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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같이 살래요> 리뷰를 통한 가족 드라마 장르 분석

상상발전소/방송 영화 2018.12.03 17: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이미지 출처 : KBS <같이 살래요> 공식 포스터


 지난 9월 또 한 편의 주말 가족 드라마가 시청률과 내용 측면에서

모두 ‘훈훈하게’ 마감되었다. 36.9%로 자체 시청률을 경신하며 마감한

KBS의 <같이 살래요>가 그것이다.

21세기의 디지털 시대에 수없이 늘어난 미디어 채널과 소셜미디어로

인구 이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노령화되어가고 지상파 드라마는

케이블 방송뿐만 아니라, 세계의 명품 드라마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제 텔레비전 드라마는 시청률이 20%만 넘어도 성공을 외쳐야 하는 마당에서

이 정도면 대단한 성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아직까지 가족 드라마는 한국 방송에서 가장 안전한 보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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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수정(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가족 드라마는 전통적으로 주말 저녁 8시라는 황금시간대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이 전통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방송사로서는 위기감을 가질 만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제 1인 가구는 가장 일반적인 가구 형태(27.9%)가 되었고, 결혼율과 출산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보통 3대 정도가 함께 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대가족 중심의 주말 가족 드라마도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럼 과연 무엇이 변화했고 시청자들이 가족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것이 한국 시청자가 갖고 있는 가족의 의미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어떤 프로그램이 인기라면, 그것은 어떤 측면이든 시청자의 어떤 욕망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욕망이든 텔레비전 드라마에 거는 오락적 기대이든 말이다.



드라마는 사회의 가치와 욕망을 창의적 구성을 통해 제시하는 장르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기능과 가족 구성원의 역할은 변하고 있지만, 한국 가족 드라마에는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나름의 문법이 있다. 이 문법은 한국 대중이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관념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 문법이 무엇이고, 이것이 현실의 변화를 얼마만큼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의미 있다. 그렇다면 기존 한국 가족 드라마의 문법 중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 가족 드라마의 문법 세 가지를 꼽으라면, ‘핏줄 찾기’, ‘결혼 로맨스’, ‘재벌 등장’이라 할 수 있다(사실 핏줄 찾기를 빼면 ‘사랑과 재벌’은 거의 모든 한국 드라마의 공식 문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문법에서 가족이란 혈통 중심의 관념과 이미지를 강화한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 관념을 토대로 이른바 ‘출생의 비밀’ 모티프가 구성되고, 어찌 보면 한국의 많은 가족 드라마는 핏줄 찾기의 서사에 다름 아니었다.


예전부터 50회에 달하는 장편 드라마가 마지막 엔딩에서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 부모와 자식이 상봉할 때까지 이미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시청자가 끝까지 인내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만큼 드라마가 괜찮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일단 보기 시작했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 다른 미디어도 많지 않고 가족이 함께 볼 오락이 별로 없던 시절 별 수 없이 텔레비전에 생포된 시청자(Captive Audience)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족 드라마는 비슷비슷한 문법에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고 보던 시절, 즉 한국 방송이 편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적어도 2000년 이후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혼과 재혼이 많아지고,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아졌으며 국제결혼도 많은 다문화 시대에 아직도 혈통을 가족의 기본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드라마에서 핏줄 찾기를 방해하는 요인은 주로 사랑과 돈이다. 이 세 요소가 함께 얽히고 여기에 악인이 가세해서 모략이 발생하는 문법이다. 사회에서 팍팍한 경쟁을 치르고 돌아온 주말, 집에서조차 가족 드라마를 보면서 온갖 모략과 악역의 감정을 소화해내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라 느껴진다. 아무리 가족 가치가 높은 한국 사회라고 해도 이런 식의 가족 드라마는 변화를 수반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다.


족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만 하나? 결혼으로 맺어진 양 가족을 등장시켜야 갈등이 생기고 서사가 전개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사랑이 곧 결혼이라는 문법은 결혼으로 이뤄진 가정만이 올바르고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환상을 초래해, 기성세대가 변화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도 한국 가족 드라마에서 결혼은 절대적인 요소이다. <같이 살래요>에도 네 가족이 등장하는데, 결혼으로 맺어지거나 맺어질 커플이 넷이다. 대부분의 가족 드라마에서 결혼을 둘러싼 갈등이 중요한데, 여기서 부모는 자식의 결혼에 이의 제기자나 결사 반대자로 나타난다. 픽션의 무한한 자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강요하는 이가 없는데 왜 이렇게 가족 드라마의 변화는 느린 것일까?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결혼 말고는 없는가? 21세기 한국 가족 드라마에서 부모와 자녀는 왜 아직도 독립된 개인들이 아닌가?


마지막 진부한 문법은 재벌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지속되거나, 주인공 남녀의 결혼이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대부분 빈부 격차와 연관되어 있다. 재벌은 드라마 제작자에 입장에서 참으로 편리한 시청률 수단인 것 같다. 상위 0.1% 사람들의 삶의 모습으로, 집의 인테리어든 옷이든, 평범한 시청자에게 화려한 구경거리를 던져주고, 또 평범하거나 가난한 주인공과 재벌가 자식의 결혼은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적인 판타지를 제공한다. 게다가 재벌이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그리 행복하지도 않고 오히려 도덕적인 결점 투성이라는 식의 설정도 시청자에게 보상심리를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재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이렇듯 개연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재벌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현실의 어떤 일면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배금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재벌이 성공의 상징이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돈이 아주 많은 자’를 부러워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는 이 사회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또 이들의 갈등을 사랑으로 손쉽게 해소시켜 버림으로써, 계층과 사랑을 벗어난 다양한 관계에 대한 사회적 상상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이렇듯 좁은 문법 속에서 한국의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첫째로, 부모는 혈연관계 속에서 자식에 대해 무한 책임을 가진 사람처럼 그려지고, 이것이 빈부라는 계층 차이와 맞물려 희한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표상한다. 그 표상은, 가진 것이 없는 부모는 항상 죄인처럼 다 큰 자식에게 미안해하며, 사회로부터 설움을 당하면서도 자식에게 헌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자식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해 자식이 하는 일에 개입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표현된다. 이 속에서 시청자들은, 부모의 헌신을 절절한 모성·부성으로 생각하며, 그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존경과 감동에 공감하며 이를 가족애라 여긴다. 한편, 드라마 속 재벌 부모 또한 자식에 대한 무한 책임은 마찬가지임에도,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특별한 혜택을 주었기에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마치 권리를 지닌 것처럼 등장한다. 이처럼 물질주의와 가족주의의 기묘한 결합을 보여주는 한국 가족 드라마는, 자식이 성년이 되어도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치 진정한 모성· 부성이고, 본능처럼 당연한 것인 양 제시한다. 이 속에서 독립된 인격들의 만남으로서 부모와 성년 자식의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지 출처 : (좌) KBS <황금빛 내 인생> & (우) KBS <가족끼리 왜이래>


둘째로, 부모가 자식에게 헌신적이거나 화목할수록, 이 가족의 묘사는 전통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흔한 전형성을 보면, 가난한 집에서 엄마는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며 돌봄 노동을 해야 하고, 아버지는 ‘가장’이라는 무게를 혼자 짊어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화목한 재벌 가정에서는 유머감각 있는 아버지가 가족을 이끌고, 어머니는 자애롭고 우아하게 품위를 지킨다. 반면 화목하지 않은 재벌 가정에서는, 권위적인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가 전전긍긍하며 집안일을 수습하는 모습이다. 아버지가 대기업 경영자일 때나 예외적으로, 어머니가 전형적인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 부모의 관심은 온통 자식들뿐이다.



이러한 드라마 문법들도 시대의 변화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호응 받을 수 있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단점은 무엇인지 드라마 <같이 살래요>를 통해 간략히 짚어보자. 드라마 <같이 살래요>는 부인과 사별 후 수제화를 만들며 가게를 운영하는 네 남매의 아버지인 60대 초반의 박효섭(유동근)과, 그의 첫사랑으로서, 이혼 후 남편이 외도로 낳은 아들을 정성껏 키우는 사업가이자 빌딩을 소유한 이미연(장미희)이 재혼을 꿈꾸며 벌어지는 일들을 가족애로 해결해가는 이야기다. 60대 초반 황혼의 로맨스가 주축이 되면서 새로운 가정이 꾸려지는 과정은 사회 변화와 맥을 같이 하면서, 동시에 노년층이 지배적인 KBS 고정 시청자에게도 매력이 될 수 있는 소재라 하겠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두 주인공들의 로맨스와 함께 재혼 과정에 불어난 자녀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가 그 큰 틀이다. 이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미연과 의붓아들(김권)은 혈연관계는 커녕 남편이 외도해 낳은 자식이지만, 진정한 신뢰와 배려로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가꿔가는 관계로 나타난다. 또한 황혼의 재혼을 통해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자녀들이 어떻게 화합하며 가족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즉, 가족은 핏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을 드라마는 강조한다. 이는 확실히 지금 시대에 적합한, 변화된 가족관이다.


둘째, 이 가족 드라마는 부모와 자식의 틀에서 벗어나, 황혼의 로맨스를 시작으로 부부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그 흔한 배반도, 질투도 없지만, 그럼에도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자식만을 바라보는 기존 가족 드라마 속 부모의 모습을 넘어, <같이 살래요>는 부모 역시 부부이므로 그들만의 사생활과 감정이 있음을 극의 후반부에 갈수록 강조한다. 부부에게 자식이 전부가 아니며, 부부 자신의 행복 역시 따로 가꾸고 돌봐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부모와 자식이 독립된 각각의 존재로서 서야 함을 보여준다. 자식을 위한 무한책임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부모라야 자식에게도 그들만의 인생이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극은 이런 관계를 악역이나 비비꼬는 오해 없이 코믹하고 즐겁게 보여주었다.


이미지 출처 : KBS <같이 살래요>


여기서 박효섭의 둘째 딸인 박유하(한지혜)가 정은태(이상우)와 함께 봉사의 길을 떠나는 모습 역시 부부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의미 있었다. 즉, 결혼이란 단순히 사랑의 결합이 아니라, 각자의 꿈을 함께 공유하고 실현해 가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선택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방적인 양보가 아니라, 믿음과 배려에 기초한 주체적 선택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극에서는 결혼 커플들이 기존의 가장으로서 남성의 능력이나 여성만의 배려, 순종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는 각각의 배우자가 자기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상호 배려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좀 더 주체적인 여성상의 재현이 이뤄졌다. 또한 큰 딸(박선하)이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합리적이면서도 타협과 배려를 모색하려는 모습이나, 둘째 딸(박유하)이 아이 있는 이혼녀라는 자신의 처지를 불리하게 여기지 않으며 자기 사랑에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해 기존의 답답하고 당하기만 하는 여성상을 상쾌하게 넘어섰다. 이 점이 30대의 시청자들까지 유인하게 된 요소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래요>가 한국 드라마의 문법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은 아니다. 정은태 누나(김미경)가 자식이 있는 이혼녀와 결혼한다는 이유로, 동생 결혼을 극구 반대하다가, 그 아이가 동생의 친자임을 알고 마치 ‘본능처럼’ 아이에게 끌리게 되는 모습은 여전히 강고한 가족 혈통주의 관념을 당연한 듯 보여준다. 결국 핏줄로 갈등을 해결하는 전개는 아쉽다고 하겠다. 또한 사돈 될 집의 경제력에 따라 자식의 결혼을 반대하는 병원이사장과 시어머니 우아미의 모습은 물질주의와 자식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여전히 부모의 사랑으로 포장하는 구태의연한 드라마 문법을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밖에서는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인 첫째 딸이 집에서는 주로 시어머니와 더불어 가사노동을 책임지는 모습은 여전히 가사노동이 여성들만의 문제가 되어야 하거나, 슈퍼우먼이 되어야만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서는 기존 드라마에 비하면 그런 부분을 최대한 절제하였다.


이미지 출처 : KBS <같이 살래요>


이 드라마는 루이체 치매(치매의 일종으로, 환시와 파킨슨병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에 걸린 여주인공(장미희)의 문제를 가족이 모두 발 벗고 나서며 함께 뭉치는데서 정점을 이루고 끝이 난다. 고령화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치매에 대해 가족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까지 전달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가족의 사랑을 고려한 점이, 36.9%의 시청률에 기여했다고 본다. 이제 시청자들은 주말드라마에서 핏줄을 둘러싼 계략의 연속과 악역을 위한 악역을 보고싶어하지 않으며, 자식의 결혼에 반대하느라 악쓰는 소리도, 이것들을 야기하는 재벌의 권력도 그만 보고 싶어한다. 최근 드라마들은 판타지물과 추리물, 또는 병원이나 법률 드라마로 전문화되고 있다.


가족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드리려면, 적어도 핏줄을 넘어선 가족관, 미혼남녀의 결합 외에도 가족을 이루는 수많은 경우들에 마음이 열려있어야 한다. 또한 가족은 ‘부모’의 이름으로 무한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며,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소유하는 것도 아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같이 살래요>가 어떤 심각한 갈등도 없이 너무 예쁘고 훈훈한 사랑 얘기로 점철된 해피엔딩이라서 현실감이 없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는 좀 더 현실에 맞닿은 가족 드라마가 주는 재미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여러 가족의 모습이 있듯이, 다양한 가족의 가치와 모습을 구현하며 우리의 상상력과 재미를 넓혀주는 가족 드라마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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