침없이 외치며 청소년의 마음을 대변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1994)는 기성세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청소년에게는 해방구와도 같았다. 그런데 이런 문제 제기가 현실에서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던 걸까요? ‘교실이데아’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도, 청소년의우상이 부르는 청소년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No more dream’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꿈 따위 안 꿔도 아무도 뭐라 안하잖아/전부다 똑같이 생각하고 있어 (중략) 대학은 걱정 마/멀리라도 갈거니까’. 획일화한 교육 아래 무기력해지는 10대의 모습을 표현한 이 곡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경고처럼 느껴집니다.

 


 

무거운 학원가의 현실과는 반대로, 대중가요 속에 드러난 사랑의 양상은 비교적 스펙터클하게 변화했습니다. 1970~80년대의 사랑 노래는 대부분 ‘진실된 사랑’ 그 자체를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미워도 다시 한번’은 헌신적인 사랑을, 윤형주의 ‘라라라’는 조개 껍질을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

에 앉아 밤새 속삭이기만 하는 순수한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는 가요가 많아졌습니다. 015B의 ‘신인류의 사랑’은 자유분방한 신세대의 사랑 이야기를,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는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멜로디에 담았습니다. 삐삐세대라고도 불리는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해’를 의미하는 ‘486’이 나오는 노랫말도 왕왕 들을 수 있었고, 이승환의 ‘1,000일 동안’이나 젝스키스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삐삐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노래도 많았습니다.

 

지난봄, 소유와 정기고의 듀엣곡 ‘썸’은 각종 음원 사이트의 차트에서 1위를 휩쓸었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의 설레는 마음을 재치 있는 가사로 풀어낸 이 곡은 정식으로 연인이 되기 전 ‘썸’을 타는 요즘 젊은 세대의 새로운 사랑 방식을 보여줍니다. 젊은이들의 폭풍 같은 공감을 얻은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라는 노랫말은 과거와 현재의 사랑 방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세태가 달라졌다 해도 ‘사랑’은 여전히 대중음악의 단골 소재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 사진3

 


 

악동뮤지션의 ‘지하철에서’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옵니다.

 

 ‘북적북적이는 출퇴근 시간/정장 교복 할 거 없이 빽빽한/내가 들어서면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버린 전동차의 풍경(중략)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덜컹덜컹해요/비틀비틀해요/게임하는 남자들 홈피하는 여자들/이어폰을 꽂고 덩실덩실하는 청년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누군가 이 노래를 들으며 ‘아, 이 당시의 지하철 안 풍경은 이랬구나’ 하며 빙긋 웃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음악 속에는 당시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음악은 우리에게 친근한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또한 ‘음악은 삶의 변주’라는 말처럼, 대중음악은 결국 대중의 삶에서 비롯됩니다. 이 시대의 노래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공존하는 관계이기에, 대중가요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가’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 사진 출처

-표지 MNET, 창조산업과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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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 MNET, 창조산업과 콘텐츠

- 사진3 창조산업과 콘텐츠


 본 기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창조산업과 콘텐츠> 7·8월호(http://bit.ly/1q0z7tR)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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