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가왕 조용필’의 귀환과 ‘용필리즘 (Yongpilism)’

상상발전소/칼럼/인터뷰 2013.06.05 13:26 Posted by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발전소 KOCCA


이진섭 (브랜드 매니저/ 엘로퀀스 에디터/ 엠넷 팝칼럼니스트)

  

 

10년 전의 어느 날, 문득, ‘조용필’ 


10년 전 음악을 함께 듣던 친한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같이 오랜 음악 경험과 함께 특유의 아이덴티티로 몇 십 년 동안 무대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에너지를 보여준 외국의 뮤지션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에는 과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얘기하다가, 아마도 ‘조용필’ 단 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라고 입을 모은 적이 있다.


그땐 어떤 논리나 정황에 근거하여 그런 말을 했다기보다, 나이와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들의 열정을 쏟아내는 외국 뮤지션들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선/후배 동료 뮤지션, 음악 팬 구분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뮤지션에 대한 존경심이 깔려 있는 문화적 풍토에 대한 동경심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게 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적으로 척박한 이 땅에 ‘과연 그런 날이 올까?’하는 씁쓸함이 섞여 대뜸 생각나는 사람 하나를 떠올렸던 것 같기도 하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2013년 4월 23일 ‘조용필’

 


2013년 4월 23일이 어렴풋이 생각해보니,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도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한국 가요계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왕 조용필'의 컴백 쇼케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자 회견장에는 200여명이 넘는 취재진이 자리를 메웠고, '김제동'의 사회와 함께 '조용필'의 19번째 앨범 쇼 케이스 기자 회견이 진행되었다. 박수 갈채 속에서 등장한 ‘가왕 조용필’은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Hello!'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 끝에 팬들 앞에 다시 선 '가왕 조용필'은 '시작'과 '설렘'이란 단어를 팬들에게 낯설지 않게 내밀었다. 그 모습은 나이든 형님 혹은 사장님의 묵직함이 아닌 동네 형아, 말 그대로 용필 오빠(형)의 모습이었기에 유쾌하고, 멋있게 다가왔다. .  


“나에게 음악은 팔자라고 생각한다. (중략)..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곡들을 고민하면서, 나를 조금 열어둔 채로 음악 작업을 하고 싶었다.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고, 외국 작가들과의 협업도 즐겁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 조용필 쇼 케이스 인터뷰 中

 


‘가왕 조용필’의 19번째 앨범 [Hello]와 ‘용필리즘(Yongpilism)’


화려했던 쇼케이스를 뒤로 하고, 조용필의 19번째 앨범 [Hello]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편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지갑을 닫았던 4~50대가 마트에서, 음반점에서 엘범 [Hello]를 구매한 다는 반가운 소식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의 전석 매진과 여름 락 페스티벌 노개런티 출연이라는 놀라운 뉴스까지 들려왔다. 한 동안 얼어 붙었던 음반 시장이 ‘조용필’의 앨범 [Hello]로 활기를 찾았고, 문화적으로 단절되었던 ‘세대’와 ‘세대’는 ‘조용필’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서 ‘바운스 바운스’ 두근거리고 있었다.


어떤 기자 선배는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유난히 ‘조용필’ 앨범에 대한 관심이 과열된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전후에도 없었던 문화적 현상을, 열기를, 팬덤을, 위대한 탄생의 부활을, 만들어낸 것이 '조용필'이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가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대게, 어떤 ‘현상’에 혹은 ‘가치’나 ‘생각’에 의미가 부여된 것을 '이즘(ism)'이라고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왕 조용필'이 19번째 정규 앨범 [Hello]로 몰고 온 문화적 현상과 가치를 '용필리즘(Yongpilism)'이라고 말하고 싶다.


‘용필리즘’은 ‘연륜’으로 무게 잡지도, ‘권력’으로 센척하지도 않는, ‘조화’와 ‘존중’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가왕 조용필’의 음악적 아우라다. 한국에서 ‘용필리즘’은 뮤지션이 나이와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의 열정을 쏟아낸 결과물을 함께하는 팬들과 동료들이 하나의 문화적 장(場)을 만들어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현상과 가치는 조용필 음악의 ‘진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용필리즘’은 세대를 넘어 다양한 문화 가능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용필리즘’, 음악적 아우라 이상의 가르침


종종 우리들은 ‘연륜’과 ‘지위’와 ‘부’와 ‘명성’이 함께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한 연륜과 지위, 부와 명성간의 상관 관계보다는 ‘존경’보다는 ‘멸시’를, ‘관용’보다 ‘남용’의  흔적들을 남기면서 상처와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남겼다. 어쩌면, 지금 시점에서 ‘용필리즘’은 ‘조화’와 ‘존중’이라는 음악 이상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화두’처럼 던져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노래 ‘꿈’처럼 ‘가왕’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괴롭고도 험한 그 길’ 어귀에서 ‘20살(20집)의 꿈’을 찾아가는 ‘가수 용필이 형(오빠)’의 모습은 훈훈함을 넘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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