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쯤 서울 근교의 한 도시에서 ‘음악도시로서 첫발을 디디겠다’며 야심차게 음악축제를 열었습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슷비슷한 아이돌 그룹이나 트로트 가수들을 불러다 여는 몰개성한 음악축제가 아니라, 음악전문가들이 기획자로 투입돼 그 당시만 해도 인지도보다는 음악성으로 인정받던 인디가수들,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민중 가수들을 무대에 올린 뜻 깊은 행사였어요. 오래토록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3년 정도 버티다 없어졌습니다. 취지와 콘텐츠가 아무리 독창적이어도 장소와 시기, 대중의 취향 등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게 단명의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 도시’가 되는 게 이리도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테네시주의 주도이면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내슈빌(Nashville)은 참 운이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세계 대중음악의 본산 미국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Music City’로 불리는 곳은 이곳이 유일할 거예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음악(Music)이란 곧 컨트리를 말한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오늘은 지난 5월 여행했던 내슈빌의 기억을 여러분과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당시 동선을 돌이키면서 명실상부한 음악도시라는 곳의 속살, 미국 음악계에서 컨트리 음악이 차지하는 위치를 자연스레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문화콘텐츠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분들께 작게 나마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내슈빌 공항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 공항에 도착한 뒤 짐을 찾으러 가는 길부터 남다릅니다. 미국 공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책-신문 판매 코너인 ‘허드슨 뉴스’는 음악도시에 걸맞게 기타와 하모니카 마이크 등의 사진을 곁들여서 ‘이곳은 음악도시’라고 알려주네요. 



내슈빌 공항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은 미국 테네시주의 주청사와 의회가 있는 행정중심지이지만, 대표적인 관광도시입니다. 그런데 외국인이나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찾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아요. 관광객의 대부분은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는, 중·장년층 부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 가족 관광객들이거든요. 미국인 입장에선 대표적인 국내 여행지입니다. 그래서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미국적인 것’을 경험하기도 좋고요. 피부 색깔에 따라 선호하는 음악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음악은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아울러 하게 됐습니다. 



내슈빌 도심 복판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심 복판입니다. 다운타운(Downtown), 리버프론트(Riverfront), 브로드웨이(Broadway)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가장 멋진 명칭은 홍키통크 하이웨이(Honky Tonk Highway)일 것 같네요. 홍키통크는 지금 컨트리음악이 뿌리를 두고 있는 미국 남부 지역의 토속 음악이라고 합니다. 대로변(그래봤자 왕복 4차선 정도의 너비지만)을 사이에 두고 유서 깊은 바와 레스토랑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어느 곳을 들어가도 한 쪽에 마련된 무대에서 대낮부터 공연이 펼쳐집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지금 어느 바에서 누가 공연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도 있게 해 놓았어요.





내슈빌 ‘Municipal Auditorium’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아우라'라는 말이 있죠? 어려운 말로 광휘(光輝),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하고 놀라운 기운! 전 이곳을 지날 때 ‘음악도시의 아우라’라는 것을 느꼈어요. 이곳은 홍키통크 하이웨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래된 극장 앞입니다. ‘Municipal Auditorium’이니 우리말로 ‘시민회관’쯤 되겠네요. 그 시민회관에서 지금까지 열렸던 콘서트 티켓들의 이미지로 외벽을 둘렀습니다. 어떤 가수들이 왔는지 한번 볼까요? ‘메탈리카’ ‘저니’ ‘어스 윈드 앤 파이어’ ‘브루스 스프링스틴’ ‘REO 스피드웨건’...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뮤지션들이네요? 이 아우라 가득한 극장 외벽은, 내슈빌이 ‘컨트리 음악의 성지’이긴 해도 ‘컨트리 음악만의 성지’는 아니라는 걸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내슈빌이 ‘음악도시’인 건 멋진 바와 유서 깊은 극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선 미국의 내로라하는 음반사들이 이곳에 둥지를 트고 있어요. 그 음반사들과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에 미국판 음악저작권협회라고 할 수 있는 'ASCAP(American Society of Composers, Authors and Publishers)'나 방송음악저작권을 관리하는 'BMI(Broadcast Music Incorporated)' 건물이 있습니다.  

이 음반사와 관련 단체들의 밀집구역과 홍키통크 거리는 걸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고, 일반 버스, 그리고 관광버스들이 수시로 다닙니다. 음반을 기획·제작하는 음반사, 녹음하는 스튜디오, 새로 나온 음악의 반응을 떠볼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음악 팬들, 그리고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하면서 ‘볕들 날’을 기다리고 있을 내일의 스타들. 한마디로 음악 산업을 이끌고 나갈 모든 구성 주체들이 지근거리에 모여 있는 거대한 음악 클러스터가 바로 내슈빌입니다. 





내슈빌 중앙역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이 사진은 앞으로 내슈빌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도심 한 복판에 있는 리버프론트역이에요. 내슈빌의 중앙역입니다. 이 역에서 동쪽으로 50킬로미터쯤 뻗은 철길을 따라 인근 소도시를 이어주는 통근열차가 하루 대 여섯 차례 운행합니다. 2006년에 운행을 시작한 비교적 새 노선이에요. 기차 이름이 ‘뮤직 시티 스타(Music City Star)’랍니다. Star는 우선 내슈빌을 거쳐갔던 수많은 컨트리 음악 스타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가 담겨 있고요.(컨트리 스타들에 대한 얘기는 다음 회에 할게요.) 또한 이 철도가 내슈빌과 인근 도시를 점차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시켜가는 확장 계획의 시작(Start)이라는 뜻, 그리고 지금은 직선인 철길이 결국은 촘촘하게 이어지며 별(Star)모양이 될 것이라는 의미도 함축돼 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도시의 정체성을 주입하려 애쓰는 이런 노력들이 참 멋져 보여요. 모름지기 요즘은 디테일의 시대니까요. 다음 회에는 내슈빌을 거쳐갔고 또 거쳐갈 숱한 컨트리 음악인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던 공간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Dolly Parton and Kenny Rogers - Christmas Without You (1984)> 중에서 - 영상 출처 : 유튜브 



마지막으로 음악 한 곡 소개하면서 마칠까 해요. 성탄절이 다가오는 만큼 캐롤로 준비했어요. 그대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어떨까요? 컨트리 음악계의 든든한 원로 케니 로저스와 달리 파튼의 ‘Christmas Without You’라는 노래 들려드릴 게요. 30년쯤 된 음악이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참 아름답습니다. ‘크리스마스엔 누구도 혼자일 수 없다’고 되뇌는 달리 파튼의 속삭이는 목소리도 참 아름답고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컨트리 음악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이런 모습 아닐까요? 큼지막한 챙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통기타를 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느끼한 콧소리로 분위기 잡는 아재, 존 덴버, 케니 로저스, 돌리 파튼처럼 이미 세상을 떠나거나 흰머리칼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원로 가수들, 보수적이면서도 조금은 촌스러운 미국 백인들만의 음악, 미식축구와 더불어서 미국적이되 너무 미국적이어서 미국 밖으로 퍼져 나가기 힘든 그들만의 문화’. 적어도 저한테는 그랬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꼭 그렇지 만은 않더라고요. 어쩌면 그런 무겁고 딱딱한 고정관념에 가려져 그 매력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힙합의 고장 동부, 록의 성지 서부가 아닌, 컨트리와 어울리는 중부 지역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유색인종은 눈씻고 봐도 찾기 힘들고, 조용하고 보수적인 분위기, 그 안에 머물면서 미국 문화의 다른 측면, 말하자면 더 깊은 속살을 봤습니다. 3년동안 가요담당기자를 하긴 했지만, 대중음악 전문가는 아닙니다. 애호가라고 하기에도 내공은 형편없어요. 그래도 제가 맛본 미국문화의 속맛과 속내음을 컨트리 선율을 통해 살짝 공유할까 합니다. 문화 상차림에도 편식보단 골고루 먹는게 좋을 테니까요. 몸에 좋으면서 생긴 것보다 썩 맛있는 반찬도 많답니다. 음악이라는 식단에서 컨트리가 그런 성격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나름대로 컨트리 음악이 가진 의미에 대해 짚어보려고 해요.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여러분은 미국 팝 음악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호쾌한 록과 메탈, 거칠고 울퉁불퉁한 랩과 힙합, 끈적한 R&B, 경쾌한 펑키와 디스코, 자유로운 재즈 선율...대개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나열한 음악 장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저는 기득권과 맞선 저항의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백인 지배에 억눌려온 흑인들의 음악, 기성 세대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그 저항의 맞상대, 저항의 대척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섣부른 결론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컨트리의 위치가 그쯤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종적으로는 백인, 성향으로는 보수적인 중장년층이 압도적으로 즐기는 음악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미국 대중문화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저항의 음악 저편에 축을 이루고 있는 컨트리 음악과의 만남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아마도 제법 놀랄 겁니다. 오 수재너’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 같은 분위기의 노래만 상상하다 엄연히 컨트리로 분류되는 요즘 노래들을 들어보면요. ‘이런 노래가 컨트리였나 싶을 정도로 다채롭고 역동적이고 그리고 때로는 어깨가 들썩여지고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노래들이 꽤 많아요. 마치 아이돌 음악을 통해 K팝을 접한 한류팬이 어느 날 트로트 음악의 묘한 뽕끼에 혹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요? 제가 요즘 노래 몇가지를 골라봤으니 한번 감상해보세요. 이런 노래도 컨트리였나 싶을 정도로 무지개보다 더 다양한 빛깔을 가지고 있답니다. 



<Chris Young - Think of You (Duet with Cassadee Pope> 중에서 - 영상 출처 : 유튜브



이 노래는 작년 한해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크리스 영과 캐서디 폽의 듀엣곡 ‘Think of You’입니다. 그래미상을 비롯해 주요 컨트리 음악 시상식에서 올해의 퍼포먼스 부문 후보까지 올랐지만 아쉽게도 상복은 없었지만요. 그런데 전 이 노래 들어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네, 이거 그냥 가요계에서 얘기하는 미디엄 템포 아냐? 드라마나 영화 엔딩 타이틀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데? , 근데 이게 컨트리였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Dan + Shay - From The Ground Up (Official Music Video>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댄과 셰이라는 남성 듀오가 부른 ‘From the Ground Up’이라는 노래예요. 감미롭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서정적이고, , 진부하지만 이런 형용사는 다 갖다붙이고 싶네요. 멜로디만큼이나 가사도 순수해요. 65년간 해로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예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사랑 노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노래가 컨트리로 들리시나요?



<Keith Urban - The Fighter ft. Carrie Underwood>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이 노래 꽤 핫합니다. 요즘 컨트리 음악을 대표하는 남녀 스타로 꼽을 수 있는 키스 어번(니콜 키드만의 새 남편으로도 알려져있죠)과 캐리 언더우드(오디션 프로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으로 톱스타로 성장한 대표 케이스로 꼽힙니다)가 부른 듀엣곡 ‘The Fighter’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키스어번의 노래에 캐리 언더우드가 피처링을 했다고 해야겠네요. 경쾌하고 세련되면서도 살짝 뽕끼가 느껴지지 않나요? 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중 장년층의 대표적 노래방 스테디셀러인 서울패밀리의 '이제는'이 연상되더라고요, 이런 노래도 컨트리랍니다.



<서울패밀리 - 이제는>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Enchanted - Carrie Underwood - Ever Ever After>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컨트리의 활동 영역은 생각보다 꽤 넓어요. 당대 최고 음악의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애니메이션 주제가까지 진출했지요. 이 음악, 캐리 언더우드의 ‘Ever ever after’ 2006년 디즈니가 내놓은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의 주제가입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합성이라는 점, 디즈니의 뻔한 공주 해피엔딩 이야기를 스스로 비꼬고 뒤튼 셀프 풍자극이었다는 점에서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컨트리 음악을 주제곡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파격이었어요. 컨트리와 록 발라드를 적절히 접목하면 훌륭한 사랑노래인 동시에 영화음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케이스죠. 뮤직비디오도 참 공들여 잘 만들지 않았나요? 물론 디즈니라는 든든한 자본이 있기에 가능했겠지만요. 작곡가는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전문 알란 멘켄이라는 점도 이채로워요. 



<Florida Georgia Line - God, Your Mama, And Me ft. Backstreet Boys> 중에서 영상 출처 : 유튜브



역시 잘 나가는 컨트리 듀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과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함께 부른 ‘God, your mama and me’입니다. 전 이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노래가 아주 좋아서라기보다는,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보이그룹의 재결성과 귀환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가봅니다. 90년대 꽃미남 보이밴드 BSB를 기대하고 있을 여성분들이라면 이들의 늙수구레(?)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컨트리의 콜라보까지 하는군요. 원래는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의 노래였던 것을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목소리를 입혔다고 합니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은 플로리다와 조지아에서 자라난 교회 오빠 둘로 구성돼있답니다. 정말 교회에서 음악하다 만났다네요. 컨트리가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미국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내슈빌의 중심가 - 이미지 출저 : 정지섭 기자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