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우리 경험의 절반을 차지한다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6.11.11 19:08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가우디오랩(주)은 소리를 만드는 회사다. 오디오 전문가들이 모인 이 회사는 짧운 역사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2014년 오디오 국제 표준에 채택된 기술을 개발했고, VR로 눈을 돌려 360° 영상에 걸맞은 오디오 기술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들이 소리를 덧입힌 영상에서 소리는 사람과 더불어 움직이고 변화한다. 보기만 하던 가상현실이 보고 듣는 가상현실로 진화한 것이다. 그 덕분에 시각과 움직임에 집중한 기술이 많았던 VR & AR CHALLENGE 2016에서 유일하게 청각에 주목한 가우디오랩은 대상을 수상했다. 젊은 스타트업 기업들로 붐비는 빌딩 마루 108을 찾아 "정말 오래간만에 오디오 시장에서 뭔가 해볼 수 있는 순간을 만났다"고 말하는 가우디오랩의 오현오 팀장을 만났다.


▲ 사진 1. 가우디오랩(쥬) 오현오 팀장


Q 챌린지 2016에 참가한 팀들은 각자 기술과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피칭을 진행했다. 가우디오랩이 피칭 포인트로 삼은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A 우리 기술을 내세우기보다는 VR에서 왜 오디오가 중요한지 알리고자 했다. 소리는 우리 경험의 절반을 차지한다. VR은 가상공간 또는 여기 아닌 어딘가를 다른 곳으로 오감으로 경험 하는 것인데, 그중 IT 기술로 경험 가능한 감각은 아직까지는 시각과 청각이다. 기존 VR 기술은 몰입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데만 치중했지만 거기에 소리가 없다면 가상공간을 느낀다고 할 수 없다.


Q 가우디오랩이 챌린지 2016에서 선보인 데모 영상은 위치센서를 이용해 사용자가 움직이면서 소리도 함께 움직이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부분 못지않게 돋보인 건 공간의 질감과 크기 등까지 계산하여 현실을 섬세하게 재현했다는 점이었다. 기술뿐만 아니라 소리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할 것 같다.


A 내가 정말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려면 벽의 질감이나 공간에 대한 느낌, 예를 들어 텅 빈 회의실인지 가구로 꽉 찬 거실인지에 대한 느낌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 부분이 빠지면 굉장히 어색해진다. 가우디오랩이 당면한 과제는 실제 시장에 나오는 콘텐츠들의 소리를 완성하여 덧입히는 것이다. 콘텐츠마다 공간을 측정해 소리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VR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이므로 실제 측정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상공간을 시뮬레이션한 다음 거기에 맞는 데이터, 그러니까 소재마다 다른 사운드와 반사계수 등을 입력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 사진 2.  가우디오랩(주) 직원들


▲ 사진 3.  작업 중인 가우디오랩(주) 직원


Q 가우디오랩은 사운드를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 특히 영상 분야 기업이나 제작자들과 협업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른 분야와의 파트너십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A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과 소비하는 사람들로 나눈다면, 우리는 양쪽 모두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플러그인으로 사운드를 렌더링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플러그인이 있는 플레이어로 사운드를 재생한다. 어플리케이션 형태로 이루어진 콘텐츠는 제작 단계에서만 우리의 플러그인이 있으면 되고 적용이 어렵지는 않다. 오디오는 후반 작업이기 때문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기존에 사운드를 만들던 과정과 크게 달라질 건 없다. 프로세스는 같으니까 플러그인 사용 방법만 익히면 된다. 우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소프트웨어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그 사운드를 재생하기 위한 플레이어가 보급된다면 그게 사업이 될 것이다.


Q VR 콘텐츠는 다양한 감각적 경험이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 때처럼, 서로 다른 영역 사이의 이해가 필수적일 것 같다. 그런 교류와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A 아직은 갈 길이 멀다. VR은 많은 부분에서 기존 작업 방식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를 찍는다고 해보자. 이전엔 배우만 찍으면 됐지만 VR은 기존 카메라가 담을 필요 없었던 뒷모습까지 촬영한다. 따라서 촬영을 시작하면 스태프가 모두 빠져야 하고 조명도 설치할 수가 없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플레이 방식이 1인칭인지 3인칭인지에 따라 제작방식이 달라지는데, 중간중간 시점이 이동할 가능성도 있는데다, 단순히 달라지기만 해선 안 되고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적인 특수성도 있다. 3D가 각광받았던 몇 년 전, 수많은 기업과 단체가 3D에 뛰어들었지만 투자한 만큼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 학습 효과가 남아 있어 VR이라고 하면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은 혼동의 시기인 것이다. 그 때문에 3D와 다르게 VR은 한국이 해외에 비해 많이 늦은 상태이다. 올해라도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뭔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Q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오디오 시장이 암흑기였다고 말했다. 그런 시기에 챌린지 2016에서 오디오 기술로 수상한 소감이 어떤지.


A 오디오 업계에서 설움을 겪던 이들에게 1등을 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줄 수 있어서 좋다. 우리가 오디오를 버리지 않은 덕에 이런 즐거움을 얻었구나 싶다. 하지만 걱정도 많다. 우리는 비교적 일직 VR에 뛰어들었지만 지금부터는 많은 기업과 경쟁해야 할 텐데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진짜 게임은 해외에 나가서 싸우는 걸 텐데 한국 VR 기술은 뒤처져 있다는 인식을 깰 수 있을까, 그런 걱정들. 하지만 그렇게 부딪쳐야만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격월간 <케이콘텐츠>는 문화・콘텐츠 이슈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의견과 다채로운 정보를 제공합니다.
<케이콘텐츠>는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www.kocca.kr)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으며, 리디북스, 교보문고, 와이투북스, 모아진 앱(App)을 통해 전자책으로 구독할 수 있습니다.


ⓒ 글 및 사진 출처

케이콘텐츠 2016년 5, 6월호(vol.19)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꿈은 만화가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6.08.23 13:57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아이고, ○엄마 애 미술학원 좀 보내!” 대굴욕 사건이 일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의 독서록을 흘깃 본 한 엄마가 보다못해(?) 고언을 던진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 독서록은 그림 그리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졸라맨에 바탕색조차 제대로 못 칠한 딸아이 그림을 본 친구 엄마의 평이 정직하게 살벌했던 셈이다. 아이의 남다른(?) 그림 실력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혹평이 고통스럽진 않았다. 아이가 난생처음으로 가보고 싶다고 졸랐던 미술학원을 보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며 당당히 수강증을 끊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아이가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적은 쪽지를 가져왔다. 아뿔싸. 사교육의 병폐인가. 아이가 당당히 적은 내 꿈은 만화가였다. 이를 어쩌나.

 

걱정은 만화가가 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남다른 미술 소질이나 이야기 구성 능력이 있어야 하질 않나. 엉덩이를 붙이고 끈질기게 연재할 수 있는 능력은 또 어떻고. 그러고 보니, 아이가 적어온 만화가란 글자를 보고 내가 끊임없이 떠올리는 건 웹툰 작가였다.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같은 신출귀몰한 녀석이 내 직업부터 삼키기 시작해 곧 미래를 장악할텐데, 웹툰 작가라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도 아니면 마음의 소리란 타이틀의 만화를 1,000회 넘게 연재하고 있는 조석작가 같은 여자 조석으로 자라나는 것은 어떤가. 해외 진출에 벌이도 좋은(?) 직업이질 않은가.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 무대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수많은 박세리 키즈를 낳은 것처럼 조석 키즈가 양산되는 것은 어떤가. 아이의 재능과 무관하게 나마저도 부푼 꿈을 꾸게 되는 건 달라진 만화가들의 위상 때문이리라. 나를 비롯한 70~80년대 생들은 만화방이란 달달한 장소의 끝물을 경험하며 자랐다. 드래곤볼이며 슬램덩크와 같은 일본 작품부터 시작해 소년 챔프라 불리는 잡지를 엄마 몰래 보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다 들킨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대학을 입학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놀랍게도 만화방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기사를 위해 이메일 인터뷰를 했던 유명 웹툰 작가가 밥벌이가 안돼 만화 그리기를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시업을 준비했었다고 할 정도로 만화시장이 전멸한 순간이었다. 그를 살린 건 우연이었다. 한 대형포털의 기획자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인터넷에 만화를 그려보는 것이 어떤가란 제안이었다. 의아해하던 그는 접었던 펜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10여 뒤인 지금 그는 해외에 만화를 수출하는 작가 자리에 올라있었다.


대형포털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웹툰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말이에요.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툰(cartoon)이 더해진 새로운 상품이죠.” 인터넷으로 만화가 그냥 옮겨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기존 종이 인쇄로 소비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마우스를 이용해 스크롤을 내려가며 보는 만화. 연재할 수 있는 단위도 기존의 월간 베이스의 만화책이 아닌, 주 단위 혹은 3~4일 단위의 빠른 공급력이 있는 다른 무언가였다.

 


▲ 사진 1. 1909년 대한민보 삽화(왼쪽), 1988년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오른쪽)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국이 원조가 된 이 웹툰을 '문화기술(CT)'이라고 칭한다. 문화기술은 기존의 문화 콘텐츠 상품이 기존에 없던 기술(IT)과 융합해 만들어진 것을 뜻한다. 가령 영화 트랜스포머의 화려한 로봇 전투신을 만들어내는 영상기술(컴퓨터 그래픽)이 문화기술의 한 종류에 해당한다. 기술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변화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웹툰 역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보던 만화방식에서 벗어나 클릭을 하면 좌우로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으로 웹툰 서비스를 하거나, 스크롤을 넘길 때 보는 이에게 짧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형식이 대표적이다. 각 장면에 맞는 음악이 삽입되기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웹툰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조금 더 스마트폰 친화적(?)인 보여주기 방식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1883년 창간)에 그림이 보태지기 시작한 이래 가뎡잡지(1906)‘와 같은 곳에 만화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만화의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130여 년 만에 크나큰 변화인 셈이다.


만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을 보여주는 건 연관검색어. 웹툰을 치면 뜨는 연관검색어 3번째는 웹툰 그리는 방법이다. 웹툰 작가수입이나 특정 소비채널도 있지만 웹툰 그리는 프로그램, 웹툰 작가 되는 법이 주요 연관어에 올라있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2,405. 이들이 올리는 웹툰은 4,159개에 달한다고 한다.

 


▲ 사진 2. 웹툰을 원작으로한 영화 <이끼> 스틸컷


▲ 사진 3. 웹툰을 원작으로한 다수의 영화



배우 이종석씨가 출연하는 드라마 'W(더블유)'는 웹툰이란 새 장르를 드라마의 한 축으로 녹인 작품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웹툰을 소비하는 방식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새로운 코드로 쓰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요한 힘이 웹툰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웹툰을 작품의 장치로 소화해낸 작가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영화 '내부자들'을 비롯해 '은밀하게 위대하게','이끼'와 같은 쟁쟁한 작품이 웹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클릭 수나 별점처럼 독자들의 반응을 기반으로 한차례 '시장 검증'을 거친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경제적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드라마 역시 무수하다. '미생'부터 요즘 방영되고 있는 '싸우자 귀신아', '동네 변호사 조들호' 등 숱한 작품이 드라마로 재구성되고 있다. 게임은 물론 팬시 상품으로까지 확대되는 웹툰의 기세는 등등하다. '마음의 소리'에 이어 '노블레스'는 모바일 게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 사진 4. 모바일 게임 <마음의 소리>


웹툰으로 해외 시장을 두드리는 곳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영어 91, 중국어 57)와 다음레진코믹스와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다. KB투자증권은 이런 웹툰의 확장성으로 인해 웹툰 산업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KB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올해 3,57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2차 판권과 해외 수출을 포함하면 5,845억원 규모로 불어난다. KB투자증권은 웹툰 시장이 오는 20188,800억원까지 커지면서 연평균 22.7% 고속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하루 10~20.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들여다보게 되는 웹툰은 단순한 스낵컬처 이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재미있는 웹툰을 검색하다 발견한 웹툰창작체험소식이 대표적이다. 경산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8주간 만화수업을 했다. 웹툰을 만드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 사용법과 캐릭터 만들기를 포함한 이 수업엔 11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네이버도 최근엔 대학만화 최강자전을 열었다. 주 소비층인 젊은이들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그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일견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웹툰 작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노파심에서 한 마디 적어본다.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들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가 마감에 쫓기다 병을 얻어 휴재한다는 소식을 알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 그렇다. 갓 열 살을 넘긴 한국의 웹툰이 끈기있는 우리 청년들의 손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사진  영상 출처

표지 사진. 네이버 웹툰 <노블레스>

사진 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

사진 2~3NAVER 영화

사진 4. <마음의 소리> 공식 카페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왕의 귀환과 포켓몬고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6.07.28 10:39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 사진1 동물의 숲


뛸 듯이 기뻤습니다. 다름 아닌 동물의 숲게임을 드디어 스마트폰으로도 즐길 수 있게 될 거라는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5월 보도된 이 기사엔 무려 게임이 무료로 제공된다고도 되어 있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의 중독성은 어마어마했지만, 이 게임을 만든 회사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아, 무려 8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터라 기쁘지 않았다면 진정 거짓말일 터였습니다.


부푼 기대감도 잠시. 장맛비와 무더위에 시달리다 스마트폰용 동물의 숲을 잊고 지냈더니 더 큰 놈이 찾아왔습니다. 포켓몬 고(go)였습니다. ‘피카,피카~’ 귀여운 피카츄의 목소리를 듣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곤 못배길 뉴스였죠. 아 근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미국, 심지어 일본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선 겨우 속초와 울산 지역에서나 가능하다니요. 그래도 스멀스멀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일찌감치 수년 전부터 속초를 여름 휴가지로 정했으니, 꿩먹고 알먹고 아니겠습니까?

 


▲ 사진2 포켓몬 게임


닌텐도(任天堂株式会社)1889년 세워진 100년 기업입니다. 올해로 127년째를 맞이한 이 회사는 교세라처럼 일본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교토기업입니다. 처음엔 카드를 만드는 것으로 사업을 벌이기 시작해 게임기까지 만들게 되었는데, 처음 만든 카드가 화투였다고 합니다. 창업주인 야마우치가 타계하자 회사를 물려받은 건 손자 야마우치 히로시. 1949년 경영권을 잡은 그는 눈을 해외로 돌렸습니다. 게임 산업의 큰손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마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미국 최대의 카드 업체의 사무실이 너무나 볼품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야마우치는 그 길로 돌아와 게임기 개발에 뛰어듭니다. 카드를 만드는 것만으론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수퍼 마리오(1985)는 닌텐도를 세계적인 게임회사로 단박에 올려놓는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시작으로 닌텐도 DS를 비롯해 가정용 게임기인 위(wii)까지 수많은 게임기를 판매했죠. 이와는 별도로 닌텐도만의 게임을 만들어 내놓는 데도 열을 올렸습니다.


▲ 사진3 포켓몬 극장판


모노즈쿠리로 불리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던 이 회사는 단연 게임의 완성도 면에선 높은 점수를 받을 만했지만, 변화엔 너무나 느린 단점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닌텐도의 위기를 불러온 스마트폰이 바로 그 변화의 핵이었죠. 스마트폰은 디지털카메라와 사전,게임기를 속속 흡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게임 콘텐츠를 갖고 있던 닌텐도는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자사 게임을 변환시키기보다는 게임기를 3D(3차원)으로 만들거나, 네트워킹으로 묶는 수준의 변신만을 고집했습니다. 한때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당시 전무)이 벤치마킹을 위해 찾던 곳이었지만, 불과 수년 만에 시류를 읽지 못한 패망기업으로 손꼽힐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실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닌텐도. 과연 포켓몬 고로 부활한 것이 맞을까요? 한때 시가총액이 소니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실적 발표를 앞두고 포켓몬 고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회사의 발표로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포켓몬 고는 닌텐도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말씀드려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 이유는 닌텐도가 갖고 있는 자산 때문입니다. 한우물을 파는 괴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닌텐도만의 콘텐츠가 그것입니다.

 

야마우치 히로시가 별세하면서 야마우치가의 직접 경영은 끝이 났습니다. 닌텐도의 현 회장(5)은 기미시마 타츠미(君島 達己), 지난해 이와타 회장이 세상을 뜨자 회장직을 물려받았습니다. 2002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야마우치 회장은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무수히 참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임기를 고수했던 그가 세상을 뜨면서 닌텐도가 선택한 변신은 스마트폰과의 협력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 사진4 포켓몬 도감


한번 되짚어 봅시다. 포켓몬은 20년 전 만들어진 아이들용 게임입니다. 캐릭터는 151. 포켓몬 도감엔 불꽃, , 전기, , , 비행, 얼음 등 18개 카테고리로 이들 몬스터를 분류해 놓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포켓몬스터 특성상 끝이 없는 게임이기도 하죠. 캐릭터와 캐릭터간의 대결이 이 게임의 묘미고요. 그러다보니 이 포켓몬을 모으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포켓몬 빵과 소시지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 사진5 포켓몬 식품


시간이 지나 포켓몬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구매력까지 갖춘 성인들은 유적지에서 만날 수 있는 포켓몬에 환호합니다. 어린 시절의 향수와 더불어, 실제로 포켓몬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올 초 미국에서 열린 게임 개발자대회(GDC)에선 스타워즈에 나오는 캐릭터를 활용해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만들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올 정도로 미래 게임 시장의 키워드는 콘텐츠로 꼽았습니다. “왜 우리는 포켓몬 고와 같은 게 나오지 않느냐, 뽀로로를 활용해보자와 같은 말이 허탈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콘텐츠를 그냥 기술에 얹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사고 때문이죠.

 


포켓몬 열풍이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면서 그에 따른 경제효과를 지칭하는 신조어마저 생겨났습니다. 포켓몬과 이코노믹스를 합친 포켓모노믹스가 그것입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포켓몬 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한 포켓몬 고 택시’(운전 중 포켓몬 고를 이용하다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일본에서도 속속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전용 택시 이용은 상당히 구미가 당길만한 일입니다.) 발빠르게 닌텐도와 손잡은 맥도날드도 대표적인 포켓모노믹스의 사례입니다. 일본 맥도날드는 전국 2500개 매장에서 포켓몬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포켓몬고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유인하자는 일종의 마케팅인 셈이죠. 속초시와 울산시도 최근의 열풍에 힘입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포켓몬고를 활용한 마케팅을 해보려고 나서고 있습니다. 속초시는 포켓몬이란 단어를 써보려 했지만 라이선스를 얻지 못해 한국 공식 게임 출시 전 열풍을 누려보려던 목표가 좌절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재미입니다. 재미를 담은 스토리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는 것이죠. 포켓몬고가 대박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 요소를 상당부분 갖췄다는 점에서 저는 닌텐도의 미래가 패망을 운운하던 때보다 밝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칩히스와 듀크 기업교육원 컨설턴트인 댄 히스가 지은 스틱(stick)’에 오른 완벽한 스토리의 요건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폭발력이 있는 완벽한 스토리는 단순하고 예외적이어야 하며,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하며, 감성적인 스토리여야 한다


ⓒ 사진 출처

표지사진. 네이버 뉴스

사진. 1~5 닌텐도 홈페이지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된장열무와 만들면 된다 테크숍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6.06.30 08: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 창업대국 미국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테크숍.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곳을 방문했다. 자료:테크숍)

 

색깔이 왜 이래?”


그러니까 이놈의 팔랑귀가 문젭니다. 무더위는 찾아오고, 먹을 것은 마땅찮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야채가게 사장님이 열무 한단에 800을 외칩니다. 한눈에 봐도 참 좋은 열무가 고작 800원이라니. 어린 시절 엄마의 열무김치말이 국수를 먹어본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죠. 푸르기 그지없는 열무 앞에서 서성이는 손님에게 사장님이 결정타를 날립니다. “열무 석단에 2,000!” 열무 김치가 세상에서 가장 쉽다는 사장님 말씀을 듣다 보니 열무김치 세트가 들어있는 파란 봉투가 어느덧 손에 들려있더군요. -사장님 수완이 좋아 정작 열무는 두단을 샀습니다. 세트는 열무 두단에 얼갈이배추 한단, 쪽파 한단에 마늘, 생강, 홍고추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 이미 늦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죠. 수없이 많은 황금 레시피가 뜹니다. 이 블로그, 저 블로그를 전전하며 눈어림으로 열무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죠. 겁 없이 도전한 열무김치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어느 블로거가 양파를 갈아넣었더니 맛이 좋았다길래 양파를 찾아보니 없지 않겠습니까.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보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중, 남편을 위해 냉장고에 쟁여뒀던 양파즙이 떠올랐죠. 1초의 머뭇거림 없이 양파즙을 대거 투하하고 보니, 열무김치 색이 된장빛인 겁니다. 아뿔싸. 세상의 수많은 황금 레시피를 올린 블로거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김치 뚜껑을 열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괜찮은 김치향이 올라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 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남편 식탁에 된장빛 국물이 있는 열무김치를 올렸습니다. “이런 건 나밖에 못 만드는 거란 수식어도 잊지 않았고요. -사족입니다만, 된장 열무의 결과는 묻지 말아주시길 부탁합니다.

 


▲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테크숍. 재료를 구입(왼쪽)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

 

서설이 상당히 길었습니다만, 뭐든 겁 없이 해보자며 뛰어드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천국의 공간 이야기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곰손이어도, 만드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을 위한 그런 곳 말입니다. 바로 테크숍입니다. 고백하자면 이곳을 방문한 건 무려 석달 전의 일입니다. 3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게임개발자대회(GDC) 취재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중심가에 있는 테크숍은 좀 질려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현 정부의 창조경제센터의 아이디어를 준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방한한 테크숍의 짐 뉴턴 창업주에 따르면 모바일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인 스퀘어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 오토바이가 테크숍을 거쳐 탄생했다고 합니다. 짐 뉴턴의 강연을 보도한 매체에 따르면 테크숍을 통해 일어난 경제파급 효과는 우리 돈으로 14조원에 달한다고도 하고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2006101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문을 연 테크숍은 미국 전역은 물론 해외에도 진출했다.

 


테크숍 간판아래 이곳에서 꿈을 만들라(Build Your Dreams Here)'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첫인상은 문화센터같단 것이었습니다. 마침 방문했을 때가 오후 2시를 지난 시간이라 한산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목공실, 3D프린트가 가능한 인쇄실, 패턴을 뜨고 봉제작업을 할 수 있는 미싱실, 쇠를 자르고 연마할 수 있는 금속세공실까지 다양한 공장을 옮겨온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이색적인 것은 이런 다양한 공간에서 나이 불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멤버십으로 운영되는데 월단위로 멤버십을 유지합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테크숍에 등록한 회원은 3월 기준 약 700명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디자인부터 용접, 페인팅까지 무언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한 덕에 이용자들이 끊이질 않는다고 직원이 설명해주었습니다.

  

▲ 테크숍 작업실 전경

 

단문의 메시지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트위터의 잭 도시 창업주가 이곳을 통해 결제시스템인 스퀘어를 만들었단 이야기도 빼놓질 않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사업을 위한 시제품을 만들러 온 사람들 외에도 저처럼 일단 만들어보자고 찾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감상하기에도 꽤 즐거운 것들이었습니다.

 

▲ 크숍에 전시된 작품들. 금속 조형물과 모터 바이크, 미니어처 크기의 작품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이곳은 멤버십으로 운영된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할 수 있도록 해놨더군요. 수업 2개에 200달러니 저렴과는 거리가 멀지만 직접 뭔가 만들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꽤 괜찮은 상품으로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홈페이지를 찾아가보니 이번엔 대문에 여름캠프 공지가 떠있었습니다. 어른이 아닌 아이를 공략한 것이었는데 8살에서 17살 사이의 아이들이라면 아이디어만 갖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 볼 수 있단 것이었죠.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사업 모델을 구축한 데 이어 이번엔 아이들까지 눈높이를 낮춰 공략에 나선 겁니다. 어떻습니까. 요즘은 대세인 코딩을 배워야 한다며 초등 코딩 교실을 여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 않습니까?

 

영화 특수효과 회사엔 공대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지만, 픽사에서 경비원을 하다가 입사한 사람들도 있다. 미국이란 곳의 특징이 이것이다. 일단 하고 싶은 걸 찾으면 무섭게 덤벼든다. 어느 하나를 못해서 취업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을 안 한다. 하나만 잘해도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선 하나만 잘해도 된다. 나이, 학교를 안보는 문화가 있고, 그 위에 도전하는 정신이 있다. 이게 실리콘밸리에서 되는스타트업들이 나오는 이유다.”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이 세운 특수효과 회사 출신 이승훈 감독의 말입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처럼 왜 유독 되는 기업은 미국에서 나오느냔 질문에 대한 답이자, 창업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도 한국판 테크숍이 문을 열었습니다. 온라인 예약(http://www.digital-blacksmithshop.com) 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요, 스퀘어 같은 성공사례가 이곳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요.


레고의 이야기로 이번 글을 마치려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관심을 가졌다던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데이비드 로버트슨,빌 브린 지음, 해냄)는 책에서 본 이야깁니다. 애덤 리드 터커란 건축가가 고속성장 뒤 성장의 늪에 빠진 레고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부분이었는데요, 이 건축가가 떠올린 건 실제로 있는 건물을 레고로 축소해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대박을 쳤죠. 건축가는 있는 돈을 털어 레고 블록을 사들였고, 차고에서 샘플을 만들었습니다. 안팔리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유통업자에게 호언장담까지 할 정도로 모험을 했죠. 레고 본사 사람들마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이 상품은 탑이나 유명 건축물을 만드는 레고 아키텍쳐상품으로 재탄생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레고를 되살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영어도 한 마디 못하는데 루카스 감독의 회사로 들어가겠단 꿈을 키웠고 한국인으로선 손에 꼽는 VFX 전문가 자리에 오른 이승훈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연필로 시를 쓴다고 해서 다 같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명시는 경험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무엇이든 도전하라.”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란 시장개방, 중동한류 확산의 호기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6.05.26 14: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 한류 드라마 상영회에 참석한 한류팬들이 퀴즈이벤트에 참여해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해외문화홍보원)


최근 뉴스와 언론에서 우리 경제의 저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국가경제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수출 감소는 내수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체감 정도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어려운 국가경제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외교를 수출 회복의 기회로 활용, 성과확산 창출에 총력을 다 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중동 최대의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이란의 핵제재 해제에 따른 시장개방이 본격화됨에 따라 박 대통령은 얼마 전 비() 이슬람 여성 국가지도자로는 최초로 이란을 국빈 방문했다. 236개 기업 500여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해 건설, 설비, 제조업, 문화 분야 등의 다양한 진출협력 논의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정부는 이번 이란 국빈 방문일정에 한국문화주간 코리아 컬쳐 위크(Korea Culture Week)를 열고 한식 문화와 한국문화 체험을 주제로 한 케이컬쳐 전시문화공감을 주제로 한국과 이란의 문화교류 공연 개최 대표 한류콘텐츠인 한국 드라마 상영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총 1600여명이 참가했으며 이중 일반인 참가자 1220명 모집에 2500명이 신청해 조기 마감되는 등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 상영회는 이란에서 개최된 첫 공식 드라마 상영회로 KBS <장영실>SBS <육룡이 나르샤>, MBC <옥중화>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현지 방송 관계자와 한류 팬들에게 소개하여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현지 방송사의 구매검토 의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지난 2005<대장금>, 2007<주몽> 등이 현지 방송채널을 통해 방영되면서 최대 80~90%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우리 방송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2015년에도 <제왕의 딸 수백향> 등 총 6편이 수출돼 한류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꾸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동안 주요 한류 드라마 수출국인 중국과 일본은 남녀의 러브라인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주로 수출되고 있는데 반해 이란은 사극에 대한 수요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 같이 사극 드라마에 현지 팬의 관심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 imbc 홈페이지 <대장금>



우선 권선징악 스토리에 대한 공감대가 크다. 또한 명확한 계급문화와 영웅적 이야기를 선호하며 음식, 생활양식 등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풍부하다.

 

이란 방송시장은 국영방송사업자인 IRIB(Islamic Republic of Iran Broadcasting)가 독점, 8개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방송사업자가 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고 외산콘텐츠에 대한 검열(censorship)도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상영회 3개 작품에 대해서도 남녀의 신체접촉 남녀 신체노출 돼지고기 섭취 음주 등에 대한 대사와 장면은 검열에서 모두 삭제돼 상영됐다.

 

이밖에 애니메이션은 유아 대상의 교육 기능이 강조된 애니메이션 진출의 제한적 접근 전략이 요구되며 K-Pop의 경우 공연, 음반, 디지털 음원 수익모델은 현지 종교문화와 규제로 인해 진출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오히려 보이그룹 공연과 해외 채널을 통한 우회적 진출방법이 요구되는데 이는 진출 희망기업이 활용하기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 주도의 포괄적 이란제재법(Comprehensive Iran Sanctions, Accountability and Divestment Act of 2010)으로 인해 오랜 기간 무역 통상압박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서방 국가에서 제작된 콘텐츠 수입에 다소 배타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시장개방 초기 한류콘텐츠가 반사이익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므로 향후 2~3년이 한류 진출의 최적기일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양국 간 문화교류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2017년 하반기 중으로 현지 한국문화원을 개관해 한류 진출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출처

<대장금> 이미지  imbc 홈페이지

 ⓒ본문출처

정책브리핑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채식주의자와 맨부커상, 그리고 당신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6.05.25 09:00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그러니까 벌써 8년 전의 일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굴지의 대기업 최고경영자 인터뷰를 하러 집무실을 찾았죠. 환한 유리창 밖으로 청와대가 슬쩍 보이는 그런 멋들어진 곳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질문이 뭐였는진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기억나는 건 오로지, 답일 정도로 충격이 상당했습니다. 되짚어 보면 취미쯤을 묻는 그런 평범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한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만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죽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중략)” 


맞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이었습니다. 교과서에 등장하고,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엔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나올 정도로 그 유명한이야기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다소 투박한 경상북도 사투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구성지게 들렸습니다. 청각으로 전해지는 여름 장날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달빛 쏟아지는 메밀밭이 불쑥 머릿속을 채웠지요.

글을 외워 향유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궁금했습니다. 매년 봄이 돌아오면 지리산에 올라 지인들과 달이 뜨는 밤에 돌아가며 글을 입으로 들려준다는 답에 더는 묻질 못했습니다. 즐거운() 놀이라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게 인터뷰를 하고 돌아와 그날 밤 다시 이효석(1907~1942) 단편집을 펼쳤습니다.

◀ 만화 <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 필 무렵>을 들려줬던 올해로 71세를 맞은 신헌철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과의 만남을 떠올린 건 순전히 뉴스 때문이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힌다는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을 받았단 이야기였죠. 고백하건대 비늘 쓰인 저의 눈엔 이 책은 사실 고통스러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름답지만 음울한, 절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리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었지요. 도대체 왜, 이 여성은 삶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것도 음식을 거부하는 것으로란 지극히 단편적인 제 물음의 답은 이렇게 튀어나오더군요.



                                                                            도서 <채식주의자> ▶



‘...언닌 알고 있었어?'

대답 대신 영혜는 물었다.

'....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중략)'


-한강, <채식주의자> 중 일부 발췌

 

물과 빛만을 먹고서도 땅을 받치고 살아가는 나무가 된 여자의 이야기로 다시 책을 읽어 내려갔을 땐 묘한 희열이 일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 책은 10년 전 구상된 이야기에서 가지를 뻗어 나왔습니다. 소설가 한강 씨가 밝힌 대로라면 2002년 겨울부터 시작된 중편의 이야기가 엮여 각각의 중편과 다른 이야기가 되는 조합으로 탄생했다고 합니다. 각각 완성된 이야기들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져 또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된다니 원고지 앞에서 오랜 시간 씨름을 했을 작가의 노력과 필력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2007년에 지금처럼 한 권의 형태로 묶여 나왔던 이 책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게 된 건 조력자의 힘이 컸습니다. 벽안의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8)였습니다. 영국인인 그녀는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해 이 책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겼던 모양입니다. 그의 손에서 영어로 옮겨지지 않았던들 한국 문학계에 전례 없던 이 같은 단비가 내리긴 어려웠을 겁니다. <엄마를 부탁해>로 해외에도 이름을 알린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으로 체면을 구겼던 문단과 목말랐던 출판계가 크게 반색하고 나설 정도로 말이죠.

 

 

시상식이 열리는 영국과 바다 건너 이 땅과의 시차마저 고려한 한강 씨의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를 보낸다>는 수상 소감이 전파를 탈 즈음 전해진 다른 이야기가 있었지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시인 최영미(55)씨의 이야기였습니다. 생활보조금을 받게 될 정도로 빈궁한 시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는 일이 쉽잖은 것은 맞습니다만, 보조금을 탈 수준으로 궁핍과 다투는 시인의 모습은 또 다른 고민을 불러오더군요. 게다가 세계를 호령하는 굴지의 IT(정보기술) 공룡인 구글이 이제는 인공지능(AI)알파고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다지 않습니까.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자리마저 알파고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일까요.

 

◀ 도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웹 소설로 연봉 1억 원을 버는 작가도 있다는데, 왜 유명 시인은 밥을 굶을까요. 왜 작가들의 희비는 교차하는 것일까요스토리텔링이 가져다주는 확장성은 무한합니다. 이 스토리텔링이 돈이 되느냐 마느냐는 향유하는 자들이 얼마나 무리지어 있느냐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의 비보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있더군요. ‘그간 먹고 사는 데 정신없어 자기계발 서적이나 들춰볼 뿐 문학 서적과 담을 쌓고 지냈다는 탄식이었지요. 서점들은 앞다퉈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그의 전작들을 알리기에 나서고 있지요, 이 바람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요. 대학입시처럼 목적이 있는 글 읽기로만 우리의 문학을 봐오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것은 아닌가요. 정작 우리는 우리 글을 즐기는 방법조차 잊은 채로 말이죠. 열쇠는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웹 소설 시장이 폭증할 수 있는 스낵컬처를 만든 이가 우리인 것처럼요.

 



스토리헬퍼


기왕에 이야기에 대한 잡설을 늘어놨으니 첨언할 게 하나 있습니다. 설을 배우기 시작한 알파고와는 좀 다릅니다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참고할 만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스토리헬퍼란 소프트웨어입니다. 소위 되는 이야기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이야기의 틀을 잡을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입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혹 작가를 꿈꾸는 분들은 한 번쯤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떠하실지. 백수 시절에 커피숍을 들락거리다 끄적인 소설이 억만장자가 되게 했다는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사진출처

표지사진 <채식주의자>, 만화 <메밀꽃 필 무렵> 이미지 네이버 영화

<채식주의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미지 네이버 책

스토리헬퍼 메인 이미지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상의 동반자 라디오, 라디오의 진화를 듣다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2015.02.12 11:08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 상상발전소 기사 공모전 수상작 / 김현아 -


2014년 9월 11일, <무한도전> 멤버들이 라디오 DJ로 변신했습니다. 라디오가 예전 아날로그의 한 매체라는 인식이 무색하게, 라디오 방송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라디오는 ‘소리’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청취자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디지털과 닮아있는 매체입니다. 청취자의 일상과 함께하며 미디어의 시류에 적응해 온 라디오, 오늘은 라디오의 진화에 대해 귀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사진1 경성방송국과 내부 연주 모습 

 


일제 강점기인 1927년 2월 16일, 조선총독부 산하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이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 미 군정 체제 아래 경성방송국이 서울 중앙 방송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의 상업 방송 색채가 도입되고 광고를 위한 규칙적인 ‘편성’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정시에 방송이 시작했고, 15분마다 ‘KBS’라는 콜사인이 나왔습니다. 

 

방송의 규칙성은 사람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실제로 라디오가 없는 시골에서는 앰프로 라디오 방송을 함께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특정 라디오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편성표를 보고 방송이 시작하는 시각에 맞추어 라디오를 켰습니다. 규칙적인 청취습관이 형성된 것입니다. 라디오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편성표에 적힌 같은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바야흐로 라디오를 통해 근대적인 시간, 대중적인 시간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사진2 영화 <쎄시봉>, <써니>의 영화 스틸컷

(영화를 통해 70년대의 음악다방 문화와 라디오 청취습관을 엿볼 수 있다)



1964년, 서울 FM 방송국이 국내 최초 첫 FM 방송을 도입합니다(이후 1966년, 동양 TBC에 합병). 그러나 1970년대 흑백 TV가 보급되면서, 라디오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라디오는 ‘대중’을 위한 매체가 아닌 ‘리스너(listener)’를 위한 매체로 적응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유입된 미국 로큰롤·히피 문화로 인해 청년들은 음악다방에서 빈번히 만났습니다. 그곳에는 항상 음악 DJ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DJ 기반의 다방문화가 라디오에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DJ로는 최초의 라디오 DJ인 최동욱,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이종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황인용 등이 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각종 팝 음악과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에 나온 팝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하고는 했습니다. 1990년대 CD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음악 소개 기능이 줄어들 때까지, 라디오는 음악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교본이었습니다.



 

라디오는 소리로 전달되기에 청취자가 일하면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핵심 프로그램을 출, 퇴근 시간과 정오 시간에 편성하여 운전하는 샐러리맨과 가사 일을 하는 주부를 공략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라디오는 CD, MP3에게 ‘리스너’를 뺏겼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이를 인정하고 또 한 번 적응을 택했습니다. 이번에는 라디오가 인터넷을 품으며 1996년에 MBC 라디오가 최초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KBS 라디오가 인터넷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 서비스를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 영상1 TV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한 <두시 탈출 컬투쇼>


 

SBS 라디오 <두시 탈출 컬투쇼>는 SBS funE 채널을 통해 TV 프로그램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그리고 MBC 라디오 <심심타파>는 아이돌 DJ인 신동(슈퍼주니어)과 보이는 라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라디오 코너에 TV 예능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했습니다. 또한, 이를 별도로 녹화해 유튜브에 업로드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영상에 익숙한 어린 청취자들에게 라디오의 매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팟캐스트로 라디오의 ‘편성’이 무의미해졌습니다. 청취자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맞는 라디오를 검색해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다운받아 듣게 되었습니다. 기존 올드미디어는 이러한 변화에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는 달랐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일찍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행하고 편성을 청취자와 나누고 있었습니다. 

 

탄탄한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라디오는 빠른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 구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어플을 통해 청취자는 라디오와 훨씬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어플, 인터넷, 팟캐스트 등 라디오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청취자와 만나고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입니다. 



▲ 사진3 방송사의 라디오 어플리케이션 (왼쪽부터 SBS 라디오 어플 고릴라, KBS 라디오 어플 콩) 



그렇다면 2014년 눈에 띄는 라디오의 시도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선 라디오 특유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생방송의 강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KBS라디오 <가요광장>은 주중-주말 2 DJ 체제를 도입, 모든 방송을 라이브로 진행하였습니다. 경기방송은 <DJ 처리와 함께 아자아자 시즌2>에서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6시간에 걸쳐 생방송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공개방송을 청취자를 위한 서비스 차원이 아닌 공연의 수준까지 높이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지난 9월 MBC라디오 <정준영의 심심타파>에서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밤샘 공개방송을 마련했었습니다. 연말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함께 4시간 연속 공개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날 4시간에 걸친 공개방송은 공연의 밀도를 높여주었습니다.

 

EBS 라디오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란 프로젝트를 통해 음성이 주는 ‘상상력’에 집중했습니다. 배우들이 한국 근‧현대 문학을 낭독하고, 이를 ‘오디오북’으로 판매하는 OSMU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라디오는 본인의 정체성을 공고화하면서 꾸준히 변화했습니다. 라디오는 그 어떤 올드미디어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한 매체입니다. 지금까지 라디오가 정적이라고 생각하여 멀리하셨다면, 오늘 크게 라디오를 켜보는 게 어떨까요?



ⓒ 사진 출처

- 표지 자체제작

- 사진1 정보통신산업진흥원

- 사진2 제이필름 무브픽쳐스, 토일렛 픽쳐스

- 사진3 SBS, KBS

 

ⓒ 영상 출처
- 영상1 SBS funE 유튜브 공식채널

 

ⓒ 참고자료

- <라디오 혁명>(김은규,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3)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