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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6.12 북미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은

세계가 주목하는 미디어 이벤트를 만들어냈다.

남북 방송의 교류와 협력에 대한 단계적 실천론이 제시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방송의 교류와 협력이 방송 자체를 넘어 사회 문화의 교류를

강화하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이 무르익어가는격변의 시기, 방송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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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창현(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4.27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위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10.4 남북공동선언에 이어 한국전쟁 이후 지속되었던 냉전과 반목의 시기를 뛰어넘는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의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성과를 축소하고 남북 간 심리전이 오히려 강화되는 재냉전 시기를 겪었다. 박물관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법한 심리전 수단인 대북 전단이 살포되었고, 정부는 북한의 지도자를 압박한다는 명분으로 휴전선 인근에 대북 확성기 설치를 강화하였다. 그 결과 6.25전쟁 이후 한반도에 잔존하는 분단 이데올로기가 더욱 고착화되었다.


이미지 출처 : 4.27 남북공동선언, 출처 : 남북정상회담 웹페이지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2018년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의 문을 열 것을 암시했고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남북 간 평화의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6.12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은 세계가 주목하는 미디어 이벤트를 만들어냈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전쟁의 커뮤니케이션 시기를 넘어 평화의 커뮤니케이션 시기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과거 전 세계 미디어에 은둔의 독재자로만 비춰졌던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협상력을 갖춘 지도자라는 평을 얻게 되기도 했다.



4.27 남북정상회담 생방송은 미디어학자인 다얀 다니엘과 캐츠 엘리후가 주장하는 ‘미디어 이벤트’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디어 이벤트가 일반적인 텔레비전 방송과 구분되는 것은 ‘미디어 외부에서 기획되고 정규 방송을 중단하면서 실시간 중계 방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시청자는 일상을 멈추고 미디어 이벤트를 주목하고 여기에 참여한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방송사가 아니라 청와대에서 기획했고, 방송사 외부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이벤트가 벌어졌으며, 특별 편성으로 하루 종일 방송되어 국민들이 일상을 멈추고 함께했다는 점에서 미디어 이벤트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새롭게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3대 세습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다는 기본적인 영웅 스토리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두 주인공의 만남은 한반도 핵전쟁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으로, 세계가 축하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다얀과 캐츠는 미디어가 이벤트를 어떻게 구성하고 재현하는지와 관련해 ‘경쟁(Contests)’, ‘정복(Conquests)’, ‘대관식(Coronations)’ 이라는 세 가지 유형화된 개념(경쟁은 실력이 엇비슷한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겨루는 것으로 엄격한 규칙에 따라 집행된다. 소송과 TV토론도 일종의 경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대관식은 엄격한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으로, 규칙은 협의를통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정복은 일회성 이벤트로서 규칙을 깨뜨리는 데 있으며 자유의지의 행위를 통해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며,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특성을 갖는다.)을 제시했는데 이 모든 것이 남북정상회담 방송에 담겨 있었다.



첫째, 경쟁형의 속성은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서 만나고, 김정은 위원장이 호위부대의 경호를 받으며 북한으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방송으로 보여줌으로써 드러났다. 둘째, 정복형의 유형은 지난 10년간의 남북 간 갈등을 해소하고 남북 정상이 새로운 화해·협력의 시대를 연다는 최종적인 목표를 달성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대관식형의 속성은 남북 정상이 한반도기가 나란히 새겨진 2개의 동일한 연단에 서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선언을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처럼 남북 정상 모두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 초부터 남북 방송의 교류와 협력에 대한 단계적 실천론이 제시되었다. 방송의 교류와 협력이 방송 자체를 넘어 문화예술은 물론 사회경제 분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는 기본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교류와 협력의 첫 번째 단계는 남북 간 비방 방송을 중지하고 방송의 화해를 추구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상호 간의 방송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전제된다. 두 번째 단계는 남북 간 방송 프로그램의 교류와 평양과 서울 간 상호 중계방송 등을 실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로는 방송 제작자의 교류를 통한 프로그램 공동 제작이다. 궁극적인 목표인 마지막 단계는 남북통일 채널 및 방송국을 확보하는 것이다. 필자가 1993년에 제시했던 이러한 단계적 접근은 6.15 정상회담 이후 방송의 교류와 협력 과정 속에서 상당 부분 실천되었다.


구체적으로 6.15 정상회담 이후인 2000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남한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하였고, 2002년에는 남북 방송 교류 협력을 위한 합의서가 만들어져 남북 방송인의 토론회까지 개최되었다. 한편, 방송 및 취재 제작 교류 협력의 대표적 사업으로 KBS에서는 <백두에서 한라까지>(2000), <세계문화유산 한반도의 고인돌>(2002), <평양노래자랑>(2003) 등을 제작했고, MBC에서는 <평양특별공연-이미자의 평양동백아가씨>(2002), <PD수첩-개성을 가다>(2005),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을 가다>(2007)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아울러 남한은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의 위성중계를 지원하거나, 뉴욕 오케스트라 평양 공연 등을 전 세계에 방송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03년 제시했던 단계론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상호 비방을 중지하는 단계, 프로그램의 상호 교류의 단계, 그리고 제작자의 교류와 공동 제작의 단계를 모두 거쳐 왔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서 통일방송국을 만드는 것만 남아있는 셈이다.



이미지 출처 : JTBC <서울ㆍ평양, 두 도시 이야기> 예고편


4.27 정상회담 이후 남북방송간 협력은 6.15 정상회담 직후의 경험을 기반으로 신속하게 확장되고 있다. 2018년 추석 때에는 JTBC가 <서울ㆍ평양-두 도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평양음식을 찾아가는 미식 기행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KBS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해 평양지국을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남북 간 적대적 커뮤니케이션 체제를 해체하고, 평화적 커뮤니케이션 체제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한국 방송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부가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한류의 열풍을 타고 남한의 방송 콘텐츠는 세계로 향하고 있다. 향후 남북 간 방송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성공적인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한류 콘텐츠의 제작비를 절감하면서 다양성을 강화하고, 질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의 제작 스튜디오를 활용하거나 남북한 제작 인력이 공동 제작한 콘텐츠가 한류 콘텐츠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등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지 출처 :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예고편


최근 호주의 영화감독인 안나 브로이노스키(Anna Broinowski)가 북한 영화인들의 도움으로 다국적 기업들의 환경파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를 만든 것은 매우 좋은 공동 제작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강남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평양 스타일’이라는 독창적 장르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냉전시대부터 오랜 시간 자리 잡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평화체제 하의 긍정적인 북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방송 콘텐츠 제작자 스스로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 우선, 휴전체제로부터 벗어나 종전체제에 부합하는 미디어 콘텐츠 생산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한다. 휴전시기 냉전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킨 삐라와 확성기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평화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남측 방송 제작자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에 대해 가졌던 적대적 이미지 대신 전통과 낙후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현송월 단장이나 북한의 응원단 보도에서 나타난 선정적인 보도 태도 또한 북한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허상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음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방송이 역할을 해야 한다. 4.27 남북정상의 도보다리 산책 장면과, 백두산 천지의 만세 장면과 같은 일시적인 미디어 이벤트를 넘어 일상 속에서 평화라는 시대정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방송 콘텐츠를 기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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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