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형] 문화원형을 찾아서, 첫 번째 이야기 - 탐라답사기

상상발전소/기타 2013.06.19 14:17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이 글은 <문화원형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남쪽의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답사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모든 콘텐츠의 근간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숨겨져 있는 지역적 · 역사적 문화원형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럼 문화원형을 찾아서 제주도로 떠나봅시다.

 

 

여행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여 있는 질서이고요.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돌아옵니다. 질서에 매여 있는 우리가 떠날 수 있기에 여행은 언제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에 비정하지 않습니다.

 

질서에 지친 어느 날 자유를 찾아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제주(濟州)는 한반도 남서해상에 있는 한국 최대의 섬입니다. 면적은 서울의 약 3배이며, 북으로 목포와의 거리는 141.6km, 부산과의 거리는 286.5km입니다. 동으로는 일본 쓰시마섬과 255.1km 떨어져 있습니다. 제주도는 8개의 유인도와 5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남북 간의 거리가 약 31km이고, 동서 간의 거리는 약 73km입니다. 모양은 동서로 길게 뻗은 모양이고, 인구는 약 50만 정도입니다.

 

 고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1145년 김부식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탐라국이 문주왕 2년(476)에 백제와 교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문무왕 2년(662)에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고려사> 지리지에는 탐라국의 개벽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려 태조 21년(938)에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가 숙종 10년(1105)에 군이 설치되면서 비로소 군현체제에 편입되었습니다.

 

 제주의 옛 명칭은 도이(島夷), 동영주(東瀛州), 섭라(涉羅), 탐라(耽羅), 탁라(―羅) 등으로 불리었습니다.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명칭인 제주는 건너다는 뜻의 ‘제(濟)’와 고을이라는 뜻의 ‘주(州)’가 합쳐진 말로서, ‘바다 건너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2007년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입니다. 또한, 2011년에는 11월에는 스위스의 비영리 재단 뉴세븐원더스(New7wonders)가 뽑은 ‘세계 7대 자연 경관’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로서 제주도는 세계인이 주목하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까지 제주도는 우리들에게 최고의 신혼여행 코스였으며,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학여행 코스로 사랑받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언제나 그리운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찾은 제주도는 고맙게도 화창한 날씨로 나를 반겨주었고, 또 한조각의 추억을 선물 받았습니다.

 

 

반가운 탐라와의 첫 대면 – 비행기에서 바라본 제주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김포공항으로 갔지만 그날 제주도는 안개가 많이 끼어 비행기는 제 시간에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제주도의 심통에 약이 오르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찾은 공항에서의 시간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존의 출발시간보다 1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아 창가 쪽 자리에 앉게 된 저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 5년 만에 다시 찾는 탐라의 모습이 한시 빨리 나타나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출발한지 약 50여분이 지나자 탐라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사진기를 꺼내서 하늘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풍경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해안가를 지나자 군데군데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주변에는 논과 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논의 모양새였습니다. 보통 네모반듯해야 할 논이 둥글둥글 제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색연필로 그려놓은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그 풍경에 저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이렇게 제주는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곳입니다.

 

▲ 사진1 비행기에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

 

후에 궁금해 해설자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본래 제주도는 논에 명확한 주인이 없이 공동으로 농사지어 수확했었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논을 나눌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공동으로 농사를 짓던 땅을 나눌 때 네모반듯하게 나눈 것이 아니라 막대기를 가지고 “요만큼이 내 땅, 저 만큼이 네 땅” 하면서 나누다보니 지금같이 둥글둥글 제 각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제주국제공항에 발을 딛고 곳곳의 풍경을 바쁘게 두리번거렸습니다. 공항 주변에 심어진 야자나무, 공항 입구마다 자리 잡은 돌하르방, 은은하게 느껴지는 바다 냄새 모든 것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여유를 갖고 오감으로 제주를 느끼고 싶었지만 다음 코스인 가파도로 가는 배 시간 때문에 서둘러야만 했습니다. 헐레벌떡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데 주차장에 고인돌 한 쌍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이 고인돌은 대체 얼마의 시간을 이곳 제주에 서있었단 말입니까. 제주의 어제와 오늘을 제주국제공항 주차장 한 편에서 보내온 이 고인돌은 나에게 “혼저옵서예.”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었습니다.

 

▲ 사진2 제주국제공항 주차장 한 편에 있는 고인돌

 

황금빛 보리밭과 바람, 돌담 그리고 고인돌 – 가파도

 제주도는 옛 부터 삼다도(三多島)라 불렸습니다. 바로 여자, 바람, 돌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자가 많다고 전해지는 이유는 바다로 어로작업을 나간 남자들이 빈번하게 사고를 당한 연유라고 합니다. 바람이 많은 이유는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이며, 돌이 많은 이유는 한라산의 화산활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자가 많은 이유야 현대에는 부합되지 못하나, 지리적인 요인과 화산활동에서 비롯된 바람과 돌은 지금도 많습니다.

 

 가파도 또한 바람과 돌이 많습니다. 이에 가파도 곳곳에는 거대한 풍력발전소가 보입니다. 또한 5km 구간의 가파올레길 코스 옆으로는 가지런히 돌담이 쌓여있습니다. 듬성듬성 올려놓은 돌담은 정겹습니다. 성의 없이 보일 정도로 틈이 많은 돌담은 제주의 태풍에도 버틸 수 있게 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였다는 것을 안 것은 후에 일입니다. 만약에 시기만 잘 맞춰서 간다면 코스 주변으로 심어진 보리밭이 황금빛으로 물든 장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100여기의 고인돌을 빼놓을 수 없는 가파도의 자랑입니다.

 

 

▲ 사진3 황금빛 보리밭의 향연인 가파도

 

연 15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이 섬은 전체 주민이 쓰는 전기를 오로지 풍력발전소를 이용해 얻습니다. 한마디로 최청정지역인 셈입니다. 가파도는 100여기의 고인돌 때문에 선사시대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때 왕실제사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던 흑우(黑牛)의 본산지가 바로 가파도입니다. 현재에는 ‘탄소없는 섬’을 목표로 풍력발전소를 이용하여 주민이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순차적으로 섬의 모든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 사진4 해안가 쪽으로 이어지는 가파도 둘레길의 모습

 

이런 노력들로 인해 가파올레길은 제주도 올레길 총 21개의 코스 중에서도 꽤나 인기 있는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코스 또한, 평지길이 많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걷기에는 그만인 곳입니다.

 

가파도의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312명입니다. 이곳의 소박한 사람들은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압니다. 가파도는 자연과 사람이 공생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공간입니다. 나는 자연을 통해 청정에너지를 얻고 있는 가파도의 지혜가 제주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가파도를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 점점 멀어져 가는 가파도에게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머물러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 사진5 제주도 둘레길의 상징인 말을 형상화한 조형물

 

※ 다음 주 2편에 계속됩니다.

 

◎ 사진출처

- 메인사진, 사진1-5 직접 촬영

 

 

신고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