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형] 문화원형을 찾아서, 네 번째 이야기 - 탐라답사기

상상발전소/기타 2013.07.10 16:39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이 글은 <문화원형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남쪽의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답사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모든 콘텐츠의 근간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숨겨져 있는 지역적 · 역사적 문화원형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럼 문화원형을 찾아서 제주도로 떠나봅시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성 –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峰)은 ‘성과 같이 둘러있는 산’이라는 데에서 ‘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정상에서 바라 본 일출이 영주십경(瀛州十景 : 제주도에서 경관이 뛰어난 열 곳) 중에 으뜸이라고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제주를 방문했을 때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찾았던 곳입니다. 수학여행을 왔던, 답사를 왔던, 개인여행을 왔던 누구나 한번은 꼭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총 21개의 제주올레길의 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니 그 의미가 각별하기도 합니다.

 

▲ 사진1 성산일출봉의 전경

 

답사의 끝자락에 피로에 젖어 있던 몸이지만 성산일출봉을 만나자 자연스럽게 원기가 회복됐었습니다. 그 웅장한 모습에 압도되었으며, 바닷가에 솟아있는 해발 182m의 수중 화산체의 신비로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성산일출봉의 정상으로 올라갈 때에는 그 아찔한 경사에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습니다.

 

 

▲ 사진2 성산일출봉의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바위

 

성산일출봉은 과거의 선비에게도 제가 느낀 기분을 똑같이 안겨 주었던 모양입니다. 조선시대 선비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1601년 안무어사(安撫御史)로 제주도에 파견되었는데, 그때 성산일출봉을 오른 후 <남사록>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바위를 기어오르며 아래를 훔쳐보니, 눈이 어지럽고, 가랑이가 떨리며, 마음이 두근거리며, 오싹하니 안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다 올라 보이는 형세를 말한다면 참으로 경치가 좋은 곳이다.”

 

▲ 사진3 성산일출봉 분화구 모습

 

▲ 사진4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본 성산읍의 모습

 

지금이야 그나마 바위를 깎아 계단을 만들고 양 옆으로 보호막을 쳐 놓았지만, 김상헌이 이곳을 찾았던 당시에는 한마디로 목숨 걸고 올라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정상에 다다랐을 때 보이는 분화구의 경치에 감동했던 것은 저도 김상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경치는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 사진5 성산일출봉의 쓰레기통

 

성산일출봉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나름의 이름이 붙여진 거대한 바위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찔하게 서있는 바위들에게서 신령스러움 까지 느껴집니다. 또한, 등산로 곳곳에 있는 쓰레기통을 돌로 만들어 놓고, 아기자기하게 돌하르방을 새겨 놓았습니다. 혹시나 엉뚱한 재질과 모양의 쓰레기통을 보고 산통을 깨질까 배려한 세심한 마음에 감동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쓰레기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그리운 탐라 

 

처음에도 말했듯이 질서에 지친 저는 자유를 찾아 제주로 떠나왔습니다. 둥글둥글한 논의 모양새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던 탐라의 장난스러운 첫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황금빛 보리밭과 바람, 돌담 그리고 고인돌이 어울려 있는 아름다운 섬 가파도도 기억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쓸쓸했던 제주도 유배생활은 우리에게 추사체와 세한도라는 명작을 남겨주었습니다. 은은하게 퍼지던 제주목관아 정원의 귤나무 꽃향기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황홀합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은 태곳적으로 시간여행을 한 듯 착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용암이 흘려가며 솜씨를 뽐낸 조각들을 품고 있는 만장굴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신성함까지 느껴지는 성산일출봉의 자태는 조선시대 선비 김상헌과 내가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 사진6 가파도의 황금빛 보리물결

 

제주는 나의 발길이 닿는 곳 마다 저마다의 다른 얼굴로 반겨주었습니다. 벌써 3번째 찾고 있는 제주이지만 갈 때마다 그 느낌이 다릅니다. 제주는 변하지 않습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속세에 더 진하게 물들어 가는 저에게 제주가 주는 자유가 점점 더 소중해 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탐라가 그립습니다. fin.(부록으로 계속)

 


◎ 사진출처

- 사진 1-6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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