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을 마주해 본 사람이라면누구나 압니다대중가요의 가사만큼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김이나 작사가는 대중가요를 사람에 빗대어 “멜로디가 외모라면 가사는 성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그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두고 “한 인물이 사랑과 이별에 대처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최근 작사 활동은 물론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 가고 있는 그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보았습니다그는 타고 난 이야기꾼이었습니다하나의 질문을 던지면자신의 생각을 조근조근 이야기해 듣는 사람의 귀를 단박에 사로잡았습니다.





작사가 김이나 – 이미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많은 사람들이 김 작사가를 만나면 묻습니다. 어떻게 작사가가 되었느냐고. 어떤 노력을 하면 자신도 당신과 같은 작사가가 될 수 있겠느냐고 고민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김 작사가가 작사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요즘 청년들의 스펙 쌓기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김형석 작곡가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작곡 실력을 평가해 달라고 청하면서부터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모바일 음원 회사에서 일했어요. 평소 마음속으로 품어 왔던 꿈이 작사가도 아니었고요. 단지 저는 음악 전반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사람이었어요.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앨범 디자인, 공연 연출 등 음악과 관련된 일들을 해 보고 싶었어요.”
 
당시 김 작사가는 대중가요를 들을 때 작곡가를 분류해 음악을 들었고, 취미 삼아 작곡을 해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테스트해 본 김형석 작곡가의 답변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김 작사가는 평소 좋아했던 김형석 작곡가에게 자신의 홈페이지 주소를 남겼습니다. 
 
“그 당시 제가 김형석 작곡가의 콘서트에 다녀왔거든요. 맨 앞줄에 앉아 있어서 콘서트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제 개인 홈페이지에 콘서트 사진을 올린 후 사진 구경하러 오시라고 얘기했죠. 이후 김형석 작곡가가 제 홈페이지에서 개인적으로 써 둔 글들을 눈여겨보고 작곡보다는 작사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김 작사가는 처음으로 작사라는 작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얼핏 들으면, 직장인에서 작사가가 되기까지 우연한 행운이 그에게 잇따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음악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에 쌓여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김 작사가는 우연이 기회가 되려면 평소 해 온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작사를 하고 싶다면 음악 전반에 대해 진지한 마음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작사가의 첫 데뷔작은 2003년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입니다.
 
처음으로 데모의 기회가 있었어요. 멋모르고 썼는데, 초심자의 행운처럼 제가 쓴 가사가 통과됐어요. 기뻤죠. 그런데 그 뒤로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잘 안 됐어요.”
 
김 작사가는 실패를 맛본 이후 본격적으로 작사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다른 작사가의 가사를 보면서 나름대로 분석했습니다. 단순히 글이 아닌, 소리로서 가사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 작사가는 다른 작사가들의 가사를 연구하면서 소리가 예쁜 단어나 말이나 감정선은 어디서 터뜨려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면서 그동안 작사를 시각으로 보는 글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후 참여하게 된 드라마 <> OST 타이틀곡 ‘Perhaps Love(사랑인가요)’가 큰 인기를 모으면서 김 작사가의 작사 활동은 본격화되었습니다.



작사가 김이나 – 이미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당시 40분 뒤에 곡 녹음이 시작되는데 아직 가사가 없다는 연락이 왔었어요. 이럴 경우 보통 저뿐 아니라 여러 작사가들에게 연락이 가 있는 상황이죠.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당시 순발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 썼던 가사가 잘 됐어요.(웃음)”
 
김 작사가는 싱어송라이터와 작사가를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음악과 가사에 담아 전달하지만, 작사가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사에 제 이야기를 담지 않는 편입니다. 주로 사랑과 이별을 하게 된 사람을 상상하고 작업을 하죠. 가사는 스토리가 아니라 한 인물의 성격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캐릭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결국 대중가요는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태도를 그린다고 봐요. 그 사람의 대사로 가사가 만들어지고 마무리되는 거죠.”
 
김 작사가는 작사를 할 때 영감을 특별히 어딘가에서 받거나 찾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단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적인 부분에서 특징을 찾아 꺼내 쓰는 것뿐이라고 전했습니다. 김 작사가는 주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가사가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격을 명확히 잡고 첫마디를 상상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면서 박정현 씨의 서둘지마요 같은 경우는 가수의 성격을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가사를 썼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업 중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대중가요는 과거에 비해 유행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유행하는 음악의 시기도 짧아졌습니다. 김 작사가는 요즘 대중가요의 트렌드는 점점 음악을 듣는 이들이 개인화되고 개별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유행하는 곡의 장르나 가수가 편중돼 있지 않지만, ‘웰메이드’ 곡을 찾는 대중은 분명히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얼마 전 음원시장을 석권한 윤종신의 좋니의 경우, 요즘 대중가요 시장의 트렌드와 다른 클래식함이 돋보이는 곡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곡의 작사에 참여했고, 작사가 상도 수차례 받았던 김 작사가지만, 지난 몇 년간은 슬럼프였습니다. 한동안 마음에 드는 가사가 나오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쓰는 가사의 양이 급격히 줄고, 이제 한계가 오는 걸까 고민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집 밖으로 잘 안 나갔어요. 사람들도 안 만나고요. 스트레스 때문인지 살도 많이 빠졌어요. 그런데 남편과 취미로 골프를 시작하고, 한약도 지어먹고 몸을 챙겼더니 제 마음에 드는 가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결국 체력이 창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시작한 방송도 김 작사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집이나 작업실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몸을 쓰고 새로운 일을 해 보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방송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체력관리 하면서 집중력도 좋아진 것 같아요. 최근 이효리 씨의 ‘Mute’도 좋은 에너지 덕분에 나오게 됐죠.”
 
작사가가 가져야 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냐는 질문에 김 작사가는 약간 있는 것 같다면서 저는 예민함, 조심스러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부분이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쓸 때 감정이입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요즘에는 대형 기획사에서 작사가 공개 오디션을 열기도 하고, 작사가 교육 프로그램 등도 생겨났습니다. 과거에 비해 작사가가 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작사가가 될 수 있는 길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직업은 신비로운 동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동굴을 들어와 보지 않고 밖에서 예측하는 것은 위험 요소가 많죠. 겉모습만 보고 이 일을 하려고 한다면 조금 힘들지도 몰라요. 설사 노력을 해서 작사가가 됐다고 해도 중요한 건 유지하는 거죠. 작사가도 화가처럼 클라이언트가 없으면 생계 유지가 어렵거든요.”
 
김 작사가는 작사가가 되려면 음악 산업 전반의 구조에 대해 알아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좋은 가사를 쓰는 것 이상으로 음악 산업이 어떻게 이뤄져 있고,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비즈니스로 힘든 부분이 적어진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김 작사가가 생각하는 좋은 작사가는 어떤 모습일까. 김 작사가는 좋은 작사가는 결국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작가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은 아니지만, 가사 속에는 작사가의 세계관이 녹아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대중가요의 가사도 책처럼 사람들의 영혼에 문신처럼 남는 것이라고 봐요. 물론 제가 유익하고 공익적인 가사를 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은 필요하다고 봐요. 대중가요의 가사가 생각보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상 조금 더 나은 사람,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죠.”

작사가 이외에도 작가, 방송인 등으로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있는 김 작사가는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이라, 하루하루 내 앞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것이 목표라면서 만약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새로운 도전은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글 마송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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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산업의 OSMU(One Source Multi Use)

상상발전소/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토리 2012.02.01 11:32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One Source Multi Use를 들어 보셨나요? 문화콘텐츠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거나, 혹은 문화콘텐츠가 그 목적인 마케팅 기법입니다. 제목 그대로 한 가지 자원으로 여러 방면에 활용한단 뜻인데요. 드라마, 가요, 만화 등에서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관련 상품을 만들거나 다른 분야의 작품으로 새로 탄생하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를 제작하고 OST가 담긴 음반을 만들거나, 인기 연예인의 얼굴이 들어간 상품이 흔한 OSMU의 예입니다.

 

 


 

 캐릭터는 OSMU가 특히 활발한 문화콘텐츠입니다. 그 이유는 캐릭터가 다른 문화예술 분야와 비교해 갖는 강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미키마우스는 80세가 넘었고, 헬로키티 또한 30세가 넘었습니다. 이들은 만화 뿐만 아니라 게임, 유원지, 각종 캐릭터 상품으로 끊임없이 재탄생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이 캐릭터들이 케케묵었다는 인식은 약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캐릭터의 원조격인 '아기공룡 둘리'를 인쇄 매체에서 머무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 각종 캐릭터 상품, 교육용 비디오, 박물관, 에듀테인먼트까지 활용하였습니다. 최근 뽀로로를 비롯한 국산 인기 캐릭터들이 속출하면서 각종 캐릭터 상품 뿐만 아니라 뮤지컬로도 재탄생되고, 아담한 테마파크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린이 세상'이 열린 것이지요.

 



국민 캐릭터인 '아기공룡 둘리'를 활용한 둘리 뮤지엄 조감도

 

 

그렇다면 캐릭터 분야는 왜 유난히도 OSMU가 활발한 것일까요?


 첫 번째, 캐릭터만이 가진, '변치 않는다'는 절대적인 강점 때문입니다. 드라마, 연예인을 활용한 OSMU는 많습니다. 하지만 배우나 가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늙게 마련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인기 하락을 초래합니다. 이에 비해 캐릭터는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귀엽고 예쁜 모습 그대로 남을 수 있는 것이지요. 어머니 세대에서도, 자식 세대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원작자에게 엄청난 효율성을 갖는 것이겠지요. 연예인은 세월이 지날수록 변신을 꾀해야 하지만 캐릭터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초기의 콘셉트로 충성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캐릭터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연예인은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려 하면 지치는게 당연합니다. 또한 자칫하다 '인권 침해'라는 비난을 살 수 있습니다. 소설 역시 활용 범위가 넓기는 하지만 원작을 변형하여 가치절하하면 비난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캐릭터는 협력해서 얼마든지 새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협력을 한다면 원작자의 의도가 자칫 훼손될 순 있지만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모여 새로운 모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저작권 침해를 당할 수 있고, 캐릭터를 다른 분야에 활용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점입니다. 바로 '선출원주의' 때문에 기본 캐릭터의 디자인을 조금만 변형해도 일일이 개별 디자인으로 특허청에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시마로'를 탄생시킨 최승호 씨엘코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이러한 비효율적 제도와 지적재산권 침해 때문에 고충을 겪는다고 토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명 MMO RPG '리니지'가 본래 만화가 원작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본래 롤플레잉 게임 리니지는 신일숙 작가의 동명 만화 '리니지'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NC소프트에서 개발된 리니지는 엄청난 인기를 끌지만, '저작권 침해'라는 법적 분쟁도 일어났습니다. NC소프트가 리니지를 해외수출 할 때와 광고·홍보에 활용할 때 원작자와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일숙 작가는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원작자가 계약위반행위 및 가처분신청을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고, 합의로 마무리되었습니다만 하나의 문화콘텐츠를 다른 분야로 활용하려면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명작 만화를 원작으로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게임이 만들어졌지만 원작자와 개발사 사이에 지적재산권 분쟁이 벌어지기도...

 

 세 번째, 자녀에게 계속 투자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성인을 타깃으로 한 캐릭터도 존재하긴 하나, 대부분의 캐릭터는 주로 어린이를 타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정서 함양을 위한 애니메이션, 교육을 위한 에듀테인먼트, 가족과 함께 즐기기 위한 테마파크 혹은 뮤지컬 등 어린이를 위한 OSMU 활용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 이 세상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고, 지적·정서 교육에도 도움이 되는데다 어린 자녀가 굉장히 반기니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만큼 더욱 좋은 것이 없죠.

 

 

 


 한국의 OSMU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일단 취약한 문화콘텐츠산업 기반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은 제조업과 중공업 위주이기 때문에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국가의 지원이 미약하며,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인력의 부재(인문학의 위기), 좁은 내수시장, OSMU에 협력할 파트너 부족 등 갖가지 이유들이 탄탄한 OSMU와 멀어지게 합니다. 


 모든 분야의 문화콘텐츠 OSMU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스토리가 탄탄하고 수준이 있어야 하지요. 훌륭한 소설, 희곡, 영화는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쓰여졌습니다. 캐릭터 산업 또한 원작의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게 중요합니다. 또한 세계화도 중요한데, 아무리 국적이 달라도 인간이 가진 정서와 추구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상업주의가 아닌, 철학을 지닌 스토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OSMU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용어이긴 하나, 문화예술이 갖는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OSMU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콘텐츠 그 자체가 생산적 자원이기 때문이죠. 세계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고전 '폭풍의 언덕'은 몇 번이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대중 가요(!)로 재탄생하기도 하였고, 우리나라의 '춘향전' 역시 학습만화, 영화 등 몇 번이고 새 작품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앤디 워홀이 마릴린 먼로를 회화로 남긴 것도 대표적인 OSMU 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홍은영 작가가 순정만화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그림으로 학습 만화로 재탄생되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그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음악 역시 벨소리, 광고음악으로 활용됩니다. 원작의 철학을 무시하고 대중의 기호에만 맞추거나, 돈에 혈안이 되어 전략없는 '재탕'을 한다면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OSMU는 훌륭한 원작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원작자가 작품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밑거름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예술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훌륭한 OSMU란 색다른 관점으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작품을 재조명하는 것이지요. 현재 캐릭터 OSMU를 하는 업체들도 상업적인 정신보단 '캐릭터는 예술작품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철학을 갖고 임한다면,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것입니다.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고전소설 '폭풍의 언덕'은 영화, 연극, 음악으로도 만들어졌다.

 

 순정만화같은 화려한 그림체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그리스 로마 신화

 

 또한 앞에서 캐릭터가 갖는 강점들을 소개했지만 모든 캐릭터가 같은 경쟁력을 갖는 것이고, 계속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는 상황에서 기존의 캐릭터가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절실합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캐릭터들이 세상을 밝게 만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후크 송, 반복에 새겨진 그 의미를 파헤치다!

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2011.12.01 13: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2007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가요계에 비슷한 멜로디와 가사를 반복하는 '후크 송'이 유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요의 형식은 대개 A-A'-B-A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같은 구간 내에서의 반복은 드물었습니다. 반면 후크 송은 같은 구간 내에서도 비슷한 가락을 가지고 있어 기억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현대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또한 굉장히 복잡하여 사람들이 쉽게 피로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복잡한 것들보다는 쉽고 간편한 것들을 찾게 되는데 이는 음악 취향에서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후크 송의 대표곡이라 불리우는 원더걸스의 'Tell me'는 여지껏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던 동시에 이러한 시대상을 잘 공략하였습니다. 'Tell me'는 단지 한 순간의 유행이 아닌, 가요계의 새 트렌드를 연 노래입니다.

바로 '후크송의 대대적 유행'을 가져온 것이죠. 기존의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한 후크 송이 유행함으로써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합니다.

 

 

 

 

 후크 송은 앤디 워홀의 예술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코카 콜라', '마릴린 먼로'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앤디 워홀은 전통적인 미술의 틀에서 벗어나 상업 미술의 장을 열었습니다. 이른바 '팝 아트'라고 하는 엄숙하지 않고 대중 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나타나고자 했던 미술의 한 경향을, 미술사에 있어서 중대한 한 줄기로 만들었습니다.

팝 아트의 시대를 연 앤디 워홀은 고요하고 진중한 소재가 아닌, 가볍고 대중적인 소재를 주로 활용하였습니다. 또한 앤디 워홀은 작품에 '반복 기법'을 이용하여 독창성이나 감성이 제거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대량 생산물로써의 예술로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현대의 후크 송 역시 화자의 무거운 감정, 철학을 표현하고자 하는 경우는 없고, 대신 굉장히 가벼운 분위기와 가사가 후크 송의 주를 이룹니다. 예를 들자면 원더걸스의 'Tell me', 'So hot', 소녀시대의 'Oh!', 티아라의 'Bo peep Bo peep'과 같은 노래들은 주제와 가사가 굉장히 가볍습니다. 후크 송은 단지 특정 가락이 반복된다는 것을 넘어 젊은이들의 가볍고 충동적인 감정까지도 대중 문화로 수용한다는 의의를 지닙니다.

물론 대중 문화에서 가요의 주요 주제는 늘 '사랑과 이별'이었습니다. 과거에 대중 문화에서의 사랑은 무겁고 조심스러운 주제였지만 요즘 대중 문화에서의 사랑은 좀 더 감각적이고 가볍습니다. 실제 세태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많이 나타나구요. 이런 세태를 문화로 승화하기엔 후크 송만큼 적절한 도구가 없습니다.


 




그리고 앤디 워홀의 예술이 '반복'을 많이 사용했듯이 후크 송 역시 '반복'이 필수적입니다(hook song이란 이름에서도 짐작 가능하듯이). 후크송에서는 가락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줌으로써 독창성을 발휘하는 대신 한 구간 내에 같은 패턴의 가락과 가사를 반복함으로써, 산업품으로써의 예술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직접 악보에 음표를 그리고, 악기로 쳐 가며 작곡을 했지만 요즘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손쉽게 작곡을 합니다. 덕분에 음악도 '산업의 산물'이 되었으며, 공장에서 찍어내듯 같은 패턴을 복사+붙여넣기를 이용해 아주 손쉽게 복제하여 '산업품'의 성격을 강하게 띈 후크 송이 등장합니다.



사실 후크 송은 불과 몇 년 전에 처음 등장한 게 아닙니다. 후크 송의 원조는 중세 독일의 작곡가 헨델입니다. 헨델은 귀족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작곡가였는데 그 비결은 얄팍한 꼼수(?)에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계속 변화를 줘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헨델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멜로디를 같은 구간 내에서 반복하여 힘들이지 않고도 인기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예술에서는 독창성이 절대적이고, 시시각각 변화를 줘야 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깁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정성을 쏟아 만든 것에만 '작품'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공장에서 만들어 낸 물품은 디자인 단계에서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생산품'이라고 하지 '작품'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앤디 워홀은 이러한 통념을 깬 것이죠. '왜 다르게 그려야지만 작품인가, 공장처럼 패턴을 복제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고 말이죠. 후크 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컴퓨터로 비슷한 가락을 붙여넣기함으로써 '기계로 찍어낸 것과 같은 가락이 모인 노래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크 송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가사와 가락을 지닌 노래들이 유행함으로써 대중 가요의 전체적인 질을 떨어뜨렸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나아가 가수들이 음악을 가벼이 여기고, 노래에 자신의 혼을 담기 보다는 반복되는 가락에 맞춘 안무로 사람들의 눈을 끄는 데 더욱 신경을 쓰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가사와 주제가 더욱 가벼워지는건 갈수록 근본과 진정성이 상실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품들을 상업 미술의 정점으로 끌어올렸듯, 후크 송 역시 '상업적인 노래들 중의 상업적인 노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대중 가요를 듣는 이 시간 가요계에 커다란 지각 변동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세월이 지난 후 어떻게 평가가 될지는 모릅니다. 아무튼 이 '반복된 가락'이라는 것이 잘 생각해보면 깊은 의미를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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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1일 올림픽 홀에서 성황리에 펼쳐진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

  올해 2회째를 맞는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은 대중문화예술 발전과 한류 확산에 기여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이번 2011년도의 시상은 실연자 뿐만이 아니라 창작자, 스탭 등 예술문화 전 분야 종사자로 그 대상을 넓혀 의미가 더욱 깊은데요. 앞서 '대통령상', '문화훈장'상에 뒤이어 국무총리표창, 장관표창은 좀 더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가수, 연기자, 성우분들이 수상하셨는데요. 그 주인공은 누구일지 한 번 살펴볼까요?

 

 

국무총리표창

 

 

  

소녀시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룹, 소녀시대.  소녀시대는 07년 싱글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한 이래, 'Gee', '소원을 말해봐', 'Oh' 등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총 음반판매랑 100만장을 넘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입니다.

 

 


정규앨범 3집 'The boys'를 발표하면서 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더욱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소녀시대가 올해 시상식에서 아이돌 그룹 중 유일하게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하였습니다.

 

 

 

정수라(정은숙)

 

 

 

  히트곡 '환희'의 주인공.

  대한가수협회 이사로도 활동 중인 정수라씨는 74년CM송 '종소리' 데뷔 이후 ‘환희’ '아!대한민국' 등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았습니다. 또한 수십 회의 해외 공연을 통해 교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음반 밀리언셀러로서 음반 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였습니다.

 


 

 

김기덕

 


라디오 프로그램 '2시의 데이트'를 22년간 책임진 남자.

72년 MBC 아나운서로 데뷔한 이후 73년부터 ‘2시의 데이트’ DJ를 맡아 22년 간 진행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94년 단일프로그램 최장수 7,000회 돌파 기네스북을 인정받았습니다. MBC 라디오 골든마우스상, 광복이후 대중문화를 빛낸 Best 20인상 등을 수상하는 등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역사에 큰 공헌을 한 분입니다.

 

 

  


김수희

  

48년간 대한민국 성우계를 책임진 베테랑 성우.

63년 KBS 공채 성우로 데뷔한 이후 ‘남남북녀’,‘즐거운 우리집’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성우계의‘대모’로 후배 성우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분입니다. 또한 사랑의 전화 상담원으로 1,100시간에 해당하는 자원봉사 활동과 한국시각장애인협회에 책 낭송을 하는 등 성우의 역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셨습니다.

 

 

 


 

신철

 


 

한국영화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선도주자.

1988년 신씨네를 설립하며 시나리오 단계부터 영화의 핵심이 되는 컨셉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기획영화를 한국영화 최초로 시도한 분으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제작하셨습니다. 이후 94년에 영화 \‘구미호’에 한국영화 최초로 CG를 도입하여 기술적 발전을 도모하였고 96년에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보다 완숙해진 그래픽 기술을 선보이며 68만 관객을 동원하였습니다.

 

 

 

심성락(심임섭)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아코디언 연주자.

50년대 대중가요 초기 전자오르간과 아코디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6~70년대 대중가요의 황금기에 제작된 음반의 90%이상에 참여하여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하신 분입니다. 70년부터 대통령의 악사로 불리워졌으며, 세계 최고의 아코디언 연주자 리차드 갈리아노와도 협연하며 한국의 대중음악을 세계에 알리는데 이바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시상식날 기타리스트 함춘호씨, 가수 하림씨와 함께 영화 인어공주  OST ‘My Mother mermaid'를 멋지게 연주해주셨습니다.

 


 

 

 

유동근



대한민국 역사드라마 왕 연기의 대표주자.

‘연개소문’, ‘명성황후’ 등의 작품을 통해 역사드라마의 호황기를 선도한 대표적인 남자배우로써 아내 전인화씨와 더불어서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83년 영화 ‘인간 시장 - 작은 악마 스물두 살의 자서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50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였으며 중견배우부문 황금연기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진석

 

인기 드라마 <식객>, <자이언트>, <마이더스>의 제작자.

82년 MBC 드라마국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수많은 드라마 기획과 연출을 담당하였으며 차인표, 신애라 등 스타를 발굴 대한민국 최초의 트랜드 드라마 <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연출을 한 분입니다. 1999년 드라마 제작사 설립 이후 여러 인기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진석씨는“사전제작”이라는 패러다임을 최초로 도입하여 방송제작 시장의 매출성장, 고용확대 등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장관표창 

 

 

김기표

 

 

 
히트곡 '희나리'의 작곡자

87년 구창모의 음반 <희나리>작곡으로 데뷔한 김기표씨는 다수의 히트곡을 작․편곡하여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기타는 물론 키보드, 색소폰 등을 자유롭게 연주, 그 실력을 인정받아 최근까지도 다양한 그룹 활동을 하여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1995년부터 서울재즈아카데미 부원장으로 후학 양성에도 매진하는 등 대중음악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김병만

 

 

 

개그계의 진정한 ‘달인’

<KBS 개그콘서트 달인>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전 국민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개그맨 김병만씨는 짧은 시간에도 다양한 장기를 보여주어 성실과 끈기를 대표하는 ‘노력하는 개그맨’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묵묵히 대한민국 전통 코미디 계보를 잇는 개그맨으로 요즘에는 거의 보기 힘든 슬랩스틱 개그를 선보이고 있으며,‘키스 앤 크라이,‘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다양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혜정

  

 

 

   외화 ‘X-File 스컬리’ 목소리의 주인공


애니메이션 <독수리오형제>, <천재소년 두기>, <라이언 킹(날라 역)> 등의 작품에서 연기를 하고 , <롤러코스터>에서 나래이션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었던 성우 서혜정씨는 외화의 매력적인 여주인공들의 목소리를 약 30년간 연기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오디오북 녹음 등 음성을 활용한 재능기부를 하였으며, 개인 에세이집 인세로 아프리카 탄자니아 ‘잔바르섬’에 우물을 기부하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송일국

 

 

 ‘ 해신’,‘주몽’ 등 역사드라마의 차세대 대표주자.

98년 MBC 공채 27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해신>, <주몽>, <바람의 나라> 등 역사드라마의 주인공을 연기하면서 국민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면서 탄탄한 연기력으로 많은 작품을 흥행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드라마 <주몽>을 통해 연기대상을 받고 <주몽>이 세계 각지에 수출되면서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경실

 

 

대한민국 대표 개그우먼.

87년 MBC 개그맨 1기로 데뷔한 이경실씨는 코미디쇼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도루묵여사’ 뿐만 아니라, 드라마 <사랑과 야망>, <로맨스타운> 등의 드라마를 통해서도 코믹연기 정수를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서도 특유의 캐릭터로 감초역할을 해내고 있으며 24년간 꾸준히 활동하여 전 국민에 웃음을 안겨주는 대한민국 대표 개그우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태경

   

  

대한민국 대중음악 녹음예술의 대표주자

현재 서울사운드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이태경씨는 1968년부터 TBC 음향감독으로 활동하면서 44년간 오로지 녹음예술의 길을 걸어오면서 수많은 방송, 복원작업을 담당하였습니다. 또한 국민가수 조용필, 이미자, 송골매, 이선희, 구창모 등 대중음악앨범의 녹음과 마스터링을 맡으면서 대중음악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인화

 

 

세련된 중년 여성 연기의 대표 연기자.


드라마 <여인천하>, <미워도 다시 한번>, <제빵왕 김탁구> 등에 출연하며 왕후에서 부잣집 며느리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열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 전인화씨. 전인화씨는 특유의 세련된 이미지로 중년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현재 국제 구호 단체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기도 합니다.

 

 

 

  

비스트

 

 

 

‘신한류’를 이끄는 차세대 아이돌 그룹.


09년 미니 앨범 <Beast Is The B2ST>로 데뷔한 비스트는 ‘Shock' ,'숨’ ,‘Fiction' 등으로 10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입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발표한 음반마다 각종 차트 1위를 휩쓸어 정상급 아이돌 가수로 자리매김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현재 태국, 대만, 일본 등에서 아시아 팬미팅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한국 아티스트 대표로 《MTV 월드 스테이지》에 참가하며 ‘신한류’를 이끄는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씨엔블루

   


일본과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 밴드.

국내 데뷔 전 일본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씨엔블루는, 국내 데뷔 후 15일 만에 음악 프로그램에서 데뷔곡 ‘외톨이야’로 1위를 차지하는 등 데뷔와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은 밴드입니다. 일본에서 발매된 싱글앨범 수록곡으로 오리콘 데일리 차트 11위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멤버 전원의 뛰어난 악기 연주 실력으로 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밴드입니다.

 

 

 

  

애프터스쿨

   

 
09년 싱글앨범 <New schoolgirl>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Ah>, <너때문에>, <Bang> 등의 곡들을 히트시켰으며, 단체 활동뿐만 아니라 오렌지카라멜, 블루, 레드 등의 유닛 활동을 통해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6월 일본을 진출해 데뷔 쇼케이스를 펼쳐 3천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면서 ‘환상의 퍼포먼스 그룹’이라는 평을 받았고, 일본 싱글앨범 <Bang>을 발매하여, 발매 당일  오리콘 데일리 싱글차트 6위에 오르는 등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모든 수상자분들을 만나보셨는데요. 금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은 대중문화예술인과 대중들이 함께 축하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자리가 아니였나 싶어요. 선·후배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네며 따뜻하게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니 올 한해 모든 수상자들이 이룬 업적이 더 빛나 보였습니다. 내년엔 우리의 수상자들이 어떻게 대중문화예술을 발전시켜 나갈지 기대해봅니다.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11월 21일 올림픽 홀에서 성황리에 펼쳐진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

  올해 2회째를 맞는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대중문화예술 발전과 한류 확산에 기여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이번 2011년도의 시상은 실연자 뿐만이 아니라 창작자, 스탭 등 예술문화 전 분야 종사자로 그 대상을 넓혀 의미가 더욱 깊은데요. 그 영광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이번에는 국가수반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대통령상’과 예술인 최고의 영예인 ‘문화훈장’을 수여받은 분들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대 통 령 상>

   

 

 김건모

 
  가수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국민가수 김건모.

  92년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한 이후 2집의 <핑계><잘못된 만남><서울의 달><미안해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고 특히 3집의 경우 단일음반 판매 2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엘범 국내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 국민의 13명중 1명은 김건모의 음반을 샀다는 이야기죠. 올해까지 20년간 13장의 앨범을 발표한 대한민국의 대표가수 김건모. 여전히 발전하기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은 국민가수라 할만 합니다.

 

 

 

 이병헌

 

  이제는 당당히 세계로. 글로벌 한류스타 이병헌.

  9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여 <내 마음의 풍금><공동경비구역 JSA><올인> 등으로 국민배우로 성장, 이후 <아이리스><착한놈,나쁜놈,이상한놈> 등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드는 맹렬한 활동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특히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세계 영화인의 주목을 받았고 <지.아이.조>에서는 헐리웃의 인기캐릭터 ‘스톰 쉐도우’ 역할을 맡으면서 헐리웃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하였죠. 그 외에도 일본에서 ‘뵨사마’ 열풍 등 한류스타로서 세계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각인시킨 훌륭한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진영

  

  최고의 개성파 가수이자, 프로듀서 박진영.

  94년 다소 충격적이었던 비쥬얼과 패션으로 가수로서 데뷔한 박진영은 <날 떠나지마><허니><그녀는 예뻤다>등 다수의 히트곡으로 성공한 가수로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99년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 ‘비’, ‘원더걸스’. ‘2PM’, ‘2AM’ 등 글로벌 한류스타들을 가수들을 발굴하고. 미국음반시장에도 진출하는 과감한 도전을 보여줬었죠. 그 결과 아시아 작곡가 최초로 빌보드 차트 TOP10엘범에 곡이 수록되는 등 한국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양현석

 

  최고의 그룹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YG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양현석.

  1992년 전설적인 돌풍을 일으켰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 96년 은퇴 후 97년 YG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습니다. 탄탄한 기획과 경영으로 지누션, 원타임, 세븐, 거미, 빅뱅, 2NE1 등의 가수를 배출, 실력과 개성을 겸비한 YG만의 특색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앞장서서 주도하였죠. 아쉽게도 시상식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철

  
  대한민국의 대표 원로 개그맨, 희극인 남철.

  72년 TBC 코미디언으로 데뷔 이후, ‘웃으면 복이와요’, ‘장군멍군 코미디쇼’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면서 파트너 남성남님과 ‘왔다리 갔다리’ 춤으로 전 국민에게 큰 웃음을 주셨던 희극인이시죠. 아리랑 악극단 전국순회 공연 및 고령의 나이에도 방방곡곡에 위문공연을 활발히 하는 한편 후배 양성에도 이바지한 대한민국 대표 희극인이십니다.

 

   

  

도신우



  한국 모델계의 거목. 모델 도신우. 

 1968년 모델로 데뷔, 국내에는 모델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선 시절에 최초로 남성프로모델 모임인 왕실모델클럽을 창립하여, 남성모델이라는 직업이 한국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공헌하신 분입니다. 73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맞춤신사복 콘테스트에서 선진화된 모델 에이젼시를 접한 뒤, 84년 ‘모델 센터’를 설립합니다. 이후 ‘모델센터’를 통해 1000여 명의 모델을 배출하고, 해외 패션쇼 기획 및 연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에이젼시 운영을 통해 후배양성과 모델계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셨습니다.


   

 

 
홍상수

 

  칸이 사랑하는 감독  , 감독 홍상수

  1996년<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 한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현장 분위기에 따라 그 자리에서 대본을 만든다던지, 백지 대본을 배우에게 주고 알아서 연기를 하도록 하는 등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배우와 만나고 실제 촬영장소와 맞닥트리면서 감독의 내면과 현장에서의 과정이 그대로 투영된 제작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높은 완성도의 영화들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힘><오!수정><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 한국 감독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칸영화제에 진출한 감독이기도 하죠. 2010년 칸영화제에서는 <하하하>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이름을 널리 떨쳤습니다.

 

 


<문화 훈장>

 

  


 <보관훈장> 유호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 방송작가 유호.

  대한민국 최다작의 기록을 갖고 있는 방송작가이며, 또한 다수의 대중가요를 작사했던 작사가이기도 합니다. 유호 작가는 광복 후 1945년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뒤 우리의 역사와 말을 되찾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의 신설과 편성에 참여하였습니다. 6.25전쟁 후에도 TBC 방송국에서 <맞벌이부부><짚세기 신고왔네>등 다수의 라디오 드라마를 성공시키며, TBC일요극장 코너가 <유호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정도의 큰 국민적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외에도 <신라의달밤><낭랑18세><맨발의청춘><님은먼곳에><진짜사나이등>수많은 히트곡을 작사하였고 이후에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집필, 현재 아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펜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 중입니다. 방송 외적으로도 방송작가협회의 교육 원장직을 맡으며 많은 신인작가들을 배출하고 현재도 고문으로 활동하며 대중문화예술발전과 후임양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보관훈장> 오승룡

   

  라디오의 전설. 우리시대의 대표 성우. 성우 오승룡

  1954년 KBS 1기 성우로 데뷔 후 한국 최초 라디오 연속 방송극 <청실홍실><박서방><해바라기 가족><당쟁비화> 등 편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로 많은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하며 약 23,655시간에 이르는 공중파 라디오를 진행하신 전설적인 성우입니다.  특히 ‘사수역의 오승룡이었습니다.’라는 멘트로 대표되는 M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오발탄>은 63년부터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72년까지 박진감 넘치는 오승룡님의 목소리 연기력에 힘입어 60년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현재도 TBS<길따라 노래따라>의 DJ로서 또 애니메이션에도, TV 교양프로그램에도, 뉴스에서도 왕성히 활동하는 중입니다. 또한 여전히 생방송 2시간 전에 도착해 미리 준비하는 열성과 꼼꼼함을 보이며 방송인의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보관훈장> 신중현

  

  살아있는 한국록의 전설. 기타리스트 신중현

 1958년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데뷔 후 트로트 일색이던 한국 음악계에 서구대중음악인 록음악, 그룹사운드를 처음으로 들여오신 분입니다. 한국 최초의 록큰롤 밴드인 애드포를 비롯하여 조커스·덩커스 등의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로큰롤과 한국적 리듬감이 결합된 독특한 사운드로 한국 음악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였습니다.  

특히 73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이름으로 나온<미인>등 4장의 앨범은 한국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손꼽히며, <님은 먼곳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등 다양한 히트곡의 작곡, 프로듀싱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스펙트럼 확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작곡자이자 가수이며 프로듀서입니다.

09년에는 아시아 음악가 최초로 세계적 기타제조회사 펜더(Fender)로부터 헌정기타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Fender로 부터 헌정기타를 받은 뮤지션은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스티비 레이본’, ‘잉베이 맘스틴’, ‘에디 반 헤일런’, 그리고 ‘신중현’. 이렇게 단 6명 뿐 입니다.

 

 

 

 

<은관훈장> 하춘화

   

  가요계의 대모, 하춘화.

  1961년 6세의 나이로 최연소 가수로 당시 성인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데뷔하여 오늘날까지 2500여 곡 이상을 취입, 총 133장의 엘범, 120여개의 화려한 수상경력, 8400회 이상의 세계 최다 공연 기네스기록 보유자입니다. 또한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평양에 공연을 연 여가수, 대중가수 최초로 예술철학 박사학위 취득을 한 대중음악계에 큰 대모입니다.

음악 외적인 활동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 금액이 지금까지 200억원에 이르는 등 묵묵히 사회공헌에도 힘쓰셨습니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하는데요 전국을 돌며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선공연을 펼치고 있다고 하네요. 진정한 가요계의 대모답습니다.

 

 

 

<은관훈장> 이수만

   

  대한민국의 대표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75년 포크듀오<4월과5월>로 데뷔한 이수만은 주목받던 가수이자, 유능한 MC였습니다. 대학가요제의 단골MC이자 현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바로 전 MC로 이문세, 유열과 더불어 마삼(馬三)트리오로 유명했었지요.

연예인으로서 활동하던 중 잠시 다녀왔던 미국 음반산업과 MTV에 큰 영향을 받아 95년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업계최초로 체계적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이후 H.O.T, SES, 신화, 플라이투더스카이,보아, 동방신기, 슈퍼쥬니어, 소녀시대 등 수많은 한류스타들을 기획, 배출하였으며 해외 진출에도 앞장서 SMTOWN 월드투어를 통해 유럽, 미주까지 신드롬을 일으키는 등 한류열풍의 핵심적 주역으로서 한국 대중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은관훈장> 신영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 후, 대학시절 연극부의 인연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1960년 영화<과부>로 데뷔하여 <딸부자집>,<빨간마후라> 등 20년간 총 294편의 영화에 출연 한국영화 중흥기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배우입니다.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로 <연산군><폭군 연산>에서 사극연기의 한 획을 그었으며, 68년에서 71년에 이르는 네편의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의 훌륭한 연기 등 한국적인 남성상의 연기자 계보에 큰 족적을 남긴 배우입니다.

작품외적인 활동으로 한국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거쳐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엽합회 회장, 제주방송 명예회장을 맡은바 있고, 15대 16대 국회의원 등 문화예술계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셨습니다. 2010년에는 점점 사라져가는 옛 영화계의 유산들을 보존하기 위해 명보극장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대 재산을 문화예술계에 기부한 진정한 영화인이십니다.

 

이상으로 모든 수상자분들을 만나보았는데요.

과연 대통령표창과 문화훈장의 격에 어울리는 분들이라고 생각되시죠?

 

특히 이번 은관문화훈장은 가수로써 받는 것는 가수 이미자 이후 두 번째이며,프로듀서로서는 최초, 배우로서도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수상자 분들에게는 더 없이 큰 영광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동안 한국 대중문화예술이 걸어온 발자취도 같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대중 문화의 영웅들인 수상자들과 또 새로운 스타들이 이끌어갈 한국 대중문화, 또 한류열풍이 어떻게 발전해 갈지 기대해 봅니다. :D   KOREA CONTENT!! 파이팅!!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뮤지컬 좋아하시나요? :D


뮤지컬하면 ‘맘마미아’ ‘캣츠’, ‘그리스’ 등 외국에서 만들어진 뮤지컬들을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최근에는 국내에서 창작된 뮤지컬들이 많은 관객을 이끌고 있는데요.

특히 기존에 잘 알려진 노래(혹은 대중가요)를 뮤지컬 넘버에 접목시킨 ‘주크박스 뮤지컬’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국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을 소개하겠습니다―

 

   *복고와 뮤지컬이 만난다면 -<진짜진짜 좋아해>, <젊음의 행진>

    

 


   우선 뮤지컬 <진짜진짜 좋아해>는 1970년대 하이틴 영화 ‘진짜진짜 시리즈’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 뮤지컬입니다. 이 뮤지컬은 그 당시 유행했던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혜은이의 ‘진짜진짜 좋아해’, ‘당신은 모르실거야’, 나미의 ‘슬픈 인연’ 등  많은 사랑을 받은 7080가요들을 뮤지컬 넘버로 사용하면서 중장년 관객층을 확보하고 크게 흥행을 했던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과 선수 그리고 선생님들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진짜진짜 좋아해>는 보다 젊은 관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티아라의 보람, 초신성의 성제 등 아이돌 멤버들을 캐스팅하면서 전 세대가 같이 즐겁게 볼 수 있는 뮤지컬로 주목받기도 하였습니다. 

    

 

<진짜진짜 좋아해>를 뒤이어 복고열풍을 잇고 있는 뮤지컬 <젊음의 행진>입니다. <젊은의 행진>은 국내 대표 만화 ‘영심이’의 주인공 영심이가 어른으로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를 담아낸 창작 뮤지컬입니다. 이 뮤지컬은 8090세대를 겨냥한 작품으로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김건모의 ‘핑계’, 이승철의 ‘소녀시대’,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등 그 당시 유행했던 가요들이 뮤지컬 넘버로 나오면서 관객들에게 친근함을 선사했는데요.

이 뮤지컬은 올 연말에도 다시 공연될 예정이라고 하니깐 못 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보시길 바랍니다.

 


   *뮤지션의 음악과 그의 인생을 알고 싶다면 -<광화문 연가>, <어디만큼 왔니>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가수 이문세의 음악적 동지 故이영훈 작곡가가 시놉시스 작업을 한 창작 뮤지컬입니다. <광화문 연가>는  단일 작곡가의 노래로 만들어진 최초의 뮤지컬로써 이문세의 노래를 사랑했던 중장년층에게 특히 많은 호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주인공 ‘상훈’,‘현우’,‘여주’ 세 사람의 얽힌 사랑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이문세의 히트곡들이 뮤지컬 넘버로 나옵니다. <광화문 연가>는 기존의 뮤지컬이 이야기에 따라서 음악이 나오는 것과는 달리 스토리보다 음악이 중요시 되는 ‘콘서트’적인 요소가 강한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스토리 측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평도 하였지만 한 뮤지션의 음악을 다양하고 새롭게 들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신선한 시도였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는 우리에게 친근한 가수 양희은씨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어디만큼 왔니>는 양희은씨의 인생과 음악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써 양희은씨와 그녀의 친동생 양희경씨가 직접 출연을 하였습니다.

이 뮤지컬은 기존의 보고 듣기만 하는 형식을 벗어나 관객이 좀 더 자유롭게 웃고 울고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을 제시하므로써 중년 여성들의 호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광화문 연가>와 더불어 주크박스 뮤지컬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신나게 즐기고 싶다면?! - <늑대의 유혹>, <스트릿 라이프>

 

 

 뮤지컬 <늑대의 유혹>은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 원작은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서 큰 인기를 끌었었는데요. 그 작품이 아이돌의 음악과 만나서 주크박스 뮤지컬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뮤지컬 넘버는 최근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소녀시대 동방신기 카라 2PM 등 아이돌들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고 뮤지컬의 줄거리 또한 10대 청소년들의 사랑이야기여서 젊은 관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슈퍼주니어’의 려욱, ‘제국의 아이들’의 형식, 가수 임정희 등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함으로써 해외진출까지 예정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뮤지컬 넘버가 해외 팬들에게도 익숙한 곡들로 구성이 되어있고 주인공들 또한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들이기 때문에 아시아 뮤지컬 시장으로 진출할 경우 큰 흥행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는 가수 DJ DOC의 음악과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가요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DJ DOC의 음악과 뮤지컬이 만난다면 어떤 작품이 만들어질지 많은 기대를 모았었는데요. 음악감독으로 멤버 이하늘이 참여하면서 더욱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여름이야기’, ‘런투유’ 그리고 작년에 히트한 ‘나 이런 사람이야’ 까지 많은 히트곡들을 뮤지컬 넘버에 녹여내면서 관객들을 콘서트 장에 온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감상하기보다는 배우들과 같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스트릿 라이프>는 20대 관객층을 끌어 모으면서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D

 

 
  주크박스 뮤지컬은 관객에게 익숙한 노래를 선사한다는 점, 흥행적인 요소에서 위험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주크박스 형식의 뮤지컬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해외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점이 있어서 많은 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일부 뮤지컬들이 음악에 비해서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고, 콘서트와 뮤지컬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뮤지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뮤지컬 제작자들이 작품을 제작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질적인 측면에서 좀 더 보완을 하고 제작이 된다면 국내 창작 뮤지컬들이 좋은 문화콘텐츠로써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요. 한국 창작 뮤지컬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 !! ^^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유럽이 주목하는 한류 열풍 K-POP을 읽다

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2011.07.29 14: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최근들어 K-POP의 열기에 대한 관련 소식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K-POP의 승승장구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고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반응 또한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유럽 내에서의 K-POP 열풍에 대한 여러 시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최근 한국 대중음악들의 공연을 원하는 유럽팬들의 깜짝 시위가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알려진 것만큼 실제 유럽의 거리에서는 느낄 수 있는 K-POP의 열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시아권의 '한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담긴 기사도 접할 수 있었다.

 

 

 

K-POP이나 한류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경제적인 효과는 막대할 것이며 국가적인 위상 또한 다른 시선에서 재조명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K-POP이라는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객관적이거나 관조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으리라 보인다.  

필자가 학창시절을 지내던 시절에는 유럽의 음악을 제3세계 음악으로 소개하여 일반적인 팝뮤직과 구분하는 성향이 있었고 그중에 브리티시 뮤직은 팝뮤직의 주류였던 미국의 음악과 같은 테두리(영어권 문화가 음반에까지 영향을 미친것)로 끌어안고 있었던 것에 반해 그 밖의 유럽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시절이다.

유럽의 음반을 소개해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쟝 자끄 골드만 Jean Jacques Goldman'이라는 뮤지션을 알게 되었고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80,90년대 프랑스 대중음악의 중심에 있었고 발표하는 앨범마다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유명한 가수였다.

유럽적 정서는 동양적인 감수성과 닮은 부분이 적지 않았던 터라 골드만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주류와 비주류 음악을 알아가는데 한참 흥미를 느꼈던 때가 있었다.
요즘 우리의 K-POP이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불리며 사랑 받는다고 하니 그 시절의 기억들로 감개무량한 느낌마저도 들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대중문화는 어쩔 수 없이 선진화된 구조를 먼저 확립한 나라에서 아직 정립중인 구조의 나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대중문화의 소구 대상인 일반인들은 그러한 흐름에 대해서 익숙해져 있고 좋은 것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만족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의 대중음악은 우리보다는 먼저 선진화된 산업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기획적인 요소에서도 세계적으로 자랑 할만한 엔터테인먼트 요소들을 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K-POP에 열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유럽에는 한국 아이돌 그룹과 같이 엔터테인먼트의 여러 장르를 복합적으로 트레이닝한 가수들이 흔하지 않다. 유럽의 대중 가수는 '뮤지션'이라는 범주 안에서 기본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지며 춤, 비주얼, 노래를 복합적으로 구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엔터테이너가 노래를 잘 하는 경우로 비춰지고 있을 수 도 있다.

 

실재로 기획된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은 일본이나 중국에도 없는 우리에게만 국한된 형태라고 한다. 10대 때부터 5년 이상을 체계적으로 아이돌을 위한 훈련을 하게 되고 대중이 원하는 코드를 하나하나 습득해가는 시스템이 현재 우리의 아이돌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생소함에서 오는 신선한 매력에서 유럽의 대중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디어가 소셜 네트워크와 접목되면서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의 K-POP에 귀 기울이게 되고 MV를 감상하게 되면서 그 파급력이 커졌던 것이다.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 구조, 감성적인 선율과 가사를 통해 전달되어지는 K-POP은 음악적인 코드에 앞서 문화적인 정서가 유럽의 그것과 닮아있었던 것도 최근의 유럽에서의 K-POP 열풍을 담금질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의 히스토리가 짧고 그만큼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 완벽하게 정립된 형태를 갖출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유럽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대중들 중에서 기존에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이라면 K-POP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게될 것이고 그게 우리를 규정하는 근거로 작용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K-POP의 아이돌 공연과 음악적 퍼포먼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한국의 전반적인 공연 문화, 음악성에 포커싱되어질 것이고 나아가 한국적 이미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적인 저변이나 토대는 극단적인 마케팅만으로 확대되어지거나 양산되어지기도 하지만 그 뿌리가 깊어질 수 없다. 어느 정도는 그들이 원해서 찾아 듣게 하고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가게 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선사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K-POP의 원형은 아직 한국적 문화의 결정체라고 자부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현재 우리의 대중가요는 K-POP으로 대두되면서 우리의 것으로 녹아드는 과정이며 아이돌 그룹에 의해 엔터테인먼트화 되어가는 시기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본래의 POP 음악의 또 다른 변이 정도로 해석되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즉, K-POP의 주인이 정확하게 우리인지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리라 본다. 어느 정도 한국적인 정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져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는 있지만 아직 K-POP 스스로도 온전한 우리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특정 장르에 국한된 형태로는 오랜 동안 K-POP을 유럽 시장에 소개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요의 유수한 장르중에 충분히 경쟁력 있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켜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적 콘텐츠를 공급해야만 장기적인 안목에서유럽 시장에 K-POP을 토착화하는데 유리 할 것이라 본다.  

정확하게 우리의 문화가 아닌 상태를 다른 문화권에 온전히 전파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며 설령 그것이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시대적 필요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문화적 아이콘으로 끝나버리는 형상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문화 속에 융화되어지는 과정을 겪어나가게 되면 그러한 안착을 통해 더욱 발전된 '신한류의 K-POP'으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 임형준 ⓒ 한국콘텐츠진흥원

Monorail 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
Conservatory of Music
University of Cincinnati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