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3 TV 방송사인 ABC에서 ‘CMA Christmas’라는 한 시간 반짜리 쇼를 방송했습니다. CMA(Country Music Association)는 미국 내 대표적인 컨트리 음악단체입니다. 레바 매킨타이어라는 중년 여성 가수의 진행으로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컨트리 가수들이 스무 팀 가까이 나와서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하게 꾸며진 무대에 오릅니다. 그 노래라는 것이 대개 우리한테도 귀 익은 노래들인데요. 
산타 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 ‘징글벨’ ‘실버 벨’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해마다 출연진이 바뀌고 무대도 휘황찬란하게 새로워지지만, 공연의 본질은 변함이 없답니다. 그런데도 황금 시간대에 편성이 되고, 객석은 꽉 차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꼬마들까지 앉아있어요. 
전 그걸 보면서 전통의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연대감, 그 연대감을 떠받쳐주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적 풍토 말이죠. 미국 내슈빌 여행은 유독 그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였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두 곳은 만일 나에게 내슈빌에서 고작 하루의 시간이 주어질 경우 어디를 가봐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컨트리 음악이 미국 내에서 갖는 위치와 의미를 알 수 있는 장소를 꼽아달라는 요청에 대한 추천이기도 합니다. 그럼 떠나볼까요?





외국 사람들은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내슈빌도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들이 있고, 명소들을 이어주는 관광전용 버스들이 있습니다. 이런 코스 중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입니다. 건물의 위용도 위용이거니와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찾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무엇일까요? . 바로 피아노 건반입니다.



내슈빌 명예의 전당 외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몇 걸음 더 뒤로 가서 보면 피아노를 본떠 만든 디자인이 뚜렷합니다.



내슈빌 명예의 전당 전경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전시관이라는 건 내부의 설계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한눈에 건물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외관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내슈빌 명예의 전당 입장권 판매소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입장권 판매소를 알려주는 큼지막한 그림 장식물 오른쪽에 보이는 이름 행크 윌리엄스 1940~50년 컨트리 음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가수 겸 작곡가라고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악과 역사를 아우른 여행이 시작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죠?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은 올해로 쉰 돌을 맞이했습니다. 1961 CMA에서 컨트리 음악에 공이 큰 뮤지션들을 선발해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뒤 6년 만이에요. 당시 컨트리 음악과 관련한 전시물들을 한데 모아서 1967년 지금의 이름으로 명예의 전당 박물관을 함께 문을 연 거죠. 차츰차츰 발전하면서 지금은 이렇게 큰 도시 대형 박물관의 규모에 못지않은 명소가 됐습니다. 

낯선 도시의 여행자들이 갖게 되는 고민 중의 하나가 바로 박물관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일 것입니다한 도시의 문화유산을 총체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지만박물관 특유의 고루하고 딱딱한 이미지 때문에 발걸음 하기가 망설여지곤 하기 때문이죠그런 걱정은 내슈빌에선 훌훌 털어버리세요무엇보다도 컨트리 음악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까지 두루 조망하는 동시에 미국의 현대 문화사의 궤적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줍니다한국에도 오랜 팬들이 있는 전설적인 가수들의 흔적을 찾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내슈빌 명예의 전당 전시관 내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여느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상설 전시관 외에 특별 기획전을 연중 다채롭게 운영 중입니다입구에서 입장권을 끊고 올라가는 길에 한 엘리베이터에 탄 할머니들이 속닥이더라고요. “와우앨라바마네.” 그때가 돼서야 앨라바마가 미국의 한 주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컨트리 음악밴드라는 걸 알았습니다기획전이라고 해서 항상 오래된 옛날 가수들만 다루지는 않습니다직전 전시의 주인공은 컨트리 음악계에의 잘 나가는 중견이자 중년 부부인 페이스 힐과 팀 맥그로 커플이었거든요.





내슈빌 상설 전시관 내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 상설 전시관 내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 상설 전시관 내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상설 전시관은 대충 둘러보는데도 3~4시간은 걸립니다. 팝 음악에 관심이 많은 관람객이라면 하루가 모자랄 겁니다. 컨트리 음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시대순으로 짚으면서 당대의 이름난 가수와 작사 작곡가 그리고 흔히 세션이라고 불리는 각 악기별 연주인들과 그들의 업적을 상세하게 소개해놓았어요. 당시 나왔던 둥근 레코드 판들이 하늘 저 끝까지 치솟아있는 듯합니다. 음악인들의 생명 줄이나 다름없는 악기, 그들의 체취가 밴 옷, 그리고 한창 잘 나가는 시절의 자동차까지 세세하고 일목요연하게 전시를 하니, 걸어 다니면서 한편의 현대문화사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느낌입니다. 각 시대별 음악인들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사람 키 높이의 패널을 세워놓고 그 안을 통과하도록 한 동선은 전시관 구성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내슈빌 박물관 명예의 전당 내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이번엔 박물관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으로 가볼까요? 갑자기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온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1961년부터 이곳에 이름을 올린 전설 같은 음악인들의 얼굴을 새긴 액자들이 둥글게 벽을 채우면서 위로 뻗어있습니다. 그 액자를 찬찬히 둘러보면 익숙한 얼굴들도 보입니다.





내슈빌 박물관 KEENY ROGERS 액자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한때 우리나라 유명 커피 광고에도 출연했던, 턱수염 할아버지 케니 로저스가 있습니다.



내슈빌 박물관 DOLLY PARTON 액자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케니 로저스의 영원한 음악의 파트너 달리 파튼도 보입니다.



내슈빌 박물관 ELVIS PRESLEY 액자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좀 뜻밖의 주인공이죠? 록큰롤의 전설 엘비스 프리슬리도 보입니다. 컨트리 음악이 지금은 비록 보수적인 미국 백인들의 음악으로 인식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다양한 인종과 전통을 가진 음악 갈래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됐다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케니 로저스나 달리 파튼처럼 현역 음악인들도 있지만, 이 중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인적 끊긴 밤이 되면, 동상의 주인공들이 유유히 밖으로 나와서 그들만의 한바탕 음악 잔치를 벌이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기 참 좋은 구조로 만들어졌거든요. 제가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떠올려진다고 말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이제 컨트리 음악의 내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볼까요?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려했던 과거가 오늘로 이어지는 궤적을 치밀하게 정리하고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내일의 컨트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엿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이 압축된 곳이 바로 미래의 음악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들을 위한 교육 전시공간일 겁니다.



내슈빌 교육 박물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사진의 주인공, 익숙한 얼굴이죠?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팝스타를 꼽을 때 단연 첫손에 꼽히는 테일러 스위프트입니다. 이 노래 하나로 전 세계를 shake off 했던 바로 그 여가수입니다.



Taylor Swift - Shake It Off - 동영상 출처 : 유튜브



그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름을 딴 테일러 스위프트 교육 센터입니다. 열두 살 때 기타를 치면서 음악인의 꿈을 키운 그의 음악의 뿌리는 컨트리입니다. 그 자신도 늘 그 점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지요. 지금은 컨트리 음악을 넘어선 세계적 팝스타가 됐지만, 테일러 스위프는 지금도 종종 컨트리 음악계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이나 특별 콘서트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면서 고향사랑의 모습을 몸소 실천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교육 센터는 컨트리 음악이 단지 특정 계층의 음악으로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공간으로도 느껴집니다. 이곳에서는 어린이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중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요.



내슈빌 교육 박물관 내부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이렇게 어린이들을 상대로 내가 쓰고 싶은 노래에 대해서 적어내게끔 하는 코너도 있고요.



내슈빌 전시장 입구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객들을 위한 전시장 입구에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있는 걸 보면, 테일러 스위프트가 컨트리 음악의 이미지를 젊고 글로벌하게 가꿔가는데 정말 한몫을 하나 봅니다.



내슈빌 전시장 연주기계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쌍방향 전시에는 이처럼 어린이들이 직접 노래를 하거나 드럼 등의 악기를 연주해서 하나의 곡을 연주해서 완성할 수 있는 기기들이 만들어져 있어요. 특정 갈래의 음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가족 모두가 음악을 매개로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에듀테인먼트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내슈빌을 찾는 관광객들이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과 더불어 반드시 봐야 할 볼거리로 꼽는 게 바로 그랜드 올 오프리라는 컨트리 음악 쇼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그리고 지금까지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는 컨트리 음악 공개방송입니다. 내슈빌의 라디오 방송국 WSM을 통해 첫 방송이 나간 게 1925년이었으니,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한창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낼 때 시작된 셈이죠. 그러니 적절한 비유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랜드 올 오프리는 여전히 월요일 밤 시청률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KBS 가요무대 공개방송과도 좀 성격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가요무대 공개방송은 한국 현대 대중문화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콘텐츠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랜드 올 오프리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테네시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소박한 음악방송으로 시작했지만, 컨트리 음악인들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등용문 역할을 하면서 위상이 높아졌다고 해요. 그리고 세월이 쌓이고 문화 역사적 가치가 더해지면서 이제는 이 쇼 자체가 하나의 미국 음악의 전통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습니다. 그러니 미국인들에게는 내슈빌에 가서 이 쇼를 본다는 것이 미국인으로의(물론 특정한 정치적 지향성과 특정한 인종적 배경에 국한한다는 지적도 타당하겠지만요)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식인 듯해요. 저도 그들 사이에 끼어 볕 좋은 따뜻한 5월 중순의 어느 날 그랜드 올 오프리 관람 투어 티켓을 구매했답니다.



내슈빌 공연장 들어가는 길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10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저녁노을빛을 받으며 공연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한때 내슈빌 시내에 있었던 공연장은 지금은 도심에서 30여 분 차를 타고 나가야 할 정도로 제법 떨어진 교외에 자리 잡았어요.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아카데미 시상식 개최지로 유명한 LA의 돌비 극장이나 유명 팝스타들의 공연장인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 부러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면서도 단정한 곳이었습니다. 한 번에 1500명을 수용하니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대극장 정도의 규모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공연이 열리는 토요일 일요일과 화요일(또는 금요일)이 되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요. 



내슈빌 공연장 풍경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관객들 중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모들도 많았어요 이런 아이들 중에 나중에 제2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나올 수도 있겠죠? 컨트리=어르신들의 음악이라는 편견이 확 깨지는 장면입니다.



내슈빌 공연장 내부시설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공연장 안에는 간이음식점과 기념품점이 잘 갖춰져있습니다. ‘잘 되는 공연장이라는 느낌이 확연해요. 그런데 말이죠. 정말 우리가 흔히 유색인종이라고 부르는 아시아인, 흑인, 히스패닉 등 백인이 아닌 이들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1500명의 관객 중에 아마 외지인이라곤 저와 저희 가족(아내와 딸) 세명 뿐이었을 거예요. 쇼는 두 시간 반가량 계속됐어요. 이날은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지 않은, 뮤지션들의 무대로 꾸며졌지만, 관객들은 가수의 지명도와 상관없이 미국 문화의 원류를 찾아왔다는 뿌듯함에 젖어있는 듯했어요. 저는 솔직히 그런 분위기에 살짝 압도도 되면서 음악이란 게 참 정치적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미국적 색채가 짙어서 오히려 가장 세계화되지 않은 그런 문화 콘텐츠가 어떻게 가꿔지고 사랑받으며 보존되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문화 관련자들이 기회가 되면 한 번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며..


처음 인사 드린 게 몇 주 전인데 벌써 작별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부족한 글 솜씨와 지식으로 컨트리 음악의 매력을 소개하는 게 역부족임을 느끼면서도,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에게 미국 문화의 새로운 속살을 알려드리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면 그것으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성탄과 연말연시 보내세요!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