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코이콘텐츠 11, 12월호 money + content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크라우드펀딩?

온라인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crowd)으로부터 소액을 모아 필요한 자금을 모집(funding)하는 투자형태


CLOUD FUNDIG

한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은 투자보다는 후원이나 기부의 형태로 인식되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MOVIE

얼마 전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새로운 자금 모집방법으로 투자금의 일부를 모집한 적이 있으며,


THE LAST PRINCESS, THE HUNT

영화 <사냥>, <덕혜옹주>도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었는데요.


크라우드펀딩은 영화만 받는다?

영화 외의 콘텐츠 영역에서도 접근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장르든 이미 대형 투자사나 기획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GAME

게임은 회사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프로젝트 투자가 유리한 경우가 많아 영화보다는 오히려 게임이 크라우드펀딩에 더 적합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크라우드펀딩을 위한 방법을 살펴볼까요?


성공적인 크라우드펀딩으로 향하는 7가지 이정표

1. 자금 규모는 1~2억원 내외가 적당

2. 투자형 플랫폼을 활용

3. 프로토타입 설정

4.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한 프로젝트 투자 적극 활용

5. 명확한 자금 계획 제시

6. 투자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 활용

7.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마중물


도입 초기인 탓에 콘텐츠 분야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한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보다 많은 펀딩 사례가 생겨나면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크라우드펀딩이 개인이나 중소 기업 규모의 독립 제작자들의 콘텐츠 제작 및 유통 환경을 개선하는데 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케이콘텐츠는 격월로 발행되며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http://www.kocca.kr/)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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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 혹은 거짓?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 속 역사적 사실은?

상상발전소/방송영화 2016.08.18 13:5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뜨거운 여름, 이럴 땐 시원한 영화관에서 잠깐의 피서를 즐기시는 분들 많을텐데요. 최근 후끈한 예매 열기로 주목 받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덕혜옹주''인천상륙작전'! 두 영화 모두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인데요영화를 보다 보면, 아니면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과연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을까?' 라는 궁금증! 지금부터 영화 속 내용과 실제 역사를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사진 1. 영화 <덕혜옹주> 포스터

 

13살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덕혜옹주(손예진). 고국 땅을 그리워하던 그녀에게 어린 시절 친구 김장한(박해일)이 나타나고그녀가 영친왕 망명 작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 사진 2.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손예진)

 

역사 속에서는

 

고종이 회갑을 맞은 1912년 덕수궁에서 덕혜옹주가 태어납니다어머니는 소주방 나인 출신으로 고종의 후궁이 된 복녕당 양 씨입니다덕혜옹주가 5살 되던 해에 고종은 덕수궁의 준명당에 그녀를 위한 유치원을 만들었는데요행여 어린 그녀가 놀다 다칠까 걱정했던 고종은 건물 바깥에 난간을 설치하는 등 딸바보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옹주의 나이 8살 때 고종이 승하하면서 그녀는 일제의 강한 통제를 받기 시작합니다.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했던 일제는 그녀를 일본 거류민이 세운 소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급기야 옹주의 나이 14, 일제의 압박에 그녀는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 사진 3. <덕혜옹주> 스틸컷

 

일본에 간 그녀는 오빠인 영친왕의 집에서 지내며 여자학습원에 다녔습니다그녀는 일본에서 항상 보온병을 들고 다녔는데요어린 나이에 아버지 고종의 죽음을 겪은 그녀는 독살을 의식하고

자신이 준비한 물만 마시기 위해 보온병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1931년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하게 되는데요애꾸눈에 키가 작은 추남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그녀의 남편은 미남에 동경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고 합니다결혼 1년 후 외동딸 정혜를 낳은 그녀가 잠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 사진 4. 김장한(박해일)과 만난 덕혜옹주(손예진)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길지 못했습니다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죽음, 타국에서의 외로운 생활 등으로 지친 그녀는 결혼 후 조현병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남편인 소 다케유키는 일제가 패망하자 더는 경제적으로 그녀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결국 옹주는 그와 이혼합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에 돌아오고 싶어했던 그녀는 계속 귀국을 시도했지만 당시 황족의 존재에 부담을 느끼던 이승만 정부에서는 그녀의 귀국을 거부합니다1956년 외동딸마저 잃은 덕혜옹주는 마침내 196237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창덕궁 낙선재에서 말년을 보내던 그녀는 1989년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칩니다.

 

영화 속에서는

 

 ▲ 사진 5. 일본 유학길에 오르는 덕혜옹주(아역 김소현)

 

영화 속에서 덕혜옹주는 광복 후 조현병에 시달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하지만 실제 역사에 따르면 그녀는 어머니인 귀인 양씨가 죽은 후 18세 때부터 조현병 증상을 보입니다그리고 영화에서는 덕혜옹주가 일본에 간 뒤 한 번도 조선에 오지 못한 것으로 나오지만실제로는 어머니의 장례 때문에 잠시 귀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사진 6. 덕혜옹주의 조력자 김장한(박해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묘사되는 김장한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맞을까요? 정답은 YES! 맞습니다김장한은 실제로 고종이 시종인 김황진의 조카이자 덕혜옹주의 약혼자가 될 뻔했던 인물로고종이 일제의 눈을 피해 옹주와 혼인시키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덕혜옹주를 도와 영친왕 망명 작전을 수행하거나 옹주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사실 이 모습은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광복 후 덕혜옹주가 귀국을 시도할 때 필사적으로 돕던 김장한의 모습도 사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데요김장한이라는 영화 속 인물은 실존 인물인 김장한과 그의 친형인 김을한을 합쳐 만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따라서 광복 후 옹주의 귀국을 도왔던 신문기자는 김을한이라는 인물을 모델로 한 김장한이 되겠습니다.

 

 

▲ 사진7 <인천상륙작전> 포스터

 

19506·25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긴 대한민국.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성공 확률 5000:1의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그는 언어 장벽과 현지 지리에 취약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첩보 작전을 꾸미고 일명 'X-RAY'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해군 첩보부대가 투입됩니다이 부대의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국으로 위장해 인천의 동태를 살피는 임무를 맡습니다.

 

하지만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에게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고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인천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섭니다.

 

▲ 사진 6. 장학수 대위의 실제 모델은 임병래 중위, 홍시욱 하사

 

역사 속에서는

 

임병래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 출생으로 1950년 해군 중위로 임관하였습니다.

홍시욱 하사는 1929년 태어나 1948년 해군 신병으로 입대하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일명 'X-RAY' 작전, 즉 영흥도 첩보전에서 이들이 소속된 해군정보국 첩보대는 인천 앞바다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하여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정보를 모으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임무 수행 후 철수 명령을 받았지만, 미군이 상륙해 있다는 사실을 안 북한군이 영흥도로 기습해온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다른 대원들이 보트로 먼저 탈출할 수 있게 도운 뒤 끝내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결국 끝까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맞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 사진 9. 북한군 림계진(이범수)과 남한군 장학수(이정재)

 

실제 역사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장학수라는 인물이 실존 인물을 합쳐 만든 가상의 인물이라는 점이죠앞서 설명했듯이 장학수라는 인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라는 두 인물을 모티브로 생성된 인물이랍니다.

 

▲ 사진 10.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림계진과 장학수

 

영화에서는 우리 첩보부대가 북한군으로 위장해 인천에 침투했다는 설정을 추가하였습니다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장학수의 마지막인데요장학수의 모델인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영화와 달리 적에게 포위된 후 자결하였습니다.

 


'덕혜옹주''인천상륙작전'은 모두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그래서 영화 속 픽션과 실제 역사인 팩트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요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창작자들의 풍성한 상상력이 더해진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답니다무더운 여름, 시원한 극장으로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진 출처

사진 1~10.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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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70년을 담다_'부천국제만화축제'

상상발전소/만애캐 2015.08.19 10: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매년 8월, 부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만화축제가 펼쳐집니다. 바로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부천국제만화축제인데요, 올해로 18회를 맞는 부천국제만화축제는 매년 알찬 콘텐츠를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흔히 만화를 '재미있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화 또한 글, 그림처럼 표현 방식의 일부이며, 재미뿐만이 아닌, 시대를 고발하는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이번 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선 만화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콘텐츠가 아님을 보여주는 전시가 많았습니다. 그중 다소 무겁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들에 대한 전시가 있었습니다. 바로, 기획전 '만화의 울림, 전쟁과 가족'입니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만화의 울림, 전쟁과 가족이라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2015년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인 '광복 70주년'을 맞아 '잊혀지는 것들', 하지만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들'에 주목했습니다. 식민 통치의 아픔, 남북 간의 한국 전쟁,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으나 그 이면의 '산업화', '도시화'의 그늘.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고통받는 전쟁의 피해자들과 경제 성장 뒤에 존재하는 그늘인 소시민들의 아픔을 다루었는데요,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시대별로 나누어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영상 1 이여원 '나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해결되지 않은 사회배상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나비'는 흑백과 빨간색의 선명한 색채 대비로 간결하며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왜 그곳에 있는지를 설명하며 애니메이션은 시작하며, 아직까지 사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나비'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비단 사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려 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어느새 시야에서 보이지 않아 잊혀 가고 있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우리 또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영상 2 김준기 '소녀 이야기'


'목숨만 부지하자. 목숨만 살면 내 몸을 뺏아가도 내 마음만은 안 뺏아간다'

생전 정서운 할머니가 인터뷰 때 하신 말씀입니다. 김준기 감독의 '소녀이야기'는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했으며, 생전 인터뷰 육성을 담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은 故 정서운 할머니의 인터뷰 육성과 함께 진행됩니다. 일본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공장에서 2~3년만 일하면 된다는 거짓말에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녀이야기'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보듬고자 제작된 애니메이션입니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긴 하지만, 교과서에서, 혹은 뉴스로 접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직접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故 정서운 할머니의 음성과 할머니가 겪었던 참상을 고발하는 영상은 의식하고 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위안부 문제를, 우리의 마음에 박히게 합니다.



 사진 3. 오! 한강


한국전쟁부터 80년대 민주화 운동까지 냉전 시대 사상의 갈등, 그리고 현실과 신념 사이에서의 고뇌가 이강토, 이석주 부자의 삶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화가 이강토는 북한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지만, 무자비한 살상이 이루어지는 전쟁, 좌우 이념 대립에 회의감을 느끼고 전향합니다. 그 후 이강토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죽산 조봉암을 지지하지만,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 셋째도 평화라며 평화통일론을 지지하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조봉암은 간첩 혐의로 몰려 사형당하고, 이강토는 그에 대한 극사실주의 작품을 그려 현실을 비판합니다. 또 다른 아버지처럼 따르던 조봉암을 잃은 이강토의 절절한 심정이 전시되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작품에 나온 '조봉암'은 실제 존재했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오! 한강은 이렇게 실재 인물인 조봉암을 등장시켜 가상의 픽션이지만 실재감을 높였습니다. 덧붙여 이강토의 아들 석주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시대에 조봉암의 이름이 잊혀가는 장면을 넣어, 분단 이후로 이데올로기 냉전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작품으로 보여주며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민족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진 4. 인천 상륙 작전

 

최근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은 2015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흥남철수 직후의 1951년 1월까지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 및 한국전쟁을 어린 철구의 가족을 중심으로 상세히 그려낸 만화입니다. 작품은 험난한 시대에서 살아남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일반 소시민들, 그리고 좌우 이념 대립에 희생당한 한 가정의 비극을 그렸습니다. 주인공 철구의 아버지는 한강대교 폭파사건으로 두 다리와 팔을 잃고 얼굴 반쪽이 불탄 불구자가 되어 인민군의 선전도구가 되어 돌아다니다 종전 직후에는 빨갱이의 활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수난을 당합니다. 철구의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죽임을 당하고 전쟁고아가 된 철구는 미군에 의해 입양을 가게 됩니다. 인천상륙작전은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덤덤하게 한국전쟁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함과 동시에, 전쟁에 관련 없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냈습니다. 



 사진 5. 태일이


최호철의 '태일이'는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게 했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생애, 그리고 1960년대 당시의 노동환경을 그린 만화입니다.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태일이 십 대 소녀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 저임금 무휴 근무, 비좁은 작업실 등 열악한 근로환경의 부당성을 자각하고 노동운동을 하게 되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풀어냈습니다. 『전태일 평전(1983)』과 전태일의 수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1988)』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으며,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고달픈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사진 6. 지 편한 세상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지역재개발로 고통받는 철거민들의 모습을 그립 만화로, 김홍모, 김성희, 김수박,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 작가가 일산 덕이동, 부천 중3동, 성남 단대동, 서울 상도4동 등 실제 철거 지역에서 취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중 유승하 작가의 '지 편한 세상'은 용산구 신계동을 배경으로, 단란하게 살아가던 가족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뉴타운 건설로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의 이름은 '편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집을 강제 철거로 잃은 주인공인 정아의 가족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지 편한 세상'이죠. 정아의 가족이 철거민의 생존권을 주장하며 외로이 투쟁하는 모습과 고층 아파트가 대비를 이루는 장면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만화를 재미있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전시가 불편할 것입니다. 마냥 재밌고 밝은 것만 만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분명한 캐릭터성, 그리고 보기 쉬운 그림은 만화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합니다. 이러한 힘을 가진 만화는 어떠한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서 굉장히 효과적이죠. 제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의 기획전시 '만화의 울림, 전쟁과 가족'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광복 70년 동안에는 빛도 있었지만, 그것에 가려진 그늘과 상처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죠. 

 

사진, 영상 출처

영상 1. 이여원 작가

https://www.youtube.com/watch?v=wGsJKy8mikU

영상 2. 김준기 감독, 콘텐츠스쿨재학생

[출처] 부천국제만화축제 - 우리나라의 70년을 다 (비공 카페)

 https://www.youtube.com/watch?v=WnLqKSOOV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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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와 <미생>을 통해 보는 한국형 웹툰의 발전과 미래

상상발전소/만애캐 2014.12.29 14:33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글|박석환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창작과 교수)



단행본 위주로 발전해온 만화 산업이 웹・모바일이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포털 중심의 웹툰 플랫폼을 통해 만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폭넓은 인지도와 선호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최근 가장 핫한 드라마이자 웹툰으로 주목받는 윤태호의 <미생>을 통해 한국형 웹툰의 발전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본다.



▲ 사진1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 콘텐츠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2012년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바둑기사를 꿈꿨던 청년의 직장 생활기를 그리고 있다. 연재 기간 중 누적 조회 수는 6억 뷰였고, 그해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등 각종 상을 수상했다. 전 9권으로 출판된 단행본은 2013년 기준 5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직장인을 위한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tvN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 중이다. 드라마 <미생>은 3%대면 선방이라는 케이블TV에서 시청률 7.9%(2014.11.28. 기준)를 기록하며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원작 웹툰의 인기에 드라마의 히트가 더해지면서 콘텐츠 <미생>의 실적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연재 시 무료였던 웹툰이 유료로 전환됐지만 누적 조회 수가 10억 뷰로 늘었고 단행본 판매는 11월 기준 200만 부를 넘어섰다. 드라마 다시보기 서비스(VOD)의 누적 판매액도 15억 원에 달한다. 해외 방송계의 관심도 커서 드라마 판권과 리메이크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원작 캐릭터를 이용한 GS25의 상품 판매율은 전년대비 40% 증가했고, 드라마에 PPL 형식으로 노출된 관련 상품의 판매도 급상승 중이다. 


얼마 전 열린 ‘2014 창조경제박람회’(11.27~30)에서는 창조경제의 핵심 아이콘로 <미생>이 지목되기도 했다. 한 편의 웹툰이 만화는 물론이고 IT, 출판, 방송, 캐릭터, 광고 등 콘텐츠 관련 산업 전반으로 파생되면서 사회문화적 의제를 제시하고 경제산업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0년 등장한 웹툰이 만화 산업의 틀을 바꿔놨다면 이제 웹툰은 콘텐츠 산업의 룰도 바꿔놓을 기세다. 이른바 웹투노믹스의 시대가 온 것이다. 




<미생>붐을 불러온 원작자 윤태호는 만화사 측면에서 보면 여러 세대를 경험한 표류자이자 각 시대의 문제를 넘어서며 현재에 이른 극복자라 할 수 있다. 이현세가 톱을 달리던 극화 시대(1980~90년대)에 허영만과 조운학의 문하로 입문했고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각광받던 코믹스 시대(1990~2000년대)에 <야후>라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내 만화 세상은 웹툰 시대(2000~현재)로 전환됐고 새로운 환경에 맞춰 자기 혁신에 나서야 했다. 윤태호의 도전과 성과를 중심으로 한국 만화 플랫폼의 변화 과정과 과제에 대해 살펴본다.


생산자 중심 플랫폼 시대


극화 시대에 만화의 생산과 소비를 전담했던 플랫폼은 대본소로, 그 숫자가 전국적으로 2만 개가 넘었다. 잉크만 묻어도 2만 부가 팔린다는 호시절이었지만 2만 부 이상이 팔리지도 않는 ‘다종 생산 소량 판매 체제’였다. 인기 만화가는 소속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달에 10~30권 분량의 작품을 내야 했다. 인기 만화가의 문화생이란 명목으로 다수의 스태프가 창의력과 생산력을 저당잡힌 채 만화를 그려냈다. 윤태호 역시 이 무대에 있었다. 코믹스 시대는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저가로 다량 판매되는 만화잡지가 주 플랫폼이었다. 호당 3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만화잡지를 통해 독자를 얻은 작품은 단행본 출판 시 통권 100만 부, 200만 부가 판매됐다. ‘소종 생산 다량 판매 체제’가 된 것이다. 대규모 스태프가 생산에 집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적 역량을 단일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극화의 무덤에 파묻혀 있던 수많은 예비 만화가가 이 시장에 참여했다. 윤태호도 이 무대를 통해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소재로 한 대체 역사물 <야후>를 발표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극화 시대처럼 코믹스 시대 역시 10년 호황을 이어가지 못했다. 출판 불황이 오자 판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다종 생산 체제를 답습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중심 플랫폼 시대


웹툰 시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다. 2000년대 초 출판만화 시장의 소비자가 급감했다. 생산자 중심 시장이었던 만화계는 인터넷 시대의 소비자를 찾아 포털사이트로 이동했다. 2003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시작된 웹툰 서비스는 기존의 만화 플랫폼과는 달랐다. 기성 만화가의 명성은 1천만 명의 포털 사용자 앞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소비자가 작품 생산의 방향성을 제시했고 인터넷 ‘사용자 환경’에 최적화한 형태로 만화는 형과 식을 달리해야 했다. 페이지 단위로 연출되던 만화는 이제 모니터 화면 스크롤로 시간과 감정을 조정해야 했다. 기존의 경험치가 경쟁 요소가 되지 못하자 인터넷 문화와 컴퓨팅 작업 환경에 익숙한 신예들이 대거 등장했다. 네이버 등의 포털 사이트가 웹툰 시장에 참여하면서 기존 만화 시장은 웹툰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나 편집자의 의도는 최소화됐다. 사용자의 성향과 수요에 맞춘 작품 편성이 이뤄졌다. 윤태호 역시 2006년 포털 사이트 파란에 <첩보대작전>이라는 작품을 연재했고, 2007년에는 독립형 웹진 만끽에 인간의 탐욕과 인과응보를 주제로 한 웹툰 <이끼>를 발표하면서 웹툰 적응기를 거쳤다. 하지만 긍정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 매체는 편집자의 의도와 작가의 지명도에 기댄 코믹스 시절의 편성 정책을 유지했다. 




윤태호의 반전은 독립형 웹진 <만끽>이 자금난 등을 이유로 좌초하면서 시작됐다.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전개된 웹툰 시장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메뉴 탭 하나로 단순화했다. 다음이 자사의 웹툰 채널인 만화속세상에 ‘나도 만화가’라는 코너를 마련했고, 네이버는 만화 채널에 ‘도전 만화가’라는 코너를 마련했다.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소비자의 지지를 얻은 작품과 작가가 메인 페이지에 노출됐다. 노출은 인지도를 높이는 과정이 됐고 이는 인기로 이어졌다. 인지도와 인기는 원고료 산정의 지표가 됐고 연관 상품화의 척도가 됐으며, 만화가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수입이 됐다. 수많은 예비 만화가가 웹툰 작가를 지망하며 이 무대에 올라섰고 포털 사이트는 자사 회원들과 이들 생산자를 매칭해줬다. 여기에 제3자(광고주 등)를 끌어들여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판을 키웠고 웹툰 생산과 소비의 지속가능한 체제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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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은 코믹스 시대의 지명도를 지닌 윤태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욕구를 충족해주면서 자신들이 조성한 생태계에서 제3자를 끌어들이며 활동할 작가를 원했다. 잔혹 스릴러를 추구하며 유료 웹툰으로 연재됐던 윤태호의 <이끼>는 이 무대의 대중적인 사용자층과 쉽게 매칭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끼>를 본 네티즌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2009년 강우석 감독이 이 웹툰을 영화로 제작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단숨에 대중적 관심작이 된 <이끼>는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연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연재가 지속되면서 포털의 수많은 사용자가 윤태호 웹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입소문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력하게 작동했고 영화의 흥행과 함께 후광효과가 더해지면서 윤태호는 비로소 후배 웹툰 작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대중적 인터넷 사용자층과 제3의 지지자들을 얻게 됐다. 윤태호는 ‘웹툰 이전 세대’이자 웹툰 붐 이후에 주목받은 ‘웹툰 이후 세대’라 할 수 있다.




‘DICON 2014’(국제 콘텐츠 컨퍼런스)에서도 윤태호와 웹툰이 주요 이슈였다. 기조강연에 나선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는 윤태호의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제2의 <미생>’을 찾아 다음카카오의 사용자들과 매칭시킬 것이라 했다. 마블엔터테인먼트의 C.B.셰블스키는 한국 작가에 의해 창작된 ‘마블의 첫 번째 웹툰 <어벤져스 : 일렉트릭 레인>이 <미생>에 밀려 2위를 했다’고 농담을 던지며 한국의 웹툰 포맷을 전 세계에 유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웹툰포럼’에서는 프랑스 델리툰의 디디에 보르그 대표가 한국의 웹툰을 보고 프랑스 만화의 디지털화를 꾀하게 됐다며 ‘망가(일본 만화)의 자리에 한국 웹툰이 자리하게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이만든 웹툰 플랫폼은 여러 세대를 거쳐 완성된 독창적이고 효용적인 디지털 만화 플랫폼이다. 세계 만화계가 주목하고 있고 다양한 콘텐츠 산업계에서 연대를 희망하고 있는 만큼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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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제도 있다. 2013년 오픈해 주목받고 있는 레진코믹스는 포털 사이트 웹툰 플랫폼의 대안성을 강조하며 등장했다. 유사 성격을 지닌 플랫폼이 10여 곳 신설된다는 소식도 있다. 좋은 일이지만 현재의 포털 사이트 웹툰 플랫폼이 할 수 없는 제한적 요소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또 다수의 웹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웹툰의 생산량이 과다해지고 있다. 플랫폼이 과다 생산 체제로 접어들면 단일 작품의 소비량과 판매량은 비례해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과거 대본소와 만화잡지 플랫폼이 경쟁력을 잃었던 요인은 명백하게 과다 생산 체제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최근 웹툰의 세계 진출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 역시 반갑지만 정체기에 접어든 국내 성장 수요를 대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소비 인구의 제한은 한국 콘텐츠 시장이 지닌근본적 문제이고 해답이 세계시장에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급하게 생산량을 늘려서는 안 된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기존의 웹툰 붐과 달리 지금 윤태호와 <미생>이 상징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웹툰 산업 붐은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지금 <미생>이 일으킨 붐은 여러 세대를 걸쳐 완성된 작가가 웹툰 플랫폼을 통해서 이뤄낸 성과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작가가 대형 플랫폼의 영향력과 미디어믹스의 힘에 의해 성공작을 낸 것이 아니다. 1988년 입문한 작가가 26년 만에 제대로 만들어 성공시킨 작품이 <미생>이고 그 저력이 지금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이만한 성과를 일구기 위해서는 바람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제대로 된 한 걸음, 철저히 준비한 한 걸음을 통해 예측 가능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사진 출처

- 사진1 누룩미디어 www.nulookmedia.co.kr | tvN ch.interest.me/tvn



본 기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창조산업과 콘텐츠> 11·12월호(http://bit.ly/1qnAi9f)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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